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과학 Social Sciences/정치, 국제 Politics, Iinternational R

북한 중국 관계, 북중관계, 조중관계, 펑더화이, 김일성, CIA 기밀문서, 갑산파, 한-중 수교, 북핵, 김정은, 시진핑

Jobs 9 2025. 4. 25. 12:15
반응형

북한과 중국의 관계

 

북한에서는 조중관계(朝中關系), 중국에서는 중조관계(中朝关系)라고 한다.

 

역사

 

냉전 초기 ~ 중기

 

북한의 성립 과정에는 소련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지만 6.25 전쟁을 겪으면서 소련은 제3차 세계 대전이 될 것을 우려하여 전쟁에 직접 공식적인 개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은 중국의 혈맹이 된다. 한국과 미국이 혈맹이라 부른 것과 비슷하다. 북한은 국공내전 당시 중국공산당 측을 지원하였으며, 중공 정부가 수립된 1949년 10월 1일에서 얼마 후인 10월 6일에 북한과 중국은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북한의 정치인 중 상당수가 중국공산당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고, 북한군 출신 중 상당수가 조선의용대나 조선혁명군 등 만주에서 활동한 항일 무장독립군 출신이 많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북한과 중국은 한국전쟁 동안 관계가 발전한다.

 

6.25 전쟁 중반에 중국 인민지원군이라는 명칭으로 중국군이 참전하기도 했다. 전후 동맹조약인 조중우호 및 상호원조조약을 맺었다.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이 참전하였다가 전사하기도 하였다.

 

북중관계는 1962년부터 북러관계보다 더욱 밀접해졌다는 미국 CIA 기밀문서가 공개됐다.

 

전쟁기간 중 북중간의 관계도 갈등이 있었다. 펑더화이가 김일성을 보고 "당신은 요행을 믿고 전쟁을 일으켰나?"라며 질타한 일도 있었다. 게다가 북한군이 멋대로 병력을 빼면서 중국군이 피해를 입는 바람에 북중 간 갈등이 커졌다. 펑더화이가 김일성의 뺨을 때렸다는 소문이 날 정도.

 

전쟁 후에도 갈등이 없지는 않았다. 전후 복구를 위해 중공군은 북한에 집, 나무, 댐 등의 많은 물자를 지원해 줬지만 중국에 대해 심기가 불편했던 북한은 복구 업적을 가로챘고, 중국의 지원 공적을 최대한 숨겼다. 공적 전시관 열세 개 중 열한 개는 북한 관련 내용으로 채웠고 한 개만 중국 관련 내용으로 채웠다.

 

문화대혁명때도 북중간의 관계가 오락가락하였다. 특히 마오쩌둥에 대한 중국공산당 및 중국 인민의 무차별적인 비판에 김일성과 조선로동당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1967년 대중협력을 주장한 갑산파들을 북한이 숙청할 때 중국은 불쾌감을 드러낸 적이 있다. 

 

 

냉전 말기

 

그러다가 1980년대에 동유럽과 소련이 무너지고 중국이 엄청난 반대에도 덩샤오핑의 추진으로 적극적인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하며 1992년에 한국과 수교하자 북한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사실 중국 엘리트들은 중공 여객기 불시착 사건으로 한국의 발전상을 본격 접하면서부터 이미 한국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냉전 종식 이후

 

과거에는 피로 굳어진 관계였지만 핵 문제 때문에 양측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 왕양(汪洋) 부총리 -

 

이런 배경에서 한-중 수교는 현재 북한이 독자노선 등을 이유로 핵 개발 등에 집착하기 시작한 원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1992년 4월 15일 김일성은 양상쿤 주석에게 2, 3년만 한중수교를 늦춰달라고 부탁했으나 결국 그해 8월 24일 한중수교는 이루어졌다. 김일성은 한중수교가 이루어질 때 격분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북한과 중국은 예전보다는 소원해지고 김정은 집권기에 들어서는 중국 입장에선 진저리가 난 모양이다. 탈북자들이 중국으로 들어와 인권문제 등이 국제적으로 부각되는 것도 피곤한 모양이다.

 

2000년 3월 중국이 '6.25 전쟁 참전 보상금' 요구를 하는 것에 대한 언론보도를 하자(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외교적 결례에 가깝다) 이에 격노한 김정일은 조명록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김영춘 군 총참모장, 김일철 인민무력상을 대동하고 평양주재 중국 대사관을 기습 방문하여, 완융상 중국 대사와의 자리에서 김정일은 항미원조 보상금 발언을 문제 삼으며 대만에 미사일을 팔아서 보상하겠다고 호통을 쳤다. 이에 김정일과 친분이 있었던 완융상은 이건 중국 정부의 공식입장이 아니라 개별적 사람들의 실언일 뿐이라고 설득했는데 그 다음 일이 발칵 뒤집어 졌다. 중국 정부는 김정일의 방문 중 일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완융상을 해임하고 왕궈장 대사를 임명하였고, 결국 중국의 압력에 굴복한 김정일은 두 달 후인 2000년 5월 29일부터 31일까지 2박 3일 동안 비공식 초청방문 형식으로 중국에 불려가서 장쩌민 주석에게 개방훈시를 들어야 했다.

 

그래도 2005년에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방북하고 2009년에 원자바오 국무원 총리가 방북하는 등 북핵 위기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북한과 중국은 정치적 교류를 이어왔다.

 

 

2010년 ~ 2017년

 

2013년 말 장성택 처형 이후로 중국은 경제 제재에 나섰고 북한에서는 유류 부족으로 훈련을 하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북한 군부에서는 궁지에 몰리면 전쟁도 불사 않겠다고 선언했다.4 사실 북한과 중국은 당장 눈앞의 한미연합 때문에 겉으로나마 친하게 지내고 있지 정작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는 탈북자 문제와 유사시 파병 문제 등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북한군과 중국군이 서로 병력을 증강하면서 대치하고 있을 정도로 상호간의 신뢰 관계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이다.

 

2015년 12월 10일에 모란봉악단이 베이징에 도착했다. 12일~14일 3일간 국가대극원(國家大劇院)중국에서 공연을 하기 위한 것으로 모란봉악단의 첫 외국 공연 사례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리허설까지 마치고, 매스컴에서 북중관계에 도움이 돼서 기쁘다며 멤버들이 인터뷰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연 몇 시간 전, 갑자기 일정을 전부 취소하고 북한 평양으로 복귀했다고 일본 교도통신이 보도하였다. 원인은 김정은의 수소폭탄 발언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김정은이 수소폭탄 발언을 한 이후 공식 공연관람인사를 당 정치국원(지도자급)에서 부부장급(차관급)으로 낮추어 버렸다고. 본래 북한은 시진핑 주석, 리커창 총리가 모란봉악단의 공연을 관람하길 원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대신 중국의 정치국원 중 한 명이라도 관람을 하기로 중국과 타협을 해서 모란봉악단이 중국에 온 것이지만 이가 파토나자 김정은이 중국측에 불만을 제기했고 악단은 북한으로 철수해 버렸다고 한다. 기사 이로 인해 북중관계가 냉각될 것이라고 12월 13일 MBN 뉴스 8에서 전하였다.

 

2016년 1월 6일 북한이 수소폭탄을 이용하여 핵실험을 단행했고, 핵실험이 미국이나 중국에 통보 없이 이루어졌다. 과거 북한이 핵실험을 하기 이전이나 직전에 항상 러시아나 미국, 중국 등에 통보를 하였지만 이번의 경우 급작스럽게 아무런 통보 없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북중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이는 결국 김정은에 대한 북핵 문제 해결의 열쇠인 중국 정부의 제어 상실을 의미한다. 분명한 것은 북중관계는 이번 핵실험으로 틀어질 대로 틀어졌으며, 시진핑 집권 기간 동안은 어떠한 계기 없이는 관계 회복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안정화와 한반도 통제를 목표로 삼던 중국으로써는 심히 뒤통수를 맞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래도 중국은 북한의 핵개발을 통한 서방세력(남한, 미국, 일본 등) 견제란 목표가 있어 은근히 북한의 핵개발을 용인하며 한국의 사드 배치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발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갈수록 전 세계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데다 남한과 일본 모두 강경 대응으로 나오고 있어 갈수록 난처해져가고 있다.6 5차 북핵 이후 북한에 대한 시각이 많이 변화했으며, 어떤 학자는 김정은을 제거한 뒤 주북한 중국군을 주둔시켜 북한을 개혁 개방 하자는 급진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북한은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견제라는 차원에선 여러모로 쓸 만한 카드이기 때문에, 중국이 북한을 버리거나 한도 이상으로 옥죄일 가능성은 거의 없어보인다. 하지만 최근 사드 문제로 중국과 미국이 대립하다가, 갑자기 미국이 한 발 빼는 대신 대북제재에 중국과 러시아까지 합의를 했다. 이 대북제재가 사실상 돈을 막아버리는 일이기에 북한에게 치명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언론에서 말한다.

 

중국이 제재에 동참한 이후 북한에서 핵폭풍으로 중국을 깨부수자는 신문 기사와 배신한 중국을 짓부숴버리자는 지시문 등이 나오면서 북중관계가 상당히 틀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을 겨냥한 듯한 우회적 비난을 여러번 하고 있다. 그 중 하나.

 

대북제재를 하려고 하지만 오히려 무역액이 12.7%나 급증했다고 한다. 중국 당국에서는 제재 이행 전의 통계라고 해명하고 있다. 한국 외교부도 더 두고 봐야된다는 신중론이다.

 

중국이 파키스탄에서 북한으로 가는 핵 관련 거래에 대해서 묵인 해줬다는 뉴스 기사.  윤병세 외교장관도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북중접경지대 에서 탈영한 북한군들이 수일에 걸쳐 무장강도질을 행하고 중국 공안 2명이 중상을 입었다.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에도 제재하는 것에는 찬성해도 냉정, 자제를 해야 한다는 중국 북한의 핵실험 이후에도 국경에서 이뤄지는 교역은 활발하다.

 

또, 북한의 핵 개발에 연계됐다는 혐의로 체포된 마샤오훙(馬曉紅) 훙샹그룹 대표가 북한에서도 활발히 사업한 것으로 밝혀졌다.  체포 당시에 중국 공안이 아니라 국가안전부에 의해 체포되었고,  다른 중국 관료들까지 확대한다. 흉샹그룹은 사실상 가족기업이며, 관련자 모두가 대북 문제로 연루되어져 있다. 

 

북한의 광물 수입은 훙샹그룹이 아닌 완샹(萬向)그룹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오히려 북중교역에서 더 활발해지고 있다. 그리고 북한의 급변사태를 대비해서 난민 관련 시설을 짓고 있다. 중국 외교전문가들은 중국과 북한 간의 관계는 이제 사상적(사회주의) 관계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일부 지방정부에서는 북한과의 사업을 추진 중이다.

 

북중 접경지역에 '감시센서'를 설치해 탈북자 단속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2016년 6월이후에는 북한 근로자 고용을 제한하는 제재를 중국 정부측에서 실시하고 있다.

 

북한의 교역 비중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90%가 대중무역이다.  그리고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19대 대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 측과 만나 “중국도 북한의 행동은 예측할 수 없다”면서도 “전반적 느낌은 진보진영을 곤란하게 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하는 등 사실상 북한을 통제할 수 없음을 드러난 셈이다.

 

7월에 북한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화성-14호의 개발이 완료되자 중국에서도 규탄이 이어지면서 지금보다 조금 강한 대북제재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그리고 중국군 장성 인터뷰에서 오래 전부터 군사협력도 중단되었다고 밝혔다. 게다가 중국은 북한의 정세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북중접경지역에 군사를 재배치하고 정찰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탈북자를 강제북송하고 있다는 비판에 중국 측은 탈북자들은 난민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의 도발로 북중국경지역은 언제나 긴장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게다가 북중국경지역은 대한민국 정부에서 여행유의로 지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북한은 핵보유국을 인정받기 위해 오직 미국만 바라보고 있는 상태라 중국은 속으로는 미국과 가까워지는 것을 안 좋게 보고 있지만 북중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이래저래 고민이 많은 상황이다. 게다가 북한은 대외무역에서 중국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등 중국의존도가 90% 이상에 달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 19차 당 대회 결과 보고를 위해 관례대로 일당 공산 국가들에게 보고해야 한다는 의무가 있는데, 당연히 북한도 포함되었지만, 처음으로 김정은을 만나주지 않았으며, 그 뒤에 열린 세계정당대회에 북한 대표를 초청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12월에는 미국 인공위성이 공해상에서 북-중간 원유 밀무역을 하고 있는 것을 위성사진으로 공개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중국도 북한과의 밀무역을 하는 기업, 사람들을 처벌하겠다고 나선 상태이다. 거기에다 북중간의 무역이 중국의 대북제재참여로 무역규모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2010년 3월에 동아일보에서 북한이 중국에게 군사조약인 조·중 우호, 협조 및 호상 원조에 관한 조약에서 자동개입 문구를 빼자는 개정을 제의하였다.

 

2016년 1월, 중국인이 쫓아냈으면 하는 이웃국가는 일본이 1위, 북한은 4위를 차지하였다. 

 

2017년 북한이 신장 위구르 자치구 비밀조직에 자동화 무기를 팔아먹다 걸렸지만 중국은 오히려 침묵했다. 다만 북한이 일부러 걸리게 해서 정보를 흘리게 하려는 목적이었다고 한다.

 

 

2018년

 

2018년 들어 남북관계가 좋아지자 환영 제스처를 보여줬지만, 1분기 동안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가 나오고 5월에 북미정상회담의 가능성이 높아지자 겉으로 환영하지만, 속으로는 미국과 가까울 우려에 당황하고 있다. 할아버지, 아버지 시대에는 중국부터 정상회담을 했지만 북중관계가 여전히 악화되는 상황에서 미국과의 첫 정상회담을 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베트남은 칼빈슨함을 다낭에 정박했는데, 여기는 미국이 1965년 베트남 침공을 위해 세계 최강 미해병대가 상륙한 곳이다. 베트남으로서는 치욕적인 항구에 미국의 최첨단 항공모함을 합법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 때문에 대중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에 접근하여 중국을 견제하려는 김정은의 의도를 중국이 경계하는 것.

 

 

 

김정은, 시진핑

 

3월 25일부터 28일까지 시진핑의 초청으로 김정은이 집권 후 처음으로 방중했다. 여기에 리설주가 동행했으며 최룡해·박광호·리수용·김영철 로동당 부위원장 및 리용호 외무상 등이 수행했다고 한다. 김정은은 시진핑과의 정상회담에서 단계적 비핵화를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에서는 중국의 영향력 축소를 우려했고 김정은의 입장에서도 중국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양 정상의 만남이 상호 이익을 위해 이루어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에는 김정은의 방중 사실을 미리 통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靑 "中, 김정은 방중 전 통보"…방중 공식확인 4월 22일 북한에서 중국 관광객들이 탄 버스가 추락해서 중국인 32명이 사망하는 큰 사고가 발생하자, 피해자들이 입원한 병원과 북한 주재 중국대사관을 김정은이 직접 방문해서 위문하는 등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다. 위의 중국 방문과 마찬가지로 중국과의 관계 유지를 위한 노력으로 추정한다. 여기서 마오쩌둥 손자 마오신위가 죽었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아사히 신문 보도에 의하면, 중국이 북한에 북미정상회담 이전 시진핑의 방북을 타진했지만 거절당했다. 주한미군 철수를 강하게 요구하자, 북한측에선 "북미정상회담을 우선하겠다"고 답했다. 사실 북한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중국군이 북한의 뒷통수를 치는 것이다. 북한군 전력으로는 중국을 상대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

 

 

5월 8일, 김정은이 참매 1호를 타고 다롄에서 다시 한번 시진핑과 회동한 것이 확인되었다. 사진 중에서 남북정상회담의 도보 산책을 따라하는 듯한 모습이 나오기도 했다.

 

2차 북중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강경하게 나오고, 결국 2018년 북미정상회담 취소 소동이 벌어진 데는 중국이 북한에 압박을 가했기 때문이란 말도 있다. 그리고 북미정상회담도 그럭저럭 성공을 거두자, 대북제재를 해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후 중국에서는 북한으로의 단체 관광을 허용했다. 그러다가 중국이 대북제재를 해제한다는 반발이 나오자 미국을 의식해서 다시 관광객들을 조절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북미정상회담이 끝나고 일주일 뒤인 6월 19일부터 20일까지 김정은이 참매 1호를 타고 중국 베이징을 방문하여 시진핑을 회동했다. 일정은 위의 3월 1차 방중과 거의 유사했다.

 

최근에 양국관계에도 불구하고 량강도 혜산시에 위치하고 있는 12군단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시진핑 주석의 방북을 앞두고 평양 시민들은 반중 감정이 드러내고 있다.

 

북한 정권 70주년으로 9.9.절에 시진핑 주석의 방북이 무산되고, 서열 3위인 리잔수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대신 방문하기로 하였다. 사실 이 조치는 미국을 의식해서 그런 것이다. 또한 국가지도자가 행사에 참여하면 대내외에 경제적을 넘어 군사적인 동맹을 과시할 수 있는 위험과 부담감이 조여오기 때문에 서열이 낮은 차관보급을 보낸 것이다.

 

제2차북미정상회담의 진전이 느려지고 있는 가운데 11월에 시진핑이 방북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북중 서로가 믿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북한 엘리트는 중국 믿지 못하고, 북한의 대중들은 중국이 미개하다고 여겨고 있다고 밝혔다.

 

2018년에 북중간의 관계가 개선되는 모습이 보이자 양국의 로펌이 민간차원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2018년 10월 25일에 중국의 민간 싱크탱크는 중국이 북한 일부 지역을 100년간 임대해 개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물론 북한사회에서 과연 북한이 이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당장 체제선전에서 자력갱성, 외세의존반대 하는 주민들과 당,군부에게 사상교육을하고 이를 받아들인다는 건 자신들의 체제의 존재성을 부정하기 때문에 받아 들일 가능성은 희박하거나 거의 낮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 대사가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으며, 중국이 한반도 내 전쟁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북한 비핵화 관련 국제 사회 공조에 함께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19년

 

2019년 1월 7일 김정은의 4차 방중이 이루어졌다. 방중 기간은 1월 7일부터 10일까지라고 한다. 2019년의 첫 해외방문을 중국으로 정한 셈이다. 방중이 이루어지기 몇 시간 전에는 단둥역의 경계수준의 상승과 압록강 주변의 북한의 동향을 관찰할 수 있는 모든 호텔의 예약이 금지되며 북측 고위급 인사의 방중이 예상되었다가, 아예 북한방송에서 대놓고 김정은이 중국으로 향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아무래도 제2차 북미정상회담 전 시진핑 국가주석과 회담을 갖고 향후 미국의 움직임을 예측하려는 듯 하다. 마치 제1차 북미정상회담의 데자부를 보는 듯한 건 덤. 이러한 김정은의 방중과정에서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내정된 노영민 주중대사가 귀국하여 논란을 빚기도 했다. 김정은의 방중으로 북중관계가 한층 강화되었으며, 정상회담 결과 일대일로 계획에 북한의 참여가 허용되었다고 한다.

 

2019년 4월부터 함흥 - 원산산 고속도로의 건설에 중국업체가 참여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북중관계가 다시 밀월관계를 보이면서 북한 예술단이 베이징에서 공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2019년 5월 13일에 북한에서는 처음으로 주북한 중국대사관의 지원으로 HSK 시험장이 개설되었다. 또한, 북한은 1990년대부터 중국어가 인기있는 외국어가 되었다.

 

훈춘의 취안허 통상구가 북한으로 여행을 가는 중국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자동출입국 심사시스템을 도입했다.

 

6월 20일에 시진핑이 평양을 방문,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하고 다음날 귀국했다. 이때 만남을 기념하기 위해 북한은 조중친선은 영원하리라라는 제목의 곡을 제작했다. 중국 주석의 방북은 2005년 후진타오 이후 14년만이다.

 

북중 수교가 70주년을 맞이하면서 북한과 중국은 교류를 다각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양국간의 대법원도 우호 협력 MOU를 체결했다. 8월 8일에 평양에선 중국의 사회주의 성과를 담은 사진전이 열었다.

 

8월 22일에 북한 외무성은 대만 공군의 F-16V 전투기 도입을 비난하는 것과 함께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남조선 당국이 합동 군사연습이 끝나기 바쁘게 F-35A 스텔스 전투기들을 미국으로부터 또 끌어들이고 있다”, “미국이 최근 중거리 순항미사일을 시험발사하고 일본을 비롯한 조선반도 주변 지역들에 공격형 무장장비들을 대량 투입하려 하면서 지역의 군비 경쟁과 대결 분위기를 고취하고 있다”며 대만과 한국,미국을 비난했다.



고려항공은 하절기 운항을 종료하고 동절기 운항에 들어가면서 평양-베이징 노선 운항 횟수를 주 5회에서 3회로 축소 조정했다.

 

 

 

 

2020년

 

중국 본토에서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가운데, 북한이 먼저 조선민용항공총국 명의로 평양-베이징 노선을 잠정 중단하였다. 그리고 북중간 왕래를 모두 차단하고, 국경 지역의 검문소 보안 수준을 올리고 있다. 항공로 외에도 육로인 압록강철교, 신압록강대교, 두만강대교, 도문대교, 삼봉-카이산툰 철교 등 다리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방역 및 보안에 더더욱 열을 올리는 것 같다.

 

1월 31일에는 김정은이 자기 명의로 위문 서한을 보내고, 조선로동당 명의로 중국공산당에 위문 지원금을 지원하는 등 관계 유지에 힘쓰는 듯 하다.

 

3월 4일에 아시아프레스는 북한이 중국 주민들이 압록강에 오물을 투기하는 행위가 발각될 경우 사살(!)한다고 보도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북중간의 교역액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다가 북한과 중국간의 무역규모가 4월에 30% 가까이 반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6월도 반등했다.

 

북한이 해주만의 모래를 중국으로 운반한 것을 포착한 미국의 싱크탱크는 안보리 대북제재 위반 가능성을 제기했다.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북한측의 국경폐쇄가 이어지며 단둥시의 경제적인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

 

홍콩 보안법과 관련해서 북한은 중국을 지지하고 있다. 6월 16일에 영국 정부가 유엔에서 홍콩 보안법을 강행하려는 중국에게 경고하자 북한은 중국을 지지했다.

 

시진핑 주석의 북한방문 1주년을 맞이해 중국은 북한에 식량 80만톤을 보냈다.

 

북중우호조약 59주년을 맞아 북한은 중국의 모든 조치를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북한 선박들이 중국 해역에서 중국 정부의 묵인하에 불법환적을 재개하고 있는 것이 밝혀졌다.

 

코로나19로 인해 북중간의 교역이 70%이상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10월 8일에 북중간 무역 규모가 대폭 감소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10월 25일에 북한은 중국의 한국 전쟁 참전 70주년 기념일에 북중관계가 동서고금에 유례가 없는 특별한 관계로 그 무엇으로써도 깨뜨릴 수 없는 불패의 친선으로 강화 발전되었다고 말했다. 다만, 북중간의 무역액이 코로나19로 인해 3개월 연속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11월 3일에 아사히신문은 중국이 식량 외에 대량의 비료까지 제공하는 등 북한에 대한 물밑 지원을 2020년에 강화했다고 보도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 위원장인 크리스토프 호이스겐 유엔 주재 독일 대사는 북한의 석유 정제품 수입을 감시하는 것을 러시아와 중국이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북한과 중국은 혈맹이 아니라고 강의에서 밝힌 중국 교수의 온라인 강좌가 중단된 일이 발생했다.

 

10월에 양측 교역 규모가 기록적으로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무역 규모가 10월에 99% 줄어든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은 3년전에 위구르 분리독립 무장단체한테도 무기팔다 중국한테 적발된적이 있다.   대북제재에도 북한과 중국이 1년간 비밀리에 석탄을 석탄 불법 거래까지 자행했다.

 

2020년말에 북한측이 중국에서 수입하는 전기 수입료가 사상 최대를 나타냈다.

 

 

 

2021년

 

북중 공식 교역액이 2019년보다 80%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압록강 국경에서 중국인 1명을 총격 사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중국 국방부는 북한과의 교류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북한측은 중국의 홍콩과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일어나는 인권 문제와 관련해 중국을 두둔하고 있다.

 

북한이 내각 부총리, 대외경제상, 무역상 등을 역임한 대외경제통인 리룡남을 주중 북한 대사로 임명했다.

 

코로나19 봉쇄 여파로 중국서 수입이 급감했다.

 

중국 외교부 인사들이 주중 북한 대사를 잇따라 접견했다.

 

코로나19로 끊겼던 북중간 무역재개가 4월 중순에 재개될 가능성이 높다고 닛케이신문이 보도했다.

 

중국 어선이 북한 영해에서 태극기를 달고 조업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북중간 무역이 재개될 움직임이 포착됐다. 그리고 중국측은 북한과 코로나19 방역으로 안전을 확보하면서 협력을 강화할 준비가 되었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가 창바이에 호시무역구 조성 공사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코로나19 유행을 이유로 북한측이 외국인들에게 엄격한 방역조치 이행을 요구하면서도 중국인에 대해서만큼은 사실상 예외를 적용했던 것으로 보인다는 증언이 나왔다.

 

신의주역에서 열차가림막이 제거되는 등 북중간 국경 봉쇄 해제 조짐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북중 국경지대에서 밀수하던 중국인이 북한 국경경비대의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뒤늦게 전해졌다.

 

5월 5일에 북한과 중국 사이의 육로 화물 운송 재개가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다고 마이니치신문이 보도했다.

 

신의주와 단둥을 오가는 철도운행이 크게 증가했다.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코로나19 백신 샘플을 입수한 것이 알려졌다.

 

중국 주재 북한 대사와 북한 주재 중국대사가 시진핑 주석 방북 2주년을 맞아 상대국 당기관지에 기고문을 실었다.

 

중국측은 북한이 원한다면 코로나19 백신을 지원할 수 있다고 밝혔다.

 

북한 당국이 사전에 허가받지 않은 무역 행위를 단속하기 위해 대대적인 검열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7월 9일에 요미우리신문은 북중간 육로무역이 7월 하순에 재개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7월 23일 북중국경 지역의 북한 양강도에 국경을 도강하다가 여성 2명이 총상을 당해 사망했다.

 

중국 내 북한식당 종업원들이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것이 알려졌다.

 

23일, 태풍으로 인한 북한 영해에 불법 침입한 중국인 선원들에게 총격을 가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최근 북한 당국이 쌀을 수입하려 했지만 중국 측이 이를 허가하지 않으면서 곡물 반입이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전력난을 겪자 북한으로부터 석탄을 수입하기 시작했다.

 

중국측이 북한과의 접경지역에서 수·출입 화물의 통관 및 검역을 위한 항만·세관 시설을 건립하는 정황이 포착되면서 북한이 국경을 개방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북한 외무성은 박명호 외무성 부상이 리진쥔 주 북한 중국대사를 만났고 임천일 외무성 부상이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 북한 러시아대사와 만났다고 밝히는 등 북한측이 북중관계, 북러관계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에도 해킹 시도를 하고 있는 걸로 알려졌다.

 

파이낸셜 타임즈는 "북한은 미국과의 전쟁보다는 중국의 내부 침투에 두려워" 한다는 전문가들을 인용했다.

 

 

 

 

2022년

 

북한측이 1월 16일에 국경을 개방하면서 화물열차가 북한으로 들어갔다.

 

2월 14일 주선양 북한 총영사관이 김정일화 전시회를 개최했다.

 

2월 16일 주중북한대사관이 행사를 개최했다.

 

4월 15일인 태양절을 앞두고 중국 어선에 대한 단속을 다룬 일화가 있었다.

 

8월, 리영길 북한 국방상이 웨이펑허 중국 국방부장에게 "조선인민군은 조선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공동으로 수호하기 위해 중국인민해방군과의 전략 전술적 협동 작전을 긴밀히 해 나갈 것" 이라고 언급했다.9

 

12월 12일, 중국 측이 북한과의 교역 확대를 위해 단둥항 확장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

 

마이크 폼페이오의 회고록에서 김정은이 "나를 지키기 위해 주한미군이 필요하다, 중국인들은 한반도를 노리는 거짓말쟁이다."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한 탈북자가 중국에 가면 먹고살 수 있다는 소문만 믿고 중국으로 가다가 오히려 인신매매를 당해 반중정서가 다시 만연하고 있다.

 

2023년 4월 4일 왕야쥔10 신임 주북한 중국대사가 업무를 시작하였다.

 

4월 7일, 북한 주민 수십 명이 불법으로 중국에 입항했다가 중국 변방대에 발각돼 현재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4년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가 북한과 외교적으로 긴밀해지고 있는데 문제는 만약 중국이 러시아를 돕는 북한을 돕는다면,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대결양상구도로 갈 확률이 높아지게 되었다.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파병을 결정하자 북중관계는 갈수록 불쾌해지고 있다.

 

그 일환으로 갑자기 북한 정부 승인하에 중국서 일하던 북한 노동자들을 내쫓기 시작했고 갑자기 한중일 외교회담을 진행하는 등 겉으로는 북한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마음껏 드러내고 있다.

 

2024년 7월 북한은 제네바에 있는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 북중 국경 근처에 17개의 무선국11을 새로 설치하려는 중국의 계획에 '사전 협의가 없었다며 국제적인 무선통신 규칙에도 저촉된다고'며 반대하는 입장을 보내기도 했는데, 중국 단말기를 통해 중국 무선국이 내보내는 외부 정보에 대한 접근도가 높아지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북한 정권수립일(9·9절) 경축 행사에 왕야쥔 북한 주재 중국대사가 아닌 '대사대리'를 보낸 것을 두고 북중간 '이상 기류'와 연결 짓는 시각이 나오는 가운데, 중국 당국은 왕 대사가 휴가 중이라는 설명을 내놨다. 게다가 4월 북한에서 개막한 북중 우호의 해 폐막식 행사가 열리지 않고 있다.

 

 

2025년

 

6년 만에 열리는 평양 국제마라톤에 45개국이 참가하는데 이 중에 대만이 포함되어 있었고, 더 나아가 국기인 청천백일기도 떡하니 표기해놓았다.

 

 

 

 

중국의 북한 인식

 

해외에서의 북한에 대한 인식은 중국의 짐덩어리. 만평에서도 중국의 족쇄나 버르장머리없는 아이 등으로 묘사되며, 중국 몰래 핵개발을 하거나 쓸데없는 짓을 벌이며 중국의 골치를 썩히는 짐짝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실제로도 중국인들이 한국과 북한에 갖는 인식이나 인상은 너무 차이가 크고, 항상 도발 등의 행동으로 한중관계 혹은 한중일 관계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천안함 폭침 후 어수선하던 2010년 여름 상하이에서 중국인구사 연구로 유명한 한 중국인 학자가 연구실 칠판에 지도를 그려가면서 내게 설명했다.

 

“중국은 한반도의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 북조선은 중국이 건국 직후에 미국과 전쟁을 해서 힘겹게 지킨 나라다.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에서 중국 측 사상자 수가 92만 명에 달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미국이 절대로 한국을 포기하지 않듯이 중국도 북조선을 포기하지 않는다.”

 

내가 동의하자 그는 신이 나서 얘기를 이어갔다.

 

“또한 중국은 북조선이 베트남처럼 개혁개방으로 나가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렇게 되면 북조선과 한국의 체제가 비슷해져서 한반도 통일의 가능성이 커질뿐더러 결국 미국의 영향권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중국은 앞으로도 북한이 반미 국가로 남아 있도록 유도하는 양면 정책을 펼칠 것이다.

 

잠시 후 함께 식사를 할 때 그가 덧붙였다.

 

“한국인에게는 미안하지만, 북조선은 우리 중국인들이 목숨을 걸고 미제와 싸워서 구한 혈맹이자 사상적 동반자이다. 북조선이 미국에 맞부딪히며 싸울 때마다 중국인들은 희열을 느낀다.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북조선의 반미 투쟁에 열렬히 박수를 칠 수밖에 없다.”

 

12년이 지나 돌아보니 당시 그 중국 교수의 예측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북한은 개혁개방을 거부하고 핵무장에 몰두하는 극단적 쇄국주의로 일관해 왔다. 평양은 북한 체제의 근본적 취약성 때문에 문호를 열 수가 없다. 베이징은 미국 주도 세계질서에 맞서 북한을 반미의 진지로 남겨두려 한다. 요컨대 북한의 핵무장은 평양과 베이징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다.

중국의 아바타로 전락한 북한, 미국의 우방으로 변신한 베트남

 

현재 북중관계가 갈수록 악화되고 한중관계가 나름 여러 갈등이 존재하긴 해도 FTA까지 추진할 정도로 가까워지긴 하지만 북한이 갖는 지리 및 정치적 가치 때문에 중국은 북한을 절대로 버릴 수 없다. 중국은 한국에서 친미 분위기를 걷어내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는 데다 중국에게 있어 북한은 미국의 영향을 막아주는 완충국이기도 하다. 즉, 북한이라는 입술이 사라지면 중국이란 이빨이 시리게 되니까 북한이 누차 돌출 행보를 해도 중국은 북한을 감쌀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역으로 말하면 친중 외교를 통해 중국을 북한에서 떼어낸다는 전략은 실패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중국이 근본적으로 두려워하는 건 미국과 직접 맞닿는 것이기 때문이며 천안함 피격 사건, 연평도 포격전 등에서도 중국이 북한 편을 들어주는 것도 그렇다.

 

한편, 2014년 중반 중국에서 제작된 걸로 보이는 북한을 풍자하는 동영상이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중국의 젊은 사람들은 북한을 자신들의 짐덩이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원본 동영상 링크 조회수가 가장 높은 것. 당연히 북한은 중국에게 지워달라고 요청을 하였으나, 씹혔다.

 

2016년 중국 저장성 닝보시에서 일어난 류경식당 종업원 집단탈북 사건 당시 종업원들을 중국이 묵인해줬다는 관측과 함께 북한에 대한 비난 여론이 나왔다.

 

류젠차오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급)는 지난 17일 중국을 방문한 한국 기자들과 만나 "군사동맹 방식으로 안보를 유지하는 것은 시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또한 중국장성 역시 "북중동맹관계가 아니라면서, 조선(북한)을 지휘하느냐? 주둔하느냐?" 라고 반문을 하였다. 

 

중국 공군 장성이자 군사평론가인 챠오량 소장이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식량을 지원받으면서도 감사를 표시하지 않는다며 "배은망덕한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강력히 비판했다고 UPI통신이 홍콩 월간지 쯔징(紫荊)을 인용해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중 환구시보는 북한과 관계 더 악화될 수 있어, 중국 준비해야'라는 제하의 논평을 게재하고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 악화를 감수하더라도 핵실험 등에 대해 강력한 제재로 대응하겠다"는 뜻을 재차 강조했다. 유엔 안정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안 이행에 대한 중국의 강력한 의지는 이미 공개적으로 확인됐다며 북한이 추가 핵도발에 나설 경우 안보리의 추가 대북제재안에 찬성표를 던지고 중국도 제재 강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6차 핵실험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라는 연이은 비난을 하였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의 해외판 소셜미디어 매체인 협객도(俠客島)는 "김일성이 한반도를 통일시키려고 하지 않았다면 한국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몇십만 명의 중국 지원군이 북한에서 죽었고 20년에 걸친 미·중 냉전을 초래했으며 심지어 양안 문제가 지금까지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모두 다 북한의 고집이 가져온 피해다"고 강조했다. 또한 북한의 인식을 비판했다. "북한은 70년 동안 반미의 교두보로서 중국 대륙의 안보를 지켜왔다면서 중국이 북한의 모든 요구를 받아들여야 하고 북한에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면서 적반하장을 드러내었다."

 

2010년 8월 창춘에서 후진타오 전 주석과 김정일의 정상회담에서 "13억 인민은 잘 먹고 잘 사는데 너희 2000만 주민을 못먹이느냐" 라면서 힐난을 하였다. 

 

구 새누리당 유기준 의원(당시 새누리당 최고의원)이 중국 왕자루이 공산당 대외연락 부장이 혈맹과 거리를 둔, "중국과 북한은 일반 국가간 관계라고 말했다"고 말했다. 

 

RFA(자유아시아방송)에 의하면 중국 당국이 북한에 있는 '6.25 전쟁 참전 중공군 묘역' 부실 관리 실태를 지적하며, 북측에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북한이 중동에 있었다면 12번이나 무너졌을 것이라고 비아냥 거렸다.

 

중국이 북·중 관계를 처리하는 기본 원칙을 바꿔 사상적 동반자 관계에서 벗어나려는 한다는 관측이 중국 외교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됐다고 캐나다 군사평론지 칸와디펜스리뷰 최신호가 26일 보도했다. 미중패권경쟁 이전 시기에 개최한 좌담회를 통해 중국이 북·중 외교부문 첫 전략대화에서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하고 북한을 돕는다)라는 표현을 '조선전쟁'으로 대체한 것이 북한의 역사·사상적 동반자로부터 이탈하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북한 원조라는 표현을 없애고 조선전쟁으로 국한함으로써 '북중 연대'라는 인식을 약화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中 국방부 고위 인사가 북한과의 군사교류 접촉을 끊었다고 싱가포르 채널뉴스아시아(CNA)와 인터뷰가 보도했다.  그리고 중국은 북한의 정세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북중접경지역에 군사를 재배치하고 게다가 미국측의 대북선제공격에 대비하는 등 정찰활동을 강화했다.

 

8월 29일 미사일 발사로 인해 북한이 중국에게서 통제권을 벗어나려고 속을 앓고 있다.

 

북핵 위기로 북중 간 관계가 경색되자 중국의 대학들이 북한 출신 학생들에 대한 입학 쿼터를 제한했다고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보도했다. 

 

中 북핵대응 놓고 '전통좌파 vs 우파' 두 학자간 인신공격 설전을 벌였다. 

 

중국 측 인사들도 북 내부 사정을 잘 몰라 소통이 많이 안 된다고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고 베이징 소식통이 전했다. 

 

북한 주재 중국 대사관이 26일 평양 양각도 호텔에서 개최한 중국 건국 68주년(국경절·10월 1일) 작년에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을 보냈지만 올해는 차관보급을 보냈다. 

 

북한과 중국의 관영매체들이 서로의 실명을 거론하며 거친 말싸움을 벌였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양시위(楊希雨) 중국 국제문제연구원 연구위원은 中, 北 핵보유국 인정 안해…김정은, 선대 비핵화약속 폐기" 말했다 

 

중국 인민해방군 작전 전문가는 북한은 미국에 이어 두번째 가상적국이라고 규정하였다. 

 

북한 내 중국 기업들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 2375호에 따라 이달 10일을 전후로 철수했다고 보도했다. 

 

 

4차 핵실험당시 중국 지린성 투먼(圖們)시와 북한 남양을 잇는 투먼대교 출입구에는 '교량 보수 관계로 참관을 잠시 중단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는데, "이번 핵실험으로 집이 금이 갔다" 라는 주민들도 있었다. 또 "북한이라면 쳐다보기도 싫다" 반응을 보였다. 

 

정치적인 이슈 외에, 중국 기업가들이 북한에 투자했다가 통수를 맞고 쪽박을 쓰는 일들이 많다고 한다.

 

 

북한의 중국 인식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폭격으로 전사한 마오쩌둥의 아들인 마오안잉(毛岸英)의 묘가 평안남도 회창군에 있어 북중 혈맹의 상징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것만 보면 북한의 중국에 대한 인식이 아주 좋을 것 같아보이지만 현실은 조금 더 복잡하다.

 

북한은 세계적으로 약소국 취급이지만, 강대국(북한식 표현으로는 대국)을 대하는 원칙이 있는데, 동맹이라 하더라도 자주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이는 북한이 8월 종파사건을 통해 외세의 시련을 많이 겪었는데, 종파사건의 경과는 북한이 외세의 압박을 극복해내는 과정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주체사상을 국시로 삼고 있으며, 이 주체는 외교에서의 자주도 포함된다. 실제로 소련과 사이가 불편했을 때에는 자신의 영해에 들어온 소련의 배는 나포하여 조사했고, 중국과 사이가 나쁠 때는 위에 언급된 그 마오안잉의 묘비를 철거하는 대응을 하기도 했다. 이는 북중 혈맹 관계를 부정한다는 표현이나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중국 어선이 북한 영해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은데, 북한은 '강경대응을 하지 않는 남한 정부'와 달리 중국의 배라 하더라도 강경대응을 취한다.

 

특히 한국에서 상당히 많이 왜곡된 게 북중관계인데,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북중관계를 말할 때 "외교에서 큰나라 작은나라는 있어도 윗나라 아랫나라는 없다."라고 북한외교의 기본을 말하면서, 북한이 중국보다 소국이어도 주종관계, 상하관계는 절대 아니며 국익을 위해 자주적으로 상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북한은 중국 상대로도 미국이나 한국 상대하듯 벼랑 끝 전술을 쓸 때도 있을 정도.14

 

실제로 북한은 현실적으로 중국에게 경제적으로는 의존하지만 정치, 외교, 군사 부분 만큼은 예속 및 종속되지 않게 자주적으로 유지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한국에는 주한미군이 있지만 북한에는 중국군이 없다. 물론 1958년까지는 인민지원군이 주둔했지만, 외세의 간섭이 더 심해져, 소련파와 연안파 등 경쟁세력들을 모두 숙청하고 자신만의 1인체제인 주체사상이 나올 정도이다. 즉, 중국과 군사적인 면에서, 북한 영토에 중국군이 주둔하거나 진입하지 못하게하려는 대립과 갈등의 불씨가 여전히 북한에 남아있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소련의 뒤를 이은 러시아가 예전 같지 않아서 중국이 북한을 먹여살리는 곳이 된 탓에, 북한의 대중 의존도는 매우 높다. 중국이 동해로 나갈 수 있는 나진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시아에서 경제적으로 중국과의 교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비교적 높은 국가들이라는 캄보디아나 파키스탄의 중국 의존도 '따위'랑은 비교조차 안 된다.

 

이 때문에 북한의 지배층과 상류층들은 겉으로는 자주적인 척을 하지만 중국의 원조가 없으면 북한 자체가 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결국에는 중국의 비위를 맞추면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이나 대만은 수출시장 및 현지생산같은 경제적 활동지역으로의 대(對)중국 의존도가 높을 뿐이며, 나머지는 미국과 같은 주요 선진국가들을 통해서도 공산품과 원료를 수입해 시장다각화 중이나, 북한의 경우 식량까지 중국에서 구입할 정도로 해외 수출, 수입에 있어 중국 의존이 심하다. 북한이 워낙 수출경제와는 거리가 먼 자급자족형 경제구조에 국제제재를 수 년동안 당해왔기 때문에 버티는데는 어느 정도 능력이 있지만, 대북제재의 강도가 더 강해지면 영향이 없을 수가 없다.

 

그나마 한국, 대만은 중국과 친밀한 것이 경제적인 문제에 한정되어 있고, 정치, 군사 및 안보는 확실히 중국과 대립관계에 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의 대북제재로 인해 그야말로 중국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경제적으로도 한국, 대만은 중국과의 경제 교류가 끊긴다 해도 다소 피해는 입겠지만 나라가 망할 정도는 아니다. 사드 배치 소동이 일어났을 때에도 중국의 무역 보복으로 인해 국내 기업들이 피해는 봤지만, 경제 전체로 봤을 때는 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한국 기업들과의 무역이 막혔던 중국 기업들이 더 타격을 입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중국은 실제로 북한의 대중 의존도를 이용해서 북한을 한 방 먹인 적이 있었다. 김정일 시절 중국이 북한에게 제안한 6자회담 대신 북미회담을 고집했고 이에 빡친 중국이 실제로 잠가라 밸브를 시전했다. 결국 북한은 김정일의 굴욕적인 방중을 통해 원유공급이 재개될 수 있었고, 그 후 6자회담에 참여하게 되었다. 물론 이에 빡친 김정일은 은연 중에 반중 정서를 드러냈다. 1차 핵실험때 미국에게 핵실험을 통보하면서 자기들의 핵개발은 중국 견제용이라고 말하며 은연 중에 중국에 대한 불편함을 내비쳤다. 또한 유언에도 '중국은 천년의 원수, 중국을 멀리해라'고까지 말했다.17 경제적으로는 북한의 화폐개혁때문에 북한 원의 가치가 종이쪼가리로 전락하면서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 유통이 쉬운 위안화를 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다만, 북한 정부가 6.25 전쟁에서 그랬던 것처럼, 중국의 지원을 강조한다면 북한의 수령절대주의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의 중국관은 대단히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같은 이유로, 북한 정권 수립에 대한 소련과 이오시프 스탈린의 기여-간섭도 어정쩡하게 인정되는 편이다. 국내건 국외건 아무튼 북한이 혈맹임을 천명하는 중국과는 달리, 북한도 대외적으로는 혈맹 관계를 다지고는 있지만, 대내적으로는 중국의 6.25 전쟁 지원 사실을 최대한 은닉하고 중국군의 전공을 축소하거나, 화교를 억압하고 중국인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졌다고 탈북자 여성에게 가혹한 대우를 하는 등 대내적으로는 중국을 '외세'로 보고 배격하는 사상이 널리 퍼져 있다.18 게다가, 8월 종파사건 때문에, 밉상짓을 하면서도 자신들에게 빌붙어 이득을 챙기려 하는 북한을, 중국은 탐탁지 않게 여기게 된다.

 

외교적으로도 북한이 중국에 자주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것은 태영호 전 영국 공사의 발언에서도 알 수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중국은 북한을 굴복시킬 수는 있지만 미군과의 직접적인 대치를 피하기 위해 북한을 지원해 줄 수밖에 없고, 북한은 이런 상황을 역이용해 중국을 자기 입장에 유리하게 끌고 다닌다는 것이다.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 기자간담회 전문 그러니까 압록강 진격시 자유주의 진영의 북진을 우려해 어쩔 수 없이 비호만 해줄뿐, 우호관계나 동맹처럼 비호해주는 것은 아니다. 알다시피, 분청과 같은 부류가 아닌 중국 신세대들도 김정은을 곱게 보지 않으며,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대표적인게 진싼팡(김씨 일가 셋째 돼지)이라는 조롱이 공공연히 쓰이며, 중국 학자와 외교가에서도 북한과의 관계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2013년 산케이 신문에 보도에 의하면, 김정은은 "중국에 대한 환상을 갖지 말라", "유사시 중국을 우리의 적 간주"라 하며 군, 당, 비밀경찰 모든 간부들에게 당부하여 사상교육을 지시했다고 한다. 

 

또한 2015년에 국방백서에 따르면 북쪽에 량강도와 자강도 접경에 12군단을 새로 창설하였는데, '중국 개입의 차단을 위한 것이다, 군시설 보호를 위한 것이다, 혹은 탈북 방지를 위한 것이다.'로 의견이 갈리고 있다. 어느 쪽인지 모르지만, 어떤 이유이든 확실한 건 북한 또한 중국을 달가워하지 않고 외세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단 결론은 둘 다일 것으로 여겨진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줏대없는 대국' 비난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결의를 엄숙히 이행할 것이라고 대응하고 나섰다. 

 

또, 최근에 중국을 향해서 미국과 함께 대북제재 공조에 맞춰 레드라인을 넘고 있다고 맹비난하였다. 

 

데일리NK 보도에 의하면, '중국은 통일 가로막는 염치없는 나라'라고 주민 상대로 강연하였다. 

 

북한 군부 내에서는 2014년 시진핑이 방한하기로 하자, "중국은 천년의 원수"라고 비난하였다.  

 

북한이 북-중 국경 일대 기업들을 상대로‘조중(북-중)관계의 파국을 준비하라’는 내용의 군중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고 대북 인터넷 매체 데일리NK가 21일 보도했다. 

 

미국의 북한전문매체 자유아시아방송(RFA)은, 20일 최근 연락이 닿았다는 북한 간부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은 로동당 제1비서가 간부들에게 향후 북·중 관계 악화를 예고하는 심한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다. 이 간부 소식통은 “김정은이 측근 간부들 앞에서 ‘중국×들에게 역사와 오늘이 다르다는 것을 똑바로 알게 해주겠다’고 발언했다”고 밝혔다. 

 

"北 간부가 '중국도 북한 핵 사정권' 발언"이라는 내용의 RFA 보도가 나왔다.  그리고 북한이 중국 빼고 미국과 핵 협상을 하고자한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북한의 단속반인 "109상무"가 최근에 中영상물 시청을 하면 ‘로동교화 5년’ 처벌을 강화하고 있다. 

 

北매체는 "中매체가 체제 위협…내정간섭 마라"며 중국의 특정매채들을 이례적으로 비난하였다. 

 

北 "전시에는 중국도 적이다" 라며 경계 강화를 지시하였다. 

 

황금평 개발 앞두고 체제단속 교양강연 강화를 위해, 경계를 위해 한 간부가 "중국이 다리를 건설해준다, 황금평을 개발해 준다면서 우리를 남조선에 팔아버릴 수 있으니 주체를 확실히 세워야 한다”며 강한 경계감을 나타냈다. 

 

북한 당국이 최근 ‘주체성’을 언급하면서 주민들에게 ‘중국에서 유래된 단오(端午)를 쇠지 말자’고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북 제재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중국을 견지하면서도 사상적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RFA 소식통에 의하면 김정은은 주민들 상대로 "시진핑·文 믿지말고 날 믿어라" 라며 주변국들을 믿지 말라는 사상교육을 지시했다.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유엔제재는 전쟁행위… 중국·러시아도 보복대상" 이라며 경고하였다. 

 

로동신문은 비핵화 이행을 강조한 논조를 보인 중국 언론들을 '무엇을 얻어보려고 비루한 참견질인가'라는 제목으로 올림픽과 비핵화가 무슨 관계인가 하면서 비난하였다. 

 

북한의 대외 선전단체인 '조선평화옹호전국민족위원회'와 '북침핵전쟁연습 반대 전민족 비상대책위원회'는 쌍중단에 대해 "일부 나라들이 정의의 우리 핵과 침략적인 미국의 핵을 동일선상에 놓고 '쌍중단'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조선반도(한반도) 핵 문제의 본질과 인과관계, 자위의 핵과 폭제의 핵을 가려보지 않는 무책임한 처사"라고 주장했다. 사실상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발언이다. 

 

2009년 뉴욕에서 리근 외무성 미국국장을 비롯한 북한 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북한토론회에서, 북한 대표단은 "우리는 전적으로 중국에 종속되길 원치 않는다"며 한국, 미국, 일본 등과 경제교류 확대를 희망했다고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전했다. 

 

태영호 공사도 "압록강에 시체가 떠내려가도 밀가루 한 포대 안 준 놈들"이라고 北주민들은 中을 떼놈이라고 인식한다.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 RFA는 9.9절 시진핑 방북을 앞두고, 평양 시민들 사이에 퍼지면서 평양의 지식인과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 반중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경제가 중국에 거의 대부분 의존하는 상황에서, 중국에 완전히 종속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2020년에는 중국의 홍콩보안법을 공식 지지하며 중국 편들기에 나섰다. 

 

2021년에는 김정은이 미국의 대북 압박은 북한의 비핵화 자체를 위한 게 아니라 중국을 염두에 둔 국제정치적 전략의 일부라고 설명하며 특히 대중 협력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미국이 중국을 공격할 경우 전략군 지휘부가 중국 영토를 방어하고 미국에 대응 타격까지 해야 한다는 지시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4년 7월 11일에는 북중 우호조약 체결 63주년인데도 로동신문이 조용했기에 북중관계에 이상징후가 보이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평가와 오해

 

일본이 100년의 적이면, 중국은 1,000년의 적이다

김정은

 

 

 

관계를 보여주는 예시

 

대한민국에서는 은연중에 북중관계가 무슨 한미동맹처럼 굉장히 끈끈한관계로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아니다.

 

중국으로써는 그저 주한미군 방파제이자 훗날 먹을 땅, 북한으로써는 소중한 경제적 뒷배라는 이해 관계가 얽힌 바람에 특별한 변수가 일어나지 않는 한 결국엔 어쩔 수 없이 당분간은 손을 잡아야 할 수밖에 없는, 쉽게 말하면 오월동주와도 같은 관계로 요약할 수 있다. 협력과 파트너십이 어느 정도 형성된 한미관계와 비슷할 거라 생각하면 곤란하다.

결국 북한과 중국은 겉으로는 대내외적인 협력을 과시하지만, 속으로는 불신과 대립이 여전하다. 알다시피 북한은 경제적으로는 중국에게 의존20을 하지만, 군사, 외교, 정치적만큼으로는 외세의 영향력을 막거나 손대지 못하기 위해 자주파들이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6.25 전쟁 이후 중국은 주한미군이 남한에 영구 주둔하자 중국 인민지원군도 주한미군 명분으로 북한에 장기적 주둔을 위한 주북중군 기지 설치를 추진했지만, 김일성은 겨우 잡은 독재정권인데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건 곱게 보지 않았으며 정권 위협으로 간주해, 친중파들을 제거하고 북한 내 중국군을 전부 철수시켰다. 중간에 일어난 게 8월 종파사건이다.

 

1994년 판문점 중국 군사 정전 위원회도 북한 측이 1994년에 일방적으로 폐쇄하는 바람에 덩달아 여기에 파견 나와 있던 중국군 대표단도 모두 철수하였다.

 

또한, 북한과 중국은 한미 동맹처럼 완전한 동맹도 아니다. 북중은 조중동맹조약을 맺고는 있지만 이 조약은 사실상 사문화되었기에 의미가 없다. 여기서 짚어볼건 2조항인데 이 문건에선 '기타, 원조 및 제공'이라고 명시되어 있는데, 즉 자동 개입이다. 하지만 이건 중국으로써는 상당히 부담감이 조여오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북한에 의한 전쟁으로 인해 중국이 자동 개입을 해야 하며, 비록 한미 상호방위조약은 자동개입은 아니지만 한국의 지리적 특성과 반도체 때문에 미국 의회는 어지간하면 개입을 초고속으로 인준하기에 사실상 미국과 직접적으로 싸워야 한다. 이에 중국은 미국과는 언젠가 싸워야 할 존재이지만 아직 이길수 있는 확신이 없는 이상 미국과의 전쟁을 더욱 꺼릴 것이다. 가뜩이나 남중국해, 동중국해, 양안관계, 중인관계, 중국의 소수민족까지 겹쳐있는 상황21에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이자, 졸지에 더 적을 늘리면 세계의 적이 될수있기 때문에 실제로 북핵 문제와 북중 관계가 최악이었을 당시 미국의 폭격에 대해서는 "폭격을 당하더라도 중립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22 여기에 3조항에 보면 '체약 쌍방은 체약 상대방을 반대하는 어떠한 동맹도 체결하지 않으며 체약 상대방을 반대하는 어떠한 집단과 어떠한 행동 또는 조치에도 참가하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다. 즉, 한미 연합 훈련이나 주한미군, 군사 교류 같은 걸 거의 하지 않는다.

 

북한은 알다시피 김일성의 정권 완전 장악 이래 수십 년간 주체사상을 원칙으로 고수해 왔고, 외교와 정치에서도 적용해 왔기에 외세에 의지하지 않고 오히려 경계와 불신이 가득하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북한과 중국이 아직까지 혈맹 관계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북중 관계가 무슨 혈맹입니까? 북중 관계가 복원됐다는데 도대체 뭐가 복원이 됐습니까?"라는, 중국 학자들의 일관된 반응이다.

 

북극성-2형 미사일이 발사 당시 중국의 랴오닝 성까지 포함되는 영상이 찍히며 중국에 대한 시위 및 위협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북중 ‘혈맹관계’에 대한 오해와 진실

 

“로씨야와 한 전호에”…북한, ‘중-러 등거리 외교’ 나섰나

 

 

교통 교류

북한과 중국을 잇는 도로, 다리, 공항이 존재한다.

 

다만 서로 무비자 입국이 불가능하며, 중국인은 공안국의 철저한 허가에 따라 북한을 통행해야 한다.







북한과 중국이 혈맹이라구? 북중관계의 흔한 오해

 

 

북한 김정은이 중국을 방문한 이후 우리 언론 보도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있다. '북중 혈맹', '북중 관계 회복' 등이다. 북한과 중국은 마치 한국과 미국처럼 특별한 동맹 관계일 것이란 막연한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중국에서 여지없이 깨진다. "북중 관계가 무슨 혈맹입니까? 북중 관계가 복원됐다는데 도대체 뭐가 복원이 됐습니까?" 중국 학자들의 일관된 반응이다. 북중 관계에 대한 흔한 오해들이 있다.

 

 

항미원조(抗美援朝)에서 '원조'는 절반의 진실

 

한국전쟁, 6.25전쟁의 중국식 표현은 항미원조 전쟁이다. 미국에 맞서 조선(북한)을 돕는다는 뜻이다. 북중관계가 혈맹이란 표현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북중관계 전문가인 화동사범대학 국제냉전사 센터 주임인 션즈화 교수는 "항미원조라는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앞부분의 항미! 미국에 대항한 것은 진실이지만, 뒷부분의 원조! 북한을 돕는다는 것은 결과적 진실일 뿐 당초 중국의 의도와는 관련이 없다"고 한다.

 

베이징대학 김동길 교수의 2015년 논문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 과정 고찰:중국 국방선의 무혈 확장>을 살펴보자. 마오쩌둥이 1950년 10월 정치국 긴급 회의에서 한국전쟁에 참전을 결정하면서 소련에 있던 저우언라이(周恩來)에게 보낸 비밀 전보를 확보해 분석한 것인데 내용이 충격적이다. "1950년 10월 13일 미군이 평양~원산에서 진격을 멈출 것이라는 펑더화이(彭德懷)의 주장에, 마오쩌둥은 파병을 결정하였다. 싸우지 않고 북한 북부지역을 확보하여 중국 국방선을 압록강에서 평양 이북지역까지 확대할 수 있다는 점이 파병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사문화된 '조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

 

1961년 북한 김일성과 중국의 저우언라이는 '조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을 체결한다. 조약 2조에는 "체약 일방이 무력침공을 당해 전쟁상태에 처하게될 경우 지체없이 군사적 및 기타원조를 제공한다"라고 돼 있다. 3조에는 "쌍방은 체약 상대방을 반대하는 어떠한 동맹도 체결하지 않으며 체약 상대방을 반대하는 어떤 집단과 어떠한 행동 또는 조치에도 참가하지 않는다"라고 돼 있다.

 

1992년 한국과 중국의 수교로 사실상 이 조약은 파기됐다. 1990년 중국 랴오닝 선양을 방문한 김일성이 덩샤오핑에게 "소련도 배신했다. 중국은 배신하지 마라!"고 하자 덩샤오핑은 "무역대표부만 설치한 것 뿐이다."라고 안심시켰지만 2년 뒤 수교를 단행 했다. 태영호 전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의 증언에 따르면 "한중 수교가 이뤄졌을 때 북한 외무성 성원들은 피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중국은 이후 유엔차원의 대북제재에 동참했했다. 지난해 북미간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중국 내에선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제한적 공습에 나설 경우 중국이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조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은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다.

 

 

 

北, "일본은 백년의 적이요 중국은 천년의 적이다."

 

1975년 4월 18일 베이징에서 마오쩌둥과 김일성이 만났다. 핵개발에 얼마가 들었냐는 김일성의 질문에 마오는 "조선은 핵무기를 가질 꿈도 꾸지 말라!"고 못박았다. 김일성은 북한으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정치국 회의를 주재하며 "앞으로 핵무기를 만드는데 가장 큰 적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라며 분해했다.(태영호 증언)

 

2014년 7월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한국을 방문할 때도 북한은 매우 격앙된 반응을 내놨다. 당시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지 꽤 됐지만 중국은 핵개발을 이어가던 북한을 외면하고 한국과의 교류만 이어가는 상황이었다. 급기야 북한 군부에서는 "중국은 천년의 원수"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이후 중국이 유엔차원의 대북제재에 본격적으로 동참하자 "일본은 백년의 원수요, 중국은 천년의 원수다"라는 구호까지 등장했다.

 

 

 

이해관계에 기초한 선별적 협력관계

 

주로 북한이 당한 것 처럼 보이지만 북한이 중국을 불신하는 것 이상으로 중국 역시 북한에 대한 불신이 크다.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를 선언했을 때, 한국보다도 미국보다도 더 못믿겠다고 한 쪽이 바로 중국이었고, 중국에게 북한 비핵화의 진정성을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다는 것이 여권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중국은 지금까지도 한반도 주변국 가운데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가장 의심하는 쪽이다. 지난 8일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전문가 토론에서 장롄구이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 교수는 "지금까지 북한이 취한 조치들은 핵 포기가 아닌 핵 동결 차원일 뿐이고 미래 핵 사용에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점에서 진정성을 믿기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북한과 중국은 공산 이념을 공유하는 가치동맹 차원으로 발전해온 역사가 아니다. 무조건적 지지를 보내는 관계는 더더욱 아니었다. 철저히 각자가 실리를 추구하는 차원에서 이뤄져 왔다. 1990년대 중국은 이념보다 먹고사는 문제에 주력하느라 북한과 멀어졌다. 2000년대 들어서서 중국은 핵개발을 강행하는 북한을 골치아파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올해들어 김정은이 세차례나 중국을 방문할 수 있었던 것도 핵폐기에 대한 확실한 약속을 했기때문이란 분석이 중국에선 지배적이다. 이제 북중관계의 진짜 회복은 북한의 핵폐기 약속 실천 여부에 달렸다.








로씨야와 한 전호에”…북한, ‘중-러 등거리 외교’ 나섰나

 

북한이 미국이 주장하는 ‘러시아에 무기 지원설’을 반박하며,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서 ‘중립’ 입장을 보이는 중국과 달리 러시아를 두둔하고 나섰다. 미국·한국과 대결 국면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러시아와 관계를 발전시켜 중-러 ‘등거리 외교’를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29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권정근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 명의 담화에서 “미국이 러시아의 정당한 안전이익을 침해하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을 계단식으로 추진하지 않았더라면 오늘과 같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그 누구의 ‘도발’에 대비해 ‘확장억제력’을 제공한다는 간판 밑에 조선반도에 핵타격 수단들을 빈번히 끌어들이고 있는 비론리적이고 기형적이며 강도적인 미국식 사고의 연장으로서 황당하고 어이없는 궤변”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권 국장은 “미국은 또 다시 무근거한 ‘조로(북-러) 무기 거래설’을 꺼내들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저들의 무기 제공을 정당화해보려고 어리석게 시도했다”며 “국제사회의 정당한 우려와 비난을 무시하고 주력 탱크와 같은 공격용 무장장비를 우크라이나에 기어코 들이밀려는 미국의 처사는 불안정한 국제정세를 지속시키려는 반인륜적 범죄행위”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에이브러햄 탱크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겠다고 밝힌 직후인 지난 27일 밤에는 김여정 북한 중앙위 부부장이 담화를 냈다. 김 부부장은 “유럽 대륙 전체를 엄중한 전쟁 위험에 노출시키고 크고 작은 우려들을 산생시켜온 미국의 책동이 이제는 더욱 위험계선을 넘어서고 있다”며 “로씨야(러시아)를 파멸시키기 위한 대리전쟁을 더욱 확대하여 저들의 패권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미국의 흉심이 깔려있다”고 비난했다.

 

특히 김 부부장은 “로씨야의 안전 우려를 전면 무시하고 우크라이나에 천문학적 액수의 군사장비들을 넘겨주면서 세계의 평화와 지역의 안전을 파괴하고 있는 미국과 서방나라들은 주권국가들의 자위권에 대하여 시비할 자격이나 그 어떤 명분도 없다”며 “우리는 국가의 존엄과 명예, 나라의 자주권과 안전을 수호하기 위한 싸움에 나선 로씨야 군대와 인민과 언제나 한 전호(참호)에 서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직 외교·안보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중국과 관련해서도 자주 쓰지 않는, ‘한 전호에 있다’는 표현을 대러 관계에서 이례적으로 사용한 것은 대단히 상징적”이라며 “남한 및 미국과 관계를 끊고 중국·러시아·베트남 등 이른바 사회주의 형제국과 협력을 강화해 자력갱생을 도모하겠다는 8차 당대회(2021년 1월) 이후의 기조를 보다 분명히 한 셈”이라고 짚었다.

 

북한은 애초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부터 이같은 입장을 분명히 해 왔다. 러시아의 침공 직후인 지난해 3월2일 유엔 총회에서 러시아 규탄 결의안이 상정됐을 때, 중국·쿠바를 비롯한 러시아의 전통적 우방국이 기권했을 때도 북한은 러시아를 포함해 반대표를 던진 5개국 중 하나였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중국은 유엔의 대북 제재를 어느 정도 이행하고 있다. 반면 러시아는 북한과 마찬가지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 입장”이라며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부터 북-러 철도 연결을 통한 제재 우회를 시도해왔고, 전후 돈바스 지역 노동자 파견을 통한 외화벌이를 위해서라도 러시아를 지지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구 교수는 이어 “북 입장에선 ‘안전보장’만 믿고 1994년 비핵화에 합의한 우크라이나의 현실에서 교훈을 얻었을 수 있다”며 “러시아에 대한 명시적 지지 표명은 명목적으로나마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를 이행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경고’일 수 있다는 점에서, 북이 대외협상 국면에서 한-미가 빠진 자리를 러시아로 메꾸면서 1960년대 이후 다시 ‘중-러 등거리 외교’를 시도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중국의 잠재적 적” 하지만 헤어질 수 없다

 

 

2017년 3월, “북한은 중국의 잠재적 적이고, 한국은 중국에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중국 학자의 공개 강연이 큰 파문을 일으켰다.

 

강연자는 북중관계와 한국전쟁 연구의 대가로 손꼽히는 선즈화 화동사범대 교수였다. 그는 다롄외국어대에서 한 강연에서 “중조(북중)는 과거에 분명 벗이었고 맹우였지만, 그것은 마오쩌둥과 김일성 등 옛 세대 지도자들이 맺은 일종의 특수한 우호관계였을 뿐”이라며, “현재 중국과 북한의 근본 이익은 서로 어긋나고 동맹의 기초는 무너졌다”고 단언했다. 그는 특히 북한의 핵 개발이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키고 중국 주변을 불안하게 하는 근본 원인이라고 비판했다. “조선(북한)이 한번 핵실험을 하면 미국은 동북아에서 군사력을 한층 더 증가시키고 미국의 군사 압력은 또다시 조선이 핵실험을 하게 한다. 가장 큰 압박과 피해를 보는 것은 중국과 한국이다.”

 

그때, 한반도와 중국의 관계는 ‘역사적’ 갈림길에 서 있었다. 2015년 9월3일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70주년 행사에 참석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나란히 천안문(톈안먼) 망루에서 열병식을 참관했던 한중관계의 ‘호시절’은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흔적도 없이 지워져 버렸다. 중국은 북한 핵실험 이후 한국의 협조 요구를 거부했고, 한국은 2016년 7월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로 나아갔다. 중국은 외교와 경제적 보복으로 한국을 압박했다.

 

북중관계도 깊은 위기에 빠져 있었다. 2012년 11월 시진핑 주석이 집권한 직후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친중파’ 세력을 제거하고, 핵·미사일 개발의 길로 질주했다. 김정은은 2013년 중국과 협력하면서 경제 개발을 추진해온 고모부 장성택을 냉혹하게 숙청하고, 중국이 관리해온 이복형 김정남을 2017년 2월 말레이시아에서 공개적으로 암살했다. 2016년에는 4~5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거침없이 벌였다.

 

중국 내에서는 북한의 행태에 대한 분노와 비난이 터져 나왔다. 김정은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중국은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강화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2017년 2월에는 자발적으로 북한에 원유를 비롯한 석유제품 수출을 중단했다. 하지만 북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2017년 9월3일 6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중국은 군사연습이라며 탱크부대를 압록강 변에 배치해 북한을 압박했다.

 

하지만, 결국 중국은 북한을 포기할 수 없었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겨냥해 무역전쟁의 신호탄을 쏘면서 미-중 패권 경쟁이 본격화됐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정상회담으로 나아가자, 중국은 북한이 자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관리에 나섰다. 시진핑 주석과 김정은 위원장은 2018년 3월 베이징에서 처음 만났다. 2011년 김정은이 집권하고, 2012년 11월 시진핑이 중국 최고지도자가 된 이후 이때까지 정상회담 한번 하지 않을 정도로 냉랭했던 관계가 갑자기 뜨거워졌다. 2018년 3월부터 2019년 1월까지 시진핑 주석과 김정은 위원장은 4차례 만났고, 2019년 6월에는 시진핑 주석이 평양을 방문해 5번째 정상회담을 했다. 2021년 양국은 1961년 체결된 북-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을 20년 더 연장했다.

 

돌아보면 지난 75년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겉으로는 혁명과 전쟁에서 동지로 함께 싸운 “선혈로 응고된”(鮮血凝成) 혈맹이었지만, 상호 불신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김일성은 1950년 6·25 남침을 소련 스탈린과 상의해 결정했고 마오쩌둥에게는 나중에 통보했다. 마오쩌둥이 북한을 지원해 한국전쟁에 참전한 이후에도 중국인민지원군과 북한군의 지휘권 문제와 38선 이남 진격 문제 등을 두고 북-중은 사사건건 부딪쳤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김일성은 친중 세력인 연안파를 숙청했다. 문화대혁명 초기인 1966~1969년 홍위병들은 김일성을 비난하고 북중 국경지대에서 ‘조선 수정주의’를 공격하는 선전전을 벌였고, 김일성도 공개적으로 마오쩌둥을 비난하는 등 북-중은 ‘원수’처럼 대립했다.

 

1992년 한중수교를 북한은 중국의 배신으로 여겼고 이후 핵 개발의 길로 질주했다. 북한은 2006년 첫 핵실험과 2009년 두번째 핵실험 당시 직전까지 중국 정부에 통보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1년 12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례 기간, 중국은 천안문 광장에 조기를 게양하지 않았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 천안문 광장에 조기를 게양했던 북중관계는 더 이상 없다는 신호였다. 김정은의 3대 세습을 비난하는 여론은 중국 인터넷에서 확산했다. 김일성 시대 북한과 중국 사이에선 이견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이념과 인맥이 이어져 있었으나,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났다. 중국 후진타오 지도부는 북중관계를 혈맹에서 보통의 국가관계로 전환하려 했다.

 

 

북중 수교 75주년인 올해, 북한과 중국이 다시 냉랭해진 모습이다.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와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고, 급기야 파병까지 하면서 중국을 긴장시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김정은은 러시아와의 밀착을 최대한 활용해 전략적 이익을 극대화하면서, 중국에 대한 절대적 의존에서 벗어나려 한다. 1990년대에 덩샤오핑이 김일성에게 중국식 개혁개방을 따를 것을 설득하기 시작한 뒤 40년 가까이 북한은 ‘중국의 길’로 나아가기를 주저하고 거부했다. 이제 김정은은 푸틴과 손을 잡고 ‘러시아의 길’로 가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중국은 점점 더 대담하게 중국의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김정은이 주변 정세를 더 불안정하게 만들까 우려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북-중 냉기류는 1992년 한중수교나 2016~2017년 상황과 달리 근본적 갈등이 아니다. 중국에 현재의 ‘주요 모순’은 미국과의 대립과 패권 경쟁이다. 미-중 갈등 속에서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훨씬 커졌다. 러시아와 함께 미국에 맞선다는 중국의 장기적 전략을 고려할 때, 북한이 무기와 병력을 제공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우위를 유지하게 돕는 것은 미국의 패권을 흔드는 측면도 있다. 북한이 러시아로 급속히 기울면서 중국이 쥐고 있던 북한에 대한 절대적 영향력이 감소하는 것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중국은 북-러 밀착에 대해 반대도, 찬성도 하지 않는 애매한 태도를 유지할 것이다. 중국은 자국 경제 회복을 위해 유럽·미국 등과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어 ‘북-중-러’ 구도로 보이지 않도록 거리를 두지만, 미국과의 ‘롱 게임’에서 러시아, 북한과 함께 간다는 전략도 바꾸지 않았다.

 

 

지금 북한은 중국이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를 준수하면서 북한 노동자들의 비자 발급을 늦추는 상황 등에 반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때문에 유엔 안보리에서 채택한 제재를 무시하라는 북한의 요구는 사실상 중국이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라는 뜻이다. 러시아는 이미 ‘북한 비핵화는 끝난 이야기’라며 북한의 핵보유를 용인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중국은 오랫동안 한반도 비핵화, 평화 안정,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한반도 정책의 3대 원칙으로 강조해왔지만, 최근에는 ‘한반도 비핵화’ 발언이 사라졌다. 미-중 갈등 속에 한국이 미국, 일본과 군사협력을 강화하면서 ‘한·미·일’의 대중국 포위망을 공고화하는 만큼 중국도 북한 비핵화에서 멀어져 갈 것이다. 한국이 안보의 필요에 따라 미·일과 협력하더라도 최전선에서 앞장설 것인가, 중국과 외교의 여지를 남길 것인가가 극도로 중요하다.

 

북한과 중국 모두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치열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지만, 북한의 지정학적 위치, 북중관계의 지난 역사를 고려하면, 헤어질 수 없다는 마지노선도 분명하다. 중국의 최우선 순위는 한반도에서 무력 충돌이 벌어지는 것을 막고, 북한 정권의 혼란스러운 붕괴를 막는 ‘한반도의 안정 유지’다. 한국이 북한을 흡수 통일해 주한미군이 중국과의 국경 가까이에 주둔하게 되는 상황에는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다. 한편으로, ‘한반도의 안정 유지’라는 중국의 절대적 목표에서 북한이 핵을 위험한 방식으로 사용하거나 전쟁을 일으키려는 것을 억제하는 것은 한-중이 협력할 수 있는 영역이다. 한국이 허황된 북한 붕괴론이나 흡수통일론에 빠지지 않고, 북한이 위험한 도발과 핵 위협에 나서지 않도록 신중하게 억제하고 관리하는 것은 중국과의 외교에서 중요한 목표이자 접점이다. 지금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는 거꾸로 가고 있다.











휘청거리는 북중 관계

 

 

북한과 중국이 2024년을 양국 친선의 해로 선포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종잡을 수 없는 행태, 제재도 아랑곳하지 않는 핵·미사일 프로그램,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으로 북한과 중국의 관계에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분석가들은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하는 대가로 첨단군사기술을 제공받는 것과 관련해 중국과 사전 교감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했다. 이러한 무기 교환은 러시아와 중국 모두가 채택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에 위배된다.

 

곧 출간될 ≪업스타트: 중국은 어떻게 강대국이 되었는가(Upstart:How China Became a Great Power)≫의 저자 오리아나 스카일라 마스트로(Oriana Skylar Mastro)는 포린 어페어스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중국이 주지 않는 지원을 러시아가 기꺼이 제공하게 되면서 북한은 러시아와 점점 가까워지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중국의 영향력은 상당히 줄었다”고 평가했다.

 

현재 북한은 전체 교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이 90%를 육박할 정도로 대중 의존도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위원장은 후원국인 중국의 바람을 무시한 전력이 있다고 마스트로는 지적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무기 실험을 중단하라는 중국의 요구를 무시한 것이다.

 

마스트로는 2024년 2월 기고문에서 “러시아의 지원을 등에 업음으로써 북한은 중국의 역내 및 글로벌 야망을 저지할 수 있는 입지가 더욱 강해졌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자국이 세계 질서의 안정화를 촉진하는 세력이라고 내세우고 있다. 왕이(Wang Yi) 외교부장은 2024년 2월 뮌헨 안보회의에서 중국은 격변하는 세계에서 건설적인 역할을 하는 ‘책임 있는 주요국’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북러 파트너십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입지가 강화됨에 따라 중국은 대립각을 세우는 북한에 비핵화 협상에 복귀하거나 도발적인 무기 실험을 중단하라고 설득하기가 어려워졌다.

 

북한은 또한 중국에 안보 딜레마를 안겨주고 있다. 중국은 2017년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대륙간 탄도무기 개발 위협에 대응해 당시 유엔 제재에 따라 북한산 석탄을 전면 금지한 바 있다. 이에 북한은 이례적으로 중국을 공개 비난했다.

 

또한 북한은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열리는 기간 중 군사 훈련을 실시하여 동해상에 미사일 4발을 발사했는데, 이는 시기적으로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의 불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도발이었다. 랜드연구소의 국방 연구원 브루스 베넷(Bruce Bennett) 박사에 따르면 이 미사일 발사는 중국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북한의 능력을 우회적으로 과시한 것이다.

 

베넷 박사는 중국이 한반도의 잠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이미 미사일 방어 체계와 레이더를 배치한 상태였다고 말하면서 “당시 중국 북동부에 이러한 방어 체계를 구축할 수밖에 없게 만든… 탄도미사일을 북한이 아닌 다른 어떤 나라가 발사할 수 있었겠는가?”라고 질문했다.

 

같은 해 중국의 관영매체인 글로벌타임스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미국이 북한에 보복을 감행할 경우 중국은 1961년 체결한 북중 상호방위조약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중 관계를 악화시키는 또 다른 요인으로는 현재 중국이 거의 모든 이웃국과 벌이고 있는 영토분쟁이다. 국제문제 전문가 J. 버크셔 밀러(J. Berkshire Miller)는 더 디플로매트에 기고한 글에서 1962년 중국과 북한이 국경조약을 체결하였으나 국경 획정이 정확하지 않았음을 지적하며, 한반도는 물론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성스러운 곳으로 여겨지는 국경 지역의 백두산을 중국이 개발함에 따라 중국이 이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확장하려 한다는 불만이 촉발되었다고 설명했다.

 

닛케이 아시아 뉴스지는 중국과 동해를 가르는 북한의 북부 국경 지대에도 긴장이 존재한다며 북한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동부 해안선에 중국 군함이 정박하는 것을 금지했다고 보도했다.

 

중국과 북한의 수십 년에 걸친 불신의 역사를 감안할 때 양국이 올 한 해를 우호적으로 지낼 가능성은 줄어들고 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