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Humanities/동양사 Asian History

버마 로드(Burma Road), 중일전쟁, 장제스, 루즈벨트

Jobs9 2022. 4. 13.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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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버마(지금의 미얀마)에서 중국 윈난성 쿤밍에 이르는 기나긴 수송로였던 버마로드는 그 길이가 장장 717 마일(11.54km)에 이르는 험난하고 위험한 길이었다.
중국 본토를 침공한 일본군에 맞서 싸우는 장제스의 중국 국민군을 위하여 미국 루우즈벨트 대통령은 인도양을 통하여 버마로 하역된 미국의 군수물자를 지원하게 된다. 
1937년과 1938년에 이르는 기간동안 일본군은 영국령 버마를 침공하기 위하여 중국인 인부 20만명을 동원하여 이길을 닦았다.
일본군은 전쟁물자를 실어나를 랭구운(지금의 양곤)과 리사오를 잇는 철로가 버마에서 인도를 향한 전략적 분깃점으로 보았던 것이었다.   
이후 일본은 1942년 버마를 침공한다.
연합군은 처음에는 일본군에 맞써 싸우는 중국 장제스 국민군 에게 하늘로 부터 군수물자를 공수하여 원조하게 된다.
그러나 지구상에서 강수량이 가장 높은 지역인 인도의 아샘 비행장에서 이륙하여 지구의 지붕인 해발 4000미터 가 넘는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가야 하는 항로의 기후 조건은 결코 대량의 군수 원조물자를 제공할 수송 비행에 용이한 항로가 아니었다.
이에 따라 사실상 2차대전중 연합군의 리더격이었던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은 미국과 다른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그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영국군과 미군은 치열한 전투끝에 일본군이 점령했던 인도의 아샘지역과 북 버마를 다시 점령하게 된다. 
이후 Ledo에서 버마로드를 잇는 일명 스틸웰도로라 불리는 레도로드를 건설하게 된다.
이러한 어려움을 겪은 끝에 드디어 연합군의 군수 원조물자를 실은 첫번째 트럭은 1945년 1월 25일 중국 전선에 당도하게 된다.  
그러한 가운데 태평양전선에서 일본군의 전세는 점점 패전으로 치닫게 되고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연합군에게 항복하게 된다. 
연합군이 일본군의 폭격에 다시 건설해야만 했던 기나긴 버마로드는 2차대전의 종결과 함께 역사속으로 묻히게 된다.
버마 로드가 개척된지 얼마후 장제스의 국민군은 모택동 공산군대에 의하여 패해 중국 본토에서 타이완으로 쫓겨나게 된다.
이후 중국은 공산화가 되어 미국과 적대적 국가로 바뀌어 버린다. 
아이러니하게도 한때 같은 연합군으로서 일본군과 맞서 싸울 전쟁물자를 미국으로부터 원조받았던 중국 국민군은 연합군의 숭고했던 지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후 공산세력에게 패하여 중국 본토를 넘겨 주고 말았던 것이다.

버마 로드(Burma Road)





중국 윈난성 쿤밍에서 미얀마의 라시오까지 약 1130㎞ 길을 '버마로드(Burma Road)'라 부른다. 이 길은 중국의 생명선이 되기도, 중국을 위협하는 침투 루트가 되기도 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중국 국민당 정부는 버마로드를 개척해 미국 등 연합국으로부터 군수물자를 공급받았다. 보급선을 유지한 덕에 중국은 일본군을 저지하면서 버틸 수 있었다.

1949년 국공내전에서 중국 공산당이 승리하자 돤시원(段希文) 장군이 이끄는 국민당군 일부 세력이 버마로드를 통해 미얀마 산간지대로 도주했다. 이들은 주변의 소수민족까지 끌어들여 운남반공구국군을 만들고 중국을 여러 차례 공격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구국군을 낙하산 부대로 훈련시켜 중국 내륙에 침투시키기도 했다.

막혔던 버마로드를 다시 뚫은 것 역시 중국이었다. 2000년대 초 중국이 서부 지역을 본격적으로 개발하면서 내륙 지역을 바다로 연결할 루트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최단 코스가 쿤밍을 바로 인도양으로 연결해줄 버마로드였다. 

중국은 생명선인 버마로드가 봉쇄된 기억을 갖고 있다. 아웅산 수지의 아버지인 미얀마 독립 영웅 아웅산 장군에 의해서다. 2차대전이 발발하자 아웅산 장군은 일본군과 함께 버마로드를 봉쇄했다. 중국 정부가 아웅산 수지에 대해 갖고 있는 걱정도 이 기억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미얀마 문민정부가 미국과 가까워져 다시 버마로드를 봉쇄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이다. 미얀마 군부는 중국의 이런 우려를 배경으로 쿠데타를 감행했다.
 
미얀마 사태가 최악을 향하고 있는데도 중국은 '불개입 원칙'만을 반복하고 있다. 중국이 버티고 있는 한 미국이 쉽게 개입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미얀마 군부는 알고 있다. 더구나 중국은 유엔을 통한 개입을 막을 수 있는 거부권까지 갖고 있다. 역설적으로 중국은 '불개입 원칙'을 통해 미얀마 사태에 가장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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