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 불교와 귀족사회
▪공덕(功德) 사상 : 국가나 개인의 현세에 있어서의 행복을 좌우하는 현세 이익의 종교로 인식 → 많은 사찰과 불교행사
▪上元(1월 15일)의 연등회, 仲冬(11월 5일)의 팔관회
- 祈福道場(국왕 생일), 忌辰道場(국왕의 기일), 석가탄신일 법회(4월 8일), 菩薩戒道場(6/15,국왕의 보살계), 㿻蘭盆道場(7/15, 부모 명복), 除夜道場(12/30), 仁王會(국가의 평안 기원)
▪과거제도에 승과제도 창설
- 敎宗選(승통), 禪宗選(대선사)
▪役의 의무에서 면제 → 승려의 수 늘어남
▪사원전 - 면세의 특권, 경제적으로 부유 → 佛寶·장생고 운영, 상업·양주·목축 시행
⇨ 승병 양성(재산보호 목적) → 정치적 간섭
● 고려 불교 정책
(초기 국가 지원, 사원에 특혜, 승병 조직(자신들의 재산보호) → 권력 쟁탈전이나 국가 위기시 동원)
1) 태조 : 숭불정책(훈요10조-연등회(1월 15일)와 팔관회(11월 15일)의 거행), 승록사
2) 광종 : 승과제도 실시, 왕사 국사 제도, 승록사 운영, 귀법사 창건, 면세혜택, 법안종 수입, 교종과 선종으로 통합
3) 성종 : 연등회, 팔관회 폐지(현종 때 부활)
* 승과제도: 교종선과 선종선으로 구분. 합격한 승려에 한해서 승계(법계)를 주었는데, 합격한 승려에게 처음에는 대덕 승계를 부여하였고 점차적으로 승진토록 하였다. * 국사ㆍ왕사 제도의 설치: 교종 승려에게는 승통, 선종 승려에게는 대선사라는 법계를 주었으며 그 위에는 왕사와 국사를 둠으로써 불교의 권위가 상징적으로나마 왕권 위에 존재하게 됨. * 승록사의 운영: 불교 관계 업무를 담당하는 관청. 초기에는 승정(僧政)을 위해 설치되었으나, 주로 승적(僧籍)의 관리나 불교 행사의 주선 또는 지방 사원과 중앙 관청의 매개업무 등을 담당하였을 뿐 승려의 인사 행정에는 관여하지 못했다. 승정(僧政: 승계(僧階)에 대한 임명)은 대개 일반 행정기구에 의해 일반 관료들과 마찬가지의 절차를 밟아 수행되고 있었으며, 이러한 사실은 당시 실제적으로 교권(敎權)보다 통치권을 우위에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 면세 혜택과 폐단 : 사원에는 사원에는 토지를 지급하고 승려들에게 면역의 혜택을 주었다. 이러한 특권을 바탕으로 사원들은 막대한 노비를 이용하여 여러 가지 수공업품을 제조하여 시장에 팔기도 하였고, 불보나 장생고 등의 기금을 만들어 고리대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
※ 국통ㆍ주통ㆍ군통: 신라 진흥왕 대 불교교단을 정비하면서 조직
왕사ㆍ국사 제도 : 고려 광종 대 불교 승단을 정비하면서 조직
● 고려 불교 운동
1) 고려 초기
① 교종과 선종 병립 : 화엄종(균여) 선행, 선종에 대한 관심이 높았음
② 교종의 확립 : 흥왕사, 현화사(왕실과 귀족의 지원) 화엄종ㆍ법상종 융성 (교종과 선종의 통합 X, 각 교단만 통합)
③ 광종의 교단 통합 시도 : 교종은 균여가 화엄종 중심, 선종은 혜거가 법안종 중심으로 통합
④ 천태학의 발전 : 의통(중국 천태종 13대 교조), 제관(천태사 교의)을 중국에 보내 천태학 전파.
* 천태학 : 하나와 전체의 조화를 강조하는 교종 불교이면서도 대중성을 띠고 있어서 교·선의 대립을 교종입장에서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여겨짐 |
2) 고려 중기 이후
의천(중기, 대각국사) | 지눌(후기, 보조국사) | 요세(후기) |
1.교단통합운동의 전개 ▪교종 통합시도: 흥왕사(교종만 우선 통합), 화엄종 ▪선종 통합시도: 해동천태종 개창 ① 국청사가 중심 ② 교종의 입장에서 선종의 통합 ③ 교관겸수(수행방법도 합치자)-이론의 연마와 실천을 아울러 강조(성상융회-균여(광종)) ④ 내외겸전, 성상겸학 ⑤ 왕실, 문벌귀족이 지지기반 ▪한계성: 불교의 폐단을 적극적으로 시정하는 대책이 뒤따르지 않음 , 왕자님포스로 이루어진것이기에 사후에 분열. 2. 원효의 일심사상 계승 ⇒ 화정국사로 추존(임명×) 3. 주전도감 설치(숙종): 화폐 주조 4. 저서 ▪석원사림, 원종문류, 천태사교의주 ▪신편제종교장총록: 불서목록 (교종의 내용만 있음) |
1.수선사(정혜)결사운동의 전개(송광사) ▪개혁적 승려와 지방민의 지지 ▪선수행, 예불독경, 참선, 노동강조 2. 조계종의 개창 ▪선종의 입장에서 교종의 통합 →선교일치사상의 완성 ▪정혜쌍수: 참선과 이론(지혜)을 아울러 닦고 선을 중심으로 교를 포용 ▪돈오점수: 내가 곧 부처(내 안의 미니미)라는 깨달음,단번에 깨닫고 꾸준히 실천!(미니미를 키움) ▪선·교 일치사상 완성 (불교교리중심의 통합) ▪최씨 무신정권이 지지기반 ▪좌선등 심성의 도야를 강조하여 불교에서 성리학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역할 수행 3. 혜심(진각국사): 수선사 2세 ▪지눌의 문하(조계종의 승려)(이미 과거합격한 유학자였음) ▪유불일치설 주장(내가보니 올라가면 결국 똑같다) → 성리학을 수용할 수 있는 사상적 터전 마련 * 최우와 연관된 것은 혜심. |
1.백련사 결사운동 (만덕사) ▪지방민의 지지를 받음(교종임에도 불구하고 백성을 위해 정토신앙을 가져옴) ▪법화신앙 중시-참회 강조 (세속화타파를 위해 일단 참회부터) ▪천태종과 관련(선종과 관련) ▪대몽항쟁에 적극적 → 무신정권과 연결 ▪원간섭기에 묘련사로 변질 |
*유불일치설 : 전에는 제가 공(公)의 문하에 있었지만 지금은 공이 우리 절에 왔으니, 공은 불교의 유생이고 저는 유교의 불자입니다. 서로 손님과 주인이 되고 스승과 제자가 되는 것은 옛날부터 있었던 일입니다. 불교와 유교는 그 이름만을 생각한다면 아주 다르지만, 그 실제로 알면 다른 것이 아닙니다. - 진각국사 어록 (혜심의 예전 유교 스승을 만나서 얘기하는 상황)
● 고려 불교-천태종, 조계종
교종 > 선종 병립 | 교종 < 선종 | ||
광종 때 교종은 화엄종을 중심으로 균여가 정리(귀법사) | 의천 - 천태종 개창 (왕자님 사후 교단분열) |
조계종(지눌), 혜심, 요세. 교종 탄압 - 귀법사 승려의 난(교종들의 반란) |
불교 타락(신진사대부의 척불론 제기), 라마불교 유행, 보우(임제종(선)) |
천태종 | 조계종 | ||
▪고려 전기(숙종) 왕실과 귀족지원, 안정기 ▪교종 중심(교+선 절충) → 교관겸수(이론연마+실천강조) ▪대각국사 의천(원효 화쟁사상 계승) ▪내외겸전, 성상겸학, 지관(생각중단, 지혜로서 사물관조) ▪중심 사찰: 국청사(개경) ▪화엄종으로 교선통합 ▪신편제종교장총록 ▪정화운동: 백련사(요세, 전라도 강진) → 묘련사(변질) - 지눌에 대항하는 결사 |
▪고려 후기(무신 지원), 혼란기 ▪선종 중심(교+선 통합) → 선교겸수(예불,독경,참선,노동) ▪보조국사 지눌(사굴산파 출신) ▪정혜쌍수, 돈오점수 (내가 곧 부처라는 깨달음 + 수행으로 깨달음 확인 강조) ▪중심 사찰: 송광사(전라도 순천) ▪조계종으로 교선통합 ▪9산선문 통합 ▪정화운동: 수선사(지눌, 혜심) - 의천 정치적 행태, 승려 본연으로 돌아가자 |
● 고려 고승
▪지눌 - 조계선(종), 돈오점수, 정혜쌍수, 수선사(송광사) "지조돈수"
▪의천 - 천태종, 교관겸수, 국청사, 흥왕사, 신편제종교총록 "의천교국흥신"
▪혜심 - 지눌 제자, 유불일치설
▪요세 - 지눌 대항, 천태종, 백련결사, 참회, 정토
● 신라 고승
▪원효 - 정토종, 대중화, 대승기신론소, 아미타, 십문화, 일심, 화쟁(천태종), 원융회통 "원정대아십일화원"
▪의상 - 관음신앙, 화엄종, 부석사, "일세의 먼지.., 즉일..." "의관화 부먼즉"
● 조계종과 천태종
신라 | 상대(열반종ㆍ계율종), 중대(화엄종ㆍ법상종ㆍ법성종), 하대(선종 9산) | |
고려 | 초기 | 5교 양종의 대립 → 광종 때 교종은 화엄종을 중심으로 균여가 정리(귀법사), *호족이 신라하대 선종을 민것은 단지 백성들이 좋아하니까, 정권을 잡고난뒤는 역시 교종을 좋아함. 선종은 혜거가 법안종을 중심으로 통합 천태학 발전 - 제관(천태사교의), 의통(중국 천태종13대 교조) (시기문제로 나올수도) |
문벌기 | 의천 - 천태종개창 (왕자님 사후 교단분열), [원종문류][석원사림][천태사교의주] | |
무신기 | 조계종(지눌), 혜심, 백련사 요세. 교종탄압 - 귀법사 승려의 난(교종들의 반란) 각훈(화엄종의 대가, 해동고승전), 최우(8만대장경) |
|
원간섭기 | 불교타락(신진사대부의 척불론 제기), 라마불교 유행, 보우(임제종(선)), 일연(가지산파 승려) 지공(인도선종 전래 → 석종형 승탑), *조선 명종 때 보우: 승과실시 |
|
조선 | 억불 | 억불숭유, 도첩제(태조), 척불론(정도전,불씨잡변), 사원 토지ㆍ노비몰수(태종), 선ㆍ교 양종으로 통합 정리, 36사만 인정(세종) |
부흥 | 내불당 건립(세종), 원각사지 10층석탑ㆍ간경도감(세조) | |
개화기 | 억불정책에서 벗어남 → 을사늑약후 일본불교에 예속 → 조선불교유신론(한용운): 불교의 자주성회복과 근대화 운동 |
천태종 | 조계종 |
고려 전기(숙종) 왕실과 귀족지원, 안정기 | 고려 후기(무신지원), 혼란기 |
교종중심(교+선절충) → 교관겸수(이론연마+실천강조) | 선종중심(교+선통합) → 선교겸수(예불,독경,참선,노동) |
대각국사 의천(원효의 화쟁사상을 계승) | 보조국사 지눌(사굴산파 출신) |
내외겸전, 성상겸학 지관(생각중단, 지혜로서 사물관조), |
정혜쌍수, 돈오점수 (내가 곧 부처라는 깨달음 + 수행으로 깨달음 확인강조) |
중심사찰: 국청사(개경) | 중심사찰: 송광사(전라도 순천) |
화엄종으로 교선통합 | 조계종으로 교선통합 |
신편제종교장총록 | 9산선문 통합 |
정화운동: 백련사(요세,전라도 강진) → 묘련사(변질) * 지눌에 대항하는 결사 |
정화운동: 수선사(지눌, 혜심) --> 의천보면 거의 정치가, 승려 본연으로 돌아가자 |
● 대장경과 천태종
▪대장경의 조판 : 현종(1009~1031) 초년에 착수 ~ 선종 4년(1087) 완성
- 거란의 2차 침입 (1010)
▪거란의 침입을 막으려는 염원, 불교의 교리 정리
▪고려대장경 : 고종 때 강화에서 재 조판, 해인사 보관
▪의천(대각국사) : 교장도감 설치 → “속장경” 간행
- 교종과 선종의 일치 주장 (천태종)
- 대장경 : 교종의 교리를 정리 (선종 관계 서적은 없음)
- 고려의 귀족들은 교종 추종, 선종도 여전히 성행
▪천태종의 성립 ⇦ 교종(화엄종)과 선종의 분열과 대립 해소를 위해 (교종 위주)
● 고려 대장경 "초란 속의 팔고"
▪제1차 대장경(초조대장경) | 부인사에서 조판, 거란 대비, 몽고 침입 때 소실 |
▪속장경(신편제종교장총록=교장) | 흥왕사 조판, 의천이 송·요·일 등에서 수집, 선종 내용 무, 몽고 3차 침입때 소실, 송광사에 일부 전함 |
▪제2차 대장경(팔만대장경=재조대장경) | 몽고 침입시 최우가 강화도 대장도감에서 조판, 선원사에 보관→조선초기에 해인사로 이전, 국보로 해인사 장경각 보존 |
기출문제
Q (가)와 (나)의 인물에 대한 <보기>의 설명으로 옳은 것은?
(가)는 “교(敎)를 배우는 이는 대개 안의 마음을 버리고 외면에서 구하고, 선(禪)을 익히는 이는 인연을 잊고 안의 마음을 밝히기를 좋아하니, 모두 한족에 치우친 것으로 두 극단에 모두 막힌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나)는 “정(定)은 본체이고 혜(慧)는 작용이다. 작용은 본체를 바탕으로 존재하므로 혜가 정을 떠나지 않고, 본체가 작용을 가져오게 하므로 정은 해를 떠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였다. |
< 보 기 > ㉠ (가)와 (나)는 서로 다른 방법으로 교종과 선종의 통합을 시도하였다. ㉡ (가)와 (나)는 지방 호족과 연합하여 신라 정부의 권위를 약화시켰다. ㉢ (가)는 불교와 유교 모두 도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같다는 유・불 일치설을 주장하였다. ㉣ (나)는 수선사 결성을 제창하여 불교계의 개혁을 추진하였다. |
① ㉠, ㉡ ② ㉠, ㉣ ③ ㉡, ㉢ ④ ㉡, ㉣
【해설】 정답 ②
(가) 의천의 교관겸수, (나) 지눌의 정혜쌍수에 대한 설명
교관겸수(敎觀兼修) 교리체계인 교(敎)와 실천수행법인 지관(觀)을 함께 닦아야(兼修) - 의천 |
정혜쌍수(定慧雙修) 선정(定)과 지혜(慧)를 따로 닦을 것이 아니라 병행해야(雙修) - 지눌 |
[오답체크] ㉡ 의천은 고려 중기, 지눌은 고려 무신집권기에 해당한다. ㉢ 혜심에 대한 설명이다.
● 고려 고승
▪지눌 - 조계선(종), 돈오점수, 정혜쌍수, 수선사(송광사) "지조돈수"
▪의천 - 천태종, 교관겸수, 국청사, 흥왕사, 신편제종교총록 "의천교국흥신"
▪혜심 - 지눌 제자, 유불일치설
▪요세 - 지눌 대항, 천태종, 백련결사, 참회, 정토
● 신라 고승
▪원효 - 정토종, 대중화, 대승기신론소, 아미타, 십문화, 일심, 화쟁(천태종), 원융회통 "원정대아십일화원"
▪의상 - 관음신앙, 화엄종, 부석사, "일세의 먼지.., 즉일..." "의관화 부먼즉"
교관겸수(敎觀兼修) - 고려 대각국사 의천이 교리체계인 교와 실천수행법인 지관을 함께 닦아야 한다고 주장한 불교교리.
정혜쌍수(定慧雙修) - 선정과 지혜를 따로 닦을 것이 아니라 병행해야 한다는 불교수행법.
Q 다음 내용을 주장한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 한 마음(一心)을 깨닫지 못하고 한없는 번뇌를 일으키는 것이 중생인데, 부처는 이 한 마음을 깨달았다. 깨닫는 것과 깨닫지 못하는 것은 오직 한 마음에 달려 있으니 이 마음을 떠나서 따로 부처를 찾을 수 없다. ○ 먼저 깨치고 나서 후에 수행한다는 뜻은 못의 얼음이 전부 물인 줄은 알지만 그것이 태양의 열을 받아 녹게 되는 것처럼 범부가 곧 부처임을 깨달았으나 불법의 힘으로 부처의 길을 닦게 되는 것과 같다. |
① 국청사를 창건하고 천태종을 창시하였다.
② 부석사를 창건하고 화엄 사상을 선양하였다.
③ 불교계를 개혁하기 위해 수선사 결사를 주도하였다.
④ 십문화쟁론을 저술하여 종파 간의 사상적 대립을 조화시키고자 하였다.
【해설】 정답 ③
제시된 자료의 해당하는 인물은 지눌이다. 두 번째 자료를 보면 돈오점수에 대한 내용이 보인다. 정혜쌍수는 선과 교학을 나란히 수행하되, 선을 중심으로 교학을 포용하자는 이론이고, 돈오점수는 단번에 깨닫고 꾸준히 실천하자는 주장을 일컫는다. 지눌은 돈오를 지향처로 삼으면서도 사람들이 오래 익혀온 잘못된 습관을 고치려면 깨달음의 꾸준한 실천이 필요하다는 뜻에서 점수를 아울러 강조하였다. 그는 정(定)과 혜(慧)는 일심(一心) 위에 통일되어 늘 균형을 지녀야 된다고 보았는데, 교(敎)만을 강조하는 것을 ‘문자만 찾는 미친 지혜’라고 비판하였고, 선(禪)만을 강조하는 것을 ‘헛되게 침묵만 지키는 어리석은 선’이라고 비판하였다.
③ 지눌은 명리에 집착하는 당시 불교계의 타락상을 비판하였다. 그는 승려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독경과 선 수행, 노동에 고루 힘쓰자는 개혁 운동인 수선사 결사를 제창하였다.
[바로알기] ① 의천 ② 의상 ④ 원효
● 고려 고승
▪지눌 - 조계선(종), 돈오점수, 정혜쌍수, 수선사(송광사) "지조돈수"
▪의천 - 천태종, 교관겸수, 국청사, 흥왕사, 신편제종교총록 "의천교국흥신"
▪혜심 - 지눌 제자, 유불일치설
▪요세 - 지눌 대항, 천태종, 백련결사, 참회, 정토
● 신라 고승
▪원효 - 정토종, 대중화, 대승기신론소, 아미타, 십문화, 일심, 화쟁(천태종), 원융회통 "원정대아십일화원"
▪의상 - 관음신앙, 화엄종, 부석사, "일세의 먼지.., 즉일..." "의관화 부먼즉"
Q 다음 왕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왕은 중국에 36명의 승려를 파견하여 법안종을 배우도록 하였다. 또한 제관과 의통을 파견하여 천태학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
① 승과 제도를 시행하였다.
② 요세가 세운 백련사를 후원하였다.
③ 의천이 국청사를 창건하는 것을 후원하였다.
④ 거란과의 전쟁을 물리치기 위해 초조대장경을 조성하였다.
【해설】 정답 ①
사료는 광종 때 불교 상황을 보여준다. ① 광종 때 과거제도를 시작하였는데, 승과도 시행되었다.
오답
② 무신집권기 최씨정권 ③ 선종 ~ 숙종 ④ 현종
● 고려 광종 - 광노(안)과 공복 주제(에) 송광풍 여사~
광 광종
노 노비안검법
과 과거제도 큰오빠 958 장원급제
공복 백관의 공복(자.단.비.녹)
주 주현공부법 州縣貢賦法 공물부역액수법
제 제위보濟危寶
송 송과외교
광 광덕
풍 준풍
여 균여 화엄사상, 균여전 수록 보현십종원왕가
사 귀법사
Q 밑줄 친 ‘나’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나는 도(道)를 구하는 데 뜻을 두어 덕이 높은 스승을 두루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진수대법사 문하에서 교관(敎觀)을 대강 배웠다. 법사께서는 강의하다가 쉬는 시간에도 늘 “관(觀)도 배우지 않을 수 없고, 경(經)도 배우지 않을 수 없다.”라고 제자들에게 훈시하였다. 내가 교관에 마음을 다 쏟는 까닭은 이 말에 깊이 감복하였기 때문이다. |
① 해동 천태종을 창시하였다.
② 이론과 실천의 양면을 강조하였다.
③ 교종의 입장에서 선종을 통합하였다.
④ 정혜쌍수로 대표되는 결사운동을 일으켰다.
【해설】 정답 ④
사료는 대각국사 문집에서 일부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대각국사 의천은 송나라에 들어가 여러 고승들을 만나 깨달음을 얻고 고려에 돌아와 해동 천태종을 창시하였다.
④ 지눌에 대한 내용이다. 지눌은 당시 불교계의 타락을 비판하고 송광사를 중심으로 정혜결사를 만들어 승려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독경과 선 수행, 노동에 힘쓸 것을 강조하였다. 또한 선과 교학이 근본에 있어 둘이 아니라는 사상 체계인 정혜쌍수를 사상적 바탕으로 철저한 수행을 선도하였고, 내가 곧 부처라는 깨달음을 위한 노력과 함께, 꾸준한 수행으로 깨달음의 확인을 아울러 강조한 돈오점수를 주장하였다.
①②③ 의천에 대한 내용이다. 의천은 교종을 중심으로 선종을 통합하기 위해서 해동 천태종을 창시하였고, 이론의 연마와 실천을 같이 강조하는 교관겸수를 사상적 기반으로 삼았다.
● 고려 고승
▪지눌 - 조계선(종), 돈오점수, 정혜쌍수, 수선사(송광사) "지조돈수"
▪의천 - 천태종, 교관겸수, 국청사, 흥왕사, 신편제종교총록 "의천교국흥신"
▪혜심 - 지눌 제자, 유불일치설
▪요세 - 지눌 대항, 천태종, 백련결사, 참회, 정토
Q 다음은 고려 시대 불교에 관한 내용이다. 옳은 것으로 묶인 것은?
㉠ 천태종의 지눌은 선종을 중심으로 교종을 포용하는 선교 일치를 주장하였다. ㉡ 의천은 불교와 유교가 심성 수양이라는 면에서 차이가 없다고 하였다. ㉢ 의천이 죽은 뒤 교단은 분열되고 귀족 중심이 되었다. ㉣ 요세는 참회수행과 염불을 통한 극락왕생을 주장하며 백련사를 결성했다. |
① ㉠, ㉢ ② ㉡, ㉣ ③ ㉠, ㉡
④ ㉠, ㉣ ⑤ ㉢, ㉣
【해설】 정답 ⑤
㉠ 지눌은 천태종이 아니라, 조계종이다. '지조돈수 의천교국흥신'
㉡ 유불일치설은 혜심의 주장이다.
● 고려 고승
▪지눌 - 조계선(종), 돈오점수, 정혜쌍수, 수선사(송광사) "지조돈수"
▪의천 - 천태종, 교관겸수, 국청사, 흥왕사, 신편제종교총록 "의천교국흥신"
▪혜심 - 지눌 제자, 유불일치설
▪요세 - 지눌 대항, 천태종, 백련결사, 참회, 정토
Q 다음 글의 저자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내가 일찍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경론이 갖추어졌다 하더라도 장소(章疏)가 폐해지면 널리 펼 길이 없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승법사의 호법하는 뜻을 본받아 교장을 널리 찾아냄을 나의 책임으로 삼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살아온 지 20년이 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새것이든 옛것이든 여러 종파의 의소를 얻게 되면, 감히 사사로이 비장(秘藏)하지 않고 간행하였으며, 책을 낸 후에 새로 발견된 것이 있으면 그 뒤에 계속해서 수록하고자 했다. |
① 만덕사에서 백련사를 제창했다.
② 거조사에서 정혜결사를 결성했다.
③ 국청사에서 해동천태종을 창시했다.
④ 영통사에서 해동고승전을 편찬했다.
【해설】 정답 ③
의천의 『교장』 편찬에 대한 내용
③ 의천은 교종을 중심으로 선종을 통합하기 위해 국청사를 창건하고 해동 천태종을 창시
① 요세는 만덕산 백련사에 자리를 잡고, 사회 혼란과 불교 타락에 대한 자각과 반성을 촉구하는 백련 결사를 결성하는 등 천태종 중흥
② 1190년 지눌은 거조사에서 신앙 공동체를 조직하였으며, 1200년 송광산 길상사로 근거지를 옮겨 최충헌의 지원으로 수선사라는 절 이름을 사액받았다.
④ 『해동고승전』은 무신 정권기인 고종 대에 교종 승려인 각훈이 왕명에 따라 편찬(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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