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회전 미학
베컴의 프리킥이 강력한 회전이 만든 예술작품이라면 호날두의 프리킥은 무회전의 마술이다. 곡선의 부드러움과 예측할 수 없는 직선의 날카로움의 차이다.
과학적으로 봐도 두 구질은 180도 다르다. 공기와 마찰하는 축구공의 회전이 많고 속도가 느릴수록 휘는 효과가 커진다는 ‘마그누스 효과’에 충실한 구질이 베컴으로 대표되는 왕년의 회전 프리킥이다.
호날두는 이 효과를 극단적으로 부정한다. 호날두의 무회전 프리킥은 볼의 가운데를 찍어 회전을 극소화한다.
스위트 스폿(가장 정확하게 킥하는 부위)도 다를 수밖에 없다. 회전을 극대화 한 베컴은 오른발 인프런트(안쪽면)로 볼의 오른쪽을 반시계 방향으로 원을 그리듯 감아 차지만 호날두는 오른발 인스텝(엄지 위쪽 발등)으로 찌르듯 찬다.
정지해 있는 공의 정중앙을 강하게 때려 공의 회전을 최소화하는 킥이다. 회전이 없어 바나나킥 특유의 휘는 맛도 없지만 공이 빠르게 직진하는 동안 공기와 미세한 마찰로 양옆으로 공이 흔들리며 날아가는 게 매력이다.
골키퍼는 곤욕스럽기만 하다. 이렇게 날아간 공은 회전이 없기 때문이 볼이 어느 순간 어디로 튈지 가늠조차 하기 힘들다.
야구 배구 탁구 무회전
회전이 없는 너클볼 하나로 먹고살 수 있는 게 야구 투수의 세계다. 대표적인 선수가 지금은 퇴물이 된 일본의 노모 히데오다.
필 니크로(318승)는 48살까지 뛰며 42번째 생일 이후 85승을 거둔 것도 ‘너클볼’ 투수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너클볼은 포수도 낙하지점을 잡기 힘든 구질이다. 야구의 슬라이더나 축구의 바나나킥은 공의 궤도가 완만한 곡선을 그린다. 반면 너클볼은 회전하지 않고 날아오다 상하 좌우로 흔들리는 것처럼 갑자기 궤도를 수정한다.
유체 속을 회전하지 않고 지나가는 원통형의 물체에는 그 배후 상하에 일정한 간격으로 소용돌이가 생긴다. 1911년 이 법칙을 밝혀낸 헝가리 응용 물리학자 카르만의 이름을 따 카르만의 소용돌이(Karman’s vortex)라고 한다. 경비행기가 일정 속도 이하로 떨어지면 날개가 바람 입자를 잡지 못하고 그 입자들이 부서지면서 추락 상황에 이르는 데 이때도 볼텍스 현상이 작용한다.
소용돌이가 일어나면 그 내부의 압력이 낮아지고 압력차가 생겨 압력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힘이 발생하게 된다. 회전 없이 똑바로 가던 공이 상하로 급격히 움직이면서 변화를 일으키게 되는 원리다.
탁구 역시 무회전이 톡톡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 회전을 없애주는 중국 선수들의 트레이드 마크 ‘이질 러바(안티 스핀)’는 여전히 세계 최강 중국 탁구의 핵을 이룬다. 안티 스핀이나 핌플 인(고무판의 홈을 안으로 만든 것) 고무판을 얘기하는 것으로 회전을 극소화 해 묘한 구질을 만들어낸다.
너클 서브 역시 탁구 선수들의 비밀병기다. 탁구 지존 유승민도 커트 서브를 하는 것처럼 하면서 회전이 없는 무회전 서비를 구사해 상대를 현혹시킨다. 커트 서브는 그냥 받으면 볼이 아래로 가라앉기 때문에 커트로 다시 되받아주는 게 정석인데 회전이 없어 리시브를 한 선수의 볼은 공중으로 붕 떠버릴 수밖에 없다.
배구에도 무회전이 약방의 감초다.
배구에서 서브의 종류는 스파이크 서브, 플로터 서브, 드라이브 서브, 라운드하우스 서브, 러닝 서브, 슬라이드 서브로 크게 6가지. 이 중 스파이크 서브와 플로터 서브가 가장 보편적이고 위력적이다.
공을 띄운 뒤 앞으로 달려가면서 코트 엔드라인 바로 위에 때리는 스파이크 서브는 가속이 붙어 속도와 강도면에서 가장 위력적인 구질이다. 세터 최태웅, 권영민 등이 주로 구사하는 플로터 서브는 손바닥이 90도 꺾인 상태에서 때리기 때문에 야구의 너클볼처럼 무회전으로 날아가다 갑자기 떨어지는 게 특징이다. 각 팀 리베로들이 빠른 스파이크 서브보다 오히려 플로터 서비를 겁내는 건 바로 무회전의 예측 불가능성 때문이다.
골프 무회전
골프계 볼 메이저 업체들의 화두 역시 회전이 아닌 무회전이다. 무회전이 화두가 된 것은 비거리 때문. 골프채로 볼을 치면 볼에는 역회전이 걸린다. 웨지로 칠 경우 분당 1만 회가 넘는 회전이 걸리기도 한다.
이는 드라이버 역시 마찬가지. 역회전이 걸리면 당연히 런(굴러가는 거리) 거리가 짧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골프 볼 전문업체들은 대부분 비거리 용 볼을 투피스(두 겹)로 만든다. 딱딱한 만큼 회전량이 적어져 굴러가는 거리가 늘어나는 것이다. 프로 v1 볼로 유명한 타이틀리스트가 거리에 초점을 맞춘 DT 라인을 내놓았는데 이 역시 투피스로 설계돼 있다.
축구 바나나킥은 공의 좌ㆍ우 공기 흐름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공이 시계방향으로 회전한다고 할 때 공이 날아가는 방향을 기준으로 오른쪽은 공기의 흐름과 공의 회전 방향이 같다. 저항이 덜 생겨 공기의 흐름이 빠르다. 압력도 낮다. 공의 왼쪽은 정반대다. 공기의 흐름과 공의 회전 방향이 거꾸로다. 저항을 많아 받아 압력이 크고, 공기의 이동속도도 오른쪽보다 느리다.
마그누스 효과는 일상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중 하나가 중력을 이겨내고 무거운 비행기를 띄우는 양력이다. 양력을 최대한 발생시키도록 설계된 비행기의 날개는 위ㆍ아래의 생김새가 다르다. 날개 윗부분은 둥글고, 아랫부분은 평평하다. 날개의 윗면을 지나는 공기는 아랫면을 지나는 공기보다 긴 거리를 이동해야 하므로 윗면을 지나는 공기의 속도가 아래쪽보다 빠르다. 그래서 날개 위쪽 압력이 아래보다 낮다. 이러한 압력 차이로, 압력이 큰 날개 아래쪽에서 위로 힘이 작용하면서 비행기가 하늘로 뜨게 되는 것이다.
무회전 킥 만드는 공기 소용돌이
무회전 프리킥 역시 공기가 빚어낸 마법이다. 발등 전체로 공 한가운데를 차는 무회전 프리킥은 공의 회전이 거의 없다. 마그누스 효과가 적용되지 않는다. 그 대신 영향을 미치는 게 카르만 소용돌이 효과다.
회전 없이 빠르게 날아가는 공에 의해 갈라진 공기는 공의 매끄러운 표면을 타고 이동한다. 그러다 흐름이 흩어지면서 공 뒷면 위ㆍ아래에 크고 작은 소용돌이(난류)가 발생한다. 무회전 프리킥에서 발생한 소용돌이 크기가 축구공의 25%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 1911년 헝가리 응용 물리학자 카르만은 원통형 물체가 일정 속도로 공기나 물속에서 움직일 때, 물체 뒤에 소용돌이가 발생한다는 현상을 발견하고 자기 이름을 따 카르만 소용돌이라고 이름 붙였다.
소용돌이 안은 공기압력이 낮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압력이 높은 곳에 있는 축구공을 끌어당긴다. 공 뒤편에서 소용돌이가 위에 생기면 축구공도 위쪽으로, 소용돌이가 아래에서 발생하면 축구공 역시 아래로 움직이면서 공이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소용돌이가 생기는 과정은 불규칙하기 때문에 골키퍼는 물론, 무회전 프리킥을 찬 선수조차 공이 어떻게 움직일지 알 수 없다. 손가락 관절(너클)을 구부려 야구공을 잡은 뒤 회전을 주지 않고 밀어 던지는 너클볼도 카르만 소용돌이가 만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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