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와 동남아의 국가 차이
조 스터드웰 지음 '아시아의 힘'
동아시아 국가들은 유럽이나 아프리카 등의 다른 지역에 비하면 비교적 비슷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 태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수모를 겪었고, 주로 벼로 농사를 짓는다. 인구 밀도가 높고 기후가 따뜻한 편이다.
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선진국과 경제 성장을 향해 내달렸다. 이는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 모두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오늘날 두 지역의 경제는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동북아시아 3국인 대만, 일본, 한국은 고도성장을 겪은 후 개발도상국 대열에서 빠르게 빠져나왔다.
하지만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아직도 잠재력이 있는 국가라는 평에 그친다. 심지어 몇몇 나라들은 국가가 후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들이라고 해서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말이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을까?
<아시아의 힘>(원제: How Asia Works)는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경제 발전을 비교한 책이다. 저자 조 스터드웰은 아시아에 대한 글을 오랜 기간 써온 저널리스트로, 계간지 차이나 이코노믹 쿼털리의 편집장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동북아 3국과 동남아 3국을 비교한다. 동북아 3국은 대만, 한국, 일본이며 동남아 3국은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다. 동북아 3국은 오늘날 과거에 비해 큰 발전을 이루었지만, 동남아 3국은 아직 그 대열에 합류하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세 가지 요소를 동북아 발전의 핵심으로 본다. 농업 구조, 수출 중심 제조업 진흥 여부, 금융에 대한 정부 개입의 정도다.
아시아 위기가 밝힌 사실은 정부의 일관된 정책적 개입이 동아시아의 경제개발에서 실로 장기적 성공과 실패를 갈랐다는 것이다. 일본, 한국, 대만, 중국의 정부는 2차 대전 후 농업 부문에 획기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근대화 노력을 제조 부문에 집중했으며, 금융 시스템이 이 2가지 정책적 개입에 기여하도록 했다. 그에 따라 이전 단계로 돌아가기가 거의 불가능하도록 경제구조를 바꿨다. -본문에서
책은 동북아 3국은 농지개혁을 통해 소농 위주의 경제로 농업 구조를 재편했고, 수출 위주의 제조업을 육성하였으며, 금융에 정부가 개입하여 제조업을 지원하도록 압력을 넣었다고 분석한다. 구체적인 예로는 대만과 한국의 토지 개혁, 일본의 기업 수출 지원을 꼽는다.
저자는 소농의 중요성에 대해 주목한다. 경제성장이 저조한 나라들은 대부분의 인구가 농업에 종사한다. 그들이 가진 몇 안 되는 자원이 바로 농업 노동력이다. 저자는 이 노동력이 대농장에서 대지주를 위해 일하게 할 것이 아니라고 본다. 대신 정부가 농지개혁을 실시해서 소농 중심의 농업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그래야 헥타르당 소출이 상승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남아 국가들은 농지개혁을 하지 않았다. 대신 대지주가 농업의 상당수를 지배하는 구조를 유지했다. 필리핀같은 나라는 이런 구조로 인해 생산력이 향상되지 못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또한 저자는 제조업을 크게 육성해야 한다고 본다. 이 제조업은 모든 제조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수출에 도움이 되는 제조업을 말한다. 내수를 위한 제조업에는 중점을 두지 않는다. 구체적으로는, 제조업이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 보호주의 정책을 채택함으로써 자국의 제조업을 보호하고, 수출시장에 부적합한 기업은 도태시킨다.
말레이시아는 이런 동북아 3국의 성장 모델을 적시에 제대로 쫓지 못하는 바람에 힘겹게 육성한 말레이시아 자동차 산업이 수출 경쟁력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 저자의 평이다. 반면 한국은 현대자동차가 수출 경쟁력을 가질 때까지 애지중지하면서 돌본 끝에 거대 기업으로 키워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금융을 효율적인 시장에 맡기는 대신, 국가가 휘어잡고 제조업에 도움이 되도록 다뤄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금융이 장기적인 국가의 이익에 부합하고 자국을 보호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은 자유시장 경제를 외치는 이들과는 크게 배치된다. 저자는 아예 빈국들이 성공하려면 자유시장을 따르는 척만 하고 지키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빈국들은 거짓말을 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그래서 대외적으로는 부국들이 홍보하는 '자유시장' 경제학을 따르는 것처럼 행동하는 한편 실제로 먼저 부유해지기 위해 필요한 개입주의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 -본문에서
책은 한국의 경제성장에 대해 긍정적으로 묘사하는데, 포스코가 있는 포항과 현대 그룹이 있는 울산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저자는 한국이 자신이 강조하는 세 가지 요소를 충실히 수행했다고 본다. 저자가 바라보는 한국은 토지 개혁을 실시한 나라고, 수출 위주의 제조업을 키우기 위해 온 나라가 자원을 투입한 나라다. 저자는 이런 한국형 모델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이다.
책은 세 가지 요소에 집중했기 때문에 교육과 노동 구조에 대해서는 비교적 덜 다루는 편이다. 또한 저자는 대기업 위주의 경제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입장이다. 따라서 한국인의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거나 중소기업 성장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다소 아쉬울 수 있다.
책에 나오는 토지 개혁, 포스코 및 현대자동차에 대한 이야기 일부는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것이다. 일화와 사건 위주의 설명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동북아 3국의 경제 성장, 산업 발달과 이를 위한 정부의 개입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발전국가모델 한국, 일본, 대만
토지개혁은 사회 전반의 소유구조를 재편한다는 점과 중대한 전환점(critical juncture)에서 국가발전을 위한 제도화 기제로 작용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사회경제적 개혁이다. 특히, 국가건설(state-building) 혹은 전환적 단계에 있는 다수의 개도국에서 토지개혁은 시도되지 않았거나 오랜 기간 실패한 채 미결 과제로 남아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타국의 경험을 피상적으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institutions)와 초기조건에 관한 본질적인 탐구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농촌개발과 토지수탈의 문제가 잔존하는 개발도상국에 향후 토지 관련 국제개발정책 수립을 위한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이에, 1945년부터 1950년대 초반까지의 한국, 일본, 대만 사례분석을 통해 삼국의 국가발전을 위한 토지개혁 성공요인을 동아시아모델로 도출하고, 보편적인 시사점을 개도국에 적용 가능하도록 제시하고자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의 개입을 통해 단행되었던 한국, 일본, 대만에서의 토지개혁은 미국의 개입방식, 시행령, 개혁과정과 같은 구체적인 내용 면에서는 차이점이 존재하나, 삼국의 사례는 모두 로컬수준의 내생적 조건으로 인해 미국이 당초 계획했던 토지개혁의 범위와 방향성이 크게 변화하였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보인다. 삼국의 로컬 수준의 주요 내생적 조건으로는 지역단위에서 자율성 있는 조직이 여러 층위로 구성된 점, 중앙과 지방 간 분권과 제도적 소통창구가 존재한 점, 책무성(accountability)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로컬 수준에서의 거버넌스 체계가 구축된 점 등을 들 수 있으며, 이는 토지개혁 성공의 핵심적인 요인으로 분석할 수 있다. 비록 1945년 이후 미국의 아시아개입과 같은 수준은 아니라 할지라도, 양자·다자원조와 같은 외부영향력 아래에서 여러 다중이해관계자의 개입과 공여국의 요구조건을 충족해야 하는 개도국의 현 실정을 고려할 때, 삼국의 토지개혁 사례는 수원국 내 로컬 수준의 정치체(polity) 및 로컬단위에서의 거버넌스 구축에 대한 중요성을 재조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경제기적’과 농지개혁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2020년 7월 한국을 선진국으로 지정했다. 회원국의 만장일치였다. 식민지 경험이 있는 제3세계 국가 중 최초이고, 유일한 사례다. 우리는 한국에 대해 가장 자랑할 만한 것을 K팝, K콘텐츠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외국 입장에서, 특히 개발도상국 입장에서, 한국에 대해 가장 부러운 것은 ‘경제 기적’이다. 1953년 한국전쟁 직후,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00달러가 채 되지 않았다. 최근에는 3만5000달러에 근접했다. 배율로 치면 무려 350배가 증가했다.
경제학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경제성장이다. 경제성장은 빈곤을 타파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경제학 교과서들은 경제성장 과정을 자본투입(K) 증가량, 노동투입(L) 증가량, 총요소생산성(TFP) 증가량으로 설명한다.
이런 설명 방식은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다분히 결과론적인 설명에 불과하다. 한국은 어떻게 경이적인 수준의 경제성장을 성공할 수 있었을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5% 이상의 고성장을 30년 이상 달성한 나라는 매우 예외적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에 따르면 딱 11개 국가다. 1인당 GDP 증가율을 순위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적도기니(8.9%) ②오만(7.1%) ③리비아(7.1%) ④한국(7.0%) ⑤보츠와나(7.0%) ⑥타이완(6.8%) ⑦중국(6.5%) ⑧싱가포르(6.5%) ⑨일본(6.5%) ⑩사우디아라비아(5.9%) ⑪홍콩(5.8%)이다.
재밌는 것은 11개 국가는 다시 두 덩어리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자원 부국이다. 적도기니, 오만, 리비아, 보츠와나, 사우디아라비아가 해당한다. 다른 하나는 동아시아 발전국가들이다. 한국, 타이완, 중국, 싱가포르, 일본, 홍콩이 해당한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와 홍콩을 논외로 하면, 한국, 타이완, 중국, 일본은 4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 농지개혁을 했다. 둘째, 친미국가였다. 셋째, 제조업을 중시했다. 넷째, 지정학적으로 소련 혹은 공산주의 국가들과 국경을 접하는 최전선에 위치했다. ①농지개혁 ②친미국가 ③제조업 중시 ④지정학적 위치는 서로 연결되어 작동했다. 이 중에서 특히 ‘농지개혁’에 집중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농지개혁에서 관전 포인트는 세 가지다. 첫째, 실시 배경이다. 일본, 한국, 타이완에서 농지개혁을 했던 이유는 모두 ‘공산화를 막기 위해서’였다. 이들 나라들은 모두 소련, 중국, 북한과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있다. 일본은 점령군 총사령관 맥아더가 농지개혁을 주도했다. 한국의 경우 3자 합작품이었다. 미 군정과 이승만, 조봉암 등의 진보적 국회 소장파의 공동 산물이었다. 타이완의 경우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이후 장제스가 실시한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대표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전면에 내걸고 승리한다. ‘민주당 정책’을 가로채서, 민주당을 지지하던 중도표를 빼앗아, 민주당에 승리한 경우였다. 농지개혁의 원리도 이와 같았다. ‘공산주의 세력의 정책’(농지개혁)을 수용해서, 공산주의 세력과의 정치적 경쟁에서 승리한 경우였다. 일본, 한국, 타이완은 ‘절반쯤은’ 공산화된 상태에서 출발한 나라였다.
지리학·지정학·지경학의 중요성
둘째, 농지개혁이 경제성장으로 연결되는 메커니즘이다. 두 가지가 중요했다. 하나는 열심히 일할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자기만의 땅이 생기자 농민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일했다. 건국 직후 미국이 그러했듯이 대한민국은 ‘소농(小農)의 나라’로 출발했다. 한국인 특유의 근면성 역시 농지개혁과 관련된다. 이후 농가소득은 급상승했다.
다른 하나는 아이들에 대한 교육 투자다. 농지개혁이 되지 않았다면, 지주 계급도, 농민들도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는 것을 반대했을 것이다. 경제성장과 상관관계가 가장 높은 것 중 하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취학률이다. 한국의 경우 비슷한 시기에 의무교육이 도입됐다. 초등학교 및 중학교 취학률이 90%를 돌파한다. 문맹률은 급격히 하락한다. 아이들에 대한 높은 교육투자는 남미, 동남아시아와 구분되는 동북아시아 발전국가들의 핵심 특징이다.
셋째, 북한 농지개혁과 남한 농지개혁에 대한 평가다. 1980~1990년대 운동권 세미나에서 공부했던 내용은 북한 농지개혁이 더 진보적이라는 것이었다. 북한은 ‘무상몰수-무상분배’를 했다. 남한은 ‘유상몰수-유상분배’를 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해, 남한 농지개혁이 ‘더 진보적’이었다.
토지 소유권은 처분권, 상속권, 경작권, 수확 배분권 등으로 세분화할 수 있다. ‘농민 입장에서’ 볼 때, 북한의 농지개혁은 김일성 가문에 귀속된 것에 불과하다. 농민에게는 처분권도 없고, 상속권도 없다. 경작권만 있고, 수확물의 일부를 배분받을 뿐이다. 일제강점기 지주계급이 나눠주던 수확 배분을 김일성 가문이 해주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남한 농지개혁, 북한보다 진보적
반면, 남한의 농지개혁은 농민에게 귀속됐다. 농민에게는 처분권도 있고, 상속권도 있다. 온전히 농민의 것이 됐다. 게다가 한국전쟁 이후 발생한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농민들이 값아야 할 유상분배 몫은 20분의 1 수준으로 낮아졌다.
한국에서 경제성장이 실제로 이뤄진 과정은 지리학·지정학(地政學)·지경학(地經學)이 연동돼 작동했다. 일본, 타이완, 중국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