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현대문학

풀, 김수영

Jobs 9 2020. 6. 17.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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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거대한 뿌리, 민음사, 1974>         

 


           

작자 소개

서울 출생. 선린상고(善隣商高)를 거쳐 도일, 1941년 도쿄상대[東京商大]에 입학했으나 학병 징집을 피해 귀국하여 만주로 이주, 8 ·15광복과 함께 귀국하여 시작(詩作) 활동을 하였다. 김경린(金璟麟) ·박인환(朴寅煥) 등과 함께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간행하여 모더니스트로서 주목을 끌었다.

 

 

6·25전쟁 때 미처 피난을 못해 의용군으로 끌려 나갔다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었다. 그 후 교편생활, 잡지사·신문사 등을 전전하며 시작과 번역에 전념하였다. 1959년에 시집 《달나라의 장난》을 간행하여 제1회 시협상(詩協賞)을 받았고, 에머슨의 논문집 《20세기 문학평론》을 비롯하여 《카뮈의 사상과 문학》 《현대문학의 영역》 등을 번역하였다. 《거대한 뿌리》 《달의 행로를 밟을지라도》 등 2권의 시집과 산문집 《시여 침을 뱉어라》 《퓨리턴의 초상》 등은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에 간행된 것들이다.

 

 

초기에는 모더니스트로서 현대문명과 도시생활을 비판했으나, 4 ·19혁명을 기점으로 현실비판의식과 저항정신을 바탕으로 한 참여시를 쓴 그는 1945년 《예술부락》에 <묘정(廟庭)의 노래>를 발표한 뒤 마지막 시 《풀》에 이르기까지 200여 편의 시와 시론을 발표하였다.

이 시인이 가진 작품의 시사적(詩史的) 맥락에 대해 평론가 김현은 “1930년대 이후 서정주 ·박목월 등에서 볼 수 있었던 재래적 서정의 틀과 김춘수 등에서 보이던 내면의식 추구의 경향에서 벗어나 시의 난삽성을 깊이 있게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던 공로자”라고 말하였다. 사망 1주기를 맞아 도봉산에 시비(詩碑)가 건립되었고(1969), 미완성의 장편소설 《의용군》이 《월간문학》(1970)에 발표되었다. 민음사(民音社)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김수영문학상’을 제정하여 매년 수상하고 있다.< 자료출처 : 야후 백과 사전>         

            

요점 정리

성격:상징적,현실 참여적 
제재:바람에 쓰러질 듯 일어나곤 하는 풀 
형식:반복과 대구(對句)의 리듬 감각,대립적 구조 
주제:풀(민중)의 끈질긴 생명력 
출전:<창작과 비평>(1968) 
                               

시어 시구

풀이 눕는다  : '풀' 은 식물들 중에서도 가장 보잘것 없는 미물에 지나지 않으며 나약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이다.그 풀이 외적인 힘에 의해 쓰러진다.
비를 몰아 오는 동풍 : 풀을 눕히는 힘을 지닌 바람. 풀에 대한 가해자로서의 상징성을 띤다.  
풀은 눕고/드디어 울었다. : 풀의 나약함이 더욱 강조된 구절이다.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 나약한 풀이 삶에 대한 적극성과 능동성을 지닌,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존재로 전환된다. 
* 다른 해석 : '바람보다 빨리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을 독재 권력에 항거하는 민중의식의 상징으로 볼 수 없으며 오히려 절망에 이른 존재가 사랑의 단비를 통해 소생하는 인생론적 시로 봐야 한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 바람 앞에 무력하던 '풀'이 그의 의지로 극적인 승리를 획득하게 된다. 즉 풀이 바람에 의해서 움직이지 않고 자기 스스로의 주체적 의지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구체화하고 있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바람'과의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풀이 더 크고 넓은 생명력을 가지게 됨을 암시한 시구이다. 

                              

이해와 감상

< 이 작품은 시인이 타계하기 직전에 마지막 남긴 유고 작품으로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창작되었다. 이 작품은 '풀'과'바람'의 대립 구조로 짜여 있는데, 시인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마치 잡초처럼 질긴 생명력을 지속해 온 민초(民草)들의 삶을 노래하고 있다.

시 안에서 '풀'과 '바람'의 대립은 '눕다;일어나다', '먼저;늦게', '울다;웃다'의 대립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바람'의 속성보다는 생영력이 강한 '풀'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데 효과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또한, '더 빨리'나 '먼저'라는 표현은 행위자의 자유로운 의지를 전제로 한다. 그러한 뜻에서, 이 작품은 '풀'이 상징하는 존재(存在)의 자 유를 노래한 시라고 할 수 있다. >

 이 작품의 표면적 문맥은 굳이 해설할 필요조차 없을 만큼 단순하다. 땅 위에 숱하게 돋아나 있는 풀이 비를 몰아 오는 바람에 나부껴 눕고 울다가 마침내는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웃는다는 것이 대체적인 내용이다. 물론 이처럼 단순한 내용만으로 요약할 수 없는 미묘한 느낌과 반복되는 말을 통한 리듬의 흐름이 의미를 따지기 이전에 어떤 은밀한 공감을 일으키는 점은 따로 유의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 시는 분명히 풀과 바람 그 자체만을 노래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풀과 바람은 어떤 상징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것은 대체 어떤 것일까?
 풀은 세상에 있는 생물 중에서 가장 흔한 것이다. 그것은 어디에나 있다. 풀은 또한 모든 목숨 가진 것들 중에서 가장 질긴 생명력을 지닌 것이다. 그것은 일부러 가꾸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자라나고, 없애려고 하여도 없어지지 않는다. 이와 같은 속성으로 해서 풀은 `세상에 무수히 많이 있으면서 어떤 시련에도 견디어 내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존재'라는 의미로 쉽게 이해된다. 이 작품에서의 풀 역시 그러하다.
 작품의 문맥에 의하면 바람은 이러한 풀의 생명을 억누르는 어떤 힘에 해당한다. 그 억누름은 쉽게 성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바람이 불 때마다 풀은 눕고 또 운다(즉, 바람에 흔들리어 소리를 낸다). 그러나 바람은 풀의 생명력을 끝내 완전히 억누르거나 없애지 못한다. 풀은 바람이 지나가면 곧 일어나고, 어떻게 보면 바람이 부는 순간에도 스스로의 삶을 지키고자 싸우면서 일어나려 한다.
 이렇게 볼 때 이 작품의 근본적 의미는 대략 드러난다. 풀과 바람의 싸움은 곧 이 세상에 무수히 있는 굳센 생명들과 그것을 일시적으로 억누르고 괴롭히는 힘과의 싸움이다. 이 싸움을 노래하면서 시인은 하잘것 없는 듯이 보이는 생명의 끈질긴 힘이야말로 모든 외부적 억압을 이겨내는 것임을 지극히 평범한 말씨와 어조로, 그러나 조금도 흔들림 없이 말한다.

 이와 같은 일반적 의미는 좀더 구체적으로 해석한다면, 오랜 역사를 통하여 억세고 질긴  삶을 지켜 온 민중과 그들을 일시적으로 억압하는 사회 세력과의 관계를 암시하는 것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들판의 수많은 풀처럼 이 세상에 언제나 무수히 있어 왔던 서민들, 풀이 끊임없는 시련을 견디며 삶을 지키고 번성하였듯이 그렇게 살아 왔던 민중들 ― 이러한 상징적 연결은 극히 자연스럽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어떤 사람들은 민중을 `민초(民草)'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와 같은 해석을 거쳐서 본다면 이 작품은 역사 안에서 끊임없는 시련을 받으며 살아 온 민중이 결국은 그들을 누르는 일시적 강제의 힘을 이겨내는 생명력의 원천임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해설: 김흥규]                    

 참고 자료

'풀'과 '바람'의 상징적 의미 : 이 시에서 '풀'과 '바람'의 관계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바람'은 '풀' 을 눕히고 울리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비를 몰아다 주기도 한다. 또 '풀'은 처음에는 바람에 나부껴 눕고 울지만, 2연에서는 바람보다 빨리 눕고 바람보다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3연에 이르면 풀의 움직임은 아예 바람을 앞질러 버린다. 그리하여 바람보다 늦게 눕고 늦게 울어 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먼저 웃으며 급기야는 바람이 미치지 못하는 땅 속 깊은 곳에서 풀뿌리가 스스로 눕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이 시에서는 '바람'과 '풀'의 관계는 단순히 지배 계급과 민중 사이의 대립과 갈등 관계로만 보기 어려운 복잡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풀'과 '바람'의 관계는 지배 계급과 민중의 관계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대립과 갈등을 포함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는 복합적인 관계 를 지닌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옳다. 즉 한편으로는 대립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 의존하고 있는 관 계, 다시 말하면 대립과 상호 의존의 동시적 관계로 파악해야 한다.'풀'은 '바람'과 대립하는 한편 의존하기도 하면서, 그 자체의 생명을 확장·심화해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수영 시의 문학사적 의의 : 김수영은 신동엽과 함께 1960년대 한국 시단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평 가된다. 특히 1970년대 이후 한국시에서 중요한 흐름을 이루었던 민중문학의 선구자로서 이 두 사람은 대단 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민중적인 성격이 강한 이 두 사람의 시는 모두 4.19의 역사적 경험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신동엽은 투철한 역사 인식과 건강한 민중성에 기초하여 시를 쓴 데 비해,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은 김수영 은 4.19를 계기로 점차 모더니즘의 한계에서 벗어나 강렬한 현실 인식과 민중성에 기초한 시를 쓰게 된다. 그런 점에서 김수영은 한국의 대표적인 모더니스트로, 또 모더니즘의 태내에서 자라난 모더니즘의 비판자로 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발표한 '풀'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김수영이 모더니즘의 한계를 넘어서서 투철한 역사 인식과 민중 의식을 획득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시여 침을 뱉어라 : 1968년 4월 부산에서 펜클럽 주최로 행한 문학 세미나에서 발표 원고로 그의 현실 참여적인 문학 정신이 잘 드러나고 있다. 나중에 그의 산문집 제목이 되기도 했다.다음은 시에 대한 그의 관점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그 글의 주요 부분이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의 형식은 내용에 의지하지 않고 그 내용은 형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문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민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인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문화와 민족과 인류에 공헌하고 평화에 공헌한다. 바로 그처럼 형식은 내용이 되고, 내용이 형식이 된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이 시론도 이제 온몸으로 밀고 나갈 수 있는 순간에 와 있다. '막상 시를 논하게 되는 때에도' 시인은 시를 쓰듯이 논해야 할 것'이라는 나의 명제의 이행이 여기 있다. 시도 시인도 시작하는 것이다. 나도 여러분도 시작하는 것이다. 자유의 과잉을, 혼돈을 시작하는 것이다. 모기 소리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시작하는 것이다. 모기 소리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시작하는 것이다.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그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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