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대립이 고조되면서 현 시점에 왜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놓고 대립하고 있는지 다양한 해석이 제시되고 있다. 그런데 미·러의 우크라이나 대립이 러시아-독일 직통가스관인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개통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도박은 서유럽가스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것이다.
러시아는 냉전시기 이후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양대 위성국가를 통과하는 가스관을 통해 서유럽과 동유럽으로 가스를 수출해왔다. 그러나 냉전종식 이후 우크라이나에 나토와 유럽연합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러시아의 유럽가스 수출이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는 지리적으로 러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통로이기 때문에 우크라이나가 미국 세력에 넘어가면 러시아 유럽가스 수출의 70~80%는 사라지게 된다.
우크라이나와 동유럽 국가, 발트해 국가 등 러시아 가스 공급에 독점적으로 의존해 있는 국가들에 트럼프 정부는 미국 셰일가스를 액화천연가스(LNG) 형태로 공급함으로써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전략을 추진하였다. 미국의 이러한 '자유가스'(freedom gas) 전략에 제동을 건 것이 독일-러시아 간 직통가스관인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이다.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은 2005년에 합의되어 2011년에 개통된 제1노선과, 2015년에 합의돼 곧 개통을 앞둔 제2노선으로 구성된다. 트럼프 정부는 노르스트림 가스관 건설에 참여하는 유럽 기업들까지 제재목록에 올려 가면서 압박을 가했지만 가스관 건설은 강행되었고, 거의 건설이 마무리되는 상태에서 바이든 정부가 집권하게 되었다.
실제로 현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압박이 표면화된 직접적 계기는 2021년 5월 바이든 정부와 독일 정부가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건설에 대한 제재를 해제한다고 발표한 것이 출발점이다. 표면적으로 미국의 러-독 가스관 승인은 건설이 거의 완성되어 제재가 효과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으나, 실상은 바이든 대통령이 기후변화 협력 등을 위해 트럼프 시대의 대서양 동맹 와해를 매듭짓고 독일 등과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행보였다.
제재 해제 발표 후 러-독 가스관을 통한 러시아가스 서유럽 수출 확대가 유럽질서를 불안정으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미국의 셰일가스 수출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세력권에 넣어서 러시아의 유럽 영향력을 단번에 차단하려던 기존의 전략은, 러-독 가스협력에 의해 러시아에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으며 동시에 우크라이나, 폴란드, 헝가리, 발트해 국가 등도 다시 러시아의 영향권 아래 놓일 수 있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러시아의 석유·가스 등 에너지 수출을 통한 유럽 내 영향력 유지는 미국이 지금까지도 막지 못하고 있다. 서유럽에서 전통적으로 러시아 가스 수입 측면의 우방은 무엇보다도 독일과 이탈리아다. 두 나라는 경쟁적으로 러시아와의 긴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가스를 수입하려 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이다. 네덜란드와 영국은 북해에서 가스를 생산하기 때문에 러시아에 의존하지 않았으나 최근에는 매장량 고갈로 결국 가스 수입국이 되었다.
러시아의 전략과 의도는 우크라이나 경유 방식의 과거 유럽으로의 가스수출 방식과 결별하는 것이다. 과거 오랫동안 우크라이나-동유럽-서유럽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동서 가스 흐름의 방향을 바꿔 독일을 통해 서유럽 가스시장을 장악해서 직접 가스를 공급하는 것이다.

미국과 독일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 러시아-독일 가스관 사업을 중단하겠다고 선언,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크게 의존하는 유럽의 에너지 문제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LNG) 수출국으로 부상한 미국이 유럽의 에너지 위기 해결을 도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7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7일(현지시간) 백악관 정상회담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러시아 가스를 독일로 직접 들여오는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 사업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우크라이나 위기로 유럽에 대한 러시아 천연가스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미국산 천연가스가 유럽의 에너지 공급원으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유럽에서 러시아산 가스 공급 감소와 우크라이나 위기 우려 속에 천연가스 가격이 최근 몇 개월간 치솟자 미국 LNG 운반선이 암스테르담 같은 유럽 항구로 줄지어 향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을 지배했던 러시아와 지난 수년간 가스 수출 능력을 키워 온 미국 간의 에너지 전쟁이 마침내 펼쳐지고 있다고 NYT는 지적했다.
에너지 리서치회사 우드매킨지는 미국의 대유럽 LNG 수출이 최근 몇 주간 폭발적으로 늘어 유럽이 들여오는 러시아산 물량마저 능가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LNG 수출은 최근 몇 달 사이 유럽의 전례 없는 에너지 위기를 맞아 부쩍 늘었다.
금융정보업체 레피니티브에 따르면 유럽은 지난달까지 2개월 연속으로 아시아를 제치고 미국산 LNG의 최대 수입처가 됐다.
미국산 LNG의 수입처에서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년 초 약 37%에서 작년 12월 61%로 급상승했고, 지난달에도 미국이 수출한 LNG의 약 3분의 2가 유럽으로 갔다.
또 블룸버그가 집계한 선박 추적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해 12월에는 처음으로 월 기준 세계 최대 LNG 수출국에 올랐다.
게다가 미 LNG 업체 '벤처글로벌LNG'는 58억달러(약 6조9천억원)를 투입한 루이지애나주 수출공장에서 곧 LNG 생산을 시작한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이 시설이 완전히 가동되면 미국의 하루 LNG 수출량은 최대 139억큐빅피트에 이를 것으로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추산했다. 이는 양대 수출국인 카타르와 호주를 능가하는 물량이다.
미국 최대 LNG 수출업체인 셰니어의 루이지애나주 사빈패스 수출시설도 최근 확장을 마쳤다.
블룸버그는 10년 전만 해도 천연가스 순 수입국이었던 미국이 이제 세계 LNG 수출국 1위 자리를 굳히고 있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은 셰일 붐 덕에 세계 최대 천연가스 생산국으로 도약했고 카타르와 경쟁하는 수출국이 됐다.
컨설팅업체 액센츄어의 무크시트 아스라프는 "이제 미국 LNG는 전통적으로 가스 생산에 큰 장점이 있는 중동 국가를 포함한 거의 모든 나라와 경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도 미국이 2022년 연간 기준으로도 카타르와 호주를 제치고 세계 1위 LNG 수출국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은 향후 몇 년간은 1위 자리를 지킬 것으로 보인다.
한편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이날 워싱턴DC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 에너지 대책 등을 논의하고 가스 공급을 보장하기 위한 협력을 다짐했다.
양측은 에너지 대책회의 직후 공동 성명에서 "추가적이고 다변화한 LNG 공급을 위해 협력할 것"이라며 "에너지 공급을 무기로 사용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