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락팔곡(獨樂八曲)
권호문
1장
太平聖代(태평성대) 田野逸民(전야일민) 再唱(재창)
耕雲麓(경운록) 釣烟江(조연강)이 이밧긔 일이업다.
窮通(궁통)이 在天(재천)ᄒᆞ니 貧賤(빈천)을 시름ᄒᆞ랴.
玉堂(옥당) 金馬(금마)ᄂᆞᆫ 내의願(원)이 아니로다.
泉石(천석)이 壽域( 수역)이오 草屋(초옥)이 春臺(춘대)라.
於斯臥(어사와) 於斯眠(어사면) 俯仰宇宙(부앙우주) 流觀(유관) 品物(품물)ᄒᆞ야,
居居然(거거연) 浩浩然(호호연) 開襟獨酌(개금독작) 岸幘長嘯(안책장소) 景(경) 긔엇다 ᄒᆞ니잇고.
1장
태평스럽고 성스러운 시대에, 시골에 은거하는 절행이 뛰어난 선비가,
구름 덮인 산기슭에 밭이랑을 갈고, 내 낀 강가에 낚시를 드리우느니, 이밖에는 일이 없도다.
빈궁과 영달이 하늘에 달렸으니, 가난함과 천함을 걱정하리오,
漢나라때 궁궐문이나 관아 앞에 銅馬를 세움으로 명칭한 金馬門과, 翰林院의 별칭인 玉堂署가 있어, 이들은 임금을 가까이서 뫼시는 높은 벼슬아치로, 이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로다.
천석으로 이루어진 자연에 묻혀 사는 것도, 仁德이 있고 수명이 긴 壽域으로 盛世가 되고, 초옥에 묻혀 사는 것도, 봄 전망이 좋은 春臺로 성세로다.
어사와! 어사와! 천지를 굽어보고 쳐다보며, 삼라만상이 제각기 갖춘 형체를 멀리서 바라보며,
安靜된 가운데 넓고도 큰 흉금을 열어제쳐 놓고 홀로 술을 마시느니, 두건이 높아 머리뒤로 비스듬히 넘어가, 이마가 드러나서 예법도 없는 데다 길게 휘파람부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2장
草屋三間(초옥삼간) 容膝裏(용슬리) 昻昻(앙앙) 一閒人(일한인) 再唱(재창)
琴書(금서)를 벗을 삼고 松竹(송죽)으로 울을ᄒᆞ니
翛翛(소소) 生事(생사)와 淡淡(담담) 襟懷(금회)예 塵念(진념)이 어ᄃᆡ나리.
時時(시시)예 落照趂淸(낙조진청) 蘆花(노화) 岸紅(안홍)ᄒᆞ고,
殘烟帶風(잔연대풍) 楊柳( 양류) 飛(비)ᄒᆞ거든,
一竿竹(일간죽) 빗기안고 忘機伴鷗(망기반구) 景(경) 긔엇다 ᄒᆞ니잇고.
2장
초가삼간이 너무 좁아, 겨우 무릎을 움직일 수 있는 방에는, 지행 높고 한가한 사람이,
야금을 타고․책 읽는 일을 벗삼고․집 둘레에는 소나무와 대나무로 울을 하였으니,
찢기어진 생계와 산뜻하게 가슴깊이 품고 있는 회포는, 속세의 명리를 생각하는 마음이 어디서 나리오.
저녁 햇빛이 맑게 개인 곳에 다다르고, 흰 갈대꽃이 핀 기슭에 비쳐서 붉게 물들었는데, 남아 있는 내에 섞여 부는 바람결에 버드나무가 날리거든,
하나의 낚시대를 비스듬히 끼고․세속 일을 잊고서 갈매기와 벗이 되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3장
士何事乎(사하사호) 尙志而已(상지이이) 再唱(재창)
科名(과명) 損志(손지)ᄒᆞ고 利達(이달) 害德(해덕)이라.
모ᄅᆞ미 黃券中(황권중) 聖賢(성현)을 뫼압고,
言語精神(언어정신) 日夜(일야)애 頤養(이양)ᄒᆞ야,
一身(일신)이 正(정)ᄒᆞ면 어ᄃᆡ러로 못가리오.
俯仰(부앙) 恢恢(회회)ᄒᆞ고 往來(왕래) 平平(평평)ᄒᆞ니,
갈길ᄅᆞᆯ 알오 立志(입지)를 아니ᄒᆞ랴.
壁立萬仞(벽립만인) 磊落( 뇌락) 不變(불변)ᄒᆞ야,
嘐嘐然(교교연) 尙友千古(상우천고) 景(경) 긔엇다 ᄒᆞ니잇고.
3장
선비는 무엇을 일삼아야 하느냐, 뜻을 높게 가질 뿐이로다.
과거급제란 명예로움은 내 뜻을 손상시키고, 이익과 출세란 덕을 해치는 것이로다.
모름지기 책 가운데서 성현을 뫼시옵고,
언어와 정신을 맑은 달밤에 잘 가다듬고․고요히 수양하여,
내 한 몸이 바르게 된다면 어디러로 못 가리오.
굽어보고․쳐다보아 크고 넓게 포용하는 모습이 왕래가 평이로워지느니, 내 갈 길을 알아서 뜻을 세우지 아니하리오.
벽처럼 선 낭떠러지가 만 길은 되는데, 내 마음은 활달하여 작은 일에 구애되지 않고 변하지 않느니,
뜻이 커서 말함이 시원스러운데다, 책 읽어 아득한 옛 현인을 벗으로 삼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4장
入山(입산) 恐不深(공불심) 入林(입림) 恐不密(공불밀)
觀閒之野(관한지야) 寂寞之濱(적막지빈)에 卜居(복거)를 定(정)ᄒᆞ니
野服(야복) 黃冠(황관)이 魚鳥外(어조외) 버디업다.
芳郊(방교)애 雨晴(우청)하고 萬樹(만수)애 花落(화락)후에,
靑藜杖(청려장) 뷔집고 十里(십리) 溪頭(계두)애 閒往(한왕) 閒來(한래)ᄒᆞᄂᆞᆫ ᄠᅳ든
曾點氏(증점씨) 浴沂(욕기) 風雩(풍우)와 程明道(정명도) 傍花(방화) 隨柳(수류)도 이러턴가 엇다턴가.
暖日(난일) 光風(광풍)이 불ᄭᅥ니 ᄇᆞᆯ거니 興(흥) 滿前(만전)ᄒᆞ니,
悠然胸次(유연흉차)ㅣ 與天地(여천지) 萬物上下(만물상하) 同流(동류) 景(경) 긔엇다 ᄒᆞ니잇고.
4장
韓愈가 산에 들면 산이 깊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숲에 들면 숲이 빽빽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마음은 너그럽고도 한가한 들판에서 밭을 갈고, 쓸쓸한 물가에서 낚시를 드리울 수 있는, 살만한 곳을 가려 점쳐서 정하였느니,
시골사람의 의복에다 野人의 관을 쓰고 살면서, 물고기와 새밖에는 벗이 없도다.
향그러운 교외에는 비가 개이고, 수많은 나무들에는 꽃이 떨어진 뒤에,
명아주지팡이를 짚고서, 십리되는 시냇머리를 한가하게 오고 가는 뜻은,
마치 증점씨(曾點氏)가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무우(舞雩)로 바람을 쐬며 돌아오는 산뜻한 그 기분과, 정명도(程明道)가 꽃을 곁에 두고 버드나무를 좇아 거닐던 기분도 이렇던가 어떻던고.
따스한 햇볕과 청명한 날씨에 부는 바람이 불거니․밝거니 하여 흥취가 내앞에 가득하여지느니,
침착하고도 여유있는 가슴속이, 천지만물과 더불어 상하가 함께 흘러가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5장
집은 范萊蕪(범래무)의 蓬蒿(봉호)ㅣ오 길은 蔣元卿(장원경)의 花竹(화죽)이로다.
百年浮生(백년부생) 이러타 엇다ᄒᆞ리.
진실로 隱居(은거) 求志(구지)ᄒᆞ고 長往(장왕) 不返(불반)ᄒᆞ면
軒冕(헌면)이 泥塗(이도)ㅣ오 鼎鐘(정종)이 塵土(진토)ㅣ라.
千磨(천마) 霜刃(상인)인ᄃᆞᆯ 이ᄠᅳ들 긋츠리랴.
韓昌黎(한창려) 三上書(삼상서)ᄂᆞᆫ 내의ᄠᅳ데 區區(구구)ᄒᆞ고,
杜子美(두자미) 三大賦(삼대부)ㅣ 내둉내 行道(행도)ᄒᆞ랴.
두어라 彼以爵(피이작) 我以義(아이의) 不願人之(불원인지) 文繡(문수)ᄒᆞ야
世間萬事(세간만사) 都付天命(도부천명) 景(경) 긔엇다 ᄒᆞ니잇고.
5장
내집은 저 後漢적 范萊蕪가 끼니가 떨어질 정도로 가난하였어도, 태연자약하게 초야에 묻혀 살았듯, 前漢적 蔣元卿이 뜰앞의 꽃과 대나무 아래에다 세갈래 길을 여고, 求仲과 羊仲으로 더불어 조용히 놀기를 구하였도다.
평생동안 덧없는 인생이 이렇다고 어떠하리.
진실로 은거하여 뜻을 구하고, 죽어서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면,
대부가 타는 수레와 복장이 진흙처럼 천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오, 종묘에 두는 그릇에다 공적을 새긴 이름도 아득한 후세에는 흙먼지에 지나지 않는도다.
천번이나 갈았는 서릿발 서슬이 푸른 날카로운 칼날일지라도 이 뜻을 끊으랴.
韓昌黎는 세번이나 상서를 올림에, 그 때마다 귀양을 감으로써 벼슬길이 막혔는데, 그것은 나의 뜻에 각기 달랐고,
杜子美는 三大禮賦를 올림에 드디어 벼슬길이 트였다고, 내 마침내 그러한 도를 행하랴.
두어라, 그들은 그들의 작위를 가지고 행하나, 나는 나의 正義를 가지고 행하는데, 남의 수놓은 비단옷(벼슬)을 원치 않으매,
세간의 만사가 모두 천명에 달려 있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6장
君門(군문) 深九重(심구중) ᄒᆞ고 草澤(초택) 隔萬里(격만리) ᄒᆞ니,
十載(십재) 心事(심사)를 어이ᄒᆞ야 上達(상달)ᄒᆞ료.
數封(수봉) 奇策(기책)이 草(초)하얀디 오래거다.
致君(치군) 澤民(택민)은 내의才分(재분) 아니런가.
窮經(궁경) 學道(학도)를 ᄠᅳᆮ두고 이리ᄒᆞ랴.
ᄎᆞᆯ하리 藏修丘壑(장수구학) 遯世(둔세) 無悶(무민)ᄒᆞ야
날조ᄎᆞᆫ 번님네 뫼옵고
錄籤(녹첨) 山窓(산창)의 共把遺經(공파유경) 究終始(구종시) 景(경) 긔엇다 ᄒᆞ니잇고.
6장
임금님 계신 곳은 깊은 구중궁궐이고, 초야에 묻혀 사는 백성들과는 만리로 막혔느니,
십년동안 마음에 생각한 일을 어찌하여 위로 임금님께 여쭈어 알게 하리오.
운수가 기이하여 내 계책을 봉하여 둔 지가 오래되었도다.
벼슬하면 임금에게 충성함에 이르게 되고, 백성에게는 은택을 내려 주어야 하는 것인데, 이는 나의 천부의 재능이 아니던가.
경서를 궁구하는 가운데, 성현의 도를 배우기 위한 데다 뜻을 두고 이리하랴.
차라리 쉬지 않고 글을 읽어서, 배움에 힘쓰는 저 언덕과 구릉이 있는 은거처에서, 세상을 숨어살아도 고민이 없으매,
나를 따르는 벗님네 뫼옵고 史書庫의 綠牙籤을 표지로 한, 장서가 가득한 창앞에서 성현의 경서를 잡고, 처음부터 끝까지 궁구하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7장
一屛一榻(일병일탑) 左箴右銘(좌잠우명) 再唱(재창)
神目(신목) 如電(여전)이라 暗室(암실)을 欺心(기심)ᄒᆞ며,
天聽(천청) 如雷(여뇌)라 私語(사어)인들 妄發(망발)ᄒᆞ랴.
戒愼(계신) 恐懼(공구)를 隱微間(은미간)애 닛디마새.
左如尸(좌여시) 儼若思(엄약사) 終日乾乾(종일건건) 夕愓若(석상약) ᄒᆞᄂᆞᆫᄠᅳᆮ든
尊事(존사) 天君(천군)ᄒᆞ고 攘除(양제) 外累(외누)ᄒᆞ야,
百體從令(백체종령) 五常(오상) 不斁(불두)ᄒᆞ야
治平(치평) 事業(사업)을 다이루려 ᄒᆞ였더니
時也(시야) 命也(명야)인디 迄無成功(흘무성공) 歲不我與(세불아여) ᄒᆞ니,
白首(백수) 林泉(임천)의 ᄒᆞ올일이 다시업다.
우읍다. 山之男(산지남) 水之北(수지북)애 斂藏(염장) 蹤跡(종적)ᄒᆞ야
百年閒老(백년한로) 景(경) 긔엇다 ᄒᆞ니잇고.
7장
하나의 병풍에다 하나의 평상을 두고, 왼쪽에는 경계가되는 箴言을․오른쪽에는 마음에 아로새길 座右銘을 두고,
귀신의 눈으로 볼 제는 번갯불같이 밝게 보이므로, 어두운 방안이라고 제 마음을 못 속이며,
하늘이 들을 제는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리므로, 사사로이 하는 말이라도 망발을 하랴.
군자가 경계하고․삼가며 몹시 두려워하는 것은, 은암한 곳보다 더 잘 드러나는 곳은 없고, 세미한 일보다 더 뚜렷해진다는 게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
앉은 모습은 尸童氏처럼 반드시 공경하고․장중한 태도로 앉아야 하고, 얼굴빛과 몸가짐은 엄숙하고․단정하게 가져서 무엇인가 생각하는 것처럼, 낮에는 하루종일 쉼 없이 노력하고, 저녁에는 반성하여 삼가고 조심하는 뜻은,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잘 섬김으로써, 내 몸 밖에서 오는 누끼치는 일을 물리쳐 없애고,
온몸이 令을 좇아서, 아비는 의롭고․어미는 자애롭고․형은 우애롭고․아우는 공경하고․아들은 효성함으로써, 五常을 싫어함이 없어야만,
백성들이 잘 다스려져 평안한 세상이 되게 하고, 사업을 모두 이루고자 하였더니,
때가 아닌지 운명인지, 마침내 성공함이 없었고, 세월은 나와 더불어 기다려 주지 않으니, 흰머리의 늙은이로 숲과 샘이 있는 은거처에서 할 일이 다시 없도다.
우습다, 산의 남쪽과 물의 북쪽인 양지바른 곳에다 내 발자취를 거두어 감추고, 평생동안을 한가하게 늙어가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해설
조선 선조 때의 문인 권호문이 지은 경기체가. 현존하는 경기체가 가운데 가장 마지막 작품이다. 제목에는 8곡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7곡만이 문집인 <송암별집>에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의 서문에서 작자는 “고인이 말하기를 노라라 하는 것은 흔히 시름에서 나오는 것이라 하였듯이 이 노래 또한 나의 불평에서 나온 것이니, 한편 주자의 말처럼 노래함으로써 뜻을 펴고 성정을 기르겠다.”라고 제작 동기를 피력하였다. 이로 보아 작자는 강호자연의 유연한 정서생활을 노래하면서 그것을 성정을 닦고 기르는 도학의 자세로 받아들였으며, 그러면서도 그 이면에는 외로움과 불평이 서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작자는 평생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였으며 산림처사로 자처하면서 산수에서 노닐며 노래로써 시름을 달래었다. 작자의 어머니가 천비(賤婢)였다는 점에서 벼슬길에 제약이 있었을 것은 확실하며, 웅대한 학덕을 지니고도 크게 펴보지 못한 데서 오는 소외감과 불평이 응어리져 있었을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의 제5연을 보면 그의 의기가 얼마나 드높으며, 그러면서도 불평에 가득 찬 사람이 세상을 저 아래로 내려다보는 태도가 여실히 나타나 있다. 그리고 작품의 전편에 표면적으로는 강호자연 속에 파묻혀 한가로이 지내는 즐거움을 노래하고 태평성대에 한 일민(逸民)으로서 자연을 사랑하며 유유히 살아가는 삶을 드러내었지만, 이면적으로는 홀로 즐기는 소외감과 마음껏 의기를 펴보지 못하는 불평이 짙게 깔려 있다.
공무원 두문자 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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