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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뒤샹, 샘, 변기, 다다이즘

Jobs9 2022. 11. 3.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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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1917

제1차 세계 대전 후인 1917년 4월 10일, 뒤샹은 미국으로 건너가 독립미술가협회 전시회에 <샘>을 출품한다. 이 독립미술가협회는 뒤샹이 알렌스버그, 월터 팩 등과 함께 설립한 협회였다. 즉, 자기가 만든 협회 전시회에 자신의 작품을 출품한 것이다. 독립미술가협회는 특이하게 심사위원도 없고, 상도 없는 미술전으로, 전시회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은 소정의 수수료만 내면 작품을 전시할 수 있었다고 한다. 뒤샹이 동네 철물점에서 그냥 남성용 변기를 하나 산 다음에 'R. Mutt' 란 가명으로 서명하고 출품했다는 것. 당연히 이 작품은 독립미술가협회에서 거부당했고, 전시회가 진행되는 동안 후미진 곳에 방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동안 아무도 그게 작품인 줄 몰랐다. 이후 뒤샹은 자신이 발간하는 다다이즘 잡지인 <The Blind Man>에 'R. Mutt' 라는 무명의 작가를 옹호하는 척 하며 이 작품에 대한 글을 투고했다. 아래 인용문은 투고글 내용.
"분명히 어느 예술가라도 6달러를 내면 전람회에 참여할 수 있다. 머트 씨는 <샘>을 출품했다. 그런데 아무런 의논도 없이 그의 작품이 사라졌다. 머트 씨의 <샘>이 배척당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변기가 부도덕하지 않듯이 머트 씨의 작품 <샘>은 부도덕하지 않다. 배관수리 상점의 진열장에서 우리가 매일 보는 제품일 뿐이다. 머트 씨가 그것을 직접 만들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그것을 선택했다. 일상의 평범한 사물이 실용적인 특성을 버리고 새로운 목적과 시각에 의해 오브제에 대한 새로운 생각으로 창조된 것이다." 

하지만 처음 전시를 기획했을 때부터 이와 같이 명확한 컨셉을 염두에 두고 있진 않았다. 뒤샹이 <샘> 전시 당시 그가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변기의 곡선과 형태 등 시각적으로 보이는 부분에서 미적인 것을 찾아 감상하는 것을 권유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후에 논란이 진행되면서 뒤샹 스스로가 작품의 가치와 장소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개념이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이 작품은 예술과 예술가는 무엇인지에 대해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고. 이 논쟁은 지금도 충분히 효력을 가지는 논쟁이다. 이 논쟁과 관련된 질문들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예술가(Artist)는 꼭 장인(Artisan)처럼 손수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가? 아니면 그냥 자기 발상(idea)에 맞는 사물을 선택하기만 해도 되는가? 
예술가에겐 손재주가 중요한가? 아니면 창의적인 발상이나 계획(idea)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한가?
예술가가 자기 예술작업을 위해 선택한 기성품(ready-made)과 사용하지 않은 다른 일상 기성품은 무슨 차이가 있는가?
예술작품을 예술로 인증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예술가인가? 관객인가? 미술관같은 예술기관인가?
산업사회 이전이었다면 이건 물을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을지 모른다. 당연히 장인의 손재주가 더 중요하니까.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이전까지는 장인의 손재주와 계획 능력을 굳이 구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산업사회가 된 오늘날, 이제 굳이 작가가 손수 작품을 만들지 않아도 재료로 삼을 기성품, 상품은 넘친다. 게다가 이미 사진과 영화 등이 개발된 상황에, 굳이 애써서 회화를, 초상화를, 구상화를 그려야 하는 이유가 뭔가? 뒤샹은 당대 예술가라면 한번쯤은 해봤을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저런 파격적인 작품으로 내놓은 것이다. 그의 작품을 보고 충격을 받은 후대 예술가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예술가는 계획이나 발상을 세우는게 중요하다. 예술가는 자기 발상에 맞는 물건(오브제)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교나 기술적 요소는 단지 작가의 발상을 전달할 때 필요한 요소일 뿐, 중요한 것은 작가의 생각이나 사상을 전달하는 것이 된 것이다. 

기성품을 선택해 전시하는 것만으로도 작품이 될 수 있다는 논리와 더불어 뒤샹이 제시한 또 하나의 조건이 있다. 원문을 보면 바로 위에서 인용한 부분 아랫 문단이 그 단서가 될 수 있는데 해석하자면 이러하다.
"배관용품이기에 가해진 비판은 불합리하다. 미국이 만들어낸 유일의 예술작품은 배관과 다리이다."
언뜻 보기에는 뒤샹이 농담삼아 던진 말인 것 같다. 하지만, 이 말의 참 의미를 알려면 선택된 소재에 부여된 제목과 관련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뒤샹은 프랑스 태생이기 때문에 화장실 배관이 좋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런데 미국으로 작품 활동 무대를 옮긴 뒤 우수한 미국 배관 시설에 감탄을 했을 것이다. 뒤샹은 그런 경험을 표현하기 위해 변기에 미적 황홀함의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샘"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다. 여기서 엿볼 수 있는 뒤샹의 또 하나의 예술철학은, 예술이 개인의 경험, 특히 미적인 경험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샘>은 전시가 끝나고 얼마 후에 실종되었는데, 뒤샹의 전기를 쓴 캘빈 톰킨스는 누가 쓰레기인 줄 알고 버렸다고 추정 중이다(...). 이후 1950년 뉴욕에서 전시한 버전을 시작으로 몇 가지 복제품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복제품은 원작 <샘>하고 똑같이 생기지는 않았다는 게 특이한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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