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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건국, 고왕(高王, 재위 698~719) 대조영(大祚榮), 고구려 후예

Jobs 9 2021. 12. 1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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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건국

발해말갈(渤海靺鞨)의 대조영(大祚榮)은 본래 고구려의 별종(別種)이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대조영은 가속(家屬)을 이끌고 영주(營州)로 옮겨와 살았다. 만세통천(萬歲通天, 주(周) 측천무후 13년(696)) 연간에 거란의 이진충(李盡忠)이 반란을 일으키자 대조영은 말갈의 걸사비우(乞四比羽)와 함께 각각 (무리를) 거느리고 동쪽으로 망명하여 요해지(要害地)를 차지하여 수비를 굳혔다. 이진충이 죽자 측천무후가 우옥검위대장군(右玉鈐衛大將軍) 이해고(李楷固)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그 나머지 무리들을 토벌하게 하였는데, (이해고는) 먼저 걸사비우를 무찔러 베고 또한 천문령(天門嶺)을 넘어 대조영을 바짝 뒤쫓았다. 대조영이 고구려와 말갈의 무리를 연합하여 이해고에게 항거하자 왕사(王師)는 크게 패하고 이해고만 탈출하여 돌아왔다. (이때) 거란과 해(奚)가 모두 돌궐(突厥)에게 항복을 하므로 길이 막혀서 측천무후는 (그들을) 토벌할 수 없게 되었다. 대조영은 마침내 그 무리를 거느리고 동쪽으로 가서 계루부(桂婁部)의 옛 땅을 차지하고, 동모산(東牟山)에 웅거하여 성을 쌓고 살았다. 대조영이 굳세고 용맹스러우며 병사를 잘 운용하자 말갈의 무리와 고구려의 나머지 무리들이 점점 모여들었다. 성력(聖曆) 연간(698~699)에 스스로 진국왕(振國王)에 오르고 돌궐에 사신을 보내어 통교하였다. 그 땅은 영주의 동쪽 2000리 밖에 있으며, 남쪽은 신라와 서로 접하고 있다. 월희 말갈(越憙靺鞨)에서 동북쪽으로는 흑수 말갈(黑水靺鞨)에 이르는데, 사방이 2000리이며, 편호(編戶)는 10여 만이고, 정예병은 수만 명이다. 풍속은 고구려와 거란과 같고, 문자와 전적(典籍)도 상당히 있다. 

『구당서』권199하, 「열전」149하 북적 발해말갈

 

渤海靺鞨大祚榮者, 本高麗別種也. 高麗旣滅, 祚榮率家屬徙居營州. 萬歲通天年, 契丹李盡忠反叛, 祚榮與靺鞨乞四比羽各領亡命東奔, 保阻以自固. 盡忠旣死, 則天命右玉鈐衛大將軍李楷固率兵討其餘黨, 先破斬乞四比羽, 又度天門嶺以迫祚榮. 祚榮合高麗⋅靺鞨之衆, 以拒楷固, 王師大敗, 楷固脫身而還. 屬契丹及奚盡降突厥, 道路阻絶, 則天不能討. 祚榮遂率其衆東保桂婁之故地, 據東牟山, 築城以居之. 祚榮驍勇善用兵, 靺鞨之衆及高麗餘燼, 稍稍歸之. 聖曆中, 自立爲振國王, 遣使通于突厥. 其地在營州之東二千里, 南與新羅相接. 越憙靺鞨東北至黑水靺鞨, 地方二千里, 編戶十餘萬, 勝兵數萬人. 風俗與高麗及契丹同, 頗有文字及書記.

『舊唐書』卷199下, 「列傳」149下 北狄 渤海靺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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