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론, 觀念論, idealism
마음, 정신 혹은 관념을 중시하는, 혹은 근본적인 것으로 보는 철학적 입장들의 통칭. 맥락에 따라 여러 의미로 사용되나, 일반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형이상학적 입장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오직 정신/마음/관념, 혹은 영혼만이 존재한다.
관념론은 다음과 같은 철학적 입장들과 종종 비교되고는 한다:
유물론: '오직 물질만이 존재한다.'
심신 이원론: '물질과 정신이 둘다 존재한다.'
실재론: '우리 바깥에 객관적인 실체가 있다.'
유아론: '우리 바깥에 객관적인 실체가 없다.'
그러나 '관념론'이라는 명칭은 철학자들마다 서로 미묘하게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는 하기에 주의가 요구된다. 당장 "관념론은 실재론과 반대다"라는 명제를 받아들일 경우, 역사적으로 "관념론자"로 불린 여러 철학자들을 더이상 '관념론자'라고 분류할 수가 없게 된다.
철학 바깥에서 "관념론"이라는 말을 남용하는 용례까지 고려하면 말할 것도 없다.
이런 문제는 플라톤이 쓴 "'이데아(ἰδέα, idea)"란 말이 이후 다른 유럽 언어들에서 의미가 변화 및 확장된 것 때문에 생긴 것이다. 심지어는 한자어인 "관념(觀念)" 또한 의미가 많이 달라졌다.
따라서 아래에서 소개되는 여러 관념론 철학의 사례들은 역사적으로 "관념론"이라 불린 사례들일 뿐이지, 같은 철학적 입장에 속단할 근거는 희박하다. 왜냐면 "관념"이라는 말부터 서로 다른 의미로 썼기 때문이다.
철학사의 사례들
파르메니데스를 관념론의 시초로 보는 경우도 있다. 다만 파르메니데스의 저술은 모호하기 때문에 파르메니데스를 관념론자로 보는 해석이 합의된 것은 아니다.
플라톤의 이데아
플라톤의 철학, 특히나 국가론으로 대표되는 형상(εἶδος, eidos)을 기초 개념 삼아 이루어진 플라톤의 '중기 철학'은 이후 "관념론"이라는 철학적 입장을 형성하는 기틀이 되었다.
명시적으로 플라톤을 '관념론자'로 분류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라이프니츠가 있으며, 이러한 분류 방식은 이후 독일 철학 및 서양 철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이런 철학사적 전통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많은 플라톤 연구자들은 '플라톤은 관념론자다'라는 명제에 동의하기를 주저하는 편이다. 왜냐면 중세, 근대를 거치며 "관념"이라는 명칭의 의미 자체가 많이 달라졌으며, 곧 "플라톤은 관념론자다!"라고 섣불리 말했다간 많은 현대의 비전문가들이 오해를 하기 딱 좋기 때문이다.
조지 버클리의 비물질주의
버클리는 자신의 관념론적 입장을 "비물질주의(immaterialism)"라고 불렀다. 비물질주의에 따르면 관념으로 환원되지 않는 물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입장을 두고 버클리 자신의 말을 빌어 흔히 다음과 같은 경구로 표현하고는 한다:
존재하는(esse) 것은 곧 지각되는(percipi)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버클리는 자기 자신 말고도 다른 실체들, 요컨대 신을 포함한 다른 것들 또한 존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즉 유아론을 부정한 것이다. 신이 인간에게 주는 관념 안에서의 다른 실체들 또한 인정했다는 점에서 버클리는 관념론자인 동시에 실재론자로 분류되는게 통설이다.
이마누엘 칸트의 선험적/초월적 관념론
칸트의 초월적(혹은 선험적) 관념론(Transzendentaler Idealismus)은 종종 다음과 같은 논제로 제시된다.
정신에 대해 독립적인 것의 존재를 인정하더라도, 우리가 그 독립적인 실재에 대해 알 수 있는 모든 것이 정신 활동의 산물이다.
칸트는 그의 책 순수이성비판(2판)의 <관념론 논박>에서 관념론이란 사물들의 존재에 대해 관한 것이 아니라, 표상들의 방식에 대한 주장일 뿐이라고 한다. 이러한 입장은 '과학적 반실재론'의 효시가 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자세한 사항은 과학적 실재론 항목으로.
독일 관념론
서양 철학사
근대 철학
Deutscher Idealismus;
이마누엘 칸트로 시작하여,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셸링,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로 이어지는 학파. 칸트는 제외하고 나머지 셋만 일컫는 의미로 쓰이는 경우도 많다.
독일 관념론의 출발점은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이 충분히 급진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프리드리히 야코비는 칸트의 물자체를 비판했으며, 이는 피히테를 시작으로 한 19세기 관념론이 출발하는 기점이 되었다.
피히테, 셸링, 그리고 헤겔의 관념론이 칸트의 관념론보다 급진적이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칸트와 칸트의 영향을 받은 철학자들[피히테, 셸링, 헤겔 사이의 차이점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다.
독일 관념론은 서구 철학 전체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를테면 헤겔이 카를 마르크스에 끼친 영향은 잘 알려져 있으며, 경험론의 본산이었던 영국에서마저 19세기 후반 헤겔의 영향을 받은 "영국 관념론"이 득세했다. 나아가 철학을 넘어 당대의 낭만주의와도 깊은 연관성을 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