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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H.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8장 혼돈기의 서양 미술 - 6세기부터 11세기까지: 유럽

Jobs9 2024. 1. 22.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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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혼돈기의 서양 미술

—6세기부터 11세기까지: 유럽

 

초기 기독교 시대를 뒤이은 시대, 즉 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의 시대는 일반적으로 암흑 시대라는 명예스럽지 않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이 시기를 암흑 시대라고 부르는 이유는 민족의 대이동과 전쟁봉기로 점철된 이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암흑 상태에 빠져서 그들을 인도할만한 지혜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함이고 또 한편으로는 고대 세계의 몰락 이후 유럽의 제국들이 대략 형태를 갖추고 생겨나기 이전의 혼란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시대에 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바가 거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157

 

전 유럽을 기습해서 약탈을 일삼던 여러 튜턴 족의 부족들인 고트 족반달 족색슨 족데인 족과 바이킹 족들은 문학과 미술 분야에 있어서의 그리스와 로마의 업적을 귀중한 것으로 생각한 사람들에게 야만인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아름다움에 대해서 전혀 느낄 줄 모른다거나 그들 나름의 고유한 미술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들 중에는 정교한 금속 세공을 하는 장인이나 뉴질랜드의 마오리 족의 장인들에게 비길 만큼 탁월한 목공예가들도 있었다. 그들은 용들이 몸을 꼬고 있거나 새들이 신비스럽게 얽혀 있는 것 같은 복잡한 문양을 좋아했다. 157~159

 

 

102 <성 루가>, 750년경. 필사본 복음서의 한 페이지, 성 갈렌 수도원 도서실

 

미술가들이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필사본의 삽화에 그려놓은 인물상을 보면 놀랍다. 이것은 인간의 형상같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인간의 형상으로 만든 이상한 문양같이 보인다(도판 102). 우리는 이 미술가가 옛날 성경에서 찾아낸 어떤 표본을 사용해서 그것을 그의 취향에 맞게끔 변형시켰음을 알 수 있다. 160

 

그렇다고 해서 그 이전의 고전 미술의 업적에 관한 지식이 완전히 잊혀졌던 것은 아니었다. 로마 제국 황제의 계승자임을 자처했던 샤를마뉴 대제의 궁정에는 로마 장인들의 전통이 열광적으로 부활되었다. 샤를마뉴 대제가 800년경에 아헨에 있는 그의 궁정에 세운 대성당은 약 300년 전 라벤나에 세워진 유명한 교회의 충실한 복사판 같은 것이었다. 163

 

 

105 <성 마태오>, 800년경. 필사본 복음서의 한 페이지, 아헨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 빈 미술사 박물관

 

 

106 <성 마태오>, 830년경. 필사본 복음서의 한 페이지, 랭스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 에페르네 시립 도서관

 

도판 105를 그린 화가가 가능한 한 원본을 충실하게 복사하려고 최선을 다한 반면에 도판 106을 그린 화가는 이와는 다르게 해석하려 한 것 같다.(…) 그가 의도했던 초상이나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의 형상 속에 자신의 경외감과 감동 같은 것을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은 미술의 역사상 지극히 중요하고 가장 감격적인 사건이었다.(…) 우리는 이와 같은 그림에서 고대 오리엔트 미술이나 고전 미술이 하지 못했던 것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새로운 중세 양식의 출현을 보게 된다. 이집트 인들은 대체로 그들이 존재한다고 ‘알았던’ 것을 그렸고, 그리스 인들은 그들이 ‘본’ 것을 그린 반면에 중세의 미술가들은 그들이 느낀’ 것을 그림 속에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던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목적을 염두에 두지 않고서는 중세의 미술 작품을 올바로 평가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연을 그럴 듯하게 닮게 그리거나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신앙의 형제들에게 성경의 내용과 가르침을 전달하고자 원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그 이전이나 그 이후의 미술가들보다도 훨씬 더 성공적이었다. 165~166

 

이 시기의 모든 미술이 전적으로 종교적 이념에만 봉사하기 위해서 존재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중세에는 교회만 지어진 것이 아니라 성들도 세워졌으며 그 성의 주인인 봉건 영주들과 귀족들 역시 이따금씩 미술가들을 고용했다.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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