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중립성(VALUE NEUTRALITY)
‘가치중립성’은 통상적으로 ‘몰가치성(Value-freedom; 가치자유)’이라고 부른다. 국어사전에서는, ‘몰가치성’이란 어떤 사물을 대할 때 자신의 주관적 판단을 억압하고 그것을 하나의 현실이나 사실로서 이해하고 파악하려는 학문상의 태도라고 정의하고 있다.
사회과학에 있어서의 몰가치성은 실증주의 또는 경험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실증주의는 자연과학과 동일한 인식론적 지위를 가지고 사회현상을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자연과학은 인간지식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과학은 보편적 법칙의 발견을 목표로 하는데, 이러한 법칙들은 우리가 물리적 및 사회적 과정들을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게 해준다. 과학적 이론이 진실인가 아니면 허위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관찰을 통하여 마련된 경험적 자료(empirical data)에 대한 논리적인 관계에 달려있다고 본다. 그 외의 기준은 관련이 없다. 특히, 과학적 관행은 객관성의 요건, 즉 도덕적 또는 정치적 가치가 과학에 끼어들므로써 생기는 왜곡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요건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막스 베버(Max Weber). 사회과학의 몰가치성에 관한 생각은 막스 베버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마르크스주의자들, 공리주의자들, 그리고 역사주의자들과 대립하는 논쟁에 있어서 베버가 사용한 전략적 요소가 “몰가치적인” 사회과학에 관한 생각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과학적 주장의 진실이 역사적 조건에 달려있다고 해석하는데 반해서, 베버는 몰가치성이라는 그의 생각이 과학적 판단과 연구자의 개인적인 평가를 분리시킴으로써 사회에 관한 과학적 연구가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비록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 주제에 대하여 가치와 개념들을 끌어들여 올지라도, 과학자들은 자신의 가치와 생각을 연구대상이 되고 있는 행위자들의 가치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과학활동에 있어서의 ‘몰가치성’에 관한 주장은 사회과학과 규범적 판단간의 관계에 관한 논쟁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실증주의와 몰가치성
과학의 영역과 정치 또는 도덕적 가치들은 별개라고 생각하는 몰가치성의 원리에는 두 가지 국면이 있다: 하나는 과학적 이론의 타당성의 기준이 규범적 판단과 별개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과학적 이론으로부터 도덕적 판단을 도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국면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논리적 실증주의의 원리라고 말하는 것과 ‘몰가치성’간의 관계를 간단하게 나마 언급해 둘 필요가 있다.
‘실증주의(positivism)’는 여러 가지로 해석되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의 원리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적 기원을 달리하는 상충하는 몇 가지 원리들로 구성되어 있다. 즉, 흔히 실증주의라고 생각하는 것들중에는 적어도 네 가지 원리가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과학주의, 과학의 실증주의적 개념, 과학적 정치, 그리고 몰가치성이다. 우선 실증주의의 다른 원리들과 몰가치성과의 관계를 밝혀두어야몰가치성과 실증주의의 다른 국면들을 동일시하는 오해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1) 과학주의(scientism)는 과학만이 인간의 지식의 진정한 형태를 나타낸다고 하는 견해인데, 몰가치성을 강조하는 사회과학은 과학적 지식만이 진정한 지식이라고 주장하지 않으므로 몰가치성이 과학주의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2) 과학의 실증주의적 개념(positivist conception of science)에 의하면, 과학은 관찰 가능한 현상들이 時․空(time and space)의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보편적 법칙의 사례들이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설명하고 예측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언명들이 진실인가 또는 허위인가 하는 것은 특정한 관찰 가능한 자료를 묘사하는 구체적(non-universal; 비보편적)인 언명들과의 논리적인 관계에만 달려 있다는 것이다. 과학적 법칙에 관한 언명들은 이론적 용어를 포함하고 있어서 직접적으로 관찰되는 것을 가리키지 않을 수도 있으나, 그것이 관찰 불가능한 사항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은 과학의 실증주의적 개념은, 과학적 이론의 타당성과 가치판단은 별개라고 하는 몰가치성의 원리를 지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증주의적인 사고는, 과학적 이론으로부터 규범적 판단을 도출할 없다고 하는 몰가치성의 다른 국면과는 관계가 없다.
(3) 과학적 정치(scientific politics)는 정치적 쟁점들을 과학적으로 해결하고 과학적으로 정립된 이론을 통하여 정책을 구성하고 집행해야 된다는 주장인데, 몰가치성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하지 않는다.
몰가치성의 두 가지 국면:
위와 같은 고찰을 배경으로 하여 사회과학의 몰가치성에 관한 두 가지 국면을 좀 더 자세하게 고찰할 수 있을 것이다.
(1) 첫째, 과학적 이론들을 위한 타당성의 기준은 특정한 도덕적 또는 정치적 신념을 수락하는가 또는 거부하는가에 하는 입장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의 이론이 진실인가 또는 허위인가 하는 것은 이러한 규범적 입장과는 별개로 결정될 수 있다. 그러나 몰가치성의 이러한 원리가 규범적 판단의 비합리성을 함축하는 것은 아니다.
일상적인 언어의 용어나 사회과학의 중심적 이론의 용어 중에는 뚜렷한 규범적 함축성을 가진 것들이 많다. 예를 들면, ‘소외’ 또는 ‘아노미’와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용어들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정치적 또는 윤리적 태도를 묵시적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과학적 이론의 타당성의 기준과 그에 관한 논리적 태도는 별개라는 주장에 대한 반론은 그와 같은 분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가치 중립적이거나 규범적 요소를 지니지 않은 묘사적 어휘(용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치 중립적인 사회과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용어들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나 그것은 지나친 생각이다. 사회과학의 용어가 규범적 함축성을 가진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막스 베버는 그의 글에서 ‘카리스마’ ‘교양인’ 또는 ‘세계적 종교’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그것들을 “가치 중립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도 한다.
(2) 둘째, 과학적 지식만 가지고서는 도덕적 또는 정치적 판단을 도출할 수 없다. 따라서, 사람들은 과학적으로 성립된 관련이 있는 주장들에 관하여 합의하면서도 이러한 판단에서 주창되는 것이 소망스러운가에 관하여 정당하게 견해를 달리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적 이론으로부터 규범적 판단을 도출할 수 없다라는 말이 과학적 언명의 진실 또는 허위가 도덕적 판단을 수락하거나 거부하는데 있어서 언제나 무관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 언명들은 실제로 규범적인 판단을 수반하지 않으면서도 흔히 논리적으로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사회과학의 이론이 규범적 판단을 수반하는 것이 아니지만, 사회과학자들은 사회적 현상에 대한 중요성(의의)을 판단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중요성’(의의; significance)은 규범적 중요성, 설명적 중요성 그리고 인식적 중요성이라는 세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인식적(epistemic) 중요성은 과학적 주장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관련된 증거의 기능 등에 관한 것이다. 그와는 달리 설명적(explanatory) 중요성은 특정한 사회이론에 의할 경우 연구의 대상을 설명하는데 기여한 항목이다. 그리고 설명대상의 중요성은 결국은 규범적 기준을 준거로 하여 결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인식적 및 설명적 중요성은 과학적으로 결정될 수 있으나 규범적 중요성은 과학적으로 결정될 수 없다. 그러나 규범적 중요성을 결정하는 것은 모든 사회이론의 불가피한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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