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 최대 도시 로스앤젤레스(LA)의 해안가에서 시작된 산불을 빠르게 확산시켜 피해를 키운 돌풍 '샌타애나'는 인근 네바다주와 유타주로부터 불어오는 건조하고 따듯한 바람으로, 가을과 겨울에 자주 발생한다.
9일(현지시간) 샌타애나 강풍이 약해지면서 일부 지역의 산불 확산세가 한동안 다소 진정됐지만, 미 기상청(NWS)은 이날 오후 1시께 LA 카운티와 남쪽 오렌지 카운티 내륙 지역에 다시 강풍 경보를 발령했다.
美서부 잿더미 만드는 대형산불…"기후변화·도시화가 주범"
미국 서부 최대도시 로스앤젤레스(LA)가 역대급 산불 피해를 겪고 있는 가운데, 미 서부의 빈번하고 파괴적인 산불은 기후변화와 도시화에 기인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ABC 방송과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미 서부 캘리포니아주에서 발생한 산불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던 산불 10건은 모두 지난 20년 사이에 발생했다.
이 가운데 5건은 2020년 한 해 동안 발생할 정도로 미 서부의 산불은 빈번해지고 대형화하는 추세를 보였다.
캘리포니아주 산불 피해 지역은 1970년 이후 2021년까지 172% 증가했는데,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피해 면적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미 연방정부는 작년 11월 발표한 제5차 국가기후평가에서 미 서부 산불은 급속한 도시화와 인간이 증폭시킨 기후 변화로 인해 지난 수십년간 강렬해졌으며, 파괴력도 커졌다고 진단했다.
기후변화와 도시화는 불이 잘 붙을 수 있는 따뜻하고 건조한 환경을 조성했고, 산림의 고사를 촉진해 지표 연료의 축적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지속된 미 서부의 극심한 더위와 장기 가뭄은 산불의 땔감이 되는 건조한 식물의 양을 늘려 파괴적인 산불 발생을 부채질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LA 산불의 경우에도 건조함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LA 지역은 2022년과 2023년 겨울에 폭우가 내리면서 지역 전체에 초목이 자랐는데, 이번 겨울에는 극심한 가뭄이 닥치면서 나무와 풀이 대부분 바짝 말라버렸다.
이런 기상 조건에 더해 시속 80마일(129㎞)에 달하는 강풍이 불면서 LA 산불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번져갔다.
겨울이 되면 서부 내륙 사막에서 남부 캘리포니아로 '샌타 애나'로 불리는 강하고 건조한 돌풍이 불어오는데, 이 바람이 캘리포니아의 습도를 더욱 떨어뜨리는 역할을 했다.
미 환경보호청도 따뜻한 봄, 길어진 여름 건조기, 건조한 초목으로 인해 최근 수십 년 동안 미국 전역에서 산불 발생 기간이 길어지고, 시작 시기도 앞당겨졌다고 진단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8일 기준으로 LA에서는 총 7건의 산불이 발생해 최소 5명이 숨졌고, 여의도 면적(4.5㎢)의 25배 가까운 110㎢가 불에 탄 상태다. 산불은 통제 불능 상태로 계속 번지고 있다.
“150년 만에 가장 건조”…LA 외곽 덮친 ‘전례 없는’ 화재
캘리포니아 강한 바람 경고 …네이처지 “온실가스 배출량 늘면 화재 늘어”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 지역은 산불 등 화재 발생이 잦은 지역이다. 그런데도 6일(현지시각) 발생한 이번 화재는 사흘째 이어지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외곽 북서쪽의 퍼시픽 팰리세이드를 시작으로, 동부 파세데나 북쪽 이튼 지역과 북부 교외인 실마 지역 등 5곳에서 계속 불길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5명이 숨졌고 중상자도 여럿이다. 15만명 이상이 대피 명령을 받았다. 건물은 1000채 넘게 소실됐다. 뉴섬 주지사는 1400명의 소방관에게 화재 진압을 명령했다고 하지만, 하늘은 주황색으로 변했고 150만명이 단전을 겪고 있다. 도로에 버려진 차들로 소방차는 진입에 어려움을 겪는 등 공황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시엔엔(CNN)은 말리부 해변 산간 지역에 늘어선 헐리우드 영화 배우들의 집을 포함한 부촌 일대가 불바다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엔엔이 한국시각 9일 오전 10시까지 집계한 피해 지역 면적을 보면, 펠리세이드 지역(1만5823에이커), 이튼 지역(1만600에이커), 허스트 505에이커, 그리고 8일(현지시각) 새로 불길이 일기 시작한 리디아는 80에이커, 우들리 지역 30에이커로 총 면적은 2만7038에이커 (83.9㎢)로 충청북도 증평군(81.8㎢)보다 더 넓은 지역이 타고 있다.
일부 산악 지역에서는 시속 100마일(161㎞)에 달했다. 동절기 캘리포니아에는 미국 서부 사막 내륙에서 남부로 불어오는 산타아나 바람이 분다. 이로 인해 습도가 더 낮아지기 때문에 불이 더 잘 번질 조건이 된다.
건조한 캘리포니아 날씨에 더해 올해 겨울은 특별히 더 건조했다는 분석이다.
2022년과 2023년 폭우가 내린 이례적인 두 차례의 겨울로 로스앤젤레스 지역에는 불이 붙을 나무와 풀이 생장할 수 있는 조건이 됐다. 그러나 이런 습윤함이 독이 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기후과학전공인 다니엘 스웨인은 자신이 운영하는 누리집 ‘서부 날씨’를 통해 산불 발생 직전인 4일 캘리포니아 남부 지역이 150년 만에 가장 건조했고, 북부 캘리포니아는 이례적으로 습한 극단적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며 이럴 경우 불안정한 기단 조성에 따른 강한 바람이 불어 열흘 안에 화재 발생 가능성이 더 커진다고 우려했다. 국립 로스앤젤레스 기상청도 같은 이유로 산불 위험 경고를 내렸다. 건조한 봄과 겨울철에 산불이 잦은 한국 강원도 동해안 일대에서와 마찬가지로 건조한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은 불길을 잡기가 어려워진다. 소방관의 호수가 닿기 전에 불티가 바람을 타고 수십미터 앞으로 바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기후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캘리포니아 지역의 건조함을 우려해왔다. 습윤했던 최근 2년의 겨울을 제외하면, 캘리포니아는 수십년 동안 가뭄에 시달려왔다. 당시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의 파크 윌리엄스 교수는 가디언에 최소 1200년 만에 가장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고 있고, 이는 기후변화의 영향이라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캘리포니아 지역의 산불이 산업화 시대(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 이전보다 산불이 증가할 가능성이 25%(14~36%) 증가했다고 2023년 8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지가 발표했다. 특히 1970년대 이후의 캘리포니아 화재 지역은 172%나 증가했다. 더욱이 미래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라 달라지는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보면 산불 발생 가능성도 달라졌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미래에서는 산불 발생 예상 빈도도 높아지는 것이다. 실제로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가장 큰 산불 10건이 최근 20년 안에 발생했고, 이 중 5건은 2020년 한 해에만 발생했다고 가디언은 보도했다.
'미 서부 산불' 잦은 이유 살펴봤더니…"기후변화에 라니냐까지 가세"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수년마다 나타나는 대형 산불이 기후변화뿐만 아니라 라니냐 현상의 영향까지 받아 발생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광주과학기술원(GIST) 지구·환경공학부 윤진호 교수팀과 KAIST(카이스트), 전남대, 미국 유타주립대 소속 과학자 등이 구성한 공동 연구진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5~7년 단위로 반복되는 대형 산불의 원인 중 하나가 라니냐 현상이라고 2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환경연구회보’ 온라인 최신호에 실렸다.
라니냐는 적도 무역풍이 세게 불면서 서태평양의 수온은 평년보다 오르고, 동태평양 수온은 낮아지는 기후 현상이다. 라니냐 현상이 발달하면 태평양에서 고기압을 동반한 고온건조한 기후가 형성돼 서쪽으로 이동한다. 이 기후의 최종 도착지가 미국 캘리포니아다. 라니냐의 직격탄을 맞은 캘리포니아에선 겨울에는 비와 눈이 적게 내리고, 여름에는 기온이 오르면서 습도는 낮아진다. 이런 환경에서 식물은 불쏘시개처럼 바짝 마른다. 큰불이 나기에 좋은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캘리포니아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대형 산불의 원인이 점진적으로 심화되는 기후변화뿐만 아니라 라니냐에도 있다는 점을 밝혀낸 것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2000년 이후 캘리포니아에서 대형 산불이 5~7년 단위로 반복되는 패턴이 관찰됐는데, 연구진은 이 주기가 라니냐의 발생 주기와 대체로 유사하다는 점을 규명한 것이다. 예전 같으면 웬만한 라니냐 현상이 나타나도 궤멸적인 피해를 주는 산불이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2000년 이후 심화된 기후변화와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대형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는 뜻이다. 과학계에선 그동안 기후변화와 다른 기후 요소들 간의 복합적인 관계를 살펴보는 연구가 부족했는데, 연구진이 이런 의문을 해결할 돌파구를 찾은 셈이다.
미국 서부 집어삼킨 초대형 산불…과학자들 호주처럼 기후변화 원인 지목
미국 서부가 최악의 대형 산불을 겪고 있다. 미 전국합동화재센터(NIFC)에 따르면 13일 기준 미국 캘리포니아, 오리건, 워싱턴 지역에서 불에 타버린 면적만 1만9125㎢에 달한다. 한국 면적인 10만210㎢의 약 19.1%에 이른다. 약 100여건에 이르는 대형 산불이 개별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사망자도 30여명에 가까워져 간다. 미국 오리건 주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마스크를 끼고 잘 정도로 (화재로) 온 도시가 누렇고 뿌옇게 변했다"며 "근처 시애틀이나 중부로 피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산불과 관련해 시민단체가 아닌 정부 관료들이 먼저 나서 기후변화와의 관계를 인정하고 있다. 13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지난 12일 화재현장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캘리포니아는 존재론적 기후 위기의 한복판에 있다”며 기후변화를 이번 대형산불의 원인으로 꼽았다. 지난해 말 호주 전역을 덮쳤던 호주 산불도 마찬가지다.
석탄 산업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던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조차 당시 화재와 관련해 “우리는 점점 더워지면서도 건조해지는 여름 속에 살고 있다"면서 "이는 분명히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는 것”이라며 산불과 기후변화의 연관성을 인정했다.
산불과 기후를 연구하는 과학자들 모두 의심의 여지없이 기후변화가 화재를 키우는 요인이라고 보고 있다. 서부 지역의 경우 해마다 건기인 8~9월에 자연적으로 산불이 발생한다. 날씨가 점점 건조해지면서 산불의 강도와 규모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마이크 플래니건 캐나다 앨버타대 재생자원학과 교수는 불이 붙는 나무와 식물이 건조해질수록 불이 붙기 쉬우며 더 뜨겁게 탄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구 온난화로) 불이 붙기 쉬운 나무와 식물들이 많아졌다”며 “그와 동시에 더 강렬하게 타기 때문에 산불 진화가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악순환도 계속된다. 강렬하게 솟아오른 불은 근처의 식물과 나무들을 건조하게 만들고, 옮겨 붙기 쉬운 환경을 계속적으로 만들게 된다. 실제 캘리포니아의 경우 역대 최악 산불 1~5위에 올해와 2018년, 2017년 등 최근 3~4년이 포함됐다. 올해가 1위, 2018년이 2위, 2017년 4위다.
호주 사례를 봐도 알 수 있다. 지난해 호주는 가장 뜨겁고 건조한 한 해를 보냈다. 호주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해 평균 기온이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평균과 비교해 섭씨 1.5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앤드류 왓킨스 호주 기상청 장기예보 책임자는 “최악의 화재 배경에는 건조하고 따뜻한 날씨 추세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크리스 필드 미국 스탠퍼드대 우드환경연구소 펠로우는 “산불은 기후변화 영향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호주 정부가 발간한 ‘산불과 기후변화’에 관한 보고서조차 “인간이 유발한 기후변화가 호주 지역을 산불이 더 일어나기 쉬운 조건으로 만들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지구촌 곳곳을 태우는 대형 산불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학술지 '사이언스'가 북위 50~70도 지역에 펼쳐진 침엽수림(타이가)을 태우는 대형 산불을 증가시킨 원인이 기후변화라고 주장하는 논문을 표지 논문으로 실었다. 올 여름 유럽을 강타한 열파(폭염)도 산불을 일으킨 주범으로 꼽힌다. 1979년부터 2015년까지 미국에서 발생한 산림 건조화의 55%가 인간이 유발한 기후변화 때문에 발생했으며, 이 때문에 1984년 이후 한국 면적의 절반 가까이 되는 약 4만 2000km2 면적의 산불이 추가로 발생했다는 연구 결과가 2016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