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문화 Art, Culture/기타, 음악 Guitar, Music

트로트, Trot, 폭스트롯(foxtrot), 미야코부시 음계

Jobs9 2024. 1. 26. 10:48
반응형

트로트, Trot

대한민국과 중화권의 음악 장르 대중가요 중 하나이며, 성인가요 혹은 "뽕짝"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국명 : 情歌, 酒廊情歌, 伤感情歌) 국악 전통 민요 이어서 근현대시대에 이어서 전통가요로도 점점 인정되는 추세이다. 

기존의 민요을 비롯한 한국 전통 음악과 중국의 민요와 경극 및 잡극 당시 서양 블루스 계통의 음악 문화, 그리고 일본의 근대 대중가요인 엔카와 같이 발전하며 상호 영향을 주면서 만들어졌다. 

전통적인 한국 민요의 대중적·정서적 흐름과 대한제국 시기 근대 개화기 흐름을 바탕으로 서양풍의 대중음악 결합, 그리고 일제강점기 시기 동안에는 엔카의 영향으로 그 흐름과 맥락을 공유하면서 한국 근현대 대중음악으로써 시작했다. 

엔카의 영향이 얼마큼인지에 대해서는 반론이 있다. 아래 왜색 논란 참고. 일본 엔카 역시도 서양에서 전래한 폭스트롯과 일본 민요 영향이 합쳐져 만들어진 장르이다. 

'트로트'라는 이름은 미국 래그타임과 재즈의 친척뻘인 춤곡 장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폭스트롯(foxtrot)'에서 유래했다. 그렇지만 한국 대중가요에서의 트로트 양식과 폭스 트로트는 단순한 2박자라는 공통점을 빼고는 관련성이 없다.


1960년대~1970년대부터 트로트라는 이름이 쓰였으며, 현재는 트로트가 한국식으로 많이 변화된 새로운 형식의 대중음악이 되었으므로 현대의 트로트와 폭스트롯을 비교해 보면 그다지 닮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간혹 throat, 즉 목구멍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으나 모든 노래가 성대를 쓰는 건 마찬가지라서 설득력이 부족하다.


특징

 


초기 트로트의 음계는 장음계에서 4음과 7음을 뺀 오음 장음계(도레미솔라)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들어온 단음계에서 4음과 7음을 뺀 미야코부시 음계(라시도미파)가 쓰였었다. 박자는 듀플미터(Duple metre, 2박 계열 박자)를 자주 사용했다. 노래 밑에 쿵짝쿵짝 소리가 뚜렷하게 들리기 때문에 ‘쿵짝’, ‘뽕짝’이란 이름으로도 불리게 되었다. 여기서 4박 계열로 변경한 것이 위 사진의 3번째 박자 패턴인데 송대관의 유명한 히트곡 네박자의 가사 '쿵짝 쿵짝 쿵짜자 쿵짝'은 그 박자를 그대로 구음화 한 것이다. 일명 뽕끼, 뽕기, 뽕필 등으로 표현하는 독특한 느낌이 있어서 전주만 듣고도 트로트 특유의 느낌을 느낄 수 있다. 초기 트로트보다 훨씬 발전한 현대 트로트는 5음계뿐 아니라 7음계와 발라드, 락, 댄스 등 다양한 장르의 요소들을 접목하여 만든다. 

사랑과 이별, 고향을 그리워하는 한과 애수가 담긴 내용이더라도 대체로 노래 분위기는 아주 신나며 지역별 특징이 잘 드러나는 가사, 사투리 억양을 연상시키는 음정, 국악에서 많이 사용하는 목소리를 길게 떠는 창법 등 한국적인 요소와 허스키 보이스를 이용하여 향토적이고 구수한 느낌을 주고 추임새, 감탄사가 많고 음의 높낮이 변화가 적으며 길이 변화가 크다. 

트로트 가사에서는 외국어를 잘 쓰지 않는데, 특유의 라임과 리듬을 해칠 수도 있기 때문인 듯하다. 요즘 나오는 최신 가요들처럼 외국어를 포함하는 사례가 없지는 않지만 드문 편이다. 

트로트에 랩이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힙한 느낌의 랩이 들어가면 트로트의 구수한 느낌이 잘 느껴지지 않으며 노인들의 정서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제목 또한 한국어로 되어 있다. '그다음은나도몰라요', '사랑은돈보다좋다' 등 띄어쓰기가 없는 10글자 내외로 된 짧은 문장 형태인 경우가 그러하다.

트로트는 아이돌 음악과는 완전히 반대된다고 할 수 있지만[ 아이돌이 트로트 음악을 선보이는 경우도 있다. 티아라와 오렌지캬라멜은 대부분의 노래에 트로트적인 느낌이 어느 정도 있으며, 크레용팝과 슈퍼주니어도 트로트 곡(각각 어이, 로꾸거)을 발매한 적이 있다.

젊은 여성 트로트 가수들은 섹시 콘셉트를 내세우는 경우가 많은데, 나이가 많은 남성 팬들을 끌어모으기 위함이다.


올드 트로트
서양에서 폭스트롯이 들어오고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하기 전후까지 만들어진 초기 트로트.

정통 트로트(도롯도)
펜타토닉 스케일, 듀플미터 리듬, 느린 BPM을 꼽을 수 있다. 도롯도라고도 하며, 현대 트로트 가수들의 주 수입원인 행사용 무대와는 그리 맞지 않기 때문에 장르로서는 이미 사장되었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최근에는 "완전한" 정통 형식보다는, 펜타토닉 스케일은 유지하되 디스코 리듬을 접목한 빠른 BPM의 곡들이 그나마 정통 트로트의 명맥을 잇고 있다. 이런 곡들은 주로 브라스, 스트링(둘 중 한 가지만 편성하기도 한다) 편성인 20인조 팝스오케스트라 악단 반주로 나오고 있다.

 

엘레지 트로트
애수(elegy)한 정서(슬픈 정서)를 강조한 트로트. 엘레지의 여왕이라고 부르는 이미자의 곡들이 유명하다.

 

블루스 트로트
흑인 음악인 블루스를 트로트와 합친 장르. 보통 'ㅇㅇ부르스'라는 제목인 경우가 많다. 흔히 블루스 음계(블루노트)와 12/8박자 블루스 리듬을 사용한다.

 

국악 트로트
고대부터 내려오는 우리나라 전통음악인 국악과 트로트를 합치거나, 또는 민요 형식으로 만든 대중음악과 트로트를 합친 장르. 달타령, 백세인생이 대표적이다.

 

발라드 트로트
1970~80년대부터 유행한 서구 음악인 포크와 발라드의 느리고 서정적인 스타일을 트로트와 합친 장르. 조용필 초기 앨범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한국에서는 성인가요, 즉 어덜트 컨템포러리 장르와 거의 같은 뜻으로 쓰기도 한다. 따라서 실제 장르면으로 트로트와는 거리가 먼 어덜트 컨템포러리, 스탠다드 팝 가수인 패티김을 '트로트 가수'라고 오해하곤 하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스타일의 장르가 존재하는데 '뉴 어덜트 뮤직'이라고 지칭한다.


R&B트로트
R&B와 트로트를 합친 장르. 김추자가 이 분야의 선구자로 유명하다. 조관우가 이 장르에서 독보적이다.

 

락 트로트 (트로트 고고)
1970년대부터 등장한 강렬한 드럼, 기타리프 등 락 요소를 트로트와 합친 장르. 윤수일, 심신 등이 이 분야의 대표이다.

 

포크 트로트
포크 음악과 트로트를 합친 장르로서, 90년대 이후 70~80년대 포크송 가수들이 활동하는 라이브카페에서 태동했다. 위와 같이 창법은 포크송인데 멜로디만 트로트인 경우에는 성인포크송이라 칭하기도 한다.


댄스 트로트, 세미 트로트
1990년대부터 본격 등장한 트로트 장르로 1990년대 초반 하우스 댄스 가요와 K-POP 영향을 많이 받았다. 댄스와 세미를 구분하지 않기도 하지만 만약 구분한다면 세미는 BPM 90~120 미디엄 템포, 댄스는 일반적인 댄스와 유사한 BPM 120~140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뽕끼라 불리는 트로트 특유의 느낌이 덜하다. 장윤정, 박현빈, 홍진영과 같은 가수들이 대표적으로 구사하는 장르이다. 

이 시기로 이르러서는 기존 트로트 특징이 많이 옅어지고 '뽕끼가 섞인 댄스곡'과 '댄스 트로트'는 구분하기 어렵게 되었다. 트로트 음계나 창법을 사용하지 않는 댄스곡을 트로트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멜론에서는 전형적인 유로 댄스 곡인 하이디의 진이를 트로트 차트로 분류하고 있다. 

이러한 트로트는 음악적, 장르적으로 구분하기가 어려워지니 대신 보컬리스트의 창법으로 트로트인지 댄스곡인지를 판가름 한다고 할 수 있다. 장윤정의 '어머나', '짠짜라'[는 음악적으로도 트로트 색깔이 강한 세미 트로트지만, '장윤정 트위스트', '올래'같은 곡들은 창법만 빼고 보면 일반적인 댄스, '어부바', '사랑아'같은 곡은 트랜스와 가깝다. 

태생적으로 파티 음악인 EDM과의 결합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는데 김연자의 '아모르파티', '블링블링'이 대표적이다. 홍진영이 만든 조어인 '뽕디엠'이라는 표현도 많이 쓴다.

이박사의 몽키매직, 영맨을 시초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뽕짝
트로트 메들리로 볼 수도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나 관광버스 등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2000년대 초반 트로트.

하드코어 테크노 장르가 대체로 그렇듯이 흥을 극도로 끌어올리기 위해 최소 140 이상의 높은 BPM이 특징이다. 쿵짝쿵짝 소리가 시계 초침 소리보다도 빠르며, 목소리를 가릴 정도로 뚜렷하다. 보컬 역시 계속 꺾고, 지르며, 한시도 쉬지 않고 추임새를 넣는다. 

뽕짝은 1970년대 트로트를 낮추어 부르는 말로 처음 쓰이기 시작했으나, 이후 기존 트로트와는 조금 다른 장르로 발전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박사를 비롯한 한국의 1980~1990년대 뽕짝 음악과 관련하여 일본 대중음악 평론가들은 1980년대 이후 신스팝 영향을 강하게 받으면서 트로트에 전자음악이 혼합한 것을 뽕짝으로 평가한다. 

애초부터 값싸고 빠르게 많은 곡들을 엮어서 흥을 끌어올리는 것이 목적인 장르이므로 밴드 연주는 뒷전이고 신디사이저 반주로 양산하듯에 찍어내며 시작한 음악이었다. 업계에서는 '전자올갠(전자오르간)'이라고 부른다. 보통 구성하는 악기들은 80~00년대의 구형 야마하 엘렉톤(특히 HS8)+1974년식 롤랜드 SH-2000+야마하 DX 시리즈+SOLTON MS60+KORG M1+Roland D-50+드럼머신+α이며 여러 단으로 쌓아놓은 것이 오르간 같아서 붙은 이름인 거 같다. 신디사이저는 오르간에 가깝기도 하다. 

그러다 이후 뽕짝만의 특색을 갖추며 발전하였다. 1980년대 무그 신디사이저를 사용한 뽕짝 음악을 들어보면 크라프트베르크 뺨을 후려칠 수준인 리듬 패턴도 종종 보이곤 한다. 일부 음반을 제외하면 대부분 반복적 전자음 or 브라스 or 브라스밴드 + 드럼(고음,퍼커션) 리듬 패턴을 쓴다. 특히 롤랜드 리드 연주에 쓰는 SH-2000의 소리를 꽈배기 소리라고 많이 부른다. 그리고 민요 메들리인 경우엔 국악기도 쓴다. 


자신들을 이른바 '정통 트롯'이라며 자화자찬하는 현 트롯 업계에서는 이런 '뽕짝'을 홀대하며 수준 낮은 장르로 취급하는 풍조가 만연하다. 위 영상에서 아주 잘 드러나는데 이박사 무대를 보고 태진아는 대놓고 인상을 찌푸리다 헛웃음이 터졌고, 설운도와 박명수는 좋게 봐주고 싶어도 옆에서 태진아 눈치를 봐야 했으며, 젊은 편으로 속하는 홍진영과 박현빈은 무대를 즐기긴 했으나 이박사 등장 초반 "이박사 아니야? 이박사 맞지"라고 손가락질하며 선배 가수에게 존중 없는 발언과 행동을 일삼았다. 곡이 끝나갈 때 즈음에 와서도, 계속 못마땅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태진아의 눈치를 보아가면서 서로에게 떠 넘기다가 픽 마감시간 직전에서야 그나마 홍진영이 픽을 했을 정도다. 그만큼 트로트 업계가 뽕짝 아티스트를 같은 트로트 종사자, 선배로서 대우하지 않으며 그저 '웃기는 사람' 정도로 치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에서도 '뽕짝'이나 '품바' 스타일 곡을 보여준 참가자들은 예선에서 모두 광탈했으며 아예 방송에서 통편집하거나 무대조차 제대로 보여주지 않고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컷으로 탈락 사실만 알려준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또한 자사의 트롯 시리즈 흥행을 언급하면서 뽕짝을 폄하하는 발언을 했다. 

사실 정통을 자부하는 태진아, 송대관 같은 가수들은 물론 주현미도 이런 "뽕짝 메들리" 앨범을 낸 적이 있다. 최근 들어 이런 "뽕짝" 역시 나운도를 위시한 실력파 가수들이 등장하며 예전보다 위상이 높아진 상태다. 흔히 뽕짝(디스코) 메들리로 유명한 가수는 김용임, 진성, 박구윤 등이 있다.

록 음악에 기반한 음악 씬에서 뽕짝 장르를 수용 혹은 차용하는 시도가 간간이 있어 왔다. 시나위, H2O, 삐삐밴드의 주축 멤버(베이시스트)였던 달파란이 영화음악가 겸 테크노 뮤지션으로 변신하면서 뽕짝의 트랜스성에 주목하여 기존 뽕짝을 샘플링해 솔로 앨범링크과 영화음악을 작업하였다. 인디계에서 어어부밴드(보컬 백현진)링크,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링크 같은 밴드가 트로트 내지 뽕짝을 접목한 수록곡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1998년에는 서준호(줄리아 하트 1집 멤버, 드럼)가 결성한 볼빨간이란 팀이 '뽕짝 트로트 지루박 일렉트로니카'를 표방하며 전체 컨셉으로 뽕짝을 깐 앨범 '지루박리믹스쑈!'를 발표했다. 첫 곡의 부제부터가 '이박사에게 바침'이다. 2001년에 후속 앨범 '야매'링크로 활동이 이어졌다.

뽕짝에 대한 진지한 음악적 평가는 언더그라운드 음악 팬들 사이에서 2010년대 들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었다. 특히 이박사의 음악을 중심으로 때로는 농담 반 때로는 진심으로 재평가 얘기가 꽤 자주 나왔다. 그러던 중 2017년, 이센스, 글렌체크, XXX 등이 소속된 Beasts And Natives Alike(BANA) 소속 아티스트 250이 우리 주변에서 스며들어 있는 '뽕'을 찾는 다큐멘터리 시리즈 '뽕을 찾아서'를 5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5편으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결과물로서 2022년 3월 18일 발매된 음반 <뽕>은 국내외 언더그라운드 음악계에서 상당히 주목을 받았고, 250이 마침 선풍적 인기를 구가하던 아이돌 NewJeans의 프로듀서라는 점에 힘입어 일부 대중 사이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결국 <뽕>은 2023년 한국대중음악상 4관왕이라는 기록을 세워 더 많은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품바, 각설이
뽕짝에서 다시 한 번 분화한 장르로, 전국의 장터를 돌아다니며 행하는 '품바' 및 '각설이'들의 공연 문화에서 시작하였다. 장타령, 즉 장날마다 돌아다니면서 무대를 선보이고 물건을 팔기도 하는데 어찌 보면 조선시대 남사당패의 직계 후손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무명 가수, 캬바레 가수, 품바(각설이) 등이 이런 식으로 메들리 음반(소위 관광 디스코, 지루박 등)을 내곤 하는데 예를 들면 위 영상에서 나오는 사이다텍, 코뿔소 품바단이 있다. 음악은 뽕짝에서 더 빨라져서(대부분은 그냥 빨리 돌리는 수준이라고 보는게 낫다) BPM 170을 넘어가는게 비일비재. 

가끔 캬바레나 성인나이트 등지에서 단체로 공연하기도 하지만 주요 무대는 전국에서 존재하는 장터이다. 대다수 인구가 아파트에서 거주하는 현대 대한민국에서도 간혹 아파트 단지 내 야시장에서 공연하는걸 종종 볼 수 있다. 품바답게 정식 무대가 아닌 공터에서 장비를 설치하고 공연하여 관객과 구분되지 않는 것이 특징. 품바나 각설이 정체성을 강조하여 의상은 누더기 한복을 기반으로 과장된 화장을 비롯한 광대 분장을 하고 장구, 북, 꽹과리같은 국악 타악기를 주도적으로 사용한다. 특히 공연자가 장구 속주(!)와 함께 노래를 하는 모습은 품바단의 트레이드 마크. 

대형 전통시장이나 읍내의 유흥가에서는 밤 시간대에 선정적인 공연을 하기도 한다. 이런 공연은 '여인천하', '품바방뎅이' 등으로 불린다. 젊은 여성들이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채로 선정적인 가사의 트로트를 부르며 엉덩이 등을 노골적으로 부각시키는 춤을 춘다.

 


비판

 

왜색과 원조
트로트가 엔카와 비슷한 점이 있다는 인식이 퍼져있고 일본식 음계의 영향이 남아있다. 표준국어대사전 트로트 항목도 '정형화된 리듬에 일본 엔카(演歌)에서 들어온 음계를 사용했다'고 서술한다. 민족말살통치 시기엔 한국적인 정서를 띄는 노래를 만들기 어려운 경우도 겪었다. 이로 인해 해방 후 왜색으로 찍혀 탄압받은 일도 있었다. 이미자의 곡 동백아가씨도 엔카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금지곡 처분을 먹었던 바 있다.


반박
비록 일제강점기 당시엔 일본으로부터의 영향력과 친일 행적 가수들이 활동했던 사례, 그리고 일제의 민족말살정책까지 더해져 해방 전까지는 대중가요 분위기와 창법 등을 두 나라가 비슷하게 공유했었다. 하지만 해방과 동시에 일본과의 문화적 단절이 일어나며 왜색을 제거하고 한국만의 독자적인 요소로 발전시키며 '트로트'라는 하나의 장르로 확립시켰고 일본도 비슷한 시기에 별개로 '엔카'라는 장르를 확립시켰기에 '트로트의 원조는 엔카'라는 건 시간적 선후 관계가 다소 어긋난 결론이라는 주장도 있다. 일반적으로 엔카를 막연히 일제강점기의 일본 대중음악과 동일시 여기는 경향이 있고, 엔카의 역사를 말할 때 일제강점기의 노래들도 곁들여 다루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단지 60년대부터 확립된 엔카라는 장르의 뿌리가 일제의 대중가요이기 때문에 편의적으로 묶어서 설명하는 것 뿐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유행하던 대중가요들의 영향 중에서 서양 음악과 일본 민요 요소만 있었던 게 아니라 한국 민요 요소와 한반도의 각 지역색 또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일제강점기 대중가요 자체를 전부 일본만의 것으로 단정짓기에는 애매하다. 한국 정서가 느껴지는 곡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광복 이후 대대적으로 왜색 걷어내기 운동과 함께 점차 현대적인 기술로 발전하는 악곡을 넣거나 한국 특유의 정서를 함께 살려서 접목함과 동시에 차별점 또한 부각시키며 발전해 왔다. 일제강점기 때도 당시 한반도의 대중들이 서양에서 전해진 세련된 음악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나 해방 이후 이화여대에서 이야기를 봐도 트로트는 일본음악이 아닌 서구음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한편 트로트 전체 역사에서 보면 일본 영향은 일제강점기와 민족말살통치 시기로 한정될 뿐이며 현대 트로트 곡들은 일본식 음계를 사용해서 만든 곡들을 제외하면 왜색이란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정작 일본 음악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엔카가 한국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거나 '엔카는 한국이 원조'라는 인식이 있다. 엔카의 시조라 불리는 코가 마사오가 6/8박자 등 한국 민요의 영향을 자주 언급했다. 급기야 엔카협회에서 그가 한국인이라느니, 엔카의 멜로디는 한국으로부터 온 것이라느니 하기도 했다.

--"일본 엔카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 피가 섞여있고, 엔카 멜로디 원조는 한국입니다." 다카기 이치로, 일본엔카가요협회 이사장
"일본의 엔카 멜로디는 한국의 멜로디다." 고바야시 아세이, 일본 원로 작곡가
일본엔카가요협회 "일본 엔카의 창시자 故 고가 마사오는 한국인"--
근거 없는 주장이다.
https://youtu.be/Yeu9TJiXU08

설령 트로트가 엔카에서 나왔다고 하여 일본문화라고 한다면 기모노는 한푸에서 나왔으니 중국문화가 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중국인들이 이러한 주장을 할 때 일본인들은 '일본만의 독자적인 문화로 발전시켰으니 일본문화다'라며 반박한다. 트로트의 뿌리를 일본 엔카로 볼 것인지 서양 폭스트롯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선 아직까지도 논란이 많다. 비슷한 반대 사례를 언급하자면, 한국이 고대에 일본에게 문물을 전해준 것에 대해선 일본인들은 '단지 한국을 거쳐 중국 문물을 받은 것 뿐'이라는 반박을 펼치는데 같은 논리대로라면 한국도 '단지 일본을 거쳐 서양 문물을 받은 것 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이것 하나 라, 시, 도, 미, 파 단음계가 남아 있는 한 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이 음계가 남아있는 국가는 일본과 일본 식민지 경험이 있는 한국, 대만이다. 일본의 침략을 받은 중국에서도 쓰였지만 공산화 이후 왜색이 짙다는 이유로 금지시켰다는 후문이 있다.
일단 기본적으로 한국, 중국, 일본 모두 옛부터 전통적으로 5음계를 사용했으며 트로트, 엔카, 그리고 중국가요가 처음 나온 시기가 서로 비슷한 1920년대 말 이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트로트는 엔카, 중국 민요, 서양 음악 등 여러가지가 섞인 장르이다.또 비슷한 선율로 인해 세 나라 가요들의 교류도 빈번했을 것이다. 서양 문물을 접한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가요인 낙화유수는 1927년에 나왔으며 중국 최초의 가요인 毛毛雨도 1927년에 나왔다.

트로트 음악가들은 중국처럼 이 단음계를 극복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진또배기는 단음계이지만 라, 시, 도, 미, 파 단음계가 아닌 도, 레, 미, 솔, 라 단음계를 채택해서 왜색 논란에서 자유로우며, 중국의 많은 단조 가요들도 이를 극복해서 중국적인 느낌이 나는 국풍(혹은 고풍)가요라는 장르를 만든 것이다.

'엔카가 하드록이라면 트로트는 헤비메탈'이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둘 다 공통적으로 블루스에서 유래했지만 하드록에서는 계속 쓰는 블루노트와 기존 리듬을 빼버리고 빠른 리듬과 기교를 새롭게 넣어서 만든 헤비메탈과의 유사성 면에서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과거부터 현재까지 트로트와 엔카간의 교류가 적지 않았다. 일본에서 활동한 한국계 가수들이나 이박사의 일본 진출 등. 때문에 트로트 스타일 엔카 또한 존재하는 상황이라 이런 표현이 꼭 들어맞는건 아니지만 현대에서는 음악계 흐름이 워낙 장르간 화합이 대세이기 때문에 세세한 장르 구분이 더욱 모호해지긴 하고 있다.

 

저속함, 획일성
광복 이후로도 통속성, 저급성이란 이유로 탄압받았다. 《잘 있거라 부산항아》로 유명한 백야성도 이러한 이유로 젊은 나이에 은퇴하는 사달까지 일어났다. 이는 독재정권의 문화적 보수성 탓이기는 하다. 하위 장르처럼 인식했다거나 일종의 키치문화로 보자는 관점도 존재한다. 하지만 단순히 B급 문화라고 보기에는 자본성이나 대중성 측면에서 엄연히 주류였던 문화이자 한편으로는 민중적인 문화이기도 했다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2008년에는 지나치게 유치하고 저속한 가사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과거의 트로트는 유행가요라 불리던 시절엔 고급예술로 여겨지던 인식에 걸맞게 연주, 편곡 등 제법 음악적으로 높은 수준이었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처럼 힘든 시기를 겪은 세대의 한맺힘과 한국 민족적인 감성을 잘 담아낸 노래가 많았을 뿐 아니라 민요나 판소리 등에서 따온 한국적인 박자나 가락 창법을 도입하려는 시도 역시 풍부했다. 이 시기에서 나온 트로트 중 꿈에 본 내 고향, 나그네 설움, 목포의 눈물, 불효자는 웁니다, 비내리는 고모령, 비내리는 호남선, 눈물젖은 두만강, 굳세어라 금순아 등을 들어보자. 이 노래들의 수준이 낮다고 폄하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장윤정, 박현빈 류의 소위 '네오 트로트'는 이전의 트로트와 비교해 가사의 깊이도 얕아지고 곡의 완성도도 낮아졌다. 브라스에 퍼커션 적당히 넣어놓은 싸구려 편곡으로 실제 브라스밴드를 쓰는 경우는 요즘엔 찾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예산 문제로 거의 신디사이저 한두대 정도로 땜빵하는 경우도 많이 나타난다. 또 젊은 여성이 부르는 트로트는 섹시 콘셉트가 많으므로 가사라고는 허구헌날 '오빠 여보 자기 당신 사랑해요 안아줘요' 처럼 스킨십이나 성관계를 연상시켜서 트로트의 주 수요층인 40 - 50대 남성들의 저급한 성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가사나 '힘든 인생길 어차피 한방이야' 등의 인생론만 외쳐대니 수준이 높을 수가 없다. 

그래서 장윤정이나 박현빈의 노래는 당시에만 히트했을 뿐, 과거의 트로트처럼 오랜 세월 사랑을 받지는 못하였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나 다른 이에 대한 연민 등 보편적이고 고귀하다고 여기는 마음을 트로트 곡에 주된 주제로 사용하는 작곡가 혹은 가수들은 가사가 조금만 선정적이어도 "트로트"라는 같은 분야로 엮이는 것을 매우 싫어하거나, 몹시 난처해하거나, 자신들과 완전히 다르게 여기고 싶어하는 듯하다. 

반면 아무래도 네오 트로트는 과거 트로트에 비해 깊이가 떨어지는 추세다. 물론 트로트 말고 다른 장르라고 다르냐고 하면 그건 아닌지라 그냥 세대간 감성의 차이이거나 업계 흐름의 차이일 수도? 

최근 네오 트로트는 장르마저 모호하게 만든다는 비판이 있다. 들어보면 이게 90년대 댄스곡인지 트로트인지 분간할 수 없는 곡들도 존재한다. 이런 곡들인 경우 작곡가의 트로트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경우도 종종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요즘 음악계는 워낙 장르간 혼합이 대세인지라 마냥 비난하기에는 또 모호하다.

신인 트로트 가수들의 질적 문제도 있다. 새로 데뷔하는 트로트 가수 전체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일부 가수들을 보면 한 물 간 가수가 트로트로 전향하거나, 가수지망생이 주류음악 가수가 되기에는 어느 한 부분이 모자라서(주로 외모) 트로트로 데뷔하는 케이스가 많다. 또한 트로트 만큼 신동이 많은 장르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어린 아이들이 곧잘 성인가수 수준의 노래를 해 낸다. 단순히 폄훼해서는 안되겠지만 꽤나 많은 어린아이들이 성인가수 수준을 소화해 내는 것을 보면 가창의 난이도 자체가 그다지 높은 수준은 아니라고 의심을 해 볼 여지도 있다. 이런 케이스 들을 보면 다른 음악장르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아보이는 건 사실이다.

언급했듯이 사실 음악이란 장르도 고정된 것은 아니다. 정확하게는 장르의 특성은 명확하지만 이를 해석하고 활용하는 뮤지션들의 방향성은 계속해서 바뀐다. 힙합이 시기와 지역에 따라 가사의 주제나 메시지, 사운드의 특징이 다른 것처럼 이를 사용하는 뮤지션들의 성향을 따라 전부 다르다. 트로트도 클래식 취급받는 70년대 히트곡들도 일차원적인 사랑타령에 치중한 노래는 무수히 많았다.  

이를 어떤 식으로 풀어냈느냐에 따른 차이. 오히려 화성학을 비롯한 음악이론적인 지식은 최근에 트로트 시장으로 진입한 작곡가, 가수들이 더 빼어난 경우도 많다. 게다가 반대로 '변형'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는 폐쇄성이 장르가 도태하는데 일조했다는 의견도 있다. 뽕짝 창시자 이박사를 바라보는 한일간 시각차이도 이런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나 저러나 이러한 가사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단순히 취향차이이자 주관적인 문제일 뿐이라고 볼 수도 있다. 왜냐하면 K-POP을 예로 들어서, 한국에서는 흔히들 K-POP 가사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지만 해외 K-POP 팬들이 주로 꼽는 K-POP의 장점 중에서는 가사가 저속하지 않아서 좋다는 의견이 많다. 결국 듣는 사람 취향마다 케바케라는 것. 자기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걸 다른 관점을 가진 남들은 장점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용어
2005년 나훈아는 B급 하위문화란 인식을 받는 '트로트'에서 탈피하기 위해 '아리랑 전통 가요'라고 부르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이것은 트로트 인식이 좋지 않은 현실에 대한 단순한 열폭이었기 때문에 학계와 음악 관계자들은 무시했으며, 일반인들도 무리수라는 반응을 내비치기도 했다. 

일부 방송매체나 음반매장 코너에서는 성인가요라는 용어로 부르기도 한다. 이유는 단순하게도 청소년이 아닌 성인이 주 소비층이기 때문. 

그러나 이것도 약간 문제가 되는 것이 한국사회가 일제대와 한국전쟁 이후로 경제, 문화, 교육, 시대상 모든 면에서 너무나 급속도로 발전한 나머지 40-50년대, 60-70년대, 80-90년대, 00-10년대에 10대-20대를 보낸 성인들은 모두 각기 다른 성장배경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글로벌 기준에서 보자면 보즈 스캑스, 마이클 맥도널드, 크리스토퍼 크로스, 빌리 조얼, 스팅 등 70-80년대 서구와 일본에서 크게 유행한 팝 락음악 라디오 포맷인 AOR (Adult Oriented Rock)처럼 성인이 들을 수 있는 팝음악을 만들고자 했던 우리 대중음악인들의 시도와는 구분된다. 한국형 AOR내지는 국내전용 용어로 소위 시티 팝등으로 구분되는 유재하, 어떤날, 김현철, 조규찬, 이소라, 공일오비, 신해철, 넥스트, 김동률, 봄여룸가을겨울, 빛과 소금, 정원영, 한동준, 장필순, 유희열, 선우정아, 최백호 등 성인들이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세련된 가요를 만들어내고자 한 작가주의 싱어송라이터들이 성인들이 들을 수 있는 가요를 만들어온 역사와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되어버린다는 얘기다.

 

한정된 소비시장과 양산형 가수
누구나 부르기 쉬운 친숙한 음악이라는 이미지지만 거꾸로 가창력이 떨어져도 대충 부를 수 있는 음악으로 인식되어 고만고만한 양산형 가수가 쏟아져 나오는 장르이기도 하다. 특정 작사가와 작곡가가 만든 같은 곡을 여러 가수들이 돌아가면서 똑같은 수록곡으로 앨범을 낸 사례가 있다. 물론 인기와 판매량은 처참했고 그 양산형 가수들 중에서 거의 대부분은 군소 지역축제 정도만 돌면서 무명가수로 가수활동을 마쳤다. 결국 좋은 트로트 신곡과 좋은 신인을 찾는 것은 모래 속에서 진주 찾기보다 어렵다. 최근에는 양산형 가수들이 얼마나 나왔는지 오토튠을 쓰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런 인식은 최근 세미 트로트 때문에 생긴 것으로 일반적인 기존 트로트와는 거리가 있다. 

이는 트로트가 가진 낮은 위상과 한정된 소비시장으로 인한 문제다. 2017년 기준 약 5조 원 규모의 전체 한국 음악 산업 시장에서 2017년 가온차트 100위권와 2016`2017년 장르별 분류에서도 트로트는 100위권내로 진입하지 못했다.

현재 한국에서 공인하는 '오프라인' 음반 차트는 가온차트.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가 운영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가온차트는 2010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해 다양한 기준으로 차트를 공개하고 있다. 이 가운데 앨범 차트는 한국 주요 음반 유통사와 해외 직배사로부터 받은 자료 중 CD, 바이닐, 카세트테이프 등 오프라인 앨범의 한국내 출하량에서 반품량은 제외하고 순위로 매긴 것이다. 

타 장르는 음악시장의 성장으로 해당 장르는 인재와 기술이 집중 투자되었고 그 결과 레드오션이 되면서 진입장벽이 높아지고 가창력과 편곡 등 기술적인 부분에서 뒤쳐지면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이다. 트로트는 90년대 이후 비주류화가 되면서 경쟁 체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 트로트 음악은 브라스가 주가 되는 유치한 뽕짝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트로트는 오프라인 피지컬 음반 시장과 디지털음원 시장 모두 미미한 점유율을 보인다. 가온 한국 앨범차트 100권 내에서 트로트를 찾아보기 힘든데 2015년 100위가 앨범 11,957개 2017년은 30,750개로 매년 1만~3만 개 이상 앨범을 파는 트로트 가수가 사실상 없다는 뜻이다. 

트로트는 사실상 행사에 의존하는 한정된 소비시장을 가지고 있어 90년대 이후 쇠퇴기로 평가받으며 음악시장의 10% 점유율을 차지하며 5천억 원 정도 시장규모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콘텐츠 진흥원이 발간한 2017년 음악 산업백서의 즐겨듣는 음악(장르별) Top10에서 트로트는 7위로 6위인 인디음악보다도 선호도가 밀렸다.(2017년 음악 산업백서 194쪽).

더 큰 문제는 음원 시장 주류로 변하고 있는 디지털 음원 시장에서도 소외되어 2017년 스트리밍 시장에서 0.8%를 차지하며 2014년 이후 계속 하향 추세를 보인다. 타 장르가 시장을 독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상태인데 인디음악이 디지털 시장에서 점유하는 비율은 2000년대 초 0.4%에서 2017년 6.3%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 트로트 장르 자체가 침체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낮은 시장성으로 새로운 인재가 유입하는 경우도 적고 장르가 정체하는 모습을 보인다. 실제로 박현빈은 트로트 막내 10년 차로 지냈으며 그동안은 홍진영이 유일한 후배였고 바로 위는 사대천왕이라는 발언을 했다. 이는 인지도 있는 가수만 언급한 방송용 과장된 발언이라는 것을 고려해도 장르가수가 매우 한정적인 상황을 반영한다. 물론 개인 취향의 관점에서야 1곡이 수십 년간 유행해도 문제는 없으나 장르 전체의 관점에서는 매우 위험한 상태다.

세대 교체가 빠른 K-POP 가수는 인기가 절정인 그룹이 은퇴하거나 해체하더라도 그 빈자리를 다른 가수가 나타나 메꾸어서 해당 장르가 매년 성장하고 있으나 트로트는 시장이 정체한 채로 기존 유명 가수에게만 의존하는 상황이다. 나쁘게 표현하면 고인 물과 부합하는 상태다. 유명 가수인 설운도(1958년생), 태진아(1953년생), 나훈아(1950년생), 송대관(1946년생), 남진(1945년생), 현철(1942년생)이 60~70대로 가수로서 남은 수명이 아주 길다고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런 네임드 가수들이 은퇴하면 그 빈자리를 메꾸지 못해서 그만큼 트로트 시장이 축소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이 극단적으로 유지되면 양산형 아류 가수들만 남아서 장르가 소멸할 걸 걱정해야 할 상태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지상파를 비롯한 방송이나 온라인 매체에서 소외받는 상황인데다가 낮은 위상을 가지고 있어서 홍진영이나 장윤정 같은 스타 가수도 데뷔 당시 트로트를 하기 싫어 했다는 사실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본업이 가수가 아닌 코미디언이 음반을 발매할 때 주로 트로트를 한다는 것도 장르의 낮은 위상과 낮은 진입 장벽을 반영한다.

한정된 소비시장, 낮은 위상, 낮은 진입장벽이 결합하면서 트로트 장르로 새로 유입하는 가수들 중에서는 부업이나 취미와 가깝게 활동하는 경우이거나 정말 시장성이 없어서 최후의 보루로 트로트를 선택하는 경우처럼 기본 역량이 매우 한정적인 경우가 많다. 시장성의 한계로 트로트 소속사들도 매우 영세하기 때문에 신인을 발굴하더라도 거대 기획사 같은 시스템적인 관리나 트레이닝 같은 것은 불가능하다. 트로트계의 검증없는 음원 발매와 관련하여 가수협회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양산형 가수가 쏟아지는 것은 거의 모든 음악 장르와 해당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트로트는 위에서 언급한 총체적인 문제들로 인하여 타 장르와 비해 양산형 가수들이 기본 역량 한계가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이는 통계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2013년 방송 심의 신청곡 기준으로 트로트 신곡 4000여곡이 쏟아져 나와서 매년 연간 4,000~5,000곡에 달하는데 2위인 발라드 2,300여 곡, 3위인 댄스 1,600여 곡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그나마 10%의 낮은 시장 점유율을 연간 수천 곡의 양산형 신곡이 나눠 가지면서 더더욱 영세해 질 수 밖에 없는 상태다. 콘서트가 가능한 유명가수를 제외하면 무명가수들은 사실상 전적으로 행사비에만 의존하고 있는데 한정된 시장에 공급은 많기에 행사비 단가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

2019년과 2020년은 위에서 언급한 각종 트로트 관련 TV 프로그램과 함께 트로트 유행이 불고 있는데 일부 평론가들은 이러한 트로트 열풍을 회의적으로 보는 주장을 제기한다. 우선 미스터트롯이 흥행한 건 정말로 트로트가 대세라서가 아니라 기존 예능 프로그램들의 실적이 부진한 것과 TV 대신 유튜브를 보는 등 1인 미디어 및 영상에 관심이 깊은 10~30대가 TV 시청 자체를 줄이는 상황과 맞물렸기 때문이란 것이다. 즉, 고정적으로 TV를 시청하는 인구 중 장/노년층 인구가 시청률 상승을 주도한 것이기 때문에 시청률만 가지고 트로트가 부활했다는 주장은 마냥 옳다고 보기 어렵다.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외부 활동 제한과 TV 시청이 늘어난 것과 동시에 각종 행사를 취소하면서, 트로트는 부활할 기회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트로트 가수들의 수입 자체는 전체적으로 축소한 상황이다.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트로트 열풍은 트로트의 주요 수입원이던 각종 행사들을 취소함으로 생기는 수익 악화와,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음원 시장으로 진입하지 못하는 악재가 공존한다.

막강한 팬덤이 수익을 보장하는 아이돌과 비교하면 그보다 훨씬 미약한 시장성이 트로트의 발목을 잡는다. 평론가들은 트로트가 극복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점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코로나 사태라는 시국과 미디어 환경의 변화라는 시대적 상황이 맞물려 발효된 트로트 열풍은 오히려 트로트가 개선해야 할 문제점을 가리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으므로 지금 당장의 트로트 열풍을 가지고 트로트의 부활과 대세를 언급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지적한다.

트로트가 음악 시장에서 주요 장르로 부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건실한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장착과 음악 자체의 질적 향상, 안정적인 팬덤 형성 및 음원 시장 진입을 반영해야 한다. 결정적으로 음원 시장이나 가요 차트에서 트로트는 아직도 약세인데 정말 트로트가 범국민적 대세라면 아이돌뿐만 아니라 장범준, 볼빨간사춘기, 윤하 같은 인기 가수들이 장악한 음원 시장을 뒤엎어야 하지만, 트로트는 음원 차트에서도 구경하는 것이 아직도 힘든 상황이다. 화제성을 모은 미스 & 미스터트롯 시리즈에 나온 곡 중에서 영탁의 '찐이야'가 47위로 최고를 기록했을 뿐 다른 곡들은 100위 진입조차도 하지 못했다. 화제가 됐던 유산슬 프로젝트 곡인 '사랑의 재개발'과 '합정역 5번 출구'도 각각 75위, 97위로 간신히 차트인을 한 정도다. 

트로트 자체의 개선과 장르적 쇄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송가인, 미스터트롯 TOP 7이 사실상 최후의 인지도 높은 트로트 가수로 기록될 가능성이 있다. 이들의 인기마저 사그라든다면 트로트는 장르 자체의 소멸을 고민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될 수도 있으므로 일시적인 열풍에 기대는 것보다는 트로트 자체를 장기적으로 꾸준히 개선해야 롱런할 수 있을 것이다.

 

과도한 트로트 프로그램의 양산
현 시대 트로트의 가장 큰 문제점이자, 후술할 팬덤 문제와 결부되어 트로트 문화 자체가 젊은 세대들에게 배척받게 된 이유 중 하나. 특히 TV조선의 트로트 오디션 시리즈 이후 트로트가 흥행하면서 방송사를 막론하고 트로트 관련 미디어가 우후죽순 생김에 따라 과거처럼 국민들이 트로트 자체에 피로를 느껴 외면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트로트 관련 프로그램들은 이미 레드 오션화되고 실제로 트로트에 피로감을 느낀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트롯강점기, 뽕짝강점기라는 말이 있으며, 트로트의 연관 검색어로는 트로트 뇌절, 트로트 그만, 트로트 극혐, 트로트 지겨워, 보이콧 트로트, 또로트, 트로트 지옥, 트로트 노잼, 트로트 멈춰!! 등이 있을 정도로 여론이 나쁘다. 

특히 10~30대의 젊은 시청자들 대부분이 트로트 프로그램을 극도로 혐오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기존의 예능을 보던 고정 시청자 뿐만 아니라 일반 시청자들, 심지어는 트로트 애호가들이 많은 40대 이상의 시청자들마저도 점차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2020년대의 40대는 HOT, 젝스키스 등 1세대 아이돌이 활동한 시기에 팬이 된 청소년이 성장한 경우가 있기에 과거 40대에 비하면 트로트가 주류인 비중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특히 트로트 오디션이 기원한 종편, 케이블 방송은 말할 것도 없고 지상파 방송에서도 이런 트로트 위주의 프로그램이 장악한 상태다. 사실상 여기에서 자유로운 지상파 방송은 교육방송인 EBS가 유일하다시피 한 수준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비단 트롯과 관련된 방송만이 아니라 포맷 상으로는 트롯과 전혀 관련 없는 방송도 일단 섭외부터 하고 보는데다가 방송의 본래 취지를 거스르고 본인들의 노래만 부르다가 간다는 비판도 나오면서 당장의 시청률을 위해 프로그램의 본질을 흐린다는 지적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한 예로 뭉쳐야 찬다, 미운 우리 새끼, 끼리끼리, 구해줘! 홈즈, 전지적 참견 시점, 슈퍼맨이 돌아왔다, 아는 형님 등. 특히 아는 형님은 5월 한 달을 미스터트롯 출연자들로 때우면서(미스터트롯 TOP7 3주+어린이날 특집에 출연한 홍잠언과 이후 미스트롯 2에 출연한 김태연까지 1주) 대놓고 트로트 열풍에 편승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으며, 이 때문에 주 시청층인 10대가 대거 이탈했다. 

분명한 것은 저 방송 기간에 아는 형님의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후 아는 형님은 고정적으로 5~6%는 뽑아주던 시청률이 2~3%대로 떨어졌으며 특히 아이돌이 나올 땐 최저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하는 등 확실히 주요 시청자던 젊은 층의 부재가 눈에 띄며 장기적으로 봤을 땐 오히려 피해가 크다. 그리고 히든 싱어 6은 전보다 트로트 가수를 많이 섭외했으며 패널로도 미스터트롯 관련 인물을 대거 섭외해서 시청자들의 많은 불만을 샀다.

(뉴스엔 기사 / 오마이뉴스 기사 / 한겨레 기사 / 매일경제 기사 / 서울경제 기사 / 미디어오늘 기사 / 한국일보 기사 / 한국경제 기사 / 일간스포츠 기사 / 헤럴드경제 기사)

OTT 컨텐츠의 등장으로 장르를 안 가리고 텔레비전 방송들의 시청률이 떨어지고 있는 와중에 내일은 미스터트롯이 최고 시청률 35%를 찍었다. 30%를 넘어가는 경이로운 시청률도 본질적으로는 다시보기에 익숙치 않은 장년층 및 노년층이 본방사수에 목을 매고 TV를 양보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왔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또 사랑의 콜센타가 평균 20%를 찍었다. 3%만 찍어도 감지덕지하는 2020년대 예능 프로그램 제작진 입장에서는 트로트 가수들의 출연에 감사할 수 밖에 없다. 지겹다니 뭐니 해도 시청률 두 배는 찍어주니까 계속 섭외하는 것이다.

하지만 트로트 가수가 없을 경우에는 대부분 예전 시청률로 되돌아가는 게 다반사다. 이렇게 늘어난 시청률의 지분은 프로그램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가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가 나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갑자기 시청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MC 박명수의 또 하나의 망작이라고 평가받는 끼리끼리에서도 미스터트롯 출연진이 출연하고 두 배를 찍었다. 평균 시청률이 1%대여서 두 배가 되어도 2~3%대여서 큰 의미가 없지만.

미스트롯/미스터트롯의 흥행으로 비슷한 포맷의 트로트 관련 방송이 범람하고 트로트 가수들의 섭외도 잦아지자 이에 대한 피로감을 가지고 방송사들의 트로트 편애를 지적하는 시청자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시청률 무용론 문서에 나오는 것처럼, 시청률이 높다고 해서 이게 과연 제대로 된 인기인지를 지적하는 의견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예시로 2021년 초에 방영한 미스트롯2는 시청률은 높았지만 오디션이 끝나고 이후 여러 방송국의 게스트로 출연하는 탑7의 화제성이 미지근하자, 미스트롯2 결승 시점부터 음원 역주행 신드롬을 일으킨 브레이브걸스를 대환영하며 섭외했다. 다만 브레이브걸스가 전지적 참견 시점에 나왔을 때 임영웅이랑 이찬원이 꼽사리로 나오기는 했다. 그리고 방송이 끝난 뒤 올라온 클립에 이들의 극성 팬덤이 주축인 댓글부대들이 출동해 이들을 찬양하는 댓글을 왕창 달면서 다른 시청자들의 불편함을 야기한 것은 덤.

물론 미스터트롯 탑7의 화제성과 미스트롯2 탑7의 화제성을 비교하는 예시가 아니지만 미스트롯2 탑7의 화제성이 임영웅, 이찬원의 화제성을 아직 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이미 미스트롯2가 끝난 상황인데 이전 시즌 수상자인 인물들로 화제를 모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2020년 하반기부터는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이 정체를 숨기고 출연해 경연하는 싱어게인 - 무명가수전, SHOW ME THE MONEY 9, 로또싱어 등의 프로그램들이 좋은 기획 의도로 호평을 받고 트로트에 질린 대중들을 주 시청자로 흡수하면서, 다른 장르 오디션 프로그램도 점차 인기를 얻고 있다.

이 중에서는 특히 아이돌 팬덤의 불만이 가장 큰데, 메이저 예능들의 섭외 비중 자체가 최근 몇 년과 비교해 봐도 눈에 보일 정도로 엄청나게 줄어들면서 신곡을 냈음에도 제대로 된 TV 예능 하나 나오지 못하고 활동기 내내 음악 방송 뺑뺑이만 돌다 활동을 종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 되었기 때문. 게다가 어쩌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도 관찰 예능이나 음악 경연 프로그램의 패널 정도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마저도 다른 연예인들에 밀려 분량 차별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 예시로 히든싱어6에 출연했던 더보이즈는 처음 게스트 소개할 때 빼고는 멤버들 신발만 등장한 수준이라 팬들의 분노를 유발했지만, 같이 출연한 미스터트롯 팬들의 화력에 묻혔다. 그리고 극소수의 인기 그룹을 제외한 대다수의 3세대 및 그 이후 아이돌들에 대한 화제도가 엄청나게 줄어버린 2020년 이후 데뷔한 신인들은 이마저도 하늘의 별따기인 상황이다. 대형 기획사에서 런칭한 aespa, LE SSERAFIM, NewJeans, 중소 기획사 임에도 준수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STAYC, 서바이벌 프로그램 참가를 통해 인지도를 얻은 멤버가 있는 IVE가 그나마 인지도가 있을 뿐, 대다수의 2020년대에 데뷔한 아이돌들의 국내 인지도는 사실상 전무하다.

그러나 아이돌의 경우 음원 차트 개편 때문에 생긴 피해, 프듀 조작 사태로 인한 신뢰도 하락 등 다른 악재들로 인해 대중들로부터 외면받고 있고, 이 때문에 현재는 시청률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아이돌의 예능 출연이 적어진 가장 큰 이유는 예능 프로그램의 메타가 나영석 PD가 제작하는 프로그램이나 나 혼자 산다 같은 관찰 예능, 그리고 조금은 사그라들었지만 요리 예능, 동물 예능이 주요 출연방송이기 때문이다.

아이돌이 출연하기 쉬운 예능은 리얼 버라이어티나 강심장처럼 대형 토크 예능인데, 현재의 TV 예능판에선 아이돌을 게스트로 섭외해서 투입하기 힘든 예능이 많다. 해외 시장도 신경써야하는 만큼 고정 출연하기 힘들 뿐더러, 굳이 게스트로 비집어 들어가봤자 분량도 적으니 기획사 입장에서는 굳이 예능에 무리하며 나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 방영하는 예능 중에 아이돌이 게스트로 출연할 수 있는 예능은 기껏해야 런닝맨, 아는 형님, 라디오 스타, 놀라운 토요일, 구해줘! 홈즈, 전지적 참견 시점 정도로 볼 수 있다. 그래서 3세대 아이돌은 아예 방송 출연을 음방 정도만으로 줄이고 달려라 방탄과 같이 소속사 자체 유튜브 예능을 제작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런닝맨과 놀라운 토요일을 제외한 나머지 프로그램들은 아이돌들이 출연했을 때는 평균 시청률에 비해 당회차 시청률이 좋지 않았다. 일례로 라디오 스타는 TWICE를 부른 회차의 시청률이 2%대까지 떨어지며 한동안 안티들로부터 종영하라는 비아냥에 시달려야 했다.

물론, 방송사 입장에서도 브레이브걸스의 예시처럼 중장년층 시청률보다 2049세대의 화제성을 더 신경쓰고 싶어하지만, 현재 아이돌 시장이 팬덤형을 지향하다보니 대중성이 떨어지고, 출연할 프로그램도 마땅치 않아서 섭외를 잘 하지 않는 상황이다.

예외적으로 유재석이 맡는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젊은 층을 타케팅을 잡고 있는지라 트로트 오디션 출신의 가수들을 섭외하는 것을 지양하고 있다. 다른 말로는 유재석이 맡은 프로그램과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가수들이 나오는 프로는 시청 연령층이 서로 상반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런닝맨의 경우 다른 프로그램과 달리 주요 시청층이 트로트 프로그램에 반감이 큰 102030대와 한국 사정을 잘 모르는 해외 팬덤들이다. 따라서 음원 역주행을 일으킨 브레이브걸스나 댄스 열풍을 일으킨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참가한 크루의 리더들을 바로 부를지언정, 자사 프로그램 트롯신이 떴다2 출연진들을 포함한 트로트 가수들을 게스트로 쓸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는 다른 유재석 출연 프로들도 마찬가지인데, 런닝맨처럼 해외에 인기 있는 건 아니지만 일단 주 시청자들이 런닝맨과 비슷한지라 어느 정도 영향은 있다. 일례로 2021년 7월 갤럽에서 발표하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자료에서 상위권은 유재석이 맡는 프로그램과 트로트 프로그램으로 나뉘어짐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유재석이 트로트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가수들과 친분이 있는 건 물론 무한도전에서도 트로트와 관련된 기획을 낸 적이 있었다. 놀면 뭐하니?에선 부캐인 트롯 가수인 유산슬이 있었다. 또한 슈가맨에선 트롯 가수들을 슈가맨으로 초청한 바 있다.

그렇다고 장담할 수가 없는 게, 트로트 가수들 중 유재석의 프로에 출연한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장윤정이나 홍진영, 박현빈, 김연자, 송가인 등은 꾸준히 유재석이 진행한 프로에 나왔고 런닝맨에 출연한 요요미와 김나희, 해피투게더 4에 출연한 영기,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김호중 등도 몇몇 트로트 가수들도 출연했다.

다만, 요요미를 게스트로 섭외한 건 미스트롯의 인기를 편승했다기보다는 놀면 뭐하니?의 유산슬 인연으로 출연한 것으로 보이며, 김나희와 영기의 경우 개그맨 후배로서 출연했다. 이 중 김나희는 KBS 직속 후배이고, 영기는 MBC 공채 개그맨이지만 직속 선배인 박명수 덕분에 무한도전에 몇 번 출연한 바 있다. 특히, 영기가 해피투게더에 출연하게 된 이유가 개그맨 시절에 했던 개그가 몇 년 만에 역주행해서 출연했다. 마침 같이 출연한 게스트가 당시 역주행의 아이콘인 양준일이다.

런닝맨처럼 노골적으로 배제하지는 않더라도 tvN, JTBC 역시 주 시청층이 젊은 세대인지라 무차별적으로 트로트 인물을 섭외하거나 트로트 오디션을 만들지는 않았다. 그 외에 주요 방송사는 지상파, 종편 채널 가릴 것 없이 모두 트로트 오디션을 편성하여 진행했고, 그 중에서 TV조선의 생각에 노골적이라고 판단한 방송사인 MBN을 TV조선이 직접 고소하는 사건까지 있었다. 그나마 싱어게인 - 무명가수전 정도가 트로트가 아닌 다른 장르를 골고루 포용한 오디션으로 이름을 알리면서 트로트 없이도 좋은 방송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물론, 트로트 가수나 아이돌 출신이나 둘 다 관심없는 사람에겐 그놈이 그놈인지라 아이돌 게스트 역시 그렇게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실정이다.

사실 세대 차이가 극명한 건 어느 시대나 똑같다. 80년대 이전의 청소년 세대 같은 경우 트로트가 대세였다. 대중가요가 곧 트로트이던 상황이 변한 건 80년대 조용필, 90년 서태지 음악을 청소년기에 즐기던 세대였다. 즉, 2020년대 초반 기준으로 50대 이하는 청소년기 20대 30대에 조용필과 서태지를 듣던 나잇대이며 서태지 H.O.T를 거쳐 K-POP 원조의 팬덤이었던 이들이 2020년대 현재 중년이다. 게다가 80,90년대는 탈트로트화, 경제성장에 따른 대중문화 향유 계층의 증가로, 세련된 가요와 외국 팝음악을 본격적으로 즐기는 추미가 정착된 시기이다. 독재정권 시절과 달리 각종 제한이 풀린 시대상황이 조건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과거 1970~80년대에는 트로트와 함께 포크송과 락이 지금보다 더 유행했다. 당시 젊은 세대에게 트로트는 이미 낡은 것, 흘러간 옛노래이자 그 당시 유행하던 이른바 민족문화 재발견에 어긋나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민중가요를 비롯한 대안운동이 일어났고, 60년대와 70년대의 그룹사운드와 포크송이 재발견된다.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80년대도 대학가에서는 포크송 계열의 노래가 은근한 인기를 얻게 된다. 박인희의 "모닥불", 해바라기의 "사랑으로", 신형원의 "개똥벌레" 등.

이외에도 많은 노래가 있지만, 대학가에서 얼마 전까지 전승되던 노래들이다. 특히 수련회같은 단체활동에서 이러한 노래들이 자주 불렸다. 그 외에도 김민기, 정태춘, 김광석 등의 노래가 그 당시 청년들로부터 인기가 많았다. 이러한 노래들은 느리고 잔잔하며, 심오한 면이 많았고 함께 싱얼롱하기 좋은 노래들이었다. 여러모로 2020년대의 시류와는 상당히 대조된다.

2020년대 초반인 지금 트로트를 비판하는 세대도 10대~30대인데, 이 세대들은 당연하게도 트로트랑은 매우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이 세대들이 80년대 김완선, 소방차 노래를 듣지는 않을 것이다. 보통 양산형 대중가요라 할지라도 자신의 성장기 청소년기의 유행에 막연한 그리움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2020년대 초반 시점의 청소년들은 트로트는 익숙함이 없는 낡고 늙은 장르다. 게다가 연구 결과를 보면 38세 정도부터는 새로운 음악을 잘 안 듣게 된다고 한다. 

한 마디로 틀면 나오는 수준인 현 상황에 학을 뗀 시청자들이 매우 많다. 하지만 이런 정당한 비판에도 자신들이 좋아하는 가수가 나오면 그만이라는 둥,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되지 왜 트집을 잡냐는 둥, 어차피 시청률은 역대 최고였다는 둥 비아냥대는 악성 빠들도 만만치 않게 많다. 비단 본방송만이 아니라, 본방송이 끝난 후 올라온 같은 방송분의 다시보기라도 트로트 가수들이 나온 분량과 나오지 않은 분량의 조회수와 좋아요 갯수가 상당히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방송사들이 당장의 시청률에 눈이 멀어 다양한 출연자와 포맷들을 원하는 시청자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어떤 채널을 틀어도 새로운 얼굴은 없고 트로트 가수들만 나오기 때문에 텔레비전을 볼 이유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방송가에서는 이를 원래부터 트로트를 좋아했고, 또 유튜브, 넷플릭스 등의 다른 매체를 이용하지 않고 꾸준히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기성세대들의 매체 이용 방식의 영향이라고 평가하지만, 텔레비전은 기성 세대들의 전유물이 아닌 모든 연령대의 시청자들이 골고루 이용하는 공공재라는 점에서 트로트에 식상함을 느끼는 시청자들의 비판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요소다. 이런 식으로 기성세대만을 편애하는 방송 편성은 당장은 달콤할지 모르나 멀리 봤을 땐 그렇지 않다. 젊은 TV 시청층의 이탈을 훨씬 더 가속화시키면서 더 기성세대 위주의 시청자만 남게 되면서 방송도 이런 기성 세대 위주의 프로그램만 남게 되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궁극적으론 TV라는 매체의 수명을 깎아먹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도 편견인 게 50~60대들 역시 유튜브 사용량이 엄청 많다. 각종 정치 유튜브들이 그 증거이며, 트로트 프로그램 관련 영상이 유튜브 인기 동영상 차트 상위권을 점령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해서 젊은 층 이용자들은 '이제는 이런 거까지 트로트에 먹히냐'며 볼멘소리를 내는 편이다. 이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지표가 있는데, 2020년 전세계 조회수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닌 국내 조회수 기준으로 유튜브에서 조회수가 가장 높았던 가수는 임영웅이고 2위가 방탄소년단이었다. 국내 한정이지만 임영웅이 그 방탄소년단마저도 이긴 것이다. 

게다가 젊은 연령대가 주 시청층인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이 계속 떨어지는 점도 또 다른 이유이며, 위에 서술한 런닝맨 같은 경우 주 시청층은 10~20대 위주지만 시청률은, 그것도 일요일 황금시간대임에도 5%대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를 전적으로 보여준 것이 2021 SBS 연예대상이었다. 화제성으로는 런닝맨, 골때녀가 앞설지는 몰라도 시청률만 따지면 저 둘을 합친 시청률보다 더 나오는 미우새가 팀으로 대상 수상을 했다. 화제성이 덜 나오더라도 시청률이 훨씬 잘 나왔기 때문이다.

다만 이는 젊은 층이 주로 본방송을 전부 시청하기보다는 유튜브 클립 영상으로 짧게짧게 소비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현상이 현재 젊은 세대의 극도로 부족한 독서량이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일단 긴 글은 무조건 피하려는 경향이 영상 매체 소비 패턴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것.

아예 2020년 추석 연휴와 2021년 설에는 트로트 프로그램이 편성표를 지배했다. 2020년 하반기~2021년 상반기에 내일은 미스트롯2, 트롯 전국체전 등 여러 트로트 오디션들이 방송되거나 예정 중인 상황이다. 지금도 우려먹기에 대한 비난은 커져가지만, 여전히 시청률은 10~20%를 호가하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물론 이를 비판하는 시청층도 지금 현실이 어떤지를 잘 알고 있으며, 적어도 코로나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는 인물만 바뀌는 걸 빼면 이 예능 판도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트로트 가수들이 온갖 예능에 나오는 건 윗 문단에서 언급한 것처럼 2020년대 코로나 19 사태의 영향이 크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외부 활동 제한과 TV 시청이 늘어난 것과 동시에 각종 행사가 취소되면서, 트로트는 부활할 기회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트로트 가수들의 수입 자체는 전체적으로 축소한 상황이다. 물론 TV 출연료를 통해 금전적 손해가 어느 정도 보전되기는 하겠지만,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행사를 돌 수 없는 트로트 가수들과 방송 시청률이 가장 중요한 제작진들의 상황이 맞물렸기 때문에 출연 빈도가 기형적이다 싶을 정도로 잦아진 것.

내일은 미스트롯이 흥했던 2019년 당시, 미스트롯 진이었던 송가인은 당시 지금보다 예능 출연 빈도가 확연히 적었다. 미스트롯 단체 콘서트도 정상적으로 할 수 있었고, 행사도 정상적으로 할 수 있었기에 그렇게 많은 빈도로 출연하거나, 요즘처럼 패키지로 출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2020년 현재 미스터트롯 참가자들은 1등, 2등, 3등이 개별적으로 출연하기보다는 TOP 7에 올랐던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온갖 예능에 출연하고 있다. 이것은 미스트롯 시즌1 입상자들의 매니지먼트를 맡게 된 김광수와 갈등을 겪었던 TV조선이 자회사격으로 기획사를 차린 후 아이돌처럼 묶어서 방송에 출연시켰던 게 주된 이유이다. 정작 이 여파로 미스트롯 시즌1 우승자인 송가인은 2020년부터 TV조선에 출연하지 않고 있었다. 왜냐면 송가인의 현 소속사가 김광수의 소속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가 잘 해결이 되었는지 2022년 8월부터 다시 나오고 있다.

한동안은 트로트의 얕지 않은 깊이로 오디션 프로그램에 선곡할 노래 풀을 유지했지만, 이는 점차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점점 다른 프로에서 부른 노래를 또 부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고, 이것도 한계에 다다르자 사실상 트롯이라 보기 힘든 장르의 노래를 선곡하는 경우 또한 늘고 있다. 가령 전통 민요나 발라드를 부르는 게 그 예. 이는 트로트 방송이라는 정체성을 팔아먹을 수도 있어 상당히 우려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2021년 하반기에 들어서는 1분기에 했던 미스트롯2의 화제성이 이전 시즌에 비해 떨어지고 각 방송사들이 너무 많이 트로트 프로그램을 만드는 바람에 매너리즘에 빠졌고 이는 주 시청층에도 지겹다는 소리가 나와 거품이 많이 꺼진 상태다. 그리고 이 거품은 골프로 다시 쌓였다. 물론 주제를 골프로 선정해서 포멧이 비슷한 방송이 많이 나오지만, 전현직 골프선수들이 여기저기 나오지는 않으니 트로트에 비해 반감이 덜하기는 하다.

트로트가 유행하면서 그간 트로트를 멀리하던 음악방송에서도 트로트 가수들이 출연하기 시작했다. 1위 기록은 2021년 3월 임영웅의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가 SBS 더 쇼와 MBC 쇼! 음악중심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05년 장윤정의 '어머나' 이후 16년만에 트로트 지상파 음방 1위 기록이다. 그 후 2022년 5월 14일 임영웅의 '다시 만날 수 있을까'가 쇼! 음악중심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 이외에는 없었다. 트로트 가수들의 음방 출연도 2021년 하반기 이후에는 크게 줄어들었다. 그나마 더 쇼가 2021년 하반기 이후에도 트로트 가수들의 출연이 간간히 있는 편. 어쩔 수 없는게 음방의 주 시청자들은 이미 국내보다 해외 K-POP 팬들의 유튜브 시청이 주가 된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맹목적이고 과격한 성향의 트로트 팬덤
트로트 프로그램의 과한 양산과 더불어 트로트 문화의 심각한 문제점 중 하나. 트로트라는 장르나 트로트 가수들의 문제점은 아니지만, 트로트 팬덤들의 과도한 트로트 가수들 찬양 및 타 장르 가수들을 향한 견제 또한 비판을 받고 있는 부분이다.

트로트 시청자층이 트로트 관련 프로그램의 양산으로 다소 폭이 넓어졌다고는 하나, 주로 보는 시청층인 중장년층은 현재 대한민국의 고령사회에서 사회 구성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며, 위에 지겹다고 하는 여론보다 했던 이야기 또 하고, 했던 노래 또 한다고 해도 그저 내 님이 나오니까 마냥 좋아서 봐 주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상황이다.

게다가 본인들이 좋아하는 트로트 가수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만한 행동을 했어도 잘못을 지적하지는 않고 덮어놓고 응원하기 바쁜 등 맹목적이고 비뚤어진 팬심을 보여준다. 예를 들자면, 김호중의 불법 도박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극성 팬덤을 중심으로 꾸준히 김호중을 응원했으며, 진달래와 황영웅의 학교폭력 논란이 발각된 후에도 내가 어릴 때는 저런 일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면서, 다들 어릴 때는 그렇게 철없는 시기를 겪고 자란다면서 어차피 가수는 노래만 잘 하면 되니까 상관없다는 식으로 크게 개의치 않아 하거나, 오히려 이제 와서 과거를 들먹이는 이유가 뭐냐면서 역으로 피해자를 비난하며 2차 가해를 저지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빠가 까를 만든다는 전형적인 예시 또한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으로 임영웅의 팬덤인 영웅시대와 김호중의 팬덤인 ARISS가 있다. 유튜브 등지에서도 트로트를 옹호하거나 과도한 트로트 열풍에 대해 비판하는 영상이 올라오면 열에 아홉은 우린 아무리 봐도 안 지겨우니 꼬우면 니들이 꺼져버리라는 식의 광신도적인 댓글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는 장년층들이 주류인 무분별한 팬층이 주로 일으키는 문제점이다. 비교적 연령대가 젊은 아이돌 팬들의 경우 약 20여년간의 역사동안 많은 사건사고를 겪으며 팬덤문화가 정착되었다. 이때문에 일부 무개념 국내외 팬덤을 제외하면 자신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사건사고에 연루되었을 때 무조건적인 옹호를 지양하고, 사회적으로 물의가 될 행동을 자제한다. 이런 행동들이 장기적으로 해당 연예인의 이미지에 크게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을 학습했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아이돌 가수들이 팬덤이 저지른 사건사고로 인해 이미지가 손상되는 피해를 입었다. 특히 음주운전, 학교폭력과 같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을 때 팬덤이 오히려 가수를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바람에 비판 여론에 불을 지피는 긁어 부스럼 사례도 많다. 

허나 이런 지식과 인식이 전무한 트로트 팬덤은 어떤 짓을 저질러도 무조건적으로 옹호한다. 임영웅의 금연구역 내에서 흡연같은 사소한 논란부터 김호중의 불법 도박이나 정동원이 SNS에서 2022년 8월 수도권 폭우 사태로 사상자가 나오는 등 피해가 속출하던 시기에 한강 사진을 올려 자전거 못 타니 싫다는 내용의 글을 눈치없이 올려 질타받자 어린데 몰라서 실수로 그런 글을 올릴 수 있는데 왜 기를 죽이냐고 우쭈쭈하는 이들이 대놓고 여론몰이를 했으며, 진달래, 황영웅의 학교폭력 같은 사회적으로 문제시되는 논란까지 덮어놓고 옹호하기 바쁜 사람들이 많았다. 또한 원곡 가수를 폄하하며 본인이 좋아하는 가수를 띄우는 등 일명 무개념 행동을 대부분의 팬덤이 저지르고 있다. 게다가 고집이 세고 타인의 말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며, 잘못된 행동을 타 팬덤이 비판해도 오히려 쪽수로 밀어붙여서 이를 묵살해버리는 등의 행동을 취한다. 자신들이 그렇게 비판하던 무개념 아이돌 팬들, 외퀴들과 다름없는 부분.

음원사이트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이돌 팬덤의 고질적인 문제인 스밍문화를 갖고 와 트로트 가수들에게 똑같이 써먹는다. 멜론같은 큰 사이트에서는 안되니, 지니, 소리바다 등 이용자가 없는 사이트에 방문해 스밍을 돌리며 차트를 파괴하는 행위를 일삼고, 결국 차트가 이상하게 변질되며 안 그래도 이용자수가 얼마 없던 음원사이트의 이용자들마저 다른 곳으로 떠나며, 그 음원사이트가 망하게 된다. 아이러니한 건 스밍문화가 10대~20대가 주축인 아이돌 팬덤에 의해 처음 생겼을 때 이를 거칠게 비판한 게 기성 세대, 즉 지금의 트로트 팬덤을 이루고 있는 연령층이다. 즉, 이제 와서 내로남불을 하고 있는 셈. 

다만 트로트 열풍이 어느 정도 사그라든 뒤에는 위 팬덤들의 패악질도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해서 이전만큼의 큰 마찰은 드러나지 않고 있었으나, 2023년부터 방송하는 불타는 트롯맨의 참가자 황영웅이 과거 학교폭력, 데이트 폭력, 상해 전과가 있었음이 밝혀지면서 프로그램의 흥행에 급제동을 걸었음에도 여전히 현실을 부정하면서 덮어놓고 황영웅을 응원하는 극성 팬덤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본인들이 좋아하는 가수들이 방송에 나올 경우, 그 방송의 댓글창을 방송 내용과 상관없이 그냥 가수를 맹목적으로 응원한다는 내용으로 도배하다시피 채워버리고 본인들이 베스트 댓글까지 전부 점령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나온다. 대표적으로 있었던 일이 히든싱어6 김연자편인데 이 당시 임영웅과 이찬원이 패널로 나오자 네이버에 이 둘이 나오지 않는 영상까지 전부 이 둘을 칭찬하고 응원하는 댓글로 싸그리 도배해 정상적인 방송의 반응을 보는게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당연히 이 당시 히든 싱어를 보려던 사람들은 댓글창 상태를 보고 어이가 없다못해 분노해서 3라운드 영상쯤 가서는 임영웅과 이찬원을 욕하는 댓글들이 가득찰 정도로 서로 싸우는 개판이 벌어졌었다. 심지어 이후 언택트 방송으로 전환되었던 장윤정 리매치편은 언택트 방송 당일 방송 시작부터 끝까지 다섯장과 그외 미스터트롯 패널들을 응원하는 댓글로 1초도 쉬지 않고 도배되어 다른 언택트 방송 회차와는 다르게 서로서로 원조가수가 몇 번인지를 이야기하는 등, 정보를 공유하는 등의 정상적인 채팅 자체가 불가능했다.


트로트 업계의 피해의식, 잘못된 현실 인식
트로트 업계에서는 2000년대 들어서 트로트가 점점 쇠퇴하자, 음악적인 발전과 연구를 하기는 커녕 오히려 피해의식으로 보이는 반응을 많이 보여왔다. 주로 음악 시장이 10대 위주로 흘러간다는 식으로 자신들을 약자로 자칭하면서, 만만한 게 아이돌이라 아이돌 탓을 하면서 정작 자신들의 치부에는 눈감기 바빴다. 또한 모 중견 트로트 가수는 "젊은 트로트 가수들이 많이 데뷔하면 트로트의 인기도 올라갈 것이고, 아이돌 노래를 듣는 젊은 사람들이 트로트를 들을 것"이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을 하기도 했다.

트로트라는 장르 특성상 연령대가 한정될 수밖에 없는데, 그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변화할 생각은 하지 않고 젊은 가수들이 트로트를 부르면 된다는 마음으로 본인들의 책임을 애먼 후배 가수들에게 떠넘기면서, 다른 음악을 향유하는 세대를 트로트 쪽으로 뺏어올 궁리만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과거 어떤 트로트 가수는 트로트의 인기가 쇠퇴하고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에 아이돌이 주류 아티스트로 출연하자 "요즘 TV에서 10대들 취향 위주로 음악 방송을 해서 애들이 공부를 안 한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2020년대에 이랬다가는 연예계가 발칵 뒤집히고 큰 논란이 되었을 것이다. 

2010년대 후반~2020년대 초반의 트로트 프로그램 양산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데, 업계의 입장에서는 몇 달 몇 년을 굶주렸는데 눈 앞에 진수성찬이 펼쳐진 것과 같았고, 결국 이러한 인식을 버리지 못한 채 그저 이러한 추세가 천년만년 이어질 것처럼 착각하고 자신들의 단점을 고치기는 커녕 계속 무사안일주의로 일관하다가 결국 일반 대중으로부터 "뇌절" 낙인이 찍히고 다시금 쇠퇴하게 된 것이다.

 

향유 계층
대체적으로 2020년대 기준 60대 이상, 소위 말하는 7080년에 청년기를 보낸 세대. 즉 1940년대~1960년대 초반생이 주로 듣는 장르로 인식된다. 2000년대 초만 해도 40대=트로트라는 등식이 성립했다. 즉 이들이 적극적으로 대중음악을 소비하던 80~90년대 초까지는 트로트가 대중적으로 높은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차츰 연령대가 올라가면서 2010년대 중반 부터는 서태지와 아이들과 이승철, 임재범, 김건모로 대표되는 댄스, 락, 힙합음악의 향유층이 40대가 되었고 기존 트로트 향유층은 젊은 세대로의 확장에 실패하고 그대로 노화해 2020년대 들어 60대 이상으로 연령대가 올라갔다. 

2022년~2023년 기준으로 50대는 1960년대 중후반~1970년대 초반생으로, 소위 콘서트 7080으로 대표되는 록과 포크 음악, 들국화, 송골매, 산울림, 이문세 등의 장르에 친숙한 연령대이며, 장범준 등 '젊은 원로가수'의 노래도 많이 듣는다. 이들의 청소년기인 1970년대 후반~1980년대에도 트로트 역시 성인가요로서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런데 80년대 최고 인기가수로 꼽히던 이가 조용필이고, 김범룡과 주현미 등이 있었지만, 당시의 청소년은 돌아와요 부산항에나 허공의 조용필이 아닌 복합장르의 국민가수로서 조용필 '오빠'를 좋아했다. 게다가 50대의 경우 자신들의 20대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한 연령대다. 그러므로 현재 50대는 이후 세대만큼은 아니지만 트로트를 구시대로 인식한 첫 세대이다. 

반면 2020년대 기준, 60대 이상부터는 70년대나, 그 이전까지 청소년기를 보낸지라 트로트에 대한 거부감이 그다지 크지 않다. 물론 당시에도 이미 히피문화의 영향으로 앞서 나온 한국포크송도 젊은층에 인기를 끌긴했다. 하지만 연예계의 대마초파동으로 주요 음악인들이 음악생활을 접기도 했고, 먹고살기 위해서 록밴드의 보컬이 트로트로 솔로 전향하기도 했던 시절로서 70년대까지는 여전히 트로트가 곧 대중가요이던 시절이었다. 그러므로 2020년대 기준 60대 이상은 성장기때부터 트로트에 대한 거부감이 크게 없던 마지막 세대라 할 수 있다. 

또한 나이가 들면서 정서가 바뀌어 트로트의 가사에 감정이입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중장년 사교댄스를 배울 때 리듬이 어느정도 겹치는 트로트를 틀어놓고 연습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트로트가 지닌 리듬의 묘미를 깨닫게 되어 즐겨 듣는 경우도 꽤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도 많이 즐겨 듣는다. 대략 1990년대 초반부터 연변을 통해 많은 남한산 트로트 음악들이나 포크송들이 유입되었고, 왕재산경음악단이나 보천보전자악단을 비롯한 기존 북한 가수들의 노래들과 곡조와 창법에 있어서 공통점들이 많았기 때문에 북한 대중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졌다. 반면에 힙합음악이나 아이돌 음악은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그래서 2000년대 당시 남한가수들이 북한에서 공연했던 영상을 보면 관객들이 트로트와 포크송에 대해서는 열심히 환호하면서 박수를 치는 모습을 보이지만, 힙합이나 아이돌 음악은 낯설어하는 모습을 볼수있다. 이후로 아이돌 음악이 북한에서도 어느정도 퍼지기는 했으나 2020년대에도 중년층 이상에서 트로트 풍 노래가 대세이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중국 등지에서 몰래 반입해 온 USB 등을 이용한다고 한다. 북한 대중음악(조선가요)의 창법과 정서가 트로트와 꽤나 공유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탈북자 출신 유튜버 놀새나라는 통일이 되면 많이 인기를 끌 법한 직업으로 트로트 가수를 추천하기도 했는데, 북한에 잠재적인 트로트 향유층이 상당히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본인도 남한에 정착한 뒤 한때는 트로트 가수를 지망하기도 했다고. 이런 노래들은 입에서 입으로 퍼지다 보니 남한 트로트라는 것도 모른 채 자기네 음악인 줄 알고 행군이나 작업 시에 합창하기도 한다. 

 

다른 나라의 트로트
5음계와 2박자 4박자 계열이 적용된 음계는 동아시아권 국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의 엔카는 차치하더라도 중국, 대만, 베트남 등지에서도 들을 수 있다. 트로트는 다른 음악과의 장르 구별이 모호하고 소위 말하는 '뽕끼'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가요들도 트로트라고 할 수 있다.


중국
1927년 중국 최초의 대중가요라고 할 수 있는 毛毛雨 가 불리우기 시작했다. 당시 음반에 Fox Trot 이라는 문구가 있는 것으로 보아 트로트 리듬은 한국 뿐 아닌 동아시아 사람들에게 모두 와 닿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트로트라는 단어의 어원이 저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공산화 이후로 대중문화 관련 인사들이 전부 대만으로 건너가면서 가요계의 명맥이 끊긴다. 그리고 60년대에 문화대혁명은 중국의 대중 가요에 엄청난 타격을 가져왔다. 그 시기에 일본과 대만에서는 등려군이 활동한다. 당시 중국은 등려군의 노래를 금지곡으로 지정했지만 국민들이 듣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개혁개방 이후 등려군의 노래와 더불어 대만에서 유행하던 트로트 가요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중국은 전 국민이 트로트를 즐기는 나라가 되었다. 트로트 선호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젊은층의 트로트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오히려 DJ춤곡 (DJ舞曲)이나 슬픈정가(伤感情歌) 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훨훨 날고 있다. 대만의 트로트가 표준 중국어로 번안되는 경우, 3~40년전의 트로트가 리메이크되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대표적인 예로 빗물아 너에게 묻는다 (雨水我问你)라는 민남어곡이 있는데 중국 대륙에서 당시 인터넷 보급으로 인해 젊은이들이 인터넷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한다는 내용의 가사로 리메이크됐으며 이 곡이 또 엄청난 인기를 몰고 왔다. 왼쪽이 원판, 오른쪽이 표준 중국어 리메이크판이다.

트로트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인식을 볼 수 있는 노래로 당신을 안고 떠나다 라는 노래가 있는데 중국은 젊은층이 부르는 DJ춤곡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반면 한국은 장년층 노년층이 이 노래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렇게 트로트가 인기를 끌다보니 여러 장르와 접목한 트로트도 많이 작곡되고 있다.

중국 트로트의 백미는 고풍가요라고 할 수 있다.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을 접목시킨다는 취지로 나온 음악 장르인데 결과적으로 느린 BPM, 중국의 보편적 박자인 2박자 및 4박자, 그리고 펜타토닉 스케일이 결합된 정통 트로트의 현대적인 모습이 나왔다. 우리나라의 국악 트로트와 견줄 수 있다.  

音阙诗听 의 망종, 416女团 의 探窗 이다. 우리나라 국악 트로트에 비해 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 국악은 3박자 위주라서 2박자 위주의 트로트에 결합하면 뭔가 억지로 끼워 맞췄다는 느낌이 들지만 중국은 2박자, 4박자 계열의 음악 문화를 가지고 있다보니 중국 전통음악과 트로트의 결합이 훨씬 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다. 

대중 음악에는 뒤떨어지는 중국이지만 트로트의 인기가 워낙 높다보니 트로트를 활용한 시도는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지금도 트로트의 발전은 계속 진행중이다. 트로트의 느낌을 유지하며 발전하는 노력은 한국의 트로트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만
대만은 일제 식민 지배를 겪은 나라로 엔카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일본 패망 전에 활동한 덩위씨엔(鄧雨賢)이라는 작곡가는 일본에서 음악을 배웠으며 대만 대중가요의 기틀을 잡은 사람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50년대에는 당시 일본 엔카를 그대로 가져와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등려군 역시 엔카가수였다. 

등려군의 노래는 기본적으로 진지한 엔카 느낌이 강하다. 왼쪽부터 在水一方,但愿人长久 이며 두 곡 모두 70년대의 전형적인 엔카 스타일이다. 물론 등려군 노래의 스펙트럼은 워낙 넓어서 등려군의 노래는 무조건 엔카 스타일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江水悠悠泪水流와 小城故事 는 진지한 엔카와 흥겨운 트로트가 섞인 느낌이다. 트로트 가요의 특징인 쿵짝 쿵짝, 쿵짝짝 쿵짝의 박자가 선명하게 들린다. 70년대는 독자적인 발전을 하고 있던 한국 트로트가 알게 모르게 대만 사회에 비집고 들어온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등려군을 중심으로 한 엔카 스타일, 그리고 흥겨운 한국 트로트 스타일 두 가요가 양립한다. 한국 트로트의 중국어 버전으로 돌아다니는 음반은 대만에서 유행하던 판본이다.

중국어 트로트라고 하면 나오는 나그네설음, 샌프란시스코 중국어 버전과 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의 중국어 버전이다. 프로그램은 대만의 가요 프로그램인 대만엔카쇼 (台湾演歌秀) 대만에서는 아예 자기 나라 노래로 간주하는 듯 하다. 
미스트롯에서 재조명받은 진정인가요의 민남어 버전도 있다. 미스트롯 방영 전에는 존재감도 없던 노래가 대만에서는 널리 불리어지고 있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오른쪽 하단은 69년 개봉된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는 영화 삽입곡 추억의 그림자라는 노래의 중국어 판본이다. 70년대부터 대만에는 한국 대중문화가 많이 유행되기 시작했다. 

80년대 이후에 대만 가요는 한국 트로트처럼 빠른 비트, 다양한 음악 장르의 접목이 이루어진다. 물론 이때 판본의 상당수는 등려군 노래와 더불어 중국으로도 흘러가서 대륙에서 유행한다. 한국인의 귀에 중국 가요가 익숙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베트남
베트남도 한자문화권 국가이고 중국 일본 문화 영향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에 트로트가 존재한다.
그러나 장년층 노년층이나 부르는 노래라는 인식이 매우 강하며 입지가 매우 좁다

 

 

 

 

 

 

엔카, 미야코부시 음계
엔카(演歌えんか, 艶歌)는 일본의 대중가요 장르 중 하나로 서양에서 전래한 폭스트롯과 일본 민요가 합쳐져 만들어진 장르다. 문화/사회적으로 한국의 트로트 혹은 뽕짝 으로 변형된 통속적이고 구슬픈 노래. # 그래서인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엔카를 한국어로 로컬라이징 할 때 항상 트로트로 바뀌어서 나온다. 주로 바다, 술, 눈물, 여자, 비, 북쪽 지방, 눈, 이별 등의 소재를 중심으로 남녀간 슬픈 사랑을 그리는 경우가 많다. 대표곡으로는 미소라 히바리의 <悲しい酒(슬픈 술)>, 요시 이쿠조의 < 酒よ(술이여)>, 이시카와 사유리의 <津軽海峡・冬景色 (쓰가루 해협 겨울 풍경)>, 이츠키 히로시의 <よこはま・たそがれ (요코하마・황혼)>, 호소카와 타카시의 <北酒場 (북쪽술집)> 등. 

4, 7음을 뺀 5음계(도레미솔라) 펜타토닉스케일을 사용한다. 일본에서는 이걸 요나누키 음계라고 부르는데 위에서 언급한 코가 마사오가 등장한 이후 이러한 방식으로 만든 멜로디 라인이 유행하면서 자리잡았다.

이와 함께 초기 클래식 정통파이자 도쿄 예술대학 출신 후지야마 이치로의 성악 기술을 해석한 클론 창법이 한 시대를 풍미했으며 일본음악의 기교 표현을 강화한 뒤 1960년대에 거장 미소라 히바리가 등장하여 지위를 확립하게 되었다. 이후 비슷한 음계에서 각각의 가수들이 부르게 된 것이다.






미야코부시 음계



미야코부시 음계


 

 일본의 음계 중 미야코부시 음계는 우리가 뽕짝 혹은 트로트라고 알고 있는 대중음악에서 많이 쓰인다. 이 음계의 특징은 이미 뽕짝을 통해서 잘 알고 있듯이 매우 애상적이다. 이 미야코부시 음계(혹은 요나누끼 단음계)의 명칭에 대해서는 일본내 학자들사이에서도 약간의 차이가 있고 설명 방법에서도 여러 학자들의 의견이있다. 그러나 명칭과 설명 방법에서 차이가 있다하더라도 음악적 본질에 대한 결론은 일치한다. 미야코부시음계의 또 다른 명칭으로는 요나누끼 단음계라고 하지만, 명칭에 대한 해명은 이 글의 목적과는 거리가 있으니, 일단 음계의 특징에 대하여만 간단히 살펴본다.

 
 1800년대 말에 우에하라 로쿠시로는 일본의 전통음악의 음계를 5음 음계로 규정하면서 서양의 장음계와 단음계에 대응하여 陰音階와 陽音階로 나누었는데, 이 중 陰音階가 미야코부시 음계이다. 우에하라 로크시로가 설명하는 이 음계의 특징은 상행음계와 하행음계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학자의 설명은 이와 다르지만 결론은 같다.
 
            미야코부시 음계   상행  : 라 시 (레) 미 파
                                    하행  : 라 시 (도) 미 파
 
 상행과 하행에서 다르게 나타나는 레와 도를 중간음이라고 한다면, 이 중간음에 따라 음악적 성격이 결정되는데, 이 중간음은 전체적으로 선법의 특성을 명확하게 드러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가 뽕짝이라고 부르는 일본 음계에 의한 음악은 미야코부시 음계를 사용하고 서양의 리듬인 트로트(Trot) 리듬을 붙여 만든 데서 유래한다. 이 트로트 리듬은 2박자계통이어서 2박자 계통의 일본 음악과 딱 맞아 떨어져서 서양화된 음본 음악에 매우 자연스럽게 접목된 것이다. 그리고 뽕짝이란 말은 낮은음('뽕')과 높은음('짝')의 반복적 음형을 흉내낸 것이다.
 
  홍난파의 가곡 중 상당수는 이 미야코부시 음계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따라서 그런 가곡은 미야코부시 음계가 주는 분위기 때문에 홍난파의 가곡은 매우 애상적일 수 밖에 없다. 이 애성적이고 다분이 퇴폐적 분위기의 곡은 뽕짝이라 불리는 대중음악과는 달리, 고급스럽게 포장되어 연주되고 있지만, 얇은 그 포장만 벗겨내면 본질적으로 뽕짝과 다를 바가 없다.
 
 홍난파의 가곡에 대한 비판 중에는 가사와 선율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다는 것도 들수 있는데, 2박자 계통의 미야코부시 음계에 의해 작곡한 것을 억지로 3박자로(3/4, 6/8)로 바꾸어 놓은 데어 오는 어색함이다. 따라서 미야코부시 음계에 의한 홍난파의 가곡을 2/4박자나 4/4박자로 바꾸어 놓는다면 선율과 가사가 매우 적절히 들어맞음을 볼 수 있다.
 
홍난파가 작곡한 대표적 미야코부시 음계 가곡으로는 <봉선화>를 들 수 있다. 이 곡은 가사와 음악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 작곡된 선율에 가사를 붙였기 때문에 더욱 심한 경우이다.
 
 이 곡에 쓰인 음계는 '라시도레미'로써 미야코부시음계로 된 전형적 선율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출현음이 '라시도레미'라고 모두 미야코부시 음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출현음들이 미야코부시 음계에 나타나는 음악적 유기성을 보여 주어야만 하는 것인데, 홍난파의 <봉선화>는 미야코부시 음계에 나타나는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1919년에 3.1운동이 일어나자 일본은 그 동안의 강압정책을 좀더 교묘하게 바꾸었다. 그 것은 바로 문화정책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문화정책이라는 용어에 있다. 이 문화정책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한국의 민족문화 말살 정책' 혹은 '황국 문화 주입 정책'이라는 것인데, 이 정책의 핵심을 모두 빼고 막연히 문화정책이라고 하는 것은 또 하나의 역사 왜곡이 될 수 밖에 없다.
 
 일제는 문화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음악이 그 선봉에 내세웠다. 음악은 허다한 문화들 중에서도 정신을 좌우할 만한 강한 힘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보편성이 더 강하기 때문에 거부감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요나누끼 음계로된 일본의 창가는 이미 일제 시대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애상적이어서 퇴폐적 분위기까지 자아내는 미야코부시 음계는 당시의 처절했던 우리 민족의 애상적 삶과 잘 맞아 떨어질 수있었다. 게다가 선교사들과 일제가 교묘히 획책했던 우리 민요에 대한 폄하책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을 무렵에 방송을 비롯한 여러가지 통로로 노골적으로 유혹해 오는 미야코부시 음계의 뒤틀린 서정성을 거부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홍난파는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일본에 유학하여 서양음악을 배워왔지만, 그 서양음악을 자기 것으로 소화시키지 못하고, 일본인의 시각으로 서양음악을 받아들여 한국음악을 천시하고 서양음악의 우월성만을 주장하였다.
 
   홍난파가 사용한 음악 어법은 그 포장만 서양음악이었을 뿐, 정작 중요한 내용은 바로 일본의 요나누끼, 미야코부시 음계였다.
 
    한국 서양음악의 선구자로 불리는 홍난파의 음악이 이렇했으니, 그로부터 출발한 서양음악 뿌리는 어쩔수 어쩔 수 없이 왜색적이고 반민족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 한국의 양악계에서 왜색적인 것은 미미하다고 할 수 있으나, 홍난파를 비롯하여 초기의 양악계의 선구자들이 보여주었던 한국 음악 멸시 풍조는 지금도 면면히 이어 내려오고 있다.
 
 그동안 홍난파의 친일 행위에 대해서는 이론을 다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고 믿고 싶다. 사실 홍난파가 친일을 했다하더라고 당시의 억압적 상황에서 명망있는 음악가가 생존과 음악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관대히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홍난파의 경우는 심히 다르다. 그의 음악 자체가 왜색 음악이었고 서양화된 일본음악의 전파는 일본의 국책에 따르는 것이었으며 홍난파의 음악 활동 자체가 일본의 민족문화말살정책의 첨병의 역할에 딱 맞아 떨어졌다. 다시 말하여 홍난파는 생존을 위해 친일을 했던 음악가가 아니라, 그가 스스로 의도했던 아니면 무지하여 모르고 그랬던 간에, 우리 음악을 멸시하고 우리 음악이 자리한 그 곳에 서양화된 일본 음악을 이식하고자 노력했던 비루하고 졸렬한 음악가였을 뿐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