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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핀란드 관계

Jobs9 2022. 5. 16.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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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핀란드 관계



약 100년 동안 핀란드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던 데다가 1917년 핀란드 독립 이후,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하여 카리알라 영토 상당수를 가져가 카렐리야-핀란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국민 감정은 그리 좋지 않다. 

우크라이나나 발트 3국에 비하면 그나마 핀란드는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이런저런 이득을 취하기도 하는 편이다. 여타 이웃나라가 그렇듯, 외교적 긴장과 별개로 양국의 경제적 관계는 밀접한 편이다. 


19세기
본래 핀란드는 600년 동안 스웨덴 왕국의 영토였지만 1809년, 러시아 제국이 스웨덴을 전쟁에서 이기면서 그 전리품으로 핀란드를 지배하게 되었다. 러시아 제국의 지배하에서 핀란드는 핀란드 대공국이 되었다. 1809년 3월 29일 열린 포르보 신분의회에서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는 러시아의 차르가 핀란드의 대공(Великое князь)을 겸임하는 동군연합을 성립해 핀란드를 다스리기 시작했는데, 러시아는 직접 다스리는 유라시아의 여러 소수민족 지역들보다 더 높은 자치권을 핀란드에 부여했으며 스웨덴 시대의 헌법을 비롯해 정치, 행정, 사법, 사회 제도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했다. 핀인에게는 러시아 정교회를 강요하지 않았고 루터교의 지위가 인정되었으며 심지어 공식 언어도 스웨덴 지배 시절 그대로 스웨덴어가 유지되었다. 이렇게 핀란드를 대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핀란드는 오랫동안 스웨덴의 지배를 받아 러시아의 다른 지역보다 사회와 제도가 안정적이었고, 지나치게 억압정치를 시행하면 다시 스웨덴으로 돌아가려는 여론이 일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핀란드의 원래 수도였던 투르쿠에서 화재가 일어나자 핀란드의 수도를 스웨덴에 가까운 투르쿠에서 좀 더 동쪽에 있는 헬싱키로 옮겼고, 헬싱키에 대대적인 투자를 해서 초기에는 러시아에 대한 핀란드의 여론이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헬싱키의 랜드마크인 헬싱키 대성당이 바로 이 시기 러시아가 핀란드의 환심을 사기 위해 지어준 것이다. 

하지만 핀란드에 우호적이던 알렉산드르 2세의 암살 등을 거치며 19세기 말이 되면서 니콜라이 2세의 재위 기간 동안 핀란드의 자치권이 박탈되고, 기존에 공용어로 있었던 핀란드어가 배제, 러시아어가 유일한 공용어로 지정되는 등 러시아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핀란드 내에서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20세기
제1차 세계대전에서 러시아의 제정은 혁명으로 붕괴되고 이어 볼셰비키가 정권을 장악하여 소비에트 러시아를 세운다. 볼셰비키는 독일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맺었고 이 조약으로 말미암아 핀란드는 독립하였다. 원래 두 나라는 동군연합으로서 두 나라가 차르로 묶여있는 형태였는데 혁명으로 니콜라이 2세가 폐위되면서 더 이상 러시아가 핀란드를 지배할 명분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소련 건국 이후에 두 나라는 불가침 조약을 맺었으나 소련은 핀란드를 수복하고자 하는 욕심을 갖고 있었고 결국 핀란드를 침공했다. 그러나 핀란드는 예상외로 선방하였고 결국 소련은 핀란드를 완전히 합병하는 데에 실패하여 핀란드 영토 일부와 배상금을 받는 데만 그칠 수 밖에 없었다.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핀란드는 독일과 동맹을 맺어, 소련에게 빼앗긴 영토를 수복하고자 하였고 일시적으로 점령은 하였으나 독일이 전세에서 밀리자 결국 항복하여 점령한 영토를 뱉어내었다. 

2차대전 종전 이후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핀란드는 생존을 위해 서방과도 약간 거리를 두고 공산권과도 거리를 두는 제3세계 중립국으로 지내었다. 핀란드는 핀란드화 정책을 실시했다. 소련이 핀란드의 주요 무역 상대국이 되었던 탓에 오일 쇼크에도 핀란드의 경제는 일반 서방 국가들과 다르게 성장세를 보였고, 소련은 핀란드를 통해 서구의 소비재와 문화들을 수입해 오는 등 관계가 밀접했으나, 소련이 해체되면서 한동안 실업률이 20%대에까지 도달하는 경제난을 겪기도 했다. 허나 그 후 경기침체를 극복한 핀란드는 EU에 가입했다.

21세기
핀란드는 90년대에 유럽 연합에 가입했지만, 나토에는 가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로마이단 사태 때에는 스웨덴과 공동으로 군사 훈련을 치르기도 했다. 러시아와 접하고 있는 나라라서 러시아인들이 이주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노키아의 몰락으로 러시아에 대한 경제의존도 상승 및 러시아어의 사용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 제국에서 독립한 뒤에 러시아어는 공용어에서 제외되었지만, 한국인이 중국어나 일본어를 많이 배우듯 바로 옆 나라 언어라 유용하기 때문에 러시아어를 많이 배우고 있고 2013년부터 핀란드도 러시아어 수업을 지원하고 있어서 러시아어를 아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결국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러시아에 대한 금수조치가 취해지자 농산물 수출길이 막혀 안 그래도 노키아가 없어진 통에 설상가상이 되어버렸다. 유로마이단 사태로 핀란드도 스웨덴과 함께 나토에 가입하는 것을 고려하고 나토 군사훈련에도 참가하면서 러시아가 반발하고 있다. 

그리고 핀란드는 2016년 가을에 미국과 방위협정체결을 추진하면서 러시아를 자극할 우려를 낳고 있다. 그리고 핀란드는 러시아위협에 맞서서 처음으로 미국제 미사일을 도입했다. 2018년 7월 24일에 러시아의 세르게이 쇼이구 장관은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가입에 우려를 표명했다.# 하지만 핀란드의 나토가입에 대해서 핀란드인들은 소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2017년에는 서방 국가의 일원으로 러시아에게 할 말을 하거나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안정적인 대러외교를 펼치고 있다. 

2018년 10월 25일 ~ 11월 7일까지 나토 연합훈련도중에 핀란드 북부에서 있었던 GPS 전파방해사건의 주범으로 러시아라는 의혹과 관련, 핀란드 정부는 러시아 대사를 초치했다.

핀란드에도 러시아계 핀란드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핀란드내 러시아인들은 19세기부터 핀란드로 이주한 러시아인들이 시초이다. 2000년대 이후에 핀란드로 이주하는 러시아인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푸틴 정권의 독재를 피하기 위해 핀란드로 망명오는 러시아인들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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