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흥선대원군 개혁정치
개혁의 방향 | 개혁의 내용 | |
왕 권 강 화 책 |
인재의 등용(세도정치 타파) | ∙외척인 안동김씨 세력(1864. 4. 영의정 김좌근 사직)을 누르고 귀천․지방․당색에 관계없이 四色을 고르게 등용하였다. 즉 초당적 인재등용과 붕당정치의 폐단을 제거하고 대원군의 정치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
통치기구의 정비 | ∙비변사를 혁파(1865)하고 의정부와 삼군부(新營․南營․馬兵所)를 부활시켜 정치와 군사를 분리시켰다. | |
법치질서의 정비 | ∙고종 때 조두순이「대전통편」과 그 후의 교령을 보완․종합하여「대전회통」과「육전조례」도 편찬하였다. | |
서원의 정리 | ∙당쟁의 온상이며, 국가재정을 좀먹던 가장 폐가 많던 화양동 서원을 비롯하여 전국의 600여개소의 서원을 정리하고 도학과 정의에 뛰어난 인물을 봉사하는 47개소만 남겼다. ∙그 결과로서 서원의 토지․노비를 몰수하여 국가 재정이 확충되고 지방 양반의 위세가 크게 위축되었으나 대원군 몰락 촉진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
|
경복궁 중건 | ∙왕권을 회복하고 국가 위신을 높이기 위해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경복궁을 중건하였다(1865~1868). ∙고종 2년(1865), 영건도감(營建都監)을 설치하고 중건에 착수하면서 각종 악화를 발행하였으며, 경기도 인민을 징발하였으며, 공사용 목재 충당을 위해 양반의 묘지림을 징발하여 양반․백성의 원성을 샀다. |
왕권강화책 - 경복궁 중건
당백전(堂白錢) 고종 3년(1866), 경복궁 중건을 위해 발행한 동전으로 법정가치는 상평통보의 5, 6분의 1에 불과했으며, 그 주전비가 단위 화폐당 20분의 1 정도인지라 통용 1년만에 그 실질가치가 상평통보의 100분의 1로 되어 인플레이션을 초래하였다.⇨결국 1868년 당백전 사용을 금지하고 淸錢을 수입해 사용. |
|||
원납전(願納錢) 1865년, 대원군은 경복궁 중수의 경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각계 각층을 통하여 돈을 자진 납부하게 했는데, 이른바 관민에게 거두는 강제기부금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
|||
결두전(結斗錢) 경복궁 중건을 위한 재원염출을 위해 논 1결마다 100문씩 임시세를 징수하였다. |
|||
성문세(城門稅) 서울 4대문을 출입하는 사람들과 물품에 부과하는 통행세 |
민생안정
전정(田政) ∙양전사업 실시 : 토지대장에서 누락된 전토를 찾아내는(은결 적발) 등 경기도 내에서만 부분적으로 실시되었다. |
||||
군정(軍政) ∙평민에게만 받던 군포를 양반에게도 징수하는 戶布法을 실시하였다(12月마다 1필). |
||||
환곡(還穀) ∙고종 4년(1867), 국가 재정수입 확대와 민심안정을 위해 社倉制를 실시 |
쇄국정책
병인박해 ➡ 제너럴셔먼호 사건 ➡ 병인양요 ➡ 오폐르트 도굴사건 ➡ 신미양요 |
잡스9급 PDF 교재
✽ 책 구매 없이 PDF 제공 가능
✽ adipoman@gmail.com 문의
✽ 유튜브 강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