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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성장과 발전, 발해 왕, 두문자, 무왕, 문왕, 선왕

Jobs 9 2024. 4. 21.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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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당장 요(기)서' 무왕 대무예  인안 당과대결 장문휴 산둥공격 요서 당과 격돌 
'문대 중상 신주자'  문왕 대흠무 대흥보력 중앙조직3성6부 상경천도 신라도 주자감 
'선건 해북남서 지방'  선왕 건흥 해동성국 북말갈족복속 남신라국경 서요동진출 지방조직5경16부62주

 

발해의 성장과 발전

무왕
  • '인안'이라는 연호 사용 → 중국과 대등하다는 것을 내세움
  • 영토 확장 → 만주 북부 지역 장악
  • 당이 흑수 말갈, 신라를 이용하여 발해 견제 → 일본과 친선 관계 맺음, 당의 산둥 반도 공격(장문휴)
문왕
  • 상경 용천부로 천도, 통치 체제 정비
  • 당과 친선 관계 수립 → 당 문물과 제도 수용
  • 돌궐, 일본과도 긴밀히 교류, 신라와 신라도를 통해 교류
  • '대흥', '보력' 연호 사용, '황상' 칭호 사용, 일본 외교 문서에 '하늘의 자손'이라 일컬음
선왕
  • 대외 정복: 대부분의 말갈 부족 흡수, 옛 고구려 영토 대부분 차지, 최대 영토 확보
  • 발해의 전성기(9세기 전반) → 당에서 해동성국이라 칭함
멸망
  • 9세기 후반부터 귀족들 간 내분으로 국력 약화 → 거란족에 의해 멸망(926)
  • 여러 차례 발해 부흥 운동 전개 → 발해 유민 다수는 고려로 망명

 



 Q  빈 칸에 들어갈 왕의 재임 시기에 일어난 사실로 가장 옳은 것은?

 

발해와 당은 발해 건국 과정에서부터 대립적이었으며 발해의 고구려 영토 회복 정책으로 양국의 대립은 더욱 노골화되었다. 당은 발해를 견제하기 위해 흑수말갈 지역에 흑수주를 설치하고 통치관을 파견하였다. 이러한 당과 흑수말갈의 접근을 막기 위하여 발해의 [        ]은 흑수말갈에 대한 정복을 추진하였다. 이 계획을 둘러싼 갈등이 비화되어 발해는 산둥 지방의 덩저우에 수군을 보내 공격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당은 발해를 공격하는 한편, 남쪽의 신라를 끌어들여 발해를 제어하려고 하였다.


① 3성 6부를 비롯한 중앙 관서를 정비하였다. 

② 융성한 발해는 해동성국 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③ 왕을 황상(皇上) 이라고 칭하여 황제국을 표방하였다. 
④ 일본에 보낸 외교문서에서 고구려 계승 의식을 천명하였다. 

【해설】 정답 ④ 
흑수말갈 정벌을 추진하고, 장문휴의 산둥 반도 덩저우 공격은 발해 무왕(대무예 2대 : 719-737) 때 사건 
④ - 무왕 때 일본과의 국교가 수립되었고, 이 시기 일본에 보낸 외교문서에서 고구려 계승 의식이 표방되었다.   
오답확인:  
① - 문왕은 당의 제도를 받아들여 3성 6부를 비롯한 중앙 관서를 정비하였다.  
② - 9세기 선왕 이후 발해는 “해동성국”의 칭호를 얻었다.  
③ - 문왕의 넷째 딸인 정효 공주 묘비에서 “황상은 조회를 파하고, 크게 슬퍼하여”라는 문장이 발견된다. 따라서 문왕 때 황제국을 표방했음을 알 수 있다.
'무인당장 요(기)서' 무왕 대무예  인안 당과대결 장문휴 산둥공격 요서 당과 격돌 
'문대 중상 신주자'  문왕 대흠무 대흥보력 중앙조직3성6부 상경천도 신라도 주자감 
'선건 해북남서 지방'  선왕 건흥 해동성국 북말갈족복속 남신라국경 서요동진출 지방조직5경16부62주

 



 Q  발해에서 일어난 일을 시기 순으로 바르게 나열한 것은? 


ㄱ. 장문휴가 당의 산동지방 등주를 공격하였다.  
ㄴ. 수도를 중경현덕부에서 북쪽의 상경용천부로 옮겼다.  
ㄷ. 당으로부터 ‘발해군왕’에서 ‘발해국왕’으로 봉해졌다.  
ㄹ. ‘건흥’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다.  


① ㄱ→ㄴ→ㄷ→ㄹ  ② ㄱ→ㄷ→ㄹ→ㄴ  
③ ㄴ→ㄱ→ㄹ→ㄷ  ④ ㄱ→ㄷ→ㄴ→ㄹ  

【해설】 정답 ① 
ㄱ은 무왕 ㄴ은 문왕 755년 ㄷ은 문왕 726년 ㄹ은 선왕 대의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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