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Hormuz Strait
호르무즈 해협은 북서쪽의 페르시아 만과 남동쪽 아라비아 반도의 오만 만 사이에 있는 좁은 해협이다. 해협의 북쪽에는 이란이 있고 남쪽에는 오만과 아랍 에미리트가 있다. 가장 좁은 곳의 폭은 54km다. 해협의 이름은 이란 쪽에 떠 있는 건조한 황무지섬인 호르무즈 섬에서 유래했다.
역사
호르무즈 혹은 오르무스는 중세 페르시아어로 조로아스터교의 선한 신 아후라마즈다를 일컫는 말이었다. 동시에 페르시아어로 '대추의 땅'이란 뜻이라는 설, 그리스어로 '만'이란 뜻이라는 설이 있다. 11세기 말엽 호르무즈 섬에 무함마드 디람쿠가 케르만 셀주크 및 살구르 왕조 (파르스 왕국)의 속국으로써 호르무즈 왕국을 세웠고, 13-14세기에는 일 칸국에 복속한 채로 페르시아만과 아라비아해를 잇는 교역 거점으로 번영했다. 15세기 들어 호르무즈 왕국은 사실상 독립하게 되었고, 정화의 대항해 당시 명나라 함대가 방문했다. 명나라 측 성사승람에 따르면 호르무즈 주민들은 매우 부유하고 평화로웠다 한다.
그러다 1507년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가 이끄는 포르투갈 함대가 호르무즈 섬을 일시 점령했고, 1515년에는 성채를 건설한 후 호르무즈 왕국을 완전히 복속시켰다. 이로써 16-17세기 포르투갈 제국이 해협의 통제권을 장악했다. 다만 1622년에 사파비 왕조의 샤한샤 아바스 1세가 영국 동인도 회사의 도움으로 3개월간 포위한 끝에 호르무즈를 함락, 포르투갈 군을 몰아내고 섬을 차지했다. 1세기 가량 명목상 유지되던 호르무즈 왕국 역시 이때 멸망했다. 한편 호르무즈 해협 남쪽에서는 역시 비슷한 시기 포르투갈 세력을 몰아낸 오만 제국이 새로운 해상 세력으로 대두했고, 해군에 큰 관심이 없던 사파비 왕조를 대신하여 페르시아만과 인도양 무역을 주도했다.
이란-이라크 전쟁, 정확하게는 1981년부터 1988년까지 이 지역에서는 일명 "유조선 전쟁"이라고 불리는 무차별 유조선 공격이 벌어졌다. 지금은 틈만 나면 이란이 봉쇄 위협을 꺼내들기에 잘 부각되지 않지만, 이 당시 유조선 전쟁을 시작한 것은 이라크였다. 이라크와 사담 후세인은 이란 유조선과 정박지를 공격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다면, 미국 및 서방 국가들이 이에 맞서 이라크를 지원할 것이라고 믿었다. 이 계산은 실제로 맞아떨어져서, 이란은 고속정 전력을 밑바탕으로 이라크에서 출항하는 유조선을 공격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러한 사태에 이골이 난 미국은 1987년 유엔 안보리 결의안 598호의 만장일치로 통과되자마자 쿠웨이트 유조선을 보호한다면 명분으로 이란의 공격으로부터 유조선을 보호하는 Earnest will 작전을 게시했다.
Earnest will 작전이 시작되자 미 해군 군함들이 유조선 보호를 위해 해협에 투입되었고, 1988년부터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미 해군과 이란 해군 간의 해상 교전이 벌어졌다. 그 와중에 미 해군 순양함 CG-49 빈센스가 테헤란에서 이륙한 이란항공 655편을 함대공 미사일로 격추시켜 승무원 포함 290명 전원이 몰살당하는 이란항공 655편 격추 사건이라는 참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여하튼 유조선 전쟁은 1988년 이란 이라크 전쟁이 종전하면서 자연스럽게 끝이 났다.
2010년대 후반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후 이란과의 대립이 격화되는 가운데, 해협 인근을 통과하던 유조선들이 피격당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향해와 관련해서 미국 주도의 동맹군을 결성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역시 청해부대를 보내 참여할 계획으로 보인다. 호주, 사우디,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이스라엘, 영국이 참여하기로 결정한 상태이다.
2019년 7월 10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항행하던 영국 유조선들을 향해 이란 혁명 수비대 소속으로 추정되는 고속정 다수가 접근하자 인근에서 대기하던 영국 해군 소속 23형 호위함 HMS 몬트로스(Montros)함이 적극적으로 고속정 진로를 차단하는 나포 미수 사건이 발생했다.
2021년 1월 4일, 한국 국적의 선박 MT 한국케미호가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 혁명 수비대에게 나포당하여 이란의 반다르아바스 항에 억류된 MT한국케미호 나포 사건이 발생했다.
이처럼 계속되는 이란의 위협 속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아예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지 않고 아덴만로 통하는 페르시아만-아덴만 연결 운하를 만들려는 움직임도 있다. 호르무즈 곶을 관통하는 호르무즈 운하 구상도 존재한다.
지정학적 요충지
동아시아의 수요
페르시아만의 여러 산유국 입장에서는 이곳이 대양으로 통하는 유일한 해로이기 때문에 지리학적 요충지로 뽑힌다. 2018년 기준 하루 평균 21척의 유조선이 해협을 통행하면서 약 1,700만 배럴의 원유를 수송한다. 이는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35%, 전세계 원유 수송량의 20%에 육박하는 규모다. 다시 말해서 이곳이 막힌다면 전세계 원유 및 천연가스 공급에 차질이 빚어진다는 것이다.
OPEC에서 가장 입김이 강한 사우디아라비아 생산량이 40%에 육박하며, 이라크 18%, 쿠웨이트, UAE, 이란 각각 12%, 카타르 6% 순서로 뒤를 따른다. 이들 국가들이 생산한 원유의 85%는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 아시아 국가들로 수출되며, 특히 전체 원유 생산량의 50% 가까이는 동아시아의 중국, 대한민국, 일본 3국으로 향한다. 이들 3국은 원유 등의 원자재를 수입한 뒤 정유, 화학 등의 각종 파생 산업으로 상당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제조업 강국인데다, 자국 내 수요 대비 원유 공급이 매우 부족한 편이기 때문에 막대한 양의 원유를 수입하는 큰 손이다. 원유 수입의 80% 가까이를 의존한다.
이란의 영향력과 봉쇄 가능성
좁은 해협이라 선박 간의 충돌을 막기 위한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다. 해협을 통과하는 배들은 TSS라는 시스템에 따라 운항하는데, 이는 충돌을 막기 위해 들어오는 배와 나가는 배들을 분리하는 역할을 한다. 해로는 총 10km 폭인데, 들어오는 쪽 3km, 나가는 쪽 3km, 중앙분리대 역할을 하는 중앙의 여유지대 3km로 이루어져 있다.
가뜩이나 좁은 해협인데다가 수심도 얕아서[ 대형 유조선이 항해할 수 있는 구역이 한정되어 있다. 문제는 이 수로가 해협의 이란 영해를 지나간다는 것. 해협의 북쪽 절반은 이란, 남쪽은 오만과 아랍 에미리트의 영해로 되어있는데, 대형 유조선의 항해는 이란쪽 영해의 수로를 이용한다.
영해는 영공과는 달리 선박이 얌전히만 다니면 주권국의 허락을 일일이 받지 않고도 다닐 수 있다. 이를 무해 통항(無害通航, Innocent Passage)이라 하며 UN 협약에도 규정되어 있다. 그래서 보통은 배들이 제맘대로 남의 나라 영해를 들락날락할 수 있지만, 문제는 이것은 말그대로 '협약'이라 가입한 나라는 구속을 받는 반면 가입 안 한 나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 대표적인 미가입국은 미국. 따라서 미국 영해를 항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전 허가가 있어야 하고, 이에 따라 영해를 관할하는 연안경비조직의 힘도 막강하다. 우리나라로 치면 해양경찰인 미국 해안경비대가 타국의 해군력에 맞먹는 전력을 갖고 있는 게 다 까닭이 있다.
이란은 상기의 유엔협약에 가입하고 있다. 다만, 이 협약은 말그대로 '무해', 즉 최소한의 수준으로 비적대적일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미국 등 서방국들이 이란에 대한 제재니 경제봉쇄 등의 수위를 높여가자, 이란도 '그러면 우리도 너네 배가 지나가는 걸 용인할 수 없다'고 맞받아치게 된 것. 따라서 만약 이란이 영해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게 되면 사실상 해협은 봉쇄되게 된다.
또한 이 지역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도가 매우 높으며 여길 봉쇄하는 것은 이란 입장에서도 사용 가능한 하나의 유용한 외교적 카드이기 때문에 아직도 심심하면 해협 봉쇄설이 나온다. 만약 해협이 봉쇄된다면, 작은 선박이야 남쪽의 오만 및 아랍 에미리트 영해로 돌아갈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유조선은 이란 측 수로가 아니면 해협을 통과하지 못한다. 종종 지역정세가 긴장될 때마다 나오는 이란에 의한 해협봉쇄 위험은 사실은 이란 측 영해를 타국 선박이 지나가지 못하게 막을 수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해협 전체를 막는다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란의 자국 영해에 대한 주권 행사라서, 국제법으로도 합법적이고 정당한 권리행사다. 봉쇄로 인한 피해가 너무 크다며 외교적으로 항의할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위법하다고 다른 나라들이 막거나 따지기는 곤란하다. 엄밀히 따지면 지금까지 수십년간 이란의 호의로 인해 다른 나라 배들이 자유롭게 지나다니고 있는 것일 뿐이다.
물론 이란 입장에서도 여길 봉쇄한다는 것은 외교적 리스크가 너무 크기에 정말 최후의 수단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일단 여길 봉쇄한다는 것 자체가 미국과 전면전을 하겠다는 이야기와 다름이 없으며, 호르무즈 해협에 영향을 받는 국가는 비단 이란의 적인 미국과 서방 국가 뿐만이 아닌, 이란의 최대 교역 상대이자 반미의 선봉장인 중국도 포함되어 있음을 간과하면 안 된다. 중국과의 합의 없이 이곳을 봉쇄하는 것은 이란과 중국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일종의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는 것. 또한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쿠웨이트, 바레인, UAE등의 중동 주요 석유 수출국과의 마찰도 우려되는 점이다. 다만, 그런 거 상관없이 외부적 개입으로 현 정권의 생존이 위태로워지거나 이라크 전쟁처럼 이란 본토에서 전면전이 발발한다면 이란도 그냥 봉쇄해버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편 실제로 봉쇄를 한다면, 그 주체는 이란 해군, 이란 공군 및 이슬람 혁명 수비대가 주축이 될 것이다. 이슬람 혁명 수비대 항공우주군과 공군은 순항 미사일과 갖가지 드론 전력을 이용해 유조선을 공격할 것이고, 이란 해군과 혁수대 해군은 다수의 고속정들과 러시아로부터 수입한 3척의 킬로급 잠수함을 주축으로 봉쇄를 시도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비무장 상선인 유조선 특성상 유조선 나포 및 공격은 고속정들이, 군함 공격은 잠수함들이 담당할 가능성이 높다.
봉쇄의 형태도 자국 영해이니 만큼 전면적인 봉쇄가 아니라 형식상으론 일상적인 주권행사만으로도 봉쇄에 가까운 효과를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군사훈련을 빌미로 민간선박의 운행을 일시 금지한다거나, 적대국 선박이나 의심스러운 선박에 대한 해상검문 같은 형태로도 단번에 원유수송을 대폭 감소시키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러시아워에 음주단속하면 도로가 사실상 차단되는 것과 마찬가지. 워낙 붐비는 해협이라 하루에 선박 몇척만 검문으로 정선시켜도 사실상 봉쇄나 마찬가지 상황이 된다고. 실제 영상으로 보면 수십만 톤급 유조선들이 거의 꼬리를 물다시피 줄줄이 지나가는 걸 볼 수 있다.
2025년 6월 22일, 이란 의회가 봉쇄를 의결하였다. 하지만 봉쇄의 최종 결정권은 최고국가안보회의(SNSC)에 있기 때문에, 아직까진 봉쇄가 실제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조임목
초크포인트(choke point) 또는 조임목은 지정학에서 특히 전시(戰時)에 인적, 물적 자원의 수송에 있어 전략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요충지를 말한다. 대표적으로 해협이나 지협, 회랑 등 자연적인 협곡 지형이나 멀리 떨어진 수역 간의 교통을 연결하는 자연수도와 인공수도(운하)가 이에 속한다.
이러한 지형은 교통과 물류의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전시에도 군대를 이동시키거나 원거리 무기를 배치하여 적을 견제하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한다. 전쟁에서 이러한 조임목을 점유하는 쪽은 비교적 적은 병력만으로도 인근의 인적, 물적 자원 이동에 간섭하거나 개입, 제압할 수 있어 전략적 승기를 잡을 확률이 높아진다. 따라서 유사시 조임목을 점령하거나 방어하고 이를 유용하게 쓰는 것은 중요하며, 국제정치학과 지리학, 군사학의 여러 분야에서 심도 있게 연구되고 있다.
현재까지도 중요한 조임목
지브롤터 해협 - 스페인에 있는 지브롤터를 영국이 먹고 있고, 반대로 모로코 땅에 있는 세우타는 스페인령이다. 이들이 절대로 포기하지 못하는 본토 외 영토.
영국 해협 및 도버 해협 -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최단 루트이자, 대서양과 북해를 잇는 루트. 네덜란드나 발트 해에서 나오려면 거의 무조건 영국 해협을 지날 것이 강제되는데, 그레이트브리튼 섬 북쪽으로 가는 루트는 바닷길이 너무 험하기 때문이다.
수에즈 운하 - 프랑스에 이어서 영국이 운영했으나, 이집트에서 반영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였다. 두고볼 수 없었던 영국과 프랑스는 이스라엘과 함께 병력을 보내 침공했지만, 소련의 협박과 미국의 압력으로 결국 수에즈 운하의 운영권을 이집트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바브엘만데브 해협 - 주변국 상황이 막장이 되어 해적이 들끓자 전 세계의 해군이 몰려와서 해적들을 소탕했다.
파나마 운하 - 1977년에 파나마에 넘겨주기 전까지는 미국이 운영권을 쥐고 있었고, 마누엘 노리에가가 파나마를 경유해 미국으로 마약을 밀수하는 것을 허락하는 등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자 격노한 미국이 군대를 파병해 철저하게 밟아버렸다.
덴마크 그 자체 - 덴마크의 국토 자체가 발트해를 틀어막는 핵심 요충지이다.
보스포루스 해협 - 튀르키예의 생명줄이나 다름없으며, 튀르키예가 흑해 연안 국가들에게 갑질을 할 수 있는 목숨줄이다. 이 때문에 미국도 러시아 견제를 위해 튀르키예를 포기하지 못하며, 러시아도 튀르키예를 함부로 하지 못 한다. 마찬가지로 다르다넬스 해협도 요충지다.
호르무즈 해협 - 세계 해상 석유 수송량의 35%가 지나가는데, 서방 국가들이 경제제재를 하는 데 맞서서 이란에서도 여기서 주권행사라는 명목으로 통행을 규제해 버리면 전 세계 석유값이 들썩인다.
말라카 해협 - 교역으로 먹고사는 싱가포르의 목숨줄이기 때문에, 싱가포르는 작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해군을 보유하고 있다.
베링 해협 - 특히 두 강대국인 러시아와 미국이 마주보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커지며, 나중에 북극항로가 열리게 된다면 가장 중요한 해협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
GIUK 갭 - 영국,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를 잇는 해로로, 2차대전부터 지금까지 미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중요한 항로이다.
과거의 조임목
희망봉 - 수에즈 운하가 개발되기 전에는 유럽에서 인도양으로 가려면 무조건 여기를 들러야만 했다. 지금도 아메리카 대륙에서 인도양 최단 루트는 희망봉을 통하는 것이라 중요하다.
아프가니스탄 - 실크로드의 경로였던 탓에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고, 중동, 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제국들이 강성해지면 다들 한번씩 건드려보는 지역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의 게릴라전 능력은 이렇게 수천년간 단련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