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어 윌 비 블러드>
감독 : 폴 토마스 앤더슨
주연 : 다니엘 데이 루이스,폴 다노
데어 윌 비 블러드, 피 흘리는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
대니얼 플레인뷰는 석유 시추 사업가로 사업의 수완이 뛰어나고 경쟁심이 무서울 정도로 강해서 성공을 위해선 수단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다. 가령 그는 거의 무신론자이지만 사업을 위해서라면 싫어하는 교회에 나가 싸대기까지 맞으며 세례를 받고 그는 가족을 두지 않았지만 가족적인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해 탄광 사고로 죽은 동료의 자식인 H. W.를 친자식처럼 데리고 다닌다. 그러다 H. W.가 장애를 입고 사업상 효용이 떨어지자 옆에 두지 않고 농아 학교로 보내 버린다. 이런 매정한 모습도 보이지만 H.W.를 친자식처럼 아끼는 면모도 보인다. 아들이 장애를 얻기 전에는 아들과 장난도 치며 곧잘 지냈고 정말로 혈육처럼 여겼던 듯하다. 특히, 아들이 장애가 생긴 뒤 남들이 아들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며 반복적으로 아들 이야기를 꺼낸 사업가에게는 살해 위협까지 한다. 아들을 농아 학교로 보낼 때도 시종일관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작중 혈육에 매우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여러 해 같이 일한 동료보다 어제 나타난 이복동생을 더 신뢰하는 정도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내면을 드러낸 적이 없지만 만난 지 얼마 안 된 이복동생에게는 속마음을 솔직히 털어놓고 "네가 있어 숨통이 트인다"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이때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을 증오하고 남에게 지고는 못 사며 성공하려는 이유도 사람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라는 뒤틀린 성격을 은연중에 내비치기도 한다. 이복동생에게는 우린 같은 피가 흐른다고 강조한 반면 양아들과 반목하는 순간에는 피 한 방울 안 섞였다는 점을 강조하는 면에서 그의 혈육에 대한 집착을 또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복동생으로 알던 자가 가짜였고 진짜 이복동생은 죽었다는 사실을 알자 이복동생이 남긴 일기장을 끌어안고 울기까지 한다.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와 관계가 틀어지고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극도로 꺼려 하는 것으로 미루어 그의 이런 성향은 애정결핍에서 기인하는 듯하다. 혈육 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으려 하며 특히 자신을 이용해 이득을 보려고 하거나 위선적인 면모를 보이는 사람을 극도로 증오한다. 작중 이복동생으로 위장한 헨리는 정체를 알자마자 망설임 없이 죽여버렸으며, 일라이는 위선적이고 자신을 이용해서 자신의 성공을 뜯어먹으려 했을 뿐 아니라, 자신을 이겨먹으려 하고 여러 차례 모욕을 주었기에 패 죽여버렸다. 비정하지만 돈에 대한 집념,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완만은 대단한 사업가였지만 스스로의 광기에 점점 물들면서 파멸하고 만다. 여러모로 미국의 초기 자본주의의 짐승 같은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는 인물.
참고로 유니언 오일과 계약을 맺은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하고 스탠더드 오일을 디스하는데 2005년에 유니언 오일은 스탠더드 오일의 잔당(?)급에 불과한 셰브론에게 굴욕적으로 인수당했다. 아예 일개 자회사로 명의만 남겨두는 수준의 인수였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연기했다. 1991년작인 나의 왼발에 이어 이 작품으로 그는 두 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2013년엔 링컨(영화)의 에이브러햄 링컨 역으로 세 번째 수상.
SNL의 크루 빌 헤이더가 한 스킷에서 그의 성대모사를 했는데 어마어마한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줄거리
은광에서 홀로 일하는 "대니얼 플레인뷰"는 탄광으로 내려가던 중에 사고를 당해 걸을 수 없음에도 발견한 은괴의 인증을 받기 위해 자갈밭을 기어갈 정도로 집념이 강한 남자다. 후에 석유를 채굴하는 석유업자로 일을 하던 그는 기차역에서 우연히 만난 고아 H. W.를 데리고 다니며 자신이 가족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이라고 어필하며 사업을 확장한다. 어느 날 리틀 보스턴에서 온 폴 선데이가 가져다준 정보를 확인하고자 메추리 사냥을 하러 온 척하면서 해당 지역을 사전 답사한 뒤 선데이 가문의 황폐한 농장을 싼값에 사들인다. 선데이 가문의 주인인 에이블 선데이는 황폐한 농장을 사줘서 고맙게 생각하지만 석유가 나는 것을 알고 있는 폴 선데이의 쌍둥이 형 '일라이 선데이' 그 가격엔 팔지 않는다며 거래를 막으려다가 자기가 아니면 이런 땅에 투자할 채굴업자가 있겠냐고 강하게 배짱을 부리는 대니얼의 태도에 살짝 기가 죽고, 석유가 나오면 일라이의 교회에도 5천 달러를 주겠다는 사후 제안을 마지못해 받아들인다.
선데이 농장에서 지내며 매입할 땅을 알아보던 대니얼은 지역 주민들을 모아 자신의 사업을 설명하기 위한 프리젠테이션을 한다. 자신이 전국 각지에 유정을 갖고 있는 유능한 '석유업자'임을 어필하고, 자기 일꾼들의 가족들도 데려와 함께 살게 할 것이고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지어줄 것이며 메마른 토양 때문에 빵을 사치품처럼 여기는 사람들을 위해 관개 시설도 세워 농업이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모든 투자로 마을을 번창하게 할 것을 약속한 대니얼은 황폐한 삶에 지친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여 땅을 얻고 석유를 시추한다. 그 와중에 일라이는 물자 수송을 위해 대니얼이 닦을 길을 먼저 교회에 놓게 하고, 사업을 위해 데려온 인부들도 예배에 참석시키는 등 자신이 이끄는 '제3계시교'를 키우려고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무신론자에 가까운 대니얼은 탐욕스런 주제에 목사 노릇하며 자신을 이용해 이득을 챙기려는 일라이를 아니꼽게 본다. 결국 대니얼은 일라이가 자신을 찾아와 채굴 시작 기념식에 자기를 대중 앞에서 소개시키고 무사안일을 기원하는 축성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강권하자 그의 요청을 무시하고 스스로 축성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광산에서 사고가 일어나 한 인부가 사망하자 대니얼은 일라이에게 장례를 맡아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일라이의 교회를 찾는데, 알고 보니 일라이의 교회는 남부의 과격한 사이비 밥티스트 교회로 예배는 광신적이고 사람들은 일라이에게 성령이 깃들어 신의 기적을 대행한다고 추종한다. 대니얼의 부탁에 일라이는 사고가 일어난 건 기념식에 자기가 축복을 하지 못해서이며 인부들이 작업장에서 술을 마셔 악마가 깃들었다라는 등 궤변을 늘어놓고 여기에 진저리가 난 대니얼은 '할렐루야 쇼' 잘 봤다며 비꼬고선 자리를 뜬다.
대니얼이 바라던 석유는 잘 채굴되기 시작했으나 어느 날 석유 시추 작업 도중 천연가스가 분출하고 작업 현장을 구경하던 H. W.는 사고로 머리를 다쳐 농아가 되어 버린다. 가스가 뿜어져 나온 뒤에는 석유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와 석유 시추 시설을 삼키고 급기야 불까지 붙어 거대한 블기둥이 솟는다. 아들의 귀가 먹고 아비규환 속에서도 석유 매장량이 얼마나 많으면 이러겠냐며 자신 외에는 아무도 가질 수 없다고 불기둥을 쳐다보는 대니얼의 눈빛은 섬뜩하기만 하다. 그 뒤 일라이는 대니얼을 찾아가 약속한 5천 달러를 요구했으나 갑자기 화가 난 대니얼은 일라이를 구타하기 시작한다. 원하는 건 돈뿐이면서 예언자인 양 행세하는 일라이가 아니꼬왔던 대니얼이 일라이에게 "네놈이 그렇게 대단한 예언자라면 내 아들이나 치료해 보라"고 비꼬자 일라이는 "아들의 사고도 내가 시추 시공식에서 축성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웃기지도 않은 헛소리를 지껄였고, 제대로 꼭지가 돈 대니얼은 일라이를 석유가 고인 웅덩이에 처박아 버린다. 그리고 집에 온 일라이는 석유 찌꺼기 범벅인 몰골 그대로 저녁 식탁에서 아버지에게 저 이방인을 함부로 들여보냈다면서 무능하고 한심하다는 폭언을 하고는 그대로 뛰어들어 구타하는 패륜적인 짓거리를 벌인다.
예기치 않은 사고로 사랑하던 아들이 장애인이 되어 기분이 찜찜하던 대니얼의 앞에 이복동생이라는 자가 나타난다. 동생이라고 주장하는 헨리 플레인뷰는 대니얼과 외모도 제법 닮았고, 그가 이야기하는 어린 시절 동네 이야기, 가족 이야기가 꽤나 신빙성이 있었기에 대니얼은 동생을 곁에 두기로 한다. 한편 H. W.는 장애가 생긴 후 거리감이 생긴 아버지와 어디선가 갑자기 굴러들어 온 헨리를 질투해 집에다 불을 질러버린다. 이에 대니얼은 H.W를 서부에 있는 농아 학교로 매정하게 보내버리고는 동생과 같이 사업을 시작한다. 대니얼은 사업을 하면서도 주변의 그 누구도 믿지 않았기에 '자신과 같은 피가 흐르는 가족이라면 좀 더 믿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나름대로 기대를 한 것.
동생과 사업을 운영하던 어느 날, 대니얼의 석유 사업을 인수하려는 거대 석유 회사인 스탠다드 오일의 간부가 찾아와 대니얼에게 이제 아들을 보살피며 느긋하게 살라며 대니얼의 유정을 팔라고 거액을 제안하지만, 대니얼은 자식 이야기를 꺼낸 것에 오히려 격분해서 그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그 자리를 떠나버린다. 이후 대니얼은 자신을 모욕한 스탠다드 오일에 복수하고자 경쟁사인 유니언 오일이 있는 해안가까지 송유관을 설치해 기름을 공급하기 위해 땅 주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헨리와 함께 미친듯이 송유관을 연결하기 위해 측량하고 다닌다. 측량 도중 한숨 돌리던 대니얼은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면서 동생과 대화를 나누지만 헨리는 대니얼과 함께 지냈던 어린 시절과 고향에 대해서 제대로 이야기를 하지 못했고, 이를 보던 대니얼은 동생이라는 이 작자가 실은 동생 이름을 팔아먹는 가짜라는 것을 눈치챈다. 실제로 헨리를 자칭하던 자는 우연히 대니얼의 진짜 동생을 만나 함께 일하면서 대니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그의 일기를 갖고 있었던 덕분에 대니얼에게 자기가 진짜 동생인 것처럼 접근할 수 있었던 것. 결국 대니얼은 격분해 가짜 헨리의 머리통에 총을 쏴서 죽여 버린다. 그렇게 죽인 이후에는 죽은 동생의 어렸을 적 사진을 보면서 홀로 남은 자신의 신세를 비탄하면서 흐느끼는 모습도 보인다.
다음 날 아침, 깊은 잠에 빠진 대니얼을 깨운 땅 주인에게 대니얼이 송유관이 지나갈 수 있도록 임대를 요구하지만 일라이가 이끄는 교회의 독실한 신도였던 땅 주인은 자신과 함께 교회에 나가 예배에 참여하고 세례를 받을 것을 요구한다. 대니얼은 교회에 나가라는 제안을 듣자 똥 씹은 표정으로토지 임대료를 높게 쳐주겠다고 제안하지만 땅 주인은 대니얼이 한 짓을 알고 있다는 듯 죄를 씻어야 한다며 대니얼이 헨리를 쏘아 죽인 권총을 건낸다. 이제 결국 대니얼은 마지못해 일라이의 교회에 나가는데 세례를 받는 날 이번엔 반대로 일라이가 대니얼을 마구 구타한다. 비록 친자식은 아니지만 H.W.에 대해 일말의 부정을 가지고 있던 대니얼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과 복수심을 갖게 한 셈. 그리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대니얼이 교회를 위해 5천 달러를 기부하겠다는 억지 약속을 받아낸다.
이러한 치욕을 모두 감수하고 대니얼은 결국 송유관을 유니언 오일에 연결하는 데 성공, 백만장자가 된다. 그리고 대니얼은 다시 아들인 H.W.를 불러온다. 아들과 다시 재회 후 아들과 맛있는 식사를 위해 식당을 찾은 다니엘은 그 식당에서 스탠다드 오일의 간부와 다시 만나게 되고, 거기서 대니얼은 그 간부에게 자신의 아들을 보여주며 자신은 일도, 가정도 모두 지켰다고 내가 너에게 이겼다며 엄청나게 욕설을 퍼붓는다.
세월이 흘러 커다란 저택에서 살게 된 대니얼. 경제적으로는 엄청난 거부가 된 듯하지만 인간적으로는 완전히 붕괴된 모습을 보인다. 선데이 가문의 막내딸 메리와 결혼한 H.W.는 결혼식에도 자신의 아버지를 초청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부자 관계가 상당히 틀어진 듯하다. H.W.는 어려서부터 대니얼에게 어깨 너머로 배워온 석유 사업을 자신의 손으로 시작하고자 멕시코로 떠나 새 회사를 차리겠다는 결심을 하고, 마지막 인사를 하러 대니얼을 찾는다. 10년 이상 만나지 않아 어색한 정적 속에서 H.W.가 억지로라도 몇 가지 고마웠던 점을 꺼내며 부자지간의 정을 기억하려고 하나 정작 대니얼은 그가 자신의 친아들이 아니라 그저 고아였음을 밝히고 석유 사업에 나서겠다는 H.W.에게 "넌 이제 나의 적이야" 라고 선언한다. 여기서 대니얼에게 크게 실망한 H.W.는 당신이 친부가 아니라는 걸 신께 감사드린다며 괴로운 표정을 지은 채 떠난다. 격분한 대니얼이 떠나는 H.W. 뒤에다가 "바구니의 사생아"라며 욕을 마구 퍼붓는다. 다만 이런 말과는 다르게 실제로 대니얼 본인은 H.W.를 아끼고 있었기에 그가 떠난 이후로 슬픔으로 인하여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뒤 집 안의 볼링장에서 뻗어 있는 대니얼에게 일라이가 찾아온다, 일라이는 제3계시교의 독실한 신도 소유의 광활한 미개발지를 개발하게 해주겠다면서 땅을 10만 달러에다 팔겠다는 제안을 하고, 과거에 받지 못한 기부금 5천달러도 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언제나 일라이를 아니꼽게 생각하던데다가 이전에 교회에서 철저히 모욕을 당한 대니얼은 일라이에게 본인이 가짜 선지자임을 인정하고 하느님은 미신일 뿐이라 외치면 투자를 해주겠다면서 일라이에게 "나는 가짜 선지자이며 하느님은 미신이다!"라고 여러 번 외치게 만든다.본격 역관광 그리고 여러 차례 자신이 가짜 선지자라는 것을 외치던 일라이에게 대니얼은 사실 그쪽의 석유는 이미 예전에 퍼냈다고 엿을 먹인다. 석유 지대가 지하에서 넓게 통해 있어서 대니얼 쪽의 유전에서 퍼올리면 결과적으로 유전 인근 석유 지대까지 다 같이 마르게 되는 것인데 지질학적 지식이 있을 리 없는 일라이가 그걸 모르고 대니얼에게 협상을 제안한 것. 당황한 일라이는 울먹이며 돈이 필요하다며 애원한다. 대공황이 올 것을 가르쳐 주지 않은 하느님을 원망하는 일라이에게 대니얼은 진짜 예언가는 폴이라며 폴은 유전이 있는 것을 알았고 그걸 자신에게 알렸으며, 그 대가로 거액을 받아 지금은 사업을 하며 떵떵거리고 산다고 알려주며넌 신께 선택받지 못했다고 몰아붙인다. 조금이라도 석유가 남아있을 거라는 일라이에게 대니얼은 밀크셰이크 드립을 하고, 더 이상 모욕을 참지 못한 일라이가 대들자 대니얼은 일라이를 메치고 죽이려 든다. 결국 달아나려던 일라이는 대니얼에게 맞아 죽고 대니얼은 그의 머리를 볼링핀으로 깨버린다. 소란을 듣고 아래층으로 내려온 집사가 일라이의 시체 옆에 주저앉아 있는 대니얼을 부르자 대니얼은 능청스럽게 "다 끝냈네(I'm finished)"라고 말하면서 지친 모습을 보인다. 이후 곧바로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다니엘 플레인뷰는 표면상 '가족주의'를 강조하지만, 물론 비즈니스가 우선이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금년도 아카데미상을 석권했던 코언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함께 미국 영화의 새로운 변화를 대변하는 영화다. 늘 ‘휴머니즘’을 내세우는 할리우드의 일반적인 성향과 달리, 이 두 편의 영화들은 9/11 이후, 세계를 바라보는 미국 영화의 변화된 세계관을 담고 있다. 물론 <데어 윌 비 블러드>를 만든 폴 토마스 앤더슨이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만든 코언 형제는 이른바 ‘작가’라는 범주에 포함되는 영화들을 만들어 온 감독들이기는 하지만 이 두 편의 영화들은 그들의 전작들이 지녔던 냉소주의를 넘어서는 지점이 있다.
<데어 윌 비 블러드>의 전반부 10여 분 동안 대사가 없이 진행된다. 이 10여 분 동안 관객이 만나게 된 것은 먼지가 풀풀 날리는 황량한 작업 현장에서 유정을 찾기 위해 작업하는 다니엘 플레인뷰와 그의 말 없는 동료들의 모습이다. 이 먹먹함을 채우는 것은 간간히 들려오는 작업 도구의 음향들과 록 그룹 ‘라디오 헤드’의 리드 기타리스트인 조니 그린우드가 맡은 미니멀한 배경 스코어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에 사용된 그것과 같은 신경질적인 음향은 이 영화가 ‘인류의 역사’를 축약하려고 했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처럼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를 축약하려 한다는 것을 예고하는 듯하다.
영화 속에서 일라이(폴 다노)는 ‘종교’를 상징한다면 다니엘은 ‘자본’을 상징한다.
사회주의적 시각을 견지했던 매우 이례적인 미국 작가 업튼 싱클레어의 『Oil!』을 원안으로 삼고 있는 <데어 윌 비 블러드>는 그 자체가 미국 캘리포니아 석유 산업에 대한 보고서인 동시에 미국 자본주의의 성립에 관한 성찰을 다루고 있다. 침묵으로 일관된 10여 분의 시간이 지나고 침묵을 깨는 것은 사업가로 성장한 다니엘 플레인뷰가 한 마을의 사람들을 모아 놓고 유정을 개발하기 위한 연설이다. 이 연설에서 그는 자신의 우월성을 ‘가족주의’라는 도덕성의 우월성으로 자신을 홍보한다. 하지만 영화 내내 그의 이런 주장은 모순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근본적으로 그의 아들은 실제로 자신의 혈육이 아니라 죽은 동료의 아들이기도 하지만 영화의 전반부에서 오히려 다니엘은 그런 아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인다. 하지만 그의 이런 애정은 아들이 청력을 잃고 이복동생이 등장하게 되자 돌변한다. 그의 편협한 애정은 아들 대신 동생에게 향하고 아들은 버려진다. 다니엘에게 있어 ‘가족의 사랑’이란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는 것이다.
다니엘의 아들에 대한 사랑은 어느 순간 멈추어버리고 대체되기도 한다.
하지만 <데어 윌 비 블러드>는 단지 ‘다니엘 플레인뷰’라는 탐욕스러운 인간에 대한 탐구로 멈추지 않는다. 이 영화의 ‘괴물’인 다니엘에게 맞서는 존재는 광신적인 기독교 지도자인 청년 일라이다. 신의 전능을 빌려 마을의 권위를 점하는 이 청년으로 대변되는 것은 현재까지도 미국이라는 나라의 중심을 차지하는 ‘복음주의’의 풍토다. 그는 이 영화에서 ‘자본’을 상징하는 다니엘 플레인뷰와 ‘종교’를 통해 대립하는데, 냉혹한 자본가인 다니엘은 자신의 기준 밖에 있는 일라이에 대한 적대감을 폭력으로 드러내기까지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다니엘은 자신이 추구하는 이익을 위해서 결국 일라이라 대변되는 ‘교회’와의 타협의 순간을 만난다. 하지만 그들의 상징적인 결합은 단지 일시적인 것일 뿐 잠재된 적대감까지 상쇄된 것은 아니다. 결국 일라이는 자신에게 가해진 다니엘의 물리적인 폭력을 ‘종교’를 통해 다시 물리적으로 보복하며 이 즈음이면 일라이 역시 '괴물'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영화는 두 인물의 갈등과 일시적인 타협 등을 통해 ‘미국 자본주의’의 모럴을 묘사해낸다. 이들의 관계는 ‘자본’과 ‘교회’라는 요소로 구성된 미국 자본주의 역사의 축약이다. 하지만 이들의 결합은 단지 '탐욕어린 자본'과 '샤머니즘적인 종교'일 뿐이다. 결국 둘의 결합은 '평화'가 아닌 '파멸'을 향해 나아간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종교'와 '자본'의 기묘한 동거를 묘사한다.
<데어 윌 비 블러드>의 문제적 인간 ‘다니엘 플레인뷰’는 따지고 보면 아주 사악하기만 인물은 아니다. 그는 그 자신의 범위, 즉 초기 자본가로서의 ‘아량’을 지닌인물이다. 그는 사고로 숨진 직원들을 성의껏 돌보도록 지시하고 마을 공동체를 존중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아들이 땅을 판매한 가족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를 묻었을 때 ‘아무것도 줄 것이 없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할 만큼 냉정한 자본가다.
다니엘은 산업주의 자본가로서의 모럴을 본능적으로 체득한 인물이다. 그에게 자본가로서의 의무를 넘어선 ‘도의적 책임’이라는 개념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살인’들은 다니엘이 자신의 존재 또는 권위가 훼손되었다고 생각할 때에 벌어진다. 사실 그에게 ‘가족주의’란 그저 구호일 뿐이기는 하지만 그 자신의 내부를 지탱하는 명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끝내 다니엘은 내부적 붕괴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것은 그 자신의 자본가로서의 모럴이 가장으로서의 모럴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아들이 ‘독립’을 선언하자 ‘경쟁자’로 치부한 후 관계를 끊어버린다.
‘탐욕’을 기반으로 맺어진 다니엘과 일라이의 연대는 결국 파멸로 치닫는다.
결국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파멸을 향해 나아가는 영화다. ‘새로운 모럴’을 지니고 있는 다니엘은 결국 자신의 모럴 때문에 파멸로 나아간다. 그는 자본주의적 이윤 때문에 통제력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놓쳐버리지 않기 위해 결국 고립무원의 섬처럼 존재하게 된다. 결국 그는 진실한 인연의 끈이 모두 끊어져버리는 순간 파멸을 향해 나아가고 결국 분노를 폭발한다. 그리고 ‘나는 끝났다(I'm Finished)’라고 선언하는 순간에 도달하게 된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이 영화로 두 번째 오스카를 가지고 간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무시무시한 연기를 따로 떨어뜨려 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광란과 정상성의 중간쯤에 위치한 이 인간의 분노를 탁월하게 연기해냈다. 또 읇조리는 듯한 모습이지만 결코 이 메소드 배우의 살벌한 기에 전혀 짓눌리지 않는 폴 다노의 연기 역시 훌륭하다. 마치 사실주의 회화를 보는 듯한 촬영의 탁월함 역시 오스카 트로피로 증명된 바 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이미 마틴 스콜세지의 <갱스 오브 뉴욕>에서 ’폭력‘으로 점철된 미국의 역사를 상징하는 인물로 출연한 바 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은 이 영화를 통해 또 다른 차원의 미국의 정체성을 같은 배우를 통해 표현해낸다. 유사한 듯 다른 두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광기 어린 연기를 비교해 보는 것도 영화의 또 다른 재미가 될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