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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s 9 2025. 4. 3.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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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지

Grunge

 

시애틀 중심의 얼터너티브 락

 

기원

장르

얼터너티브 록, 펑크 록, 노이즈 록, 개러지 록, 인디 록, 헤비 메탈, 하드 록

지역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등장 시기

1980년대 중기

시초작

Come On Down (1985, 그린 리버)

시대

1985년 - 현재

전성기 1991년 - 1997년

파생 장르

포스트 그런지




'그런지(Grunge)'는 먼지나 때라는 뜻으로, 깔끔하지 못하고 지저분한 스타일을 가리킨다. 1990년대에 유행한 그런지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미국 밴드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을 통해 확산됐고, 당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유행해 대표적인 하위문화 중 하나가 됐다. 

 

 

90년대 초반·중반 시애틀을 중심으로 미국에서 락 씬을 완전히 싹쓸이했던 장르. 얼터너티브 록의 하위 장르이며 또한 그 중심에 섰던 록 음악을 말한다. 하드코어 펑크와 헤비메탈의 특징이 섞인 게 특징이지만, 이런 요소를 공유하고 있는 스래시 메탈과는 다르게 연주 테크닉이 단순하고 속도가 중박인 편. 미국보다는 영국에서 먼저 주목하였는데, 동시대의 영국에선 슈게이징이 유행하고 있었다. 이후, 너바나를 필두로 미국 락 씬을 점령했다.

 

90년대 후반부터 포스트 그런지라는 장르로 발전, 특유의 패배주의적 감성에 메탈적인 감성과 멜로디컬하고 리드미컬한 사운드를 좀 더 추가해 큰 인기를 끌었으며, 2010년까지 수명을 이어나갔던 장르이다.

 

사실 그런지가 무엇인지는 포스트 그런지가 나온 후에야 정립되었는데, 그 이유는 위에도 서술되었듯이 음악적 구분이 매우 모호하였기 때문이다. 메탈 특유의 하이비트 드럼이 배제되고(그렇다고 느리단 건 아니다) 기타의 드라이브 톤이 좀 더 강조된, 메탈도 펑크도 아니고 비교적 단순한 A-B-A-B-C-A-B 타입의 팝의 형태를 가진 단순한 록 음악이 유행하고 그와 유사한 성향이었던 시애틀 중심의 얼터너티브 락이 그런지로 규정되었다.

 

간단히 말해서 미국에서 활동하거나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면서 메탈이라기엔 좀 약하고 하드락/블루스라기엔 끈적함이 없고 전반적인 정서가 우울하고 90년대부터 유행했다 싶은 스타일이 그런지, 그런지에 영향을 받았는데 이게 MTV화된 게 포스트 그런지다. 크리드가 제일 대표적이며, 니켈백이 그 뒤를 잇는다. 이들을 포함한 포스트그런지는 특히 미국에서 록과 팝에 걸쳐서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지만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낮은 편.

 

그런지라는 장르 자체의 존재를 부정하고 너바나를 펑크, 앨리스 인 체인스를 메탈로 구분하는 간단한 방법을 좋아하는 평론가가 있을만큼 장르의 이론적 공통점은 그다지 찾아보기 힘들고 특유의 디스토션을 잔뜩 먹인 기타 사운드, 일부러 단순하게 치는 듯한 연주력과 루저 분위기가 어느 정도 특징이 될 수는 있다.

 

이러한 모호한 음악적 특징으로 인해 일부에서는 "장르가 아니다", "시대적인 용어다"라는 말까지 나왔지만 사실 그런지만큼이나 특징이 모호하고 광범위한 장르도 많고, 오히려 그런지 자체는 음악 장르 중에서도 발원지, 용어의 근원, 등장 시기 등이 모두 상세하게 밝혀져 있는 매우 드문 사례이다. 그런지에 특징이 없다, 시대적 용어이다는 등의 의견은 국내 평론가들의 80년대 미국 인디 록에 대한 무지로 인한 편견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그런지의 성공 이후 장르가 지나치게 상업화되자 많은 밴드들이 그런지의 틀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것의 영향도 있다.

 

일반적으로 그런지로 분류되는 밴드는 80년대 초반의 뱀 뱀(Bam Bam), 80년대 중반부터는 그린 리버(Green River), 멜빈스(Melvins), 사운드가든과 80년대 후반부터 결성하고 활동한 마더 러브 본(Mother Love Bone), 머드허니(Mudhoney), 너바나, 앨리스 인 체인스, 펄 잼, 스톤 템플 파일럿츠 등이 있다. 이들 중 이른바 시애틀 4인방, Big 4라고 불리는 너바나, 펄 잼, 앨리스 인 체인스, 사운드가든은 그런지 록 밴드로서 크게 인기를 얻었지만 사실 원래 그런지 사운드와는 좀 차이가 있다. 본래의 그런지 음악은 80년대 초기 그런지 밴드들이나 초창기 음악성을 그대로 이어나간 머드허니 등의 밴드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다만, 그런지의 대중화를 이끌어낸 밴드들이 Big 4 밴드들은 맞다.

 

포스트 그런지 밴드라고 하면 넓게 말하면 그런지의 영향을 받은 밴드들, 푸 파이터스나 오디오슬레이브를 포함하기도 하지만 포스트 그런지의 주축은 역시 크리드와 니켈백이다. 니켈백 이후로는 수많은 인기 밴드들이 있으며, 이런 수많은 인기 밴드들은 얼터너티브 록과 뉴 메탈과 얼터너티브 메탈과 교집합을 형성하고 있다.

 

여담으로 커트 코베인, 레인 스테일리, 크리스 코넬은 모두 헤로인 중독이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쳐서 허무하게 사망하였다. 그런지 장르의 빅4 중 펄 잼의 에디만 빼놓고는 모두 보컬이 제 명을 못 다한 셈이다. 덤으로 스캇 웨일랜드까지 요절했으니...

 

그리고 헤비메탈 팬들 중에는 그런지 록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편. Nevermind의 성공은 80년대 헤비메탈에게는 몰락의 단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역사

 

그런지의 뿌리는 1970년대 후반 등장한 하드코어 펑크이다. 그런지의 창시자로는 미국 흑인인 Tina Bell이 거론된다. 당시 미국 인디 신에서는 하드코어 펑크 열풍이 불었고 미 전역의 도시에서 펑크 밴드들이 우후죽순 등장했다. 이는 시애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시애틀은 당시 하드코어 펑크의 중심지였던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D.C., 뉴욕 등과는 멀리 떨어져 있었고, 근처에 자체적인 인디 신이 등장할 만큼의 대도시도 없던 외딴 곳이었다. 이로 인해 시애틀의 하드코어 밴드들은 타 지역의 하드코어 신과는 전혀 다른 음악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 와중에 발매된 블랙 플래그의 1984년작 My War는 이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 앨범의 '헤비하고 느릿하게 연주된 하드코어 펑크' 사운드는 그런지 아티스트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자 그린 리버(Green River), U-멘(U-Men), 멜빈스(Melvins), 사운드가든 등의 밴드가 결성되었다. 이들은 하드코어 펑크에 기반했지만 상대적으로 느린 템포에 디스토션을 잔뜩 먹인 거친 기타 사운드, 우울한 분위기 등 타 지역의 밴드들과는 확연히 다른 고유의 음악색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그 특유의 음악성으로 서서히 로컬 신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음반사에서도 이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5년 그린 리버가 EP 'Come On Down'을 내놓으며 최초로 음악계에 입성, 다른 시애틀 밴드들 역시 연이어 음반사와 계약을 맺고 음반을 발표하게 된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음반이 1986년 발매된 컴필레이션 앨범 'Deep Six'와 'Sub Pop 100'으로, 그린 리버를 위시한 당시 시애틀 인디 밴드들의 주요 곡들을 담고 있으며 초기 그런지의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시애틀에 위치한 음반사 서브 팝 레코드 레이블에서는 이 새로운 음악을 적극적으로 밀어주었으며 이들이 그린 리버의 1987년 EP 'Dry as a Bone'를 홍보할 때 사용한 그런지(Grunge)라는 단어가 곧 이 새로운 장르의 이름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80년대 후반이 되자 장르의 형상이 제법 뚜렷해졌다. 새로운 그런지 밴드들이 제법 인기를 몰고 있었고 이들의 스타일을 따라하는 밴드들도 여럿 등장했다. 최초의 그런지 밴드였던 그린 리버는 해체 뒤 각각 머드허니와 펄 잼으로 분리되었다. 그 외에도 앨리스 인 체인스, 스크리밍 트리스, 마더 러브 본, 태드, 브래드, 그리고 너바나까지 다양한 그런지 밴드들이 결성되었다. 이들은 시애틀 인디 신에서 서로 상부상조하며 그런지 장르를 확립해 나갔다. 서브 팝의 노력도 빛을 발해 영국에서 주목받은 것을 시작으로 서서히 대중음악계에 그런지라는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는 '그런지'라는 용어도 장르의 이름으로 거부감 없이 사용되었다. 1990년의 너바나 인터뷰, 커트 코베인이 밴드를 '그런지 록 밴드'라고 지칭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1991년 너바나의 Nevermind가 대성공하고, 이어서 펄 잼의 Ten도 대성공을 거두며 그런지는 단숨에 메인스트림으로 부상하게 된다. 그런지는 90년대 초중반의 미국 록 음악을 완전히 점령하다시피 했으며, 수많은 그런지 밴드들이 이 붐을 타고 메이저로 진출했다. 기성 록 밴드들이 그런지의 요소들을 차용하기도 했고, 샌디에이고의 스톤 템플 파일럿츠를 비롯해 미국 각지에서, 심지어 영국 출신의 부시나 호주 출신의 캔들박스까지 시애틀이 아닌 다양한 곳에서 그런지 록을 하는 밴드가 여럿 등장했다. 그런지는 당시 청년 사이에서 엄청나게 유행했지만, 그 유명세가 붙으며 그런지라는 용어는 급격하게 상업화되기 시작했다. 마크 제이콥스가 그런지 패션을 창안했지만 그런지 뮤지션들은 멋이나 스타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별 생각 없이 지갑 사정이 넉넉치 않았기에 아무 옷이나 골라 입은 것 뿐이었다. MTV를 비롯한 언론 매체에서는 연일 그런지 열풍을 보도했고, 뉴욕 타임즈에서는 그런지게이트라는 대형 오보를 내기도 했다. 기존 그런지 음악가들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던 물건들이 그런지 이름을 달고 팔려나갔고, 온갖 어중이떠중이들이 그런지라는 명목 하에 각종 기행을 저질렀다. 한편 기존 시애틀 인디 음악계에서는 신예 그런지 밴드들이 사멸해 버렸고, 아예 그런지라는 단어 자체가 비웃음거리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런 상황은 기존 그런지 밴드들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이에 메이저에 오른 많은 밴드들은 그런지 음악에서 벗어나려 하거나, 자신들을 그런지라는 장르 아래로 묶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다.

 

커트 코베인의 자살 이후 그런지 음악은 점차 유행에서 벗어났다. 많은 밴드들이 성공 후의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약물 중독이나 소포모어 징크스에 빠졌으며, 그런지 자체가 지나치게 대중에게 노출되며 이미지가 빠르게 소모된 것도 있다. 이후 빈 자리는 포스트 그런지의 인기가 이어받게 된다.

 

 

그런지 밴드 목록

 

시애틀 4인방

 

너바나

펄 잼

앨리스 인 체인스

사운드가든

 

스톤 템플 파일럿츠

머드허니 (Mudhoney) : 초창기 그런지 록의 개척자 중 하나로 평가되는 "그린 리버 Green River"의 보컬을 맡았던 마크 암 Mark Arm과 기타리스트 스티브 터너 Steve Turner를 주축으로 1988년 결성된 밴드로 그린리버의 후신격에 가까운 밴드이다. 시애틀 그런지 씬의 최고참 뮤지션들이 주축이 된 밴드인 만큼 이들 역시 시애틀 그런지 씬에 꽤나 많은 영향을 준 밴드로 평가받고 있으며, 시애틀 그런지 4인방과도 친분이 두텁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영화의 세계에 로저 코먼이 있다면 시애틀 그런지의 세계에는 머드허니가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 'B급 정서의 제왕' 같은 밴드, 즉 그런지의 중요한 정서 혹은 특징의 하나일 '뭔가 루저하고 찌질하면서도 공격적인'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밴드의 하나이기도 하다. 대표곡으로는 1988년작 데뷔 EP "Superfuzz Bigmuff"에 수록곡 "Touch I'm Sick"과 1992년 발표된 세번째 앨범 "Piece of Cake"에 수록된 "Suck You Dry"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스크리밍 트리스 (Screaming trees) : 워싱턴주 엘렌스버그에서 결성하여 1985년부터 활동했다. 메이저 데뷔 음반은 1991년 Epic에서 발매한 Sweet Oblivion. 시애틀 4인방 다음으로 알려진 밴드이지만 국내에서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아무래도 1990년대 초까지도 대체로 메탈(이나 프로그레시브 록)을 중심으로 록을 수용해 온 국내 록팬들의 취향에선 미묘하게 지식 범위 밖이던 '미국스런' 감각에, 거기에 더해 역시 그 때까지 국내에서는 중요도에 비해 영 대우가 좋지 않았던 사이키델릭 록 취향도 섞여있던 덕분 등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그런지가 국내 록 팬(및 뮤지션 까지)끼친 가장 큰 영향의 하나가 (역시나 그런지가 소개 될 때 까지, 록 음악에 끼친 영향의 중요성에 비해 국내에서 관심이나 대우가 좋지 못했던)펑크를 뒤늦게 열공하는 것이 되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도 이 밴드가 재발견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지와 얼터너티브 붐이 일던 1990년대스런 감각을 가장 잘 보여주는 밴드의 하나로, (특히 대표적인 히트곡인 "Nearly Lost You" 같은 곡은) 아무 설명없이 듣기만 해도 '아~ (좋았던) 90년대구나' 하고 단박에 알아챌 수 있을 음악이다.

대표곡은, 앞서 언급한,1992년 "Sweet Oblivion" 앨범의 수록곡이자 영화 "싱글즈 Singles (1992)"의 수록곡으로도 꽤 흥행했던 "Nearly Lost You"(1992)와 1996년작 "Dust" 앨범의 "Look At You" 그리고, 리더인 마크 레너건은 커트 코베인과 생전에 친분을 유지하며 편지를 주고 받았을 정도로 돈독했던 사이였다.

캔들박스 (Candlebox)

디쉬왈라 (Dishwalla)

실버체어 (Silverchair) : 호주 출신의 3인조 밴드. 밴드가 큰 인기를 얻었을 때, 맴버들은 만 15세 정도였다.

부시 (BUSH)

컬렉티브 소울 (Collective Soul)

댄덜라이언 (Dandelion)

스킨 야드 (Skin Yard) : 이들 또한 시애틀 출신이다. 기타리스트인 잭 엔디노는 너바나의 Bleach 앨범의 녹음을 도와주었으며 펄 잼과 사운드가든의 드러머인 맷 캐머런 또한 이 밴드의 출신이다. 

태드 (Tad)

 

 

 포스트 그런지 밴드 목록

 

크리드 (Creed) : 제일 대표적인 밴드. 선대 그런지 밴드들의 음악을 계승하면서도, 자신들의 개성을 잘 살린 밴드로 평가 받는다. 데뷔앨범 My Own Prison(97)은 기존 그런지의 어두운 느낌이 강한편으로, 메인스트림 락 챠트에서 기록적인 히트를 했고, 2집 앨범 Human Clay(99)와 3집 Weathered(01)는 밝아진 분위기와 함께 팝적으로도 성공했다. 다만, 3집인 Weathered의 경우 대중적으로 인기는 여전했지만 1집과 2집에 비해 발전된 음악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이유로 평단에게선 호불호가 갈리는 편. 이후 멤버 간의 불화로 보컬 스콧 스탭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이 새로운 보컬 마일스 케네디와 함께 얼터 브릿지(Alter Bridge)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9년에 재결합하여 Full Circle이라는 앨범을 발매 했지만, 그 이후 다시 얼터 브릿지로 돌아갔다. 그리고 2023년 다시 재결합하여 2024년 투어 콘서트를 돌았고 2025년에도 투어를 돌 예정이다.

니켈백 (Nickelback) : 크리드가 비교적 전성기가 짧았던 반면 니켈백은 2001년부터 10년 정도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2015년 현재까지도 꾸준히 활동중이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도트리 (Daughtry) : 아메리칸 아이돌 출신의 크리스 도트리를 중심으로 결성된 밴드이며 06년 데뷔앨범이 메가 히트를 친다.

라이프 하우스 (Lifehouse) : CCM 성향의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가사와 서정적인 음악성으로 인기를 얻었던 밴드이다. 1집 No Name Face가 엄청나게 히트했으나, 이후에 발매된 2집 Stanley Climbfall이 지독한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으면서 멤버들이 교체되었고 사실상 리더인 제이슨 웨이드 혼자 팀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 2집 이후로는 팝적이고 대중적인 성향의 음악으로 활동 중이다.

퍼들 오브 머드 (Puddle of mudd) : 1집에 수록된 Blurry와 She hates me가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던 밴드이다. 다만, 1집 이후로 현재까지 1집에 비견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스테인드 (Staind)

후바스탱크 (Hoobastank)

식 퍼피스 (Sick Puppies)

쓰리 도어스 다운 (3 Doors Down)

씨어리 오브 어 데드맨 (Theory of A Deadman)

푸 파이터스(Foo Fighters) : 너바나의 드러머였던 데이브 그롤이 결성한 밴드.

 

 

 

포스트 그런지 - 얼터너티브 메탈

 

2000년대 빌보드 얼터너티브 송·빌보드 메인스트림 록부문 챠트를 이끌었던 핵심 밴드들이다. 아래 목록에는 서술되어있지 않지만 뉴 메탈 밴드들도 상당수 교집합을 형성하고 있다. 2015년부터 A7X를 비롯한 정통메탈 성향이 강한 밴드들이 부활 조짐을 보이고 챠트에서 호성적을 내고 있으며 동시에 트랜스코어 장르의 부상으로 세가 커지고 있지만 얼터너티브 메탈 씬들의 인기에는 근접하지 못하고 있는 편이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아래 서술한 밴드들 상당수가 과거의 음악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하기보다는 다양한 새로운 시도를 모색하는중.

 

2020년 현재에는, '포스트 그런지'와 '얼터너티브 메탈' 인기 밴드들은 이제 아재 취급을 받으며, 빌보드 'Hot Hard Rock Songs'차트나 'Mainstream Rock Charts'차트에서 1위와 상위권을 하고 있다.

Alter Bridge : 위에 언급 했던 크리드의 보컬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 들이 모여 결성한 밴드. 보컬인 마일스 케네디가 슬래시의 솔로앨범의 보컬로 참여함에 따라 덩달아 국내에서도 약간의 인지도를 얻는데 성공했다. 슬래시도 케네디를 전속 보컬로 쓰고 싶지만 이미 메여 있는 몸이라, 어쩔 수 없이 세션으로 쓸 수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크리드 때와는 다르게, 유럽 쪽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는 밴드이다.

헤일스톰 (Halestorm)

브레이킹 벤저민 (Breaking Benjamin)

크로스페이드 (Crossfade)

파파 로치

레드 (Red, 또는 R3D)

시더 (Seether)

샤인다운 (Shinedown)

Skillet

스테인드 (Staind)

스톤 사워 (Stone Sour)

쓰리 데이즈 그레이스 (Three Days Grace)

The Pretty Reckless

트랩트 (TRAPT)

 

 

 

 

 

  지저분하게 엉킨 금발에 쌍꺼풀이 진 창백한 얼굴. 보풀이 잔뜩 일어난 스웨터를 입은 왼손잡이 기타리스트. 우수가 서린 눈빛으로 고독을 노래하는 프론트맨. 마이크를 넘어뜨리고 기타를 부순 뒤 드럼셋으로 몸을 던지는 반골의 청년. 록의 마지막 아이콘이라고 불리우는 커트 코베인의 모습이다. 메탈의 시대가 저물어 갈 즈음 혜성같이 나타나 단 세 장의 앨범으로 시대를 휩쓸고 사라져 버린 그의 삶은 아직까지도 신화와 같이 묘사되고는 하는데, 그의 생애와 말로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어찌되었든 그가 일으킨 열풍이 차후 록 음악의 역사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는 데에 반론을 제기할 이는 없을 것이다. 그는 음악을 넘어 시대의 우상이었고, 90년대 대중문화의 상징이었으며, 사실상 최후의 록스타였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 시애틀에서 태동한 그런지 록(Grunge Rock)은 너바나(Nirvana), 펄 잼(Pearl Jam), 사운드가든(Soundgarden) 그리고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를 필두로 미국 전역을 넘어 세계적으로 대유행을 일으킨 음악적 기류이다. 상기된 네 개의 밴드가 보통 이 흐름의 주역으로 거론되며, 가끔씩 스톤 템플 파일럿츠(Stone Temple Pilots)나 멜빈스(Melvins), 혹은 같은 시애틀 출신의 머드허니(Mudhoney) 등이 그런지 록으로 함께 분류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지 록은 워낙 그 역사가 짧기도 했고, 비슷한 시기에 같은 지역을 연고로 둔 네 개의 밴드가 당시의 록 음악계를 흔들어 놓을 만큼 유난히 두각을 나타냈기 때문에 이들, 일명 시애틀의 'Big Four'를 그런지라는 흐름 자체로 보아도 무방하다.

  하지만 '그런지'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을 뿐, 이들의 음악적 정체성과 지향점은 사실 꽤나 다르다. 너바나는 스스로를 펑크(Punk) 밴드라 정의한 바 있고, 앨리스 인 체인스는 느린 템포의 리프를 중심으로 한 헤비메탈 밴드에 가까우며, 사운드가든은 헤비메탈의 하드웨어에 하드 록의 뉘앙스를 녹여냈다. 어떻게 보면 펄 잼이 가장 '그런지'의 이미지와 부합하기는 하지만 현재까지 이어져 온 그들의 음악적 행보를 두고 보면 장르의 구분이 무색하기도 하거니와, 'Black', 'Even Flow', 'Alive' 등 90년대 초의 메가 히트곡들은 영락없는 하드 록이기 때문에 이들을 그런지 록 밴드라고 정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따라서 오직 네 밴드의 '음악'만을 놓고 보면, 이들 모두를 아우르는 '그런지'라는 테두리는 모호하기만 하다.

 

  이 개성 강한 네 밴드의 음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차이점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바로 이전 세대의 음악인 헤비메탈에 가장 가까운 성향을 보였던 앨리스 인 체인스는 스펙터와 워윅 사의 출력 높은 베이스와 원 볼륨 / 원 톤의 G&L 슈퍼스트랫을 메인 기어로 사용한다. 음울하고 폭발적인 목소리와 무거운 리프, 그리고 보그너 앰프에서 뿜어져 나오는 센티멘털한 하이게인은 느리고, 끈적하고, 강력하다. 그런지라는 말을 대입하기 민망할 정도로 '메탈릭'한 사운드, 드세고 단단한 더블 보컬, 그리고 그에 비해 어딘가 수더분한 비주얼. 이것이 앨리스 인 체인스의 독특한 음악적 세계다.

 

  한편 사운드가든은 헤비메탈의 무게감을 유지하면서도 한층 세련된 음악적 센스로 그들만의 새로운 음악적 지평을 열었다. 맷 캐머런의 드러밍과 킴 테일의 리프 메이킹이 융합되며 만들어지는 특유의 분위기는 탄탄한 메탈 사운드 위에 건조한 하드 록의 톤을 입힌다. 이 신선하면서도 귀에 익은 듯한 스타일의 정립에는 클래식한 기어와 남성적인 목소리 또한 한몫을 했다. 록 사운드의 정석과도 같은 펜더 프레시젼 베이스와 깁슨 ES-335의 선율 위를 가로지르는 크리스 코넬의 보컬은 사운드가든의 정체성 그 자체이다.

  '그런지'의 원초적 의미에 가장 근접해 있는 두 밴드, 너바나와 펄 잼은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빈티지'하다. 보스 디스토션과 프로코 랫, 그리고 코러스와 플랜저. 이렇게 서너 개의 페달을 대충 바닥에 던져 놓고 펜더 머스탱으로 신경질적인 파워 코드를 긁어 대는 커트 코베인과 무릎까지 내려오는 베이스를 메고 무대 위를 뛰어다니는 크리스 노보셀릭, 그리고 그 뒤로 웃통을 벗어던지고 머리보다 높이 달려 있는 심벌을 마구 후려치는 데이브 그롤. 디스토션 기반의 극도로 단순화된 사운드 너머로 특유의 서정성이 엿보이는 너바나의 음악은 센세이션을 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이들이 만들어 내는 광란의 풍경은 90년대 록 음악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네 밴드 중 유일하게 지금까지 살아남은 펄 잼은 정규 앨범만 11장을 발표하며 다양한 음악적 변화를 꾀했다. 전성기가 지났음에도 새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어느덧 베테랑 아티스트가 되어 버린 그들의 음악적 세계는 실로 다채롭지만, 그 모든 커리어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하드 록’이라 할 수 있다. 빈티지한 콘셉트를 바탕에 둔 그루비한 리프와, 하드 록 밴드의 보컬로서는 다소 독특하게도 알이 굵은 목소리를 가진 에디 베더를 전면에 내세운 펄 잼은 객석으로 뛰어들고 공연장 천장에 설치된 비계에 매달리는 등 너바나의 광란에 못지않은 퍼포먼스를 보이며 그런지 시대의 입지를 확고히 하였다.

 

  이처럼 각자의 색채가 너무도 뚜렷했던 너바나와 펄 잼, 사운드가든과 앨리스 인 체인스의 음악은 그 시작점부터 근원을 달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커트 코베인의 급작스러운 죽음을 기점으로 시애틀 록의 인기가 사실상 종말을 맞았던 탓에 결국 확실한 합일점에 이르지도 못했다. 그들은 활동하는 기간 내내 서로를 의식하고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기보다는 각자의 위치에서 고유한 정체성을 지키는 데에 집중했고, 멤버의 자살과 헤로인 중독, 밴드의 와해 등 제각기 다른 요인으로 인해 20세기와 함께 쓸쓸한 종말을 맞았다. 따라서 그런지 록을 단순히 그들의 음악적 색채를 정의하는 장르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러한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런지(Grunge)'라는 말의 뜻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데, 이는 그런지 록이라는 장르가 이름 지어진 방식이 기존부터 존재해 왔던 록의 장르들이 명명되었던 방식과는 얼마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하드 록과 소프트 록은 음악의 세기와 질감에 따라, 사이키델릭 록은 음악의 분위기에 따라 이름 지어졌고 포크 록은 그 뿌리에 따라, 그리고 프로그레시브 록은 그 지향점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헤비메탈이라는 이름은 기존의 하드 록과 비견되는 더욱 차별화된 디스토션 사운드를 특정하기 위해 등장하였다. 그러나 '그런지(Grunge)'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Grime', 'Dirt', 즉 '먼지'라는 뜻으로, 음악적 성향이나 지향점, 혹은 그 모태가 되는 음악 등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런지와 가장 닮아있는 장르는 '펑크(Punk) 록'이다. 썩은 나무, 불쏘시개, 혹은 불한당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 펑크는 1970년대 미국과 영국에서 사회에 대한 불만 표출이라는 기능을 수행한 음악적 양식이자 문화로, 그 음악을 창조하고 수행한 주체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그런지라는 장르와 매우 흡사하다.

 

  그런지와 펑크의 토대가 된 '개러지(Garage) 록'도 이들과 마찬가지이다. 개러지(Garage), 즉 차고에 모여 어설프게 비틀즈와 더 후를 카피하던 이들의 음악은 그들만의 비완전성과 간결함으로 인해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게 된다. 음악이 아닌, 음악의 주체에게 붙여진 이름인 것이다. 물론 개러지 록과 펑크 록은 엄연히 다르고, 펑크 록과 그런지 록 또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여기서의 차이는 비단 음악성뿐만 아니라 그 주체의 사회적 계급과 성향의 차이까지도 의미한다. 그럼에도 수많은 록의 장르 중에서 이러한 양식의 음악들이 역사적으로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만의 공통된 키워드인 '비주류성' 덕분이다. 메인스트림에 합류하지 못했지만 자신들만의 색깔을 지켜 낸 개러지 록의 정체성은 분노와 저항 정신을 함의하며 펑크 록으로 발전하고, 한 세대를 지나 90년대에 이르러 '비주류'를 자처하는 그런지 록을 낳는다. 안개가 낀 시애틀의 먼지 가득한 클럽에서 내면에 쌓인 분노를 음악의 폭발성으로 승화시키는 이들. 여기로부터 그런지 록은 출발한다.

 

  따라서, 그런지 록은 단순한 음악적 흐름이 아닌 사회적 흐름으로 보아야 한다. 80년대에 접어들며 한없이 진부해진 음악들과 대중적, 상업적으로 정상 궤도에 오른 거대 메탈 밴드들에 잠식된 록 씬. 그곳에 불시착한 시애틀의 너저분한 젊은이들. 이들이 일으키는 록 음악의 순수한 폭발력과 공격성.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보다는 음악적 본질에 집중된 뜨거움. 사운드의 결은 다르지만 이러한 뿌리를 공유하고 있는 시애틀의 젊은 밴드들은 '그런지 록'이라는 이름에 충분한 정당성을 부여한다. 자기 복제에 빠진 80년대 대중음악의 홍수 한가운데서 등장한 너바나는 그러므로, 그런지 록의 일부가 아니라 아류가 되기를 거부했던 당대의 돌풍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런지'는 록의 역사를 새로 썼다. 이들의 음악은 주류에서 비주류로의 전환이자 LA에서 시애틀로의, 모틀리 크루에서 지미 헨드릭스로의 귀환이며, 펑크와 하드 록의, 다시 말해 시대가 잃어버렸던 오리진과 오리지널리티의 재현이다. 그들은 '순수성'이라는 측면에서 퇴보의 연대기였다고 할 수 있는 록 음악의 노선으로부터 급격하게 이탈하였으며, 커트 코베인이 유서에 남긴 닐 영의 'My, My, Hey, Hey' 속 "It's better to burn out than to fade away (서서히 희미해지는 것보다 불타 없어지는 편이 낫다)"라는 구절처럼 금세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커트 코베인의 삶처럼 짧았던 그런지 록의 발자취는, 후대 음악가들에게 지대한 정신적 영감을 주면서 지금까지도 신화처럼 살아 숨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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