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Humanities/동양사 Asian History

삼천갑자 동방삭, 한무제, 사마천, 사기 골계열전

Jobs 9 2021. 3. 12. 18:37
반응형
동방삭은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전설적인 인물.
문무를 겸비한 당대 최고의 지성이었으며 격동기의 국가경영에 탁월한 통치술을 보여준 핵심 브레인, 만담의 시조인 잡예창곡자(雜藝唱曲者)의 창시자, 점성술의 선구자였다.

사기 골계열전 동방삭전, 한서 동방삭 열전, 그 외에 한무제 시기를 다룬 사적들에서 조각조각으로 발견된다. 전체적으로 동방삭을 다룬 전에서는 웃기는 부분이 더 강조되고, 당대사에서 출연할 때에는 일반 관료적 모습을 보인다.

어릴 적 부모를 잃고 형 밑에서 독학한 수재. 그의 절친이 그 유명한 사마천이다.

언변에 능수능란해 무제에게 총애를 받았으며, 자신을 비난하는 학자들과 말싸움을 벌여서 이긴 인물. 게다가 괴짜라서 무제가 베푼 연회에 참석해서 신나게 먹은 뒤 남은 건 바리바리 싸가지고 집에 갔다고 한다. 주변 신하들은 저런 무례한 자는 벌해야 한다고 난리를 쳤지만 원래 그런 인간임을 잘 안 무제[1]는 그냥 그가 하고 싶은 대로 놔뒀다고 하니, 전설 속의 이미지는 이런 그의 행동에서 나왔을 것이다. 또한 자잘한 초능력 틱한 능력을 자주 보인 인물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상자 속에 들어있는 물건을 맞추게 하는 시험을 무제가 많이 하였는데, 동방삭은 이를 틀리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 외에 옛사람들은 산속에 은거했지만, 자신은 도시에 은거했다는 식의 도가적 이야기도 많았으며, 재물은 들어오면 바로 써버리는 모습도 보였다.

이렇게 광대와 재담으로 입씨름을 하고, 자잘한 마술에 가까운 재주를 보인 동방삭이지만, 본인 스스로는 정치가로서의 의욕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도가적 모습에 가려진 동방삭에게는 또 다른 이면이 존재했다. 동방삭은 스스로를 천거하는 상서를 죽간 3000간의 양으로 바쳤고, 무제가 이를 몇 달에 걸쳐서 읽으며 즐길 정도로 뛰어난 글이었다. 이런 재담 등으로 인해서 동방삭은 공식적으로는 문인으로 평가를 받는다. 한중 개발에 노력하였으며 정치적으로 뭔가를 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법가적 정치를 지향했던 한무제는 동방삭이 자신의 주변에서 재담을 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그의 정치적 식견을 인정 하지는 않았다. 만일 도가적 성향이 강했던 문경지치 시대에 활약했다면, 동방삭도 한가락 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한무제 시대는 법가적 정치력을 가진 유사한 인재들이 넘치던 시대였다. 사기나 한서에는 유가적 정치가들을 순리, 법가적 정치인을 혹리라고 기록하는데, 혹리열전에 기록된 인물중 상당수가 이 때 등장한다. 동방삭은 한무제 시대의 이 두텁고 황제의 신임을 받는 인재풀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속만 끓이게 된다. 사기 동방삭 전에는 다른 이들을 동방삭이 출세하지 못하는 것을 소진과 장의를 들어서 비판하자 동방삭이 소진과 장의가 다시 태어나도 지금 시대에는 아무것도 못할 것이다라고 반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대목은 친구인 사마천이 동방삭을 평가한 대목으로 봐야 할 것이다. 애초에 한무제는 동방삭에게 정치적 능력을 바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동방삭도 무제에게 내심에 담아두었던 표현을 하다가 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동방삭이 《시경》의 시를 인용하여 간신을 멀리하고 참언을 물리치라고 간언하였는데, 친구 사마천은 이를 두고 《사기》 <골계열전>에서 '새가 죽을 때는 소리가 구슬프고, 사람이 죽을 때는 말이 선하다'라는 옛말을 인용하여 그의 죽음을 기렸다. 하지만 정작 무제는 동방삭이 충언을 하다니 이상하다고 생각한 듯하다. 물론 역으로 동방삭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지못미.

물론 정치가로서의 동방삭에 주목하는 것이 주요하기는 하지만, 단지 도가적 인물로 보는 경향도 있다. 그리고 재담가로서의 성향이 더욱 강조되기도 한다. 단적으로 동방삭이 실린 사적은 사기 <골계열전>, 순우곤 처럼 직위는 낮으나 재담과 유머를 이용해 군주에게 바른 말을 한 사람들이 실린 열전이다. 그리고 동방삭이라는 인물이 무제시대의 법가는 물론이고, 유교식 예법에도 맞지 않는 인물이라서, 순우곤 정도라면 몰라도 동방삭은 너무 예의를 벗어났다는 식의 비판도 많이 받았다.

유명한 고사성어로 빙탄불상용이란 말을 남겼는데, 이는 얼음과 목탄(불)이 같이 한 장소에 존재할 수 없듯이, 간신과 충신은 한 자리에 섞일 수 없다는 의미. 물이 맑으면 큰 물고기가 없고, 사람이 지극히 살피면 따르는 사람이 없다는 고사성어 수청무어는 명심보감으로 유명해졌으나, 역시 한서 동방삭전이 출전이다.

동박삭은 해마다 부인을 바꾸고 감금, 납치, 학대를 일삼았다는 야사가 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