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전투적인 교회
—12세기
1066년이라는 연대(노르망디의 윌리엄 공이 영국을 정복한 해)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에 그것을 기점으로 미술사를 이야기하는 것이 편리한 방법이 될 것 같다.(…) 영국에 상륙한 노르만 인들은 노르망디 및 그 이외의 지방에서 그들 세대 중에 형태를 갖추었던 발전된 건축 양식을 들여왔다.(…) 이러한 건물들을 세운 양식은 영국에서는 노르만 양식으로, 유럽 대륙에서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이 양식은 노르만 침략 이후 백 년 이상이나 번창하였다. 171
111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 뮈르바크의 베네딕투스 교단 수도원 유적>, 1160년경. 알사스
112 <중세 도시 속의 교회: 투르네 대성당>, 1171-1213년. 벨기에
로마네스크나 노르만 식 교회 건물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대체로 육중한 각주가 받쳐주는 둥근 아치들이다. 이런 교회들이 주는 내부와 외부의 전체적인 인상은 중후한 힘이다. 이런 교회 건물에는 장식도 거의 없고 창문도 몇 개밖에 없었으며 중세의 성채를 연상시키는 견고하고 잇달은 벽과 탑뿐이었다(도판 111). 이교도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얼마 전에 개종한 농민과 전사들의 땅에 세워진 이 강력하고 거의 도전적인 석조 건물들은 바로 ‘전투적인 교회’라는 관념, 즉 이 지상에서 최후의 심판날 승리의 여명이 밝을 때까지 암흑의 세력과 싸우는 것이 교회의 의무라는 관념을 표현하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도판 112). 173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들에 조각 작품들로 장식을 하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에서였다.(…) 교회에 속해 있는 모든 것은 제각기 명확한 기능을 가지고 있었고 또 교회의 가르침과 관계된 명확한 관념을 표현해야만 했다. 175~176
118 라이네르 반 후이, <놋쇠 세례반>, 1107-18년. 87cm, 성 바르톨로메오 교회, 벨기에 리에주
벨기에의 리에주에 있는 한 성당의 세례반(1113년경)은 신학자들이 미술가들에게 지혜를 빌려주는 역할을 보여준 또 다른 예이다(도판 118). 놋쇠로 만든 이 세례반은 중앙 부분에 세례반을 가장 잘 어울리는 주제인 그리스도의 세례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거기에는 모든 인물들의 의미를 설명하는 라틴 어 명문이 함께 새겨져 있다. 178~179
120 <성 겔레온, 빌리마루스, 갈 및 성 우르술라와 일만 일천 명의 처녀들의 순교>, 1137-47년. 필사본 달력에서, 슈투트가르트, 뷔르템베르크 지방 도서관
로마네스크 양식의 전성기 이외에는 유럽 예술이 이런 종류의 동방 미술의 이념에 접근했던 시대는 없었다. 우리는 아를의 성당에서 엄격하고 엄숙한 조각의 배치를 보았는데 이러한 정신은 12세기의 많은 채색 장식 필사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이 시대의 미술가들이 사물을 본대로 그리려는 야심을 버리게 되면서 그들의 눈 앞에 전개된 가능성이 얼마나 큰 것이었나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도판 120은 독일의 한 수도원에서 사용했던 달력의 한 페이지이다.(…) 우리는 억지로 이 그림을 머리에 떠올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이 이야기를 쉽게 읽을 수 있다. 이 화가는 공간과 극적은 행위 등을 생각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인물상과 다른 형상들을 순수하게 장식적인 선 위에 배치할 수 있었다.(…) 보다 단순화된 표현 방법으로의 복귀는 중세의 미술가들에게 보다 복잡한 형식의 구성을 실험하는 새로운 자유를 주었다. 이러한 방법들이 없었더라면 교회의 가르침은 결코 가시적인 형상으로 번안될 수 없었을 것이다. 180~183
121 <수태고지>, 12세기 중반. 샤르트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색채 또한 형태와 마찬가지 방향으로 나아갔다. 미술가들은 자연 속에 나타나는 음영의 농담을 연구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림에 자기가 좋아하는 색채를 자유롭게 선택했다. 금세공 작품들의 빛나는 황금색과 맑은 푸른색, 필사본의 삽화에서 볼 수 있는 강렬한 색깔들, 스테인드글라스 창문(도판 121)의 타오르는 듯한 붉은색과 짙은 초록색들은 이 대가들이 자연으로부터의 독립을 잘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연계를 모방할 필요에서 벗어남으로써 얻은 이 자유는 그들로 하여금 초자연적인 세계의 관념을 전달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