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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총 화왕계

Jobs9 2021. 12. 26.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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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총 화왕계

……(전략)…… 신문대왕(神文大王)이 한여름 5월에 높고 밝은 방에 거처하면서 설총(薛聰)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오늘은 오랫동안 내리던 비가 처음으로 그치고 향기로운 바람이 살랑살랑 부니 좋은 반찬과 애처로운 음악이 있더라도 고상한 말과 좋은 웃음거리로써 울적한 회포를 푸는 것만 같지 못하다. 그대는 틀림없이 기이한 이야기를 들은 것이 있을 것이니, 나를 위해서 이야기해 주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설총이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신이 들으니 옛날에 화왕(花王)이 처음 전래하였을 때 이를 향기로운 정원에 심고 비취색 장막을 둘러 보호하자 봄 내내 그 색깔의 고움을 발산하니 온갖 꽃을 능가하여 홀로 빼어났습니다. 이에 가까운 곳과 먼 곳에서 아름답고 고운 꽃들이 달려와 찾아 뵙고 오직 자기가 여기에 미치지 못활까 걱정하지 않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한 아리따운 사람이 나타났는데, 붉은 얼굴에 옥같이 하얀 치아에 얼굴을 곱게 단장하고 예쁜 옷을 입고 하늘거리며 천천히 다가서며 말하기를, ‘첩(妾)은 눈처럼 흰 모래를 밟고 거울처럼 맑은 바다를 대하면서 봄비에 목욕을 하여 때를 벗기고, 맑은 바람을 쏘이며 스스로 즐기는 장미입니다. 왕의 아름다운 덕을 듣고 향기로운 휘장 속에서 잠자리를 모실까 하오니, 왕께서는 저를 받아 주시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또 한 대장부가 있어 베옷을 입고 가죽띠를 둘렀으며, 흰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짚고 노쇠하여 비틀거리며 굽어진 허리로 걸어와 말하기를, ‘나는 서울 성 밖의 큰길 가에 살면서 아래로는 넓은 들의 경치를 바라보고, 위로는 뾰족하고 높다란 산에 기대어 사는 백두옹(白頭翁)이라고 합니다. 가만히 생각하옵건대 좌우에서 갖다 바치는 것이 비록 풍족하여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차와 술로 정신을 맑게 하고 옷장에 옷을 가득 저장하고 있더라도 반드시 좋은 약으로 기운을 북돋우고 아픈 침으로 독을 없애야 합니다. 그러므로 비록 실을 만드는 삼(麻)이 있더라도 띠를 버릴 수 없다고 합니다. 무릇 모든 군자는 어느 세대나 없지 않으니, 모르겠습니다만 왕께서도 그러한 뜻이 있으신지요?’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두 사람이 왔는데 누구를 취하고 누구를 버리시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화왕이 말하기를, ‘장부의 말에도 합당한 것이 있으나 아름다운 사람은 얻기 어려운 것이니 이를 어떻게 함이 좋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장부가 다가가 말하기를, ‘저는 왕께서 총명하여 이치와 옳은 것을 알 것으로 생각하여서 왔는데, 이제 보니 그것이 아닙니다. 무릇 임금이 된 자가 사특하고 아첨하는 자를 가까이하고 정직한 사람을 멀리하지 않음이 드뭅니다. 이런 까닭에 맹가(孟軻)가 불우하게 몸을 마쳤고, 풍당(馮唐)1)은 낭중(郎中) 벼슬에 묶여 늙었습니다. 예부터 이러하니 저인들 이를 어찌 하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화왕이 이르기를, ‘내가 잘못하였구나! 내가 잘못하였구나!’라고 하였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왕이 슬픈 얼굴빛을 지으며 말하기를, “그대의 우화(寓話) 속에는 실로 깊은 뜻이 있으니 청컨대 이를 써서 임금이 된 자의 교훈으로 삼도록 하라.” 하고, 설총을 발탁하여 높은 벼슬을 주었다. ……(하략)……

『삼국사기』권46, 「열전」6 설총

 

 

(前略)…… 神文大王, 以仲夏之月, 處高明之室, 顧謂聰曰, 今日, 宿雨初歇, 薰風微涼, 雖有珍饌哀音, 不如高談善謔以舒伊鬱. 吾子必有異聞, 盍爲我陳之.

聰曰, 唯. 臣聞昔花王之始來也, 植之以香園, 護之以翠幕, 當三春而發艶, 凌百花而獨出. 於是自邇及遐, 艶艶之靈, 夭夭之英, 無不奔走上謁, 唯恐不及.

忽有一佳人, 朱顔玉齒, 鮮糚靚服, 伶俜而來, 綽約而前曰, 妾履雪白之沙汀, 對鏡淸之海, 而沐春雨以去垢, 快{袂}淸風而自適, 其名曰薔薇. 聞王之令德, 期薦枕於香帷, 王其容我乎.

又有一丈夫, 布衣韋帶, 戴白持杖. 龍鍾而步, 傴僂而來曰, 僕在京城之外, 居大道之旁, 下臨蒼茫之野景, 上倚嵯峨之山色, 其名曰白頭翁. 竊謂左右供給雖足, 膏粱以充膓, 茶酒以淸神, 巾衍儲藏, 須有良藥以補氣, 惡石以蠲毒. 故曰雖有絲麻, 無棄菅蒯. 凡百君子, 無不代匱, 不識, 王亦有意乎.

或曰, 二者之來, 何取何捨. 花王曰, 丈夫之言, 亦有道理, 而佳人難得, 將如之何. 丈夫進而言曰, 吾謂王聦明識理義, 故來焉耳, 今則非也. 凡爲君者, 鮮不親近邪侫, 踈遠正直. 是以孟軻不遇以終身, 馮唐郞潛而皓首. 自古如此, 吾其奈何. 花王曰, 吾過矣. 吾過矣.

於是王愀然作色曰, 子之寓言, 誠有深志, 請書之, 以謂王者之戒. 遂擢聰以高秩. ……(下略)……

『三國史記』卷46, 「列傳」6 薛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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