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영시, Poem, English poetry

MAID OF ATHENS, ERE WE PART / George Gordon byron

Jobs9 2024. 10. 29. 17:48
반응형

 

 

Maid Of Athens, Ere We Part

George Gordon byron

Maid of Athens, ere we part,
Give, oh give me back my heart!
Or, since that has left my breast,
Keep it now, and take the rest!
Hear my vow before I go,
Zoë mou, sas agapo!

By those tresses unconfined,
Wood by each Ægean wind;
By those lids whose jetty fringe
Kiss thy soft cheeks' blooming tinge;
By those wild eyes like the roe,
Zoë mou, sas agapo!

By that lip I long to taste;
By that zone encircled waist;
By all the token-flowers that tell
What words can never speak so well;
By love's alternate joy and woe.
Zoë mou, sas agapo!

Maid of Athens! I am gone:
Think of me, sweet! when alone.
Though I fly to Istambol,
Athens holds my heart and soul:
Can I cease to love thee? No!
Zoë mou, sas agapo!




 

Verse One
Maid of Athens, ere we part,
Give, O, give me back my heart!
Or, since that has left my breast,
Keep it now, and take the rest!
Hear my vow before I go,
Ζωή μου, σᾶς ἀγαπῶ.

Byron’s ‘Maid of Athens, Ere We Part’ begins with the line that gives it its title, as is traditional of poems that are not given a proper name. It addresses a women — a maid of Athens, and suggests straight away that the speaker and the Maid knew one another and are now being forced to part ways. The narrator pleads with the Maid, saying she has his heart, and since she has his heart, she must either return it to him before he leaves, or keep it, in which case he too would have to stay. Before the speaker leaves, he utters a parting phrase in her native language, translating roughly into “My life, I love you.” 

‘Maid of Athens, Ere We Part’ is written in a style fairly typical of Byron, where every other line rhymes with the one before it in an AABBCC manner. It is also written in a macaronic style, meaning Byron has borrowed elements of Greek language to augment his English poem. The pronunciation of ἀγαπῶ fits with the rhyming format, rhyming with “go,” as it is pronounced “sah-gah-PO.” 


Verse Two
By those tresses unconfined,
Wooed by each Ægean wind;
By those lids whose jetty fringe
Kiss thy soft cheeks’ blooming tinge;
By those wild eyes like the roe,
Ζωή μου, σᾶς ἀγαπῶ.

Continuing the same structure as the previous verse, the speaker begins to describe the object of his desire. He describes her tresses, an older word for locks of hair, and speaker of the Ægean winds that brought him to her (a likely reference to the Aegean sea, an aspect of the Mediterranean that separates Greece from Turkey). He imagines her soft cheeks tinged red, and her eyes. The language is heavily romanticized, and high attention is paid to detail as Byron described each physical feature of the poem’s subject. 


Verse Three
By that lip I long to taste;
By that zone-encircled waist;
By all the token-flowers that tell
What words can never speak so well;
By love’s alternate joy and woe,
Ζωή μου, σᾶς ἀγαπῶ.

The third verse of ‘Maid of Athens, Ere We Part’ focuses a lot more on the speaker’s desires, focusing on the woman’s lips and her waist especially. He discusses the joys and woes of being in love, and this suggests that the subject of the poem does not share his sentiments. And still, each verse ends with a declaration of love, made all the more poignant by its utterance in the native language of the Maid of Athens. 


Verse Four
Maid of Athens! I am gone.
Think of me, sweet! when alone.
Though I fly to Istambol,
Athens holds my heart and soul:
Can I cease to love thee? No!
Ζωή μου, σᾶς ἀγαπῶ.


By the final verse, the speaker has left, heading towards Istanbul, Turkey (and likely crossing the Aegean sea to do so), but still thinking about the girl he’s left behind. He declares that he will always love her, and that she kept his heart, as referenced in the first verse. He hopes she will think of him, and one last time, tells her he loves her in her native language. 

‘Maid of Athens, Ere We Part’ is a very straightforward poem in its meaning, and expresses much of Byron’s sentimentality and affinity for romantic verse. It is very heavy in descriptions and expression of feeling, but reveals little in terms of actual character or story, preferring to focus on the separation of the two individuals instead. 


Historical Context 
Lord Byron wrote ‘Maid of Athens, Ere We Part’ in 1810, during a time for which he was living in Greece, as a part of his Grand Tour, a customary trip of Europe embarked on by noblemen for whom it was considered a strong lesson in the Renaissance and wider European cultures. While in Athena, Byron stayed briefly with Tarsia Makri, a native to Athens. Despite Byron’s alleged homosexual affair with a fourteen-year-old boy, Byron fell in love with Makri’s twelve-year-old daughter, Teresa (he was twenty-two at the time). Before departing to continue his tour in Constantinople, Byron wrote the girl a poem, and offered £500 for her hand in marriage — as the two never married, it is clear the offer was rejected. 

In this historic context, ‘Maid of Athens, Ere We Part’ can be viewed in a rather different light. Realizing that the poem is written for someone ten years his minor, and is written on the heels of another sexual relationship, paints Byron more in the light that he was famous for at the time — flamboyant, notorious, and, as famously described, “mad, bad, and dangerous to know.” It is easy to view ‘Maid of Athens, Ere We Part’ as an attempt at seduction or wooing by Byron, trying to encourage the young girl to believe he was desperate for her love. This throws the sincerity of the piece into question. Alternatively, it is possible that Byron’s affections were simply like flames, that burned brightly and intensely before quickly dying out. Perhaps Byron truly did love Teresa Makri, but it was not long before he was on to the next passion, the next poem, the next story to build up the reputation of the notorious poet, lord, and lover. 




Maid Of Athens, Ere We Part

 

아테네의 소녀여, 우리 헤어지기 전에
들려다오, 오 나의 마음을!
아니면 내 마음 이미 떠났으니
그대 편안히 그것을 간직해 다오.
자, 나 떠나기 전에 이 맹세를 들어라,
"나의 생명이여,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

에게해의 정다운 바람 맞으며
흩날리는 그대 머리카락에,
보드라운 두 볼에 입맞추는
그대의 까만 눈시울에,
어린 사슴처럼 순진한 그대 눈동자에 두고 맹세코
"나의 생명이여,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

내 간절히 탐내는 그대의 입술에
띠 두른 그대의 날씬한 허리에,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해 주는 온갖 꽃말에,
그리고 기쁨과 슬픔이 엇갈리는 사랑에 두고 맹세코
"나의 생명이여,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

아테네의 소녀요! 나는 가노라.
사랑하는 그대여, 홀로 남거든 나를 생각해 다오.
비록 몸은 이스탄불로 떠나건만 아테네는
나의 심장과 영혼을 사로잡누나.
간다고 내 사랑 그칠손가? 아니다
"나의 생명이여,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




영국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시인인 조지 고든 바이런(George Gordon Byron)은 그 자신이 “쾌락보다 더 엄격한 도덕주의자는 없다”고 말했듯이, 세상의 위대한 쾌락주의자들 중 하나였다. 

천재이자 미남이었던 그는 높은 사회적 지위와 드높은 정신을 소유했으며, 그가 만나는 모든 남녀에게 매력을 과시하면서, 자유를 추구하며 살았다. 

어렸을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36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짧은 시, 긴 시, 서정시, 서사시, 이야기시, 극시 등 다양한 종류의 수많은 시를 썼다. 

그는 자신의 시에서 결코 자신에 관해 감추지 않고, 그의 모든 것인 자기 자신의 체험ㆍ개성ㆍ내력을 노래한다. 말하자면, 청춘의 정열, 사랑의 만남과 이별, 기쁨과 슬픔, 삶의 고뇌와 비애와 울분, 어떤 것에 대한 동경과 긍지, 희망과 절망과 회의에 대해 솔직하고 과감하게 토로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인생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세련된 시적 기법으로, 흔한 사상으로부터 탈피해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보여 준다. 

이러한 바이런의 특성은 자연스럽게 그의 언어 구사력과 연결되는데, 그는 매우 솔직하고 대담한 언어를 구사한다. 

예를 들어,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Childe Harold’s Pilgrimage)≫에서 바이런은 숨 막히는 자연 풍경이나 과거의 기념물 앞에 서서 그 장면을 묘사할 때 독자의 심금을 울린다. 그런데 그것은 그 장면이 관심을 끌기 때문만이 아니고, 해럴드가 자연으로 도피하고자 하는 욕망 기저에 들어 있는, 삶이 진부하고 불필요할 정도로 복잡하다는 느낌을, 강력한 언어로 표현하는 그의 솔직하고 대담한 언어 구사력 때문이다. 

그의 대담한 언어 구사는 시에 문외한인 독자부터 시에 대한 안목이 높고 세련된 독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독자들을 매혹한다. 그의 언어는 빠르고 명료하고 직접적이면서도 깊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장면을 묘사하는 언어 구절들을 통해 등장인물의 성격을 나타내는 상징을 표출해 내기도 한다. 

바이런은 또한 낭만주의 시인들이 그렇듯이 자연 묘사에서 섬세한 감각과 예리한 관찰력과 함께, 자연으로의 도피와 자연에 대한 동경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보다 더 인간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다. 그가 정말로 관심을 갖고 그의 작품을 통해 그리는 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와 인간사, 그리고 인간을 둘러싼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많은 불운한 일들을 옹호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 줌으로써 당시 유럽 사회의 제도ㆍ활동ㆍ가치에 대해 공격한다. 

그리고 사랑과 관련해서도 사회와 개개인이 보여 주는 위선에 대한 풍자적인 공격을 가한다. 사랑과 결혼에 대해 여성, 남성은 물론 부모들과 남편들이 보여 주는 위선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지적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정신적인 사랑이나 자기기만적인 사랑이 갖고 있는 위선도 사악하다고 비난하며, 심지어 낭만주의 문학이 갖고 있는 사랑에 대한 이상적인 태도까지도 위선적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시인의 임무는 사랑은 물론 개인과 사회와 국가 전반에 걸친 모든 문제와 모든 인간을 있는 그대로 비판하며 책임감 있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그만큼 어떤 구속이나 억압도 받아들이지 않고, 자유분방한 생활을 추구했으며 귀족계급과 사교계의 부정부패와 위선을 거침없이 솔직하게 꼬집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이런 스스로 그의 작품 ≪라라(Lara)≫에서 말하듯이, “그의 광기는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반항 정신은 유럽 변혁사에 많은 영향을 끼칠 정도로 지대한 것이었는데, 그의 솔직한 태도와 성실한 책임감으로 인해 그는 객관성과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바이런은 흔히 낭만파의 대표 시인으로 일컬어지지만, 정작 그 자신은 18세기의 신고전주의적인 포프(Pope), 스위프트(Swift), 스턴(Sterne) 등을 스승으로 보고 그들 시의 목표와 방식을 따르고자 했다. 이로 인해 그의 시는 매우 다양한 낭만적 특성들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신고전주의적인 스타일과 현대 문명에 대한 풍자가 가미되어, 결코 감정의 세찬 동요에 휘둘리지 않으며 그 속에 풍자와 날카로운 이지적 냉소가 깃들어 있다. 

따라서 사변적이고 비관적인 인생관을 노래하는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우울함은 단지 한때의 감상이나 한순간의 기분에 머물러 있지 않고 이보다 더 뿌리 깊은 절실한 인생관에서 나오는 우울함을 담고, 절망과 허무의 세계로 빠져들어 간다. 

그러므로 바이런은 여러 작품들에서 암시를 받아 자기만의 독창적이고 사적인 시를 성공적으로 창조해 내는데, 겉으로는 장난하듯 오락적인 주제를 다루는 듯하지만 실은 그 이면에 진지하고 심각한 인생관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바이런의 시적 특성에서 나온 인물은 “바이런적 영웅(Byronic hero)”이라 불린다. 바이런적 인물은 그의 시 도처에 나타나는데, 우울하며 정열적이고 통렬하게 참회하면서 후회 없이 죄를 저지르는 반인반신적인 주인공으로, 끝없는 항거를 하며 그 시대의 분위기를 대표적으로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끝없이 저항하는 자세인 “바이런주의(Byronism)”로 인해 그는 낭만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걸작으로 알려진 대표적인 서사시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와 ≪돈 주안(Don Juan)≫은 이러한 바이런의 시적 특성을 잘 나타내며 바이런적 영웅을 잘 보여 준다. 

1812년에 1ㆍ2편, 1816년에 3편, 1818년에 4편이 발표된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는 바이런이 21세부터 29세까지 9년에 걸쳐 쓴 작품이다. 이 작품의 매력은 사물들의 묘사뿐만 아니라 바이런이 낭만적 이상을 구현한 듯 여겨지는 차일드 해럴드의 성격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바이런은 이 작품에서, 인생을 폭넓고 깊게 경험했지만 이제는 공허한 쾌락에 지쳐 여행에서 위안을 찾는 귀족으로 망명자가 된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를 통해 이국땅을 생생하면서도 시적으로 그려 낼 뿐 아니라, 프랑스혁명이 끝난 뒤 나폴레옹 통치 기간 동안의 우울함과 환멸을 표출하고, 당시 문학으로서는 처음으로 솔직하게 낭만적인 이상과 현실 세계 사이의 불균형을 표현한다. 

여기서 순례의 의미는 추구의 여행을 의미하는데, 해럴드는 무감각하기 짝이 없고 불만스러운 소외 상태를 극복하고 통합적 인식을 회복하기 위해 순례를 하지만, 그는 마침내 낭만주의적인 목적의 부재를 경험하고 그 허구성을 인식하며, 자신이 추구한 결과는 어떤 곳에도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순례의 결과는 바이런에게 비전의 획득이 아니라 현실 세계로의 복귀, 비전에 대한 환멸을 가져다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초월적 비전의 추구로부터 벗어날 동기를 제공해 준다고 할 수도 있다.

바이런이 죽는 바람에 미완의 작품으로 남은, 1819년부터 1824년까지 걸쳐 발표된 16편의 서사 풍자시 ≪돈 주안≫에서도 바이런은 사회의 부패와 타락을 폭로하고, 인간이 만들어 낸 온갖 도덕률을 모두 위선이라고 매도하며, 유럽의 모든 통치자들의 졸렬한 독재를 야유한다.

그는 ≪돈 주안≫에서 웃기기도 하고 격분하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며, 낭만적이기도 하고 익살스럽기도 하고, 진지하기도 하고 무모하기도 하며, 이지적이기도 하고 관능적이기도 한 모습을 보여 준다.

그는 웃다가 울기도 하고, 신에게 기도하다가 욕하기도 하고, 한숨지으며 겁을 주기도 하고, 아부를 하기도 하고, 어루만져 주기도 하고, 오른쪽을 찔렀다가 왼쪽을 찌르기도 한다.

말하자면 바이런은 다양한 인간의 형상과 인간사의 각양각태를 보여 줌으로써 인생의 허무감을 토로하는데, 바로 이러한 다양성을 통해 궁극적인 일관성을 추구하면서도 19세기의 좁고 편협한 세계관을 극복하고자 한다.

그는 또한 파우스트적인 시극 <맨프레드(Manfred)>에서도 내면에 깔린 죄책감과 회한을 보여 준다. “인간은 반은 먼지요, 반은 신이며, 가라앉을 수도 없고 비상할 수도 없다”라는 구절이 있다시피, 낭만주의 정신의 좌절을 잘 표현하고 있다.

바이런은 유럽 대륙의 문학과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가 살던 시대에도 영국이나 미국보다는 유럽에서 시인으로 더 높은 명성을 얻었다. 그 자신이 살던 시대에 그는 하나의 전설이었다.

그리고 현대로 오면서 종종 잊히긴 하지만, 그가 죽은 후로도 이어져 나오는 그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수많은 출간물들로 인해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 그의 독특한 생애와 작품 세계가 그를 영원히 살아 있게 만든 것이다.

어떤 면에서 바이런의 명성은 그의 부도덕성으로 인해 부정적인 것이었지만, 그로써 그의 글쓰기는 엄청난 것이 되었다.

그의 부도덕성은 신과 사회를 향해 반기를 들게 했고, 그가 사는 세상에 의문을 던지게 했고, 시대의 도덕성에 대해 강력하게 반항하도록 했다. 그가 그의 시에 진솔성을 담은 것도 바로 이 부도덕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부도덕성에 따라, 그의 시의 특성은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시대에 널리 퍼져 있던 관습과 보수성으로부터 탈피하는 철학을 새로이 이국적으로 세웠기 때문이다.

그 시대의 다른 낭만 시인들과 달리, 그는 모든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했고, 자연 그 자체보다도 인생의 본연과 인간에 대한 것에 더 많이 초점을 맞추는 독특한 글쓰기 스타일을 확립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그는 불멸의 존재가 되었으며, 또한 그는 그의 작품과 생각을 불멸의 존재로 만들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