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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 재거, Mick Jagger, 1943년생, 롤링 스톤스, 프론트맨 시조, 섹스 심볼, 최고 작사가, 메리앤 페이스풀, 마가렛 트뤼도, 안젤리나 졸리, 데이비드 보위

Jobs 9 2025. 3. 1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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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 재거

Mick Jagger

 

본명

마이클 필립 재거

Michael Philip Jagger

출생

1943년 7월 26일 

영국 잉글랜드 켄트 주 다트퍼드

 

싱어송라이터, 프로듀서, 배우

롤링 스톤스 

활동 기간

1960년 – 현재

사용 악기

보컬, 하모니카, 기타

장르

록, 하드 록, 블루스, 팝

 

 

 

영국의 음악가, 배우.

롤링 스톤스의 리더이자 보컬리스트로, 역대 최고의 보컬리스트 및 프론트맨을 논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인물이며, 프론트맨의 시조로 평가받는다. 또한 대중음악에서의 성취를 뛰어넘어 문화적으로도 큰 영향을 끼쳤으며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세기의 섹스 심볼로도 유명하다. 1960년대 당대의 패션리더이기도 했으며, 대중음악계의 대표적인 패셔니스트이다. 1960년대부터 패션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고, 지금까지도 그의 패션은 패션업계에 영향을 주고 있다. 해리 스타일스같은 아티스트들도 많이 참고하는 듯 하다.

롤링 스톤 선정 100대 가수에서 선정한 위대한 가수 16위에 선정되었다.

 

 

생애

 

롤링 스톤스 이전

 

1943년, 잉글랜드 켄트(Kent) 주의 다트퍼드(Dartford)에서 태어났다. 친구인 키스가 험난한 성장기를 보낸 것에 비해 그는 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는데, 아버지가 학교 교사였고 어머니는 미용사인 중산층 가정이었다. 밑으로 크리스토퍼라는 남동생 한 명이 있는데, 그의 말로는 자신의 샌드백이였다고(...) 남자형제끼리 늘 그렇듯 동생과 치고 박으면서 자란 듯. 어려서부터 로큰롤과 리듬앤블루스를 좋아했고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했지만 뮤지션이 될 생각까지는 없었다고 한다. 모범생에다가 공부도 잘 하는 편이어서 명문 런던정경대에 입학하여 재정학(Finance)과 회계학(Accounting)을 공부했다.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진지하게 저널리스트나 정치인이 되는 걸 고민했다고 한다.

대학생이던 믹 재거는 어느 날 기차역에서 자신과 같은 마을에서 태어난 유치원과 초등학교 동창 키스 리처즈를 만나게 되는데, 둘은 11살때 키스가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면서 교류가 끊긴 상태였다. 그러나 로큰롤을 좋아한다는 공감대를 발견, 이야기꽃을 피우며 친해지게 된다. 믹 재거는 당시 리틀 리처드를 즐겨 듣고 있었고 키스 리처드는 척 베리의 열성 팬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브라이언 존스가 롤링 스톤스 멤버를 모집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믹은 키스 리처즈에게 연락하여 오디션에 응시했고, 합격하여 롤링 스톤스의 멤버가 되었고, 다니던 대학은 중퇴했다. 참고로 믹 재거의 학교 동창들은 모범생이었던 그가 가수를 할 타입의 인물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TV에 나와서 요란하게 노래 부르는 믹 재거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롤링 스톤스 활동

 

뮤지션으로서의 재능

 

보컬리스트로서

 

1968년 Sympathy for the Devil 라이브

 

파워풀하고 거친 흑인 스타일이면서도 매우 블루지한 음색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믹 재거의 보컬은 록 역사상 최고의 보컬리스트들이라고 평가받는 로버트 플랜트나 로저 달트리, 프레디 머큐리, 로니 제임스 디오, 브라이언 존슨 등의 보컬리스트들처럼 3옥타브 대의 샤우팅을 난사하는 폭발적인 보컬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믹 재거가 상술한 보컬들과 함께 하드 록 역사상 최고의 보컬리스트이자 록 역사상 최고의 보컬리스트로 꼽히는 이유는 그의 스펙트럼과 표현력에 있다.

 

믹 재거는 곡의 분위기에 걸맞은 보컬을 보여주었다. 이를테면 Wild Horses, No Expectations같은 발라드 넘버에서는 유려한 미성으로 곡을 이끌어 나가며, Jumpin' Jack Flash 등의 하드 록, 블루스 록 넘버에서는 거친 스타일의 블루지한 보컬로 맛깔나게 곡을 이끌어 나간다. 특히나 이러한 곡들에서의 보컬은 속된말로 “깡패 창법”을 사용하여 거리낌없이 노래한다. 또한 Some Girls나 Tattoo You같은 후기 앨범들에선 당시 유행하던 팔세토 또한 마스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믹 재거의 보컬은 고음이나 기교 없이 진정한 보컬의 표현력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 주며, 더 나아가 이러한 보컬은 키스 리처즈의 기타 리프와 더불어 롤링 스톤스의 상징이 되었다.

노년이 된 현재에도 여전히 전성기 시절처럼 파워풀하고 거친 보컬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80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넓은 공연장을 뛰어다니느라 숨이 찬지 2022년 투어에서는 음을 낮추어 부르는 경우가 많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전성기 시절보다 성량이 더 좋아지는 등의 기현상이 보이기도 한다.

 

 

 

프론트맨으로서

 

 

록 장르 프론트맨의 이미지를 최초로 구축한 아티스트로 평가받는다. 흔히 록밴드의 프론트맨 하면 떠올리는 폭발적인 무대 매너를 보여준 로저 달트리, 그리고 로버트 플랜트, 짐 모리슨 보다 시기적으로 앞선다. 믹 재거는 무대 매너라는 개념조차 없던 1960년대 중반에 관객 호응을 유도하기 위해 막춤을 추거나 각종 애드립을 하는 등 소위 말하는 ‘관객 조련’을 최초로 한 뮤지션이다. 엘비스 프레슬리로부터 시작해 리틀 리처드로 이어지는 로큰롤 스타의 거만하고 반항적인 이미지를 믹 재거가 완성시켰다고 일컬어진다. 이러한 폭발적인 무대 매너는 당시 보수적이던 영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러한 점은 후대의 펑크음악이나 글램 록, 그런지같은 록 음악의 세부장르 프론트맨들에게도 그대로 전수되었다. 이러한 프론트맨으로서의 강렬한 이미지는 다른 장르에도 영향을 주었다. 힙합 음악의 전설인 칸예 웨스트는 'Swagger like Mick Jagger'라는 가사를 썼으며, 마룬 5도 'Moves like Jagger'라는 곡의 뮤직비디오에서 믹 재거의 '관객 조련' 몸 동작을 오마주하였다. 또한 뮤지컬 캣츠에서 암컷 고양이를 후리는 럼텀 터거라는 고양이는 믹 재거를 오마주하였으며, 영화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에서도 '믹 재거' 스타일로 도망가봐라는 말이 통용되는 것을 보면 록스타 프론트맨으로서의 믹 재거의 이미지가 매우 압도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콘서트에서 믹 재거는 후배 격인 젊은 팝스타들도 어지간하면 보여주기 힘든 어마어마한 무대 장악력을 보여주는데, 150만에 가까운 인파를 모아놓고 공연한 2006년 브라질 '코파카바나 해변' 공연에는 공연 가수의 절정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고 그보다 10년이 지나 50만에 가까운 인파가 몰린 2016년 쿠파 '아바나의 달' 공연은 물론 현재까지도 스타디움 투어를 돌면서 지치지 않고 무대를 누비는 엄청난 장악력을 보여준다.

 

 

 

작사가, 작곡가로서

 

 

Sunshine bores the daylight out of me

햇빛은 나를 죽도록 지루하게 만들지

Rocks Off 中

 

 

I stuck around St. Petersburg

변화의 시기를 봤을 때

When I saw it was a time for a change

저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위에 머물렀습니다

Killed the czar and his ministers

차르와 그의 총독들을 죽였고

Anastasia screamed in vain

아나스타시야는 무의미한 비명을 질러댔지요

Sympathy for the Devil 中

 

 

믹 재거의 가사는 그냥 놀라움 그 자체이다.

지미 페이지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작사가 중 한 명으로 거론되는 작사가이다. 믹 재거의 작사 능력은 현재까지도 가히 경탄할만한 수준으로, 롤링 스톤스의 대다수의 히트곡들의 작사는 대부분이 믹 재거가 맡았다.

믹 재거가 쓴 가사의 특징은 표현들이 매우 재치가 있다는 점이다. 밥 딜런이나 짐 모리슨, 그리고 로버트 플랜트의 가사가 시적인 것으로 유명하고, 레이 데이비스의 가사가 신랄하고 재치있는 서사를 구성하는 가사로 유명하다면, 믹 재거의 가사는 특유의 직설적인 표현력과 재치있는 비유로 유명했다. 마약 혹은 섹스같은 민감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직접적인 단어를 쓰지 않으면서 표현하는 능력 역시 유명하다. 당장 제시되어 있는 Sympathy for the Devil에서 러시아 혁명을 묘사한 부분을 보면 바로 이해가 갈 것이다. 또한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 입학한 수재답게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쓰여진 가사 또한 많았다.

이와 동시에 레논-매카트니, 플랜트-페이지와 비견되는 재거-리처즈의 구성원답게 작곡가로서의 능력 또한 매우 출중했다. 롤링 스톤스의 대표곡인 Brown Sugar는 작사 작곡을 전부 믹 재거가 맡았다는 말도 있으며, Sympathy for the Devil 또한 믹 재거의 작곡 비중이 더 컸다고 한다.

하지만 상술한 작사가로서의 능력은 Tattoo you로 이어지는 후기 앨범부터는 많이 옅어진 장점들이라 안타까워하는 팬들도 많다. 보컬리스트로서 성량과 무대 매너는 나이가 먹을수록 녹슬지 않거나 진화하였는데 전성기시절 보여준 재치있는 표현들은 80년대 이후에는 많이 줄어들었다.

 

 

사생활

 

여성 편력

 

여성 편력에 있어서는 본좌라고 봐도 무방하다. 남녀 도합 무려 5천 명 정도 같이 잠자리를 했는데, 사실 당시 음악계에서는 그루피 문화가 유행했기 때문에 지미 페이지처럼 믹이랑 비슷한 수의 상대랑 잠자리를 가진 인물은 없진 않으나, 믹이 이 부문 본좌가 된 이유는 데뷔 시점부터, 60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순수 일탈은 키스 리처즈보다 덜 했다고 하지만, 대중적 이미지는 키스랑 비슷하게 좋지 못하다.

이미 믹 재거의 이름이 영어권 문화에서 섹시남, 플레이보이 등의 속어로 사용될 정도로 그 여성편력은 가히 악마의 경지에 달했다. 자신의 그루피들을 포함해 무려 여자 4천여 명, 남자 4백여 명과 원나잇을 즐겼으며 다른 남자들의 연인을 숱하게 NTL하고 수 많은 유명인사들과 수 많은 염문을 퍼트렸다. 이 중에서 유명한 것은 메리앤 페이스풀, 믹 재거의 팬인 피에르 트뤼도 캐나다 수상의 부인 마가렛 트뤼도, 안젤리나 졸리, 데이비드 보위 부부 등이 있다. 그 외 믹 재거를 거쳐간 여자는 여기서. 다만 이러한 염문 중에서 보위 부부와의 관계는 보위의 전처 안젤라 보위의 일방적인 주장임을 참작할 필요가 있다. 어쨌든 70이 넘어서도 여성편력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자신이 낳은 슬하의 자식들을 절대로 버리지 않고 어른이 될 때까지 책임을 지고 키워줬다는 것이다.

2014년 2001년부터 교제 중이던 연인 르웬 스콧이 자살했다. 재거는 그녀에게 추모의 뜻을 보냈다.

2016년 12월 9일, 73세 나이에 득남하였다. 이 막내아들은 믹 재거의 증손자보다 2살이나 어리다고 한다.

2017년 10월 53세 연하인 영화 제작자 누어 알팔라(22)와 열애 중이라고 한다. 알팔라와는 2년 정도 교제했다.

 

형과 반대로 동생 크리스 재거는 현 부인과 결혼한 후 40년 이상 이혼하지 않고 평온히 보내고 있다. 대신 이쪽도 자식을 다섯이나 가졌다. 형동생 합해 얻은 직계 친자식만 꼽아도 13명이나 되는 대가족이 된 셈.

 

 

 

 

키스 리처즈와의 관계

Jagger - Richards

재거-리처즈

믹 재거, 키스 리처즈

 

 

단순히 콤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비틀즈의 레논-매카트니처럼 밴드 내에서 작곡을 하는 조합으로, 레논-매카트니, 플랜트-페이지와 함께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작곡 콤비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70년대 중후반 들어서는 글리머 트윈스(Glimer Twins)라는 가명으로 프로듀싱까지 하게 되었다.

 

레논-매카트니가 그러했듯 믹과 키스의 관계도 애증으로 묘사되곤 한다. 두 사람은 밴드 결성 초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 보낸 둘도 없는 친구지만 서로 디스하고 헐뜯기도 했으며, 끊임없이 마약이나 스캔들에 연루되곤 했다.

 

많은 작곡 콤비가 그렇듯이, 이 둘도 음악적 성향은 많이 다르다. 둘 다 로큰롤을 기반으로 했지만, 믹 재거는 당대 팝 음악의 트렌드에 상당히 민감하고, 그 시대에 따라 하드 록, 디스코, 뉴 웨이브, 얼터너티브 록까지 수많은 장르를 포용하려 한다, 반면에 키스 리처즈는 고전적인 정통 로큰롤, 블루스를 추구한다. 이 둘의 상반되는 스타일이 서로 맞물리며 롤링 스톤즈의 수많은 걸작이 탄생했지만, 동시에 이로 인한 대립 역시 커리어 내내 계속되었다. 특히 1980년대에 접어들어 뉴웨이브, 신시사이저를 받아들이려는 믹 재거와 그에 부정적이던 키스 리처즈간의 갈등이 폭발했고, 밴드 또한 음악적으로 방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들의 갈등은 1989년 Steel Wheels에 이르러서야 봉합되었고, 이후로는 큰 다툼 없이 꾸준히 음악을 만들어가고 있다. 믹 재거 역시 노년기에 접어든 21세기 이후로는 이전처럼 트렌디함에 집착하지 않고 고전적인 블루스 록으로 회귀하고 있다.

 

믹 재거와 키스 리처즈는 같은 동네에서 태어났고 유치원 동창이기도 했다. 그리고 성장하며 각자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어 잠시 헤어졌다가, 시간이 지나 대학생이 되었을 때 기차역 앞에서 다시 만나 친분을 쌓게 되었다. 롤링 스톤스가 결성되었을 초기에는 리더 브라이언 존스를 주축으로 고전 블루스를 리메이크하는데 중점을 두어 자작곡의 비중은 별로 없었지만, 1965년 키스 리처즈가 작곡한 (I Can't Get No) Satisfaction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재거-리처드를 주축으로 본격적으로 작곡을 시작하게 되었고 Aftermath부터는 전 앨범을 자작곡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이 둘은 유명한 생존왕이기도 한데, 믹 재거는 락스타들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문란한 여성편력을 가졌으나 온갖 성병에 용케 안 걸리고 현재까지 살아남았고, 키스 리처즈는 락스타들 중에서도 손에 꼽는 극심한 골초+약쟁이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암, 마약 중독으로 인한 사망 등의 건강문제가 일절 없다. 지금까지 이런 건강에 위험한 생활로 인해 죽은 락스타들이 수도 없이 많은데, 이런 생활의 최고봉인 재거와 리처즈가 80이 넘은 지금까지 정정한 것을 보는 많은 팬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믹 재거의 옛 연인이었던 메리앤 페이스풀의 증언에 따르면 믹 재거가 키스 리처즈를 바라보는 시선은 거의 연인에 가까웠다고 한다. 그만큼 그 둘의 사이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절친했다는 것으로 보인다.

 

 

 

 

 

 

솔로 음반 목록

 

She's the Boss (1985)

Primitive Cool (1987)

Wondering Spirit (1993)

Godness in Doorway (2001)

 

 

영화

 

1970년 영화 퍼포먼스

1992년 영화 프리잭에서 악역으로 나왔으나 아군이 된 적이 된다. 국내 지상파 방영당시 성우는 김준(KBS2)/이윤연(MBC). 이 영화에서는 안소니 홉킨스, 르네 루소 등도 나오는 지금 생각하면 호화 캐스팅이지만, 개연성이 너무 없는데다가 반쪽짜리 제작으로 인해 주연들 모두 혹평했고 평가나 흥행도 망했다.

1997년 영화 벤트

 

 

마룬 5의 곡〈Moves Like Jagger〉에서의 Jagger가 바로 믹 재거를 일컫는 말이다.

4월 영국 TV 인터뷰에서 브렉시트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단기적으로는 손해를 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득이 될 수도 있겠다고 한다.

두꺼운 입술로 유명하다. 당장 롤링 스톤즈 로고가 그의 입술을 본땄다.

믹 재거 수염

말끔한 모습이 유명하지만 1979년에는 덥수룩하게 수염을 길렀던 적도 있다.

한 때, 런던의 한 정신 병원에서 주당 4.1파운드를 받으며 환자 이동 담당 역으로 일한 적이 있다고 한다.Mick Jagger - Hospital Porter

섹스 피스톨즈의 보컬 존 라이든은 1978년에 인터뷰에서 믹 재거를 살해하고 싶다고 발언했다.

데뷔하기 1년 전인 1959년의 믹 재거. 당시 16세, 한국 나이로 고1이었지만 굉장한 동안이다. 현재도 나이 대비 동안인 편인데 이는 세련된 옷차림 스타일을 추구하기 때문인 것도 있다.

1964년 영국을 휩쓸던 당시 뉴스. 1964년 영상인데, 당시 기준 세련된 패션을 자랑한다. 2020년대 20대 옷차림과도 비슷하다.

젊은 시절엔 루크 스카이워커와 시계태엽 오렌지의 주인공 알렉산더 드라지, 해리 스타일스 등등을 닮았다.

리암 갤러거에게 대결 신청을 받은 적이 있다. 구체적인 발단은 영국 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던 오아시스에 대한 록스타들의 의견을 묻는 한 다큐멘터리에서의 인터뷰에서 시작되었다. 다큐에 출연한 조지 해리슨이 "오아시스는 형편 없는 밴드라서 30년 뒤면 잊힐 것이다. 노엘은 훌륭한 놈이지만 걔도 노래를 부를 수 있는데 난봉꾼같은 리암은 왜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막말을 한데에 이어서 믹 재거도 오아시스를 형편 없는 밴드라고 마구 비난하자, 꼭지가 돈 갤러거 형제가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기 전 사전에 다큐멘터리를 내보내지 못하게 했다. 얼마 뒤 술에 취한채 라디오에 출연한 리암 갤러거가 빡쳐서 조지 해리슨은 음악으로는 몰라도 인간으로는 완전 젖꼭지같은 놈이야라고 하고, 그 다음 믹 재거, 꼽냐? 꼬우면 우리 집 주소가 XX XXX니까 찾아와서 한판 붙자 라고 믹 재거에게 맞짱 신청을 했다. 다음날 롤링 스톤즈의 팬들 수십명이 리암의 집 앞에 운집하여 믹 재거 가면을 쓰고 시위를 벌이자, 리암은 결국 경찰을 불러 분노한 믹 재거의 팬들을 쫓아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의 스타일은 시간이 지나도 잘 변하지 않았으며, 외모 또한 눈가가 처진 것을 제외하면 비교적 그대로 늙었다.

 

2020년 코로나19 유행 당시 본인 소유 대저택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자가격리를 하는 법 영상을 지미 팰런 쇼를 통해 공개하였다. 믹 재거가 젊은 시절이었던 1960년대풍의 화질과 The End 폰트가 포인트. 다른 보수주의 성향인 에릭 클랩튼이 코로나19 방역수칙에 대해 맹비난하는 와중에 믹 재거는 방역수칙을 지켜서다.

 

대다수의 록스타들과는 달리 중산층 출신이기에 보수당 지지자이다. 마거릿 대처를 지지하는 믹 재거는 영국 연예계 내에서 가장 대표적인 보수당 지지자들 중 하나로 크리스토퍼 리, 마이클 케인과 함께 꼽힌다. 특히나 음악계의 경우 대다수가 노동 계급 출신이라 대부분 노동당을 지지하는데, 재거의 이러한 행보는 독특하다고도 볼 수 있다. 단, 믹 재거는 정당만 보수당을 지지할 뿐 실질적인 성향이나 행보는 리버럴 쪽에 가깝다는 의견도 있다.

보수적인 정치 성향과는 별개로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 반감이 있다. 그리고 베트남 전쟁은 말 그대로 극혐한다. 

폴 매카트니가 린다 매카트니와 결혼하자 폴한테 "그 여자는 나랑 함께 뒹굴던 그루피였는데 도대체 어디가 맞아서 결혼했냐."라는 매우 무례한 발언을 했다가 폴 매카트니와 사이가 나빠진 적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다시 화해했다고 한다.

 

데이비드 보위와 연인 혹은 섹스 파트너 사이였다는 유명한 루머가 있다. 존 레논과도 관계를 가졌다는 루머도 있을 정도로 남성 편력마저 대단하다.

 

더 후의 기타리스트 피트 타운젠드와도 성관계를 맺은 적이 있다. 피트는 이성애자지만 60년대부터 믹 재거를 존경하고 좋아하는 팬이기도 했다. 유일하게 남자와 성관계를 가진적이 믹 재거와 동침한 것이었다고. 키스 리처드가 믹 재거의 성기가 작다고 디스하자 피트가 "아닌데? 크던데" 하면서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희대의 바람둥이 답게 슬하에 자식을 여러 명을 두었는데, 세간의 인식과 달리 의외로 자식들을 끔찍이 아낀다. 첫째 딸인 '카리스'는 아버지가 믹 재거인 것을 모른 채로 살아왔는데 성인이 되어 믹을 만난 후 믹은 카리스를 공식 석상에 초대하거나 카리스의 결혼식에 참여하는 등 카리스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다른 자녀들과의 사이도 매우 좋으며 이에 따른 영향인지 이복남매 간의 사이도 매우 돈독하다. 실제로 믹은 아이들을 좋아하는 성격으로, 아이를 돌볼 때 마다 자신이 치유되는 느낌이 든다고.

 

캣츠의 최고 인기 캐릭터 럼 텀 터거는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믹 재거를 오마주해서 만든 캐릭터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미지를 생각해볼때 록스타의 카리스마로 상대방을 리드하는 나쁜 남자 스타일 것라고 생각을 하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착한 남자 스타일이라고 한다. 슈퍼스타인 것도 있지만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는 달리 자상한 면모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수 많은 여자들과 사귈 수 있었던 것이다.

 

마이클 잭슨의 음악과 뮤직비디오에 대한 정보를 담은 책인 <마이클 잭슨: 그의 인생과 음악>이라는 책에서는 마이클 잭슨이 State Of Shock의 최종 믹스를 듣고 실망하며 믹 재거가 가지고있는 음악가로서의 자질을 의심했다고 한다. "저런 재능으로 어떻게 스타 작곡가가 될 수 있었던 걸까? 이해가 안간다. 그는 나만큼 많은 음반을 못 판다"라는 말을 했다는데 공식적으로 마이클 잭슨이 인정하지는 않았으므로 주의해서 들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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