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 이야기
강수(强首)는 중원경(中原京)의 사량인(沙梁人)이고, 아버지는 석체(昔諦) 나마(奈麻)이다. 그 어머니가 꿈에 뿔이 달린 사람을 보고 임신하여 낳았는데, 머리 뒤편에 뼈가 불쑥 나와 있었다. ……(중략)…… 나이가 들자 저절로 책을 읽을 줄 알고 의리를 통달하였다. 아버지가 그 뜻을 알아보고자 하여 묻기를, “너는 불교[佛道]를 배우겠느냐? 유교[儒道]를 배우겠느냐?”라고 하였다. 대답하기를, “제가 들으니 불교는 세속을 도외시한 가르침(世外敎)인데, 저는 인간세계의 사람으로서 어찌 부처가 되는 것을 배우겠습니까? 유교의 도를 배우고 싶습니다.”라고 하였다. 아버지는 “네가 좋은 대로 하라.”고 하였다. 드디어 스승을 찾아가 『효경(孝經)』⋅『곡례(曲禮)』⋅『이아(爾雅)』⋅『문선(文選)』을 읽었는데, 들은 바는 비록 낮고 비근하여도 얻는 바는 높고 깊어서 우뚝 솟은 당대의 인재가 되었다. 드디어 관직에 나아가 여러 벼슬을 거쳐 당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이 되었다.
강수가 일찍이 부곡(釜谷)의 대장장이 집 딸과 혼인 전에 정을 통하였는데, 좋아하는 마음이 자못 돈독하였다. 나이 20세가 되자 부모가 읍내의 처녀들 중에서 용모와 행실이 아름다운 자를 중매하여 장차 그의 아내로 삼으려고 하였다. 강수는 두 번 장가들 수 없다며 사양하였다. 아버지가 성내며 말하기를, “너는 이 시대에 이름이 나서 너를 모르는 나라 사람들이 없다. 그런데 미천한 사람을 배우자로 삼는다면 또한 수치스럽지 않겠느냐?”라고 말하였다. 강수가 두 번 절하고 말하기를, “가난하고 미천한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도를 배우고도 그것을 실행하지 않는 것이 정말 부끄러운 것입니다. 일찍이 옛사람의 말을 들었는데, ‘조강지처(糟糠之妻)는 마루에서 뜰에 내려오지 않게 하며, 가난하고 미천할 때에 사귄 친구는 잊을 수 없다’라고 하였으니 미천한 아내라고 해서 차마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태종대왕(太宗大王: 태종무열왕)이 즉위하였을 때 당나라 사신이 와서 조서(詔書)를 전하였는데, 그 글 가운데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왕이 그를 불러 물으니, 왕의 앞에서 한 번 보고는 해석하는 데 막힘이 없었다. 왕이 크게 기뻐하여 서로 늦게 만남을 한스럽게 여겼다. 그 성명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신은 본래 임나가량(任那加良) 사람으로 이름은 우두(牛頭)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그대의 두골(頭骨)을 보니 ‘강수선생(强首先生)’이라 불러야겠다.”라고 하고, 그에게 당나라 황제의 조서에 감사하는 답서를 쓰게 하였다. 글이 잘되고 뜻을 다 담았으므로 왕이 더욱 기이하게 여겨 이름을 부르지 않고 임생(任生)이라고만 하였다.
강수는 일찍이 생계를 도모하지 않아서 집이 가난하였으나 즐거워하였다. 왕이 담당 관청에 명하여 해마다 신성(新城)의 조(租) 100섬을 주게 하였다. 문무왕(文武王)이 말하기를 “강수는 문장을 잘 지어 능히 중국과 고구려⋅백제 두 나라에 편지로 뜻을 다 전하였으므로 우호를 맺음에 성공할 수 있었다. 나의 선왕이 당나라에 군사를 청하여 고구려와 백제를 평정한 것은 비록 군사적 공로라고 하지만, 또한 문장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인즉 강수의 공을 어찌 소홀히 여길 수 있겠는가?”라고 하고, 사찬(沙飡)의 관등을 주고 봉록을 매년 200섬으로 올려 주었다. ……(하략)……
『삼국사기』권46, 「열전」6 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