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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Hip Hop, 랩, 디제잉, 그래피티, 브레이크댄싱, 엉덩이를 흔들다, hip hopping

Jobs 9 2025. 4. 1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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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Hip Hop

 

 

기원 장르

디스코, 훵크 등

 

등장 시기

1973년 8월 11일 뉴욕 브롱스

 

악기

보컬, 샘플러, 드럼머신, 스테이지 피아노, 전자오르간(하몬드 오르간, 콤보 오르간), 신디사이저, 턴테이블

 

전성기 1990년대 초반–2020년대 초반

 

 

특징

 

음악 장르로서의 힙합이 두드러지는 힙합 음악의 요소는 랩이다.

랩과 더불어 힙합에서 두드러지는 요소는 디제잉이다. 디제잉은 두 대의 턴테이블을 이용하여 같은 곡들을 반복해서 틀어 loop을 만들거나, 곡을 짜집거나 편집하여 전혀 다른 곡을 만들어낸다. 2대의 턴테이블을 이용하여 속도를 맞추어 두 곡을 한꺼번에 틀거나 한 곡 뒤에 바로 이어 다른 곡을 트는 개념도 힙합에서 제일 처음 정립되었다.3 클럽에 가 보면 알겠지만 파티나 공연장 등지에서 적절히 음악을 선곡해서 틀어주는 사람을 보고 DJ라 부르는데, 힙합 DJ는 단순히 음악을 트는 역할을 넘어, 두 대의 턴테이블에 얹어진 같은 LP판을 반복해서 트는 기술인 저글링이나, 곡 안에 담긴 노래의 드럼 라인만을 소리 조각마다 시간차로 긁으며 연주하는 고도의 기술인 드러밍을 하거나, 또는 턴테이블을 악기로서 다루어 스크래치를 한다. 여기서 기술적으로 심화된 이들과 원래의 DJ 개념인 그 둘을 구분하기 위해 1995년도에 DJ Babu가 '턴테이블리스트'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게 된다.

 

태동 이후 음반을 낼 시기부터 샘플링이 당연시 되어왔던 장르로 과거에는 샘플링이 완전히 새로운 음악 작법이었고, 관련 법규도 미미했지만, 이 샘플링을 통해 백만장자가 된 힙합 뮤지션들이 하나둘씩 등장하면서 저작권에 관련된 문제들이 생겨났고, 그 후부터 샘플링은 항상 힙합 관련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곡마다 일일이 샘플링 원작자에게 허락을 받고 사용비를 지불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에, 돈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언더그라운드 씬에서는 무단 샘플링이 만연해 있다.567 그러나 다른 음악장르나 예술이 어느 정도는 모두 그렇지만, 힙합은 다른 곳에서 무언가를 가지고 와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거나 이미 시간적으로 죽어버린8 것을 다시 가져와서 부활시키는 것에 비교적 훨씬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풍조가 있다. 그래서 래퍼 아이스-티가 남긴 "힙합은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았다. 단지, 모든 것을 재창조했을 뿐."이라는 말은 아직까지도 유명하다.

자기 자랑, 돈, 명예, 파티, 섹스, 욕설 등 원초적이고 자극적인 가사 내용이 특징이며, 이것 역시 단골 까임거리이다. 성차별적인 가사도 아주 많다. 물론 찾아보면 그렇지 않은 가사들도 많다지만(사회비판, 철학, 자전적인 가사 등.), 대중들의 관심을 받는 가사는 극히 한정돼 있기 때문에 더욱 선입견으로 굳어졌다. 그런데 성차별적이고 범죄미화 등의 성향은 80년대 중후반 서부 힙합9의 영향으로 이후 래퍼들의 문체나 어투에도 크게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돈 자랑 같은 경우 짐 크로우 법을 마지막까지도 놓지 않았던, 그리고 아직도 미국 내 제일 유색인종 차별이 심하여 차별받는 흑인으로서 성공했다는 자부심을 상당히 크게 갖는 남부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원인이라는 이야기도 존재한다.

 

다른 장르에 비해 정체성 논란이 심한 편이다. 그냥 장르 이름일 뿐인데 "누구누구는 힙합이 아니다" 같은 논쟁에 명예를 거는 걸 보면, 리스너들에게 힙합은 단순한 장르를 뛰어넘은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패션 모드로 봐도 좋을 정도. 이렇듯 두터우면서 골수 매니아층을 탄탄하게 형성시킨 부분은 락 음악과 메탈 음악(메탈헤드)과 꽤 비슷하다. 그러나 현재는 포스트 말론 등으로 대표되는 락/힙합을 결합한 음악(이모 랩, 뉴메탈 등)이 많이 나오면서 이러한 시선은 많이 나아졌다.

 

모든 대중음악이 그렇듯 힙합의 경우도 지역에 따라 음악적 스타일이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는데, 발상지이자 본토라 할 수 있는 미국의 경우 크게 뉴욕을 중심으로 하는 이스트 코스트 힙합 (East Coast hip hop)과 LA를 중심으로 하는 웨스트 코스트 힙합 (West Coast hip hop)으로 나누어 볼 수 있고, 여기에 흑인 인구가 많은 미 남부 전역에 산재한 여러 지방도시(애틀랜타, 마이애미, 뉴올리언스, 휴스턴, 멤피스...)를 거점으로 한 서던 힙합 (Southern hip hop), 시카고와 디트로이트를 비롯한 중서부 도시를 거점으로 하는 미드웨스트 힙합 (Midwest hip hop)12까지도 구분할 수 있다. 보통은 딱 3대 지역인 동, 서, 남부 힙합으로 나눈다. 현재 2016년에는 남부의 애틀랜타와 캐나다의 실질적인 수도인 토론토가 제일 뜨겁다. 현재의 정서와도 제일 잘 맞는 음악을 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말하면 성공한 아티스트를 최근에 제일 많이 배출했기 때문인 듯하다. 스타일에도 차이가 있는데, 웨스트 코스트는 비트 중심, 이스트 코스트는 가사 중심, 서던 힙합은 클럽 스타일이다. 

 

큰 줄기라 할 수 있는 이스트/웨스트간의 갈등이 절정에 달했던 1996년 이후 지역 간의 구분은 점점 의미를 잃어가고 있으며, 1998년경 이후로 점증한 서던 힙합 등 다양한 영향들이 힙합 전체에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힙합은 1970년대 초반 뉴욕 브롱스 남쪽 빈민가에 거주하는 미국 흑인과 남미 히스패닉계 청소년들에 의해 형성된 새로운 문화운동 전반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에 힙합을 '미국에서 독자적으로 만들어진 유일한 미국 문화'라고 평하기도 한다.



힙합이란 말은 '엉덩이를 흔들다(hip hopping 혹은 hopping hip)'라는 말에서 유래했는데, Keef Cowboy라는 MC가 "Hip-Hop"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친구가 군대에 가게 되었는데 Keef Cowboy가 친구를 놀리면서 '그럼 훈련소에서 행군할 때 "hip-hop"하면서 구령을 외치겠네?'라며 놀렸다. 일종의 군대식 발음과 엉덩이(hip)을 이용한 말장난인 셈. 그걸 본 옆 친구들이 폭소를 터뜨리니까 그걸 무대에서 하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들이 그 소리를 응용하고 샘플링하면서 랩과 브레이킹 문화를 힙합으로 부르게 되었다.

 

힙합 문화을 이루는 요소로는 랩·디제잉·그래피티·브레이크댄싱 등이 있다.

 

 

 

힙합 문화의 역사

 

Drunk History '힙합의 탄생' 에피소드. 힙합 디제잉과 스크래치, 그리고 Rapper's Delight의 탄생 비화를 소개하고 있다.

 

시간상으로 봤을 때 블락파티가 먼저였지만, 현재의 시각으로 접근한다면 힙합 음악은 클럽에서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Hip hop(엉덩이를 흔들다)이라는 명칭이 시사하듯 힙합 음악의 기반은 디스코, 펑크(Funk), (댄서블한) 재즈 음악 등 과거 60, 70년대에 미국 흑인들이 즐겨들었던 음악인데, DJ라는 일종의 선곡자가 노래를 틀고 사람들은 디제이가 틀어주는 펑키(Funky)한 음악에 춤을 추는 것이 그 시작이었다.

 

다만 사람에 따라 The Last Poets 같은 클럽과는 별로 관련 없는 그룹이 힙합의 초시로 평가받기도 한다.

 

1970년대 뉴욕의 브롱스 남부는 빈민가였다. 1973년 8월 11일 브롱스 남부에 거주하던 자메이카계 미국인 DJ Kool Herc는 자신의 집이 위치한 1520 SEDGWICK AVE의 지하에서 여동생의 생일파티 도중 두개의 턴테이블을 커팅 및 스크래치하여 빠르고 신나는 비트 "브레이크"를 처음 고안해 냈다. 펑크 음악에는 곡의 분위기가 고조되는 부분에서 노래를 멈추고 빠른 드럼 비트를 앞세운 연주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Kool Herc는 이 부분만을 따다가 계속해서 재생해 춤 추기 좋게 만든 것이다.

 

Kool Herc에 따르면 브레이킹(breaking)은 거리에서 쓰이는 속어로 '흥분되는', '활기찬'을 뜻한다고 한다. Kool Herc는 빈민가에서 이뤄진 수많은 음악 파티에서 브레이크 비트(Breakbeat)를 선보였으며,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복제하고 따라하면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 DJ들은 음악을 틀다가 클럽의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싶으면 자신의 기교를 선보이면서 브레이크 비트를 만들어내는 식으로 활용했는데, 이런 '브레이크 타임'에 추는 춤을 바로 브레이크 댄스라고 부른다.

 

DJ는 음악을 틈과 동시에 쇼 호스트로서 파티의 분위기를 이끌었는데, 사람들이 춤을 추면 DJ가 간간히 흥을 돋우기 위해 여러 미사여구를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DJ는 음악 선곡에 집중하고 쇼 호스트로서의 역할은 'MC'라 불리는 사람이 맡게 되었는데, MC가 내뱉는 미사여구는 문학적으로 발전되어 Rap이라는 형태로 거듭나게 되었다. 원래의 MC의 뜻은 보통 한국에서 말하는 방송 MC처럼 'Master of Ceremonies'의 약자로, '쇼를 진행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였지만, 전혀 다른 뉘앙스와 역사의 맥락 탓에 현재에 와서 'Microphone Checker'로써 쓰이게 되며 전혀 달라졌다. MC 참조.

 

이렇듯 MC 같이 쇼 호스트와 미사여구를 내뱉어 좌중을 웃게 만들고 파티의 흥을 돋우는 역할과 마찬가지로 브레이크 타임에 무대에 나와서 전문적으로 춤을 추는 사람들이 등장했는데, 이것이 현재 힙합 댄스를 다루는 B-boy와 B-girl, Locker, Popper 등의 기원이다. 이렇듯 힙합의 처음은 매우 자유분방하고 흥겨운 파티 분위기에서 시작되었으며, 때문에 이러한 힙합의 독특한 성향은 매우 포괄적이며 다른 요소들과 쉽게 섞일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랩과 더불어 힙합에서 두드러지는 요소는 디제잉이다. 디제잉은 두 대의 턴테이블을 이용하여 같은 곡들을 반복해서 틀어 loop을 만들거나, 곡을 짜집거나 편집하여 전혀 다른 곡을 만들어낸다. 2대의 턴테이블을 이용하여 속도를 맞추어 두 곡을 한꺼번에 틀거나 한 곡 뒤에 바로 이어 다른 곡을 트는 개념도 힙합에서 제일 처음 정립되었다. 클럽에 가 보면 알겠지만 파티나 공연장 등지에서 적절히 음악을 선곡해서 틀어주는 사람을 보고 DJ라 부르는데, 힙합 DJ는 단순히 음악을 트는 역할을 넘어, 두 대의 턴테이블에 얹어진 같은 LP판을 반복해서 트는 기술인 저글링이나, 곡 안에 담긴 노래의 드럼 라인만을 소리 조각마다 시간차로 긁으며 연주하는 고도의 기술인 드러밍을 하거나, 또는 턴테이블을 악기로서 다루어 스크래치를 한다. 여기서 기술적으로 심화된 이들과 원래의 DJ 개념인 그 둘을 구분하기 위해 1995년도에 DJ Babu가 턴테이블리스트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게 된다.

 

또한 힙합 DJ의 저런 신묘한 기술을 가능케 하는 장비는 보통 두 대의 턴테이블 사이에 놓이게 되는 믹서인데, 믹서에는 Cross Fader라는 부품이 있다. 이 Cross Fader는 디제이가 탄생하기 전에도 존재하였으나, 힙합 문화가 경제적으로 가난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자랐듯, DJ들 역시 가난하였으므로 기존에 존재했던 비싼 장비를 구할 수 없거나 또는 그 존재조차 몰랐다.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Cross Fader을 개량한 사람이 오늘날에도 디제이로서 활동하는 전설적인 DJ인 Grandmaster Flash이다. 이때쯤부터 힙합에서 말하는 DJ는 턴테이블리스트 DJ를 가리키게 되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여기에 더해서 비트박스도 4대 요소로 뽑지는 않아도 힙합의 음악적 하위 카테고리로 구분을 할 수 있다. 

 

 

힙합 음악의 역사

 

미국에서 터전을 잡기 시작한 아프리카계 흑인들의 스토리텔링 혹은 흑인들의 사회비판에서 랩이 유래되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고 블루스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스포큰 워드(spoken word)를 랩의 기반이라고 보는 경우도 있다. 스포큰 워드에서 쓰이던 초보적인 형태의 각운(대부분 시의 형태를 띠고 있었으므로 지금의 랩처럼 엄격한 운율을 가지지는 않았다)과 스토리 텔링이 1950-60년대 나이트클럽에서 DJ들이 음악 중간에 하던 리드미컬한 안내방송과 만나서 탄생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그러나 위의 주장들은 힙합에 영향을 끼친 일부 요소들의 기원 정도로만 볼 수 있으며 본격적으로 힙합 음악이 출현했다고 보는 시점은 대략 1970년대로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다. 기원으로 인정되는 사건은, 앞서 말한 DJ Kool Herc가 1973년 8월 11일 브롱스 남부에서 열린 파티에서 두개의 턴테이블로 "브레이크 비트"를 처음 고안해냈을 때다. 여기서부터 시작하여 브레이크 댄스, 랩, 그래피티 등이 덧붙여져 오늘날의 힙합이 완성되었다.

 

확실한 랩의 초기 형태(초창기 힙합에서의 작법)도 70년대 중-후반에 정립되었다고 보이며, 최초로 레코딩 된 랩 트랙은 1979년 Fatback Band의 King Tim III (Personality Jock).

 

King Tim III (Personality Jock)가 발매되고 몇달 후 Sugar Hill Gang의 1979년 데뷔작 Sugar Hill Gang의 마지막 트랙 Rapper's Delight이 랩 음악으로써 최초로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슈거 힐 갱은 원래 리듬 앤 블루스를 부르는 그룹이었고, 데뷔앨범의 판매량을 위해서 당시 유행하던 스타일의 음악을 살짝 가미하는 정도로 생각하고 이 트랙을 넣은 모양이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가장 큰 명성을 가져다 주고 새로운 음악의 패러다임을 연 트랙이 되었다.

 

1981년엔 미국의 그룹 블론디의 곡인 Rapture가 가사에 랩을 도입한 곡으로선 최초로 빌보드 핫 100 1위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한 동안 강하고 빠른 느낌의 비트에 흥 돋구는 추임새나 가사를 빠르게 내뱉는 랩이 음악계에서 통용되다가 1980년대 중반, 라킴의 등장 이후로 더 변칙적이고 난이도가 높아진 라임 활용을 통해 완전히 현대식 랩의 체계가 잡히게 된다. 이때부터 일반적인 노래의 가사와 차별성을 띄는, 랩만의 운율 형성을 위해서 어미 부분의 단어 교체뿐만 아니라 알파벳 그 자체의 사운드를 활용하거나 단어 대신 짧은 문장을 배치한다던가 문장의 시작과 중간 부분에도 여러 음절의 라임을 배치하여 더 입체감을 만드는 등, 지금 우리가 익숙하게 듣는 랩이 완성된다.

 

또한 같은 시기 샘플링에서도 라디오 DJ였던 프로듀서 말리 말에 의해 큰 혁신이 일어나게 된다. 이전 올드 스쿨 비트들은 단순하게 녹음된 드럼 사운드나 하나의 디스코 곡의 한 부분만을 반복해서 틀 뿐이었지만, 말리 말은 드럼 머신과 샘플러를 이용해 킥, 스네어, 하이햇을 자기 마음대로 잘라 붙여 빠르지 않아도 지루하지 않고 흥겨운 브레이크를 만들어냈다. 덕분에 이전의 락, 디스코를 사용한 빡센 비트와는 반대로 여러 장르를 샘플링한 유려하면서도 풍부한 사운드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고, 이는 디스코, 훵크에 밀려 잘 쓰이지 않던 재즈가 힙합 샘플의 주 공급원으로 급부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이 사운드는 라킴이 보여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플로우 그리고 많은 의미를 넣은 가사와 잘 맞아떨어졌고8, 이 둘이 선보인 새로운 힙합은 흑인들의 문화적 결속을 아프리카에서 찾던 그 당시 힙합 뮤지션들에게 영감을 줬다. 그 결과 네이티브 텅스9 같은 젊은 뮤지션들이 팝송, 재즈를 베이스로 한 원초적이고 신나는 비트 위에 거친 모습이 아닌 모습으로 세상에 전할 메시지가 담긴 랩을 하는 얼터너티브 힙합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SP-1200, MPC같은 샘플러의 등장으로 밴드 세션을 분리한 뒤 속도를 늦추거나 빠르게 하는 등 샘플을 맘대로 주무를 수 있으면서 보다 간단하고 빠르게 비트를 만들어내게 되자 DJ 프리미어, 피트 록같이 직접 만든 드럼 패턴과 여러 레코드들을 조합해 새로운 비트를 창조하는 '비트 메이커'가 생겨났다.

 

1990년~2000년까지를 미국 힙합의 황금기인 골든 에라(Golden era)라고 칭한다. 각 지역별 색채가 생겨나기 시작하고 다른 장르와 매쉬업을 하는 등 그 어느 때보다 힙합이라는 음악 장르가 발전을 꾀하던 때라서 그에 따라 각 뮤지션들의 음반 퀄리티 또한 비약적으로 상승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때는 아무 앨범이나 집어서 사도 실패가 없던 때라고 한다. 하지만 이 전성기는 투팍 샤커와 노토리어스 B.I.G.이 드라이브 바이 슈팅으로 암살 당한뒤 끝나게 된다.10

 

2000년대에 들어 칸예 웨스트를 위시로 한 다른 장르와의 결합으로 골든 에라와는 다른 의미의 대중적인 전성기를 맞이 하고, 2010년대 후반에는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XXXTENTACION, Juice WRLD 등이 선두를 이끈 멈블 랩, 이모 힙합이 대중적으로 크게 유행하며 싸클 에라를 맞았지만, 2020년대 이후로는 써먹을걸 다 써먹었다는 평을 받으며 다소 기세가 꺾였다는 평을 받고 있기도 하다.11 다만 본고장인 미국에서는 여전히 매우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장르. 미국이 홈그라운드인 장르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록 음악이 쇠퇴해버린 현재 10대와 20대가 빠져들만한 장르 중 복고 장르인 신스웨이브나 R&B, 또는 시대와 무관한 팝 음악을 뺐을 때 트랜드를 따르며 젊은 세대에 어필 할 만한 장르가 힙합 이외에는 딱히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2020년대에 들어 K-POP이 글로벌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이런 틈새 시장을 잘 비집고 들어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2024년에 들어서는 켄드릭 라마와 드레이크의 디스전으로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자 스포티파이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힙합은 넘버원이다'라는 전광판 광고를 띄우기도. 2024년 스포티파이 글로벌 차트 기준 무려 3명의 아티스트들이12 스트리밍 순위에서 10위권 이내에 진입하고, 이후 2025년 켄드릭 라마가 1억 스포티파이 월별 리스너를 달성하며 세계적으로도 힙합이 아직 건재함을 증명했다.

 

 

랩의 역사

 

미국에서 터전을 잡기 시작한 아프리카계 흑인들의 스토리텔링 혹은 흑인들의 사회비판에서 힙합이 유래되었다고 보는 시각도 간혹 있으나, 가장 보편적인 유래는 1970년대 미국에서 펑크(Funk)와 디스코계열의 음악이 클럽에서 유행했을 때 가끔 간주 부분(브레이크 타임13)을 반복해서 들려주기도 하였는데, 이때 전문 춤꾼들이 스테이지 위에서 브레이크 댄스를 추고 흥을 돋우기 위해 별 의미없는 미사여구나 하고 싶은 말들을 소리친 게 랩의 시초라는 것.

 

블루스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스포큰 워드(spoken word)를 랩의 기반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스포큰 워드에서 쓰이던 초보적인 형태의 각운(대부분 시의 형태를 띠고 있었으므로 지금의 랩처럼 엄격한 운율을 가지지는 않았다)과 스토리텔링이 1950-60년대 나이트클럽에서 DJ들이 음악 중간에 하던 리드미컬한 안내방송과 만나서 탄생한 것이 힙합 음악이라는 것이다. 1930~50년대에 활동했던 가스펠 그룹 'The Jubalaires'가 1946년에 발표한 노래 'Noah'에서 현대 랩과 유사한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확실한 랩의 초기 형태(초창기 힙합에서의 작법)는 70년대 중-후반에 정립되었다고 보인다. 그 이후로 한동안 미사여구식 초기 랩이 음악계에서 통용되었다.

 

1981년엔 미국의 그룹 블론디의 곡인 Rapture가 가사에 랩을 도입한 곡으로선 최초로 빌보드 핫 100 1위를 거머쥐었다.

 

1980년대 중반, 라킴의 등장 이후로 더 변칙적이고 난이도가 높아진 라임 활용을 통해 완전히 현대식 랩의 체계가 잡히게 된다. 이때부터 일반적인 노래의 가사와 차별성을 띄는, 랩만의 운율 형성을 위해서 어미 부분의 단어 교체뿐만 아니라 알파벳 그 자체의 사운드를 활용하거나 단어 대신 짧은 문장을 배치한다던가 문장의 시작과 중간 부분에도 여러 음절의 라임을 배치하여 더 입체감을 만드는 등, 지금 우리가 익숙하게 듣는 랩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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