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

현대 소설 작가와 작품 해설 #13 - 공무원 국어 - 문학 - 소설

Jobs9 2020. 3. 14. 05:21
반응형

홍명희(1888~?)

 

소설가. 충북 괴산 출생. 호는 가인(假人, 可人), 백옥석(白玉石), 벽초(碧初). 이광수와 함께 일본 동경 타이세이(大成) 중학에서 수학. 1910년 귀국 후 오산 고보 교장, 연희 전문 교수, 중앙 불교 전문 교수 등을 역임. <조선일보>에 “임꺽정”을 연재(1928. 12. 21~1939. 3. 11)하며 등단. 신문의 폐간으로 <조광>지에 잠시 연재되었으나 끝내 미완(未完)으로 남김. 이광수, 최남선과 함께 조선의 3대 천재라고 일컬어지기도 함. 광복 전에는 <동아일보> 편집국장과 <시대일보> 사장, 신간회의 부회장을 역임. 광복 후 조선문학가 동맹 중앙 집행위원장을 지내다 월북하였는데 작품 활동하다가 병사한 것으로 전해짐. 대표작으로 “임꺽정”과 “학창산화” 등이 있다.

 

▶ 임꺽정

 

1. 줄거리

임꺽정은 경기도 양주골에서 백정인 임돌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놈’인데, 부모를 걱정시킨다고 ‘걱정’이라고 하던 것이 ‘꺽정’으로 되었다. 꺽정은 열 살 때 갖바치의 아들과 결혼한 누이를 따라 서울로 와서 갖바치와 같이 살면서 그에게 글을 배운다. 양주팔은 본래 학식이 높은 데다 묘향산에 가서 도인 이천년에게 천문 지리와 음양 술수를 배우고 와서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학문에 두루 통달하여 당대의 명망 높은 조광조 등과 교유한다. 꺽정은 글공부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검술을 익힌다. 이 때 박유복과 이봉학은 임꺽정과 의형제가 된다. 갖바치는 기묘사화를 보고 나서 혼란스런 정국을 예견하고 임꺽정을 데리고 전국을 유랑한다. 꺽정은 곳곳에서 백성들의 고난에 찬 삶의 모습들을 접하게 되며 백두산에 가서 황천왕동이 남매를 만나고 황천동이의 누이 운총과 결혼하여 양주로 돌아와 아들 백손을 낳고 평범하게 산다. 그러나 임꺽정은 35살이 되자 여러 도적과 합세하여 봉산 황주 도적이 되며, 38살 때, 여섯 명의 산적 두령과 함께 의형제 결의를 맺는다. 그들은 황해도 산적들의 소굴인 청석골을 차지해서 도적질을 하면서 평산에서 관군과 접전해서 승리한다. 그러는 가운데 한양 나들이를 갔다가 여러 첩을 맞이하여 방탕하게 지낸다. 그러다 다시 청석골로 돌아왔는데, 부하와 부인이 관군에게 잡히는 위기를 당한다. 전옥을 파괴하고 부하와 부인을 구출한 임꺽정은 위험을 느끼고 소굴을 여러 군데로 분산시킨다. 그 해 관군과의 접전을 벌인 평산 싸움에서 관군이 패하고 임꺽정이 승리한다. 이것이 이 작품의 마지막 대단원으로, 임꺽정이 잡혀 처형되는 생애의 마지막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장편 소설, 대하 소설, 역사 소설

◎ 배경 : 시간(조선 명종 때) / 공간(황해도 청석골)

◎ 성격 : 저항적, 민중적, 토속적

◎ 시점 : 작가 관찰자 시점

◎ 표현 : 이야기를 구연하는 형식으로 사건을 진술함.

◎ 구성 : 봉단편․피장편․양반편․의형제편․화적편 등 5편으로 구성

발단 - 임꺽정의 출생과 성장 과정

전개 - 전국을 유랑하던 임꺽정은 백성들이 도탄에 빠진 것을 보고 도적이 됨.

위기 - 서림이 관군에게 잡히는 바람에 꺽정의 무리가 위기를 맞음.

절정 - 꺽정은 소굴을 분산하고 관군과 싸워 승리함.

결말 - 미완

◎ 제재 : 임꺽정의 난

◎ 주제 : 모순된 사회에 대한 비판과 저항

◎ 의의 : 발표 당시 역사 소설들은 대부분 특수 귀족이나 장군 등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그런데 이 작품은 주인공의 신분이 백정이고, 소외된 하층민의 저항과 사회적 모순을 타파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데 의의가 있어, 지배층 내부의 왕조사 중심의 역사 소설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지은이의 민중 의식이 드러나 있는 이 작품의 리얼리즘 정신은 이후 1970년대에 들어서 황석영의 “장길산(張吉山)”이나 김주영의 “객주(客主)” 등의 장편 역사 소설로 계승되었다.

◎ 출전 : <조선일보>, <조광>(1940)

3. 등장 인물

◎ 임꺽정 : 양주 백정의 아들로서, 신분 제도의 타파와 신분 상승의 추구라는 모순된 양면성을 지닌, 초인적인 힘과 의지를 가진 산적 두목

◎ 이봉학 : 종실의 서자로 옥당 하인이 된 이학년의 아들

◎ 박유복 : 농부의 유복자로 편모슬하에서 자람.

◎ 곽오주 : 빈농 출신의 머슴

◎ 황천왕동이 : 도망한 관노(官奴)의 자식

◎ 운총 : 황천왕동이의 누이로 임꺽정의 아내

◎ 배돌석 : 역졸 출신

◎ 서림 : 아전 출신으로 임꺽정의 책사 역할을 하던 인물

 

4. 이해와 감상

임꺽정은 양주 출신의 백정으로 명종 때(1559) 몰락한 사림(士林)과 아전, 노비, 평민 등을 규합하여 난을 일으켰다. 당시는 척족 윤원형 등이 발호하고, 흉년이 계속된 데다가 관리들의 수탈이 가중되어 민심이 흉흉해진 시대였다. 그는 신분에 대한 불만과 어지러운 사회를 틈타 구월산 등을 근거지로 삼아 경기도, 황해도, 평안도 일대의 관아를 습격하고 창고를 털어 백성들에게 나누어주는 등 의적(義賊)의 행각을 벌였다. 임꺽정은 3년 만에 구월산에서 붙잡혀 사형을 당하였으나, 그의 행적은 민간 설화로 윤색되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바로 그런 이야기의 중심이 바탕이 된 이 작품은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사건을 허구화한 역사 소설로 광복 이전에 발표된 역사 소설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대하 소설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지은이가 <조선일보>에 연재하다가(1928. 12. 21~1939. 3. 11) 신문의 폐간으로 <조광>지에 잠시 연재했지만 끝내 미완(未完)으로 남긴 소설이다. “임꺽정”은 화적패가 나타나게 되는 당시의 정치적 혼란상을 그려내고, 양반 사회에서 천민 사회에 이르는 광범위한 인물 설정, 조선 시대의 풍속을 치밀하게 재구성하여 역사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이 작품은 토속적인 정서를 표출하는 토속어의 구사가 뛰어나고, 민중의 말투, 세련된 묘사를 구사하고 있으며, 봉건적 요소와 반봉건적 요소의 양가적 특성과 새로운 민중 정서를 나타내고 있다. 우리의 전통적 정서는 보통 한(恨)의 정서와 골계(滑稽)의 정서로 대표되는데, 이 작품에서는 활달하고 건강하고 낙천적인 민중의 정서가 나타나 있다.

 

 

홍성원(1937~)

 

경남 합천 출생. 고려대 영문과 중퇴. 1964년 “빙점 지대”가 <한국일보> 신춘 문예에, “기관차와 송아지”가 <세대> 창간 1주년 기념 문예 현상 공모에, “디데이의 병촌”이 <동아일보> 장편 소설 공모에 당선되어 등단함. 그는 전쟁 소설을 다루고 있으며 휴머니즘에 입각한 저항 의식으로 작품을 구성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장편 “마지막 우상”, “남과 북”, “역조”와 “빗돌 고개”, 중편 “무사와 악사”, “폭군”, “종합 병원”, “프로방스의 이발사”, “늪”, “주말여행”, “폭군”, “즐거운 지옥” 등의 단편과 “고독에의 초대”, “호두껍질 속의 외출”, “막차로 온 손님들”, “곡예사의 혁명”, “사랑 강조 기간” 등의 신문 연재 소설이 있다.

 

▶ 남과 북

 

1. 줄거리

6․25 전쟁이 터졌다. 신문사가 비상 근무에 들어가고, 설경민은 트럭에 실려 가는 무장한 군인들이 목놓아 부르는 군가 소리에서 비애를 느낀다. 박노익 하사는 사흘 간의 행군에서 네 명의 전우를 잃고 증오를 느낀다. 부상병들이 끊임없이 몰려드는 병원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신동렬은 처참한 부상병들의 모습을 보며 심한 분노를 느낀다. 드디어 6월 28일 새벽 2시 30분 한강교는 시민 홍보도 없이 폭파된다. 피난민의 행렬은 남쪽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인민군이 수도에 입성하자 몇몇 사람들은 열렬히 환영을 한다. 피난 도중 경민은 수원 근처에서 우연히 서태호를 만나 오영탁의 부인인 강윤정을 소개받는다. 7월에 접어든 아침나절 효진은 박한익을 찾아가게 된다. 그 이유는 한익의 동생 수익이 아버지 우동준을 인민 재판에 세운 후, 오빠 효중마저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어서 효진은 자신을 짝사랑하고 있는 한익에게 이를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학렬은 정치 보위부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동생 동렬과 함께 관옥을 사랑하고 있었다. 동렬은 형과 자신과 관옥의 관계를 분명히 하려고 관옥의 몸을 허락 받는다. 동렬은 이제 이복형인 학렬이 두렵지 않았다. 설규헌 박사는 딸 소영이 울부짖는 가운데 인민군에게 끌려 어디론가 사라진다. 효진이 작은오빠 소식을 궁금해 할 무렵, 효석은 기둥에 몸이 묶인 채 여름 하늘을 바라보며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박한익의 아버지 박 포수는 우동준의 사형이 집행되려는 순간 마을에 불을 질러 우동준을 구한다. 월남하여 술집을 경영하던 모희규는 소영의 약혼자 한상옥과 함께 군에 입대를 하게 되고, 전세는 평양을 탈환할 정도로 호전되어 있었다. 그 와중에서도 한익은 쌀장사를 해서 큰돈을 번다. 중공군이 개입할 즈음을 기해서 우동준은 세상을 떠난다. 경민은 보조 간호원으로 징집되었다가 포로가 된 최선화를 구해내 정을 통한다. 그리고 동생 소영은 임신한 최선화와 어린 진숙을 데리고 피난길에 오르게 되는데, 최선화는 미군 병사에게 강제 추행을 당한다. 전쟁의 참상은 온통 벌집을 쑤셔놓은 듯 잔혹하게 여기 저기 널려 있었다. 거적에 덮여 방치되어 있는 병자의 시체들과 살기 위해 구걸하는 어린이들, 몸을 팔기 위해 외국 병사와 흥정을 하고 있는 여인들로 거리는 온통 메워져 있었다. 소영은 고아원에서 일을 하면서 전쟁의 고통을 몸소 깨닫고 있었다. 박노익은 이등 중사로 진급이 되고, 모희규와 한상혁은 소위가 된다. 관옥이 생활고로 미군 부대 근처에서 미군의 조롱을 받으며 살고 있을 즈음, 전쟁은 소강 상태로 접어들고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휴전 협상이 진행된다. 전선에서도 사기가 저하되어 휴전이 되기만을 기다린다. 최선화는 진철을 데리고 미군 부대 근처에서 몸을 팔며 살아가면서도 전날 자신을 추행한 미군 병사를 결코 잊지 않는다. 한편, 경민은 날마다 자신의 자식과 선화를 찾아다닌다. 강윤정은 남편 오영탁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전시에 어렵게 시간을 내 찾아간 그는, 그의 부하였던 최완식 대위와 윤정이 불륜의 관계임을 알고 강윤정을 살해한다. 다시 전선으로 돌아온 오영탁은 날마다 일과처럼 벌어지는 전투 중에도 공허감과 아내의 환영에 시달리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상사로 진급한 박노익이 탈영한다. 그는 죽은 자는 죽어서 아무 것도 모르지만, 산 자는 살아있기 때문에 찢어질 듯이 슬프고 괴로운 것이라고 외치면서, 살아서 죽은 자를 슬퍼하기보다는 죽어서 산 자들로부터 애도받는 쪽이 덜 괴로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수익은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수용소 내에서는 반공 포로와 친공 포로들이 각목과 죽창을 휘두르며 날마다 싸웠다. 수익은 수용소 내부의 알력에 연루되어 인민 재판에 회부되고 사형을 언도 받는다. 한편, 연대장 오영탁이 실종되어 사단은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헌병 대장 최완식 대위는 강윤정 살해 용의자로 오영탁을 지목하고 수사를 펴지만 수사가 마무리되는 찰나 박노익 상사에게 살해된다. 선화를 찾아 헤매던 경민은 기지촌에서 그녀를 만나 돌아가자고 하지만, 그녀는 도의적이고 인간적인 부끄러움 때문에 불응하며 열흘 간의 기한을 달라고 한다. 그러나 열흘 후 선화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다리 한 쪽이 불편했던 경민은 남은 다리마저 총상을 입게 되자, 신문사에 사표를 내고 선화의 죽음에 이어 철저하게 파괴된다. 1953년 7월 27일, 역사적인 휴전협정이 조인된다. 3년 1개월 2일 4시간만에 한반도에서는 모든 총성이 멎고 가슴 아픈 상흔만 남긴 채 종전이 되었다. 중위로 진급한 모희규는 휴전 20일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고, 불행한 난민을 돕고자 박한익의 금고를 털어 달아난 우효중은 폐인이 되어 자살한다. 신동렬은 대위로 진급하지만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절단하게 되고 화상으로 실명까지 하게 되자 관옥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관옥은 이 충격으로 정신 이상자가 되어 거리를 헤매게 된다. 수용소를 탈출한 박수익은 고향을 찾아가 한익의 일을 돕게 되고 소영은 상혁을 그리워하며 일선에까지 찾아가서 만나 보지만 박노익의 총기 오발로 한상혁은 숨을 거둔다. 그러나 전쟁은 잊혀질 것이며, 죽은 자와 상이 용사와 전쟁 미망인도 잊혀지게 될 것이다. 도시는 재건되고 슬픔도 치유되고 고통스럽던 기억은 두꺼운 흉터를 남긴 채 세월과 더불어 사라져 갈 것이다.

 

2. 핵심 정리

◎ 시점 : 3인칭 전지적 시점

◎ 배경 : 6․25 전쟁

◎ 주제 : 전쟁으로 인한 인간의 비극

 

3. 등장 인물

◎ 설경민 : 설규헌 박사의 아들. 신문사 외신부 기자. 자기 자식을 낳은 최선화를 찾아 헤맴.

◎ 우효중 : 대학 강사. 시골 지주 우동준의 장남

◎ 박한익 : 우동준의 소작인. 우효진을 짝사랑하여 그녀에게 평생을 매달려 사는 인물

◎ 박수익 : 한익의 동생. 의용군에 입대, 포로 수용소에서 탈출함.

◎ 박노익 : 국군 하사. 많은 전공을 세움.

◎ 오영탁 : 박노익의 상관. 불륜을 저지른 아내를 살해함.

◎ 최선화 : 간호 보조원. 설경민의 아이를 가짐. 기지촌에서 매음을 하다가 자살함.

 

4. 이해와 감상

종래의 6․25 전쟁 문학은 어떤 인물이나 가계(家系)가 전쟁을 겪는 형태였다. 그러나 홍성원의 “남과 북”은 개별적인 개인들이 겪는 전쟁의 경험 경로가 다양하다. 그리고, 작가 홍성원은 설규헌이란 사학자를 통해서 6․25를 강대국들이 만들어낸, 한국인과는 아무 상관없는 전쟁이라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또, 다양한 인물 설정을 통해서 전쟁은 어떤 명목, 어떤 형태로든지 인간성을 상실시키는 죄악이라는 견해를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전시(戰時)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불공평한 예외적 일들과 전쟁에 직접 참가하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전쟁과 무관한 여인들과 아이들에게까지 피해가 미친다는 것을 상기시킴으로써 전쟁의 비인간성을 고발했으며, 전쟁의 필연적 결과인 분단의 현실 문제는 우리들 마음 속에 치유될 수 없는 깊은 흉터를 만들었음을 결론적으로 확인하고 있다.

 

▶ 마지막 우상

 

1. 줄거리

K항(港)에서 여러 시간 걸리는, 면적도 좁고 인구도 적으며, 정기 운항선도 없어 한 달에 한 번 운행되는 동력선이 외부 세계와 이어줄 뿐 육지와는 거의 절연되다시피 한 낙도 가막도는 ‘전설과 실제가 뒤범벅이 된’ 기이한 역사로 축적된 독특한 공동체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자급 자족적 취락 구조를 이루면서, 문명의 혜택과 중앙의 행정력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소외되고 폐쇄적인 지역이면 대체로 그러하듯이 이 섬 역시 전통적인 관습법과 동네 노인들의 의견이 지배적인 힘을 발휘하여 생활 관행에서부터 범법자의 처벌에 이르기까지 독자적인 가치 체계와 운영의 틀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섬의 주민들은 그 체계와 틀을 유지하기 위해서 섬이라고 하는 특수한 환경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아감’의 장치로서가 아니라, ‘밖으로부터 들어옴’을 방비하는 튼튼한 성채로 이용했다. 섬과 섬의 주민들 스스로가 폐쇄적 태도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태성과 폐쇄성을 공동체 유지의 현명한 방책으로 여기고 외부로부터의 충격과 틈입자의 동요를 가능한 한 예방하기 위해 그 나름의 독특한 삶의 질서 체계를 수립하여 동태적이고 다양한 중심 문화권과의 단절을 강요하고 있었다. 폭풍 때문에 서울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 섬에 발이 묶이게 되면서 야릇한 분위기 속에서 며칠을 보낸 김인규가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은 이 ‘다른 방식의 삶’의 질서와 그 속에 ‘틈입자’로 끼어 든 자신의 입장이었다. 의사가 없는 가막도 주민들은 응급 환자의 치료를 위해 양귀비를 재배하여 아편을 만들었는데, 그 아편을 사들이기 위해 육지에서 들어온 권기탁이란 자가 섬 처녀를 강간하려다가 붙잡혔다. 섬 주민들은 그 자를 헛간에 가두어 유폐시켰다. 탈주를 꾀한 권기탁은 피살되었는데 섬 주민들은 그 사실을 알고도 범인을 색출하지 않고 은폐했다. 김인규가 그 사실을 정탐했다는 것을 빌미로 그를 육지로 돌아가지 못하게 발을 묶어 놓는다. 이러한 주민들의 집단적 태도는 이 곳이 육지와 절연된 섬이라는 상황으로도 설명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 섬에는 보다 복잡하고 한스러운 ‘역사적 사정’이 누적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한말(韓末)에 일군의 동학 교도가 이 섬에 이주했는데, 그들이 바로 현재 섬 주민들의 선조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섬에 전염병이 돌았을 때 육지 의사가 턱없이 비싼 치료비를 현금으로 요구하자 섬의 전 주민들이 집단적 행동으로 보복한 적이 있었다. 그 집단적 보복이란, 섬 주민 역시 그 의사에게 턱없이 비싼 식대를 현금으로 요구했고, 그 의사가 귀가할 배편을 마련해 주지 않음으로써 그를 굶어죽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과거 선조들의 이 경험은 육지 사람들에 대한 보복을 합리화시키는 논리가 되었고 또 육지 사람들의 무자비한 탐욕을 징치할 수 있는 그들만의 독자적인 방법으로 쓰이게 되었다. 육지와 사뭇 다른 질서 체계를 가진 이 가막도만의 방법과 논리는 6․25의 가혹한 역사 속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된다. 그것은 국군의 반격을 피하기 위해 이 섬으로 들어온 인민군과 그들을 추격하는 국군의 공방전 사이에서 무고한 섬 주민들만 대량으로 희생되었다. 그래서 섬사람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부역한 주민들을 서로 숨겨 주었던 것이다. 또, 이 섬의 역사 초기에 표류해 온 외국인을 구조해 주었으나 구원받은 외국인들이 주민을 살해하고 도주한 사건이 있었다. 이 같은 몇 차례의 피해를 통해 섬 주민들은 그들 나름의 자기 보호 방법을 자신들의 운명적인 선택으로 확고하게 굳어져 왔다. 즉, 육지에서 들어온 틈입자는 적으로 간주하여 자기 방비적 차원에서 어쩌다 들어온 틈입자는 나가지 못 하도록 붙들어 매어 두었다. 그것만이 자신의 섬을 지키는 유일한 수단이요, 그것만이 살길이라는 신념을 가지게 된 것이다. 김인규가 이 섬에 들어와서 무고한 이유로 생명의 위협을 당하면서, 섬의 폐쇄성을 지키기 위해 그들이 범법 위에 새로운 범법을 저지르고 허위 위에 새로운 허위를 덧입히는 잘못된 체계를 고발하기 위해 섬에 정착할 것을 선언했을 때, 이 섬은 더 이상 육지와의 절연을 강요하며, 섬을 지키기 위한 전래의 방법을 유지하기 힘든 상태가 닥쳐왔다. 그것은 먼저 아편을 사기 위해 들어온 권기탁이란 자의 동료들이 진상 규명을 위해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일 뿐 아니라 지금까지 지켜온 그들의 질서에 대한 섬 주민 사이의 반항도 강하게 일고 있었던 탓이었다. 일부 섬 주민의 체제에 대한 반항이란, 인민군의 잔류자로서 이 섬에서 귀화하여 30년 동안 살아온 안종선이 뭍으로 옮겨가겠다는 뜻을 은근히 내 비춘 것, 그리고 섬을 떠났던 서문호가 자기를 받아 주려 하지 않는 섬에 육지의 배가 닿을 수 있는 제방을 축조할 비용을 내놓겠다는 것, 그리고 2년 전 외가를 찾아 국민학교 교사로 부임한 오정은이 섬 아이를 모아 육지의 도시로 수학여행을 데리고 가려는 것이 그것이었다. 드디어 이 섬은 한말(韓末)의 우리나라처럼 완강한 수성의 세력과 개방의 의지 사이의 갈등을 보이기 시작했다. 권기탁의 피살 사건을 계기로 이 가막도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일사 불란하던 주민들의 일체감이 지금은 균열에 의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으며, 더 큰 문제는 ‘그 균열이 밖으로부터의 충격이 아니라 내부의 반란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막도를 육지 사람들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늙은 세대의 강요와 섬을 열어야 한다는 젊은 세대의 은근한 주장이 충돌하게 된 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섬에 콜레라가 발병한 것이다. 그런데, 정부 당국은 섬사람들의 치료보다도 우선 K항의 환자들을 이 외딴 섬으로 격리 수용하여 전염병 발생을 숨김으로써 민심의 동요 혼란과 국가적 손실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그것을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이번에는 이 가막도가 전염병의 발병지라는 허위 보도를 하게 했다. 이 사건 때문에 섬사람들은 다시 한 번 오욕의 누명과 배신을 경험하게 된다. 더군다나 전염의 확산을 막는다는 이유로 의료진이 섬에 들어와 우물에 소독약을 뿌리고 생활 필수품의 공급을 막아 버렸다. 이 때문에 더해진 섬사람들의 적개심은 육지 사람들에게 아편의 밀경(密耕)․밀조(密造)가 발각되리라는 두려움과 겹쳐진다. 그러나 섬사람들은 콜레라 환자를 치료하지 않을 수 없었고, 방역 시책에 따르지 않을 수도 없었을 뿐더러 당국도 섬의 개방을 힘으로 강요하고 있었다. 배반과 고집, 강요와 방어가 육지의 ‘국가적 이익’과 섬의 ‘신성 불가침한 아편’과의 이해 관계 때문에 강경하게 맞서게 되고 그것은 주민들의 단식 투쟁으로 절정에 이른다. 여기서 드디어 양쪽은 김인규의 중재로 화해를 구하게 되지만 실패를 겪고, 대신 김인규가 육지로 내보낸, 방역 당국과 섬사람들의 허위를 함께 고발하는 상세한 폭로가 신문에 보도됨으로써 비로소 화해가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바다를 허물어야 해요. 바다 탓으로 돌리지 말고 바다를 허물어 버린 후 가막도를 뭍 쪽으로 좀더 가까이 옮겨가야 해요.”라고 오정은이 주장한 것처럼 섬의 개방을 위한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이 화해 때문에 섬을 떠나려던 서문호는 다시 섬으로 돌아와 정착할 결심을 하게 되고, 섬에 억류되었다가 아주 거기서 묻힐 결심을 했던 김인규는 육지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된다.

 

2. 핵심 정리

◎ 시점 : 3인칭 전지적 시점

◎ 배경 : 폐쇄적 민족사의 현장인 가막도 섬

◎ 주제 : 닫힌 현실 상황 속에서의 인간의 보편적 진실 구현

 

3. 등장 인물

◎ 김인규 : 잡지사 편집장. 휴가를 얻어 가막도로 바다 여행을 가서 그곳의 폐쇄적 삶의 상황에 맞서 진실을 밝히려 노력한다.

 

4. 이해와 감상

1983년 <현대문학>에 연재된 “마지막 우상”은 주인공 김인규가 낚시 여행 때문에 찾아간 가막도라는 섬에서 발이 묶여 겪게 되는 갇힌 상황과 일련의 사건을 그린 장편 소설로, 홍성원의 대표작 중의 하나다. 1985년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진실을 가로막는 허위에서 폭력이 빚어지고 여기서 이 세계의 비극이 야기된다고 보고서, 지식인의 역할은 이 진실을 밝혀내는 데 있는데도 그들이 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데에 지식인들의 절망이 도사리고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마지막 우상”은 A. 카뮈의 “페스트”와 매우 흡사한 상황을 보여 준다. 이 소설에서의 김인규의 위치는 “페스트”의 신문기자 랑베르와 비슷하다. “페스트”에서, 취재 차 오랑을 방문했던 그는 페스트 때문에 봉쇄된 이 도시를 빠져나가 약혼녀에게 돌아가려 시도하다가 전염병과 외로이 투쟁하는 의사 리외의 철학과 실천에 감동을 받아 도시 탈출을 포기하고 방역 팀에 자원 봉사한다. 리외와 랑베르가 연대적으로 싸우고 있는 것은 페스트로 상징된 세계의 부조리한 상황과 그로 인한 인간 고통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우상”에서, 김인규가 부닥치고 있는 상황은 관습과 제도, 혹은 인간의 역사와 거기서 얻어진 허위의 내리 누름이었다. 그래서 김인규가 싸워야 했던 것은 재난 자체가 아니라, 재난이 빚어내는 상황과 태도에 대한 진상과 진실을 밝히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페스트”와 다르다.

 

▶ 무사(武士)와 약사(藥士)

 

1. 줄거리

소학교 때부터 ‘나’(정동근)의 친구인 김기범은 영민(英敏)한 두뇌의 소유자이자 배신의 명수이다. 그러나 그의 배신은 결코 밉지가 않다. 일본 유학 시절 학도병으로 끌려가는 조선인 학생들을 위한 출정식인 장행회(壯行會)에서 ‘조선 만세’를 부르자는 거사를 계획한 일이 있었다. 그때 김기범은 조선 만세, 일본 만세, 대동아 만세를 모두 부름으로써 거사를 계획한 동지들의 체면을 살리면서 그들의 감옥 행을 막아 주었다. 또, 해방 후에는 신문 기자로서 친일 행위자를 옹호하는 기사를 썼다가 테러를 당하기도 했는데, 그의 주장은 그들이 반민족적 행각을 하면서 마음의 고통이 심했을 것이니 인정상 무자비한 처단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그의 유연한 성격은 아내의 불륜까지도 너그럽게 숨겨 줄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어느 날,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얻고 있던 오일규가 교통 사고로 죽는다. 오일규가 정치적 야심에 불타 민의원에 출마했을 때, 김기범은 그의 조직원으로 맹활약을 하다가 상대방 후보에게 매수되어 그를 배반하게 된다. 이 일로 오일규는 김기범과 절교(絶交)했던 사이였다. 그런데 지금 그의 장례식에 나타난 김기범은 다음과 같이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 일규는 세상이 편안할 때면 칼을 뽑는 운 좋은 무사이고 나는 그 무사를 칭송하면서 살아가는 악사였다. 무사님들이 모순에 찬 작업을 할 때, 악사들은 뒷전에서 옳소 소리나 하면서 배고프지 않게 살면 그것이 우리의 사는 즐거움이다. 그래서 무사와 악사는 서로 경멸하면서도 사이 좋게 살아가는 법이다. 그 후, 김기범 역시 돌연 자취를 감춘다. 그는 변성명을 한 채 시골에 들어가 도인(道人)의 삶을 산다. 십 년 후 김기범 역시 교통 사고로 사망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중편 소설

◎ 배경 : 시간(일제 시대부터 1950년대)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성격 : 우의적(寓意的), 비판적, 풍자적

◎ 구성

발단 - 김기범의 타고난 재능과 영민(英敏)한 두뇌

전개 - 기민하게 현실적 실리를 추구하는 김기범

위기 - 오일규에 대한 김기범의 배반과 두 사람의 결렬(決裂)

절정 - 오일규의 죽음

결말 - 김기범의 죽음

◎ 주제 : 지식인 계층의 부정적 존재 방식 비판

◎ 출전 : <한국문학>(1976)

 

3. 등장 인물

◎ 나(정동근) : 김기범의 친구. 노년의 화가로 이 글의 서술자

◎ 김기범 : 주인공. 영민한 두뇌의 소유자. 기발한 행동을 서슴지 않고 감행하는 돈키호테적(的) 인간. 혼란기를 교묘하게 피해 간다.

◎ 오일규 : 학창 시절 김기범과 선두를 다투던 친구.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얻는다. 그러나 그 인간적 가치를 ‘나’와 김기범은 각각 달리 평가하고 있다.

 

4. 이해와 감상

이 소설은 격동의 역사 속에서 용기 없는 태도로, 살아 남기에만 급급했던 지식인의 부정적 모습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김기범의 기이하고도 모순된 행적은 바로 우리 사회 지식인의 부정적 존재 양상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그러한 삶의 방식이 옳은가 그른가를 반성케 하는 거울이다. 일본 유학 시절, 학도병 장행회장(壯行會場)에서 김기범이 보여 준 현실 판단과 그에 따른 기민한 대처, 그리고 해방 후 반민족적 친일 행위자의 인간적 약점에 대한 포용력과 유연성, 또 오일규에 대한 협력과 배반의 재주…. 이러한 일련의 행위들은 주인공이 돈키호테 같은 인물이면서도 현실에 대한 재빠른 판단력을 소유한 인물, 곧 모순성을 내포한 인물임을 보여 준다. 이에 반하여 오일규는 이른바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갖춘 인물로서 김기범과는 상대적 관계에 있다. 작가는 이 두 인물을 무사(武士)와 악사(樂士)에 비유함으로써 그들의 삶 즉, 이 사회 지식인의 삶을 희화화(戱畵化)하고 있다. 세상이 혼탁할 때는 나타나지 않다가 편안할 때만 칼을 뽑아 정의로운 도덕적 인물로서 명성과 지위를 얻는 편(오일규)은 무사(武士)이고, 그러한 무사의 행위들을 다만 칭송함으로써 배고프지 않게 살아가는 편(김기범)은 악사(樂士)이다. 무사와 악사는 서로를 경멸하면서도 불가분의 관계로 맺어져 있다. 그러기에 무사가 현실이라는 무대에서 사라지면 악사도 사라져야 할 운명이다. 오일규의 죽음으로 김기범도 사라지듯이, 여기에서는 소위 ‘의의 있는 삶’이란 설 자리가 없다. 작가는 김기범의 기이하고도 모순된 행적을 통해 ‘의의 있는 삶’이 아닌, ‘배고프지 않는 삶’의 추구에 급급한 지식인의 삶을 깨우쳐 주고 있다.

 

▶ 폭군(暴君)

 

1. 줄거리

어떤 산 속 마을에 호랑이가 나타나 사람들을 헤친다. 그 호랑이는 사람들이 놓은 덫에 상처를 입어 인간에 대해 원한을 품고 있는 위험한 짐승이다. 이 호랑이를 잡기 위하여 수렵협회에서 두 사람의 포수가 파견된다. 한 사람은 평생 동안 사냥을 업(業)으로 삼아 온 노인이고, 또 한 사람은 퇴역 장성으로 대기업을 경영하며 사냥을 여기(餘技)로 즐기는 중년 사나이다. 이 둘은 사냥에 대한 기본적 인식부터 차이를 보이는데, 노인은 자기가 쫓는 짐승을 마음 속으로 깊이 사랑하며 지혜와 인내력을 겨뤄 승부를 내는 데에 사냥의 진정한 뜻이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중년 사나이는 사냥을 통해 인간적 우월감을 느끼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짐승을 사살하는 데 사냥의 목적을 두고 있다. 두 사람이 현지에 도착했을 때, 호랑이를 두려워하면서도 신성시하는 마을 사람들은 두 사람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두 사냥꾼은 마을 사람들의 진술, 호랑이가 남기고 간 자취, 호랑이가 가축을 잡아갈 때 보여 준 습성을 근거로 하여 잡을 방도를 찾는다. 이 과정에서 중년 사나이의 성급한 욕심과 자기 능력에 대한 과신, 분별 없는 행동 때문에 둘 사이에 갈등이 생겨난다. 사나이는 결국 호랑이의 신중한 대응에 말려 큰 부상을 당한다. 노인은 이 호랑이가 가장 강한 적수이자 포수로서의 생의 마지막을 불태울 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임을 깨닫는다. 노인은 마침내 호랑이를 홀로 추적한다. 서로 피할 수 없는 곳에서 맞닥뜨린 노인과 호랑이는 이것이 서로에게 마지막임을 알게 된다. 노인은 방아쇠를 당긴다. 다음날 마을 사람들은 노인과 호랑이가 한 덩어리로 엉켜서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중편 소설

◎ 배경 : 시간(현대) / 공간(호랑이가 나타난 어느 산촌)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경향 : 사실주의적 경향

◎ 문체 : 간결체와 현재형의 문장으로 긴장감을 줌.

◎ 구성

발단 - 사람을 헤치는 호랑이가 출현하고, 두 사람의 포수가 파견됨.

전개 - 두 포수가 호랑이를 포획하는 방법을 놓고 갈등을 벌임.

위기 - 중년 사나이가 성급하게 호랑이를 추적하다 부상을 당함.

절정 - 노인이 홀로 호랑이를 추적, 피할 수 없는 곳에서 대결을 펼침.

결말 - 서로 끌어안고 죽은 호랑이와 노인이 발견됨.

◎ 제재 : 대결 상황

◎ 주제 : 애정과 대결 의지가 함께 하는 진실한 삶의 모습

◎ 출전 : <창작과 비평>(1969)

 

3. 등장 인물

◎ 노인 : 평생을 사냥꾼으로 살아온 포수로서 사냥의 올바른 자세를 지키며, 짐승과 대결하는 순간에 삶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는 인물이다.

◎ 중년 사냥꾼 : 퇴역 장성으로서 대기업의 사장이며, 사냥을 여기(餘技)로 즐기는 인물인데 그에게 있어서 사냥의 목적은 오로지 짐승을 사살하는 데 있다.

◎ 마을 사람들 : 부수적 인물들로서 호랑이에 대해 외경감(畏敬感)을 갖고 있다.

 

4. 이해와 감상

1969년 <창작과 비평>에 발표된 이 작품은 늙은 포수와 호랑이 사이의 대결을 그린 중편 소설이다. ‘대결’의 상황 설정은 작가 홍성원이 즐겨 다루는 기법인데, 이 작품에서도 가장 힘든 상대인 대호(大虎)와의 마지막 대결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사냥꾼 노인의 모습이 비장하게 그려져 있다. 이를 통하여 작가는 진정한 용기와 지혜란 무엇이며, 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를 묻고 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분량으로 보아 중편에 해당한다. 단편 소설이 일반적으로 단일한 갈등의 줄기에 따라 진행되는 데 비해, 중편 소설에서는 몇 가닥의 갈등이 서로 얽히면서 진행된다. 이 작품의 갈등 진행 양상은 이러한 중편 소설의 기본 양식에 잘 들어맞는다. 알려진 대로 홍성원은 대결의 의미가 첨예하게 드러나는 제재로써 자신의 문학 세계를 열어 간다. 소설 “폭군”에서의 대결은 호랑이와 사람 사이의 대결이지만, 그러한 특이한 제재를 통해 드러나는 대결 의식은 주어진 삶을 극복하려는 능동적 태도의 반영이다. 자기의 모든 것을 거는 싸움, 그러한 싸움의 미학을 이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작품 서두에서 늙은 포수는 초라하고 호화로운 장비를 갖춘 중년 사나이의 기세는 당당하다. 그러나 호랑이와의 대결이 진행되는 동안 이 관계는 역전된다. 이 부수적 갈등을 통해 작가는 인간의 진정한 용기와 지혜란 무엇이며, 참다운 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를 소설적 질문으로 제시한다. 이 작품의 중심이 되는 갈등은 늙은 포수와 호랑이 사이의 갈등이다. 사람을 헤친 호랑이의 습성과 자취를 파악할수록 노인은 그의 힘과 지혜와 용기에 경탄하면서 호랑이와의 최후의 대결을 준비한다. 호랑이와 노인 사이의 거리가 점차 가까워지면서 둘 사이의 인내심과 투지는 최고조에 달하고, 대결의 마지막 장면에서 늙은 포수는 삶을 마감할 만한 엄숙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진행되는 부수적 갈등은 늙은 포수와 중년 사나이 사이의 갈등과 호랑이와 중년 사나이 사이의 갈등이다. 전자(前者)는 어려운 대상과의 대결 속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는 노인의 태도와 자신을 과시하는 수단에 집착하는 중년 사나이의 속물 근성 사이의 대립인데, 이것은 작품 후반부에 이를수록 당당해지는 노인에 비해서 중년 사나이는 초라한 모습으로 전락한다. 또 후자(後者)는 작품 서두에서부터 중년 사나이의 호기를 보여줌으로써 사나이의 패배가 암시된다. 호랑이의 지혜와 용기 앞에 사나이의 속물 근성은 상대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중심 갈등과 부수적 갈등이 유기적 관계를 맺으며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이 소설의 주제는 선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어떤 이익에 관계없이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향해 묵묵히 행동하다가 마침내는 전 생애를 그것에 바치는 숭고한 정신, 이것을 흔히들 작가 홍성원이 드러내는 ‘대결의 미학(美學)’이라고 한다.

황석영(1943~)

 

소설가. 만주 신경 출생. 고교시절인 1962년에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통하여 등단하고,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탑”과 희곡 “환영(幻影)의 돛”이 각각 당선되어 문학 활동을 본격화했다. 1966~67년에 베트남전쟁 참전 이후 74년에 들어와 본격적인 창작 활동에 돌입하여 “객지”, “한씨 연대기”, “삼포 가는 길” 등 리얼리즘 미학의 정점에 이른 걸작 중․단편들을 속속 발표하면서 진보적 민족 문화 운동의 추진자로서도 크게 활약했다. 1974년 첫 소설집 “객지”(창작과비평사)를 펴냈으며, 대하 소설 “장길산(張吉山)” 연재를 시작하여 1984년 전10권으로 출간하였다. 1976~85년 해남․광주로 이주하였고 민주 문화 운동을 전개하면서 소설집 “가객(歌客)”(1978), 희곡집 “장산곶매”(1980), 광주 민중 항쟁 기록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1985) 등을 간행했다. 중국에서 “장길산”(1985), 일본에서 “객지”(1986), “무기의 그늘”(1989), 대만에서 “황석영 소설선집”(1988)이 번역․간행되기도 했다. 1989년 동경․북경을 경유하여 평양 방문. 이후 귀국하지 못하고 독일 예술원 초청 작가로 독일에 체류하기도 했다. 이 해 11월, 장편 소설 “무기의 그늘”로 제4회 만해 문학상을 수상했고, 1990년 독일에서 장편 소설 “흐르지 않는 강”을 집필, 한겨레신문에 연재했다. 1991년 11월, 미국으로 이주, 롱아일랜드 대학의 예술가 교환 프로그램으로 초청 받아 뉴욕에 체류. 1993년 4월 귀국, 방북 사건으로 7년형을 받고 1998년 사면되었다. 근래 2000년 5월 장편 소설인 “오래된 정원”을 출간하였다.

 

▶ 객지(客地)

 

1. 줄거리

어느 바닷가의 간척 공사장에서 노동 쟁의를 벌이던 일단의 노동자들이 쫓겨나고 새로 여러 명의 노동자들이 합류한다. 그 중 한 명인 동혁은 5함바에 속하여 일을 하는데, 처음 듣던 것과 달리 노임도 지나치게 싸고 거기에 십장(감독)의 착취가 더해져 노동자들은 돈을 벌기는커녕 도리어 빚에 시달리고 있다. 하는 일도 험하여 심한 부상을 당하기도 하지만 제대로 보상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회사측은 깡패들로 이른바 감독조를 구성하여 노동자들의 불만을 강압적으로 억누른다. 동혁은 대위 등과 함께 쟁의를 준비하며, 마침 곧 국회 답사단이 오기로 되어 있어 그 기회를 이용하기로 한다. 그러던 중 노동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와 순식간에 쟁의로 발전하지만, 회사측의 회유 공작으로 노동자들이 동요하여 결국 쟁의는 실패로 돌아간다. 동혁은 극한적인 행동을 하려는 각오를 한다.

 

2. 이해와 감상

1971년 봄 <창작과 비평>에 발표된 황석영의 단편 소설이다.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던 1970년대 전후의 노동자의 노동과 투쟁의 과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노동 소설의 문을 연 작품으로 꼽힌다. 대자본을 육성하고 수출 중심의 경제 성장 위주라는 파행적인 산업 정책으로 인하여,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비인간적인 근로 조건을 감수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이 작품은 1960년대 후반 근대화 작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간척 사업의 현장을 무대로 그곳에서 일하는 떠돌이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즉 비인간적인 노동 현실과 인간에 대한 믿음을 그리고 있다. 궁벽진 바닷가의 공사 현장에서 삶의 막바지에 몰린 노동자들은 그곳이 생존 투쟁의 공간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주어지는 하루 일당은 실제로 10원조차도 안 된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체질화된 무기력과 적극적인 삶의 의지가 없다. 즉 오랜 기간 사회의 밑바닥에 눌려 살면서 적극적인 삶의 의지를 제거 당한 하층 노동자들의 패배 의식과 비인간적 노동 조건에 동혁은 감원자를 대신해서 들어온다. 그 곳에서 젊은 노동자 '대위'는 여타의 노동자와는 달리 자각하고 있는 노동자였다. 그는 현장에서 부대낌에 자각하게 된 자연스러운 형상화이다. 따라서 그는 자각하는 노동자 계층의 전형이다. 이 인물형이 당시까지는 나타나지 않은 것이어서 주목된다. 그는 동혁과 함께 파업 쟁의를 주도하고 쟁의 과정에서는 홀몸으로 감독조 무리와 싸우다 집단 폭행을 당하지만 그를 통해 쟁의의 불씨를 지피는 헌신적인 노동자상을 보여준다. 즉 노동자 의식의 성숙 과정을 감동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동혁은 감정적인 폭발로 끝나는 쟁의는 무의미하며 어디까지나 개선을 위한 쟁의가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는 신념과 희망을 갖고 있다. 그는 눈앞에 보이지 않는 먼 미래를 바라보고 쟁의가 설사 실패하더라도 심한 좌절과 절망에 빠지지 않을 것을 스스로 다짐한다. 이들 인물은 뚜렷한 계급의식을 갖고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투쟁의 태열에 선 사람들이 아니라 대부분 일시적인 부랑자이거나 떠돌이 날품팔이들이다. 그러나 그들 중 작가는 암담한 현실과 희망 없는 미래를 능동적인 삶의 태도로 극복하게 한다. 황석영은 이 작품에서 간척 공사장의 노무자들이 자신들의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과정을 짜임새 있는 구성 위에서 사실적이고 긴박한 문체로 묘사함으로써, 산업화에 따른 현실적 모순과 열악한 노동자의 생활 및 그에 대항하는 민중의 저력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그러나 이 작품이 뛰어난 문학적 성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단지 노동자 계급의 비참한 현실을 폭로했다든지 노동쟁의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든지 하는 현실에 대한 리얼리즘적인 형상화 때문만은 아니다. 작가는 노동자의 현실을 절실하게 파헤치는 동시에, 주인공 동혁을 비롯한 인간의 내면 심리에 대한 치밀한 추적을 늦추지 않고 세밀하게 표현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개인적인 차원의 행위가 집단적인 행동으로 전화되는 과정을 도식적으로 단순화하지 않고 내면 상황에 따른 미묘한 움직임을 기민한 통찰력으로 포착해 냈다. 특히 작가의 탁월한 점은 “객지”의 지향성이 노동자계급에 대한 단순한 옹호나 노동자의 투쟁이 승리한다는 환상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는 무모한 관념적 성취를 절제하면서, 오히려 한 개인을 계급의 대표자보다는 자신의 계층을 뛰어넘고 상승하려는 폭넓은 상상력을 지닌 인간으로 파악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와 탐구를 추구하고 있다. 그리하여 “객지”는 소외된 민중의 비참한 생활상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탐구와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성찰하는 데 이르며, 이것은 바로 한 시대의 모순을 총체적으로 표출한 작가 정신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 비인간적인 노동 현실과 인간에 대한 믿음 - 객지

“객지”에서 노동자들이 힘겹게 조직해 낸 쟁의는 실패로 돌아가지만 이 실패는 동혁의 ‘꼭 내일이 아니라도 좋다.’는 희망찬 결의와 함께 미래의 승리로 기약된다. 그 기약이 현실화되기까지 역사는 7, 80년대 노동 운동의 고난에 찬 성장사를 요구하게 되지만, 인간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작가의 예지는 시간을 앞서 역사의 진실을 문학화 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객지”는 70년대 민중문학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 비인간적 노동 조건과 패배 의식 : “객지”는 60년대 후반 근대화 작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간척 사업의 현장을 무대로 그 곳에서 일하는 떠돌이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읍내로 나가도 육십 리 길을 가야 내륙으로 이어지는 철도를 탈 수 있는 궁벽진 바닷가의 공사 현장은 삶의 막바지에 몰린 떠돌이 노동자들에겐 생활의 공간이 아니라 처절한 생존 투쟁의 공간일 수밖에 없다. 그 곳에서 노무자들은 혹독한 노동에 몸을 밀어 넣지만 그들이 그 노동의 대가로 손에 쥐게 되는 일당 130원짜리 맘보 한 장(현금이 아닌 이 전표는 110원에 거래된다.)으로는 세 끼 밥과 합숙소에서의 숙박비를 제하고 나면 고작 10원이 남는다. 그러나 이 10원조차도 실제로는 남아나지 못한다. “남는 건 한푼도 없다네. 간조오 때는 뭘 하는지 아는가. 누가 얼마 빚졌다는 걸 알려 주는 일루 끝나지.” “빚이라뇨?” “숙식비에다, 서기가 경영하는 매점에서 술이며 담배, 옷, 과자부스러기를 팔거든. 일하는 놈이면 무작정 줘도 좋다는 게야. 나중엔 모두 빚에 묶여서 여길 뜰 수가 없다구.”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은 그러므로 너무도 불가피한 것이지만 그들에게는 조직적으로 쟁의를 전개할 힘이 없다. 거기에는 앞에 인용한 대화에서 감원 당한 사람의 자리를 메우러 들어온 신참 노동자 동혁에게 공사판의 사정을 알려 주는 장씨의 경우처럼 체질화되어 버린 무기력도 중요한 원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공사판을 전전하는 사이에 어느덧 늙어 버린 장씨에게선 적극적인 삶의 의지 따위는 찾을 길이 없다. 그는 젊은이들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일 때마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반문한다. 오랫동안의 그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그런 것은 한낱 ‘객기’에 불과하며, ‘개선이니 진정서니 서명이니 하는 것들이’ 관철되는 경우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비록 자신에게 주어진 노동 조건이 불합리한 것이라 하더라도 거기에 마찰 없이 순응하는 것만이 날품팔이 신세나마 유지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인생 철학이 되고 만 것이다. 이것은 오랜 기간 사회의 밑바닥에 눌려 살면서 적극적인 삶의 의지를 제거 당한 하층 노동자들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 자각하는 노동자 상(勞動者像) : 그러나 젊은 노동자 ‘대위’는 장씨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장씨가 “무슨 도리가 있나”라며 지레 패배주의적 모습을 보일 때, 대위는 “단결해야죠”라고 말하며 단호하게 결의를 다진다. 그는 육군 중사 출신이다. 아내가 해산을 치른 다음 출혈이 심해서 거의 죽게 되었을 때, 무료 진료소로 달려갔으나 손을 써 주지 않아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방치할 수밖에 없었던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그 뒤 떠돌이 노동자로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간척 공사장까지 흘러 들어왔다. 그는 나름대로 공사 현장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으며, 그것의 개선을 위해서라면 한판 싸움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다혈질의 사나이다. “불만 정도가 아니오. 회사측에서는 하급 노무자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최대한으로 피하기 위해 합숙소의 운영을 십장들에게 넘겨 버린 거요. 회사는 인부들의 상부 계급인 감독과 그 밑의 십장들만 상대하면 되니까, 십장은 회사측과의 중개역인 서기들을 통해 작업량과 노임 문제를 결정합니다. 애매한 계급 구조요. 운지 간척 공사장의 열 채의 함바 모두가 감독이나 십장들이 경영하는 형편인데 중간 착취가 심해요. 서기들은 매점을 경영하고 전표 장사나 돈놀이를 해서 수지를 맞춥니다. 회사측에서는 하급 인부들의 노임과 작업 문제를 합숙소랑 직결시켜서 일임해 버리는 게 편리한 거죠. (중략) 하급 노무자에 대한 압력 세력이 생겨나 있어요. 이번 일로 눈치채게 된 겁니다. 우리 날품팔이도 조직이 필요하게 됐소.” 그의 이러한 인식과 투쟁 의지는 현장에서의 부대낌 속에서 자연스레 형성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위’는 ‘자각하는 노동자 계층’의 한 전형이라 할 만한데, “객지”가 발표된 당시의 상황에서 이런 인물을 포착해낸 작가의 앞선 의식은 돋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동혁과 함께 파업 쟁의를 주도하고, 쟁의 과정에서는 홀몸으로 감독조 무리와 싸우다 집단 폭행을 당하게 되지만, 그를 통해 쟁의의 불씨를 지피는 헌신적인 노동자 상을 보여 주게 된다. 작가는 이 대위라는 인물을 통해 한 부랑 노동자가 자신의 문제에서 출발하여 작업 현장 전체의 구조적 모순을 몸으로 체득하고 그것의 개선 투쟁에 이르는, 노동자 의식의 성숙 과정을 감동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 희망을 일구어내는 패배 : 소설의 주인공이랄 수 있는 동혁은, 일천한 노동 이력에도 불구하고 노동 현실의 인식과 자각에는 상당히 빠른 성숙을 보인다. 고아인 그는 숙부의 도움으로 간신히 고등학교를 마치고 군에 입대하였으나, 제대하고 보니 숙부는 이민을 떠나고 없었다. 일자리를 찾다 이 곳 간척 공사장까지 오게 된 그는 곧 현장의 열악하고 불합리한 노동 현실과 맞닥뜨린다. 그는 대위의 문제 의식에 공감하고 대위와 함께 쟁의를 주도하게 된다. 이러한 동혁의 성격화는 다소 영웅주의적 측면이 있는 것으로 비판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는 동혁을 통해 “객지”의 주제 의식을 조율해 내고 있다. 다음의 대목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폭동으로 변해선 안 됩니다.” 동혁이 말했다. “개선을 위해 쟁의를 해야지. 원수 갚는 심정으로 벌이다간 끝이 없어요.” 동혁은 감정적인 폭발로 끝나는 쟁의는 무의미하며 어디까지나 개선을 위한 쟁의가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는 신념과 희망을 갖고 있다. 그는 눈앞에 보이지 않는 먼 미래까지 바라본다. 그러므로, 설사 쟁의가 성공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심한 좌절과 절망에 빠지지 않을 것을 스스로 다짐하기도 한다. 회사측의 조직적 회유에 의해 힘들게 조직해 낸 파업 투쟁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 확실해졌을 때, 동혁이 농성 현장인 ‘독산’에서 보이는 결의의 대목은 “객지”의 감동적인 끝을 이룬다. 그렇게 해서 열악한 노동 현실의 폭로와 고발에 “객지”의 초점이 놓인 것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적 정의에 대한 보다 긴 믿음이 “객지”의 주제 의식임을 이 대목은 보여 준다. 그는 바위를 등지고 함바를 향해 앉았는데, 독산을 내려가는 인부들의 모습이 몇 명씩 그의 눈앞에 아른거리곤 했다. 제방이 보였고, 그 너머로 무한하게 펼쳐진 바다의 수평선이 보였다. 숙부가 타고 있던 이민선이 바다 바깥을 다시 지나가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는 자기의 결의가 헛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었으며, 거의 텅 비어 버린 듯한 마음에 대하여 스스로 놀랐다. 알 수 없는 강렬한 희망이 어디선가 솟아올라 그를 가득 채우는 것 같았다. 동혁은 상대편 사람들과 동료 인부들 모두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 “꼭 내일이 아니라도 좋다.” 그는 혼자서 다짐했다.

 

<참고> 황석영의 작품 세계

1962년 “입석부근”으로 등단. 70년대 초반, “객지”, “삼포 가는 길”, “돼지꿈” 등 일련의 작품을 통해 산업 사회의 민중 현실을 체험의 언어로 형상화해 낸 황석영의 등장은 곧 70년대 민중 문학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가 작품으로 보여준 민중 현실은 그 속에서 시대의 모순이 첨예하게 녹아 있는 것이었고 그것을 통해 그의 문학은 현실에 대한 비판적 거울로서 리얼리즘 문학의 전범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리얼리즘은 민중 현실을 그릴 때에도 어떤 도식에 빠지지 않고 인간 존재의 근본적 결핍에 시선을 드리움으로써 삶의 비극적 서정을 놓치지 않았다. 민중사의 거대한 흐름을 현재적 문제 의식에서 찾아 들어간 기념비적 대작 “장길산”을 비롯, 월남전의 본질을 해부한 “무기의 그늘”까지 그의 문학은 여전히 현실과의 지난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간척지 공사장을 배경으로 열악한 노동 현실을 개선하려는 부랑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을 감동적으로 형상화한 “객지”의 문화적 성과는 산업 사회로 진입한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용기 있게 적발해 냄으로써 70년대 민중문학의 획을 그었다. “장길산”(1974~1984)은 조선조 숙종 연간에 황해도 구월산을 본거지로 활약한 의적패의 이야기를 축으로 해서 당시의 사회상을 민중사적 시각으로 그린 소설이다. 의적 소설이라는 점에서 “홍길동전”, “임꺽정”의 계보에 속하나 단순한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 역사를 빌린, 당대의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억압에 대한 저항의 발언으로 읽힌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동화적 은유로 잡아낸 현실을 “장길산”은 역사적 은유로 포착한 것이다.

 

▶ 삼포(森浦) 가는 길

 

1. 줄거리

공사판을 떠돌아다니는 영달은 넉 달 동안 머물러 있던 공사판의 공사가 중단되자 밥값을 떼어먹고 도망쳐 나온다.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가 정씨를 만나 동행이 된다. 정씨는 교도소에서 목공, 용접 등의 기술을 배우고 나와 영달이처럼 공사판을 떠돌아다니던 노동자인데, 그는 영달이와는 달리 고향인 삼포로 가는 길이다. 그들은 찬샘이라는 마을에서 백화라는 색시가 도망을 쳤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술집 주인으로부터 그녀를 잡아오면 만 원을 내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그들은 감천으로 행선을 바꾸어 가던 중에 그 백화를 만난다. 백화는 이제 겨우 스물두 살이지만 열여덟에 가출해서 수많은 술집을 전전해서인지 삼십이 훨씬 넘은 여자처럼 늙어 보이는 작부였다. 그들은 그녀의 신세가 측은하게 느껴져 동행이 된다. 그들은 눈이 쌓인 산골길을 함께 가다가 길가의 폐가에 들어가 잠시 몸을 녹인다. 백화는 영달에게 호감을 느껴 그것을 표현하지만 영달은 무뚝뚝하게 응대한다. 그들은 다시 길을 나선다. 눈길을 걷다가 백화가 발을 다쳐 걷지 못하게 되자 영달이 백화를 업는다. 감천 읍내에 도착하여 역으로 향하면서 백화는 영달에게 갈 곳을 묻는다. 마땅한 곳이 없으면 자기 고향에 가 일자리를 잡아 주겠다고 한다. 정씨도 백화가 좋은 여자라며 권한다. 그러나 영달은 백화를 떠나 보낸다. 가진 돈으로 차표와 빵을 사다 준다. 개찰구로 나가며 백화의 눈은 충혈 된다. 대합실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났을 때 옆에 있던 노인이 두 사람의 행색을 보고는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 고향 삼포로 간다는 말에, 삼포가 개발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해 준다. 영달은 일자리가 생겼다고 좋아하지만, 정씨는 풀이 죽는다. 그는 마음의 정처를 방금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달과 정씨는 입장이 바뀐 것이다. 기차는 눈발이 날리는 어두운 들판을 향하여 달려간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여로 소설

◎ 배경 : 시간(1970년대) / 공간(삼포로 가는 길)

◎ 성격 : 사실주의적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구성

발단 - 정처 없이 길을 나선 영달이 삼포로 가는 정씨를 만나 동행이 된다.

전개 - 삼포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월출로 향해 가던 중 백화를 만나 동행이 된다.

절정 - 백화가 영달에게 호감을 느껴 자기 고향으로 가자고 제안하나 응하지 않는다.

결말 - 삼포에 공사판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정씨는 발길이 내키지 않는다.

◎ 주제 : 고향 상실과 소외의 쓸쓸한 삶. 산업화 속에서 고향을 상실하고 떠돌아다니는 뜨내기 인생의 애환

◎ 출전 : <신동아>(1973)

 

3. 등장 인물

◎ 노영달 : 착암기 기술자. 공사판을 찾아 돌아다니는 뜨내기 노동자로, 행동과 말은 거칠지만 따뜻한 인간미를 지닌 인물이다.

◎ 정씨 : 출옥한 후 고향인 삼포로 찾아가고 있는 인물로서, 생각이 깊고 인정이 있다.

◎ 백화 : 술집에서 도망친 작부. 18세에 가출하여 군(軍)부대 주변의 술집을 4년여 간 전전하며 군인들에게 순정을 바친 인물이다.

 

4. 이해와 감상

소설은 1973년 9월 <신동아>에 발표되었다가 1974년 <창작과 비평>사에서 펴낸 소설집 “객지”에 수록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부랑(浮浪) 노무자인 ‘영달’과 ‘정씨’가 눈 내리는 들길을 걸으며 귀향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도중에 술집 작부 ‘백화’를 만나 떠돌이로 살아가는 처지를 밝히며 삶의 밑바닥에 깔린 슬픔의 근원을 확인하게 되고, 세 사람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야기의 끝에 이르러 그토록 그리던 ‘정씨’의 고향 삼포(森浦)가 개발 사업으로 인해 송두리째 사라진 사실을 통하여 부랑 노무자의 비애가 밀도 있게 그려진다. ‘영달’은 부랑 노무자로 일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인물이고, ‘정氏’는 옥살이를 하면서 목공․용접․구두 수선 등 여러 가지 기술을 배웠으나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고향 삼포(森浦)를 찾아간다. 우연히 만나 동행이 된 ‘영달’과 ‘정씨’가 술집에 들렀을 때, 주인은 ‘백화’란 작부를 찾아 주면 만 원을 주겠다고 제의한다. 그러나 이들은 눈길에서 만난 ‘백화’와 인간적인 교감을 나눈다. 그리고는 ‘백화’를 도와 여비를 나누어 차표와 빵을 사 준다. 감격한 ‘백화’는 자신의 본명을 알려 주고 그들 곁을 떠난다. 1970년대 산업화의 과정에서 농민은 뿌리를 잃고 도시의 밑바닥 생활을 하며 일용 노동자로 떠돈다. 이러한 상황의 황폐함과 궁핍함이 ‘영달’과 ‘정씨’ 같은 부랑 노무자, ‘백화’ 같은 작부의 모습으로 형상화되면서 시대적 전형성을 획득하고 있다. ‘정씨’에게는 이제 그 옛날의 아름다운 삼포(森浦)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육지로 연결된 삼포는, 그가 떠나고자 했던 도시와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산업화 된 공간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삼포는 그에게 있어 오랜 부랑 생활을 끝내고 안주할 수 있는 곳, 곧 정신의 안주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정氏’에게 있어서 삼포(森浦)의 상실은 곧 정신적 고향의 상실을 의미하며, 그 순간 ‘정씨’는 ‘영달’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부랑자가 되고 만다. 이런 의미에서 “삼포(森浦) 가는 길”은 1970년대 산업화가 초래한 고향 상실의 아픔을 형상화해 내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1970년대 산업 사회는 경제적 발달을 가져다 주었지만, 농어촌의 해체(공동체적 삶의 파괴)와 그로 인한 떠돌이 생활, 도농(都農) 간의 심한 격차 등 여러 문제점도 유발되었다. 이 작품은 산업화로 인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작중에서 일터를 찾아가는 막노동자 노영달, 감옥에서 갓 나와 귀향하는 정씨, 돈을 훔쳐 달아나는 술집 작부(酌婦) 백화, 이 세 사람은 근대화에 떠밀려 고향을 등진 채 이 곳 저 곳을 유랑하는 사람들이며,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는 점에서 공통점이다. 그 중 정씨만은 아름다운 어촌 고향 마을이 마음 속에 남아 있지만 귀향 기차를 타기 전 관광지 개발로 옛 모습을 깡그리 잃어버렸다는 소식을 풍문으로 듣고 나머지 두 사람과 같은 처지가 되고 만다. 작품의 결말부에서 등장 인물들은 순수한 애정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처지가 된다. 이것은 산업 사회를 이끌어 가는 중요한 민중의 연대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1970년대 산업화가 초래한 고향 상실의 아픔을 형상화해 내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참고> ‘삼포 가는 길’에 대하여

□ ‘길’ - 삶의 여정(旅程) : “삼포(森浦) 가는 길”은 이른바 ‘여로 소설’이다. 여로(旅路)는 인생의 축소판이다. 길을 따라 걷는 가운데 삶의 중심 부분이 부각된다. 이 소설은, 공사판에서 삼포라고 하는 또 다른 정착지로 향하는 가운데 겪게 되는 일과, 인물들의 과거사가 펼쳐진다. 길 소설에서는 동반자와의 만남이 하나의 요소가 되기도 하는데, 그들은 제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자들이지만 동행하는 동안에는 공통된 삶의 모습을 보이게 되고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는 형식이 일반적이다. 여기에서도 영달, 정씨, 백화가 도중에 만나게 되고, 또 흩어진다. 삶의 본질은 이렇게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다. 영달은 넉 달 전 이 곳 공사판에 올 때 이미 일이 오래 가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눌러 앉았다. 영달이 미래의 전망이 없는데도 정착해 버리는 태도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그가 이 사회의 주변적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별다른 기술을 보유한 것도 아니고, 가정이 있는 것도 아닌 떠돌이 신세이다. 돈이라는 조건이 구유(具有)되어 있다면 그는 이리저리 떠돌 이유가 없다. 그의 삶을 제약하는 것은 결국 돈이라는 자본주의적 속성이라 하겠다. 영달은 그런 면에서 이 사회에서 소외된 자이다. 공사가 중단되자 그는 밥값을 떼어먹고 도망을 나온다. 그가 갈 곳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는 어디론가 방황해야 한다. 이런 영달과 동일한 삶의 형태를 가진 자인 정씨를 들판에서 만난다. 둘은 동행하게 된다. 둘의 만남은 어색하게 시작된다. 공사판을 떠돌아다닌 그들은 둘 다 말씨와 행동이 거칠다. 상대의 인격 따위를 고려하는 자가 아니다. 황석영 소설에서의 인물들은 인텔리와 무관한, 정반대의 계층이다. 교육을 받지 못했고, 사회의 중심부에서 동떨어진 천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들이다. 영달이 기거하던 밥집의 주인 마누라 이야기를 하면서 정씨는 노골적으로 영달을 비아냥거린다. 영달도 그에 못지 않은 험담으로 대응한다. 둘은 물리적으로 동행하고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상당한 거리를 가지고 있다. 둘은 그저 적적해서 동행 관계를 유지할 뿐이다.

□ 함께 걷기, 하나 걷기 : 그러나 여로가 이어지면서 이 심정적 거리는 조금씩 가까워진다. 둘은 모두 산업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이며, 고향을 상실한 떠돌이란 점에서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아픔을 안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정신적으로 동일한 의식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또한 두 사람의 내면은 근본적으로 따뜻하지만 사회 환경에 의해 거친 행동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도 합치된다. 먼 거리에 있던 두 사람은 동행의 길이 이어지는 가운데 차츰 하나로 합일되어 가는 과정을 이 소설은 보여 주면서 주제를 심화시켜 준다. 중간에서 만나게 되는 백화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백화 또한 이 사회의 중심부로부터 이탈된 자이다. 삶의 밑바닥을 전전하면서 파탄된 삶을 살고 있고 고향을 잃은 자이다. 함께 길을 걸으면서 백화의 따뜻한 마음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셋은 자연스럽게 인간적 교감을 하게 된다. 백화가 쌍소리를 마구 지껄이며 두 남자를 대하는 모습은 대단히 천박하다. 그것은 백화의 본성과는 거리가 먼 사회적 소산이라는 것을 작가는 강조한다. 영달이 불을 지피는 정성을 본 후, 그녀는 자신을 가리고 있던 허울을 벗고, 순정한 마음을 드러낸다. 그것은 갈매기 집에서 겪은 사랑의 얘기를 통해 드러난다. 여덟 명의 죄수 군인들에게 돈과 몸을 바치면서 품었던 순정을 아직도 아름다운 꿈으로 간직하고 있는 데서 백화의 본성은 드러난다. 가진 것 없는 불쌍한 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태도는, 그녀가 비록 천박한 행동을 하지만 고결한 영혼을 가진 자라는 점을 부각한다. 이 소설에서 등장 인물 모두는 일반적 평가에서 천한 행동을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교양 있고 세련된 계층의 행동보다 오히려 따뜻한 마음을 지닌 자들이다. 작가가 그리려는 것도 바로 이런 점이라고 보여진다. 그리고 백화가 영달의 등에 업히는 장면은 대단히 상징적이다. 인간적 유대를 통해 순정한 마음을 드러내는 계기를 업는 행동으로 보여 주기 때문이다. 백화와 영달의 육체적 가까움은 곧바로 정신적 유대로 이어지고 둘은 이해와 사랑의 감정으로 승화된다. 영달이 가진 돈을 모두 털어 차표와 빵을 사 주는 모습은 돈을 떼어먹고 달아나던 것과는 판이한 것이다.

□ 고향 상실 - 산업화 시대의 슬픔 : 이 소설은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고향 상실의 아픔을 간직한 자들의 방황의 도정을 그리고 있다. 고향의 상실은 그들의 정체성을 앗아가고 거대한 산업 사회의 생리에서 이탈된 자로서의 소외감과 고통을 그대로 안겨 준 것이다. 그들은 모두 고향을 향해 간다. 떠나온 고향을 향해 다시 되돌아가는 것은, 외지로 표상되는 현실이 진정한 삶의 터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한다. 산업 사회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이 결국은 고향으로 회귀하고 마는 이유는, 고향이야말로 그들의 순정한 삶을 보장해 주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 사회의 흐름은 거대한 물줄기와 같이 기존의 삶의 양태를 바꾸어 간다. 산업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이 소설의 마지막 대목은 이런 비극성을 극화한다. 고향으로 향하던 정씨가 노인의 말을 듣고 실망하는 것이 그것이다. 삼포는 그 때의 삼포가 아닌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정씨가 갈 곳은 다시 아득해진다. 영달이 정처 없는 발길을 옮길 때, 정씨는 비교적 안정된 정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분명히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 이 대목에서 그 위상은 역전된다. 망연해진 정씨를 위로할 위치에 영달이 서게 된 것이다. 위로 받아야 할 자로부터 위로 받는 자야말로 가장 불쌍한 존재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면에서 기차를 타 버린 백화도 고향에서 이전의 삶을 회복하지는 못할 것이란 짐작이 가능하다. 이제 모두에게 고향은 사라진 것이다. 도시화, 산업화는 고향을 상실케 했고, 정신적 공허를 불러 온 것이다. 문명의 발달은 이런 부정적 요소를 안고 우리의 삶을 제약한다. 우리가 꿈꾸는 삶이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곳이라 한다면, 그것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산업화는 분명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작가는 그것을 초점화하고 있는 것이다.

 

▶ 섬섬 옥수

 

1. 줄거리

큰 사업가 집안의 외동딸인 주인공 박미리는 스물 세 살의 민감한 여대생이다. 걸맞은 집안에다 장래도 촉망되는 청년과 약혼도 했다. 그러나 어수룩한 데가 없이 약삭빠르고 이기적인 약혼자에게 실망한 그녀는 파혼을 선언한다. 대신 아파트 관리실의 젊은 공인(工人)인 상수에게 호감을 느낀다. 상수는 공부도 못했고 가난한 청년이다. 그러나 미리는 욕심을 내지 않는 상수에게서 싱그러움을 느낀 것이다. 교외(郊外)의 강가에서 상수와 자리를 같이한 미리는 숲에 누워 홀로 생각에 잠겼다. 이제껏 잘못 길들여진 세상에서의 찌꺼기가 다 씻겨 나가는 것 같았다. 대신 아늑하고 축복 받은 것 같은 기분으로 낮잠을 잤다. 그러나 미리는 도회의 그 찌꺼기들을 자신에게서 완전히 걷어 내지는 못한다.

 

2. 이해와 감상

“섬섬옥수”는 1973년 <한국문학>에 발표된 단편이다. 주로 70년대 산업 사회화 추세에 따른 삶의 밑바닥 현실을 리얼리즘 기법으로 묘파하는 작가인 황석영에 있어서 이 작품은 그의 작품 경향과는 다소 다른 성격을 지닌 소설이다. 즉, 이 작품은 도회의 분위기․정서․감수성, 이런 것들 안에서 짙은 맛과 여운을 깔고 있는, 도회의 찌꺼기들에 대한 문명 비평적 분위기 소설이다. 그러나 단순한 도시적 소재와 감수성으로 짜여진 감각적 소설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 아우를 위하여

 

1. 줄거리

형은 아우를 위해 유익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하며, 그의 유년기 초등학교 교실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한다. 6․25 전쟁 직후의 초등학교 상급반 교실에는 다양한 연령층의 학생들이 함께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 중 나이 많고 힘 좋은 학생들이 급장인 영래를 중심으로 학급을 장악한 채 갖가지 난폭한 행동을 한다. 대다수의 선량한 학생들은 그들의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담임 교사는 교실 안의 일보다는 자신이 벌여 놓은 사업에 더 신경을 쓰고 있어, 틈나는 대로 교실을 비운다. 그럴 때마다 교실은 이들의 횡포에 전면적으로 노출된다. 어느 날 여선생이 교생 실습을 나오는데, 그는 열성적이고 부드러워서, 조심스럽게 급장 영래의 횡포를 제어하고, 학급을 인간애가 넘치는 분위기로 유도한다. 영래 일당은 이 새로운 방해자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수업 시간에 영래가 여선생을 모욕하는 쪽지를 돌린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여선생을 존경하던 다수의 아이들이 영래의 폭력적인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선량한 다수의 결집된 힘 앞에서 이들의 권위는 순식간에 몰락해 버린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성격 : 교훈적 성격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주제 : 강자에 대항하는 약자의 저항 용기

◎ 출전 : <신동아>(1972)

 

3.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형이 군대 간 아우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씌어진 단편 소설로 소수의 폭력적인 강자와 다수의 선량한 약자라는 이분법이 선명하게 전제되어 있다. 강자들은 소수이지만 강하고 조직적이며, 약자들은 다수이지만 무력하고 비겁하다. 그러나 다수의 약자들이 강자의 폭력을 이길 수 있는 길은 간단하다. 불의와 폭력에 대한 저항의 용기를 발휘하는 일, 그리고 그것을 다수의 결집된 힘으로 분출시켜 내는 일이다. 곧 오직 다수의 비겁과 무관심이 있는 곳에서만 폭력과 불의는 강자가 될 수 있으며, 그들이 저항의 용기를 발휘하는 순간 이내 약자는 진정한 강자의 위치를 점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이 이야기의 핵심에 놓여 있는 작가의 메시지이다. 이 작품의 이러한 주제 의식에 대해 하나의 비유적이고 교훈적인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 장길산(張吉山)

 

1. 줄거리

조선조 효종 때 계집종의 몸에서 태어난 길산은 광대 장충의 구원으로 재인(才人) 마을에서 성장한다. 그는 같은 마을의 역사(力士) 이갑송, 송도 상단(商團)의 행수 박대근, 구월산 화적인 마감동 등과 사귄다. 창기(娼妓)였다가 버려진 묘옥과 정분을 맺은 길산은 해주 간상배(奸商輩) 신복동을 징벌하려다 붙잡혀 사형수가 되지만, 박대근의 도움으로 탈옥에 성공한다. 그는 양부모의 뜻을 어길 수 없어 누이 동생인 봉순과 결혼한다. 그러나 뜻한 바 있어 금강산에 들어가 운부 대사의 가르침을 받으며, 차츰 ‘백성’에 대한 의식을 새롭게 한다. 숙종 10년, 대(大)기근이 발생하자 길산은 관아와 부호를 털어 기민 구휼에 힘쓰고, 그의 이름이 백성의 입에 오르내린다. 조정에서는 토포(討捕, 토벌하여 잡음.)를 명하나 길산의 활약은 더욱 빛날 뿐이다. 정묘년 4월, 입국(立國)의 뜻을 가진 사람들이 구월산에 모인다. 길산의 활빈도, 운부 대사의 승병, 해서의 무계(巫系), 근기 지방의 미륵교도 등이 결속한다. 백성들 사이에서 왕조가 망한다는 괴서가 나돌고, 미륵이 도래하여 용화(龍華) 세계를 이룩한다는 믿음이 번져 나간다. 길산은 언진산에 터를 잡고 관군과 맞설 자금을 조달한다. 이 때 고달근이 큰 이익을 꾀하다 관가에 검거되자 길산 일당을 밀고한다. 토포관 최형기가 급습하지만 길산은 이미 달아난 뒤이다. 길산은 고달근을 찾아 징계하여 다스리고 최형기를 처단한다. 해서와 관북 일대에는 장길산을 자처하는 무리들이 출몰해 조정을 괴롭히지만, 이후 길산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장편 소설, 역사 소설

◎ 배경 : 시간(조선 효종 조 말기부터 숙종 조까지) / 공간(구월산, 금강산 및 경기 일대)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제재 : 장길산의 생애와 민중들의 미륵 사상

◎ 구성

발단 - 길산의 출생과 성장 과정

전개 - 묘옥과의 사랑. 사형수가 되었다가 탈옥. 입산하여 큰 가르침을 받음.

위기 - 대 기근. 길산의 의로운 행적과 이름이 전해짐.

절정 - 구월산 집회. 입국(立國)의 뜻,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백성들의 꿈

결말 - 고달근의 밀고. 위기에 처한 길산은 도주. 조정의 부패와 백성의 곤궁함 가중

◎ 주제 : 민중들의 힘에 의해 대동(大同) 세상의 구현 의지

◎ 출전 : <한국일보>(1974~1984 연재)

 

3. 등장 인물

◎ 장길산 : 쫓기는 노비의 몸에서 태어나 광대들의 손에서 길러진 그는 총명하고 날렵하고 힘있는 젊은이로 성장한다. 같은 마을 역사(力士 : 이갑송)와 함께 백성을 괴롭히는 간상배(奸商輩)들을 혼내 주며 송상(박대근)과 손을 잡고 고통받는 민중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결심한다. 비운의 여인 묘옥과 평생을 함께 할 약조를 하지만 관가에 사로잡힌 그가 탈옥하는 사이에 헤어지고 만다.

◎ 이갑송 : 장길산과 같은 재인말 출신의 광대로 힘이 장사다. 간상배 신복동 패거리를 징치하며 괴력에 가까운 힘으로 길산을 도와 준다.

◎ 박대근 : 송도 상인 차인 행수로 상단을 거느리며 장길산과 손을 잡는다. 길산이 옥에 갇혔을 때 교묘히 탈출시키고 구월산 일당들과 광대패들을 돕는다.

◎ 묘옥 : 흉년에 색상(色商)에 팔려 창기(娼妓)가 되었던 그녀는 재인말 총대 손돌 노인에게 건져져서 그의 딸로 살게 된다. 뛰어난 미모의 그녀는 길산과 정분을 맺고 평생을 기약하며 가슴에 ‘길(吉)’자의 연비(聯臂)를 새긴다.

◎ 마감동 : 구월산 화적패의 모사꾼인 그는 길산의 도움을 받아 잔인한 두목 노가를 처치하고 두령의 자리에 오른다.

◎ 우대용 : 신복동의 모함에 걸려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투옥된 그는 박대근의 도움을 받아 죄인들의 목을 치는 회자수로 전락하는데 때마침 투옥된 길산과 더불어 탈출한다.

◎ 강선흥 : 장연의 소금장수 출신의 力士. 남장을 하고 길산을 찾아 나선 묘옥을 구해준다. 갑송이와 힘 겨루기 끝에 의형제를 맺는다.

◎ 고달근 : 안성사당패 모가비. 장사 강선흥과 한판을 겨루고 인연을 맺는데 묘옥을 그들 사당패에 머물게 한다.

◎ 김기 : 버림받은 선비 출신의 학자. 갑송이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진 그는 구월산 녹림당과 한 패가 된다.

◎ 풍열 스님 : 월정사의 괴짜 주지승. 문화 재인말 광대들을 탑 고개에 정착시킨다. 장길산으로 하여금 금강산의 운부 대사를 찾아가도록 권유한다.

 

4. 이해와 감상

<한국일보>에 연재된 장편 소설이다. 1970년대 우리나라는 군사 독재 권력에 의해 수많은 지식인과 민중들이 억압을 받았던 시대이다. 작가는 이와 유사한 역사적 배경으로 18세기 숙종 조를 설정하고, 여기에 실존 인물인 장길산을 등장시켜 결코 좌절하지 않는 민중들의 생명력을 표현함으로써 역사의 주인으로서의 민중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장길산, 그는 조선 왕조 숙종 때 이름을 떨친 의적이었다. 작가가 광대 출신인 의적을 주인공으로 삼은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그 직업적 특성이 당시의 사회상을 폭넓게 그려내려는 작가의 의도와 맞아떨어진 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특히 하층민들의 삶의 애환을 구석구석 드러내는 데에는 넓은 지역을 떠돌며 연희를 베푸는 것으로 업을 삼는 광대의 시각만큼 편리한 것은 없었으리라. “장길산”의 주인공은 말할 것도 없이 이 작품의 주된 역할을 하는 인물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여러 계층과 신분에 속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 못지 않은 중요한 역할들을 담당하고 있다. 그들이 삶을 영위했던 시대는 두 차례에 걸친 전란과 양반 계급 내부의 분쟁, 문란해진 정치 질서 속에서 이루어진 하층민들에 대한 양반 관료들의 무자비한 착취와 억압, 그리고 민중들의 생존 투쟁으로 심하게 뒤틀려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전을 버리고 도주하는 노비들과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산에 들어가 ‘녹림당’을 이루는 무리들이 늘어간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장길산”의 1부 역시 이러한 시대상을 반영하듯 팔려간 남편을 찾아 만삭이 된 몸으로 도주하는 한 여비에 대한 묘사에서 시작된다. 이야기의 진행은 하층민들의 피해․보복․도주, 그들의 집단화와 의식화, 탐관오리와 악덕 부호들에 대한 징치와 굶주리는 백성들에 대한 구휼의 과정을 거치면서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자들의 역모를 위한 공동 전선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서사적 구조를 이루는 네 개의 부에 포함되지 않는 두 가지 전설이 이 소설의 첫머리와 끝머리를 장식하고 있다. ‘장산곶 매’라는 황해도 지방의 전설과 전라도 능주 땅에 전해 오는 ‘천불동 전설’이다. 이 방대한 규모의 대하소설이 전설로써 수미를 장식하고 있는 데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어 보인다. 전설에는 장구한 세월 동안 민중들의 의식 밑바닥에 켜켜이 쌓인 염원이 깃들여 있다. 말하자면 이러한 삶의 정서들이 언어적 질서를 부여받음으로써 전설이라는 보편적인 실체로 구체화되는 것이다. 이 소설 앞머리의 ‘장산곶 매’ 전설은 한 마리의 매로 상징되는 민중 장수의 비극적 운명을 통해 작품 전체에 비장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끝 부분에 놓인 ‘천길동 전설’은 이 소설에 펼쳐진 다채로운 사건들의 의미를 미륵사상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통합하면서 대미를 장식하는 기능을 해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자기들의 것이라고 표지로서 발목에 묶어 준 끈 때문에 장산곶 매는 구렁이와의 싸움에서 목숨을 잃게 된다는 전설에서 우리는 억눌린 자들에 대한 연대 의식 때문에 목숨을 불사를 수밖에 없는 이들의 운명을 강하게 감지하면서 이 소설을 읽어 나가게 된다. 이 장엄한 비극성은 시대적 운명에 저항하는 모든 사람들, 심지어는 북성이나 산지니와 같은 천민들의 행동에 되풀이되는 모티브로 작용하고 있다. 이들은 용천 세계, 즉 미륵이 나타나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살게 되는 세상을 꿈꾸면서 투쟁하고 죽어 가는 것이다. 이들의 저항은 일차적으로 현세에서의 해방을 지향한다. 그러나 불가피하게 마주친 좌절 속에서 미륵 세상은 언젠가 일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투쟁 속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깨달음에 도달하기도 한다. 보 잘 것 없는 천민인 산지니가 자기 처지의 억울함을 벗어나기 위한 투쟁의 결과로 마주치게 된 죽음의 장면이 그러한 예에 속한다. 산지니는 한낮의 네거리에서 공개 처형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의 뇌리에 하나의 깨달음이 번개처럼 스쳐간다. “미륵은 언제가 오시는 게 아니라 우리의 넋 가운데 시시때때로 찾아들어 이렇게 잠깐 당신을 현신 시키고는 넘어진 내 고깃덩이를 넘어 다른 넋으로 찾아간다. 미륵은 내게 왔다. 미륵은 언제나 이 자리에 있다.” 황석영은 1부에서는 풍열 스님, 2부에서는 운부 대사의 입을 통하여 세상 개조를 위한 사상으로서의 미륵 사상을 보여 주었고, 3부에서는 산지니의 죽음을 통해 그것의 체현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4부에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당시 사회에 폭넓게 자리잡은 미륵 사상을 바탕으로 모든 억눌린 자들과 처지에 공감하는 지식인들까지 포함한 공동 전선이 이루어지는 모습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그러나 이들 내부에 존재하는 방법상의 편차와 산재하는 세력들 사이의 투쟁 시차 때문에 봉기는 무산되고 만다. 사상적 편차의 핵심은 ‘진인’을 내세워 새로운 정권을 창출하려는 생각과 상층부만 다른 양반으로 바뀌게 되는 한 민중들의 질곡은 해결될 수 없다는 근본주의적인 생각 사이에 존재한다. 작가의 시각은 후자를 정당화하고 있다. 이상의 서술은 이 소설의 전체적 구조와 그것을 관통하고 있는 미륵 사상의 의미를 간단히 살펴본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생명감은 주로 당시 민중의 심층 의식 또는 집단무의식에 대한 풍요로운 재현에서 비롯된다. 사실적인 묘사의 사이사이에 설화, 민담, 잡가, 민요, 무당의 사설, 그리고 옛사람들의 생활 기록 등을 통해 그 시대 사람들의 정서와 사고 방식, 그리고 시대적 분위기까지 생생하게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전라도 땅에서 반란을 일으킨 노비들이 하룻밤 사이에 자신들의 모습을 닮은 천불과 천탑을 세움으로써 그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이루려 했다는 ‘천불동 전설’은 이 소설을 미학적으로 마무리하는 데 더없이 적절해 보인다. 이 전설에 담긴 핵심적인 뜻은 운주사라는 절 이름에 대한 늙은 노비의 해설로 집약되고 있다. 미륵님 세상은 배. 그것을 뜨게 하는 물은 그들과 같은 천민을 포함한 만백성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가슴 깊이 품고 있는 꿈의 실현은 결국 기약학 수 없는 미래의 시점으로 옮겨지고 있지만, 작가는 그들을 대신하여 마지막 문장 속에 강렬한 희망을 심어 놓고 있다. “티끌처럼 수많은 생령들의 뜻이 어찌 이루어지지 않으랴.”

 

▶ 한씨 연대기

 

1. 이해와 감상

“한씨 연대기”는 1972년 <창작과 비평>지에 발표된 단편 소설로서, 6․25 전쟁을 전후하여, 분단된 남과 북에서 한 고지식한 인간이 겪게 되는 희생의 기록이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는 분단 상황 자체에 대한 투시가 아니라 그 상황에다 주인공 한영덕의 인간성을 대응시켜 놓았다. 한영덕의 인간성은 어릴 때부터 그와 함께 자라나 의사가 되었고, 북한과 남한을 한영덕과 함께 모두 체험했지만, 성격적으로는 정반대인 서학준 박사와 대비되어 형상화된다. 한영덕에 대한 서학준의 평(評)은 이렇다. “한 군은 내 생각에두 너무 고디식하구 순수했디요. 그게 이 친구의 단점입네다. 난 이 사람하군 정반대디만 어릴 적부터 쭉 같이 자랐댔구, 도재 남을 속일 줄두 모르구 융통성두 없는 이 사람 성미가 짜증이 아멘서두 밉질 않았디요. 아니 오히려 그런 면을 도와했대시오.” 이렇게 성격이 정반대인 서학준이, 소설 속 사건 전개의 주요 대목에서 마다 한영덕에 비교됨으로써 한영덕의 인간성이 더욱 잘 드러나 보이는 효과가 있다. 한영덕은 후퇴했던 국군이 삼팔선을 넘어 북진하게 되자, 잠시 몸을 피했다가 국군을 맞이하자는 서학준의 제의를 뿌리친다. “난 여기 남갔다. 환자가 있는데 의사를 죽이기야 하갔나……. 머 죄진 게 있어야디.” 이것이 한영덕의 소신이었다. 재래(在來) 한국 백성이야 원래 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다가 일제의 발아래 짓밟혔고, 이제는 분단과 전쟁으로 인해 지은 죄 없으면서도 자기 마음만 믿고 소신대로 살아갈 수 없게 된 세상에서 한영덕은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김일성 대학 의학부 교수이며 의사인 한영덕은 한 소녀의 위급한 환부 수술에 몰두하다가 원장으로부터 질책을 받는다. “까짓 애들은 또 낳는 거요. 지금 경무원이 기총 소사의 관통상을 입구 피를 흘리는데, 이런 따위 일에 시간을 낭비하기요?” 그러나 이 질책에 대한 한영덕의 대답은 간단했다. “좀 비켜 주시오. 어둡습네다.” 이리하여 한영덕은 평양을 철수하는 인민군에 의해 처형당하지만, 총알이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에 기적적으로 살아나 월남(越南)하여 아들을 찾으려고 포로 수용소 주변을 서성이다가 간첩 혐의로 붙들려 고초를 겪는다. 그 후, 무면허 의사들과 동업을 하다가 남의 죄를 뒤집어쓰게 된다. 그뿐 아니라, 모략에 의해 지난날의 간첩 혐의까지 다시 거론되어 참혹한 고문을 당한다. 겨우 풀려난 한영덕이 다시 사회로 나왔을 때엔 이미 폐인이 다 된 상태였다. 이렇게 시달리고 행패를 당해 죽어가야 하는 죄 없는 사람, 고지식한 사람의 한 생애가 곧 분단 세대의 본질인 것이다. 이 본질을 “한씨 연대기”의 한영덕으로 표상된 것이다. 아직도 분단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지만, 한영덕 노인의 딸 혜자처럼 미래 역사의 자식들은 탄생하고 있다. 이 “한씨 연대기”에서 딸 혜자는 분단된 남과 북의 비인간적 체제에 시달리다 죽은 아버지의 매장을 목도하지 않으려 한다. 아버지의 죽음을 한 시대의 비극으로 수렴하고, 죽은 아버지의 유품에서 수첩을 챙겨 들고 새벽에 상가(喪家)를 뛰쳐나와 제 몫의 다른 삶을 향해 떠난다. 불의에 찬 역사의 희생자에게 집을 뛰쳐나가는 딸 혜자를 설정한 것은 ‘끝내 일어선다’는 주제 의식의 표현일 것이다.

 

 

황순원(1915~2000)

 

소설가. 시인. 평남 대동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 졸업, 경희대학 교수. 예술원 회원을 역임함. 1930년부터 동요와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여 1934년 첫 시집 “방가(放歌)”를 내놓으며 본격적으로 활동함. 1935년 <삼사문학>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시와 소설을 함께 발표하고, 1940년 단편 소설집 “늪”을 간행하면서 소설에 전념하였다. 해방 후에는 교직에 몸담으면서 “독 짓는 늙은이”(1950), “곡예사”, “학” 등의 단편 소설과 “별과 같이 살다”(1947), “카인의 후예”(1953), “인간접목”(1955) 등 장편 소설을 발표함. 그의 작품 세계는, 초기에는 단편 소설의 완결성과 단일성에 걸 맞는 개인의 문제에, 장편 소설을 발표하면서부터는 삶의 총체적 인식에 주력하여 많은 문제작을 남겼다. 그리고, 시적인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치밀한 문체와 스토리의 조직적인 전개를 그 특징으로 삼았으며, 그의 문체는 설화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작가는 인간의 본연적인 심리를 미세하게 묘사하는가 하면, 비극적인 현실을 심원한 사상이나 종교로써 감싸고 이해하려는 주제 의식의 확대를 보여 주고 있다.

 

▶ 나무들 비탈에 서다

 

1. 줄거리

[제1부] 동호, 현태, 윤구는 전쟁터에서 살아 남은 전우들이다. 동호는 자신의 순수성과 꿈을 상실케 한 후유증(後遺症)으로 방황하다가 현태, 윤구의 충동질로 작부(酌婦)인 옥주에게 동정을 바친다. 강박성과 결벽성, 그리고 옥주에 대한 동료 의식으로 그녀에게 몰입하던 동호는 옥주가 단지 육체의 쾌락만을 위해 매음(賣淫)한다는 것을 알고 그녀와 정부(情夫)를 살해하고 자신도 동맥을 끊어 자살한다.

[제2부] 부친의 회사에서 성실히 일하던 현태는 어느 날 우연히 자신이 전쟁터에서 무고하게 죽인 여인과 비슷한 행색의 모녀를 발견, 혼란에 빠진다. 죄의식에 시달려온 현태는 드나들던 술집 작부가 자살하는 것을 고의로 방조(傍助)한 죄로 무기 징역을 언도 받는다. 한편 현실주의자 윤구는 전쟁에서 체득한 비정함으로 현실생활을 이기적으로 살아간다. 가정 교사로 있던 주인집 딸을 임신시켰으나 무리한 중절을 하다 그녀가 죽게 되고 윤구는 혼자만의 살 길을 모색한다. 동호의 순결한 옛 애인 숙이는 동호의 죽음을 추적하다 현태에게 겁탈 당하고 아이를 가진다. 현태가 구속되자 아기를 낳을 때까지만이라도 윤구에게 의지하려 하나 윤구는 이를 냉정하게 거절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장편 소설, 전후 소설(戰後小說)

◎ 배경 : 시간(1953년 7월 무렵부터 1958년 무렵까지) / 공간(최전방과 서울, 인천 등)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구성

발단 - 수색 중인 동호, 현태, 윤구. 최전방(最前方)의 상황

전개 - 숙이를 늘 생각하면서도 옥주와 만나는 동호. 동호의 자살

위기 - 전쟁 후 현태, 윤구, 숙이의 삶

절정 - 현태의 아이를 갖는 숙이

결말 - 감옥으로 가는 현태와, 그의 아이를 낳겠다는 숙이

◎ 제재 : 전쟁의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 주제 :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을 겪은 젊은이들의 전후(戰後)의 정신적 방황과 갈등을 통한 인간 구원. 전후 파괴 상황을 감당하고 극복해 나가는 원초적 생명력

◎ 출전 : 사상계(1960)

 

3. 등장 인물

◎ 동호 : 외곬수로서 시인 지망생이다. 애인 숙이의 순결과 꿈을 지켜 주기 위해 자살한다. 그의 자살 동기는 창녀인 옥주(남편의 전사 통지서를 받고 실신하면서 뱃속의 아이가 지워지는 뱃가죽의 상처, 즉 6․25로 인한 아픔을 지님)와 육체적 관계를 갖고 숙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한다.

◎ 현태 : 사업가를 꿈꾸지만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숙이를 범한다. 용기와 결단력이 있는 인물이지만 전쟁터에서 그것을 상실하고 만다. 한때 제대 후 아버지 회사에서 정력적으로 일하다가 전투 중에 한 아낙을 강간하고 그 모자(母子)를 살해한 기억으로 인하여 모든 의욕을 잃고 술로 무위도식(無爲徒食)하다가 끝내 작부 계향(전쟁 중 월남하여 평양댁의 강요로 몸을 팔아야 하는, 차디찬 무표정의 여인)이를 자살하게 만든다. 자살 방조 혐의로 무기 징역을 언도 받는다.

◎ 윤구 : 은행가를 지망하면서 전쟁과 포로의 위기를 벗어나 제대 후 양계장을 꾸려 나가는 인물이다. 절망, 구원도 없이 살아가는 그는 전쟁의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 숙이 : 현태의 씨를 잉태하겠다고 결단한다. 작가가 작품 속에 드러내고 있는 마지막 희망이기도 하다.

◎ 선우 상사 : 부모의 피살 장면을 잊기 위해 폭음(暴飮)을 계속하다가 정신 병원에 수감된다.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1960년 1월부터 그 해 7월까지 <사상계>에 연재된 황순원의 장편 소설로, 총 2부 17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을 겪은 젊은이들의 전후의 정신적 방황과 갈등을 통하여 인간 구원의 문제를 다룬 이 작품은, 1950년대에서 1960년대에 이르는 시기의 전후 문학사의 한 지표로 간주된다. 즉, 6․25의 참상과 의미를 묻고자 한 본격 장편이 부재했던 상황에서 그러한 욕구를 충족시킨 첫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후 최인훈의 “광장”, 홍성원의 “남과 북” 등이 나와 “나무들 비탈에 서다”가 감당하지 못한 주제와 소재의 무게를 전달해 주었지만, 그 이전까지 이 작품이 보여 준 전쟁 소설로서의 성과는 뚜렷한 것이었다. 게다가 전쟁 속의 인간이 처하는 공포, 고독, 삶에의 본능, 이 전쟁을 통해 한국인이 입은 정신적․육체적 상처, 전후 한국 사회의 황폐성 등을 상당한 수준의 리얼리즘적 성취를 통해 드러내 주고 있다. 그러나 6․25를 주로 실존적 시각에서 파악하여 그 전쟁을 민족적 비극의 차원에서 묻지 못한 점은 시대의 한계이자 이 작품의 한계로 지적될 수 있다. 이 작품에는 전쟁이라는 상황이 빚는 죄악과 그로 인한 죄의식이 빚는 인간의 파멸 과정이 ‘동호’와 ‘현태’라는 대립적 인간상을 통하여 그려져 있다. 황순원의 초기 단편들에 많이 등장했던 유년기 인물들의 미숙 상태에서 사회적 및 정신적 성년으로 옮아가는 통과 제의가 이 작품에서는 전쟁이라는 시련으로 나타나는데, ‘동호’의 죽음이나 ‘현태’의 좌절은 전쟁이라는 상황이 인간으로서는 결코 통과할 수 없는 절대적인 장벽임을 의미한다. 전쟁이라는 외적 상황만이 아니라 ‘동호’의 순수(純粹)나 이상(理想)과 ‘현태’의 현실이라는 내적 인간성도 인간이 회복하여야 할 자아 동일성을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독(毒)같이 죄악이라는 기독교적 원죄 의식이 이 작품을 꿰뚫고 있는 의식이다. 6․25 전쟁이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겨 놓았는가를 그려내고자 했다. 주요 인물인 ‘동호’는 전장(戰場)에 있는 자신이 두꺼운 유리 속을 걷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자신이 노출된 공간을 걷고 있다는 두려움이 그를 지배하고 있다. 반면에 ‘현태’에게서는 ‘동호’와 대비되는 세상을 억세게 살아가는 남성적 소영웅심(小英雄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영웅심도 끝내는 허탈과 무기력으로 빠져 자살적인 자학에 이르게 된다. 여자의 연지가 묻은 부분을 끊어 내고서야 담배를 피우는 ‘동호’는, 욕정보다 여자의 청을 거절 못해 동정(童貞)을 잃는 순수한 사람이다. 동호는 이 순수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노력한다. 그러나 이것이 깨졌을 때 그는 흰 눈 위에서 전쟁의 깊은 상처를 빼지 못하는 유리 조각처럼 간직한 채 자살한다. 비탈에 선 나무처럼 시련과 위기에 처한 젊은이들의 다양한 삶의 양태(樣態)가 나타나는데, 주인공 ‘동호’, ‘현태’. ‘윤구’, ‘숙이’ 등이 처한 시련과 위기는 6․25로부터 오는 것이다. 이들은 20대의 생기 발랄한 청년기에 전쟁의 극한 상황과 만나 정신적 육체적으로 심각한 손상을 입는다. 1950년대 이 땅의 젊은이들의 삶에 치명적 타격을 가한 6․25는 전장의 상황으로 묘사되기보다는 주인공들이 전쟁의 후유증으로 어떤 고통을 당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짐으로써 부각된다. 참혹한 전쟁에 피해를 입은 사람은 어느 특정한 인물 하나만이 아니다. ‘현태’, ‘동호’, ‘윤구’, ‘숙이’, ‘옥주’ 그리고 동란(動亂)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그 피해자인 것이다.

 

▶ 너와 나만의 시간

 

1. 줄거리

주 대위, 김 일병, 현 중위는 전쟁 중에 낙오했다. 이들 중 주 대위는 다리를 다쳐 나머지 두 사람이 교대로 업고 이동한다. 현 중위는 주 대위가 자살해서 자신의 짐을 덜기 바라지만, 주 대위는 이를 모른 체한다. 이후 현 중위는 두 사람만을 남겨 놓은 채 홀로 떠나고, 김 일병이 홀로 주 대위를 업고 이동한다. 이동 중 이 두 사람은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은 현 중위를 발견하고 낙심한다. 이들은 멀리서 들리는 대포 소리와 개 짖는 소리에 희망을 갖고 초가집 근처까지 찾아오지만, 주 대위는 죽고 만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주제 : 전쟁의 비극과 삶에의 욕구

◎ 출전 : <너와 나만의 시간>(1964)

 

3.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전쟁 중 낙오한 세 명의 병사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보이는 다양한 반응을 인물의 심리와 행동을 통해 보여 주고 있다. 극한의 상황에 처한 이 세 병사가 보여 주는 것은 곧 삶에의 욕구라고 할 수 있다. 현 중위는 자신의 삶만을 위해 홀로 떠나고, 김 일병은 주 대위를 끝까지 보살핀다. 주 대위는 자신이 다른 병사들에게 짐이 되는 존재임을 알지만, 끝까지 자신의 삶에의 욕구를 버리지 않는다. 따라서 이 작품의 말미에서 개 짖는 소리는 이들의 삶에의 욕구에 대한 희망의 소리인 것이다.

 

▶ 독 짓는 늙은이

 

1. 줄거리

“이년! 이백 번 죽여도 쌀 년! 앓는 남편두 남편이디만, 어린 자식을 놔 두구 그래 도망을 가? 것두 아들놈 같은 조수놈하구서···. 그래 지금 한창 나이란 말이디? 그렇디구 이년, 내가 아무리 늙구 병들었기루서니 거랑질이야 할 줄 아니? 이녀언! 하는데, 옆에 누웠던 어린 아들이, 아바지, 아바지이! 하였으나 송 영감은 꿈속에서 자기 품에 안은 아들이, 아바지 아바지이 ! 하고 부르는 것으로 알며, 오냐 데건 네 에미가 아니다! 송 영감은 자기와 어린 자식을 버려 두고 조수와 도망 가버린 아내에 대한 분노를 느끼면서도 자기네 부자가 살아가기 위해 독을 구워내기로 한다. 송 영감은 병들어 자주 쓰러지면서도 생존을 위한 독 짓기를 계속 하는데 앵두나무 집 할머니가 미음을 쑤어다 주면서 당손이를 어디 좋은 자리에 양자로 줄 것을 제의한다. 날이 갈수록 송 영감은 자리에 눕는 때가 많아지고 앵두나뭇집 할머니는 마침 당손이를 보낼 좋은 자리가 있다고 송 영감을 채근한다. 송 영감은 어서 독을 한 가마 구워 내려고 조급해진다. 한 가마가 채 차지 않은 독들을 말려 가마에 넣고 불질을 시작하는데, 조수가 만든 독은 터지지 않고 자기가 만든 독이 터져 독 튀는 소리를 듣고 다시 쓰러져 버린다. 그는 장인으로서 생명이 다해 감을 느끼며 죽음을 예감한다. 깨어난 송 영감은 앵두나뭇집 할머니에게 전에 말한 집으로 당손이를 데려 가게 하고 누워서 죽은 체하며 눈물을 흘리며, 송 영감은 무심한 당손이를 양자 보내고, 송 영감은 독가마 속으로 들어가 자신이 만든 독 조각 위에, 터져 나간 독 대신에 꿇어앉는다. 그리고 장인으로서의 최후를 맞는다. 송 영감은 조용히 몸을 일으켜 단정히, 아주 단정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렇게 해서, 그 자신이 터져 나간 자기의 독 대신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어느 가을) / 공간(어느 시골)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문체 : 간결체

◎ 표현 : 대화에 의한 장면 제시가 거의 없음. 서술자가 직접 인물과 사건의 정황을 해설. 내면 심리의 분석적 제시

◎ 구성

발단 - 조수와 함께 달아난 아내

전개 - 쇠약한 송 영감이 자꾸 쓰러짐. 앵두나뭇집 할머니가 당손이를 어디 주자고 제의함.

위기 - 병석에 눕는 횟수가 많아지고 당손이에 대한 앵두나뭇집 할머니의 채근이 심함.

절정 - 독을 굽다가 쓰러짐.

결말 - 당손이를 데려가게 하고 독 조각 위에 꿇어앉는 송 영감

◎ 제재 : 독(전통적 가치)

◎ 주제 : 사라져 가는 것을 일으켜 세우려는 한 노인의 집념과 좌절. 현대 사회에서 파괴되어 가는 한국의 전통적 인간상 제시. 투철한 예술 정신의 표현. 인간의 본연적인 삶의 집착과 한국의 전통적 인간상 제시

◎ 출전 : <문예>(1950)

 

3. 등장 인물

◎ 송 영감 : 주인공으로서 평생 독을 짓는 장인 정신의 소유자. 조수와 달아난 아내를 원망하며, 어린 자식을 위해 독 짓는 일에 전념하는 인물

◎ 당손이 : 송 영감의 아들. 남의 집 양자가 됨.

◎ 앵두나뭇집 할머니 : 방물장수. 인정 많은 할머니로 당손이를 양자로 보내는 데 일조를 함.

 

4. 이해와 감상

일생을 독 굽는 일에 바쳐 온 한 노인의 좌절을 그린 단편 소설이다. 이 소설의 갈등은 주인공인 송 영감의 늙음에서 기인한 아내에 대한 배신감, 좌절감과 장인(匠人)으로서의 집념 사이에서 전개된다. 젊은 아내의 배신과 독 굽기의 실패로 인해 좌절하고, 자신의 전 생애를 바쳐 온 독가마 속에서 비장한 최후를 마치는 한 노인의 처절한 장인적 집념과 고뇌를 그렸다. 작가 특유의 문체와 서술 기법을 통해, 우리의 전통적 인간상의 하나인 ‘독 짓는 늙은이’가, 붕괴되어 가는 전통적 사회 질서 속에서 갈등하고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소설은 대화가 거의 생략되어 있고 등장 인물과 사건의 정황을 작가가 직접 제시하고는 있으나 편집자적 해설의 경지까지는 가지 않고 있다. 간결한 문장으로서 독자의 상상력을 유발시키고 서정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이 소설은 구성 단계상 결말에서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고 있으며, 비극적 결말로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암시와 여운의 결말이다. 그리고,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일제 말기이다. 이 소설에서 송 영감이 독 짓는 행동이나 깨어진 독 대신 송 영감 자신이 가마 속으로 들어가는 행동에서 한 인간의 비극이라기보다는 빠르게 변화되는 사회 속에서 독 짓는 것과 같은 전통적이고 토속적인 것들이 사라지는 민족적인 비극을 상징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송 영감이 아들을 자신이 직접 키우지 못하고 다른 집으로 보내야 했던 생활은 그 당시 세상을 살던 대다수의 하층민의 어려운 삶의 모습을 대신하고 있다. 어린 아들을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이것으로 보아 그 시대(일제)에 우리 민족이 일본에게 당한 고통과 수탈 당한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라 보아진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송 영감이 독을 짓는 일을 계속해 간다는 것은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그 시대의 전통적인 것을 지키고 그것의 장인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려는 그 당시의 사람들의 모습을 형상화시킨 것이라고 보여진다. 끝으로, 이 소설의 출전은 많은 혼선을 빚고 있다. 입시에서는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나 살피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과거 참고서나 교과서 혹은 일부 전공 서적에서 이 소설의 출전은 <주간 서울>(1947년), <백민>(1950년)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교과서가 개편되면서 <문예>(1950년)가 첨가되어 현재 이 작품의 출전은 세 가지로 되어 있다. 참고로 작가의 기억에는 <문예>(1950)가 맞을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 땅울림

 

1. 줄거리

인간은 누구나 금기를 깨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다. 예로부터 이를 표현하고 있는 설화들이 많다. 우리나라의 ‘나무꾼과 선녀’, 중국의 ‘담생(談生)’, 일본의 ‘우라시마다로’ 설화는 모두 금기를 소재로 한 것들이다. ‘나’는 대학을 정년 퇴임한 작가로서 금기를 소재로 한 소설을 구상중이다. 모델이 될 인물은 이웃에 사는 강 노인이다. 평소 술과 담배를 하지 않으며, 바둑이를 데리고 어린이 놀이터 벤치에 나와 ‘나’를 만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강 노인이 어느 날부터인가 바둑이 없이 혼자 나와 시무룩해 있다. 사연인즉, 바둑이를 팔았다는 것이다. 그는 6․25 때 북에 처자를 두고 남으로 와서 곧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살지만 결국에는 새살림을 꾸린다. 그리고는 결코 북에 두고 온 가족 생각을 떠올려서는 안 된다고 다짐한다. 두 아들을 둔 그는 지금 둘째와 함께 사는데, 손주들이 졸라서 사 온 바둑이와 친구가 된다. 자식들에게 용돈을 타서 쓰는 그는 돈을 절약하기 위해 좋아하던 술과 담배를 끊는다. 그러나 남북 회담이 열리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기대와 함께 결코 해서는 안 될 두고 온 가족들 생각을 하게 된다. 술, 담배 생각에 바둑이를 팔아 버린다. 그는 지금까지 지켜 온 금기를 깨면서 힘들게 유지해 왔던 안정을 잃고 만 것이다. 술과 담배, 그리고 한숨으로 ‘나’를 만나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나’는 마침 대학의 영문과 교수가 건네준 영자 신문에서, 사할린에서 죽은 어느 노인의 사연을 읽게 된다. 그 노인은 사할린에 가 지금까지 고향의 소식을 모른 채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살다가, 40년 만에 고향에서 처와 아들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편지를 읽고 난 노인은 심장마비로 죽는다. 한국 친척들의 편지가 아니었으면 아버지는 더 살았을 것이라는 딸의 편지도 신문에는 실려 있었다. ‘나’는 문득 강 노인을 모델로, 금기에 관한 소설을 쓰려고 했던 작품의 결말을 구상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6․25 이후) / 공간(서울의 변두리)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구성

프롤로그 - 금기를 깨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성 소개

도입 - ‘나무꾼과 선녀’, ‘담생(談生)’, ‘우라시마다로’ 설화에 나타난 금기 소개 및 비평

발단 - ‘강 노인’이란 인물 소개

전개 - 바둑이를 팔아 버리고 술 담배를 하며 안정을 잃은 강 노인

절정 - 사할린에서 죽은 노인의 신문 기사 소개

결말 - 강 노인을 소재로 한 소설의 결말 구상

◎ 제재 : 금기(禁忌)를 깼을 때의 불안정

◎ 주제 : 남북 이산 가족의 슬픔

◎ 출전 : <세계의 문학>(1985)

 

3. 등장 인물

◎ 나 : 작가이자 서술자. 대학을 정년 퇴임한 소설가이다.

◎ 강 노인 : ‘나’와 이웃에 사는 노인. 북에 처자를 두고 월남하여 새 가정을 꾸렸으나 늘그막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하고 있다.

 

4. 이해와 감상

1985년 <세계의 문학>에 발표된 단편 소설로서, 동남아에 널리 퍼져 있는 ‘금기(禁忌) 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어찌 보면 완결된 한 편의 소설이 아니라, 소설을 쓰기 위한 작가 자신의 구상을 미리 말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자세히 읽어보면 작가가 전면에 나서서 남북 이산 가족의 슬픔을 ‘금기’라는 대명제로 풀어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래 황순원 단편의 특징은 “목넘이 마을의 개”, “소나기”, “별” 등에서 보듯이 시적(詩的)인 압축성․상징성과 함께 잘 짜여진 구성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렇지가 않다. 어찌 보면, 이 작품은 소설의 갈래에 포함시켜도 좋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한다. 왜냐 하면, 서술자(작중 화자)는 누가 보아도 작가 황순원 자신임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작품이 발표될 당시의 작가의 나이, 직업 등이 이를 말해 준다. 따라서 혹자는 이 작품을 소설이 아닌 수필 혹은 소설 구상 노트로 읽을 수도 있다. 프롤로그가 그렇고, 도입부에 나타나는 우리나라․중국․일본 등의 금기(禁忌) 설화 소재와 작가 나름의 비평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전통적인 소설의 서술과 구성 방식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이 소설의 독특한 서술 방식이 주는 낯설음 때문일 뿐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 작품은 훌륭한 한 편의 소설이다. 프롤로그와 도입부에서 설화가 소개되고, 서술자 나름대로의 비평이 가해진 부분은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바로 ‘강 노인’의 삶을 소설로 만들기 위한 작업인 것이다. ‘강 노인’에 관한 이야기는 전체 분량의 반(半)도 안 되지만, 금기 설화를 바탕으로 ‘나’가 쓰고자 하는 소설의 모델로 선택된 것이다. 문제는 결말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이다. 그런데 이 결말은 작가가 직접 그리지 않는다. 신문 기사를 이용한다. 영자(英字) 신문에 난, 사할린에서 죽은 어느 노인의 삶이 바로 그것이다. 사할린에 가서 고향의 가족들로부터 소식을 듣지 못한 채 오늘날까지 새 가정을 꾸리고 잘 살아오던 한 노인이 40년 만에 처와 아들로부터 소식을 듣는다. 그 순간 그는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는다. 사할린에서 낳은 딸은 한국에서 온 편지만 아니었으면 아버지는 더 오래 살았을 것이라 말한다. 이 기사를 읽으며 작가는 '강 노인'을 모델로 한 소설의 결말을 암시 받게 된다. 즉, 두 편의 에피소드를 자연스럽게 하나로 묶어 들려주면서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해 놓는다. 그리하여 작가는 독자들 앞에 소설의 틀만을 제시하고 독자는 이를 통해 나름대로 한 편의 소설을 머릿속으로 그리게 되는 것이다.

 

▶ 모델

 

1. 줄거리

미술 대학에 다니는 두 여대생은 모델을 구하기 위해 거리를 헤맨다. 그러다가 길모퉁이에서 지게를 진 허름한 사내를 발견하는데, 그의 구레나룻이 좋아서 모델로 삼는다. 그리고 두 시간의 모델료로 천 환을 주며, 다음날 다시 오도록 부탁한다. 돈을 받고 나온 사내는 의외의 수입에 감격한다. 사내는 곧장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알리고, 왜 그 여학생들이 자기에게 그렇게 많은 돈을 주었는지는 모르지만, 내일 또 모델을 서기 위해 깨끗한 옷을 마련하도록 아내에게 부탁하는 한편, 구레나룻을 깎으러 이발관으로 간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콩트, 장편 소설(掌篇小說), 엽편 소설(葉篇小說)

◎ 배경 : 시간(현대) / 공간(도시 주변 빈민촌의 주택가)

◎ 경향 : 계층 간의 가치관 차이를 압축적으로 보여 줌.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구성

발단 - 미술대학생 둘이 모델을 찾아 헤매다 사십쯤 보이는 구레나룻의 사내를 만남.

전개(1) - 여학생들은 사내의 얼굴을 그리고 천 환을 주며 다음날 다시 오도록 부탁함.

전개(2) - 천 환을 번 사내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오고 아내도 남편의 말을 듣고 놀람.

절정․결말 - 사내는 더 멋진 모델이 되기 위해 구레나룻을 깎으러 이발관으로 감.

◎ 제재 : 모델로 구하는 여대생과 구레나룻을 한 지게꾼의 삶

◎ 주제 : 계층의 차이로 인한 가치관의 차이와 삶의 아이러니

◎ 출전 : <예술원보(藝術院報)>(1960)

 

3. 등장 인물

◎ 두 여대생 : 하층민의 삶의 세계를 전혀 경험하지 못한 부유한 가정의 미술 대학생들

◎ 사내 : 구레나룻을 한 지게꾼

◎ 아내 : 사내의 처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1960년 12월 <예술원보>에 발표하고, 후에 단편집 “소나기”에 실린 콩트로서 콩트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는 작품이다. 비약과 생략의 수법, 재치 있는 대화, 반전(反轉)의 기법을 통한 극적 효과와 함께 삶의 아이러니를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 원래 “콩트 이제(二題)”란 제목으로 발표되었는데 하나는 “동정”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이 작품이다. 1964년 ‘정음사’에서 간행된 단편집 “너와 나만의 시간”에 수록되면서 제목을 “손톱에 쓰다”로 고쳤다. 고쳐진 제목 “손톱에 쓰다”가 나타내 주듯이 “모델”은 하나의 에피소드로 짜여져 있다. 이 소설에는 네 인물이 등장하는데, 작가는 그들의 일상 생활 가운데서 이 작품에 관계된 극히 작은 부분만 제시함으로써 전체적인 삶의 모습을 암시하고 있다. 이렇듯 인간 생활의 한 단면을 통해 삶의 의미를 포착하는 이 소설은 콩트의 특성을 잘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구레나룻’은 여대생과 지게꾼의 가치관을 대비시켜 주는 매개체이다. 미대생에게 구레나룻은 미적 대상이었고, 그 사내야말로 최상의 모델이었다. 사내는 그 대가로 천 환의 횡재를 얻지만, 구레나룻이 자신의 경제적 남루함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더 말끔한 모습의 모델이 되기 위하여 그는 이발관으로 향하고, 이러한 사내의 행위는 독자들에게 반전(反轉)의 놀라움과 함께 삶에 내재된 아이러니를 맛보게 한다.

 

▶ 목넘이 마을의 개

 

1. 줄거리

어디를 가려도 목을 넘어야 했다. 남쪽만은 꽤 길게 굽이 돈 골짜기를 이루고 있지만, 결국 동서남북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어디를 가려도 산목을 넘어야만 했다. 그래 이름지어 목넘이 마을이라 불렀다. 이 목넘이 마을에 한 시절 이른봄으로부터 늦가을까지 적잖은 서북간도 이사꾼이 들러 지나갔다. 목넘이 마을이란, 어느 곳으로 가려 해도 건너야 하는 마을의 이름이다. 서북간도로 유랑 가는 이사꾼들이 들러 물도 마시고 발도 씻고 가는 목넘이 마을에, 어느 날, 황토에 물들어 누렇게 되다시피 한 신둥이(흰둥이) 한 마리가 흘러 들어온다. 신둥이는 몸이 지저분하고 다리까지 절었으며 유랑인들이 끌고 가다가 버린 것으로 보인다. 이 개는 마을 방앗간과 동장네 집을 돌아다니며 겨와 먹다 남긴 밥을 얻어먹으며 힘을 추스린다. 사람들에 의해 신둥이는 더 이상 마을에 있지 못하고 산에 숨었다가 밤에만 내려왔다. 새벽에 신둥이를 본 마을 사람들은 미친개라 하여 잡으려 하나 도망친다. 신둥이가 마을에서 자치를 감춘 것과 함께 동장네 개 세 마리가 사라졌다가 며칠 뒤에 마을로 돌아온다. 후에 동장 형제들은 동네 개들이 그 신둥이 개와 같이 있었다는 이유로 잡아먹는다. 얼마 뒤 새끼를 밴 신둥이가 마을 방앗간에서 잤다는 소문이 퍼진다. 다시 신둥이가 나타나자 마을사람들이 신둥이를 잡으려 하나 간난이 할아버지가 신둥이가 굶기는 하였으나 미친개가 아니라고 믿고 살려준다. 할아버지는 이 개가 새끼를 밴 것을 알고 차마 죽이지 못하고 종아리 사이로 빠져나가게 한 것이다. 얼마 후, 간난이 할아버지는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신둥이의 새끼들을 만나 보살펴 주고, 먹이도 갖다가 주고 하면서 기른다. 어느 정도 자라게 되자 강아지들을 동네 사람들 모르게 하나하나 데려와 이웃에 나누어준다. 그래서 마을의 개들은 신둥이의 피를 이어받게 된다. 이 이야기는 내가 중학 이삼 학년 때 목넘이 마을에 가서 들은 이야기이다. 그 때는 아주 흰 서릿발이 내린 그 텁석부리 속에서 미소를 띄우는 것이었다. 내가, 그 신둥이 개는 그 뒤에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더니 간난이 할아버지는 금세 미소를 거두며 그 해 첫 겨울 어느 사냥꾼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사실 그 후로는 통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공연한 것을 물어 보았구나 했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일제 강점기) / 공간(평안도 어느 산간 목넘이 마을)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결말 - 에필로그 : 1인칭 관찰자 시점)

◎ 문체 : 간결체, 담화체. 설화체 문체로 대화와 묘사 서술

◎ 표현 : 묘사나 대화의 사용 절제. 사실 전달에 충실

◎ 구성 : 액자 구성(내화는 순행적 구성, 단순 구성)

도입(프롤로그) 액자 - 배경

액자부 - 주제와 관계된 중심 이야기

결말(에필로그) 액자 - 구비(口碑) 전승되어 온 이야기를 소설화하였음을 밝힘.

◎ 주제 : 생명의 강인함과 그 외경성. 한민족의 강인한 생명력과 끈기

◎ 출전 : <목넘이 마을의 개>(1948)

 

3. 등장 인물

◎ 간난이 할아버지 : 신둥이를 이해하는 유일한 인물로서 생명에 대한 외경감을 보여 준다. 사건의 전달자이기도 함.

◎ 큰 동장, 작은 동장 : 신둥이를 핍박하고 죽이려 하는 인물. 민족에게 고난을 주는 요인

◎ 신둥이 개 : 주인을 잃고 마을에 흘러 들어와 모진 박해를 받음. 한민족의 강인한 생명력을 암시

 

4. 이해와 감상

일종의 우화(寓話) 소설이라고 볼 수 있는 이 작품은 전편에 걸쳐 ‘휴머니즘’이 주조를 이루고 있으며, 당대의 혼란한 사회를 극복할 수 있는 전망을 어느 정도 제시해 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제하의 비참한 삶 속에서도 같은 민족으로서의 동질성을 ‘신둥이’라는 개를 통해 확인하고 있는 점은 이념적 갈등이 가져온 민족의 비극을 치유하기 위해 작가가 보여준 하나의 비전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신둥이를 통해 드러나는 ‘간난이 할아버지’가 보여 주는 생명에의 외경심(畏敬心)이다. 형식적 특징도 무시할 수 없는데, 서두에는 배경을 제시하는 ‘프롤로그(prologue)’가 있으며 역사적 사실과 결부시켜 사실성을 더해 주고 있다. 또한 결미 부분에는 ‘내’가 직접 들은 이야기라고 말함으로써 허구성(虛構性)을 슬쩍 비켜나고 있다. 이러한 구성 방식은 이야기의 신뢰성을 확보하려는 문학적 고려일 것이다. 이 작품 역시 황순원 소설의 문체가 그러하듯이 ‘섬세한 묘사나 직접적 대화의 사용이 절제’되고 ‘서술적 진술’이 주류를 이룬다. 그리하여 액자 양식과 담화적 문체가 어우러져 이 소설에 ‘설화적 분위기’를 제공한다. 이 작품 서두에 배경을 제시하는 프롤로그가 있고, 결미 부분에는 외가에서 들은 이야기라고 함으로써 전승되어 온 이야기를 소설화하였음을 밝힌 에필로그가 설정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의 소설을 ‘액자 소설(額子小說)’이라고 한다. 이 액자 소설은 주제와 관련된 내부 이야기와 그 이야기의 상황을 제시하여, 내부 이야기가 허구가 아님을 보여줌으로써 신뢰성을 부여하도록 하는 액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서 신둥이 개의 상징성을 본다면 다음과 같다. 작품의 주인공은 주인을 잃고 마을로 흘러 들어와 모진 박해를 받는 신둥이라는 개다. 이 개는 사람들의 핍박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종족을 남겨 대를 잇는 강인한 삶의 형상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신둥이의 불굴의 삶은 곧 생명의 외경스러움을 표출하고 있으며, 나아가 한민족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 별

 

1. 줄거리

동네 애들과 노는 아이를 한 과수 노파가 보고, 같이 저자라도 보러 가는 듯한 젊은 여인에게 무심코, “쟈 동복 뉘가 꼬 죽은 쟈 오마니 닮았디 왜” 한 말을 얼김에 듣자, 아이는 동무들과 놀던 것도 잊어버리고 일어섰다. 의붓어머니에게 자란 아홉 살 난 사내아이는 어느 날, 동네 과수 할머니로부터 자기의 못생긴 누이가 죽은 어머니를 닮았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사내아이의 환영 속에 남아 있는 죽은 어머니의 모습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아름답고 예쁜 어머니였다. 단지 죽은 어머니와 자기의 누이가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죽은 어머니가 그렇게 못생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사내아이는 누이의 애정을 거부하기 시작한다. 그로부터 사내아이는 누이에 대한 혐오감과 반발이 심해져서 누이의 호의를 번번히 뿌리치는 한편 누이에게 공격적이 된다. 누이가 만들어준 헝겊 각시 인형을 버린다든지, 당나귀에서 떨어진 아이에게 애정을 보이는 누이의 호의를 거부한다든지, 누이가 건네준 옥수수를 버린다든지 하는 등 누이의 애정을 번번히 물리치는 것이다. 또한 이복동생을 업고 있는 누이에게 다가가 이복동생의 엉덩이를 꼬집어 곤경에 빠뜨리기도 한다. 어느 날 소년은 예쁜 소녀를 알게 되지만 곧 실망을 느낀다. 소년의 누이에 대한 반발은 누이가 시집갈 때까지 계속된다. 그러나 시집간 누이의 부고를 받게 된 후에는 누이를 추억하게 된다. 누이가 만들어 주었으나 파묻어 버린 헝겊 인형을 찾으려 하지만, 이미 썩어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과거 누이가 사내아이에게 베풀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생각하면서 사내아이는 누이에 대한 그리움과 미움으로 어쩔 수 없어 하는 것이다. 사내아이가 열네 살 때였다. 그러나 끝내 사내아이는 왼쪽 눈에 내려온 누이의 별을 몰아 내면서 오른쪽 눈에 내려온 어머니별과의 동일시를 거부하고 만다. 어느새 어두워지는 하늘에 별이 돋아났다가 눈물 고인 아이의 눈에 내려왔다. 아이는 지금 자기 오른편 눈에 내려온 별이 돌아간 어머니라고 느끼면서 그럼 왼편 눈에 내려온 별은 죽은 누이가 아니냐는 생각에 미치자 아무래도 누이는 어머니와 같은 아름다운 별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머리를 옆으로 저으며 눈 속에 별을 내몰았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순수 소설, 성장 소설

◎ 배경 : 시간(어느 가을) / 공간(대동강변 어느 성밖 마을)

◎ 경향 : 소년의 내적 체험을 심리주의적 수법으로 묘사함.

◎ 성격 : 동화적, 신비적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구성 : 평면적 구성

발단 - 소년은 죽은 어머니에 대한 절대적 사랑을 지니고 있음.

전개 - 사사건건 누이의 행동에 반발함.

위기 - 소년은 어머니를 들먹이는 누이를 미워하나 누이는 아이에게 애정을 보임.

절정 - 누이의 부음을 받고 누이가 준 인형을 파냄으로써 누이에 대한 애정을 암시함.

결말 - 누이의 죽음을 부정하는 소년

◎ 주제 : 죽은 어머니를 절대화하는 소년이 누이의 죽음을 통하여 생사와 애증 등 인간의 운명적 관계를 지각하게 되는 성장 과정

◎ 출전 : <인물평론>(1941)

 

3. 등장 인물

◎ 사내아이 : 어렸을 때 어머니를 여의고, 어머니의 영상을 찾아 방황한다. 누이의 죽음을 통해서 그 누이의 사랑을 새롭게 깨닫는다.

◎ 누이 : 소년을 지극히 사랑하는, 어머니 같은 존재로서 시집 간 후 얼마 안 되어 사망한다.

 

4. 이해와 감상

누이의 동생에 대한 섬세한 마음 씀씀이도 그렇거니와 그에 대한 아우의 거부 심리가 섬세하게 그려진 이 작품은 한 편의 서정시와 동화를 떠올리게 한다. 소위 성장소설의 하나로 판단되는 이 작품은 누이의 죽음이라는 경험을 겪은 후에야 모성고착(母性固着)으로부터 벗어나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이 성숙하게 된 사내아이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즉 성장과 찾음이라는 유형의 이야기이다. 9개의 에피소드로 진행되는 사내아이의 누이에 대한 미움은 사실은 미움이 아니라 죽은 어미에 대한 깊은 그리움의 역설적 표현이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불필요한 대화의 생략과 암시를 통해 아이의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어 심리주의적인 경향을 보인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지극히 평범한 소재를 다루고 있어서 아동 문학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이나, 작자가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자기 조성과 성숙 이전의 인간의 삶의 근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어렸을 때 여읜 어머니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찾아 헤매는 소년은 현실 속에서 어머니의 영상을 찾으려는 강한 집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은 실현될 수 없는 꿈이다. 그러다가 미움의 대상이었던 누이의 죽음을 계기로 누이의 참사랑을 인식하게 된다. 그것은 의식의 성장을 의미한다. 이런 측면에서 이 작품은 ‘성장 소설’인 것이다. 이 작품은 외면적으로 드러나는 사건보다는 주인공인 아이의 내면적 심리의 추이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다. 외면적으로 나타나는 사건은, ‘누이가 어머니를 닮았다는 말을 듣고 누이를 미워함 → 누이가 만들어 준 인형을 묻어 버림 → 누이를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낌 → 누이가 시집을 감, 그리고 죽음 → 누이가 준 인형을 찾으려 함’으로 요약된다. 이 사건들은 아이의 내면적 심리가 원인이 되어 나타나는 결과이며, 또 그것을 바탕으로 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는 사건 단위들이다. 누이를 미워하고 누이가 만들어 준 인형을 땅에 묻어 버리는 행위는 현실적으로 결핍된 모성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의 악의적인 보상 심리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누이가 시집을 가고 또 얼마 있지 않아 죽은 뒤, 아이는 누이의 죽음을 부정하려 하지만 이미 누이는 또 하나의 별이 되고 말았다. 그 별은 아이의 영원한 그리움이고, 또 그를 성숙하게 하는 아름다운 상처이기도 하다. 결국, 아이에게는 같은 의미를 지닌 두 개의 별이 생긴 셈이다. 참고로, 이 작품과 같이 모성고착에 의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은 김동인의 탐미주의적인 작품인 “광화사(狂畵師)”도 있다.

 

<참고> 성장 소설

원래 ‘intiation’이라는 말은 ‘신참’이라는 말이다. 원래 인류학의 개념이었다. 이는 유년이나 사춘기에서 성인 또는 성인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의식이다. 이 의식에는 으레 주인공에게 시련과 고통, 금기, 고립화가 수반된다. 이런 인류학의 용어를 소설론에 차용함으로써 어리거나 사춘기의 소년이 어떤 경험의 충격을 겪으면서 변화를 일으키고 마침내는 성인으로 성장해 가는 소설을 성장 소설이라고 한다.

 

▶ 소나기

 

1. 줄거리

소년은 개울가에서 물장난을 하는 소녀가 윤 초시네 증손녀임을 안다. 서울서 온 이 소녀는 며칠째 물장난을 하고 있다. 소녀는 늘 개울가에 앉아 있었고 소극적인 소년은 징검다리조차 제대로 건너지를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건너편에서 구경하고 있는 소년에게 소녀가 “이 바보.” 하고 돌을 던지고 달아난다. 그 조약돌을 소년은 주머니에 넣어 간직하게 되고 자기도 모르게 그 조약돌을 주무르는 습관이 생겼다. 소녀의 적극적인 관심과 성격으로 둘은 친하게 되고 들길을 달리며 칡꽃을 따고 놀다가 갑자기 소나기를 만난다. 소나기를 통해 둘은 더 가까워지지만 소녀는 병에 걸려 며칠만에 핼쓱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소녀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결국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말한다. 소년은 소녀에게 주기 위해 밤에 몰래 호두를 따러 간다. 그러나 호두는 소녀에게 전해지지 못하고 소녀는 이사 가기 전날 밤에 죽게 된다. 소녀는 유언으로 소년과의 추억이 얽힌 자기의 옷을 자신과 함께 묻어 달라는 유언을 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순수 소설

◎ 배경 : 시간(현대) / 공간(어느 시골 마을)

◎ 시점 : 3인칭 관찰자 시점

◎ 문체 : 간결체

◎ 구성

발단 - 소년과 소녀의 만남

전개 - 소년과 소녀의 사귐.

위기 - 소나기를 만남

절정 - 소년과 소녀의 깊은 사랑

결말 - 소녀의 죽음과 유언

◎ 제재 : 소나기

◎ 주제 : 소년과 소녀의 순수한 사랑

◎ 출전 : <신문학>(1953)

 

3. 등장 인물

◎ 소년 : 순박하기만 한 시골의 소년인데, 서울에서 왔다고 하는 윤 초시네 증손녀인 소녀에게 정을 느낀다.

◎ 소녀 : 윤 초시네 증손녀로 아름답고 귀여운 도시 아이인데, 몸이 허약하여 끝내 숨을 거둔다.

 

4. 이해와 감상

황순원(黃順元)의 단편 소설로 1953년 <신문학> 5월호에 발표된 작품이다. 이후 1956년 중앙문화사의 단편집 “학(鶴)”에 수록되었으며, 1959년에는 영국의 <인카운터(Encounter)>지(誌) 단편 콩쿠르에 유의상의 번역으로 입상․게재되기도 하여 세계적인 작품으로 평가를 받기도 했다. 시골 소년과 도시 소녀의 청순하고 깨끗한 사랑을 소재로 한 순수 소설의 백미로 일컬어진다. 개울가를 배경으로 한 소년과 소녀의 만남에서 비롯되는 이야기는 소년과 소녀의 성격과 심리 변화를 통해 극적 분위기를 이끌어 내고 있다. 소극적인 소년의 모습에서 적극적인 모습으로 변해 가는 소년의 행동은 곧 소녀에 대한 사랑의 깊이가 심화되는 사건의 전개 과정을 만들어준다. 특히 황순원의 군더더기 없는 깔끔하고 간결한 문체는 이런 극적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전혀 손색이 없다. 소녀의 죽음과 옷을 묻어달라는 간절한 유언은 많은 독자들의 감동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 결국 이 작품은 이성에 눈떠 가는 사춘기 소년 소녀의 아름답고 슬픈 첫사랑의 경험을 서정적으로 그린 작품으로 볼 수 있다.

 

▶ 어둠 속에 찍힌 판화(版畵)

 

1. 줄거리

1․4 후퇴 직후로 추정되는 해, ‘나’가 피난지 대구에서 겪은 일이다. 이사 온 날 저녁 바깥주인이 인사를 겸해 술상을 봐 두고 ‘나’를 부른다. 그는 말머리를 사냥 이야기로 돌린다. 전문 사냥꾼인 듯싶은 그는 아내의 눈치를 살피는 것으로 보아 사연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원래 그는 대구에서도 이름난 사냥꾼이었다. 지금부터 육 년 전, 결혼 십여 년 만에 아이를 가진 부부는 태 중에 좋다는 노루나 사슴의 피를 먹기 위해 함께 사냥에 나선다. 사냥을 나선 다음날 쉽게 노루를 잡아 피를 받아 마신다. 그러나 몰이꾼들이 고기를 먹기 위해 노루의 배를 가르다가 새끼를 밴 노루임을 발견하고는 수군거린다. 이 이야기를 들은 그의 아내는 갑자기 구역질을 하면서 마신 피를 토한다. 그 날 밤 아내는 애절한 노루의 울음소리를 듣고 무서워 남편을 깨운다. 남편은 낮에 잡은 노루의 수놈이라 판단하고 즉시 총을 들고 나간다. 아내는 만류하다가 그 자리에 쓰러진다. 그 날 밤으로 여섯 달 된 아이를 유산한 아내는 그 후에도 임신을 하지만 계속 5, 6개월이 되면 유산하게 된다. 첫 유산 이후 남편의 사냥을 말리던 아내는 남편이 말을 듣지 않자 사냥 도구 일습을 어디엔 가 없애 버린다. 이야기를 마친 사내는 몰래 감춰 둔 사냥용 총알을 담은 상자를 가져와 자랑을 한다. 그러나 그의 아내가 들어오는 기척에 황급히 감추어 버린다. 남편이 나간 사이 그녀는 남편이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모두 알지만 모르는 척하고 있다고 '나'에게 말해 준다. 순간 ‘나’의 머릿속에는 어둠 속에서 조그만 상자를 들고 그것을 감출 장소를 찾는 중년 사내가 그려진 한 장의 판화(版畵)가 떠올랐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1․4 후퇴 직후) /공간(피난지 대구의 어느 전직 사냥꾼의 집)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구성 : 액자 구성

발단 - 이사 온 날 저녁 ‘나’는 주인 사내와 마주앉아 술을 주고받음.

전개 - 주인 사내의 이야기를 통해 그가 전에 사냥꾼이었음을 알게 됨.

위기 - 이삼 일 뒤 다시 주인 사내의 과거사를 듣게 됨.

절정․결말 - 사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주인 사내가 감추어 둔 총알을 보여 준다. 아내가 들어오자 황급히 그것을 감추러 나가고 그의 아내는 남편의 행동을 모두 알고 있다고 말함.

◎ 주제 : 생명에 대한 외경(畏敬)과 직업에 대한 집착 사이의 갈등

◎ 출전 : <신천지>(1952)

 

3. 등장 인물

◎ 나 : 서술자. 주인 사내의 이야기를 옮기는 역할을 함.

◎ 주인 사내 : 전직 사냥꾼. 사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아내 몰래 총알을 숨겨 두고 수시로 감상하는 인물. 입담이 뛰어남.

◎ 안댁네 : 사냥꾼의 아내. 육 년 전, 새끼를 밴 사슴의 피를 먹고 유산한 후 남편의 사냥을 만류하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여인. 자기 언니로부터 아이를 얻어다 키움.

 

4. 이해와 감상

1952년 <신천지>에 발표된 단편 소설로서,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액자식 구성을 통해 사냥꾼 부부의 특이한 체험을 제시함으로써 생명에 대한 외경심(畏敬心)을 일깨우고 있다. “목넘이 마을의 개”, “이리도”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동물에 빗댄 인간사를 다루는 작가의 솜씨를 접할 수 있다. 작가 황순원만큼 일상적 제재를 허구적 윤색을 가미하지 않은 듯 담담하게 적고 있는 경우도 흔치 않다. 잘못하면 운치 없는 한담(閑談)으로 떨어질 위험성이 많은 소재를 조촐하게 완성시켜 놓은 데서 작가의 솜씨가 잘 드러난다. 이 작품은 피난지 대구의 어느 집에서 전직(前職)이 사냥꾼인 한 사내에게서 듣게 되는 경험담이다. 어쩌면 한 사내의 넋두리에 불과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작가는 이것을 특유의 필치로 재구성하여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고 있다. 이 소설의 핵심은 내부 액자(額子) 형식으로 전달되는 주인 부부의 과거사이다. 신비스럽기도 하고 비과학적인 이야기 같은 주인 사내의 경험담을 통해 작가는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일깨우기에 성공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자연과 인간의 관계만을 그린 것은 아니다. 주인 사내와 그 아내의 태도는 소설은 역시 인간의 문제임을 말해 준다. 먼저, 사냥에 대한 사내의 애착, 아이가 없는 상황에서 아내의 거듭된 유산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며 그 원인은 분명 자기 탓이었다. 그럼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그 태도야말로 과연 ‘나’에게 하나의 ‘판화’로 남을 만큼 강렬한 것이었다. 또한, 아내의 속 깊은 마음 역시 인상적이다. 아직도 사냥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남편이 안쓰러워서 사냥 총알을 감추는 것을 모르는 척 눈감아 주는 그녀의 그 깊은 뜻을 ‘나’는 헤아리지 못한 것일까? 자연의 섭리가 늘 어둠 속에 감춰져 있듯이 그들 부부의 미묘한 내면 심리도 논리적 판단의 세계는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의 제목 ‘어둠 속에 찍힌 판화’는 더욱 이채롭다. 그러나 작가는 이 소설의 무게 중심을 생명에 대한 외경감(畏敬感) 쪽에다 두고 있다. 마지막 문장인 “어둠 속을 몇 장의 신문을 안고 돌아온 우리 두 어린것의 이불자락이라도 여며 주고만 싶었다.”가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다. 참고로 이 작품의 서사 구조를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인물

삶의 가치

상실

회복(대리 만족)

남편

사냥하는 것

사냥을 금지 당함.

총알

아내

아이를 갖는 것

유산

양자(養子)

▶ 이리도

 

1. 줄거리

만수와 ‘나’는 만수네 단칸방에서 꿈과 동경을 키워 나가던 중, 어느 추운 겨울 밤 만수 외삼촌으로부터 그가 실제로 겪었던 ‘홍안령 저쪽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몽고 땅에 간 만수 외삼촌은 어떤 집에서 묵게 되었다. 그 곳에서 우연히 만난 일본인, 그리고 몽고인 주인과 함께 세상 이야기를 하던 중 개 짖는 소리를 들었다. 주인은 이리 떼가 나타난 것이라고 말하며, 이리 떼는 직접 총격을 받으면 미친 듯이 달려든다는 속성을 국경선을 지키는 군인 셋의 죽음을 예로 들어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총을 빼 든 일본인은 ‘대일본 제국 신민의 솜씨’를 보여 주겠노 라며 주인의 만류를 뿌리치고 이리 떼를 향해 집을 나섰다. 만수 외삼촌과 몽고인은 어서 돌아오라고 외쳐댔지만 잠시 후 몇 발의 총성이 울리고 잠잠해졌다. 만수 외삼촌은 일본인이 무사하기를 바라면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집주인은 만수 외삼촌 앞에 일본인의 권총을 내밀었다. 권총에는 검붉은 피가 묻어 있었고, 그 양면에는 이리의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액자 소설

◎ 배경 : 시간(일제 강점기) / 공간(몽고의 어느 마을)

◎ 시점 : 도입(1인칭 주인공 시점), 중심 이야기(작가 관찰자 시점)

◎ 문체 : 설명적 진술(지문과 대화를 따로 구분하여 표현하지 않음)

◎ 구성

현재 - 중학 시절 회상(도입 액자)

과거 - 만수와 놀던 이야기(전개 액자)

대과거 - 만수 외삼촌 경험담(중심 이야기)

◎ 주제 : 생존에 대한 강인한 의지. 한민족의 생명력과 저항 의지

◎ 출전 : <백민>(1950)

 

3. 등장 인물

◎ 만수 외삼촌 : 만주 지방을 떠돌아다니던 사람. ‘나’와 만수에게 홍안령 저쪽에서 직접 경험한 ‘이리와 일본 사람’에 얽힌 사건을 들려줌으로써 넓은 세계로 눈뜨게 했던 인물

◎ 일본인 : 무모한 행동을 하다가 이리에게 죽음을 당함.

 

4. 이해와 감상

“이리도”는 1950년 2월 <백민(白民)>에 발표된 단편 소설로, 역시 생존을 위협하는 것에 대한 저항 의지와 민족의 생명력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큰 작품이다. “이리도”를 피상적으로만 판단한다면 단순히 한 일본인의 무모한 행동과 처참한 죽음에 그치겠지만 이 소설은 몇 가지 상징에 의해 그 주제가 내면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중심 이야기의 인물은 한국인, 몽고인, 일본인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러한 인물 구조는 작가의 의도적 배려에 의한 것으로 당시의 역사적․지정학적 대립 관계를 상징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또한, 살상 무기로 일본인이 가지고 있던 권총은 잔인한 무력과 침략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리떼를 섬멸하겠다던 일본인은 이리 떼의 공격으로 죽음을 당하고 만다. 그가 남긴 권총의 이빨 자국은 하찮은 ‘이리’마저도 그 생존에 위협을 받으면 반발하고 투쟁한다는 생존에 대한 의지지만 그 이면에는 강압적인 침략자에 대한 식민지 민족의 생명력과 끊임없는 저항 의지라는 인간사가 표출되어 있다. “이리도”는 어린 시절의 옛 이야기를 전개시키기 위해 액자 구성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액자의 틀이 내부 이야기를 모두 둘러싸고 있는 것이 폐쇄적 액자 소설이라면, “이리도”는 액자의 틀, 즉 외부 이야기의 뒷부분이 빠져 있는 개방적 액자 소설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작품의 경우는 생명에 대한 외경심(畏敬心)뿐만 아니라 민족의 심성을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감정에 치우쳐 예술적인 시각을 유지하기 어렵다. 이러한 위험성을 비껴 나가기 위해 작가는 이 작품에 이런 액자식 구성을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액자식 구성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 카인의 후예(後裔)

 

1. 줄거리

해방 직후, 삼팔선 이북 평안도의 어느 고을에서 일어난 이야기다. 박훈은 그 고장 대지주의 아들로, 어렸을 때 부모와 함께 고향을 떠나 평양에서 살다가 3년 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야학당을 개설하고 학교에 가지 못한 청소년을 가르치며 지내 오던 중이다. 부모를 잃고 혼자가 된 박훈을 3년 동안 뒷바라지해 준 사람은 오랫동안 박훈네 집 토지를 관리해 온 도섭 영감의 딸 오작녀이다. 오작녀는 결혼한 몸이지만 남편이 가출해 박훈과 한 집에 머무르면서 박훈의 시중을 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해방이 되고 소련 군대가 들어온 삼팔선 이북은 소련식 공산주의 체제가 되면서 세찬 변혁이 일기 시작했다. 지주의 땅을 빼앗아 소작하던 농민들에게 나누어준다는 명목으로 토지 개혁령이 반포되고, 지주와 지주의 가족들은 반동으로 몰려 숙청 당하는 운명을 맞게 되었다. 또한 공산당에서 파견된 공작원이 인민 재판을 시작했다. 농민들을 선동해 지주에게 형벌을 주는 즉석 약식 재판이었다. 지주 계급인 박훈의 삼촌은 인민 재판을 받고 끌려가 행방이 묘연해졌고, 박훈 자신도 인민 재판에 끌려갔다. 그러나 무산 계급의 딸인 오작녀가 인민 재판 중에 뛰어들어 박훈과 자기가 결혼한 사이라고 주장하는 바람에 박훈은 무사히 풀려 나게 된다. 박훈과 오작녀는 박훈이 고향을 떠나 평양으로 이사 가기 전, 어렸을 때부터 서로 호감을 지닌 사이이다. 박훈이 고향으로 돌아와 오작녀와 한 지붕 밑에 지내면서 그러한 호감은 이제 애정의 경지에까지 다다른 상태다. 그리하여 오작녀는 남편이 자신에게 돌아왔는데도 가지 않았고, 아버지인 도섭 영감이 박훈에게서 떼어놓으려고 애써도 듣지 않고, 오히려 동생 삼득이를 시켜 박훈을 적극 보호한다. 그러나 박훈은 오작녀에게 애정을 품었으면서도 오작녀와 육체적 관계를 맺지 않는다. 그러던 중 박훈의 삼촌 용제 영감이 끌려갔던 탄광에서 탈출해 와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러자 박훈은 사촌 동생 혁과 함께 삼팔선 이남으로 탈출할 것을 결심한다. 그리고 이 소설은 혁이 도섭 영감을 죽이고 떠나겠다는 결심을 전해 듣고, 박훈이 대신 도섭 영감을 산으로 유인해 칼로 찌르는 장면에서 끝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장편 소설

◎ 배경 : 시간(8․15 해방 전후) / 공간(북한)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제재 : 1945년 8․15 해방 전후의 토지 개혁

◎ 주제 : 분단 상황의 민족적 비극

 

3. 등장 인물

◎ 도섭 영감 : 한 청년의 협박에 못 이겨 토지 개혁의 행동대원으로 일하게 되는 것은 사회주의에 대한 동조가 아니라 자기 생존 본능, 보호 본능으로 보아야 한다.

◎ 박훈 : 토지 개혁에 직면해 삼촌(박용제)과 같이 일말의 미련을 보이지도 않고 윤 주사처럼 증오심이나 최후의 몸부림을 보이지 않고, 관념과 체념의 상태에 빠진다(패배 의식과 충동).

◎ 오작녀 : 매사에 적극적이며 열정적, 모험적, 분명한 성격임.

 

4. 이해와 감상

□ “카인의 후예”의 시대적 배경 : 이 소설을 잘 이해하려면 우선 배경이 되는 시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 제국주의의 무력 강압에 의해 국권을 빼앗긴 채 36년 간 식민 통치를 받은 끝에 1945년 8월 15일에 해방되었다. 그러나 그 해방은 아쉽게도 우리 민족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2차 대전 중 일본과 대항해 싸웠던 연합국의 힘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일본이 항복을 하자 연합국을 대표해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에 군대를 진주시켰다. 한반도 안에 있는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시킨다는 명목이었다. 그러나 일본군 무장 해제가 완료된 뒤에도 연합군은 한반도에서 철수하지 않았다. 우리 민족의 정치적, 경제적 역량이 부족하여 곧바로 독립 국가를 건설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런 가운데 소련군이 진주한 삼팔선 이북 지역에서는 서방식 자유 민주주의 및 자본주의 체제가 태동했다. 그 중에서도 삼팔선 이북 지역의 변혁은 급격했다. 해방 이듬해에 접어들자마자 무산 대중(無産大衆)인 인민이 주인 되는 나라를 세운다는 명목을 내세워 이른바 ‘인민의 적’을 숙청하기 시작했다. 공산주의자들이 정한 인민의 적은 지주, 자본가, 일제 시대의 관리, 무당, 점쟁이, 종교인, 지식인 등이었다. 소련의 군정이 급조해 놓은 이북의 임시 정권은 1946년 3월 5일, 전격적으로 토지 개혁을 발표해 지주들의 토지를 무상으로 몰수했다. 이처럼 이 소설은 해방 직후 삼팔선 이북에 세워진 공산주의 정권이 정한 인민의 적 숙청과 토지 개혁의 소용돌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 시대를 증언하는 문학 : 소설은 시대를 증언하는 기능과 예술 형상화의 기능을 함께 지니고 있다. 그래서 소설(또는 문학)을 반(半)예술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카인의 후예”는 시대를 증언하는 역할에 상당한 무게를 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카인의 후예”를 읽으면 해방 직후 삼팔선 이북에서 있었던 독특한 소용돌이가 선연하게 드러나 보인다. 시대를 증언하는 방법에도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거울처럼 비쳐 보여 주는 방법이고 또 하나는 그림을 그려 보여 주는 방법이다. 거울처럼 비쳐 보여 주는 방법은 시대상을 보여 주되 작가의 주관을 배제하고, 있는 사실 그대로 객관적으로 정확하고 냉정한 태도를 취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듯 보여 주는 방법은 작가의 주관적 평가를 개입시켜 그 시대의 현상을 증언하는 태도이다. “카인의 후예”는 그 시대의 사회상을 거울에 비치듯 보여 주면서도 아주 객관화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작가의 주관이 어느 정도 가미되어 있다. 즉 “카인의 후예”에서는 박훈을 비롯한 지주 계급 쪽에 조금 더 비중을 두고 작품을 전개했다. 또한 작품 내용의 입장에서 볼 때 작가가 의식했든 의식하지 못했든 그 시대의 상황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삼팔선 이북에 자리 잡은 공산당 지도부는 혁명처럼 갑작스러운 변화를 일으켰다. 과거의 상층 계급을 갑작스럽게 하층 계급으로 끌어내리고 과거의 하층 계급을 갑자기 부상시켜 놓았다. 오랫동안 지녀 온 풍속과 관행도 갑작스럽게 깨 부숴 놓았다. 사회는 가둬 놓았던 물을 별안간 쏟아 낸 듯한 그리고 물길을 거꾸로 돌려놓은 듯한 혼란이 일어났다. 급하더라도 순리에 따라 해야 하는데 그러한 변혁은 순리와는 상관없는 무리와 억지여서 부작용이 낙석처럼 떨어져 굴러다녔다. 또한 친밀하던 인간 관계가 갑작스럽게 깨어져 적대 관계로 바뀌고 폭력과 살육이 자행되었다. 따라서 양식과 지성을 갖춘 작가로서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개성적인 성격 묘사 : 이 작품에 빛을 더해 주는 것은 등장 인물의 성격 묘사이다. 특수한 예를 제외하고는 소설에는 필수적으로 인물이 등장한다. 작가는 등장 인물을 통해서 독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공 또는 작품 속의 해설자는 ‘작가의 대리인’이라고도 말해진다. 그러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뚜렷한 개성으로 부각되지는 못한다. 어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개성을 지니지 못하고, 사건을 진행시키고 매개하는 역할만 담당하기도 한다. 그런 경우는 작가가 인물 성격 부각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거나, 인물 성격 묘사를 게을리 했기 때문에 생긴다. 어쨌든 성격이 잘 묘사된 인물은 소설에 생기와 흥미를 더해 주고 소설을 풍요롭게 한다. “카인의 후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뚜렷한 개성을 지녔다. 주인공 격인 박훈은 전형적인 지식인의 한 유형이다. 대지주의 아들이지만 가난한 시골 사람들을 위해 야학을 개설하고, 정직하고 검소한 생활을 한다. 그러나 자신이 사랑하는 오작녀와 한 지붕 밑에서 3년을 함께 지냈으면서도 속마음을 고백하지 못하고 우유 부단함 속에 갇혀 지낸다. 또 한 사람의 주인공 격인 오작녀는 사랑하는 박훈에게는 온순하고 헌신적이면서, 박훈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모든 위험에 용감하게 맞서는 당찬 여인이 된다. 오작녀의 아버지 도섭 영감은 냉혈한 기회주의자다. 박훈네 집 토지를 관리하는 마름일 때는 소작인에게는 냉혹하면서도 지주에게는 개처럼 충성스럽더니, 해방이 되고 세상이 뒤집어져 지주가 괄시를 받고 매도되는 상황이 되자 주저 없이 공산당에 붙어 과거의 주인인 박훈을 앞장서서 비난하고 매도한다. 한편 오작녀의 남편은 건달이면서도 나름대로 멋과 의리를 지닌 사내다. 박훈의 삼촌 용제 어른은 토지를 몰수당하고 끌려가 광산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탈출해 고향으로 돌아온다. 자신이 주도해 건설하다가 끝을 맺지 못한 상태로 있는 저수지를 못 잊어서였다. 어떤 사업을 일으키면 거기 속속들이 빠져들고야 마는 뛰어난 장인(匠人) 같은 인물이다. 용제 어른의 아들이며, 박훈의 사촌 동생인 혁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적극적 성격의 인물이다. 그밖에 고전적 도리(道理)의 인물 당손이 할아버지, 이중 성격의 기회주의자 흥수, 말 없고 단순하고 힘센 곰 같은 청년 삼득이, 전형적인 공산당 조직의 하수인인 공작원 등, 수많은 등장인물의 다양한 성격을 뚜렷하게 색색으로 구별하여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인물들은 그냥 성격만 다른 것이 아니다. 해방 직후 평안도 순안 부근의 어느 시골에 몰아 닥친 공산주의의 거센 물결 속에서 상처 입거나 죽지 않으려고 허둥거리는 모습으로 부각된 인물들이다. 격변기를 만났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대응해 가는가. 물론 성격에 따라 자기 나름의 대응을 하겠지만 이 소설에서는 거꾸로 대응하는 과정을 통해서 각자의 독특한 성격이 나타나고 있다. 이 소설에서 격변기에 적응하고, 적응하려고 허둥거리고, 적응하지 못해 낙엽처럼 떨어져 짓밟히는 사람들은 앞선 시대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이 소설이 마치 정말로 일어났던 일을 기록한 것처럼 실감나는 것은 등장 인물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각기 맡은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소설은 인물이 등장하고, 그 인물이 다른 인물과 사건을 만들고, 그 사건은 다른 사건의 원인이 되고··· 하는 식으로 전개가 된다. “카인의 후예”에서는 박훈과 오작녀의 만남이 기본적인 사건을 만들고 그 사건 속에 도섭 영감과 오작녀 남편을 비롯한 많은 인물이 연루됨으로써 사건이 복잡한 양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사건이 복잡한 양상으로 발전되는 것은 소설을 전개해 나감에 있어 거의 필수적인 사항이며, 또한 거기에는 인물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꼭 필요한 인물들을 가려내 적재적소에 배치한다는 것은 고도의 용병술에 견줄 수 있는 것이다.

□ 우리 민족 비극의 상징 : 작가는 이 소설에 왜 “카인의 후예”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소설의 제목은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 사람의 이름처럼 다른 소설들과 구별하는 역할도 하고, 독자의 흥미를 끌어 소설을 읽도록 만드는 역할도 하고, 그 소설의 내용을 집약하는 역할도 한다. “카인의 후예”는 소설의 주제를 강하게 암시하는 제목이다. 카인은 하느님이 창조한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의 두 아들 중 맏이이다. 그리고 아우인 아벨을 죽임으로써 인류 역사상 최초의 살인을 저지른 인물이다. “카인의 후예”란 최초의 살인자이며 형제를 질투하고 증오한 카인의 피를 받은 후손이라는 뜻이다. 박훈의 고향 마을 사람들은 낯선 이념의 도입으로 인해 질투하고 증오하고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그것은 형제와 다름없는 한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범죄이다. 그러나 이러한 범죄는 박훈의 고향 마을에 국한되지 않는다. 삼팔선 이북 지역 전체에서 일어난 일이며, 나아가 삼팔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한 우리 민족 안에서 빚어진 질투, 증오, 살인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 민족 안에서 빚어진 이런 비극과 범죄는 카인과 아벨, 아담과 이브에게로 소급되어 인류의 원죄와 연결된다. 소설은 구체적인 사건, 개개인의 이야기로 꾸며지지만, 그 구체적인 사건, 개개인의 이야기는 어떤 지역 사회, 민족, 국가, 인류에게로 연결되는 보편적 의미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소설 “카인의 후예”는 그렇듯 해방 직후 평안도의 한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사건을 인류의 원죄까지 연결시키고, 또 거꾸로 인류의 원죄라는 거대한 주제를 평안도 시골 마을의 조그만 사건으로 상징화시키는 작업을 해냈다. “카인의 후예”는 역사적 사건을 보편적 의미로 확대시켜 형상화한 훌륭한 작품인 것이다(독서 평설 96. 11).

 

<참고> 작품 비평(평론가 천이두)

“카인의 후예”는 황순원의 문학적 궤적에서 볼 때 두 가지 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하나는, 앞서서 잠깐 언급한 바 있지만, 그의 여러 작품들 가운데서는 드물게 당대 현실의 정치적 이슈와 긴밀히 관련되어 있고, 따라서 그의 작품들 가운데서는 드물게도 고발 문학적 경향을 띠고 있는 작품이라는 것, 다른 하나는 그의 단편 작가로서 추구하여 오던 문학적 과제가 한 정점의 성취를 이룩하면서 장편 작가에로의 지표를 열어주고 있는 작품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이 작품은 “별과 같이 살다”에 이은 두 번째 장편 소설이다. 그러나 “별과 같이 살다”는 애당초, 개개의 부분들을 독립시켜 발표한 사실로서도 알 수 있듯이, 장편 소설로서의 뚜렷한 서사적 골격을 갖추었다고 하기 어렵다. ‘곰녀’라는, 그의 단편 문학에 곧잘 등장하는 토속적 여인상의 인생의 여러 단면들이 그 자체로서는 아름다운 서정시적 정경을 펼쳐 보이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일종의 연작 소설 같은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곰녀’라는 인간상 자체가 장편 소설적 전개를 보이기에는 너무도 마뜩지 않은 폐쇄성을 지니고 있다. ‘곰녀’의 생애의 과정과 병행하여 식민지 시대에서 8․15 해방이라는 역사적 전환기가 펼쳐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역사적 전환기를 자신의 생애의 과정 속에 탄력 있게 수렴하면서 대응해 나가기에는 그녀는 너무도 완강한 성격적 일관성을 보이고 있다. 그녀는 이러한 커다란 변혁을 치르면서도 한결같이 소박하고 어리석고 착하고 따뜻한 자기 속성만을 간직한 채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여기 비하면 “카인의 후예”에 있어서는 8․15 직후의 북한에 있어서 살벌한 격동기를 한 지식인 ‘박훈’의 시선으로 대응해 나가고 있다. 따라서 ‘곰녀’의 경우에는 볼 수 없는 중요한 계기가 열리게 되는데, 그것은 작중 인물 ‘박훈’과 당대 현실 사이의 갈등 관계가 심화되고 또 내면화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의 장편 문학에의 지평은 이런 계기에서 열리게 된다. ‘박훈’의 모습에서 우리는 살벌한 사회적 격동기 속에 부대끼며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지식인의 갈등의 생태를 볼 수 있다. 가혹한 격동기에 대응하는 ‘박훈’의 자세는 정면 대결의 그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소극적이며 방관자적인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는 ‘김병익’이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행동주의자가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 순응주의자, 체념주의자가 아닌’ 것도 사실이다. 그는 끝내 격동의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는 방관자의 위치를 고수함으로써 ‘침묵자로서의 부정의 행동’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극적인 듯하면서도 완강히 자기 내면의 순결성을 지켜 가는 박 훈의 모습은 그의 그 뒤의 장편소설의 긍정적 인물들, 예컨대 “인간접목”의 ‘종호’, “나무들 비탈에 서다”의 ‘동호’, “일월”의 ‘인철’ 등에도 투영되어 있다. 그리고 그런 면은 앞서의 ‘원응서’의 증언에서 볼 수 있는 바 작가 황순원 자신의 인간적 변모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이 작품은 고발 문학적 성격이 짙다고 했지만, 그러나 물론 이 작품은 그런 차원을 훨씬 넘어서 있다. 박 훈의 생태에서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오히려 가혹한 시대를 이겨내는 한 지식인의 갈등과 모색의 생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이 작품에 있어서 더 큰 흥미의 초점이 되는 것은 ‘오작녀'의 모습이다. ‘오작녀’는 ‘곰녀'를 비롯한 많은 그의 단편소설의 토속적 여인상들과 진한 혈연을 맺고 있다. 그녀 역시 ‘곰녀’가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당대의 시대적 소용돌이와는 아무 상관없는 자리에 위치해 있는 인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작녀’는 ‘박훈’에게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강렬한 원시적 생명력을 발산하고 있다. 이 작품의 작중 현실이 대체로 박 훈의 시선에 의하여 관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오작녀’의 강렬한 생명력이 발산하는 빛에 의하여 ‘박훈’의 모습은 희미하다. 독자 앞에 정면으로 나타나는 ‘박훈’보다도 그의 자의식의 시선을 거쳐서야 독자에게 전달되는, 따라서 그의 자의식의 피사체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는 ‘오작녀’의 모습이 더 신선하게 독자에게 인상 지워 진다는 것은 분명 이 작품이 갖는 독특한 아이러니다. 그 아이러니의 비밀은 어디 있을까. 역시 실체 그 자체보다도 그것의 이미지를 환기시키는 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는 이 작가의 예술적 특질 탓이 아닐까. ‘오작녀’는 분명 오늘의 여인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의 배후에는 무수한 세월의 부피가 깔려 있다. 그녀의 배후에는 큰아기 바윗골의 전설, 뻐꾸기 울음, 망부석의 이미지 등등 무수한 한국적 여인상들이 무수한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에 이룩하여 놓은 농도 짙은 환상의 여울이 깔려 있다. 그녀의 모습은 당대 현실의 산문적 차원을 훨씬 넘어서는 시적 이미지로서의 그것이다. 예술가로서의 황순원의 매력은 ‘오작녀’에 이르러 한 분수령을 이룩하게 된다. 동시에 그것은 단편 작가로서의 이 작가의 문학적 과제의 한 장점이기도 하다.

 

▶ 학(鶴)

 

1. 줄거리

한 마을에서 단짝동무로 지냈던 성삼이와 덕재는 6․25가 나면서 이념을 달리하는 적대 관계로 만나게 된다. 치안 대원이 된 성삼이는 덕재가 체포되어 온 것을 보고는 청단까지의 호송을 자청하여 덕재를 데리고 나선다. 호송 도중, 성삼이는 유년 시절 때 호박잎 담배를 나눠 피우던 생각과 혹부리 할아버지네 밤을 서리하다가 들켜 혼이 난 추억들을 떠올리며 내적 갈등을 느낀다. 농민 동맹 부위원장까지 지낸 덕재에 대한 심한 적대감을 품기도 했으나, 대화를 하는 사이에 점차 적대감이 누그러지면서 덕재의 몰(沒)이념성을 알게 된다. 즉, 덕재는 스스로 공산주의 이념에 동조한 것이 아니라 빈농(貧農)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용당했을 뿐으로 사실은 땅밖에 모르는 순박한 농민이었던 것이다. 덕재는 아버지가 병석에 누워 있었고, 또 농사에 대한 고집스러운 애착으로 인해 피난하지 않고 마을에 남게 된 사실을 이야기한다. 성삼이는 자신이 피난 가던 때를 회상하면서 농사일에 대한 걱정 때문에 피난하기를 끝까지 거부하시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덕재의 처지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 어느덧 덕재에 대한 증오심이 점차 우정으로 바뀌면서 ‘고갯마루’를 넘는다. 성삼이는 고갯길을 내려오면서 전처럼 살고 있는 학 떼를 발견하고는 옛일을 회상하게 된다. 어린 시절, 학을 잡아 얽어매 놓고 괴롭히다가 사냥꾼이 학을 잡으러 왔다는 소문을 듣고 놀라서 학 발목의 올가미를 풀어준 적이 있었다. 그때 처음에는 제대로 날지 못하다가 자유로워진 학이 푸른 하늘로 날아갔던 일에 대한 추억이 그것이다. 성삼이는 덕재의 포승줄을 풀어 준다. 덕재는 처음에는 성삼이가 자기를 쏘아 죽이려고 이러나 보다고 멈칫거렸으나, “어이, 왜 맹추같이 게 섰는 게야?” 하는 성삼이의 재촉에 무엇을 깨달은 듯 잡풀 사이로 도망친다. 때마침 단정학(丹頂鶴) 두세 마리가 가을 하늘을 날고 있었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1950년 6․25 전쟁 당시의 가을) / 공간(삼팔 접경의 북쪽 마을)

◎ 경향 : 휴머니즘

◎ 시점 : 작가 관찰자 시점(부분적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이 나타남)

◎ 표현 : 암시와 상징을 통한 주제 유도

◎ 구성

발단 - 배경과 인물 제시. 황폐해진 마을의 공포 분위기

전개 - 성삼의 갈등. 자청해서 덕재를 호송하는 성삼

위기 - 성삼과 덕재의 갈등 고조. 결백을 주장하는 덕재. 우정을 되돌리려 애쓰는 성삼

절정 - 학 사냥을 하던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

결말 - 갈등의 해소. 성삼이 덕재의 포승줄을 풀어 줌. 단정학의 비상(飛翔)

◎ 주제 : 사상과 이념을 초월한 인간애의 실현

◎ 출전 : <신천지>(1953)

 

3. 등장 인물

◎ 성삼 :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받지 않은 농민. 덕재와 한 마을에서 자란 친구로 전쟁과 함께 치안 대원이 됨.

◎ 덕재 : 전쟁 발발 후 본인의 이념적 동조 없이 단지 빈농(貧農)이라는 이유만으로 농민 동맹 부위원장이 된 인물. 순박하고 선량한 마음씨를 지닌 농민

 

4. 이해와 감상

1953년 <신천지>에 발표된 단편 소설인 이 작품은 6․25전쟁이 막 휴전으로 치닫던 시기에 쓰여진 작품이다. 단짝으로 같이 자란 두 친구가 6․25라는 민족적 비극에 의해서 서로 반대편으로 갈라지나, 결코 변하지 않는 인간미가 두 사람의 동질성을 회복시켜 주는 내용이다. 삼팔선 접경의 북쪽 마을. 단짝 동무였던 성삼과 덕재는 6․25 동란 중 연행자와 피연행자의 처지로 만난다. 그러나 성삼이는 덕재가 지금 이용당하고 있는 것일 뿐,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음을 깨닫는 순간, 어린 시절 학 사냥의 기억을 되살리며 포승줄을 풀어 준다. 이념의 장벽이 우정이나 순수한 인간애를 파괴할 수 없다는 작가의 휴머니즘이 밀도 있게 그려져 있다. 황순원의 초기 작품들이 대부분 시간이나 공간 의식이 뚜렷하지 않았음에 비하여 “학(鶴)”은 흥미를 끌기에 충분한 시간적․공간적 배경 즉, 6․25로 인해 쓸쓸하고 삭막한 분위기로 변해 버린 마을을 작품의 발단부에 설정했다. 이것은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것으로, 국토 분단과 동족 상잔의 참화를 겪은 비극의 현장으로서 ‘마을’은 이 나라 강토를 대유(代喩)하고 있다. 여기에 6․25라는 비극의 시대가 무한한 자유를 동경하던 유년 시절과 대립되어 극적 효과를 높이고 있다. 구성 면에서 보면, 현재의 순차적인 진행 속에 몇 개의 과거를 삽입시키는 역전(逆轉)의 질서로 되어 있어서 결말을 위한 예시․주제의 암시․현실과의 대조 등의 기능을 하고 있다. 또, 고개를 중심으로 한 공간의 변화에 따라 갈등이 고조되고 이완되는 구조도 독특한 발상이다. 그리고 성삼과 덕재의 성격을 해설하거나 논평하지 않고 압축적인 서술과 간결한 대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제시한 것도 구성의 긴밀성에 이바지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도 황순원의 문체상의 특질이 잘 드러난다. 각 문장이 짧고 수식어가 적으며 사실적인 세부 묘사를 대담하게 생략하는 등 상황이 주는 이미지 전달에 주력하고 있다. 생각하는 부분이나 대화 부분에 따옴표를 생략한 곳이 있고 자유 간접 화법으로 처리한 곳이 많다. 학(鶴)은 주제적 사물로서 절정 부분에 나타난다. 소년들이 학(鶴)을 풀어 주었던 과거의 에피소드는 “이데올로기에 왜곡된 인간을 구원하는 힘은 인간의 순수한 마음 외에는 없다.”는 작가 의식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즉, 학(鶴)은 우정 회복의 매체가 되어 손상된 우정을 치유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 소설은 고결함 때문에 길조(吉鳥)로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별한 애착을 받는 ‘학(鶴)’을 중심으로, 이념적 갈등이 빚은 인간성의 파괴와 상실을 사랑의 힘으로 회복하고자 하는데 주제 의식을 두고 있다 하겠다.

 

<참고> 소설 “학” 에 대하여

1953년 전쟁이 휴전으로 치닫던 즈음에 “신천지”에 발표된, 황순원의 대표작이다. 민족의 비극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우정을 바탕으로 탈 이데올로기를 통한 인간성의 회복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학”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성향을 띠고 있다는 지적이 있으나, 작품의 내용이 좌우 이데올로기적 문제를 초월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덕재가 농민 동맹 부위원장을 지낸 것이 자기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으로써 덕재가 좌익이념에 대한 개념이 없다고 볼 때, 탈 이데올로기적 경향을 띤 작품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 이 작품에서 “학”이 두 인물간의 갈등을 해소시켜 주는 매개물로 작용한다. 덕재의 손을 묶는 포승줄은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야 할 학을 잡는 올가미 역할을 하지만 결국은 구속이 아닌 자유를 표상하는 반어적 이미지를 나타내게 된다. 어린 시절 사냥꾼의 올가미에 걸린 자기네 학을 몰래 풀어 푸른 하늘로 날려보냈던 두 인물의 따뜻한 인간성은 이미 이데올로기가 빚어낸 동족간의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서 잉태되어 있었던 것이다. 저만치서 성삼이가 홱 고개를 돌렸다. “어이, 왜 멍추같이 게 섰는 게야? 어서 학이나 몰아 오너라!” 그제서야 덕재도 무엇을 깨달은 듯 잡풀 새를 기기 시작했다. 때마침 단정학 두세 마리가 높푸른 가을 하늘에 큰 날개를 펴고 유유히 날고 있었다. 이처럼 어릴 적 그들이 놓아주었던 ‘단정학’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그대로 우정의 상징으로서, 두 인물의 갈등을 극복하게 하는 자유와 평화의 새로 작용하는 것이다. 또한 고향의 밤나무․담배․고갯길․아버지․꼬맹이․학 등에 대한 깊은 정을 암시한다. 송하섭은 황순원 소설의 서정성에 관하여 이 작품을 들어 사회 체제라는 이데올로기적 의식을 넘어서는 인간 생명의 소중함을 서정적으로 그리고 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나아가 그의 소설 속에서는 현실 의식과 역사 의식이 포용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이런 뜻에서 황순원 소설의 서정성은 효석(孝石)과 유정(裕貞)을 함께 수용한 것으로 소설의 서사성에 있어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구성 면에서, 현재의 순차적인 진행 속에 몇 개의 과거사를 삽입시키는 역전적 질서로 되어 있다. 결말을 위한 예시, 주제의 암시, 현실과의 대조 등의 기능을 하고 있다. 또 고갯마루를 중심으로 한 공간의 변화에 따라 갈등이 고조되고 이완하는 치밀한 구조도 돋보인다. 성삼과 덕재의 성격을 직접 해설하거나 논평하지 않고 압축된 서술과 간결한 대화로써 제시하여 구성의 긴밀성을 가져 왔다. “학”은 6․25 전쟁의 비극이 낳은 불가피한 상황의 순간적이고 가변적인 것이지만, 우정은 영원 불변의 것임을 자유롭게 날아가는 학을 통해 형상화했다. 또 전쟁으로 파괴된 자유를 순수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 속에서 회복하려는 작품인 것이다.

 

▶ 황 노인(黃 老人)

 

1. 줄거리

황 노인(黃 老人)은 부인을 잃은 후 사람들이 많이 모여 북적거리는 자리를 싫어한다. 이번 환갑 잔치 같은 것도 별로 안중에 없다. 아들과 딸은 조촐하게 동네 늙은이들에게 약주나마 대접할 생각으로 동네 여인들과 음식을 준비하지만, 황 노인은 여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저도 모르게 가슴 한 구석이 비어 옴을 느낀다. 집 밖에서 아들 당손이가 늙은 재니(광대)와 말을 주고받는 것을 보고, 그 재니가 어린 시절 차손이일 것이라 믿고 그들을 사랑채에 재워 보내도록 한다. 딸이 준비한 명주 바지저고리를 갈아입으면서 어린 시절의 어머니를 생각하고 가슴 뿌듯함을 느낀다. 그러나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한다. 황 노인은 어린 시절 퉁소를 잘 불었던 차손이에게 박절하게 대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슬픈 생각에 잠긴다. 황 노인은 동네 사람들이 모인 사랑 쪽에서 떠들썩하게 들려 나오는 노랫소리를 듣지만 혼자 있고 싶어한다. 더욱이 조 판관 영감이 자기 아내 이야기를 하자 가슴 뭉클함을 느끼며 조 판관 영감을 부러워한다. 차손이와 한 잔 나눌 생각으로 술 한 병을 들고 그들을 찾아간다. 황 노인은 차손이와 술잔을 주고받으며 한때나마 있었던 묵은 감정을 씻고, 벌써 환갑에 이른 세월의 덧없음을 차손이와 공감한다. 황 노인은 차손이의 퉁소 소리를 들으면서 잊혀져 가는 유년 시절의 추억에 젖어 든다. 이런 그들에게 어린 시절의 작은 개울과 풀피리 소리가 마음속에 되살아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해방 전후의 시기) / 공간(어느 시골)

◎ 경향 : 인간애를 바탕으로 한 휴머니즘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문체 : 사실적이고 간결함. 시적 분위기를 살리는 언어의 사용과 섬세한 서정적 문체

◎ 어조 : 회고적, 아쉬움과 연민의 어조

◎ 구성

발단 - 마음이 허전한 황 노인은 환갑을 맞고, 딸과 동네 여인들은 음식을 준비함.

전개 - 어린 시절의 차손이를 먼 빛으로 알아보고 아들에게 재워 보내도록 함.

위기 - 어머니를 그리워함. 다시 마음이 비어 옴을 느낌.

절정 - 차손이가 있는 사랑채로 찾아가 오랜 세월의 공백에서 오는 소원함을 좁혀 감.

결말 - 해금을 켜기 시작하는 차손. 지그시 눈감는 황 노인. 그들은 유년 시절을 추억함.

◎ 주제 :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과 유년 시절에 대한 동경

◎ 출전 : <신천지>(1949)

 

3. 등장 인물

◎ 황 노인 : 환갑을 맞는 노인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을 싫어한다. 유년 시절의 추억에 젖는, 훈훈한 인간미를 지닌 노인

◎ 늙은 재니(차손) : 퉁소를 잘 부는 광대. 황 노인과 동갑이며 유년 시절의 추억을 함께 한 인물

 

4. 이해와 감상

황순원의 초기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애착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작품 경향은 상실한 것에 대한 동일성의 회복이라는 지향을 보이며, 작품에서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유년 시절에 대한 회상으로 나타난다. 황 노인 ― 그는 아내를 잃고 홀몸이 된다. 환갑을 맞이한 날, 우연히 찾아온 어린 시절의 친구 재니(광대)와 해후한다. 그는 광대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어릴 적 친구를 오랫동안 외면해 왔다. 그러나 오늘 그들은 아련한 옛 추억으로 돌아간다. 소설은 잃어버린 것, 사라진 것에 대한 동일성(同一性)의 회복이라는 간절한 소망의 서사적 진술이다. 그 어디에도 뿌리내리고 살 수 없는 황막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유년 시절에 대한 동경과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어찌 보면 인간의 보편적 정서일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황 노인은 늘그막에 밀려오는 외로움과 공허감을 어릴 적의 추억으로 회귀함으로써 화해의 결말을 얻고 있다. 오랫동안 소원했던 친구인 차손이를 반가움으로 대하는 것은 과거의 추억을 되찾음으로써 아내의 죽음으로 인해 맛본 외로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보상받고자 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자신의 환갑을 위해 자식들이 모이고 동네 사람들이 모여도 그들의 부산스러움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고, 차손이에게로 가 술잔을 나누고 과거를 돌이키며 추억에 잠긴다. 말 부분에서 황 노인과 차손이가 유년 시절의 공간을 마음에 떠올리는 장면은 산문을 통해서 이루어진 높은 서정성을 느끼게 한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민족 수난기를 체험한 황 노인의 상실의 아픔과 사라져 가는 옛날의 회고, 원시성(原始性)에의 향수 등을 시적인 분위기와 색채로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스마트폰 공무원 교재

✽ 책 구매 없이 PDF 제공 가능
✽ adipoman@gmail.com 문의

eBook 구매 안내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