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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루이스, 미국 중부, 미주리 주 동부, 미시시피 강과 미주리 강의 합류점

Jobs 9 2023. 7. 11.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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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루이스 
미국 중부, 미주리 주 동부에 위치해 있다. 2019년 추계 시내 인구는 약 30만 명, 도시권 인구는 280만 명.

세인트루이스 시(City of St. Louis)가 카운티(군)와 동격인 별도의 독립시이며, 세인트루이스 시를 둘러싸고 세인트루이스 카운티(St. Louis County)가 별도로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근접해 있는 일리노이 도시들과 광역권을 만들어 도시권 인구가 290만 명이 된다. 도시 인구가 매우 낮은 이유 중 하나는 다운타운의 치안이 불안해져 세인트루이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 세인트루이스군과 근접해 있는 일리노이 등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지리
미주리의 동부, 미시시피 강의 서쪽 연안에 위치하며, 미주리 강의 합류점 부근에 있다. 미시시피 강 건너편은 일리노이 주에 속하며 이스트세인트루이스라는 위성도시가 있고, 넓은 지역을 대도시권으로 두고 있다. 시카고 기준으로는 남서쪽으로 약 450km 떨어져 있다. 북위 38도~39도 선에 위치하여 한국의 황해도와 위도가 비슷한데, 1월 평균 기온 -2℃, 7월 평균기온 27℃, 연평균기온은 13℃로 대전시와 비슷한데 대전보다 대륙성이 강하고 미국 대륙 중앙부 동서남북의 기단의 영향을 다 받으므로 일년 내내 기온 변화가 심하고, 토네이도의 타격을 받기도 한다. 

 

역사
프랑스 모피 상인들이 세웠으며, 시성된 루이 9세의 이름을 따라 지었다. 미국의 중요한 내륙 수로인 미시시피 강과 미주리 강의 합류점에 위치하여 일찍부터 수상 교통의 요지로 주목받았다.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 구입을 통해 양도받은 땅이며, 처음에는 중서부의 서쪽 끝이자 중부의 시작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서부개척시대가 열리기 전까지는 (당시 기준으로) 미국에서 문명의 향취를 맡을 수 있는 최서단에 위치한 도시였으며, 서부개척시대 이후로는 개척의 시작점인 동시에 그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시가 되었다. 동부와 서부, 남부와 북부를 연결하는 위치에 있어 미시시피 강, 미주리 강의 수운과 철도 교통으로 19세기 중반부터 급격히 발전하기 시작하여, 초반에는 시카고보다 먼저 성장한 도시가 되었다. 남북전쟁 직후, 이 도시는 뉴욕, 필라델피아, 브루클린 다음가는 미국 제4의 도시였고, 브루클린이 후에 뉴욕 시에 편입된 것을 감안하면 미국 제3의 도시였다고도 할 수 있다. 이후 시카고가 철도산업으로 급격히 성장하고 수운 경제가 쇠퇴하면서 그 자리를 내주고 미국 인구 제 10위권 도시로 추락했다.   

역사와 미국 인종차별의 현주소와 인연이 깊은 도시인데 미국 남북전쟁 직전에는 전쟁의 도화선이 된 드레드 스콧 재판이 이 곳에서 열렸고 노예는 인간이 아니라서 소송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역사적 판결이 나온 장소이기도 하며 현재 후술할 인종간 사회경제적 격차가 제일 심한 도시로 꼽히며 2014년에는 퍼거슨 소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마틴 루터 킹의 민권운동 시절 이후에 흑인인권 신장을 재요구하는 BLM 운동의 시발점이 된 도시다.  

1900년 인구는 57만 여명이었고, 당시 미국에서 뉴욕, 시카고, 필라델피아 다음가는 미국 제4의 도시로 미국의 대표적인 전국구급 도시의 하나였다. 1904년에는 엑스포와 하계올림픽을 개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오대호 연안의 공업도시들이 성장하고, 서부의 "개척"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같은 대도시가 생겨나며 덴버와 같은 새로운 중간기착지까지 성장하기 시작하자 점차 쇠퇴하기 시작한다. 인구는 이후로도 한동안 꾸준히 늘어나기는 했으나 1920년에는 자동차와 철강 산업으로 급격히 성장한 디트로이트와 클리블랜드에 추월당해 중서부 콩라인 도시 위치에서 밀려났고, 1930년에는 캘리포니아에서 성장하는 로스앤젤레스에도 추월당해 미시시피 강 서쪽의 최대 도시의 지위도 넘겨주었다. 그래도 1950년 인구는 85만 여명으로 미국 8위의 대도시로 흥했지만 이후 쇠퇴하는 중서부 도시의 하나로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1950년 대비 2010년 인구 감소율은 62.6%로, 몰락한 도시의 대명사인 디트로이트보다 더 높았다.# 2010년 인구는 31만여 명으로 전성기 때 인구의 반 이하로 줄어들었고 미국 도시 인구순위는 58위로 급추락했다. 이 도시가 80년 전만 해도 로스앤젤레스를 뛰어넘는 도시였다는 것이 이제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몰락. 한국인은 6천명 가량으로 한인타운도 없을 정도로 적게 거주하고 있다. 

1950년대 미국에서 도심 공동화가 문제시되기 시작하면서 전국에 도심 공동화와 젠트리피케이션의 대명사인 도시가 되었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재개발을 계획하고 왕년의 영화를 기념하는 랜드마크인 게이트웨이 아치를 건설하기도 했지만, 도시의 몰락 속도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하지만 2015년부터 시 정부의 친기업 정책을 시행하고 난 뒤 이케아, 마스터카드 본사, 그리고 홀푸드 (Whole Foods)가 들어오면서 다시금 번영을 꾀하고 있고 2017/8년에는 아마존닷컴의 제2본사 후보 도시로 결정되어서 지역 부동산과 경제가 철도개발 이전 시대와 같이 다시 활발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일었지만 제2 본사는 버지니아 주 알링턴으로 결정되어서 다시 현시창으로 물거품이 되었다.  

 

치안
치안은 미국 내에서도 끔찍하게 나쁜 편으로, 동남아시아나중남미 슬럼가와 맞먹거나 그 이상급으로 나쁘다. 해가 지고 나서는 후술한 Delmar Loop나 South Grand같은 바들과 고급 레스토랑 지역 외에는 돌아다니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그래도 대학 캠퍼스 바로 주변이나 부유층들이 많이 사는 동네는 치안이 비교적 양호한 수준이다. 하지만 그 외의 지역들은 현실판 범죄도시를 방불케 할 정도의 막장 치안을 자랑한다. 

살인율이 특히나 매우 높은데 10만명당 살인율이 64.54명으로 2019년 기준 미국 전체에서 1위를 찍었다. 그 악명높은 볼티모어를 2위로 밀어낼 정도다. 2022년에는 다소 살인율이 감소해서 60.9명을 찍었지만 여전히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나마 이정도 수치도 2017년 이후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를 뽑을 때 10위권 안에는 무조건 드는 도시이며, 보통은 디트로이트, 오클랜드, 볼티모어와 선두권을 다툴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2012년 기준으로 7개의 범죄율 부분 중 6개 부분에 올라있다. 

맨하튼 인스티튜트에 따르면 세인트루이스는 미국 도시들 중에서 빈부격차와 흑백격리가 가장 큰 도시이며, 동네와 동네 사이의 도로 하나 차이로 집값이 한화 1억 이상 차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속칭 Delmar Divide라고 불렸는데 BBC의 연구로 인해서 가설이 아닌 사실로 밝혀졌다. 델마대로 북쪽으로 올라가면 인구의 98%가 흑인, 집 중앙값은 7만 3천 불에 개인 소득 중앙값은 1만 8천 불(한마디로 일 안하고 정부에게서 실업수당을 받으면 딱 1만 8천 불이다)이다. 하지만, 델마대로 남쪽으로 내려가면 70%가 백인(그것도 아시아계 미국인과 히스패닉이 그나마 많이 낮춘 것이다)이고 집 중앙값은 33만 5천 불, 그리고 개인 소득 중앙값은 5만 불로 델마대로 남쪽으로 살짝 건너기만 해도 도시의 느낌이 확 달라진다. 즉 세인트루이스는 남부는 중산층~부유층 비율이 높은 반면 북부는 빈곤층들이 대다수이므로 북부의 치안이 매우 나쁜데 델마대로 북쪽만 위험한 것도 아니다. 남쪽의 린델대로에서도 새벽 한두시만 되면 총 소리가 매일 최소 두 발 이상은 들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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