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한국사/한국사 사료

후고구려 궁예

Jobs9 2021. 12. 20.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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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고구려 궁예

궁예(弓裔)는 신라 사람이다. 성은 김씨이고, 아버지는 제47대 헌안왕(憲安王, ?~861) 의정(誼靖)이며, 어머니는 헌안왕의 후궁이었는데, 그 성과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또는 48대 경문왕(景文王, ?~875) 응렴(膺廉)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5월 5일에 외가에서 태어났는데, 그때 지붕 위에 흰 빛이 있어 긴 무지개처럼 위로 하늘에까지 뻗쳤다. 일관(日官)이 아뢰기를, “이 아이는 중오일(重午日)에 태어났고 나면서 이가 나 있고, 또한 햇빛이 이상하니 장차 국가에 이롭지 못할 것이옵니다. 마땅히 아이를 키우지 마옵소서”라고 하였다. 

왕이 궁중의 사람을 시켜 그 집에 가서 죽이게 하였다. 그 사람이 포대기에서 그 애를 꺼내 처마 아래로 던졌는데, 유모인 여자 종이 몰래 받다가 실수하여 손가락으로 눈을 찔러 한쪽 눈이 멀었다. 이를 안고 도망을 가서 힘들고 고생스럽게 길렀다. 나이 10여 세가 되자 놀기만 하였으므로 그 유모가 말하기를, “네가 태어나 나라에서 버림을 받았는데, 내가 차마 하지 못하여 몰래 길러 오늘에 이르렀다. 너의 경망함이 이와 같으니 반드시 남에게 알려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와 나는 함께 죽음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니 어찌하면 좋겠느냐?”라고 하였다. 궁예가 울면서 말하기를 “만약 그렇다면 제가 떠나 어머니에게 걱정을 끼쳐 드리지 않겠습니다”라고 하고, 문득 세달사(世達寺)로 갔는데 지금의 흥교사(興敎寺)이다.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스스로 선종(善宗)이라고 이름 하였다. ……(중략)…… 

신라가 쇠약해진 말기에 정치가 잘못되고 백성이 흩어져 왕기(王畿) 밖의 주현(州縣) 가운데 반란 세력에 따라 붙는 자가 거의 반에 이르고, 먼 곳과 가까운 곳에서 도적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그 아래 백성이 개미처럼 모여들었다. 선종은 이런 혼란기를 타서 무리를 모으면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여 진성왕 즉위 5년, 즉 대순(大順) 2년(891) 신해(辛亥)에 죽주(竹州)의 도적 괴수 기훤(箕萱)에게 의탁하였다. ……(중략)…… 

경복(景福) 원년(892) 임자(壬子)에 북원(北原)의 도적 양길(梁吉)에게 의탁하니, 양길이 잘 대우하며 일을 맡기고 드디어 군사를 나누어 주어 동쪽으로 땅을 점령하도록 하였다. ……(중략)…… 

선종이 자기의 무리가 많아졌으므로 나라를 세워 임금을 칭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비로소 내외의 관직을 마련하였다. ……(중략)…… 천복(天復) 원년(901) 신유(辛酉)에 선종은 스스로 왕이라 칭하고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지난날 신라가 당나라에 군사를 청하여 고구려를 멸하였으므로 평양(平壤)의 옛 도읍이 잡초로 무성하니 내가 반드시 그 원수를 갚겠다.”라고 하였다. 출생 시에 버림을 받은 것을 원망하여 이런 말을 한 듯하다. 

『삼국사기』권50, 「열전10」 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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