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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시간과 공간 ‘배경(背景)’

Jobs 9 2022. 2. 13.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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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시간과 공간 ‘배경(背景)’

 

 

1. 소설의 시간

 

(1) 이야기 시간과 텍스트 시간의 개념

 

① 이야기 시간: 이야기 속에서 연결된 사건들이 자연적 시간 순서에 따라 배열되는 방식을 말한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이 둘 이상이 되면, 여러 가지 사건들이 얽혀 서로 동시성을 띠고 일어나게 된다.

 

② 텍스트 시간: 텍스트 내에서 여러 가지 요소들이 배열되는 방법을 말하며, 달리 ‘서술 시간’이라고도 한다. 독자는 텍스트에 쓰인 대로 문장을 차례로 읽어가기 때문에, 텍스트 시간은 이야기 시간이 보여주는 복잡한 흐름을 그대로 보여 줄 수 없다.

예) 그 후 몇 번이고 심문이 지나갔다. 모든 것은 결정되었다. 인제 모든 것은 끝나는 것이다. 얼음장처럼 밑이 차다. 아무 생각도 없다. 전신의 근육이 감각을 잃은 채 이따금 경련을 일으킨다. 발자국 소리가 난다. 말소리도. 시간이 되었나 보다. 문이 삐그덕거리며 열리고 급기야 어둠을 헤치고 흘러 들어오는 광선을 타고 사닥다리가 내려올 것이다. 숨죽인 채 기다린다. 일순간이 지났다. 조용하다. 아무런 동정도 없다. 어쩐 일일까……? 몽롱한 의식의 착오 탓인가. 확실히 구둣발 소리다. 점점 가까워 오는…… 정확한…… 그는 몸을 일으키려 애썼다. 고개를 들었다. 맑은 광선이 눈부시게 흘러 들어온다. 사닥다리다./“뭐 하고 있어! 빨리 나와!”/착각이 아니었다. 그들은 벌써부터 빨리 나오라고 고함을 지르며 독촉하고 있었다. 한단 한단 정신을 가다듬고 감각을 잃은 무릎을 힘껏 괴어 짚으며 기어올랐다. 입구에 다다르자 억센 손아귀가 뒷덜미를 움켜쥐고 끌어당겼다. 몸이 밖으로 나가는 순간 눈 속에 그대로 머리를 박고 쓰러졌다. 찬 눈이 얼굴 위에 스치자 정신이 돌아왔다. 일어서야만 한다. 그리고 정확히 걸음을 옮겨야 한다. 모든 것은 인제 끝나는 것이다. 끝나는 그 순간까지 정확히 나를 끝맺어야 한다.

-오상원, <유예>

→ 인간에게 전쟁은 선택한 것이면서 또한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강요된 부조리라는 실존주의적 주제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의식의 흐름 기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 시간이 매우 짧음에도 불구하고 텍스트 시간은 비교적 길게 설정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2) 소급 제시와 사전 제시

 

① 소급 제시: 시간적으로 앞서 일어난 사건이 텍스트에서는 순서상으로 뒤에 제시되는 경우. 회상(回想)이나 회고(回顧)가 대표적인데, 영화로 치면 플래시백(flashback)과 비슷함.

예) 상일꾼일 바엔 남의 세토(貰土:소작) 마지기라도 얻어 제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삼십을 바라보도록 남의 집 머슴살이만 하고 다니던 코삐뚤이 삼복이가 하루 아침 무슨 생각이 났던지, 돈벌이를 간답시고, 조석이 간데없는 부모에게다 처자식 떠맡기고는 훌쩍 일본으로 떠나 버렸다. 그것이 열두 해 전.

-채만식, <미스터 방>

 

② 사전 제시: 시간적으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슬쩍 보여주는 경우. 일종의 예시(豫示)임.

예) 몽롱한 의식 속에 갓 지나간 대화가 오고 간다. 한 시간 후면 모든 것은 끝나는 것이다. 사박사박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 밑에 부서지던 눈, 그리고 따발총구를 등뒤에 느끼며 앞장서 가는 인민군 병사를 따라 무너진 초가집 뒷담을 끼고 이 움 속 감방으로 오던 자신이 마음속에 삼삼히 아른거린다. 한 시간 후면 나는 그들에게 끌려 예정대로의 둑길을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몇 마디 주고받은 다음, 대장은 말할 테지. 좋소. 뒤를 돌아다보지 말고 똑바로 걸어가시오. 발자국마다 사박사박 눈 부서지는 소리가 날 것이다.

-오상원, <유예>

 

 

(3) 요약적 서술과 장면 제시

 

① 요약적 서술: 이야기 시간에 비해 텍스트 시간이 짧은 경우. 텍스트에서 이야기 시간을 압축하는 것임.

예) 늙은 어미 아비와, 젊은 가속이 뼈품으로 버는 것을 얻어먹으며 굶으며 하면서 한 일년 빈둥거리고 놀더니, 적이 회심이 들었는지, 이번엔 처자식 데리고 서울로 올라왔다./서울로 올라와서는 현저동 비탈의 다 찌부러진 행랑방을 얻어 살면서, 처음 일년은 용산 있는 연합군 포로수용소엘 다니며 입에 풀칠을 하였고-이 동안 그는 상해에서 귀로 익힌 토막영어가 조금 더 진보되었고./다시 일년이나는, 그것 역시 상해에서 익힌 것을 밑천삼아 구두 직공으로 구둣방엘 다니며 그럭저럭 살았고. 그러다 일본이 싸움에 지느라고, 구두를 너무 해트려 가죽이 동이 나서, 구둣방이 너나없이 문을 닫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이번엔 궤짝 한 개 짊어지고 신기료장수로 나서고 말았다.

-채만식, <미스터 방>

 

② 장면 제시: 이야기 시간의 지속과 텍스트 시간의 지속이 등가인 것처럼 서술되는 경우. 등장인물 간의 대화 장면이 이에 해당함.

예) “진정인가?”/“머, 지끔 당장이래두, 내 입 한 번만 떨어진다 치면, 기관총 들멘 엠피가 백 명이구 천 명이구 들끓어 내려가서, 들이 쑥밭을 만들어 놉니다, 쑥밭을.”/“고마우이!”/백주사는 복수하여지는 광경을 서언히 연상하면서, 미스터 방의 손목을 덤쑥 잡는다./“백골난망이겠네.”/“놈들을 깡그리 죽여 놀 테니, 보슈.”/“자네라면야 어련하겠나.”/“흰말이 아니라 참 이승만 박사두 내 말 한마디면 고만 다 제바리유.”/미스터 방은 그리고는 냉수 그릇을 집어 한 모금 물고 꿀쩍꿀쩍 양치를 한다.

--채만식, <미스터 방>

 

 

 

2. 소설의 공간

 

(1) 공간의 개념

소설 속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무대를 ‘소설의 공간(또는 공간적 배경)’이라고 한다. 소설의 공간은 실재성을 기준으로 할 때 경험적 공간과 환상적 공간으로 구별할 수 있다. 전자는 인간의 실제적인 활동이 이루어지는 현실 공간을 말하고, 후자는 인간이 경험할 수 없는 공간으로 허구적이고 초월적인 공간을 말한다.

대개의 소설에서 공간은 한 곳으로 고정되기보다는 인물이 이동하면서 확대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 경우 시간과 공간은 결합 양상을 보일 수밖에 없다. 즉 소설은 일종의 여행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이 이동의 경로는 소설의 주제와 구성, 그리고 이야기의 흐름에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2) 공간의 기능

 

① 인물의 행동과 사건 전개에 사실성을 부여한다.

‘화개장터’의 냇물은 길과 함께 세 갈래로 나 있었다. 한 줄기는 전라도 땅 구례(求禮) 쪽에서 오고 한 줄기는 경상도 쪽 화개골〔花開峽〕에서 흘러내려, 여기서 합쳐서, 푸른 산과 검은 고목 그림자를 거꾸로 비추인 채, 호수같이 조용히 돌아, 경상 전라 양도의 경계를 그어 주며, 다시 남으로 남으로 흘러내리는 것이, 섬진강(蟾津江) 본류였다.

하동(河東), 구례, 쌍계사(雙磎寺)의 세 갈래 길목이라, 오고 가는 나그네로 하여, ‘화개장터’엔 장날이 아니라도 언제나 흥성거리는 날이 많았다. 지리산(智異山) 들어가는 길이 고래로 허다하지만 쌍계사 세이암(洗耳岩)의, 화개협 시오 리를 끼고 앉은 ‘화개장터’의 이름이 높았다. 경상 전라 양도 접경이 한두 군데일 리 없지만 또한 이 ‘화개장터’를 두고 일렀다.

-김동리, <역마> 중에서

→ 이 작품은 ‘역마살’을 소재로 하여, 한국적인 운명관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역마살은 한 곳에 안주하지 못하고 길 위를 떠도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을 말한다. 이 점에서 ‘화개장터’라는 공간적 배경은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암시하는 동시에, 사건 전개에 사실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길이 세 갈래로 나뉜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이 ‘세 갈래 길’이 작품의 주인공인 성기의 역마살과 밀접한 관련을 맺기 때문이다.

 

② 시대와 사회 분위기와 호응하며, 사건 전개를 암시한다.

삼팔 접경의 이 북쪽 마을은 드높이 갠 가을 하늘 아래 한껏 고즈넉했다. /주인 없는 집 봉당에 흰 박통만이 흰 박통을 의지하고 굴러 있었다. /어쩌다 만나는 늙은이는 담뱃대부터 뒤로 돌렸다. 아이들은 또 아이들대로 멀찌감치서 미리 길을 비켰다. 모두 겁에 질린 얼굴들이었다./동네 전체로는 이번 동란에 깨어진 자국이라곤 별로 없었다. 그러나 어쩐지 자기가 어려서 자란 옛 마을은 아닌 성싶었다.

-황순원, <학>

 

③ 작중 분위기를 제시하고, 인물의 행동과 태도를 암시한다.

예) 역장은 먼지 낀 유리를 통해 대합실 안을 대충 휘둘러본다. 대합실이라고 해야 고작 국민학교 교실 하나 정도의 크기이다. 일제 때 처음 지어졌다는 그 작은 역사 건물은 두 칸으로 나누어져서 각각 사무실과 대합실로 쓰이고 있는 터였다. 대개의 간이역이 그렇듯이 대합실 내부엔 눈에 띌 만한 시설물이라곤 거의 없다. 유난히 높은 천장과 하얗게 회칠한 사방벽 때문에 열 평도 채 못 되는 공간이 턱없이 넓어 보여서 더욱 을씨년스런 느낌을 준다. 천장까지 올라가 매미마냥 납작하니 붙어 있는 형광등의 불빛이 실내 풍경을 어슴푸레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임철우, <사평역>

 

④ 상징성을 지녀, 작품의 주제를 부각시킨다.

타작마당 돌가루 바닥같이 딱딱하게 말라붙은 뜰 한가운데, 어디서 기어들었는지 난데없는 지렁이가 한 마리 만신에 흙고물 칠을 해가지고 바동바동 굴고 있다. 새까만 개미떼가 물어 뗄 때마다 지렁이는 한층 더 모질게 발버둥질을 한다. 또 어디선지 죽다 남은 듯한 쥐 한 마리가 튀어 나오더니 종종걸음으로 마당 복판을 질러서 돌담 구멍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김정한, <사하촌(寺下村)>

 

⑤ 인물의 심리 상태와 호응을 이룬다.

동욱이가 들어 있는 집은 인가에서 뚝 떨어져 외따로이 서 있었다. 낡은 목조건물이었다. 한 귀퉁이에 버티고 있는 두 개의 통나무 기둥이 모로 기울어지려는 집을 간신히 지탱하고 있었다. 기와를 얹은 지붕에는 두세 군데 잡초가 반 길이나 무성해 있었다. 나중에 들어 알았지만 왜정 때는 무슨 요양원으로 사용되어 온 건물이라는 것이었다. 전면(前面)은 본시 전부가 유리창문이었는데 유리는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았다. 들이치는 비를 막기 위해서 오른편 창문 안에는 가마니때기가 늘이워 있었다. 이 폐가와 같은 집 앞에 우두커니 우산을 받고 선 채, 원구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집에 도대체 사람이 살고 있을까?

-손창섭, <비 오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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