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정교회, 개신교, 성공회
그리스도교는 오늘날 비록 가톨릭, 동방정교회, 개신교, 성공회 등으로 나눠져 있지만 하느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같은 주님, 구세주로 고백한다는 점에서 한 형제다.
그래서 가톨릭교회는 매년 1월18일(성 베드로가 로마에 주교좌를 정한 기념일)부터 25일(성 바오로 사도 개종 축일)까지 한주간을 그리스도교 일치를 간구하는 '일치주간'으로 마련, 서로 이해하고 대화를 통해 일치를 모색하며 기도하는 주간으로 보낸다.
■개신교
마르틴 루터(1483~1546)에 의해 촉발된 16세기 종교개혁으로 가톨릭교회에서 갈라진 교회가 개신교다. 가톨릭에 대한 '항거자'(Protestant)라는 의미에서 '프로테스탄트'라고도 불린다.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는 서로 주장과 입장 차이로 인해 세월이 흐르면서 다시 여러 분파로 나뉘게 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구세군 등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500여개 교파가 있다.
한국에는 1884년 의사이자 미국 장로교 신자였던 알렌과 선교사 언더우드 목사 등이 황해도 송천에 최초의 교회 건물을 짓고 의료사업과 선교사업을 시작하면서 전파됐다.
개신교는 교리적으로 가톨릭교회와 많은 차이점을 갖는다.
가톨릭교회는 성서와 함께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의 전통(성전)을 계시의 원천으로 인정하지만 개신교는 오직 성서만을 계시의 원천으로 받아들인다. 가톨릭교회가 성전에 근거해 교의로 선포하는 교황 수위권과 무류성, 마리아 교리, 성사 등을 개신교가 인정하기 않는 것도 여기서 비롯한다. 아울러 가톨릭교회는 구약 46권, 신약 27권을 정경으로 인정하지만 개신교는 구약에 대해서는 39권만 하느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점도 다르다.
또 가톨릭은 참된 믿음과 함께 올바른 행실이 따라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지만 개신교는 오직 믿음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한다. 이런 차이로 인해 죽음 이후 세계를 천당, 연옥, 지옥으로 나누는 가톨릭과 달리 개신교는 세상 종말의 부활교리만 강조한다. 그래서 모든 성인들의 통공이나 연옥에서 단련받는 영혼들에 대한 사상을 부정하는 것은 물론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나 제사를 바치지 않는다.
■성공회
성공회(聖公會)는 사도신경의 '거룩하고(聖) 공번된(公) 교회'라는 구절에서 따온 이름. 16세기 영국 헨리 8세 국왕이 결혼 무효소송을 교황에게 제출했으나 교황이 이를 단호히 거절하자 로마교회의 감독권을 거부하고 자신을 교회 최고권위자인 '수장'으로 선포하면서 가톨릭교회와 분리된 것이 성공회다. 현재 전세계 160여개국에 9500여만명 신자가 있다.
교리와 관련해 성공회는 로마교회가 동서로 분리되기 이전의 모든 교리를 인정하기에, 교회 전통으로 내려오는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경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등 많은 부분에서 가톨릭과 일치하지만 차이점도 적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성사 효력에 관한 문제다. 성공회는 가톨릭처럼 칠성사를 인정한다. 그러나 성사를 집전하고 받는 사람의 신앙 정도에 따라 그 효력이 다르다는 인효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가톨릭교회는 성사가 근원적으로 하느님이 베푸는 은총이라는 신앙에 근거, 성사를 집전하고 받는 사람의 신앙 정도에 상관없이 성사 그 자체로 효력을 지닌다(사효성)고 가르친다.
성공회는 또 교황 수위권과 무류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사제 독신 의무도 없다. 하지만 가톨릭처럼 독신을 지키는 수도자는 있다. 성서는 개신교처럼 구약 39권, 신약 27권만을 정경으로 인정한다.
1889년 영국교회의 코프 신부가 초대 한국 주교로 서품됨에 따라 시작된 대한성공회는 인천과 서울 등지에 기도소를 겸비한 병원을 세워 선교활동을 시작, 지금에 이른다. 1993년 영국 캔터베리 관구로부터 독립해 자체 관구를 형성한 대한성공회는 현재 3개 교구(서울, 대전, 부산), 110여개 본당에서 사제 130여명이 사목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신자 수는 5만여명이다.
■동방정교회
동방 정교회란 고대 동로마제국에 자리잡고 있던 여러 지역교회들이 1054년 로마를 중심으로 형성된 서방교회로부터 갈라져 나와 독자적 전례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모든 교회를 통칭하는 말. 자신들만이 '올바른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는 뜻에서 '정교회'(Orthodox Church)라고 부른다.
정교회도 역사를 거치면서 지역에 따라 각기 독립을 선언, 현재는 러시아 정교회, 그리스 정교회, 루마니아 정교회, 알바니아 정교회 등으로 나눠져 있다.
한국의 정교회는 1897년 러시아 정교회 소속 암브로시오스 신부가 주한 러시아 공사관에서 선교를 시작하면서 형성됐으며, 1900년 고종으로부터 정동에 땅을 받아 성 니콜라스 성당을 건립하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하지만 러일전쟁(1906년), 러시아 혁명(1917년)으로 선교활동이 중단되고 한국전쟁 발발로 정교회 신부들이 납북되는 등 운영에 어려움을 겪다가 1975년 그리스 정교회 신부가 다시 한국 책임자로 부임하면서 활기를 되찾아 오늘에 이른다. 현재 정교회 성당은 서울, 부산, 인천 등지에 분포돼 있으며 신자수는 2000여명 정도.
정교회는 가톨릭교회와 성사적, 교리적 측면에서 거의 일치한다. 하지만 성공회처럼 교황 수위권과 무류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또 성직은 가톨릭처럼 주교, 사제, 부제로 나뉘지만 모두 결혼을 하고 독신은 수도자만 지킨다는 점도 다르다. 가톨릭교회와 마찬가지로 성서와 성전을 계시 원천으로 받아들이지만 구약 49권, 신약 27권을 성서로 사용하는 점, 구약의 제2경전을 인정하지만 교의적 신학적 권위를 지니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성공회와 로마가톨릭교와의 차이
성공회와 로마가톨릭교회의 교리 상 차이점이 생긴 근본 이유는 동방과 서방으로 초대교회가 나누어지기 이전의 전통과 종교개혁의 영향이다. 초대교회가 지키던 교리가 아닌 것은 성공회가 인정하지 않으며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다시 정리된 것이다. 성공회와 로마가톨릭사이에 교리적으로 다른 점은 크게 네 가지로 교황제도, 성모 마리아에 대한 공경, 성체성사에 대한 이해, 구원에 이르는 교리이다.
①교황제도 : 교황권은 초대교회의 전통에 없는 제도이므로 성공회는 교황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성공회가 로마가톨릭의 수장인 교황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의 사도 계승권을 주장하면서 교황제도가 확립되면서 교황무오설까지 주장하게 되었다. 교황무오설은 교황이 공식석상에서 한 발언은 잘 못이 있을 수 없다 것으로 중세기에 많은 사람들이 종교재판의 희생자가 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지동설 재판이다. 이에 대하여 성공회는 교황제도와 교황 무오설이 성서적으로 근거가 없으며 비성서적이라 본다.
②성모 마리아에 대한 공경 : 마리아는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예수님의 어머니로 훌륭한 존경의 대상이다. 처녀의 몸으로 예수님을 낳은 어머니로서 하느님의 뜻에 순종한 그의 겸손과 수난 당하시는 예수님의 삶을 눈으로 지켜보신 어머니로서 존경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로마가톨릭에서는 마리아도 예수님처럼 원죄가 없다(성모무염시잉모태’(聖母無染始孕母胎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도 예수님처럼 하늘로 승천 하셨다(승모승천).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이후에 더 이상 자녀를 낳지 않고 평생 동정을 지켰다(평생동정녀) 등의 교리를 말하고 있다. 이런 것들은 1850년 이후에 만들어 진 것이다. 매년 8월 15일을 로마가톨릭에서는 성모승천대축일, 성공회에서는 승모안식대축일로 지키고 있다. 성공회에서도 성모경이라는 기도를 바치고 있으며 묵주기도에서는 빠질 수 없는 성모경이다. 이것은 성인과 상통한다는 관계 안에서의 기도이며 하느님처럼 마리아가 직접적으로 우리 기도의 대상이 된다는 뜻은 아니다.
③성체성사에 대한 이해 : 성체성사에서 빵과 포도주를 어떻게 보느냐? 로마가톨릭 교리는 화체설로 성찬례에서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는 그 순간 2000년 전의 예수님의 피와 살로 변하는 신비적인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개신교에서는 2000년 전에 일어난 그 사건을 기념하는 것으로 기념설이라고도 한다. 성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소흘히 하고 있는데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께서 정하신 성사적 개념이 한국 개신교에는 없다는 것이다.
성공회에서도 빵과 포도주를 예수님의 몸이요 피라고 말한다. 그러나 화체설처럼 사제가 축성하는 순간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고는 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몸이요 피라고 선언하고 이를 나누는 시간과 공간에 주님께서 실제 하신다고 생각하며 신자는 그것을 예수님의 몸과 피라고 신앙 안에서 받아들이고 성체와 보혈을 영한다. 사제가 축성하는 바로 그 순간 예수님의 몸과 피로 바뀐다는 것보다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성령께서 임재하셔서 영하는 사람이 그 신비를 체험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이를 임재설이라고 한다.
④구원에 이르는 교리 : 구원에 이르는 길은 자신이 얼마나 선행을 쌓느냐하는 공적설로 선행, 헌금, 자선, 고행 등을 많이 하면 할수록 천국의 사다리를 한 계단씩 더 높이 올라간다는 생각이다. 루터는 종교개혁을 하기 전에 자신의 고행과 수련을 통해서 하느님 앞에서 의로워지려고 갖은 노력을 했지만 여전히 자기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벗어날 수 없었다. 로마서 1:17의 말씀을 읽으면서 “인간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다.”라는 말씀으로 구원에 이르는 길은 공적이 아니라 믿음이요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종교개혁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성공회에서도 공적사상이 아니라 믿음이요 하느님의 은총만으로 구원에 이른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선행을 체험적으로 쌓는 일은 구원의 계단이기 이전에 기독교인의 생활이기 때문에 선행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한 가지만 덧붙인다면 교회에 대한 이해인데 성공회는 속지주의 원칙을 지켜 그 땅, 그 국민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에 있을 때는 영국의 교회이며 미국에 있으면 미국의 교회로 한국에 있으면 한국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교회의 독립성과 토착화에 큰 영향을 주는 교회이지만 로마가톨릭교회는 어느 나라에 있든지 모두가 다 로마의 교회이다.
*Anglican Church of Korea(대한성공회) : 한국의 교회, 세계 성공회협의회의 회원으로 각기 독립 성을 갖고 수평적 관계로 일치하는 교회
*Roman Catholic Church in Korea(천주교) : 한국에 있는 로마교회, 로마 교황청의 지배를 받는 중앙집권적 수직적관계로 일치하는 교회
성공회
16세기 잉글랜드 종교개혁으로 공식 명칭을 "잉글랜드 교회"(English Church)에서 "잉글랜드 성공회"(Church of England)로 불러왔으며, 19세기 이후 다국가에 형성된 성공회를 제도적으로 정비하고 현재의 "세계성공회공동체"(Anglican Communion)로 칭하였다. 흔히 성공회하면 영국 국교회를 떠올리지만, "영국국교회"라는 용어는 성공회 전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잉글랜드 성공회만을 가리킨다. 교파로는 초기 개혁 교회에서 파생된만큼 개혁 교회의 취지인 교황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개신교적 전통이 존재하나, 사도들의 성사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륙개신교와 비교가 된다. 따라서 개혁 교회 교파 안에 포함이 되어있다고 하더라도 대륙개신교(감리회, 장로회, 신루터파, 회중회 등)와 따로 분리해서 보기도 한다. 전 세계 성공회 중에서 성공회를 국교로 삼은 국가는 잉글랜드가 유일하며, 대한민국 성공회의 공식 명칭은 대한성공회(大韓聖公會)이다. 성공회(聖公會)는 한자문화권인 대한민국, 중국, 일본 등에서 사용하는 교회이름으로, 사도신경의 '거룩한 보편교회'(The Holy Catholic Church)를 한자로 옮긴 이름이다. 거룩하고(聖) 보편된(公) 교회(會) |
장 칼뱅에 의해 발흥된 칼뱅주의 개신교가 영국으로 건너오면서, 영국 교회의 전통주의와 대립하는 입장에서 우리는 '깨끗하다'는 의미로 라틴어 Puritas 에서 유래하여 복음주의자들이 퓨리턴(puritan)이라고 자칭한 것에서 유래된다. 일본에서 근대화 시기 이 어휘를 청교도로 번역했다. 깨끗할 청, 淸교도. |
엘리자베스 1세(1558~1603) 시대 성공회를 개혁하려한 청교도들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쳤다.
첫째, 모든 예배와 신앙행습은 성경에 근거해야 하는데, 성경에 나오는 예배는 예식서의 예전적 형식의 예배가 아니라, 성령의 임재 하에 자유롭고 살아있는 예배였다. 따라서 획일화된 예배를 생산하는 성공회의 공동기도서는 폐지돼야 한다.
둘째, 가톨릭교회의 절기들을 없애고, 대신 주일을 엄격히 성수해야 한다. 주일날 세상적인 오락과 경건치 못한 언행과 행위들은 금하고 경건하게 지켜야 한다. 셋째, 예정과 특별구속, 하나님의 언약은 성서적 진리이므로 믿어야 한다.
청교도들의 언약사상(계약사상)은 존 칼빈과 스위스 종교개혁자 하인리히 불링거(Heinrich Bullinger)로부터 기원했다. 칼빈의 언약신학은 예정론과 연계되어 있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 아브라함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언약을 맺었으며, 따라서 언약은 택한 백성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이 일방적인 약속이라 하였다.
한편 불링거는 구원에 있어 인간의 반응을 필수적인 요소로 보았다. 그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쌍무적 계약사상을 주장했는데 즉, 하나님은 아들을 통해 화해와 축복을 주셔야 하는 책임이 있고, 인간은 믿음과 순종이라는 책임이 있다고 했다.
이러한 두 가지 언약신학의 영향으로 인해, 청교도들 가운데 예정론을 믿으면서 인간의 책임을 주장하는 경우가 있었다. 예를 들면,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는 “은혜 계약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그의 유익을 인간에게 값없이 약속하시는 것으로 인간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의 죄들을 회개함으로 계약이 체결되는 것”이라 해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지만, 그 과정에서 믿음과 회개는 인간의 의무임을 강조했다.
교회 체제에 대해 청교도 다수는 장로교주의를 원했다. 그들은 성공회의 중앙집권적 주교제도를 여러 단계의 회의가 교회를 이끌어가는 장로교주의 체제로 바꾸려 했다. 일부 청교도들은 장로교주의를 반대하고 개교회의 독립과 자치를 인정하는 회중교회주의를 성경적 교회 체제라고 주장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장로교주의나 회중교회주의 모두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급격한 교회 체제의 변화로 정치적 불안이 야기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시대 청교도들의 이상은 실현되지 못할 것이 명백해졌다.
성공회의 개혁이 어려워지면서 청교도들은 성공회에 남아서 개혁을 이어가려는 다수파와 성공회를 떠나 독자적인 교회를 세우려는 소수파로 분화됐다. 장로교주의자의 다수는 성공회에 남아 성공회를 장로교주의 교회로 바꾸려 했으나, 소수는 성공회를 탈퇴하고 독자적인 영국장로교회를 세웠다.
한편 회중교회주의자들은 개혁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국교회에 남아 있는 것은 세속 권력과 타협하는 것으로 간주, 국교회를 탈퇴하고 독립교회를 세우려 했다. 회중교회 운동을 실행한 사람들은 교수형을 당하거나, 타국(네덜란드)으로 피난을 가야 했다. 그런데 회중교회주의자들보다 훨씬 혁신적인 변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회중주의, 개교회주의만 가지고는 신약성경의 교회를 온전히 구현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회중주의에 신자의 침례와 종교의 자유 및 정교분리까지 더해져야 온전한 신약성경적 교회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들이 곧 침례교주의자들이었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17세기 초 영국 분리파 청교도들은 장로교회, 회중교회, 침례교회를 세우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