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자치·자연”으로 풀어낸 아나키즘 오디세이
아나키즘은 모든 지배와 권위, 권력을 반대한다. 즉 아나키즘은 지배가 없는 상태, 권위와 권력이 없는 세계를 지향한다. 바로 인간들이 자유롭게, 자치적으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회를 바라는 것이다. 바로 우리들이 다 함께 꿈꾸는 세상이다.
그러나 아나키즘은 그동안 우리에게는 주로 무정부주의라고 번역되어, 정부가 없는 극도의 무질서한 혼란 상태를 조장하며 절대적 자유를 주장하는 폭력주의이자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쯤으로 치부되어왔다. 즉 무법, 무질서, 혼란으로, 반도덕주의, 반민주주의로, 반항자, 파괴자, 은둔자, 범죄자 등 일탈자들의 반항으로, 극단적 자유주의나 이기주의로, 사회주의의 아류쯤으로 취급되어온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잘못된 우리의 아나키즘 인식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며, 국가 만능주의, 지배 과잉주의, 자본 제일주의에 반대하고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살며 자치하는 삶을 아나키즘이라고 보고, “자유·자치·자연”을 기초로 하는 새로운 아나키즘 사회를 모색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자유·자치·자연”이라는 분석과 실천의 틀로 현대 아나키즘의 역사와 미래를 조명하는 점에 그 특징이 있다. 서구 근대사상의 하나로 아나키즘이 출현한 이래 아나키즘의 이론과 실천, 그 역사와 투쟁을 종횡으로 살피며, 아나키즘이 우리 인간에게 무엇이었나를 깊이 있게 조명한다.
또한 이 책은 아나키즘에 대한 소개와 이해가 부족한 우리의 현실에서 아나키즘의 기본 이념과 사상, 선구자 아나키스트들과 현대 주요 아나키스트들의 사상과 활동, 그리고 예술과 교육 분야에서 두드러진 아나키즘의 현실적인 적용·실천 등 아나키즘의 전체상과 비전에 대하여 한국인이 처음으로 쓴 본격적인 “아나키즘 이론과 실천”의 오디세이라는 점에 그 특징이 있다.
국가권력 만능, 자본 만능 시대의 새로운 대안, 아나키즘
아나키즘적 성향은 우리 인간이 공동체를 만들어 살면서부터 가지고 있었던 거의 본유적인 삶에 속한다. 우리는 오늘날 아직도 원시적인 생활양식을 가지고 있는 소규모 사회에서 이러한 아나키즘 사회의 전형을 여전히 볼 수 있으며, 각 민족들이 나름대로 고유한 아나키즘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가 아나키즘이라고 부르는 것은 근대 서구에서 생긴 사회사상이다. 왜 하필 근대에 들어서 아나키즘이 생겼을까? 그것은 바로 근대화, 산업화와 더불어 국가주의가 과도해지고, 정부의 지배가 강화되고, 권위와 권력과 지배가 인간을 지나치게 억누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에 아나키즘은 수만 년을 이어온 인류의 평화로운 삶을 짓누르는 근대 국민국가, 제국주의의 지배와 권위와 권력과 국가주의에 반대하여 인간의 생명과 자유와 삶의 회복을 촉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지배의 경향은 현대에 들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오늘날 국가는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고, 시민의 자치를 거부하며, 시민이 더불어 사는 자연을 파괴한다. 관료의 국가 운영 주도, 식량 관리부터 에너지까지 모든 일상생활의 국가 관리, 교육에서부터 생활 방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 조직의 집단 우선 및 질서유지의 원리 등 그야말로 국가 때문에 피로하고, 국가 때문에 비효율이 극대화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여기서 국가 규제를 완화하고 기업이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소위 신자유주의가 등장한다. 그러나 기업은 국가 이상으로 문제이다. 그것은 국가를 기업(자본)으로 대체한 더 혹독한 새로운 지배 체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극소수의 자본가가 대다수의 노동자를 지배하는 또 하나의 지배 체제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인류가 직면한 최대의 문제는 전 지구적인 자연환경의 파괴, 자본주의 선진국에 의한 제3세계 생활환경의 파괴, 세계적인 차별과 억압, 빈곤과 폭력의 재생산 등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환경·생태 문제, 성차별 문제, 인권 문제, 교육 문제 등 사회 곳곳에서 많은 문제들이 분출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와 자본 만능인 이 시대에 국가는 이러한 문제들을 거의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국가의 역할을 최소한으로 줄여서 인간의 자유, 공동체의 자치, 자연의 균형을 회복하는 방향을 모색하지 않으면 그 어떤 해결책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국가권력을 제한하여 평등하고 자유로운, 공동체적인, 지역 자치적인, 정신적인, 이타적인, 생태적인 새로운 삶의 방식을 폭넓게 모색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 모두가 꿈꾸는 삶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이다. 지금이야말로 ‘자유·평등·인권·복지·개인·여성’, ‘자치·민족·전통·문화·예술·교육·지방’, ‘자연·전원·환경·생태’ 등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한다. 곧 자유·자치·자연의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이 책은 바로 그 선구적인 사상인 아나키즘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아나키즘에서 그러한 대안의 뿌리를 찾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