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애(母性愛)는 암컷 생물이 자신의 새끼를 아끼는 마음을 말한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어머니가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며 내리사랑 중 하나이다.
모성애와 진화론
리처드 도킨스는 자신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이건 다 유전자가 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신과 가장 가까운 유전자를 지키려고 하는 유전자의 명령에서 일어나는 힘이라는 것이다. 물론 도킨스는 이것으로 모성애를 평가 절하 하려는 의도는 아니라고 말했다. 애초에 모성애는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이다. 단지 자식을 유전자라 표현했을 뿐 그 의미 자체에는 하등 차이도 없다.
모성애, 본능 아닌 호르몬,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도파민, 옥시토신, 프로락틴
많은 생물이 자기 새끼를 본능적으로 보호하려 하지만, 특히 한배에 새끼를 적게 배고 새끼 때 매우 무력한 포유류의 어미들이 모성애가 강하다. 단, 모성애 자체는 본능이 아니라 호르몬의 영향 때문이라는 것이 연구에서 밝혀졌다. 출산한 여성은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호르몬이 균형을 이뤄야 아기에게 더 애착을 갖고, 자식을 안는다면 도파민이 분비되는 동시에 모성애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호르몬인 옥시토신도 수치가 크게 높아진다. 수유를 한다면 프로락틴이 분비되는데, 이 프로락틴이 모성애를 설명하는 핵심 호르몬이다. 하지만 결국 아기와 엄마와의 애착이 양육 과정에서 구체화된다는 연구가 나왔다.
위에서 언급한 옥시토신의 예로는, 아기 울음소리에 유독 엄마가 많이 예민하다는 것이 있다.
모성애가 없다면 새끼의 생존율이 너무 낮아져 도태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진화한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젖을 생산하기 위해 어미 역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수유 시에는 천적의 공격에도 무방비 상태가 되는 만큼 포유류 자체가 모성애를 전제로 깔고 성립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어미 동물들은 새끼들이 젖을 떼는 시기부터 모성애가 점점 사라지기 시작한다고 한다.
부모 개체 중 한쪽이 양육을 하나, 그중 어미가 아이를 안 돌보는 동물들의 경우 부성애가 역으로 강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둥지를 지어 치어들을 돌보는 가시고기나 소위 말하는 수컷이 마우스브리딩을 하는 일부 물고기들, 혹은 보금자리에 알을 낳고 지키는 수컷 물고기들이 그 예시. 이쪽도 야생에서 이 짓을 하자니 에너지 소모가 엄청나기에 새끼들이 어느 정도 활동할 수 있게 되면 아비들은 너무 지쳐서 명줄이 많이 짧아져 있거나 정말 죽어서 새끼들의 밥이 되기도 한다.
동물에 관한 모성애
모성애는 진화에 의해 포유류에 주어진 생물학적 특성이다. 그러나 이걸로 현실 도덕적 판단의 근원을 삼아서는 안된다. 자연에는 정상과 비정상이 없다. 진화 자체가 보통이 아닌 특성이 자연에 더 적응할 수 있기에 생기는 현상.
쥐가 모성애를 갖는 과정
쥐를 포함한 설치류 암컷들은 짝짓기 경험이 없을 때 새끼를 보면 무서워서 피하거나 물어 죽인다. 그러나 임신한 쥐는 에스트로겐, 프로락틴, 옥시토신 흐르몬의 분비로 인해 새끼 쥐를 핥아주거나 품어준다.
설치류 등의 일부 포유류는 출산 초기에 사람이 새끼를 들여다보거나 만지면 육아 포기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암컷 개미들이 전쟁을 하는 주된 원인은 적군의 알을 훔치면 육아 기간이 단축되기 때문이다.
부상당한 아기 사자를 생존주의 때문에 어미 사자가 잡아먹기도 한다. 천적이 다친 새끼의 피 냄새를 맡고 덩달아 건강한 새끼를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마비키와 조금 흡사하다.
미어캣은 어머니가 동생의 육아를 책임졌던 장녀가 임신할 경우 무리에서 내쫓는다.
모성애가 포유류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오히려 이쪽 방면에서 더 유명한 건 조류다. 게다가 대부분 모성애는 뛰어나지만 부성애는 소수 종들만 가지는 포유류들과는 달리, 조류들은 일반적으로 모성애와 부성애 모두가 잘 발달되어 있다. 대부분의 조류는 일부일처제이며 암수가 공동으로 육아를 한다. 알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새의 이미지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꿩이나 기러기 등 다양한 새들이 알을 품을 때만큼은 위험해도 절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으며 새끼가 부화하면 대부분의 조류들은 암수가 완전히 양육에만 전념한다. 코뿔새나 닭, 두루미, 까치, 까마귀 등이 모성애로 유명하다.
파충류도 일부 종이 모성애를 가지며 새끼를 양육하는데 악어와 킹코브라가 모성애가 두드러지는 편이다. 공룡 중 마이아사우라는 '좋은 어미 도마뱀'이라는 뜻의 속명을 가졌으며 공룡 중에서는 최초로 새끼를 양육하는 습성이 있었음이 화석 자료를 통해 확인되어 모성애가 강하다는 인식이 있다. 그 외에도 오비랍토르, 프시타코사우루스처럼 새끼를 양육한 증거를 남긴 공룡들도 있다.
어류 중에서는 시클리드들에서 모성애뿐만 아니라 부성애도 두드러진다.
심지어 자기 새끼를 잡아먹는 것이 일상인 곤충이나 벌레 중에서도 유독 모성애가 강한 종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거미, 전갈, 바퀴벌레 등이 있는데, 특히 거미나 바퀴벌레는 다산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알집을 정말 지극정성으로 보살핀다.
파브르 곤충기에서 암컷 쇠똥구리가 똥을 가르지 못해 힘들어하는 어린 쇠똥구리를 도와줬다는 결과가 있다.
개들 중에서도 임신해서 새끼를 키워본 경험이 있는 암컷에게 새끼 강아지가 우는 소리를 들려주면 새끼가 어디 있는지 찾곤 한다.
모성애와 부성애
포유류의 새끼는 젖을 먹을 때는 스스로 먹이도 구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무력하다. 따라서 모성애라는 것이 포유류 암컷에게 본능으로 들어있다. 모성애가 강한 포유류의 자식들은 생존율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아래 나오는 얼룩말 줄루의 새끼도 어미와 헤어졌는데 풀을 못 먹고 젖만 먹기 때문에 48시간 안에 엄마와 재회하지 못하면 사망할 것이라고 하였다.
TV에 나온 어떤 수의사의 말에 의하면 개는 강아지에게 젖을 줄 때는 모성애가 상당히 강하지만, 젖을 떼고 나면 모성애가 확 줄어든다고 한다. 이는 포유류에게 옥시토신 수용체가 있어서 생기는 일로 새끼를 껴안거나 젖을 빨면 뇌에 옥시토신이 분비되어 가정적으로 성격이 변한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에서 건기에 아프리카의 초식 동물들이 초원을 찾아 대 이동을 하는 장면을 촬영하여 방영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촬영팀이 관찰하던 얼룩말 떼도 누들과 함께 마라 강(Mara River) 등 여러 강을 건넜다. 여기에 나오는 얼룩말들은 각각 코드네임이 붙여졌는데, 그중 줄루(Zulu) 라는 어미 말과 에코 파이브(Echo Five)라는 젖먹이 얼룩말이 함께 강을 건너다 헤어진다. 강을 건너면서 에코가 하류로 100m가량 떠내려갔기 때문이었다. 줄루는 사라진 에코 파이브를 찾기 위해 원래의 경로에서 이탈해 강 하류로 내려가다 악어 세 마리에게 둘러싸여 거의 잡아먹힐 뻔했지만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여 피를 흘리며 간신히 살아서 하류로 도착하였지만 아무리 찾아도 새끼가 보이지 않았다. 사실 줄루가 있는 곳은 에코가 떠내려간 곳과 반대의 지점이었다. 그러나 그걸 모르는 줄루는 악어가 있는 강으로 다시 뛰어들어가 원래 있던 강변으로 돌아가 에코를 찾아보았다. 아마 인간의 엄마라도 자식을 찾기 위해 방금 전 육식동물에게 습격 당한 강을 다시 건너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후 줄루는 새끼를 찾기 위한 희생으로 입은 부상에 의해 사망하고 아직 어린 에코도 무리의 낙오로 인해 사망하고 만다. 모성애도 본능과 학습, 둘 다에 영향을 받는다.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해줬으면 자신의 자식에 대한 모성애도 더 강해지고, 어머니에게 사랑을 못 받았으면 모성애도 약해진다.
부성애는 포유류 종에 따라 다르다. 수컷이 새끼 양육에 참여하지 않는 종은 당연히 부성애도 없으며 수컷이 양육에 많이 참여하는 종일 수록 부성애도 크다. 왜냐하면 부성애도 모성애처럼 진화에 의해 각 생물 종에게 주어진 생물학적인 특성이기 때문이다. 부성애는 개체별 차이도 굉장히 크다. 인간만 해도 훌륭한 아버지가 있는 반면, 개막장 아버지들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이는 엄마도 마찬가지다. 다만 어미의 경우 수유 시 옥시토신 분비로 자연적으로 모성애를 느낄 환경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부성애는 유전적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예를 들어 다약과일박쥐의 경우 수컷에게 젖이 나와 새끼들에게 직접 부유수유를 하며 부성애가 매우 강해서 새끼를 품어 키우는 동안 암컷들이 접근도 못하게 하는 반면에 오랑우탄의 경우 수컷은 교미만 하고 육아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고 떠나버린다.
비판론
흔히 모성 미신(myth of motherhood)이라고도 불린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자식에 대한 동물의 본능적 애정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는 것. 부성애와 달리 모성애만 유독 신성시되고 우상화되는 현상, 즉 어머니에게 이상적인 부모상을 요구하는 것은 기형적이라는 게 모성애 비판론의 요지이다. 특히 페미니스트들이 주로 이런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다.
이 주장은 사람이 자신의 혈육으로서 태어난 자식에 대한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남자든 여자든 아이가 있다면 자신들의 자식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다만 부성애보다 모성애가 절대적인 것으로 찬양되면서, 이 감정을 여성에게 훨씬 더 강요하고 있는 사회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남성이 보편적인 어머니에 대해 떠올리는 이미지를 생각해 본다면. 자신이 그 '보편적인' 어머니처럼 절대적으로 자식에 대해 사랑을 베풀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아버지가 많은가? 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모성애는 인공적 산물인가?
20세기 초반의 프랑스의 시몬 드 보부아르는 모성애는 여성을 노예로 만들거나 세뇌시키는 수단이라고 저술했다. 보부아르는 자신의 책 '제2의 성'에서 "모성은 여성을 노예로 만드는 가장 세련된 방법이다. 아이를 낳는 것이 여성 본연의 임무로 여겨지는 한, 여성은 정치나 기술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못한다. 그리고 여자의 우월성에 대해 남자들과 논쟁을 벌일 생각조차 못 한다"라고 적은 바 있다.
프랑스의 엘리자베트 바댕테르는 17~20세기 중근세의 프랑스 사회사를 통해 여성들의 모성적 행동의 경향, 그리고 신학 및 성경에 나타난 여성의 열악한 지위, 아이들에 관한 철학적 담론들, 옛 문헌과 문학 작품, 통계 등을 분석했다. 이러한 통계들에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태도와 무관심의 증거들, 아이들의 경제적 가치가 중시되면서 시작된 사회적 모성애 강요의 사례들, 사랑의 표시로 부각되는 모유 수유의 예 등이 나타나며 바댕테르는 '모성애'라는 개념이 만들어진 것이라는 자신만의 결론을 내렸다. 기사 더 나아가 모성애라는 개념이 의미를 갖게 된 것은 18세기 말에 들어서야 생긴 매우 '근대적' 사건이라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18세기 말까지만 해도 일반적으로 자식에 대해 무관심이 만연했지만, 19세기 들면서 중상주의 정책으로 노동력이 중요하게 되자 국가는 모성애를 '창시'했다는 것이다.
모성애가 근대에 만들어진 인공물이라는 주장은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은 근대 이전의 각종 사료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고, 자식의 좋은 교육 환경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했던 맹자의 어머니는 오래도록 회자되고 있다. 맹자의 어머니가 정말로 그랬는지에 대한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최소 수백 년간 저런 일화가 전해져 내려왔다는 부분에 주목하자는 뜻이다. 그리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부모의 사랑에 대한 고전 이야기가 정말 많이 존재한다.
근대 이전부터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로 여겨져 왔다. 즉, 근대에 체계적인 행정과 공교육 등에 의해 모성애와 부성애가 더 정교하게 가공되었다는 관점이라면 몰라도 아예 '근대 이후로 새롭게 창조된' 관점이라는 주장은 다름 아닌 역사가 부정한다. 모성애든 부성애든 애초에 동물에게서도 명확하게 확인되는 생물적 본능이며, 간혹 자식을 방치하거나 해치는 사례를 들어 그걸 본능이 아니라 세뇌당한 것이라 주장한다면 마찬가지로 자살자들을 근거로 '생존은 생물의 본능이 아니다'라는 침소봉대 역시 가능하다. 심지어 한국은 십수 년째 OECD 자살률 1위이니,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삶의 의지가 없는 민족'이라는 논리도 가능하다. 이런 주장에 대체 누가 동의하겠는가?
애초에 근대에 와서 국가가 노동 인구를 확보하기 위해 모성애를 강요하였다는 주장은 전제부터 틀린 것인데, 인간 개개인의 노동력은 오히려 기계나 자동화가 드물었던 고대~근세 사회에 훨씬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인구가 곧 생산력의 우위로 이어지는 고대~근세 시기에는 최대한 인구를 증가시키기 위해 많은 국가가 노력했고, 그것을 위한 많은 정책들이 기록과 사료로 남아있다. 예를 들어 한나라의 고조 유방은 기원전 200년경 한 가정에 신생아 하나가 탄생하면 모든 세금을 면제해 준다는 조칙을 반포한 적이 있다. 아예 영토나 자원 대신 인력 확보를 목적으로 전쟁하는 경우도 있었다. 오히려 현대에 들어서 세계 각국이 인구를 억제하려는 산아 제한 정책까지 시행했던 것을 생각하면 명백한 부분이다.
모성애를 사회, 국가가 인위적으로 사람들에게 세뇌시켰다는 주장은 쭉 거슬러 올라가면 프랑스의 필리프 아리에스가 저술한 '유년기의 시대'(Centuries of Childhood)라는 책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아리에스는 여기서 중세에는 아동이라는 개념이 없었고 '불완전한 어른'만이 존재했으며 또한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대부분 애정이 없었으며 굶든 죽든 무관심하게 방치했다고 주장했다. 이게 다시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에게 흘러가 "이거 봐라! 중세에는 엄마가 아이를 사랑하지 않았다! 근대에 와서 국가가 일괄 교육으로 여성을 세뇌시킨 것이다!"라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그런데 아리에스의 책과 그것을 인용한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은 위에서 서술 되었듯 이미 중세 시대의 문헌을 통해 완벽하게 반박되었다. 예를 들어 유명한 중세 기사도 서사시인 파르지팔에서도 어린 파르지팔이 빛나는 갑옷을 입은 자들이 말 타고 달리는 것을 구경하고 "나도 저들과 같이 되고 싶다"고 하자, 파르지팔의 어머니는 귀여운 어린 아들이 자신의 곁을 떠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어서' 일부러 기사에 대한 정보를 차단하며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나온다. 고대의 서사시 일라아스에서도 여신들이 트로이 전쟁에 참여하게 된 자기 아들을 위해서 제우스에게 몰래 로비를 하거나 일기토에서 패해 죽게 된 아들을 구름으로 감싸 빼돌리는 등의 모성애가 발휘되는 일이 많다.
여성은 진화하지 않았다
열정적이고 능동적인 수컷과 수줍고 수동적인 암컷.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이 주장한 이래 지금까지도 유통되는 암·수의 성적 본성에 대한 도식이다. 미국의 사회생물학자이자 영장류 학자인 사라 블래퍼 홀디가 쓴 이 책은 이런 고정관념에 까칠한 종주먹을 날린다.
‘수줍은 암컷’ 관념은 발정기만 되면 어쩔 줄 몰라하는 원숭이 암컷의 방랑벽을 설명하지 못한다. 인류와 98%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는 침팬지 암컷은 여러 마리의 수컷 파트너를 유혹한다. 수십마리 수컷과 수천번의 교미를 할 만큼 색정적이다. 유인원 암컷들은 임신에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은 수컷들과 짝짓기를 하려고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한다.
완력이 센 수컷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진화의 길에서 완력이 약한 암컷이 사용했던 강력한 무기는 ‘누가 아비이냐’를 모호하게 하는 것. 곧, 친부에 대한 불확실성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아무때나 섹스가 가능한 성적 수용력, 배란 은폐, 적극적 섹스 따위다. 영장류 암컷은 이런 점에서 역동적 전략가다.
인간 여성이 영장류 암컷으로부터 진화해왔다고 믿는 지은이는 ‘역동적 전략가’ 암컷이 인류의 발전과정에서 어떻게 왜곡되고 은폐되었는지를 뜯어 보여준다. 모든 영장류 가운데 가장 지위가 열악한 것은 인간 암컷, 곧 여성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여아살해, 음순봉합, 아내의 남편 따라죽기 따위는 ‘부계 거주 패턴’ 등이 빚은 인류 문명만의 소산이었다. 성적으로 수줍고 경쟁을 싫어하고 오로지 자녀 양육에 몰두하는 여성은 결코 영장류 암컷으로부터 진화돼 나올 수 없었다는 주장이다.
1980년대에 씌어진 이 책은 진화생물학에 ‘암컷의 시각’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동료 생물학자들의 공격을 받았다. 정작 본인은 생물학자의 입장에서 페미니즘과의 대화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당시 진화생물학과 페미니즘의 통합을 가져온’ 최초의 책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모성애는 여성의 본능일까
‘모성애’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본능적인 사랑’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나 출산을 하고 아이를 처음 마주했을 때 사실 모성애보다는, 새로운 상황과 새로운 생명체를 마주했을 때의 긴장감과 설렘이 컸던 것 같습니다. 당시 주변으로부터 이제 엄마니까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 즉 모성애가 느껴지느냐는 질문을 실제 받았는데, 대답을 만족스럽게 하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모성애라는 마음은 과연 무엇일까요? 모성애라는 행동이 왜 일어날까요? 동물생태학자들은 동물의 행동을 바탕으로 모성애를 연구해 왔고, 뇌과학자들은 호르몬과 신체의 변화를 통해 모성애의 실체를 파악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북극곰은 한겨울 굴속에서 새끼를 낳습니다. 어미는 새끼를 낳고 이듬해 봄까지 굴 밖으로 한발짝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미는 음식도 못 먹은 채 젖을 먹이며 새끼를 키워낸다고 합니다. 이듬해 봄이 되면 어미 북극곰은 몸이 비쩍 마른 상태로 굴 밖으로 나옵니다. 배고픈 북극곰 어미는 굴에서 나오자마자 새끼의 배설물을 먹습니다. 다른 포식자들이 새끼 북극곰의 배설물 냄새를 맡고 잡아먹으러 오는 걸 막기 위해서입니다. 동물들이 새끼를 지키려는 행동연구는 인간인 여성에게도 모성행동이 생물학적으로 내재해 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곤 합니다.
동물의 본능적 모성 행동
뇌과학자들은 엄마의 호르몬 변화를 근거로 모성이 본능이라는 주장을 내놓습니다. 출산 전후 도파민과 옥시토신 호르몬에 변화가 생기고, 이것이 새끼에게 사랑을 주는 모성애의 실체로 거론됩니다. 도파민은 기분이 좋아지도록 만드는 ‘쾌락 호르몬’으로 체내 도파민 수치가 높아지면 행복감을 느끼게 됩니다. 자식을 바라보거나 자식을 안아줄 때도 체내 도파민 분비량이 증가합니다. 자식을 사랑할 때 느끼는 감정의 생화학적 실체인 셈입니다. 예를 들어 어미 쥐는 출산 뒤 뇌의 도파민 수치가 높아집니다. 사람의 경우에도 아기의 웃는 얼굴을 보면 엄마의 뇌에서 도파민 수치가 높아진다고 합니다.
옥시토신 호르몬은 자궁수축 호르몬으로 출산 시 자궁을 수축시켜 아이가 엄마의 몸 밖으로 나오도록 하는 필수 호르몬입니다. 출산 후에는 뇌하수체 전엽에서 모유 분비를 촉진하는 작용을 합니다. 옥시토신은 모유 수유를 하거나 배우자와의 신체적 접촉 시 분비량이 늘어납니다. 옥시토신이 분비되면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끼는데 아이와 함께 있을 때 행복감을 느끼는 이유로 옥시토신이 자주 언급됩니다. 또한 옥시토신은 감정을 관할하는 뇌 부위의 활동이 줄어들어 겁이나 불안, 두려움이 없어진다고 합니다. 엄마들이 아이를 키우는 다양한 활동 속에서 과감한 결정과 실행, 겁 없는 행동을 할 수 있는 이유로 옥시토신이 거론되기도 합니다.
반대로 모성은 본능이 아니라 사회화의 결과물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바댕테르는 책 <만들어진 모성>에서 모성애라는 개념이 18세기 말에 들어서 생긴 매우 근대적인 개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18세기 프랑스는 갓 태어난 아기를 부모에게서 멀리 떨어진 유모에게 위탁해 4~5년간 키우는 게 관행이었습니다. 모성애가 엄마의 본능이기만 하다면 어떻게 가능했을까 싶어집니다.
18세기 말이 되어 아이를 경제적 가치, 즉 노동력으로 인식하는 개념이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아이가 어린 나이에 사망하지 않고 건실한 노동자로 자라도록 하기 위해 엄마의 역할이 필요해졌고, 모성애라는 이데올로기가 등장했다고 주장합니다. 루소가 <에밀>이라는 책을 낸 것도 이즈음인데, 엄마의 자식교육이 사회적으로 더욱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화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모성애가 생물학적인 본능이라는 점도,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라는 점도 모두 저마다의 근거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기서 더욱 중요한 것은 모성애라는 개념이 사회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성애는 한 사회 내의 젠더의식과 맞물려 그 의미가 과도하게 해석되고, 결과적으로 엄마들을 옥죄는 도구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모성애는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개념
한국사회에서는 쉽게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고 규정지어집니다. 이는 모성애가 여성의 본능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모성애를 갖고 있는 여성이 엄마로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다양하다는 인식인데, 사회활동과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들은 이렇게 과도하게 해석된 모성애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를 키우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여성의 경우, 모성애도 없냐는 식의 비난을 받는 구실이 되기도 합니다. 저도 워킹맘으로 일을 하고 있을 때 “엄마 없이 자란 아이는 티가 난다”든지,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사람들을 보며 무력감을 느낀 경우가 많습니다.
모성애와 함께 자주 언급되는 ‘3세 신화’의 경우에도 한국에 도입되면서 왜곡됐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3세 신화는 아이가 세 살이 될 때까지는 보육시설에 맡기지 말고 엄마가 직접 돌보는 게 좋다는 개념입니다. 이 신화가 한국에 도입된 것은 1951년 영국 정신의학자 존 볼비가 발표한 논문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볼비는 보육원 등에 맡겨진 유아들의 심신발달이 늦은 이유를 분석한 세계보건기구(WHO) 위탁 연구 보고서에서 “모성적인 양육결핍이 원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개념이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도입되면서 아이가 세 살까지는 엄마가 집에 있어야 한다는 ‘3세 신화’로 굳어졌습니다. 아이가 가족이나 보육대상과 안정적으로 애착을 형성해야 한다는 뜻의 연구가 한국에 들어와서 엄마는 아이가 세 살이 되기 전까진 회사에 다니지 말고, 아이와 함께해야 한다는 쪽으로 왜곡된 셈입니다. 오히려 다양한 연구에서 엄마가 일하는 상황이 아이의 학습능력과 문제행동간 관련성이 없다는 증거를 내놓고 있습니다.
엄마들은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강요한 모성애의 틀로 자신을 바라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모성애 코르셋’은 엄마에게는 엄마됨의 어려움이나, 고통, 불행, 자괴감과 후회는 드러내서는 안 되는 감정으로 치부해버리는 단점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면 “모성애가 있는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강하다는데, 엄마가 왜 그래”라는 비난을 듣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성애라는 개념이 한국사회에서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하나하나 따져보다 보면, 엄마로서 한국사회에서 다양한 ‘부조리극’을 겪으면서도 엄마라는 역할을 해내야 하는 이 상황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만들어진 ‘모성 본능 신화’를 허물다
남성편향 ‘진화론’에 여성 새긴 저자
여성에 돌봄 전가 ‘정치적 함의’ 추출
“야망과 성욕은 모성과 충돌 않아”
어머니의 탄생, 세라 블래퍼 허디
<어머니의 탄생>은 미국의 인류학자 겸 진화생물학자 세라 블래퍼 허디(64·캘리포니아대 인류학과 명예교수)가 1999년에 내놓은 저작이다.
20대에 영장류 사회생물학에 발을 디딘 허디는 1977년 박사논문을 책으로 묶은 <아부의 랑구르-암컷과 수컷의 번식 전략>을 발표했는데, 이 책은 암컷의 관점을 다윈주의에 ‘추가’하여 진화론을 양성 모두로 확장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남자들만 그득하던 생물학계에 나 홀로 여성으로 진입하여 진화생물학의 남성 편향적 시각을 허물고 그 ‘반쪽’ 학문에 ‘누락돼 있던’ 여성의 시각을 새겨넣은 허디는 그 자신을 다윈주의 여성주의자로 자리매김한다.
다윈주의의 비조 찰스 다윈(1809~1882)은 ‘성 선택’ 이론에 자신이 살았던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남성들의 가부장제적 관점과 도덕론자들의 희망사항을 여과 없이 포함시켰는데, 곧 ‘수줍은 암컷’론이다.
허디가 1981년에 낸 책 <여성은 진화하지 않았다>는 자연계의 암컷 영장류들이 ‘능동적인 전략가’로서 경쟁적이며 성적으로 독단적이기까지 하다는 것을 입증하여 다윈주의의 ‘수줍은 암컷’론을 이론적으로 폐기시켰다.
<어머니의 탄생>은 그 문제의식의 연장선에 있다. 여성 역시 (남성과 마찬가지로) 성적 욕망과 이해관계에 밝은 ‘능동적인 전략가’라는 관점을 통해서 그가 깨뜨리려고 하는 것은 다윈 이래 남성 중심 사회에서 축조되어온 모성 신화다. 곧 어머니는 자기희생적이며 자식들에게 전적으로 헌신적이라는 관점 아래 자녀 양육의 책임을 오롯이 여성에게 전가하는 ‘모종의 정치적 함의’를 지닌 이 믿음이 인류사적으로 사실이 아니며, 인류 진화의 길에 선행했던 영장류들에게도 사실이 아님을 드러낸다.
<어머니의 탄생>은 허디가 15년 동안 미국 등의 현대 도시 사회, 남미·아프리카의 부족 등 다양한 문화권의 인류집단과 함께, 영장류·포유류 등 ‘동물 사회’를 분석하여 모성 담론을 해체하고 1000여쪽 방대한 사례들로 재구성한 책이다.
‘자기희생적인 모성’이라는 신화는 여성의 그 나머지 부분 곧, 일에 대한 야망이나 성욕이 모성과는 상반된다는 관념을 퍼뜨려 왔는데, 이 관념은 인류사 속에서 대다수로 존재해온 ‘일하는 어머니’를 투명인간들로 만들고 있다. ‘성적으로 수동적인 정숙한 여성, 자기희생적인 모성’이라는 다윈의 ‘수줍은 암컷’론은 지금도 통용되고 있는 셈이다.
수십년을 인류학자로서 현장을 누빈 허디는 ‘동물 사회’를 들여다봄으로써 자연세계에서 ‘자기희생적인 어미’는 ‘아비’가 일차 애착을 형성하여 육아를 전담하는 티티원숭이 사례 등에서 보듯 특수한 경우일 뿐이라고 말한다.
‘일하는 어머니’는 인류 여정에서 현대에 나타난 새로운 존재가 전혀 아니며, 인류 이전에도 영장류 어미들은 이런 이중 임무 어미로 살아왔다고 말한다. 현실의 어머니들은 긴 인류사 속에서 언제나 생계(일·야망)와 양육(번식·모성)을 수행해왔으며, 또한 인류는 양육을 줄곧 여성노동만이 아니라 남성노동, 가족노동 등 ‘협동 노동’을 통해 책임져 왔다고 말한다. 달리 말하면 인간은 본디 협동해서 ‘번식’하는 종이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허디는 ‘최근’ 들어 아이를 양육하는 공간(집)과 야망을 실현하는 공간(일터)이 분리됨으로써 양육과 일 사이에 더 큰 긴장이 만들어진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여성을 억누르는 더 커진 긴장은 역설적으로 근대의 산물인 셈이다.
이 긴장을 더 증폭시킨 것은 진화 심리학자 존 볼비가 1969~80년에 걸쳐 내놓은 ‘애착이론’인데, 오늘도 위력을 떨치는 이 이론은 인간 아기가 일차적 애착을 형성한 존재는 어머니이므로 아기 보살핌은 어머니만이 할 수 있다는 담론이다. 허디는 이 애착이론을 강하게 반박한다. 아기를 돌보는 보살핌 행위 자체가 그 결과, 곧 애착을 불러온다고 허디는 말한다. 어머니가 갓난아기의 요구에 (아버지보다) 조금 빨리 반응한다는 사실만으로는 아버지가 적절한 ‘돌봄인’이 될 수 없다고 말할 수 없으며, 돌봄의 ‘본능’이 인간 남성을 포함한 영장류 수컷의 마음속에 잠복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아버지와 자식의 애착 등 여러 사례로 보여준다.
출산 여성들은 ‘애착이론’의 포화 속에서 직장으로 돌아갈지, 집에서 아이의 애착에 호응할지 양자택일 기로에 서는데, 허디가 취하는 관점은 ‘야망이 모성과 충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을 하며 야망을 품는 여성이 ‘좋은 어머니’가 되는 데 본질적이라고 그는 말한다.
하디의 모성신화 허물기는 기본적으로 그 방법론인 진화생물학의 자장 안에 있다. 인류학 연구자인 옮긴이가 썼듯이 “여성을 가두는 특정한 모성 개념을 전복했지만, 여전히 여성을 어머니로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여성주의 문제의식을 충족시키진 않는다. 그렇기에 더욱, 인간과 영장류·포유류를 같은 맥락에 놓고 접근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론자들이나 여성주의 옹호자들에겐 이 방대한 책이 필독서가 될 것 같다.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
장기적 인간 관계의 근본 원인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이 이론의 핵심 주장은 영아가 정상적인 감정, 사회적 발달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 이상의 주 보호자(primary caregiver)와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애착 이론은 심리학, 진화학, 동물학을 아우르는 학제간 연구를 바탕으로 한다.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생겨난 부랑아와 고아들이 많은 사회적 관계에 어려움을 겪자 UN에서는 심리분석가이자 심리치료사인 존 보울비(John Bowlby)에게 이 문제에 관한 문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보울비는 애착 이론의 토대가 되는 이론을 만들었고, 이 이론은 매리 애인스워스(Mary Ainsworth)나 제임스 로버트슨(James Robertson)의 자료와 연구에 의해 발전되었다.
아기들은 자신에게 민감하고 반응을 지속적으로 잘 해주는 성인과 6달에서 2년 사이의 몇 달의 기간동안 애착관계를 형성한다. 기어다니거나 걸어다니기 시작할 무렵부터 아기는 친숙한 애착대상을 하나의 안전기지로 이용하기 시작하는데, 이 안전기지를 토대로 주변을 탐험했다가 돌아오는 과정을 반복한다. 부모의 반응이 이 시기 애착의 형태를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치고, 이 애착 형태는 아기의 지각, 감정 및 향후 관계에 대한 생각과 기대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애착이론에서 애착대상과 멀어지는데 따른 분리불안은 애착관계가 형성된 아기의 적응을 위한 정상 반응으로 여겨진다. 진화학자들은 이런 행동이 아이의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진화과정에서 생겨난 것으로 추측한다.
애착관계와 관련된 아이는 보통 애착대상을 근처에 두려는 모습을 보인다. 생애 초기에 애착 형성에 관한 이론을 만들기 위해 존 보울비는 진화생물학, 대상 관계 이론 (심리분석학의 한 갈래), 제어 시스템 이론, 동물학, 인지심리학 등의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융합하였다. 1958년에 짧은 논문을 발표한 뒤, 1969년과 1982년에 걸쳐 보울비는 3권의 『애착과 상실(Attachment and Loss)』이라는 책을 통하여 자신의 애착이론 연구를 펴낸다.
발달심리학자인 매리 애인스워스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애착이론의 기본 개념을 강화하며 "안전 기지"라는 개념을 소개하며 아기에게 나타나는 여러 가지 애착 패턴에 대한 이론을 만들었다. 애인스워스가 분류한 세 가지 애착 패턴에는 안정 애착(secure attachment), 불안정-회피(insecure-avoidant) 애착, 불안정-양가(또는 불안정-저항, insecure-ambivalent) 애착이 있다. 네 번째 패턴인 혼돈(또는 비조직화, disorganized) 애착은 나중에 발견되었다.
1980년대에 이 이론은 어른간의 애착 관계로까지 확장되었다. 이런 연구들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뿐 아니라 친구 관계, 애정 관계, 성적 매력 등 다른 사회 관계들 역시 애착 행동의 요소들로 설명할 수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이론의 성립 초기에 심리학자들은 보울비를 비판하며 그가 심리분석학의 핵심에서 벗어났다며 배척했다. 하지만 그 뒤로 애착이론은 "초기의 사회적 발달을 이해하는 우세한 접근 방식이 되었고, 아이들의 관계 형성에 대한 경험적 연구가 활발히 일어나도록 만들었다." 이후에 '기질', 사회적 관계의 복잡성, 애착 패턴 분류의 한계와 관련해 애착 이론에 대한 비판이 일기도 했다. 애착 이론의 세부적인 부분은 경험적 연구를 통해 많은 수정이 이뤄졌으나, 그 핵심에 대해서는 학계의 인정을 받고 있다. 애착 이론은 새로운 심리 치료를 만들어냈고, 기존에 존재하던 심리 치료 방식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애착 이론의 개념들은 사회 정책과 보육 정책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애착
애착 이론에서 애착(attachment)이란 개인과 애착 대상(attachment figure, 보통은 양육자) 간에 존재하는 애정적 유대(affectional bond 혹은 affectional tie)를 의미한다. 이러한 유대는 두 성인 간에 상호적으로 작용하는 것이지만, 아이와 양육자 간에서 이 유대는 영유아기 아이의 안정에 대한 욕구, 안전과 보호, 최고권위자에 기초한다. 이 이론은 생존과 궁극적으로는 유전자 복제(genetic replication)을 위하여 아이들이 양육자에게 본능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생물학적 목표는 생존이고, 심리학적 목표는 안정이다. 애착 이론은 인간관계에 대한 전적인 설명도 아니고 사랑과 애정과 동일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애착 이론에서는 유대란 것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아이-어른 관계에서 아이의 유대는 ‘애착’이라 하고 양육자의 상호 유대는 ‘양육 유대(care-giving bond)’로 불린다.
영아는 자신과의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인지하고 반응하는 지속적인 양육자라면 누구든 애착을 형성한다. 사회적 참여의 질은 들인 시간의 양보다도 더 영향력이 있다. 생물학적 엄마는 보통 애착 대상의 중심인물이지만, 일정 기간 동안 돌봄(mothering)의 방식으로 행동하는 사람도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애착 이론에서, 이는 곧 영아와 생생한 사회적 상호작용과 신호와 접근에 대한 꾸준한 반응과 연관되어 있는 일련의 행동을 의미한다. 아빠들이 아이 양육과 사회적 상호작용의 대부분을 제공한다 해도 엄마와 같이 주요 애착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이론에서는 주장하지 않는다.
일부 영아들은 양육자들 간에 차별을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하나 이상의 애착 대상에게 애착 행동(attachment behaviour)(접근 대상 탐색 proximity seeking)을 보인다. 대부분 2살에 이러한 행동을 보인다. 애착 대상들 사이에도 위계가 형성되며 주요 애착 대상은 상위에 놓이게 된다. 애착 행동 체계의 목적은 접근 가능한 애착 대상과의 유대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경보(alarm)’는 위험에 대한 두려움으로 생기는 애착 행동 체계 활성화에 사용되는 용어이다. ‘불안(anxiety)’은 애착 대상으로부터 단절될 것이라는 예상 혹은 그에 대한 두려움이다. 애착 대상이 접근할 수 없거나 반응하지 않는다면, 분리 불안(separation distress)이 발생한다. 영아에게 물리적 분리는 불안과 분노, 그리고 이후에 수반되는 슬픔과 절망을 일으킬 수 있다. 만 3-4살 때, 물리적 불안은 애착 대상과의 유대에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다. 어린이와 성인에게 안전에 대한 위협은 오랜 시간 동안의 결핍, 소통 장애, 정서적 무가용성(emotional unavailibility), 거부 혹은 유기(abandonment)의 신호에서 일어난다.
행동
애착 행동 체계(attachment behavioural system)는 애착 대상에 접근하거나 친밀함을 유지하는데 작동한다.
전기 애착 행동(pre-attachment behaviours)은 생후 6개월 안에 일어난다. 첫 단계(생후 8주)에서 영아들은 미소 짓고 옹알이를 하거나 울어서 잠재적인 양육자의 주의를 끈다. 이 시기 영아들은 양육자들 간에 차등을 두는 것을 알아가지만, 이런 행동들은 주변의 다른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두번째 단계(생후 2-6개월)에서 영아는 친숙한 어른과 친숙하지 않은 어른들로 차등을 두고, 양육자에게 더욱 반응을 보이며, 행동의 범위에 따라 의존하거나 매달리기도 한다. 양육자에 대한 영아의 행동은 목적 지향적인 기반에서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조건들을 달성하기 위하여 조직된다.
생후 1년말, 영아들은 친밀함을 유지하도록 하는 단계의 애착 행동을 보인다. 이는 양육자와 떨어져 있는 것에 저항하거나 양육자가 돌아오면 기쁘게 반응한다거나, 공포를 느끼면 양육자에게 달라붙는다거나, 할 수 있는 일인데도 양육자의 방식을 따르게 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걸음마를 떼기 시작하면서 영아들은 세상을 탐험하는 출발점으로서 ‘안전 기지(safe base)’로서 양육자를 이용한다. 영아의 탐험 정도는 양육자가 옆에 있을 때 더욱 활발해지는데, 이는 영아의 애착 체계가 이완되면서 거리낌 없이 탐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양육자에게 접근하지 못하거나 양육자가 반응하지 않는 경우, 애착 행동은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불안, 공포, 질병, 피로로 인하여 아이의 애착 행동 횟수는 늘어나게 된다.
생후 2년 이후, 아이가 양육자를 독립된 인간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더욱 복잡하고 목적 지향적인 관계가 형성된다. 아이들은 타인의 목적과 감정을 알아차리고 이에 다라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갓 태어난 아기들은 아파서 울지만, 2살짜리 아기들은 양육자를 부르기 위하여 우는데, 만약 이게 효과가 없을 경우 아이들은 더 크게 울거나 소리치거나 의존하게 된다.
원리
현대 애착 이론은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로서의 유대(bonding)를 함의한 세 원칙에 기반하고 있다. 정서 조절, 생존력을 향상에 대한 공포, 적응과 성장의 상승이다. 일반적인 애착 행동과 정서는 인간을 포함한 사회성을 지닌 영장류 대부분에서 나타나며 조정할 수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영장류는 진화해 오면서, 개인 혹은 집단의 생존에 유리한 사회적 행동들을 선택해 왔다. 걸음마를 할 때의 영아들에게서 일반적으로 관찰되는 애착 행동인 친숙한 사람들 곁에 머무르려고 하는 행동은 초기 적응 환경 속에서 안전 이득(safety advantage)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유사한 이점을 가지고 있다. 보울비는 초기 적응 환경이 오늘날 수렵채집인(hunter-gatherer) 사회와 유사하다고 보았다. 생소함(unfamiliarity), 혼자 되기, 빨리 친해지는 것(rapid approach)과 같은 위험할 수 있는 조건을 자각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 생존 이득(survival advantage)이 있다. 보울비에 의하면, 위협에 직면하였을 때 애착 대상에 대한 접근 대상 탐색(proximity seeking)은 애착 행동 체계의 '목표 설정(set-goal)'이다.
애착이 형성되는 생후 6개월에서 2,3년 사이의 민감기(sensitive period)라는 보울비의 주장은 이후의 연구자들에 의해 수정되었다. 연구자들은 애착이 형성되는 민감기가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당초 주장되었던 것보다는 기간이 더 넓고, 당초 주장에 비하였을 때 민감기에 형성된 애착의 효과가 그만큼 고정적이지도 되돌릴 수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연구가 진전됨에 따라, 애착 이론을 연구하는 이들은 생애 초기 관계뿐 아니라 이후의 관계를 통해서도 사회성 발달(social development)이 이뤄질 수 있다고 보았다. 애착의 초기 단계는 영아의 양육자가 한 명일 경우 혹은 소수의 다른 사람들이 이따금 돌봐주는 것을 통하여 가장 쉽게 진전된다. 보울비에 따르면, 대개 처음부터 많은 아이들은 자신의 애착 행동을 보일 대상이 한 명 이상이다. 이 대상들은 아이로부터 똑같은 대우를 받지 않는다. 아이들은 자신의 애착 행동을 특정한 한 인물에게 보이려 하는 선입견이 강하다. 보울비는 이러한 선입견을 '모노트로피(monotropy)'라고 명명하였다. 연구자와 이론가들은 특정 인물과의 관계 형성이 다른 대상과의 관계 형성과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차원에서, 이러한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최근 이론에서는 관계의 분명한 위계질서를 상정한다.
양육자와의 초기 경험은 자아와 타자에 대한 사고, 기억, 신념, 기대, 정서, 행동 체계를 점진적으로 형성한다. '사회적 관계의 내적 작동 모델(internal working model of social relationships)'이라는 이 체계는 시간과 경험에 따라 계속해서 발달한다.
내적 작동 모델은 자아와 애착 대상에서의 애착 관련 행동을 조절하고 해석하며 예측한다. 환경과 성장 변화에 따라 발달해 가면서, 내적 작동 모델은 과거와 미래의 애착 관계에 관하여 사고하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 내적 작동 모델을 통해, 아이들은 새로운 유형의 사회적 상호작용(social interaction)을 다룰 수 있다. 예를 들어 아기는 아이들과는 다르게 다뤄야 한다든지, 혹은 부모와 선생님과 상호작용하는 것으로 성격을 공유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내적 작동 모델은 성인기에도 계속해서 발달하여, 친구관계, 배우자관계, 부모자식 관계를 다루게 하는데, 각각의 관계는 다른 행동과 감정이 관련되어 있다.
애착의 발달은 업무적인 과정이다. 영아기의 특정한 애착 행동들은 예측이 가능하고 확실히 선천적인 행동에서 시작한다. 이러한 애착 행동들은 나이가 듦에 따라, 경험 혹은 상황에 따라 결정되는 방식으로 변화한다. 애착 행동들은 나이에 따라 변화하는 것은, 관계 형성에 따른 방식으로 변화한다. 양육자와 재회하였을 때의 아이의 애착 행동은 이전에 양육자가 아이를 대하는 방식뿐 아니라 아이가 양육자에게 끼친 영향들의 축적에 따라서도 결정된다.
문화 차이
서구문화권 양육에서는, 주로 엄마에 대한 애착에만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양자적(dyadic) 모델은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감정을 잘 다룰 줄 아는 아이를 만드는 유일한 애착 전략이 아니다. 아이에게 반응을 잘하여 신뢰를 주면서도 민감한 양육자가 단 한 명(즉 엄마)뿐이라고 해서,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감정을 잘 다룰 줄 아는 아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스라엘, 네덜란드, 동아프리카 연구에 의하면, 다양한 양육자가 있는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관점을 통해서 세계를 볼 줄 아는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이는 서구의 육아 환경보다 수렵채집 사회에서 더 쉽게 발견된다.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엄마가 주요 양육자이지만 다른 여러 엄마대행자(allomothers)들을 통하여서 아이의 생존을 지켜줄 엄마같은 책임을 공유하게 된다. 엄마가 중요하긴 하지만 엄마만이 아이가 관계 애착을 만들 수 있는 대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몇몇 집단 구성원들은 혈연 관계 유무와는 상관없이 아이를 양육하는 과업에 도움을 주어 부모 역할을 공유하게 되고, 이로 인해 다양한 애착의 원천이 되어줄 수 있다. 다양한 애착의 발달을 보여주는 공동 육아(communal parenting)에 관한 사례가 역사 속에서 발견된다.
인도 대도시 이외 지역에서(맞벌이 핵가족이 흔하면서도 이분법적인 엄마 관계가 존재하는) 가족에는 세 세대로 구성되어 있으면서도(혹은 증조부모, 조부모, 부모, 아이, 네 세대로 구성되어 있음)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4~6명의 양육자가 있어 자신의 애착 대상을 고를 수 있다. 그리고 아이의 친가 삼촌, 숙모, 고모, 고모부들도 아이의 정신과 사교성을 강화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수년간 논의되어 왔지만 결국 문화 간 차이는 적다. 연구를 통해, 애착 이론의 다음 세 가지 기본 가설이 가장 보편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1. 안정형 애착(secure attachment)이 가장 바람직하고 일반적이다.
2. 엄마의 민감성(sensitivity)이 아이의 애착 패턴에 영향을 준다.
3. 몇몇 특정한 영아 애착을 통하여 아이가 자란 이후의 사교적 인지적 능력을 예측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