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고전문학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 득오(곡), 8구체 향가, 정형시, 추도시, 추모시

Jobs 9 2022. 4. 1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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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

득오(곡)

去隱春皆林米(거은춘개림미)
毛冬居叱哭屋尸以憂音(모동거질곡옥시이우음)
阿冬音乃叱好支賜烏隱(아동음내질호지사오은)
貌史年數就音墮支行齊(모사년수취음타지행제)
目煙廻於尸七史伊衣(목연회어시칠사이의)  
逢烏支惡知作乎下是(봉오지악지작호하시)  
郞也慕理尸心未(낭야모리시심미) 行乎尸道尸(행호시도시)
蓬次叱巷中宿尸夜音有叱下是(봉차질항중숙시야음유질하시)
  
간봄 그리매
모ᄃᆞᆫ것ᅀᅡ 우리 시름
아ᄅᆞᆷ 나토샤온
즈ᅀᅵ 살쯈 디니져
눈 돌칠 ᄉᆞ이예
맛보ᄋᆞᆸ디 지ᅀᅩ리
郞이여 그릴 ᄆᆞᅀᆞᄆᆡ 녀올길
다봊ᄆᆞᅀᆞᆯᄒᆡ 잘밤 이시리

현대어 풀이

간 봄을 그리워함에,  /  모든 것이 울면서 시름하는구나.  /  아름다움을 나타내신  /  얼굴에 주름살이 지려하는구나  /  눈깜짝할 사이에  /  만나보게 되리.  /  낭이여, 그리워하는 마음에 가는 길  /  다복쑥 우거진 구렁(험한 마을)에서 잠을 잘 수 있는 밤도 있으리.

핵심 정리
* 갈래: 8구체 향가. 정형시, 추도시, 추모시
* 운율: 외형률
* 연대: 효소왕(692-702)
* 작가: 득오곡(得烏谷) ['득오'라고도 함]
* 주제: 화랑 죽지랑에 대한 추모의 정
* 내용: 화랑 죽지랑에 대한 사모의 정을 개인 서정을 빌어 노래한 것
* 의의 
  ① 주술성이나 종교적 색채가 전혀 없는 개인의 정회가 깃든 서정 가요이다. 
  ② 낭도의 세계를 보여 준 작품이다. 
* 출전: 삼국유사 권 2, 기이(紀異) 효소왕대(孝昭王代) 죽지랑(竹旨郞)

작자: <得烏(谷): ? ~? >
 신라 진평왕 때의 낭도. 득오곡(得烏谷)이라고도 한다. 뒤에 관리가 되어 급벌찬(級伐飡)의 관등에 올랐다. 진평왕 말기에 화랑 죽지랑(竹旨郎)의 낭도로 있을 때 모량부(牟梁部) 아찬(阿飡) 익선(益宣)에 의하여 부산성(富山城) 창직(倉直)으로 차출되어 나갔다가, 강제로 그의 밭에서 부역하게 되었다. 그때 죽지랑이 낭도를 이끌고 익선을 찾아가 진절(珍節) 사지(舍知)의 기마안구(騎馬鞍具)를 주고 득오를 구해 주었다. 뒷날 득오는 죽지랑을 사모하는 노래인 《모죽지랑가(慕竹旨郎歌)》를 지었다.
 죽지랑(竹旨郞): 신라의 명장. 김유신과 함께 삼국통일의 공을 세움. 신분은 진골. 벼슬이 17관등 중 2등인 이찬에까지 오름. 부친이 돌미륵을 세운 뒤에 태어났다고 하는 비화가 있어 ‘기이’ 편에 수록이 된 듯.

배경 설화
 신라 제 32대 효소왕 때에 죽지랑의 무리 가운데 득오(得烏)라고 하는 급간(級干: 신라 관등의 제9위)이 있었다. 화랑도의 명부에 이름을 올려놓고 매일 출근하더니, 한 열흘 동안 보이지 않았다. 죽지랑이 그의 어미를 불러 아들이 어디에 갔느냐고 물어보았다. 그의 어머니는 “당전(幢典: 오늘날의 부대장에 해당하는 신라 때의 군직) 모량부(牟梁部- 사람 이름)의 익선아간(益宣阿干: 아간은 신라 관등의 제6위)이 내 아들을 부산성(富山城)의 창직(倉直- 곡식창고를 지키는 직책)으로 임명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급히 가느라고 낭께 알리지 못하였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죽지랑은 이 말을 듣고, “그대의 아들이 만일 사사로운 일고 그곳에 갔다면 찾아볼 필요가 없지마는 공사로 갔다니 마땅히 가서 위로하고 대접해야겠오. 죽지랑은 익선의 밭으로 찾아가서 가지고 간 떡과 술을 득오에게 먹인 다음, 익선에게 휴가의 청하였으나 이를 거부하고 허락하지 않았다. 그때 마침 간진이라는 사람이 추화군 (지금의 밀양) 능절(能節)의 조 30석을 거두어 성안으로 싣고 가다가, 죽지랑의 선비를 존대하는 풍도를 아름답게 여기고, 익선의 막히고 변통성이 없는 것을 품위가 없고 천하게 생각하여, 가지고 가던 벼 30석을 익선에게 주면서 득오를 보내도록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또 진절사지(珍節舍知-신라 관직의 제13위)가 쓰는 말안장을 더 주었더니 드디어 허락하였다. 조정의 화주(花主-신라에서 화랑을 관장하는 관직)가 이 이야기를 듣고 익선을 잡아다가 그의 더럽고 추한 마음을 씻어 주고자 하였는데, 도망쳐 버렸으므로 그의 아들을 대신 잡아갔다. 때는 동짓달 몹시 추운 날인데 성안의 못에서 목욕을 시키니 얼어 죽었다. 대왕이 이 말을 듣고 모량리 사람은 모두 벼슬에서 쫓아내게 하였고, 그 지방 사람들에게 심각한 불이익을 주었다.---- 처음에 득오가 죽지랑을 사모하여 노래를 지어 부르니 이것이 모죽지랑가다. 

이해와 감상
득오가 죽지랑이란 화랑을 추모 또는 사모한 노래이다. 죽지랑은 이름난 화랑이며 장군으로, 진덕왕 때 김유신과 함께 국사를 논의하던 술종공의 아들이며 진골 출신이다. 아버지가 미륵상을 세운 뒤 그 공덕으로 태어났다고 하는데, 삼국 통일에 큰 공을 세우고 벼슬이 이찬에까지 올랐으며, 미륵의 화신으로 여겨질 정도로 높이 숭앙된 인물이다. 작자인 득오는 원래 죽지랑의 낭도였다가 익선에게 매여 고난을 겪던 중 죽지랑이 이끌고 온 무리들에 의해 구해졌다는 이야기가 이 노래의 배경 설화에 나타나 있다.
죽지랑에 대한 사모의 정이 시 전체에서 간절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노래는 죽지랑과 고락을 같이하던 지난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시작된다. 특히 '이미 가 버린 돌이킬 수 없는 봄'이란 은유적인 기법을 사용, 청춘 즉 죽지랑과 함께 지낸 시절에 대한 회상과 아쉬움을 강하게 묘사하고 있다. 죽지랑의 죽음에 대한 애도 또한 이 세상 모든 것이 슬퍼한다고 표현함으로써 죽지랑의 인품을 한 차원 높이고 있으며, 고매한 인품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게 한다.
특히, 마지막 7,8행은 10구체 향가의 낙구인 9,10구와 같은 감탄사를 가진 유사성을 보여 주는 동시에, 절묘한 은유적 표현으로 전개되어 있다. '그리워할 마음의 가는 길'이라는 감정의 구상화와 '다북쑥 마을'이 지니는 황촌(荒村)은 곧 작자 득오가 낭을 만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오는 정신적 초토(焦土)나 폐허의 은유적 표현인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작자의 정서적 처절성이 가열하면 해질수록 죽지랑이라는 화랑의 인품과 덕의 높음을 실감 있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죽지랑을 사모하는 간절한 이러한 마음은 당시 의리에 충실하고 의리를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했던 화랑의 정신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존경하는 재상, 나아가 자신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몸소 찾아와 자신을 구해준 사람의 죽음 앞에서 그를 추모하는 마음은 남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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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 배경설화에 대해서
두 가지 이야기로 나뉘고 있다. 전반부는 '죽지랑이 그 낭도를 이끌고 모량부 부산성으로 가서 익선에게 매여 있던 득오를 갖은 어려움 끝에 데려온다는 이야기'이고, 후반부는 '술종공 부부가 임지로 가던 중 죽지령에서 만난 신이한 노인을 어느 날 밤 꿈에서 보고 그 노인의 죽음을 확인하였는데, 그날부터 태기가 있어 아이를 낳고 이름을 죽지랑이라 했으며, 이후 그 아이가 자라 훌륭한 업적을 이룩했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전반부의 내용은 "득오와 죽지랑의 관계를 시사해주는 것으로, 득오가 <모죽지랑가>를 짓게 된 동기와 관련된 것"이다.  후반부의 내용은 "죽지랑의 탄생담으로 신이한 영웅의 출생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해서 보면, 향가는 작자의 문학적 수준 이외에 찬양 대상의 사회적 숭앙의 정도, 또 찬양의 객체와 주체 간의 특별한 관계 등에 의해서도 창작되었으리라고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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