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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 도막, 도마뱀, 도마(跳馬), 도마(Tomas), 어원

Jobs 9 2024. 8. 5.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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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 도막, 도마뱀

 

도마와 칼은 부엌에서는 절대 빠질 수 없는 도구들이다. 공교롭게도 ‘칼’과 ‘도마’는 모두 순우리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도마’와 ‘칼’은 어쩌다 이런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을까?

‘칼’은 ‘도(刀)’라는 한자어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우리말로는 ‘갈’이라는 말로 불렸다. 오늘날에도 생선 종류인 ‘갈치(刀魚)’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어원적으로 동사 ‘갈다’, ‘가르다’의 어간이 독립해 명사화된 것이다.

‘칼 도(刀)’자는 칼을 본떠 만들어진 한자라고도 하지만, 그 이전에 칼을 뜻하는 한자는 ‘가르는’ 모양을 사용했다. 이런 한자에서도 ‘가르다’의 ‘갈’ 발음이 변하여 ‘칼’이라는 단어가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도마’는 꽤 오래전부터 사용되었던 우리말이다. 옛 문헌에서도 도마라는 단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처음으로 등장한 곳은 15세기의 문헌 ‘분류두공부시언해’의 초간본이다. 이는 세종 25년, 당나라 시인 두보의 한시를 한글로 언해하기 시작하여 성종 12년 번역이 완료된 책이다.

칼로는 물체를 ‘도막’ 낼 수 있다. 이 ‘도막’이라는 말은 짧고 작은 동강, 혹은 짧고 작은 동강을 세는 단위를 말한다. 비슷한 말로는 ‘토막’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역시 크고 덩어리가 진 도막을 말한다. 도막과는 달리 ‘말, 글, 생각’ 따위의 단위로 사용되기도 한다. 

‘도’는 떨어져 있다는 뜻이다. 이는 섬(島)이 육지와는 떨어져 있다 하여 사용된 글자다. ‘막’은 ‘막히다’라는 말에서 왔는데, 이는 ‘끝까지 떨어뜨리다’ 즉 분리한다는 뜻이다.

이 ‘도막’이라는 말에서 ‘도마’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칼로 물건을 도막 낼 때 밑에 받치는 물건이라 하여 도마가 된 것이다.

이처럼 생각한다면, ‘도마뱀’의 ‘도마’도 위의 도마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꼬리가 도막도막 끊어지는 뱀’, 즉 ‘도막뱀’이 도마뱀이 된 것이다. 물론 실제 도마와 마찬가지로 ‘나무토막처럼 딱딱한 피부를 가진 뱀’이라는 뜻에서 도마뱀이 된 것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전자의 이유로 ‘도마뱀’이 되었다고 보고 있다.

도마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예수와 제자들의 대화를 기록한 ‘도마 복음’이라는 성서가 있다. 이 도마는 알파벳 표기로 ‘Thomas’인데, 이는 아람어로 ‘쌍둥이’를 뜻한다. ‘도마’가 ‘도막 내다, 나누다’에서 온 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쌍둥이’라는 말 역시 ‘도마’와 아주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물체를 ‘가르는’ 물건이라 ‘칼’이 되었다. 칼이 ‘도막 내기’ 좋도록 밑에 받치는 것이 ‘도마’가 되었다.




도마(跳馬)
Vaulting horse

기계체조의 종목으로 도마(跳馬)라고도 한다. 말에서 비롯된 종목으로, 고대 로마 제국의 군인들이 말타기 훈련에 목마를 사용한 데서 유래하였다. 영어로는 ‘Vault(뛰어넘기)', 일본에서는 말처럼 생긴 틀을 뛰어넘는다고 해서 ‘跳馬(ちょうば・쵸-바)’라고 한다. '도마'는 일본식 표현에서 넘어온 것이며 한국은 과거 경기에서 공식적으로 '뜀틀'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발구름을 한 후 기구에 손을 짚으면서 뛰어넘는 운동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손이 미끄러지거나 발을 헛디디면 큰 부상으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에 매트 없이는 하기 힘든 운동이다. 

도마의 올림픽 영어 명칭은 'Vault(도약, 뜀)'. 그러나 또 다른 이름은 'long horse'다. 우리나라에선 후자의 의미를 빌려 도마라는 이름을 붙였다. 

'말'이 등장하는 이유는 도마(손을 짚는 기구)의 모양이 말 안장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이 종목은 중세시대 기마훈련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기수가 말 안장에 오르는 모습을 본떠 손을 짚고 동작을 취하는 경기 방식을 고안해냈다고 한다.

또 horse는 '목마'를 뜻하기도 한다. 2001년 형태가 다소 바뀌어 이제는 목마의 형태를 찾아보기 어렵게 됐지만, 이전까지만 해도 도마는 목마와 유사하게 네개의 다리가 있는 ‘식탁’ 형태였다. 이 때문에 도마는 ‘목마를 뛰어넘는 경기’로 여겨졌다. 우리의 ‘도마’는 이 의미를 그대로 쓴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경기장에선 ‘말’모양의 도마를 찾아보기 어렵다. 도마에서 말의 모양이 사라지게 된 계기는 잇따른 사고와 선수들의 부상이었다. 

1988년엔 미국 선수 줄리사 고메즈가 경기 도중 사고를 당해 3년 뒤 사망했고, 1998년엔 중국 선수 상란이 경기 도중 도마 위로 떨어져 척추를 다치는 중상을 입었다. 이 같은 사고는 2000 시드니올림픽에도 이어졌다. 도마를 넘던 남자 선수가 추락해 다시는 운동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부상을 입은 것이다. 이처럼 기존 모양대로라면 손을 잘못 짚었을 경우 떨어지면서 도마의 모서리에 부딪히거나 걸려 큰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컸다. 

이 때문에 국제체조협회(IGF)는 기존 말 모양의 도마를 포기하고 더 안전한 형태의 도마를 구상, 2001년 국제 경기부터 이용하기 시작했다. 새로 디자인된 도마는 앞쪽 모서리가 땅 쪽을 향하게 해 선수들이 도약에 실패해 도마와 충돌했을 때의 충격을 줄였고, 쿠션을 두텁게 덧대 공중 연기 중 추락했을 때 덜 다치게 했다. 또 선수들이 추락하면서 도마의 다리에 부딪혀 골절상을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다리도 정 가운데 두꺼운 받침대가 있는 '테이블 식'으로 바꿨다. 

 

 

도마(Tomas)
헬라식 이름으로 [디두모]라고도 불리우는 [도마]("쌍둥이"라는 뜻)는 예수님의 열 두 제자 가운데 가장 의심이 많았던 제자로 알려져있다. 도마가 예수님을 만나 제자로 부르심을 받게 된 경위는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다른 제자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도마 역시 하나님을 경외하며 메시아의 강림을 고대하던 중에 예수님의 제자로 택함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갈릴리 출신의 어부였던 도마는 열정적이면서도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예수님께서 충성된 마음으로 헌신하기로 작정한 도마는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위험이라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도마는 예수님께서 병든 나사로를 방문하시려고 할 때 다른 모든 제자들의 반대에 맞서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선언할 만큼 담대하고 의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시는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미고 있는 유대땅에 간다는 것은 곧 생명을 내놓는 행위였다.

그러나 도마에게는 어떠한 난관이나 생명의 위협도 장애가 될 수 없었다. 오직 사랑하는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기 원하는 도마의 마음은 사지에라도 따라갈 각오가 되어있던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확고한 도마의 헌신된 마음은 현실적인 데에 머무르고 있었다. 자신이 헌신적으로 사랑하고 따르는 예수님께서는 죽음마저 초월하신 하나님이심을 알지 못하고 같이 죽기를 작정한 도마의 비장한 결심은 인간적인 생각의 테두리 안에 머물러 있었다. 

인간의 이성적인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도마의 사고 방식은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사역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십자가에서의 처참한 죽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완성하실 예수님의 길을 알지 못하는 도마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을 등지고 도망치는 인간의 사랑의 한계를 보이고 말았다. 

그 후 예수님을 잃고 비탄에 잠겨 있던 도마는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동료들의 말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을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손으로 만져보지 않고 믿는다는 것이 도마에게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인간적인 사랑과 신뢰의 끄트머리에서 회한과 희혹에 잠겨있던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진정한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신앙고백을 하는 도마의 심령에는 모든 의심의 먹구름이 걷히고 기쁨과 감사만이 가득하였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있던 날 도마는 성령충만함을 받고 인도에가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순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의심 많은 도마]는 그의 호기심과 의심을 정직하게 표현하고 끊임없이 진리를 간구함으로써 결국 진리를 깨닫고 참된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용기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믿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는 도마처럼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세상지식에 얽매여 기적을 행하시는 전능자 하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2천년 전에 도마에게 부드럽게 책망하셨던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의심의 장막을 걷지 못하고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자들을 향해 말씀하신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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