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동주의, 盲動主義
盲: 소경 맹
動: 움직일 동
아무런 원칙과 주견이 없이 덮어놓고 남이 하는 대로 맹목적으로 따라 움직이는 경향.
좌경 맹동주의
신동호 아나운서는 "어제 이석기 의원이 재판장에서 '좌경 맹동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북한어로 알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김재연 의원은 "그것은 사회자의 추측이다. 누구나 쓸 수 있는 말이다"고 재반박했다.
신동호 아나운서는 다시 "아, 좌경맹동주의가 우리 일반 국민들이 쓰고 있는 단어군요"라고 냉소적으로 대답했다. 이에 김재연 의원은 "그 말을 쓸 수 없다고 하는 근거가 어디 있느냐"고 지적했다.
신동호 아나운서 역시 물러서지 않고 "좌경 맹동주의란 용어가 북한어로 사전에 나와 있긴 하지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잘 안 쓰는 단어가 아니지 않느냐"고 강조했다.
김재연 의원은 "좌경 맹동주의란 용어를 저는 많이 들어 왔었다. 사회자가 어떤 편견을 갖고 말하는 것 같다"라고 신동호를 비난했다.
문제가 된 '좌경 맹동주의'는 1919년 모스크바에서 창립된 노동자 국제조직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이 도시와 노동자 운동 중심으로 무장폭동을 추종했던 것이 어원으로 현대에는 좌익 성향을 띄고 무분별하게 행동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좌경 맹동주의를 두고 벌어진 설전 소식을 접한 네티즌은 "좌경 맹동주의,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좌경 맹동주의, 어렵네", "좌경 맹동주의, 처음 들어본다" 등의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신지호
1963년 서울
경기고등학교,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경제학과
대학 재학 때부터 운동권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PD계열인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약칭 인민노련), 한국사회주의노동당 추진위원회에서 활동[2]하다가 동구권 붕괴와 구 소련 해체를 보고, 거기에 민중당이 총선에서 의석 1석도 확보하지 못하고 패배해 버리는 것을 경험했다. 잡지 <길을 찾는 사람들> 1992년 8월호에 "당신은 아직도 혁명을 꿈꾸는가?"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사회주의 사상폐기를 선언하였다.
이후 잠시 동안 경실련 공동대표 서경석 목사를 보좌하다가 일본 게이오대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하였고, 삼성경제연구소와 KDI를 거쳐서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로 지내다가 2000년대 뉴라이트를 표방하게 되었다.
뉴라이트를 표방하면서 자유주의연대 대표를 맡으며 한나라당과 연대를 거세게 비판했다. 특히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선진화 세력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