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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時間).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카를로 로벨리, 우주의 시간, Time is an illusion

Jobs9 2023. 3. 27.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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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時間)

 

Time is an illusion.

 

시간(時間)은 사물의 변화를 인식하기 위한 개념이다. 세월(歲月) 또는 광음(光陰)이라고도 한다.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명백히 불가역적인 연속상에서 발생한다. 시간은 물질 운동의 계기성(繼起性)의 연관이며 물질의 어떠한 운동에도 불가결한 물질 자신의 측면이다. 시간은 한때 예로부터 자주 마음 쪽에 근거를 갖는 것으로 생각되기도 했다(칸트도 시간을 직관의 형식으로 보았다). 시간은 1차원의 불가역성이 그 특징이며 3차원의 공간과 불가분한 통일을 이루어 4차원의 시간과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시간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는 것은 고대부터 철학자와 과학자들의 주된 관심사이다. 시간은 종교, 철학, 과학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연구 주제로 되어왔으나 시간의 의미에 대한 여러 갈래의 폭넓은 시각이 존재하기 때문에 논쟁의 여지가 없는 명확한 시간의 정의를 제공하는 것은 어렵다. 또한 시간이 사건의 측정을 위한 인위적인 단위에 불과한지, 아니면 사건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물리학적 의미를 갖는 어떠한 양인지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물리학에서의 시간은 "시계가 읽는 바"를 정의한다. 물리학의 방정식에서 시간을 가역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계산성의 추상면에서 그러하며, 거기에서 실재적인 시간의 가역성적 주장은 나오지 않는다.

산업혁명은 '시간'이라는 개념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 전에는 서구에서조차 기계적이고 객관적이며 측정 가능한 '시간'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딱히 없었다. 공전과 자전에 따라 해가 뜨고 지고, 계절이 바뀌는 것을 보고 시간을 대략적으로 가늠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예부터 발전해온 학문은 천문학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은 시간의 측정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철도회사가 생기고, 각종 물품회사가 생기면서 객관적인 시간의 측정과 여기의 정확성은 '돈'과 직결되는 문제가 되었다. 즉, 개인과 사회, 국가에게 있어서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경쟁력의 핵심이 된 것이다. 

시간의 단위는 오랫동안 사건들 사이의 간격과 그 지속 기간에 대한 양으로 생각되어 왔다. 예를 들어, 규칙적으로 발생하는 사건들과 하늘을 가로질러 지나가는 태양의 육안 운동, 달이 차고 기우는 변화, 진자의 진동처럼, 명백하게 주기적으로 운동을 하는 물체들을 시간의 단위에 대한 표준으로 사용하여 왔던 것이다. 시간은 국제단위계(SI)와 국제량체계의 7가지 중요 물리량 중 하나이다. SI 시간 단위는 초이며 세슘 원자의 진동수를 측정함으로써 정의된다. 시간은 속도와 같은 다른 수량을 정의하기 위해 사용되므로 이러한 맥락에서 시간의 정의는 다양해진다.

현대에 들어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카를 융의 동시성 이론, 심리적이고 주관적인 시간 등이 논의되면서 어느 누구에게나 객관적인 것으로서 여겨지던 시간은 그 의미가 많이 변화하고있다. 이렇게 시간의 상대성과 주관성이 부각되기 시작하자, '시간'이라는 주제는 작가, 화가와 철학자들에게 새로운 의미로서의 중요한 테마로 자리잡게 된다. 또한 이러한 시간에 대한 관심은 현대에 들어서 시간여행, 거꾸로 가는 시간, 시간이 멈추는 등 시간에 대한 흥미로운 영화들이 제작되는 계기가 된다.

물리학에서의 시간
열역학 제 2 법칙
시간이 왜 과거에서 미래로만 직선적으로 흘러가는지에 대한 설명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한 가지는 바로 열역학 제2법칙, 즉 엔트로피(무질서도)의 증가이다.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하면 고립계에서는 항상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하게 되고 결국에는 엔트로피가 극대값을 가지는 평형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하면 엔트로피가 증가함에 따라 시공간의 에너지 분포가 변하게 되면 그 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으며 커지는 쪽이 자동으로 시간이 흘러가는 미래가 된다. 이렇게 나타나는 시간의 방향성을 열역학적 시간의 화살이라 하는데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의 방향성은 열역학적 시간의 방향성과 같기 때문에 시간이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 

 

시간의 상대성

알버트 아인슈타인
특수상대성이론
1905년 아인슈타인의 <운동하는 물체의 전기역학에 대하여> 라는 논문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자 시공에 대한 일대 사고의 변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아인슈타인이 특수 상대성 이론이라 이름붙인 이 이론은 다음의 다섯 가지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움직이는 물체는 시간이 천천히 간다.(시간지연) 움직이는 물체는 길이가 짧아진다.(길이수축) 한 사람에게 동시에 일어난 사건은 다른 운동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는 동시에 일어나지 않는다.(동시의 상대성) 움직이는 물체는 질량이 무거워진다.(질량증가) 물질과 에너지는 서로 바뀔 수 있다.(물질과 에너지의 동등성) 위와 같은 다섯 결론들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고전역학적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뒤바꾸어 놓게 된다. 

아인슈타인은 빛의 속도는 관측자의 상태에 상관없이 항상 같다는 사실에 기반해 기존의 갈릴레이의 상대성이론과 뉴턴역학을 부정한다. 또한 고전물리학적 관점에 따르면 모든 위치에 있는 시계는 똑같은 시간으로 맞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두 일정하게 흘러가는데 이것 또한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에 의해 부정된다. 그 근거는 대략 다음과 같다.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의 기본 가정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광속 불변의 원리(빛의 속도가 지구의 공전속도에 상관없이 299,792,458m/sec 로 항상 일정하다는 사실은 미국의 마이컬슨(Albert Abraham Michelson, 1852~1931)과 몰리(Edward Williams Morley, 1838~1923)의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어떤 관성계에서든 물리 법칙은 같다.
여기서 빛의 속도는 어떠한 경우에도 299,792,458m/sec 로 일정하다는 기본 가정에 따라 기존의 갈릴레이의 상대성 이론은 부정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빛의 속도에는 어떠한 다른 속도도 더해지거나 감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광속 불변의 원리에 따라 ‘빛시계’를 가정하면, 움직이는 물체 안에서 시간은 더디게 간다는 결론을 도출 할 수 있다. 빛 시계는 일정한 거리를 위아래로 한 번 왕복하고 돌아오면 1초가 지나는 시계이다. 이 시계를 움직이는 기차 안에 두면, 이 빛이 이동하는 거리는 기차 밖에 있는 빛 시계의 빛이 이동하는 거리보다 길어지게 된다. 빛은 언제나 같은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기차 안의 시간은 느리게 가게 되는 것이다. 


빛시계 
이러한 시간지연 효과는 시간은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일정한 속도로 흘러간다는 기존의 관념을 통째로 뒤엎는 것이었다. 시간은 속도와 움직임이 다른 개체들에게 모두 다르게 흘러가며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흘러가는 시계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간지연 효과는 인간의 감각으로는 알아 챌 수 없을 만큼 미미하기 때문에 처음에 사람들은 이러한 아인슈타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 효과는 1971년, 비행기로 지구를 동쪽과 서쪽방향으로 돈 후 시계를 비교해 본 결과 실제로 서쪽으로 돈 시계는 0.000027초, 동쪽으로 돈 시계는 0.000006초 느려진 것이 확인되어 사실로 증명되었다. 또한 오늘날에는 우리들이 쓰는 스마트폰, 인공위성 등 다양한 기기에 정확한 시간을 조절하는 원리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동시성의 상대성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절대적 동시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멈춰있는 어떤 사람에게 다른 방향에서 오는 두 불빛이 동시에 반짝인다면 이것은 그 사람에게 ‘동시에’ 일어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이나 뒤로 이동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 불빛은 동시에 반짝이지 않는다. 빛의 속도는 항상 일정하기 때문이다. 즉, 움직이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느 순간 한 불빛과는 점점 가까워지는 반면, 다른 한 불빛과는 점점 멀어지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불빛을 먼저 보게 되고, 멀리 떨어져가는 불빛은 나중에 보게 된다. 결론적으로, 운동 상태와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개체들에게 ‘동시’란 모두 다르게 관측된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카를로 로벨리, 우주의 시간

 

시간이라는 개념은 인간이 느끼는 환상에 가깝다. 시간은 우리가 세상을 흐릿한 시야로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생기는 착각이다. 세상의 모든 미시적인 움직임까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면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것이다. 시간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모호하고 신비로운 것이다. 책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시간에 대해 그동안 인류가 알아낸 지식들과 아직 밝히지 못한 것들을 설명하면서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시간이라는 개념이 전부 환상이었다는 황당하면서도 흥미로운 주장을 한다. 나도 이 책의 내용은 다소 어렵다고 느꼈지만 내용이 흥미롭고 호기심을 자극해서 나도 모르게 끝까지 읽게 되었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위에 있는 사물이 아래에 있고, 아래에 있는 사물은 위에 있다. 지구 전체가 다 그렇다." 이 문장을 처음 들으면 여러 반의어들이 뒤섞여 있는 것처럼 보여서 혼란스럽다. 몇 천 년 전의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다. 그렇게 믿는 편이 인간의 직관에 잘 맞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사람들은 매우 혼란스러워했다. 하지만 현대인은 위나 아래라는 개념이 보편적이지 않고 지역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유럽에서 성립하는 위나 아래라는 개념이 호주에서는 반대로 성립한다. 지금 우리도 이와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 우리의 직관과는 달리 과거, 현재, 미래라는 개념은 보편적이지 않고 지역적이다. 지구에서의 과거가 안드로메다 은하에서는 미래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총 3부로 나뉘어 있다. 1부에서는 지금까지 인류가 시간에 대해 알아낸 진실들을 설명한다. 2부에서는 시간이 없는 세상에는 무엇이 남는지 설명한다. 3부에서는 1부에서 설명한 시간이라는 개념을 다시 돌아보면서 무엇이 우리가 시간이라는 개념을 믿게 만들었는지 설명한다. 
 
시간은 보편적이지 않다
현대 물리학 이론에 따르면 시간은 보편적이지 않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상대성 이론과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 있다. 

1. 상대성 이론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통해 어떤 곳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다른 곳에서는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태양과 지구는 중력을 통해 서로를 끌어당긴다. 그런데 태양과 지구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서로를 끌어당길 수 있는 걸까? 이런 궁금증을 느낀 아인슈타인은 태양과 지구 사이에 있는 무엇인가에 의해 서서히 끌어당겨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공간과 시간만 있으므로 태양과 지구가 각자 주위의 공간과 시간을 변화시킨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상대성이론을 통해 지구나 태양과 같이 질량이 있는 행성은 주위의 시공간을 변화시켜 주변에 있는 물체를 끌어당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행성은 시공간을 변화시켜 주변의 시간을 느리게 흐르게 만든다. 그래서 지구라는 행성에 가까운 바닥일수록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높은 곳일수록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중력이 강한 행성일수록 뚜렷하게 나타난다. 

  현재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 것을 대상으로 해야지 멀리 있는 무언가를 대상으로 하면 안 된다. 내 여동생이 지구로부터 4광년 떨어져 있는 프록시마 b에 갔다고 하자. 나는 여동생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내가 망원경으로 보거나 여동생이 보내는 무선통신을 받는다면 내가 아는 건 여동생이 4년 전에 하던 일이지 지금 하는 일이 아니다. 빛이 프록시마 b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4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여동생이 하고 있는 행동은 내가 여동생을 망원경으로 보고 난 후 4년 후에 그녀가 하고 있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중력이 큰 행성일수록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따라서 내가 여동생을 본 지 4년 후는 그녀의 시간에서는 지구에서 10년 후가 될 수도 있고, 그때는 그녀가 이미 지구로 돌아왔을 수도 있다. 시간은 보편적이지 않다. 지구라는 좁은 지역 안에서는 시간이 보편적이라고 여겨도 문제 되지 않지만 4광년 떨어져 있는 프록시마 b에서도 지구에서 성립하는 시간의 개념이 똑같이 성립한다고 볼 수는 없다. 

 
2.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우리가 시간이 흐른다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모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엔트로피 즉, 무질서한 정도가 증가한다는 법칙이다. 한 곳에 가지런하게 정리해 놓은 물건들은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어질러지고, 물 위에 떨어뜨린 잉크 방울은 순식간에 퍼진다. 물건이 스스로 정리되거나 물속에 퍼져 있는 잉크 방울이 스스로 모이는 일은 일어날 수 없다. 지금 엔트로피가 증가하고 있다면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이런 인식을 갖고 있는 이유는 모든 현상은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곳에 정리된 물건이나 물속에 떨어뜨리기 전의 잉크 방울은 엔트로피가 낮다. 하지만 우리가 항상 엔트로피가 증가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세상을 희미하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의 미시적인 부분까지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면 항상 엔트로피가 증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한 묶음의 카드를 섞어보자. 이 카드는 1부터 10까지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다. 그렇다면 카드를 섞기 전에는 엔트로피가 낮다고 볼 수 있다. 카드를 섞는 순간 엔트로피가 높아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어떤 구성이든 특별하기는 하다. 부모의 눈에는 자기 자식이 가장 특별하게 보이듯 자세히 관찰하면 모든 카드 배열에 독자적인 방식으로 특성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에 특별하다고 볼 수 있다. 초기 상태가 엔트로피가 낮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세상을 희미하게 바라보기 때문이다. 항상 엔트로피가 증가하고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따라서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이유로 시간이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없다. 사물의 미시적인 상태까지 관찰할 수 있다면 과거나 미래라는 개념은 무의미해진다. 

  우주에는 우주를 떠돌아다니는 먼지들은 스스로 모여서 먼지 뭉치가 되고 이 먼지 뭉치가 커지면서 중력이 생기고 점점 더 커져서 별이 된다. 태양계와 우리 은하도 그런 식으로 만들어졌다. 엔트로피가 높아지기만 한다면 먼지는 끝없이 흩어지기만 해야지 스스로 모여서 먼지 뭉치가 되고 별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또 헬륨은 수소보다 엔트로피가 낮은데 별은 스스로 핵융합하여 수소를 헬륨으로 변환시킨다. 우주에는 엔트로피의 증가를 역행하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존재한다. 다만 지구만 계속해서 엔트로피가 높아지는 특별한 계에 속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엔트로피가 증가하고 있다는 이유로 시간이 흐르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될 것이다. 

 
시간이 없으면 무엇이 남는가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고 하면 많은 사람은 모든 것이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는 세상을 상상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지 않는 세상은 그렇게 삭막하지 않다.

  우주가 보편적인 하나의 시간 순으로 정리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저 여러 변화들이 단일한 시간 순서에 따라 정리되지 않을 뿐이다. 우리는 원인 뒤에는 결과가 뒤따른다고 생각하지만 결과가 원인보다 먼저 일어나거나 원인과 결과가 함께 일어날 수도 있다. 다만 지구는 시간이 우리의 직관에 따라 흐르는 특별한 공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현상을 관찰하기 어렵다. 

  우주의 시간은 질서 정연하게 한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의 언어와 직관에 따르면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를 지나 미래로 질서 정연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 새로운 발견을 기존의 언어와 직관에 끼워 맞추려고 싸우고 있다. 2천 년 전에는 지구는 공 모양이고 위, 아래의 의미가 이곳, 저곳에서 서로 다르다는 새로운 발견에 혼란스러워했다. 현재 상황은 2천 년 전의 상황과 전혀 다를 바 없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 단위는 공간의 특별한 지점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어디뿐 아니라 언제에도 있다. 우리는 세상이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은 사건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진실에 더 가깝다. 잘 살펴보면 사물들은 장기간에 걸쳐 매우 천천히 일어나는 사건이다. 예를 들어 유리는 고체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천천히 움직이는 액체이다. 유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매우 천천히 녹아내리고 있다. 다만 그 속도가 너무 느리다 보니 우리 눈에는 고체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다른 사물들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물체는 짧은 순간 동안 자신의 형상을 유지하고 다시 먼지로 분해되기 전 자체적으로 균형 상태를 유지하는 과정이다. 돌도 지금은 단단한 고체처럼 보이지만 미시적인 부분까지 관찰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풍화하고 움직이고 있고 언젠가 완전히 분해되어 먼지가 될 것이다. 최신 물리 이론에 따르면 모든 물체는 양자장의 복잡한 진동이고 힘들의 순간적 상호작용이다. 물질이란 것은 환상이고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즉, 물질도 시간이라는 환상이 만들어낸 또 다른 환상인 것이다. 

 
미래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

  초등학교에서는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에너지라고 가르친다. 에너지 덕분에 우리는 자동차도 움직일 수 있고, 난로도 피울 수 있고, 컴퓨터도 켤 수 있다. 에너지가 사용되면 에너지는 열로 바뀌어 차가운 사물로 이동하는데 여기서부터는 특별한 조치 없이는 에너지를 이전 단계로 되돌릴 수 없다. 예를 들어 석탄은 에너지가 응축되어 엔트로피가 매우 낮은 상태이다. 하지만 석탄을 태워 증기 기관차를 움직인다면 석탄은 엄청난 열을 배출하며 엔진을 움직이는데 이때 방출된 열은 주변으로 빠르게 퍼진다. 즉, 엔트로피가 높아지는 것이다. 이때 발생한 열은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상 다시 사용하기 어렵다. 즉,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에너지가 아니라 낮은 엔트로피인 것이다. 

  우리가 미래가 아닌 과거만 기억할 수 있는 이유는 과거에는 지금보다 엔트로피가 낮았기 때문이다. 모든 사건은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에서 시작해서 엔트로피가 높아지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열을 배출한다. 흔적이 남으려면 무엇인가 정지해서 움직이지 말아야 하는데 이것은 되돌릴 수 없는 과정을 통해서만 즉, 에너지를 열로 변환시키는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열이 없는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탄력적으로 튕기고 그 어떤 것도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달에 운석이 떨어지면 엔트로피가 높아져 달 표면에는 운석 구덩이라는 흔적이 남고 엄청난 열이 방출된다. 

  우리의 뇌도 마찬가지이다. 컴퓨터를 오래 사용하면 뜨거워지듯이 뇌도 쓰면 쓸수록 뜨거워진다. 이는 뇌가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에서 높은 상태로 나아가면서 열을 방출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도 엔트로피가 높아지면서 기억이라는 흔적이 남는 것이다. 즉, 엔트로피가 높아지지 않으면 우리의 뇌도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다.

  과거만 기억하고 미래는 기억할 수 없는 것은 지구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일 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항상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생각은 우리가 세상을 흐릿한 시야에서 관찰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착각이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모든 우주에 일관적으로 적용되는 보편적인 법칙이 아니다. 하지만 지구라는 좁은 지역은 과거에서 미래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엔트로피가 높아지는 특별한 계에 속해 있다. 우주 어딘가에서는 시간이 미래에서 과거로 흐르면서 엔트로피가 낮아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구에 사는 우리는 과거만 기억하고 미래는 기억할 수 없는 것이다. 

  시간이 우주 전체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법칙일 거라는 생각은 우리가 느끼는 환상이다. 시간은 우리가 세상을 흐릿한 시야로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느끼는 착각이다. 세상의 모든 미시적인 움직임을 완벽하게 관찰할 수 있다면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시간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모호하고 신비로운 것이다. 

  카를로 로벨리의 책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에서는 그동안 인류가 시간에 대해 알아낸 사실들과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실들을 설명하면서 그동안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개념인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주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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