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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빼는 호르몬 '렙틴'이야기

Jobs9 2009. 1. 2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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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의과학이야기] 살빼는 호르몬 '렙틴'이야기①

퀴즈 하나!
"어떡해. 나 요즘 살 찐 거 같아."
이렇게 말하는 여자친구한테 잘보이고 싶은 남자친구는 뭐라고 얘기해야 할까?
1. "그러게 작작 좀 먹지."
2. "나도 쪄서 큰일인데... 같이 다이어트나 할까? "
3. "괜찮아. 보기 좋아."
4. "어디 봐. (위아래로 훑어본 후) 에이, 안쪘어."


정답은? 5번이다. 고로 위에는 정답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1-2번처럼 이야기했다가는 얻어 맞지 않을까? 3번은 맞지는 않겠지만 삐질 것이고... 4번이 정답이지 않냐구?

아니다. 정답은 "(쳐다보지도 않고 0.1초만에)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하는 거란다. 이건 필자의 의견이 아니고 미국 시트콤 'Friends'에서 본 이야기를 퀴즈로 각색해 본 것이다. 그만큼 체중에 대해 여자(사람)들이 민감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요즘 세상에 살찌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미용상의 문제도 있거니와 건강에도 비만은 분명한 적이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약 300,000명의 사람이 비만에 의해 생긴 당뇨병, 심장병, 암 등으로 사망한다고 한다(◈참고문헌1). 살찌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걱정은 다이어트 산업의 엄청난 팽창을 낳았을 뿐 아니라 과학계에서도 비만 연구를 최고로 각광받는 분야의 하나로 만들었다.


최근에 사이언스와 네이쳐에도 한편씩 비만 관련 논문이 실렸는데(◈참고문헌 2, 3) 각각 살찌는 효소 차단성공, “실컷먹고도 날씬” 뇌에서 식욕자극 물질 분비된다라는 제목으로 한겨레에도 기사화되었다(연구 결과 설명은 링크된 기사와 중복되므로 생략합니다. 참조하세요.)


살을 빼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에너지를 많이 쓰는 것과 에너지를 적게 섭취하는 것... 사이언스의 논문은 에너지를 많이 써서 살을 뺄 수 있는 약을 개발할 방향을 제시했고, 네이쳐에 실린 논문은 식욕을 떨어뜨려 적게 먹도록 하는 쪽으로 응용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 'Nutty Professor'의 Klump교수(에디머피 분: 사진참조)가 한 것처럼 단 한번에 살이 좌악 빠지는 약이 나오는 것인가? 글쎄, 현실적으로 그건 좀... 지난번 필자의 글 심장이 고장나면 새것으로?에서도 밝혔듯이 논문 하나로 기적같은 약이 개발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만 연구에 큰 발자취를 남긴 논문 하나(◈참고문헌 4)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살펴보면 마술같은 과학기사가 나왔을 때 어떤 입장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도움이 될 것이다.



ob/ob라는 생쥐집안이 있었다. 1950년대부터 알려진 이 생쥐가문의 자손들은 대대로 엄청나게 뚱뚱하다는 특징으로 사람들의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그림 참조). ob라는 이름도 영어의 obese('뚱뚱하다'라는 뜻의 형용사)에서 나온 것이다.


이 생쥐에 관심이 집중된 이유는 뚱뚱한 쥐를 보는 것이 재미있어서가 아니다. 사람들중에도 유전적으로 심각하게 뚱뚱한 사람들이 있는데 ob/ob 생쥐가 이런 뚱뚱한 집안 사람들이 왜 뚱뚱한지, 어떤 치료방법을 개발해야하는지의 열쇠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이 ob/ob 생쥐들이 어떤 유전자가 잘못되어서 뚱뚱한지를 계속 연구했고, 1990년대까지는 이 생쥐들이 혈액속의 식욕을 억제하는 어떤 물질이 결핍되어서 끊임없이 먹고 살이 찐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하지만 그것이 정확히 어떤 물질인지는 아무도 찾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1994년 12월에 Rockefeller대학의 Friedman교수(홈페이지)실험실에서 드디어 ob/ob 생쥐들이 렙틴(leptin)이라고 이름붙여진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나서 뚱뚱해진다는 사실을 밝혔다(◈참고문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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렙틴은 지방세포에서 만들어지는 호르몬인데, 정상 쥐의 경우 많이 먹어서 지방이 축적되면 지방세포에서 렙틴을 피속으로 분비한다. 피속의 렙틴은 혈관을 타고 식욕과 체중을 조절한다고 알려진 뇌의 시상하부(hypothalamus)까지 간다. 시상하부에서 렙틴은 그만 먹으라는 신호로 작용하여 식욕을 억제한다. 렙틴은 결국 많이 먹어서 뚱뚱해지는 것을 막는 호르몬인 것이다(렙틴이라는 이름도 그리스어의 leptos(빼빼마른)에서 유래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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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ob 생쥐의 경우는 돌연변이에 의해 렙틴이 만들어지지 못하니까 뇌는 그만 먹으라는 신호를 받지 못하고, 결국 식욕이 억제되지 않으므로 계속 먹어서 살이 찌는 것이다.

[사진설명]오른쪽의 ob/ob 생쥐가 왼쪽의 정상생쥐 두마리보다 무겁다!

 


Friedman교수팀은 또한 렙틴이 쥐에서뿐만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것은 렙틴 연구를 사람에게 적용한다면 비만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즉 사람에게 유전공학을 통해 생산된 렙틴을 투여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렙틴이 식욕을 억제하는 호르몬이니까 식욕이 떨어져 많이 안 먹을 것이고, 많이 안 먹으니 살이 빠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처음으로 비만유전자를 찾아낸 이 논문은 당연히 과학계뿐 아니라 일반사회에도 큰 뉴스거리였다. 많은 신문과 방송에서 비만이 곧 정복될 것처럼(심지어 정복된 것처럼) 얘기했고 당시 생물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었던 필자도 '이제 살빼는 특효약이 나오는 거구나.'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6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 렙틴이 살빼는 약으로 시판되고 있는가? '바이아그라'는 들어봤어도 '렙티노그라' 비슷한 약은 들어본적이 없을 것이다(팔고 있지 않으니까...).


어떻게 된 걸까? 자세한 다음이야기는 다음번 기사에서 보기로 하고 결론만 말하자면 렙틴 자체를 '일반적인' 살빼는 약으로 쓰는 것은 완전한 실패였다. 신문에 나온 과학계의 대단한 성과가 실제 우리가 일상에서 적용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보여주는 예이다.


위에서 잠깐 소개한 [살찌는 효소 차단성공, “실컷먹고도 날씬”], [뇌에서 식욕자극 물질 분비된다] 기사들의 연구결과도 낙관적이기만 한 내용과는 달리 결국엔 살빼는 약을 만드는 데에 직접 기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오늘 소개한 모든 결과는 실생활엔 무의미한 이야기인가? 그렇지는 않다. 다음 기사에서 렙틴 연구 그 이후의 이야기와 최근에 개발되고 있는 살빼는 약에 대해 알아보면 알게 된다. 다음 기사를 기대하시라.


[참고문헌]

1. Spiegelman B.M. & Filer J.S. Obesity and the regulation of the energy balance. Cell 104, 531-543 (2001)
2. Di Marzo V. et al. Leptin-regulated endocannabinoids are involved in maintaining food intake. Nature 410, 822-825 (2001)
3. Abu-Elheiga L. et al. Continuous fatty acid oxidation and reduced fat storage in mice lacking acetyl-CoA carboxylase 2. Science 291, 2613-2616 (2001)
4. Zhang Y. et al. Positional cloning of the mouse obese gene and its human homologue. Nature 372, 425-432 (1994)


하니리포터 이승재 (미국 Johns Hopkins 대학교 의과대학 Biological Chemisrty(생

화학) 박사 과정 ) signalplex@hani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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