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선(1920~1982) |
소설가. 평남 안주 출생. 1955년 <현대문학>에 “암표”, “일요일”이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그의 작품은 서정성에 바탕 한 것과 리얼리즘에 비교적 충실한 것들로 크게 구별되는데, 서정성 짙은 작품은 아름다운 세계로의 지향을 담고 있으며, 리얼리즘 계열의 작품은 전후(戰後)의 경제적 곤궁과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사망 보류”, “냉혈동물”, “삭풍”, “하오의 무지개”, “청대문집”, “흰 까마귀의 수기” 등이 있다.
▶ 오발탄(誤發彈)
1. 줄거리
계리사 사무실 서기인 송철호는 할 일도 없이 혼자 뒤쳐졌다가 점심도 굶은 채 심한 허기를 느끼며 산비탈 해방촌 고개를 오른다. 레션 상자로 지붕을 얽은 판잣집으로 향하는 것이다. “가자! 가자!” 하는 어머니의 쨍쨍한 소리가 새어나온다. 방안에 들어선 그는 털썩 주저앉아 버린다. 가슴에 납덩이를 얹어놓은 것 같았다. 어머니의 외마디 소리는 계속 주기적으로 귀청을 때리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철호가 아무리 38선 때문에 고향에 돌아갈 수 없노라고 말해도 막무가내다. 오히려 아들을 고약한 놈으로 치부한다. 그러던 어머니를 그는 6․25 때 잃어버리고 말았다.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고 연방 “가자!” 는 외마디 소리를 지를 뿐이다. 윗방에는 영양실조로 야윈 어린 딸이 누워 잠들어 있고, 그 곁에는 누더기 담요 바지를 입은 아내가 있다. 동생 영호가 돌아왔다. 어머니의 원수를 갚겠다고 군에 자원 입대했다가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와 2년이 넘도록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매일 술타령이다. 정신 좀 차리라는 형에게 영호는 오히려 양심이라는 가시를 빼어 버리고, 윤리고 관습이고 법률이고 다 벗어 던지고 홀가분하게 살아보자고 주장한다. 그러던 영호가 이튿날 권총강도 미수죄로 연행된다. 만삭이던 아내는 난산 끝에 병원에서 숨을 거둔다. 철호는 양공주인 누이동생이 병원비에 쓰라고 준 돈으로 앓던 이를 한꺼번에 두 개 씩이나 뺀다. 그는 현기증을 느끼며 택시를 탔지만 갈 곳을 잃어버리고 횡설수설한다. 운전사는 “어쩌다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렸어.”라고 말하며 투덜거린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6․25 직후) / 공간(해방촌 일대)
◎ 시점 : 작가 관찰자 시점
◎ 표현 : 전후(戰後) 한국 사회의 암담한 현실 고발. 전쟁으로 인해 파멸해 가는 인간상과 내면의 허무를 표출
◎ 구성
발단 - 철호의 무기력한 일상 생활. 혼란과 무질서가 판치는 해방촌 일대
전개 - 철호 일가의 비참한 생활 모습
위기 - 영호의 권총 강도 행각과 아내의 죽음
절정 - 가족의 비극적 삶으로 인한 극도의 방황
결말 - 방향 감각을 상실한 철호, 피를 흘림
◎ 주제 : 전후(戰後) 소시민의 고향 상실과 가난이 준 정신의 황폐함.
◎ 출전 : <현대문학>(1959)
3. 등장 인물
◎ 철호 : 계리사 사무실 서기로 일하면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성실히 살아가려 노력하는 인물
◎ 영호 : 철호의 동생으로 사회적 모순에 반발하여 한탕주의로 살아가려고 하는 인물
◎ 어머니 : 철호의 어머니로 전쟁통에 정신 이상이 됨.
◎ 명숙 : 철호의 여동생으로 양공주 생활을 함.
◎ 아내 : 명문 여대 음악과 출신이며 가난으로 죽음.
4. 이해와 감상
이 소설은 제5회 동인문학상 수상 작품으로 <현대문학> 1959년 10월호에 발표되었다. 6․25 전쟁 직후 서울 해방촌에 사는 주인공 송철호는 일반 계리사 사무실의 서기로서 열심히 일해도 생계조차 지탱하기 힘든 하루하루의 삶에 울분을 느끼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는 소시민이다. 그의 판잣집에는 전쟁의 충격으로 실성하여 자리에 누운 채 고향인 이북으로 가자고 외치는 어머니와 제대한 뒤 2년째 실업자로 살아가는 동생 영호와 삶의 방편으로 양공주가 된 여동생, 그리고 아내와 아이가 함께 살고 있다. 송철호는 일확천금만을 꿈꾸는 동생 영호와 삶의 방법을 놓고 다투지만 정작 자신도 돈의 중요성과 절박한 현실을 외면하지 못한 채 무력감을 느낄 뿐이다. 그러던 중 동생 영호가 강도짓을 하다가 검거되었다는 연락이 오고, 뒤이어 집에서는 아내가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는 소식을 받는다. 아내의 죽음을 직접 확인한 철호는 삶의 방향을 상실한 채 무작정 치과에 들러 위험하다는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양쪽 어금니를 다 뽑고 택시를 잡아타지만 가야 할 방향을 대지 못한다. ‘어쩌다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렸어. 자기 갈 곳도 모르게.’ 운전수의 중얼거림을 통하여 주인공 가족 모두가 잘못 발사된 탄환으로 비유되는 이 소설은 6․25전쟁이 남긴 상처에 대한 고발인 동시에 소시민들의 삶의 비애와 절망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6․25전쟁과 그 상처를 그린 문학 작품 가운데서도 전쟁으로 뿌리뽑힌 삶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린 점에서 전후문학에서 빼놓지 않고 논의되는 작가의 대표작이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기록과 반영으로서는 성공했지만 전후작가로서의 작가의 한계 또한 드러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범선이 다루고 있는 인물은 “학마을 사람들”에서와 같이 주로 자연에 순응하여 사는 선량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전쟁이라는 폭력의 와중에서 아무런 대안도 없이 몰락해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자들이다. 인간과 사회를 보는 관점이 이념이나 제도의 문제를 외면한 채 역사의 밀물에 떠밀려서 변화된 모습만을 추적할 때 소시민의 생존 공간은 송철호처럼 한층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작품 때문에 오발탄이라는 유행어가 나돌 정도로 사회적 공감을 자아낸 이유는 역사의 주체로서는 역량이 부족하고 피동과 순응의 인간이랄 수 있는 소시민이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 학(鶴) 마을 사람들
1. 줄거리
예로부터 학마을 사람들은 학을 신처럼 믿어 왔다. 왜냐 하면, 학은 길흉(吉凶)의 전달자였기 때문이다. 학이 날아온 해는 길운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해는 액운이었다. 일제 강점기 말에 이장(里長) 영감과 박 훈장의 손자들이 징용으로 끌려가던 해는 학이 날아오지 않았지만, 광복이 되고 손자들이 돌아온 해에는 어김없이 학이 날아왔다. 그러던 어느 해 나무에서 학의 새끼 한 마리가 떨어져 죽었다. 그리고 6․25가 일어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전쟁의 사회적․정치적 배경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학이 흉조를 보였다는 사실만으로 마을에 들어온 인민군을 경계한다. 학은 동족 상잔이라는 6․25의 성격을 마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며, 마을 사람들은 조금의 의심도 없이 학이 보여 준 바를 믿는 것이다. 이 마을에서 자라난 사람 중 변모를 겪은 것은 바우뿐이다. 바우는 마음에 두고 있던 봉네가 덕이를 택한 후 마을을 떠났다가 인민군이 되어 돌아온다. 마을의 신화적인 질서에서 빠져나가 있던 그는 마을의 신화를 부정하며 학을 죽이고, “반동, 반동.”을 외치며 돌아다닌다. 바우는 마을 사람들이 인민군을 꺼려하는 것이 학이 보인 흉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학을 쏘아 죽인다. 그러나 전세가 바뀌어 곧 후퇴한다. 마을 사람들은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전쟁이 끝날 무렵 돌아온다.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손자 바우를 기다리던 박 훈장이 시체로 발견되고 마을에서 가장 어른인 이장이 죽는다. 덕이와 마을 사람들이 이장과 박 훈장의 장례를 치르고 마을로 내려올 때에, 봉네의 손에는 조그만 애송나무 한 그루가 들려 있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구한말에서 6․25 직후까지) / 공간(강원도 어느 두메 산골)
◎ 시점 : 작가 관찰자 시점
◎ 표현 : 좌절감과 패배 의식이 만연하던 1950년대에 상실된 것의 회복과 평화에 대한 의지를 표현함.
◎ 구성
발단 - 노송과 학에 얽힌 유래. 일제 강점 이후 30 여 년 간 학이 오지 않음.
전개 - 한발과 재난이 이어짐. 청년들이 징용에 끌려감.
위기 - 학의 새끼 한 마리가 죽음. 6․25 발발
절정 - 바우의 행패. 마을의 수난
결말 - 타버린 학나무. 전쟁이 끝남. 이장과 박 훈장 죽음. 새로운 애송나무를 심음.
◎ 주제 : 수난을 겪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의지적인 인간의 모습
◎ 출전 : <현대문학>(1957)
3. 등장 인물
◎ 덕이 : 이장 영감의 손자로 봉네와 결혼함. 봉네를 사이에 두고 바우와 갈등을 빚음.
◎ 바우 : 봉네가 덕이와 결혼하자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공산당이 되어 돌아온 파괴적 인물
◎ 봉네 : 소박하고 순진한 처녀로 학마을의 풍습을 알게 해 주는 인물
◎ 이장 영감, 박 훈장 : 학마을의 내력을 밝혀 주는 인물들로 학마을과 학을 믿고 사랑함.
4. 이해와 감상
1957년 <현대문학>에 발표된 단편 소설. 일제 말기부터 6․25 동란까지를 시대 배경으로, 고난과 폐허 속에서도 삶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삶에의 애착을 지닌 인간상을 고고한 학을 매개로 하여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은 단편 소설에서 다루기 어려운 긴 시간을 담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접어들기 전부터 6․25 동란 직후까지에 상당하는 역사가 이 소설 속에서 전개된다. 그러나 이러한 긴 시간이 인상의 통일이나 효과의 단일성을 목표로 하는 단편 소설의 본질적 요건을 전혀 손상시키지 않는다. 전체적인 구조를 통일하면서 스토리의 전개를 압축시켜 주는 학의 이야기가 소설 속의 모든 사건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이 마을로 찾아오던 시절’, ‘학이 찾아오지 않던 시절’, ‘다시 학이 찾아온 시절’, ‘학의 수난 시절’ 등으로 구분되는 학 이야기는 이 소설의 짜임새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골격을 이루며, 학의 출몰과 그 수난은 소설 속 모든 사건의 징후와 결과로 작용한다. ‘학이 마을을 찾아오던 시절’은 이장 영감과 박 훈장의 젊은 시절로서 회상의 시간이다. 그리고 그것은 행복의 시간이며, 식민지가 시작되기 이전에 해당된다. ‘학이 찾아오지 않던 시절’은 식민지 시대가 시작되는 때로 30년이 넘도록 학은 이 마을을 찾아오지 않는다. 수난과 고통 속에 마을 사람들이 흩어지고 이장 영감과 박 훈장의 손자인 덕이와 바우가 징병으로 끌려나간다. ‘다시 학이 찾아온 시절’은 해방의 시대와 연결된다. 징병에 나갔던 바우와 덕이가 돌아오고 마을은 다시 활기를 띤다. 풍년이 들고 덕이는 결혼한다. ‘학의 수난 시절’에서는 학의 수난과 함께 6․25의 비극이 전개된다. 바우의 행패와 함께 온 마을이 고통에 빠진다. 전쟁은 끝났으나 학은 이미 사라져 버렸고, 학이 깃들이고 살던 나무마저 불타 버린다. 박 훈장과 이장 영감이 죽고 마을 사람들은 다시 학이 날아와 깃들이며 살아갈 수 있도록 애송나무를 준비한다. 그 애송나무야말로 손상된 공동체적 질서를 회복하려는 마을 사람들의 깊은 의지의 표상이다.
이상(1910~1937) |
본명 김해경(金海卿). 서울 출생. 보성고보(普成高普)를 거쳐 경성고공(京城高工) 건축과를 나온 후 총독부의 건축기수가 되었다. 1931년 처녀작으로 시 “이상한 가역반응(可逆反應)”, “파편의 경치”를 <조선과 건축>지에 발표하고, 1932년 동지에 시 “건축무한 육면각체(建築無限六面角體)”를 처음으로 ‘이상(李箱)’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다. 1933년 3월 객혈로 건축기수직을 사임하고 백천 온천(白川溫泉)에 들어가 요양을 했다. 이 때부터 그는 폐병에서 오는 절망을 이기기 위해 본격적으로 문학을 시작했다. ‘이상’이라는 이름을 쓰게 된 것은 공사장 인부들이 그의 이름을 잘 모르고 ‘리상(李씨)’이라고 부르니까 그대로 ‘이상’이라고 했다지만 학교 때의 별명이라는 설도 있다. 요양지에서 알게 된 기생 금홍과 함께 귀경한 그는 1934년 시 “오감도(烏瞰圖)”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했으나 난해하다는 독자들의 빗발치는 항의로 중단했다. 1936년 <조광(朝光)>지에 “날개”를 발표하여 큰 화제를 일으켰고 같은 해에 “동해(童骸)”, “봉별기(逢別記)” 등을 발표하고 폐결핵과 싸우다가 갱생(更生)할 뜻으로 도쿄행[東京行]을 결행하였으나, 불온 사상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가 병보석으로 풀려 도쿄대학 부속병원에서 병사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전기 외에 소설 “지주회시(會豕)”, “환시기(幻視記)”, “실화(失花)” 등이 있고, 시에는 “이런 시(詩)”, “거울”, “지비(紙碑)”, “정식(正式)”, “명경(明鏡)”, 수필에는 “산촌여정(山村餘情)”, “조춘점묘(早春點描)”, “권태(倦怠)” 등이 있다. 1957년 80여 편의 전 작품을 수록한 <이상전집(李箱全集)> 3권이 간행되었다.
▶ 날개
1. 줄거리
지식 청년인 ‘나’는 놀거나 밤낮 없이 잠을 자면서 아내에게 사육된다. ‘나’는 몸이 건강하지 못하고 자의식이 강하며 현실 감각이 없다. 오직 한 번 아내를 차지해 본 이외에는 단 한 번도 아내의 남편이었던 적이 없다. 아내가 외출하고 난 뒤에 아내의 방에 가서 화장품 냄새를 맡거나 돋보기로 화장지를 태우면서 아내에 대한 욕구를 대신한다. 아내는 자신의 매음 행위에 거추장스러운 ‘나’를 볕 안 드는 방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수면제를 먹인다. 그 약이 감기약 아스피린인 줄 알고 지내던 ‘나’는 어느 날 그것이 수면제 아달린이라는 것을 알고 산으로 올라가 아내를 연구한다.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갔을지도 모를 수면제― 그것을 한꺼번에 여섯 알이나 먹고 일주야를 자고 깨어나서, 아내에 대한 의혹을 미안해한다. ‘나’는 아내에게 사죄하러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그만 아내의 매음 현장을 목격하고 만다. 도망쳐 나온 ‘나’는 거리를 쏘다니던 끝에 미스꼬시 백화점 옥상에 올라 스물여섯 해의 과거를 회상한다. 이 때 정오의 사이렌이 울고, ‘나’는 “날개야 다시 돋아라~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심리주의 소설
◎ 배경 : 일제 강점기의 서울 거리, 18가구가 살고 있는 33번지 유곽(遊廓)
◎ 성격 : 고백적, 상징적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구성
도입부 - ‘나’의 독백. 기지와 풍자가 섞인 짧은 경구들. 지적인 역설과 분열된 자아 제시
발단 - 33번지 유곽. 해가 들지 않는 ‘나’의 방
전개 - 내객이 있는 아내. 일찍 귀가한 ‘나’와 아내의 조우
위기 - 감기약 대신 수면제를 먹인 아내의 의도 파악에 부심하는 ‘나’
절정․결말 - 정상적인 삶에 대한 욕구
◎ 주제 : 전도된 삶과 자아 분열 의식 속에서 본래적 자아를 지향하는 인간의 내면 의지. 분열된 자아에서 통일된 자아에로의 지향
◎ 출전 : <조광>(1936)
3. 등장 인물
◎ 나 : 경제적인 생활 능력이 결여되어 있고 사회 활동이 전무한 무기력한 남편. 아내의 부정과 자아 의식의 갈등을 일으켜 극히 불안한 심리적 자의식을 보이는 인물. ‘나’와 아내의 관계는 ‘닭이나 강아지처럼’이란 동물적 비유가 의미하듯 종속적 관계이다. 성적(性的) 무기력한 남편으로 아내보다 열등한 상태에 놓여 있는 남성. 날개의 소생을 꿈꾸면서 사회로의 복귀를 시도한다.
◎ 아내 : 남편보다 우월한 존재로 종속상태에 놓여 있는 남편 위에 군림하는 가학적인 여성이다. ‘외출, 내객(來客), 돈’으로 알 수 있듯 아내의 직업은 창녀이다.
4. 이해와 감상
내용의 난해함과 형식의 파격성으로 1930년대 모더니즘 소설의 으뜸으로 꼽힌다. 매춘부인 아내에 붙어사는 무기력한 ‘나’를 통해 자아의 분열을 그린 한국 최초의 심리주의 소설이다. 주인공 ‘나’의 유일한 삶의 지반이었던 아내로부터의 배반감이 그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고, 그러므로,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란 그의 외침은 마지막으로 취할 수 있는 ‘탈출 의지’의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박제(剝製)된 천재는 무기력 한 탈출 의지로 실패감을 맛보게 된다. 이 소설의 부부 관계는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이다. 아내에 대한 예속자 혹은 기생적(寄生的) 존재로서 스스로의 인격적인 소유권과 시민성(市民性)이 없는 ‘나’에 비해 아내는 나를 지배하고 ‘사육하는’ 위치에 있다. ‘외출’, ‘내객’, ‘돈’이란 단어들이 알려 주듯이 아내의 직업은 창녀이다. 쉽게 말해서, ‘나’는 ‘꽃’에 매달려 사는 기둥서방인 것이다. 그래서 ‘나’와 아내의 관계는 ‘닭이나 강아지처럼’이란 동물적 비유가 의미하듯 종속적인 관계이다. 이런 종속 관계는 시간과 공간의 소유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아내의 매음(賣淫) 현장이 ‘나’에게는 금단(禁斷)의 공간이며, 외출을 통해 아내의 가학적 감금에서 일단 풀려 나온 ‘나’는 다시 아내가 쳐 놓은 시간에 감금된다. 자정(子正) 전에는 절대로 집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의 외출 시간은 아내의 매음과 자신의 자유 방임이 묵계된 시간이다. 이러한 자정(子正)의 시간과 반대쪽인 정오(正午)의 사이렌은 강요된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전기(轉機)가 된다. 즉, 대낮의 정점으로서의 정오(正午)는 ‘나’의 유폐성(幽閉性) 극복과 도착(倒錯)된 아내와의 관계를 역전시키는 전환점으로서 ‘눈에 보이지 않는 끈적끈적한 줄’로부터 해방되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마지막의 날개와 비상(飛翔)에의 소망은 박제(剝製)와 무력(無力)과 유폐된 시간으로부터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릴 수 있는 탈출의 욕망이며, 아내라는 구속성과 거짓됨에 맞설 수 있게 하는 진정한 자아의 확인이자 건전성(健全性)에 대한 향수이다.
<참고> “날개” 다이제스트
1) 프롤로그 :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연애까지도 유쾌하오. 육체가 피로하면 정신이 맑소. 그러면 나는 위트와 패러독스를 늘어놓소. 나는 연애 기법이 서툰 정신분일자요. 나는 여인의 반만을 향수하는 생활을 설계하며 낄낄대고 있소. 나는 인생의 제행이 꽤나 싱거웠던 모양이오. 그대도 자신을 위조하는 위트와 패러독스를 실천해 보는 게 좋소. 19세기는 될 수 있으면 봉쇄해 버리시오. 인생에 있어서 디테일 때문에 속아서 되겠소? 감정이 부동자세에 이른 포즈에 이를 때 감정은 중지됩니다. 여인은 모두 본질적으로 여왕벌이나 미망인이 아니겠소. 내 논리가 여성에 대한 모독이 되오? 굿바이.
2) 33번지 18가구는 집 모양이 똑같은 유곽이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고 각 방마다 문패를 붙여 두었는데 우리 집에도 아내의 명함이 붙어 있다.
3) 18가구에서 아내가 제일 아름다워 나는 다른 누구와도 인사를 나누지 않는다. 나는 아름다운 아내에게 거북살스런 존재이다.
4) 나는 내 방이 마음에 든다. 나에게 모든 면에서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이 속에서 축 처져 있는 안일 상태. 즉 절대적인 상태를 좋아한다. 게다가 럭키 세븐 일곱 번째 집이라서 더 좋다. 그러나 이런 방이 장지문에 의해 둘로 나누어진 것이 내 운명의 상징임을 누가 알랴?
5) 내 방은 햇볕이 들지 않는 방이지만 아내의 방은 오전에는 햇볕이 든다. 아내가 외출하고 나면 그 방에서 돋보기 장난, 거울보기, 그것들보다 정신적 오락인 화장품 냄새 맡기를 즐기면서 아내의 체취를 더듬는 일에 탐닉한다.
6) 아내는 옷이 많다. 아내의 옷들, 특히 치마를 보며 그 안에 들었을 몸체와 여러 포즈를 생각한다. 나는 별 옷도 없고, 검정 속옷만 입고도 잘 논다.
7) 나는 방안에서 사색에 잠기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궁리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아내와 의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게 성가신 것이다.
8)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밤낮 없이 외출한다. 그리고 내객들도 많다. 내객이 있는 날은 나는 내 방에서 우울해한다. 그러면 아내는 돈을 준다. 그게 모이자 벙어리 저금통을 사 주었다. 나중에는 돈 넣는 일도 귀찮아 저금통에 무관심해진다. 게을러지고 싶기 때문이다.
9) 나는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지 궁리한다. 아내는 내게 밥을 주지만 부실하다. 나는 점점 말라 간다. 이불 속에서, 아내의 음식은 무엇일까, 돈의 출처는 어디일까 탐색하며 시간을 보낸다.
10) 아내의 돈이 내객들이 주고 간 것임을 깨닫는다. 내객들이 돌아간 뒤나 외출 뒤에 아내는 내게로 와 웃음을 띤다. 그 웃음 속에 스민 일말의 애수를 본다. 아내가 준 은화를 저금통에 넣는다. 나는 특별히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잊을 뿐이다. 왜 돈을 주는지 의문이며 기쁨도 없다.
11) 번잡한 지구에서 한시바삐 내리고 싶다. 이런 생각 끝에 돈 넣는 일도 귀찮아져 저금통을 변소에 버린다. 아내는 이유를 묻지 않고 여전히 돈을 던져 준다.
12) 돈을 놓고 가는 것이 일종의 쾌감 때문일 것이란 생각을 하자 나는 쾌감이란 것의 유무를 확인하고 싶어진다.
13) 은화를 지폐로 바꾸어 외출을 한다. 거리의 경이로움에 젖었으나 밤이 이슥해지자 피곤이 몰려온다. 돈을 쓸 줄 아는 기능이 상실되었음을 알고 집으로 돌아온다. 방에는 아내와 내객이 있다. 나는 그들을 통과해 내 방에 드러눕는다. 잠시 후 가슴이 다시 뛴다. 옆방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럴 즈음 두 사람이 바깥에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아내의 태도에 섭섭해하다 잠이 든다. 아내는 나를 깨우고서는 노기 띤 얼굴을 보이고 제 방으로 간다. 나는 외출을 후회한다.
14) 나는 스스로 사죄하였다. 시간이 꽤 오래 된 줄 알고 그만 방문을 연 것이라고. 누군가에게 돈을 주려 했지만 너무 복잡한 거리에서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고. 이렇게 혼자 사죄를 하다 아내의 방에 들어가 이불 위에 엎드리며 돈을 쥐어 준다.
15) 이튿날 잠에서 깨어난 곳은 아내의 이불 속이었다. 최초의 동침이었다. 아내는 외출을 하고 없다. 나는 아내의 체취에 흥분하면서 화장품 냄새를 맡는다.
16) 견디다 못해 내 방으로 온다. 잠을 푹 잔다. 정신이 한결 난다. 아내에게 5원을 주고 엎디었을 때의 쾌감을 말로 다할 수 없다. 내객과 아내가 돈을 주는 비밀을 알아 낸 것 같아 즐거워진다. 나는 다시 외출을 결심한다. 거리를 방황하면서 시간이 어서 지나기를 바라지만 너무 더디어 안타까워한다.
17) 자정이 지난 걸보고 집으로 돌아온다. 도중에 아내와 내객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본다. 그들을 스쳐 방으로 간다. 나중에 온 아내는 뜨개질을 한다. 나는 또 아내 방으로 가 2원을 준다. 아내는 물끄러미 바라본다. 나를 재워 준다. 나는 기쁨에 젖는다.
18) 이튿날 아내가 나를 부른다. 맛있는 저녁밥을 같이 먹는다. 어제의 일로 호통이 있을까 하고. 두려웠지만 아내는 아무 말도 않는다. 방으로 온 나는 돈이 있어야 외출을 하고, 또 기쁨이 있을 텐데 돈이 없어 속상하다.
19) 아내가 다시 내 방으로 와 내가 우는 이유를 말한다. 돈이 없어 그럴 거라며 돈을 준다. 그러면서 오늘은 어제보다 더 늦게 와도 좋다고 한다.
20) 길을 나서서 경성역 티룸에 들른다. 아는 사람이 없어 좋고, 시계가 정확해 좋았다. 오래 앉았으니 장내를 치우기 시작한다. 거리에 나오니 비가 오고 있다. 흠뻑 젖어 오한이 난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향한다. 아내와 내객이 있었지만 너무 추운 나머지 그들을 가로질러 방으로 들어온다.
21) 이튿날 아내는 근심스런 얼굴로 나에게 약을 먹으라 한다. 나는 약을 먹고 깊은 잠에 빠진다. 이후 한 달이나 약을 먹으며 시간을 보낸다.
22) 수염과 머리가 너무 자란 것 같아 아내의 방에서 거울을 본다. 화장품 냄새가 여전히 흥분케 한다. 그러다 아달린이란 약갑을 발견한다. 나는 아뜩해진다. 지금까지 내가 먹어 온 것이다.
23) 인간 세상 모두가 보기 싫어 집을 나와 산으로 향한다. 벤치에서 아스피린과 아달린에 대해 궁리한다. 심술이 나자 아달린 여섯 알을 씹어 먹는다. 나는 잠이 든다.
24) 나는 거기서 1주일을 잔 것이다. 일어나 아달린 생각을 한다. 아내가 나를 재워 놓고 무슨 일을 한 것일까. 나를 죽이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괜한 오해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미치자 미안해진다. 사죄를 위해 급히 집으로 향한다.
25) 미닫이를 열다 못 볼 것을 보고 만다. 놀라 다시 미닫이를 닫고 서 있는데, 아내가 달려 나와 멱살을 잡고 물어뜯는다. 남자가 나오더니 아내를 데리고 들어간다. 난감해 있다가 남은 돈을 꺼내 미닫이 안에 놓아두고는 달음박질쳐 나와 버린다.
26) 싸돌아다니다가 지난 26년을 회고해 보고, 자신의 정체를 더듬어 본다. 그러나 별다른 생각이 나지도 않는다. 자신의 존재도 인식하지 못한다. 거리는 피곤으로 흐느적거리고 있다. 나도 그 흐느적거리는 세태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27) 어디로 가야 할지 방황하고 있을 때, 문득 아내의 아스피린과 아달린이 떠오른다. 아내와 나는 서로 오해하고 있다. 우리 부부는 숙명으로 발이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런 대로 각기 절뚝거리며 살아가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내에게 돌아가야 하나 하고 갈등하고 있을 때, 정오의 사이렌이 울린다. 갑자기 사람들이 활기차 보인다. 현란을 극한 정오다. 별안간 겨드랑이가 가려워진다. 머릿속에 말소된 희망과 야심이 번뜩인다. 나는 외쳐 보고 싶어진다. 날자,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참고> 작품 보충 해설
□ 여전히 문제인 문제작 : 한국문학사에서 “날개”만큼 문제를 불러일으켰고, 또 계속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작품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많은 평자들에 의해 다양한 해석이 시도되었고,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니면서 탐구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문제를 내포한 채 우리 앞에 다가오는 작품이다. 이상의 작품은 시에서와 마찬가지로 그의 소설 또한 실험 정신으로 제작했기 때문에 이전의 소설이 보여 주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펼치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의식의 문제를 독특한 표현 기법으로 형상화해 내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의 소설이 심리주의적 바탕에서 쓰여졌고, 표현에 있어서도 의식의 흐름이라는 수법을 따르고 있다는 그 동안의 연구 결과이다. 이 작품에 대한 견해 중, 일제의 지식인의 고뇌를 반영한 것이라는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목적 의식을 상실한 지식인의 표본이 ‘나’이고 나의 삶을 제한하며 간간이 돈을 던져 주는 아내가 일제의 상징이며, 그 아내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지식인의 아픔과 그것을 벗어나려는 몸짓이 마지막 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시각이다. 시대와 문학이 동떨어진 것이 아니며, 문학은 결국 시대 상황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이런 의견은 타당성을 지닌다. 그러나 작품의 외적 상황이 그대로 작품 세계라고 보는 데는 무리가 따르기 때문에 일단 작품의 내적 세계에 국한하여 이 작품을 살펴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리라 믿는다.
□ 닫힌 공간, 열린 공간 : 이 작품에서 문제삼고 있는 자의식의 성격을 구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공간의 문제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설정되어 있는 공간은 크게 ‘방’과 ‘거리’이다. 작중 화자가 거처하고 있는 방은 장지문에 의해 차단된 방이다. 본래는 하나의 방이지만 둘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다. 하나는 화자의 방이요, 다른 하나는 아내의 방이다. 방이 나뉘어 있다는 것은, 아내와 화자가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내와 화자는 동떨어진 위상을 가진 존재가 된다. 아내와 화자는 이런 면에서 대조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화자의 의식은 갈등한다. 화자는 자기 방에서 칩거한다. 반면 아내는 외출을 하거나 내객을 맞는다. 화자가 폐쇄된 공간에 처하고 있다면, 아내는 열린 공간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내에게는 사람들과의 교섭이라는 생활이 있게 되지만, 화자는 완전히 차단된 채 자신만의 삶을 살아간다. 혼자 있는 화자가 만나는 것은 자신밖에 없다. 자아가 자아를 만나면 대화를 나누는 일, 그것이 자의식이다. 자의식이란 자아가 또 다른 자아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화자는 이불 속에 파묻혀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보며 나날을 보낸다. 화자가 확인하게 되는 것은 세상과 일치하지 못하는 자신의 위상이다. 세상으로 대표되는 아내와도 그는 단절되어 있는 것이다. 화자와 아내는 원래 가장 가까운 사회적 관계에 있다. 그 아내와 합치될 수 없는 화자의 위상은 곧바로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 단절감의 정체는 무엇일까가 문제가 된다. 화자가 아내에게서 단절감을 느끼는 이유는 아내와 한 방을 쓰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아내는 내객을 맞아 몸을 파는 창녀이다. 내객과 아내는 육체적 관계를 맺지만 화자는 그러지 못하는 것에서 연유하는 단절감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아내는 육체에 살고, 화자는 끊임없이 무엇을 궁리하며, 세상살이에 재미를 못 느끼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둘은 매우 대조적이고 이 점에서 갈등과 단절이 온다. 그런데 화자는 아내와의 관계에서 열등한 존재로 인식한다. 그는 아내에게 부속된 존재이지 그와 아내가 대등한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성적인 관계의 불균형에서 연유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자는 아내와의 실제적 접촉은 꾀하지 못하고 상상 속에서만 성적 즐거움을 느낄 뿐이다. 나는 그 중의 하나만을 골라서 가만히 마개를 빼고 병구녕을 내 코에 갖어다 대이고 숨죽이듯이 가벼운 호흡을 하여 본다. 이국적인 센슈알한 향기가 폐로 스며들면 나는 저절로 스르르 감기는 내 눈을 느낀다. 확실히 안해의 체취의 파편이다. 나는 도로 병마개를 막고 생각해 본다. 안해의 어느 부분에서 요 내음새가 났던가를···· 화자의 콤플렉스는 바로 이 점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성적 능력의 결핍에서 오는 열등감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는 화자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있는 것으로 그려지고, 그는 아내를 무서워하는 것이다. 또한 나중에 아내의 방에서 자고 난 뒤 무한한 기쁨을 맛보게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기 방이 어둡고, 아내 방에는 햇볕이 드는 것으로 표현한 것에서도 그 점은 분명해진다. 햇볕의 밝음은 성적인 자유를 의미한다. 화자는 어두운 방처럼 그 문제에 있어서 어두운 우울을 지니고 사는 것이다. 화자의 방과 아내 방의 공간적 괴리만큼, 집과 거리의 관계도 상징적이다. 화자는 외출을 하지 않는다. 집안에 고립되어 있는 존재인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은 집과는 대조된 공간이다. 그 곳은 번잡함과 뭇 관계가 있으며, 활기가 있는 삶의 현장이다. 화자는 그 곳으로부터 이탈되어 있다. 이 소외는 폐쇄된 자아로 하여금 더욱 왜소하게 만든다. 화자가 거리에 나가지 못하는 한 그는 영원히 고립된 세계에 빠져 자아는 극단의 분열을 보이고 마침내 파탄에 이르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국 외출을 감행하고 드디어 더 넓은 세계에로 나아간다. 따라서 거리는 열린 세계이며, 외출은 자아의 칩거에서 자아의 자유로 향하는 행동의 표출이다.
□ 성에 대한 천재의 보고서 : 이 소설이 인간의 내면 의식 탐구라고 했는데, 그 의도는 프롤로그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프롤로그에서의 화자와 이야기 속의 화자는 그 위상이 다르다. 그것은 어조에서 분명히 차이가 나는데, 프롤로그의 어조는 상당히 날카롭고 이지적이며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속 이야기의 어조는 그와는 상당한 차이가 나 어수룩한 어투를 보인다. 그렇다면 작가와 비교적 거리가 가까운 것은 프롤로그의 화자이며, 속 이야기의 화자와는 거리가 있다. 따라서 속이야기를 펼치게 된 동기를 프롤로그에서 말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것은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 [중략] 그 위에다 위트와 패러독스를 늘어놓소.”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는 하나의 패러독스를 즐겨 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일 중 하나가 여인을 그려보는 일인데, 여인의 반만을 영수(領收)하는 생활을 설계해 놓고 낄낄거려 보려고 한다. 이따금 아이러니를 실천해 보는 것도 좋다고 말하면서 자신을 위조해 보는 즐거움을 얻으려 한다. 19세기를 청산한다는 것의 의미는 정신의 가치를 떨쳐 버리자는 것과 동일한 시각의 표현이다. 여자를 보는 안목을 ‘여왕벌’의 그것으로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라고 한다. 여왕벌은 수벌과 교미한 뒤 모조리 죽여 버리는 벌이다. 그런 면에서 미망인이다. 화자는 여자를 전부 미망인이라고 본다. 여자에게 남성은 수벌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다. 여자의 본질은 고매한 정신에 있다기보다 육체적 애욕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자의 반을 영수하다는 앞에서의 말은, 여자의 성만을 취해 그 생활을 탐구하겠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이야기의 핵심이 이 문제의 구체화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의 연구에 있어서 이 작품을 너무 턱없이 고평한 것은, 성적 문제에 국한한 이상의 의도를 너무 확대하여 해석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이 소설의 핵심은 성에 대한 하나의 보고서이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박제는 외형은 그대로지만 생명이 없는 사물이다. 화자는 자신을 박제로 규정한다. 즉 박제인 천재이다. 생명력을 상실한 지식인을 지칭하는 의미로 봐도 좋을 것 같다. 이렇게 본다면 그는 정신주의에 매몰되어 애욕을 상실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두 개의 자아가 공존한다. 도덕이나 양심과 같은 지성적 가치 판단과 성과 욕망 따위의 생활감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분리되어 있어서 하나의 자아가 또 다른 자아와 거리를 두게 될 때 자아의 갈등은 심각해진다. 사실 이러한 의식의 분열상은 지성인에게 해당되는 것이기도 하다. 지성인, 즉 천재이기 때문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의식이 분열되고 갈등에 젖는 것이다. 아내는 정신이 빠져나간 육체만 있는 존재이다. 나는 아내와 일치하지 못한다. 아내와의 일치를 꿈꾸는 행위는 곧 두 개의 자아의 통합을 꾀한다는 의미이다. 정신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자아의 탈출을 의미한다. 그 자아의 탈출이 외출 행위로 표상되고 있다. 그의 외출을 살펴보면 조금씩 그 거리가 멀어진다. 첫 번째 외출은 얼마 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빨리 돌아온다. 그 다음은 시간과 공간이 조금 확대되고, 이런 과정을 거쳐 궁극에는 완전한 일탈을 꿈꾸게 된다. 이 일련의 외출을 통해 폐쇄된 자아에서 열린 자아에로 통합되어 가는 것이다. 그의 겨드랑이가 가려워지며 날개가 돋으려 하는 것은, 그가 새로운 세계로의 전이를 시작한다는 의미이다. 이것도 비로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그 가능성이 내재했던 것이다.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죽’에서 날개가 생성된다고 하여, 그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날개를 펼치려고 한다. 자아에 깊이 감추어져 있던 자유에의 발견인 셈이다. 그것을 그 동안 억눌러 왔던 것이다. 이 억누르는 자아의 자의식이 너무 강렬해 억눌려 있을 뿐이었던 것이다. 억눌린 자아는 말할 것도 없이 아내에게 의기소침한 자아이다. 이제 그 자아를 벗어나 욕망과 순결이 조화된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의 문제성은 이런 주제 의식에서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고, 의식의 흐름을 좇아 의식 세계의 내부를 해부하는 데에도 있다. 명멸하는 의식의 흐름에 따라 화자의 생각은 간단없이 자유롭게 연상이 전개된다. 아스피린, 아달린, 아스피린, 아달린, 맑스, 말사스, 마도로스, 아스피린, 아달린. 이처럼 자유 연상에 의해 의식은 흘러간다. 이상이 보여 주려고 했던 것은 이렇게 내면 의식이 흘러가는 그 진경(眞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상의 “날개”는 초현실주의라는 바탕에서 인간의 의식의 본질을 치밀히 분석하여 그것의 진상을 드러내려고 한 작품이라 하겠다.
<참고> ‘이상’의 삶에 대하여
□ 큰아버지 집에서 양자 생활 : 이상(李箱)은 한일 합방이 되던 해 가을 서울 사직동에서 이발소를 경영하던 아버지와 일자무학의 고아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김해경(金海卿). 생가의 위치에 대하여는 알려진 바 없으나 궁내부 활판소에 근무하다 활판 기계에 손가락을 잘린 뒤 차렸다는 아버지의 이발소는 운영이 신통치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상은 두 살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살아야 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데다가 큰아버지에게 대 이을 아들이 없어 통인동 154번지의 큰아버지 집으로 옮겨 살았던 것이다. 총독부의 기술 관리였던 큰아버지 집에서의 생활은 윤택했지만 고종 때 증조부가 정3품 벼슬을 지낸 강릉 김씨 문중의 증손이 된 사실은 이상에게 적잖은 갈등을 안겨 준 듯하다. ‘나는왜드디어나와나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와아버지의아버지노릇을한꺼번에하면서살아야하는것이냐’(“오감도” 제2호) 이상이 스물세 살 때까지 살았던 통인동 본가는 그가 “종생기”에서 ‘10대조의 고성’이라고 한 것처럼 꽤나 큰 한옥이었던 모양이다. 본 채에 행랑채와 사랑채까지 딸린 300여 평의 넓은 집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집의 옛 모습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광화문에서 사직터널 쪽으로 꺾어 300미터쯤 가다 보면 길 왼편에 상업은행 지점이 있다. 은행 왼편 골목길로 20미터쯤 들어간 곳의 오른편이 바로 이상이 이십일 년 간 살았던 통인동 154번지다. 이 집은 현재 십여 개의 필지로 분할되어 여러 채의 한옥들이 들어서 있고 길가 쪽으로는 인쇄소, 책 대여방, 열쇠 가게 등이 영업중이다. 이들 가게는 물론이고 골목 안 복덕방에서도 이 일대가 일세를 풍미했던 천재 시인 이상의 옛 집터였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 ‘제비’ 다방 - “날개”의 무대 : 각혈을 할 정도로 병세가 악화된 이상은 총독부 기사직을 그만두고 황해도 백천 온천으로 요양을 떠난다. 그러나 이 곳 술집에서 기생 금홍을 만난 이상은 청진동 조선광무소 1층을 사글세로 얻어 ‘제비’ 다방을 차리고 금홍을 마담으로 앉혔다. 다방 뒷골목에 금홍과 살림까지 차려 훗날 그의 대표작이 된 “날개”의 무대를 만들었다.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발표한 “오감도”는 이상을 일약 스타로 만들었다. ‘미친 수작’, ‘정신병자의 잡문’ 등의 혹평과 비난 때문에 연재는 중단되었지만 열화 같은 찬반 양론이 일었고 ‘구인회’ 가입 후에도 꾸준히 작품을 발표했다. 하지만 '제비' 다방은 경영난으로 폐업하여야 했고 인사동의 카페 ‘쓰루(학)’ 광교다리 근처의 다방 ‘69’와 명동의 ‘무기(맥)’를 잇달아 개업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그런 와중에도 이상은 1936년 이화여전 출신인 여류문인 변동림(이상이 죽은 뒤 수화 김환기의 부인이 된 김향안 여사)과 결혼, 새로운 인생을 맞는 듯했으나 건강 악화와 어려운 경제적 여건 등 국내에서의 암담한 현실을 뒤로하고 혼자 동경으로 떠난다. 이듬해 2월 죽음 직전의 혼곤한 상태에서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일경에 체포된 이상은 신병 악화로 한 달여 만에 석방되어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부인 변동림과 마지막 해후를 했다. 1937년 4월 17일 "레몬 향기를 맡고 싶소."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유골은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보다 한 이십 일 정도 먼저 타계한 소설가 김유정과 함께 합동 영결식이 치러지고 미아리 공동묘지에 매장되었다. 만 이십육 년 칠 개월의 삶이었다. “날개를 펴지 못한 천재 시인” 이상을 기념하는 문학비가 송파구 방이동 보성고 교정에 세워져 있다. 보성고 동문들과 부인 변동림 여사가 1990년 5월 건립한 이 문학비는 이상의 천재성과 파격성을 강조하기 위해 추상 조각으로 만들었으며 문학비(文學碑) 앞에 이상의 얼굴 그림과 연보, 대표시 “오감도”를 새긴 시비(詩碑)를 따로 마련했다.
▶ 지주회시
1. 줄거리
‘그’는 카페 R회관의 여급인 아내(나미꼬)를 뜯어먹고 산다. 그리고 아내는 카페에서 손님들의 주머니를 노리며 생활해 간다. 또한, A취인점 주임(主任)인 오(吳) 군은 ‘그’의 친구인데 역시 카페 R회관의 여급인 마유미를 뜯어먹는다. 이처럼, 말라깽이인 ‘그’, 아내, 오(吳) 등은 살찐 인간들(마유미, 뚱뚱 주인과 뚱뚱보 신사)이 걸려들기를 기다렸다가 그들을 밥으로 삼는 거미들이다. ‘그’의 아내는 A취인점의 전무인 뚱뚱보 신사가 고객 초대 망년회 전날 카페에서 술을 마시다가 자신을 말라깽이라고 자꾸 놀리자 그에 대하여 뚱뚱한 양돼지라고 되받아 버린다. 술기운이 있던 전무는 화가 나서 그녀를 층계 위에서 밀쳐 굴러 떨어지게 한다. 그래서 그녀는 부상을 당한다. 이것을 목격한 카페 R회관의 종업원들이 분개하여 경찰에 신고한다. 뚱뚱보 신사는 경찰에 구속되고, 그리하여 뚱뚱보 신사와 뚱뚱 주인은 그녀와 ‘그’를 무마시키려고 한다. ‘그’는 이러한 일상적인 일들도 귀찮아하며 아내를 데리고 집으로 온다. 결국, 망년회가 예정된 다음날 낮에 뚱뚱보 신사는 오(吳)를 통해서 아내에게 20원을 위자료로 전해 준다. 아내는 그 돈을 받고 공돈이 생겼다고 좋아하면서 10원을 ‘그’에게 준다. 아내가 피곤해서 잠든 것을 보고 ‘그’는 아내가 받은 20원을 모두 챙겨 들고 안개가 흐릿한 밤에 마유미를 만나기 위해 카페로 간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심리주의 소설
◎ 배경 : 시간(크리스마스날과 망년회 날의 이틀 간) / 공간(일제 강점기 경성과 인천)
◎ 성격 : 풍유적(諷諭的)
◎ 시점 : 3인칭 작가 관찰자 시점(단, 의식의 흐름 기법이어서 ‘그’의 독백과 내면 의식이 지배적임)
◎ 구성
발단 - 크리스마스 오후 4시 이후, 방안, 한껏 게으름을 피우는 ‘그’
전개 - ‘그’는 ‘오(吳)’를 만나 카페에서 술을 마심.
위기 - R카페에서 그 날 밤의 사건 이야기를 듣고, 경찰서에 출두함.
절정 - 아내가 위자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옴.
결말 - ‘그’가 위자료를 들고 방을 나섬.
◎ 주제 : 금전 만능 풍조에서 비롯된 인간성의 파멸과 퇴폐적 인간 관계
◎ 출전 : <중앙>(1936)
3. 등장 인물
◎ 그 : 야위고 헙수룩한 외모에, 일상 생활에 대하여 무심하며 자신의 마음을 닫고 잠이나 자는 게으른 인물
◎ 아내(나미꼬) : 야윈 외모이지만, 일상 생활에 무심한 남편과는 달리 자신의 몸을 팔아서 돈을 벌어 살아가는 인물
◎ 오(吳) 군 : 야위었으나 생동생동한 미남자이며, 적극적으로 돈을 번다. 밤에는 카페에 나가 노는 일로 거의 잠을 자지 않건만 피곤해 하지 않는 인물
◎ 마유미 : 살이 쪘으며, 자신의 몸을 팔아서 번 돈으로 방탕하게 사는 인물
◎ 뚱뚱 주인 : 살이 찐 외모에 돈이 많고 적극적으로 일상의 세계를 살아가는 인물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1936년 <중앙(中央)>에 발표된 단편 소설로서, 제목에서 ‘지주’는 거미를, ‘시(豕)’는 돼지를 뜻한다. 따라서, ‘지주회시’는 ‘거미 한 쌍이 돼지를 만난다.’라는 의미이다. 소설 속의 ‘그’는 카페 여급인 아내를 뜯어먹고 살며, 아내는 손님들의 주머니를 노리며 산다. 이들 두 거미에게 양돼지 전무가 뜯어 먹히는 사건이 기본 줄거리이다. 이상(李箱)의 다른 작품 “날개”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도 남편과 아내가 등장한다. 다만, 다른 점은 “날개”에서는 남편과 아내가 종속적인 관계에 놓여 있음에 반하여 이 작품은 ‘그’, ‘아내’, ‘오(吳)’, ‘마유미’, ‘뚱뚱보’ 등의 등장 인물들이 서로가 서로를 빨아먹고 사는 ‘거미’ 같은 존재로 설정되어 있다. 즉, 카페 R회관에서 A취인점 전무인 뚱뚱보라는 양돼지를 만난 아내는 층계에서 발길로 채어 굴러 떨어졌다는 이유로 20원이라는 돈을 빨아먹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안개로 흐릿한 밤에 ‘그’는 아내에게서 나온 그 돈으로 ‘마유미’한테 간다. 결국, 아내는 ‘뚱뚱 주인’의 거미이고, ‘나’는 아내의 거미이고, ‘마유미’는 ‘그’의 거미이고, ‘오(吳)’는 ‘마유미’의 거미이고, ‘오(吳)’가 다니는 A취인점 전무는 ‘오(吳)’의 거미가 되는 셈이다. 곧, 빨아먹으면서 빨아 먹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악의(惡意)에 찬 순환 구조는 근대 도시인의 삶의 태도가 상호 착취자나 가해자적 성격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 이상(李箱)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사실이지만, 정상적인 가족이나 가족 구조는 와해되어 있다. 특히, ‘그’가 전무의 위자료를 받아 들고 술을 마시러 가는 결말은 이상(李箱) 문학의 위악적(僞惡的) 성격을 잘 드러낸다. ‘거미는 나밖에 없다.’고 자부하며, 아내가 뜯어낸 돈을 다시 뜯어먹는 ‘그’의 행위는 퇴폐와 병리의 극단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이선희(1911~?) |
함남 함흥 출생(원산이라고도 함). 이화여전 문과 3년 수료. 1934년 <중앙>지에 <불야 여인(不夜女人)>을 발표하여 문단에 등단. 그는 여성의 심리 세계를 파고들어 감상성과 낭만성을 짙게 풍기는 작품을 썼다.
▶ 가등(街燈)
1. 줄거리
주인공 명희는 오랫동안 자기를 사랑하는 남자와 오후 4시에 P라는 찻집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한다. 그러나 선뜻 가지 못하고 망설이면서 배회하다가 약속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지난 후 그 남자를 길에서 우연히 만난다. 어린 시절 푸른 섬 이야기를 해 주고 <집 없는 아이> 같은 책을 사다 준 이상적인 사상가요, 예술가였던 그가 지금 초라한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명희는 그 남자로부터 떠나고자 한다. 순진한 사춘기 소녀의 그리움의 대상이던 한 남자가 현실적으로 초라하게 변했을 때, 여인의 심리가 어떻게 변하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2. 핵심 정리
◎ 배경 : 순수한 사춘기 소녀의 꿈과 환상이 허물어진 현실
◎ 시점 : 3인칭 전지적 시점
◎ 주제 : 사춘기 소녀의 환상을 허문 현실과 이상의 지각(知覺)
3. 등장 인물
◎ 명희 : 사춘기가 지난 숙녀
4. 이해와 감상
<가등>은 소녀적 감상을 다룬, 소품적 성격을 지닌 40매 짜리 소설이다. 한 가지 주목되는 것이 있다면, 여성 특유의 시적 비유가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편지 한 장 테이블 위에 뱃속을 흐트러뜨리고 자빠져 있다.”라는 <가등>의 시작 부분의 첫 문장이 그러하다. 또한 이선희의 작품은 대체로 여성의 심리를 묘사하여 거기에서 오는 감상성과 낭만성을 짙게 풍기고 있다. 예를 들면 “신경의 가락가락이 끊어지도록 즐거운 일을 가지거나 그렇지 않으면 목숨으로야 바꿀 수 있는 값있는 일을 하거나 어느 하나라도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상념을 통해 여주인공의 심리 세계를 섬세하게 잘 드러내고 있다. 이선희는 <삼천리>(1936.8)에서 “여류 작가인 나로서는 선이 부드럽고, 읽어서 매끈매끈하고 낭만적이어야 사람의 힘을 끄는 매력이 큰 줄 압니다.”라고 스스로 밝힌 바 있듯이 그녀의 낭만적인 성격은 부드럽고 섬세한 문체와 환상적인 비유를 가져다주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살펴보면, 이선희의 문학에는 여성 특유의 존재 확인과 엑조티즘을 통한 애수가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인직(1862~1916) |
신소설 작가, 언론인, 신극운동가. 호는 국초(菊初). 경기 이천(利川) 출생. 일본 도쿄[東京] 정치학교를 수학한 뒤 1906년에 <만세보(萬歲報)> 주필이 되면서 신소설 “혈(血)의 누(淚)”를 동지에 연재, 계속 많은 작품을 썼다. 1908년에는 극장 원각사(圓覺社)를 세워 자작 신소설 “은세계(銀世界)”를 상연하는 등 신극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국권 피탈 때 이완용(李完用)을 돕고 다이쇼[大正] 일본왕 즉위식에 헌송문(獻頌文)을 바치는 등 철저한 친일행동을 하기도 했으나 한국에서 처음으로 산문성(散文性)이 짙은 언문일치의 문장으로 신소설을 개척한 공로는 크다. “혈의 누” 외에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귀(鬼)의 성(聲)”, 그밖에 “치악산(雉岳山)”, “모란봉(牡丹峰)” 등이 있고, 단편으로 “빈선랑(貧鮮郞)의 일미인(日美人)”이 있다. 한국 최초의 신소설 작가로서 개화 사상을 고취하고 갈등과 성격 묘사, 그리고 사실적 문장을 처음으로 구사하였다.
▶ 귀(鬼)의 성(聲)
1. 줄거리
강동지(姜同知)의 외동딸 길순이는 아버지의 불찰로 춘천 군수로 와 있던 김승지의 첩이 되어 그의 아이를 낳는다. 김승지의 본처는 이를 시기하여 길순이 모자를 죽일 흉계를 꾸민다. 본처의 교활한 종인 점순이는 겉으로는 길순이를 동정하는 체하며 정부인 최가를 시켜 길순의 모자를 산 속에 유인하여 살해하고 만다. 아내와 함께 딸네집을 찾아왔다가 딸이 살해되었음을 알게 된 강동지는 부산까지 쫓아 내려가서 점순이와 최가를 죽이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서 김승지의 본처를 죽인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신소설
◎ 배경 : 시간(구한말) / 공간(서울과 춘천)
◎ 성격 : 비판적
◎ 표현 : 비교적 치밀한 구성, 밀도 있는 사건 전개와 내용이 주는 비극성이 돋보임.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구성 : 상권은 20장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하권은 분장 없이 통편임.
◎ 주제 : 귀족 사회의 부도덕성 폭로. 축첩 등의 사회 폐습 비판. 몰락해 가는 양반 계급의 이면 폭로와 피지배 계층의 항거 및 처첩의 갈등
◎ 출전 : <만세보>(1906)
3. 등장 인물
이 작품은 신소설치고는 등장 인물의 개성이 강하다. 김승지로 대표되는 양반 계급의 가렴주구(奇斂誅求)와, 질투의 화신이며 봉건적 잔재인 본처, 상전 앞에서 알랑거리는 간교한 계집종 점순, 수줍고 얌전한 시골댁 길순, 서민 계급을 대표하는 강동지와 그 아내 등, 인물의 성격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4. 이해와 감상
1906년(광무 10년) <만세보>에 연재되었고, 1907년과 1908년(융희 2년) 중앙 서관(中央書館)에서 상(上)․하(下) 2권으로 간행된 신소설 초창기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 당시와 그 후의 독자에게 많은 감명을 준 수작으로서, 갑오경장 이후 몰락해 가는 양반 계급의 이면을 폭로하는 한편, 지배 계층의 가렴주구(奇斂誅求)에 반발하는 피지배 계층의 생활을 그려, 그 밑바닥에 현실의 반영 및 항거 의식이 잘 나타나 있다. 또한 비복(婢憐)들의 신분 제도에 대한 반발, 기성 법률과 관습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인간의 존엄성을 찾으려는 자의식이 강하게 그려진 작품이다. 고전 소설이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인생관이나 권선징악적 윤리관에 얽매어 결말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데 반해 이 작품은 객관적인 사건의 진행을 다루었다는 점과 고전 소설이 대개 스토리에만 힘을 기울여 사건의 발전, 심리 묘사 등에 관심을 두지 않았으나 이 작품은 다양한 사건을 전개한 점등의 새로운 요소는 당시 소설의 일대 혁신(革新)이며 진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정실(正室)과 첩의 갈등을 통해 봉건적인 생활 양식의 모순과 비합리성을 그렸을 뿐 아니라 몰락하는 양반 계급의 이면과 노비들의 신분 제도에 대한 반발 등을 그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신소설 전체의 문학적인 수준을 대표하고 있으며, 시대적인 전환이 급격하였던 시기에 과도기적 소설로서는 어느 정도 갖출 것을 고루 갖추었던 작품이라고 평가되기도 하였다. 또한 등장 인물의 개성이 뚜렷이 살아 있고, 심리 묘사가 적절히 표현되어 사실에 뿌리박은 역작일 뿐만 아니라 구소설의 해피엔드식(式) 종말을 지양한 언문일치(言文一致)의 문장과 묘사형식을 취한 점등으로 한국 근대소설의 시조(始祖)라는 평을 받고 있다.
비록 주제나 사건의 참신성은 다소 부족한 면이 있으나, 작품의 저변에 흐르는 현실 의식, 저항 의식은 높이 살 수 있다. 즉, 갑오경장 이후 몰락해 가는 양반 계급의 가정적 갈등을 매개로 하여, 이에 대한 피지배 계급의 항거 등은 근대적인 문학 세계를 보여 준다. 신소설 가운데 가장 많은 독자를 확보한 이 작품은, 기법면에 있어서도 고대소설의 정석에 속하는 설화투가 없어지고 장면 묘사가 허두에 놓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작품의 후편은 작품 말미에 ‘아래 권은 그 여학생이 고국에 돌아온 후를 기다리오.’라고 예고된 후, 1913년 2월에 와서 “모란봉”이라는 이름으로 <매일신보>에 65회에 걸쳐 1913년 6월까지 연재하였다.
▶ 은세계
1. 핵심 정리
◎ 배경 : 구한말 서울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주제 : 반봉건 사상과 자주 독립 의식의 고취
2. 등장 인물
◎ 옥남, 옥순
3.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1908년에 발표되어 <원각사(圓覺社)>에서 창극(唱劇)으로 공연되기도 했으며,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어 있다. 전반부의 내용은 이인직의 독창적인 창작이 아니라 전래하던 판소리 <최병두 타령>을 개작한 것이며, 후반부에 주인공인 옥남, 옥순 남매의 이야기를 창작하여 덧붙인 신소설이다. 전반부의 특징은 <농부가>, <나무꾼 노래>, <상두 소리> 등 삽입 가요가 들어 있는 판소리 사설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후반부에서는 영웅 소설의 성격을 보여 준다. 그리고 내용은 부패와 학정으로 양민을 수탈하는 양반 관료에 대한 평민 최병도의 현실 고발과 항거로 일관되어 있으며, 후반부에서 미국 유학에 의한 신교육의 필요성을 열렬히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을 풍자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관권에 대한 민중의 반발 의식이 고취되어 있다.
▶ 혈(血)의 누(淚)
1. 줄거리
이야기의 발단은 청일 전쟁(淸日戰爭)의 회오리바람이 막 지나가고 피비린내가 만연한 평양 어느 곳에서 삼십 세 가량의 여인이 옷도 풀어헤친 채 허둥거리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여인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아내를 잃고 찾아 헤매던 어느 외간 남자와 부딪혀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이 부인은 남편 김관일(金冠一)과 의딸 옥련(玉蓮),세 식구가 난리통에 서로 헤어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최씨 부인은 남편을 기다리다가 끝내 돌아오지 않자 자살을 결심하고 대동강 물에 뛰어 드나 뱃사공에게 구출되어 평양에 그대로 머물렀으며, 김관일은 나라의 큰일을 해야겠다고 결단을 내려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옥련은 피란길에 폭탄의 파편을 맞아 부상했으나 일본군 군의관 이노우에(井上)의 후의로 그의 양녀가 되어 일본으로 건너간다. 그녀는 원래 총명하고 예쁜 탓으로 이노우에 군의의 부인으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옥련은 그 후 이노우에 군의가 전사(戰死)하자, 부인으로부터 냉대를 받게 되고 갑자기 갈 곳이 없는 신세가 되어 방황하다가, 구완서라는 청년과 알게 되어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다. 구완서는 부국강병(富國强兵)의 뜻을 품고 조선을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처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유학길에 오르던 중이었다. 옥련은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우등으로 마치고 이미 미국에서 살고 있는 아버지 김관일과 10년 만에 만나게 된다. 옥련이 우등으로 졸업하자 그곳 신문에 옥련에 관한 기사가 나고 이것을 옥련의 아버지인 김관일이 본 것이었다. 이런 가운데 옥련과 구완서는 일생의 반려가 되기로 기약하며 약혼을 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아직 평양에 살아 있음을 확인한 옥련은 매우 기뻐하며, 그리움 속에 어머니에게 우선 편지를 띄운다. 구완서는 우리나라를 문명한 강대국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였고, 또 옥련은 우리나라 여자들의 지식을 넓혀서 남자에게 눌리지 않고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하며, 또한 여자들도 사회에 유익하고 명예 있는 백성이 되도록 교육할 것을 마음먹는다. 그리고 어머니가 아직 평양에 살아 있음을 확인한 옥련은 매우 기뻐하며, 그간의 사정을 써서 어머니에게 보낸다. 그 편지를 받은 옥련 어머니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신소설
◎ 배경 : 시간(개화기) / 공간(한국, 일본, 미국)
◎ 성격 : 계몽적, 교훈적
◎ 표현 : 묘사체, 산문체(언문일치에 접근, 일부는 여전히 문어체 흔적 남아 있음)
◎ 문체 : 국한문 혼용체, 구어체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의의 : 우리나라 최초의 신소설
◎ 주제 : 자주 독립, 신교육 사상과 새로운 결혼관
◎ 출전 : <만세보>(1906)
3. 등장 인물
◎ 옥련 : 주인공. 문명주의자(文明主義者)인 김관일의 딸
◎ 김관일 : 옥련의 아버지. 청일전쟁을 계기로 부국강병의 뜻을 품음.
◎ 구완서 : 부국강병(富國强兵)의 뜻을 품은 유학생
4. 이해와 감상
1906년 <만세보(萬歲報)>에 연재되었던 작품이다. 이 소설 이전에도 수많은 신소설이 있었으나 문학적인 수준이나 가치로 보아 근대 소설의 효시로서의 신소설은 이것이 최초의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상편은 <만세보> 연재로 끝나고 하편에 해당하는 “모란봉(牡丹峰)”은 1913년 <매일신보(每日申報)>에 연재되다가 미완성으로 끝났다. 1894년 청일 전쟁이 평양 일대를 휩쓸었을 때 일곱 살 난 여주인공 옥련(玉蓮)은 피난길에서 부모를 잃고 부상을 당하나 일본군에 의해 구출되어 이노우에[井上] 군의관의 도움으로 일본에 건너가 소학교를 다니게 된다. 그러나 이노우에 군의관이 전사하고 그 부인한테 구박을 당하게 된 옥련은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중 구완서를 만나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다. 워싱턴에서 공부하던 옥련은 극적으로 아버지를 만나게 되어 구완서와 약혼한다. 한편 평양에서는 죽은 줄만 알았던 딸의 편지를 받고 어머니는 꿈만 같이 기뻐한다. 문명 사회에 대한 동경과 자유결혼을 주제로 하여 새 시대의 모랄을 제시하려 한 작자의 의도가 엿보인다. 이 작품은 한국 근대 문학사에 나타난 최초의 근대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해서 한국 소설은 그 이전의 전근대적인 때를 벗기 시작하였다. 이전의 한국 고대 소설은 이야기 중심이고 우연성이 심하게 나타나 있었다. 이 작품은 10년의 시간 속에서 한국, 일본, 미국을 무대로 한 여주인공 옥련의 기구한 운명에 얽힌 개화기의 시대상을 그린 것으로서 ‘자주 독립, 신교육, 신결혼관’ 등이 그 주제로 되어 있다. 등장 인물들은 다소 친일적이고 역사 인식이 부족한 인물들이며, 그 당시 대다수의 지식인들과 부합하는 사실적(寫實的)인 인물(人物)로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의 신소설적 성격을 간단히 살피면 첫째, 언문 일치(言文一致)에 거의 근접해 있으며, 둘째, 서술 시간이 역전적으로 배치되어 있고, 셋째, 표현에서 묘사체 문장이 시도되고 있고, 넷째, 개화 사상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또한 다섯째, 그 소재들이 대체로 우리 주변에서 일상 일어나는 일들로 택해져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소설은 1906년 만세보에 발표된 우리나라 최초의 신소설이다. 청일 전쟁과 그 직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전쟁 속에서 가족과 헤어진 주인공이 새로운 세계를 겪어 가는 과정을 통해 신교육의 필요성, 사회와 정치 개혁, 개화 의식 고취, 자유 결혼의 계몽적 이념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구체적이고 현실감 있는 배경, 주제를 당시 시대 문제와 직결시킨 것은 보다 근대적 요소로 볼 수 있으며, 관용적인 한문구를 배제하고 일상적 구어체를 활용한 것은 작품의 현실감을 높이는 중요한 몫을 하였다. 하지만 그의 친일적 의식과 반민족 의식을 강력히 드러낸 것은 비판의 요소가 된다. 또한 신문명에 대한 일방적인 경도와 지나치게 낙관적인 개화주의에 기울어 있다는 부정적 평가를 하기도 한다.
이제하(1937~) |
경남 밀양 출생. 홍익대 서양화과 중퇴. 1956년 <수정 구슬>(동화)이 <새벗>에 당선되고, 1959년 <현대문학>에 시 <설야>, <노을>이 추천되고, 단편 <황색의 개>가 <신태양>에 당선되어 등단함. 그는 회화적인 문체와 시적인 상징 수법을 통해 초현실적 암유를 활용하는 ‘환상적 리얼리즘’ 작가로 알려져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초식(草食)>, <기차기선 바다 하늘>, <임금님의 귀>, <용>, <밤의 창변> 등이 있다.
▶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1. 줄거리
아내의 뼈를 뿌리러 주말 여행길에 오른 주인공이 중풍 노인을 데리고 방황하는 한 간호원과 해후한다. ‘그’는 이 여인의 이상한 흡인력에 빨려들지 않으려고 내면으로 저항한다. 이상한 흡인력이란 죽은 아내의 그것과 같은 체취였다. ‘그’의 내면은 연민과 일탈로 갈등한다. 여로(旅路)에서 불가사의하고 필연적인 일들이 벌어진다. 마지막에 간호사를 만났을 때, 그는 어떤 운명 같은 힘을 느끼고 그녀를 받아들일 것을 결심한다. 하지만, 아내와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노상(路上)에서는 그녀와 결합하지 않으려고 마음먹고 그는 자신을 간신히 자제한다. 그녀와 ‘그’는 날을 정해서 살림을 차릴 것을 약속하고 뱃머리에서 헤어질 무렵 운명적인 일이 들이닥친다.
2.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1985년에 발표된 중편 소설로서 제9회 이상 문학상 수상작이다. 이제하는 수상 소감에서 “전통적인 사실주의 기법으로 맞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그는 현실적 국면에서 현실을 예술적으로 변용시키기 보다 큰 현실을 역동적으로 보여 주고자 했다.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는 개인적인 삶의 한(恨)이 집단적으로 함몰되어 가는 과정을 추적한 작품이다. 현실과 유리된, 현실과 철저히 대립되어 있는, 현실과 양립 불가능한 가치 세계가 아니라 현실적 가치에 대한 예술적 변용의 세계를 보여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세계는 인간의 기본적 가치 위에서 선행되는 것으로, 삶에 대한 본질적 의문에 속한다. 작가는 이것을 극히 회화적인 구조로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는 현실 자체에 연연하는 인간의 구조적 삶의 모습이 변용되어 나타나는 세계를 기교적 터치로 완성시킨 작품이다.
▶ 유자(劉子) 약전(略傳)
1. 줄거리
유자가 내 아틀리에에 온 것은 1967년 7월이었다. 내 고교 동창이자 그녀의 사촌 오빠인 N이 보내서 온 것이다. 유자는 아틀리에에 처음 오자 몇 시간이고 꼼짝 않고 멍청한 눈길로 앉아 있었다. 특이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의 독특한 졸음 증세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두어 주일 후였다. 그녀의 이런 기이한 잠버릇은 이틀이나 사흘 전부터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그 생각의 막바지에 다다르면 쌓인 피로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석 달이 지난 지금 나를 더 이상 견딜 수 없도록 하는 것은 그녀의 기이한 졸음 증세가 아니라 그녀가 그림에 대해서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동안 여러 독특한 화가의 화집(畵集)을 가지고 유도해 보기도 했지만 매번 그녀는 거의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시큰둥한 말투에서 나는 그녀가 예상외로 그림에 대해 많이 알고 있으며, 높은 눈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느 날, 그녀는 처음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창호지에다 손가락으로 파란 물감을 풀어 어떤 포름에 가두었다가 곧 없애 버리는 묘한 화법이었다. 이것은 그녀가 어렴풋이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행위였다. 그러던 중 유자의 남편 유형이 왔다. 그들 두 사람은 서로를 극진히 아끼고 위하는 애정으로 단단히 묶여 있는 듯했다. 내가 이루지 못할 작품에 대해 허황한 꿈을 꾸고 있는 동안 그녀는 길을 떠났다. 유자는 주머니의 돈을 털어 어디든지 도착하면 그 곳에 있는 아무 목욕탕에나 들어가서 몇 시간씩 잤다. 어느 날 그녀는 쟌 포스의 화집을 들여다보며 고통에 절규하던 끝에 쓰러졌다. 지병인 위암(胃癌)이 도진 때문이었다. 그 후, 그녀는 정치 이야기를 입 밖에 내고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다. 그녀는 28세의 나이로 죽었다. 급속도로 악화되어 가던 그녀의 병에 대해, 나를 포함해서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모든 인간들에 대해 나는 기억조차 하기 싫다.
2. 핵심 정리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배경 : 우리 사회의 시대적 국면
◎ 주제 : 물신 사회 속에서의 예술적 가치의 타락
3. 등장 인물
◎ 남유자 : 위암에 걸린 여류 화가. 이혼녀. 28세의 나이로 죽음.
◎ 나 : 관찰자. 유자의 삶을 이야기하는 화가
4. 이해와 감상
이제하는 환상적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작가이다. 그의 소설 속에는 환상과 현실이 분리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결합되어 역동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소설 속에는 분단 이단 근대화의 현실 문제들이 그의 환상 속에서 어우러져 있으며, 우리 시대의 시대적 분위기가 여러 가지 이미지로 변모 굴절되어 있다. <유자약전>에서 이제하는 주인공 남유자를 예술가로 설정했다. 그것은 예술가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위기 의식이며, 동시에 훼손된 세계를 막아내는 유일한 거점이기 때문이다. 이제하의 ‘예술가’는 바로 순교자의 모습을 상징한다. 그러면 무엇에 대한 순교인가.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순교적 자세를 의미한다. <유자약전>에서는 이러한 예술가적 자존심이 현실의 몰이해로 인해 무참히 '죽음'으로 변화 마멸되어 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것은 주인공 남유자가 “이 세상을 구원할 사람은 그 사람밖에 없어요.”라고 논의한 그 ‘예술’이 타락한 현실로부터 추방될 수밖에 없다는 운명적 세계관을 담은 것이다.
▶ 초식(草食)
1. 줄거리
세 번째 출마를 위해 부친이 채식을 시작하자, 우리 집은 선거참모로 자처하는 친척과 그 친척의 친척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첫 번 출마 때는 6명 중에서 끝에서 두 번째로 낙선했고, 두 번째 출마 때는 8명 중에서 꼬리에서 첫 번째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이러한 부친의 유일한 이해자는 숙당 조문제 선생인데, 그에 의하면 부친의 망발은 단지 젊어서 글깨나 좀 읽은 탓일 뿐이라는 것이다. 모든 난점은 ‘흐르는 세월’이 심판해 준다는 것이었다. 12명의 후보들이 날뛰는 주객 전도의 광란 속에서 합동유세의 날이 왔다. 그런데 거기에서 발생한 뜻밖의 작은 사건으로 인해서 이 양양하던 입후보자는 180도로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사건이란 합동 유세장에서 죽마고우인 최씨와 만난 아버지는 쫓고 쫓기는 달음박질 끝에 모든 것을 결판내는 마지막 심지를 뽑게 되었다. 그것은 과거 한 여자로 비롯된 라이벌 관계에서 아버지의 패배였다. 그 이후 부친은 지금까지의 삶을 180도 전환하여 채식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 후, 4․19가 일어나자 부친은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고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나흘이 자나자 무엇인가 깨달은 듯 했고, 하루가 더 지나자 저녁에 나를 데리고 3년 전의 그 도수장으로 갔다. 아버지는 하층 민중의 고통을 집약적으로 체현(體現)하고 있는 곳이 바로 도수장이라 생각한 것이다. 상대도 않으려는 도수장 주인 앞에서 부친은 손가락 하나를 잘라 긴 광목천에 풀초 ‘草’자를 적어 보였다. 다시 5․16이 일어난 사나흘 뒤 한 낮에, 갑자기 대문 밖이 소란스러워 나가 봤더니 한 무리의 군중과 도수장 주인이 와 있었다. 아버지가 혈서를 쓴 것은 4․19 뒤였으나 4․19와 5․16을 같은 것으로 착각한 도수장 주인이 아버지의 열망에 감동하여 찾아온 것이었다. 도수장 주인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감격해 했다. 뿐만 아니라 도수장 주인은 혁명을 축하하는 잔치를 연다고 소까지 끌고 왔다. 혁명 축하 잔치는 동네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옛 공민학교 운동장에서 열렸다. 도수장 주인은 도끼로 소를 내리쳤다. 우리는 그 솜씨에 감탄했다. 단 한 번의 도끼질에 짐승은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한 무더기 피와 함께 도수장 주인이 뒤틀린 입을 떡 벌린 채 천천히 일어나서 허공을 향해 섰을 때 우리는 쓰디쓴 환멸을 느꼈다.
2. 핵심 정리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배경 : 4․19 및 5․16 혁명을 전후한 사회 현실
◎ 주제 : 민주의 실체가 아닌 민중을 실체로 인식한 데서 오는 심리적 파탄
3. 등장 인물
◎ 서광삼 : 선거 출마할 때마다 채식(菜食)을 시작하는 얼음 도매업자
◎ 도수장 주인 : 서광삼으로부터 민주의 실체로 오인된 인물
4. 이해와 감상
1972년 <지성(知性)>지에 발표된 <초식>은 돈 한푼 없이 매번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서광삼(徐光三)이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서광삼은 민주주의 신봉자로서는 늘 꼴지 점수를 받는 수모를 당하면서도 국회의원이 되고야 말겠다는 신념을 버리지 못한다. 자전거에다 도시락을 매달고 선거유세에 나서는 인물이다. 따라서 <초식>은 민주의 실체가 아닌 사람을 민주의 실체로 착각한 인물의 파탄을 그린 작품이다. 이제하의 소설은 매우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구체적인 줄거리나 명백한 테마를 배제하고 회화적인 문체와 시적인 상승 또는 초현실적 비유를 아주 많이 사용한다. 또한, 그의 소설은 매우 난해한 분위기로 되어 있다. 그의 창작 세계는 사건이 불투명하고 비현실적이며 인간이 추상적으로 묘사된다. 이를 작가는 스스로 ‘환상적 리얼리즘’이라 부른다. 전통적 수법을 파기하는 그의 이 같은 실험은 그 독특한 기법을 통해 잔인한 현실의 진상을 충격적으로 전달해 주고 있다.
이청준(1939~) |
소설가. 전남 장흥 출생. 서울대 독문과 졸업. 1965년 제7회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단편 “퇴원(退院)”이 당선 되어 문단에 데뷔. “병신과 머저리”로 제13회 동인문학상 수상. 이후 “이어도”, “잔인한 도시”, “살아 있는 늪” 등으로 이상문학상 등 수상. 작품의 경향은 지적 방법으로 현실 세계의 부조리, 불합리 정밀하게 해부, 인간 존재의 본질적 조건과 진실에 대해 성찰하는 경향을 보임. 외에도 대표작으로 “매잡이”, “당신들의 천국”, “낮은 데로 임하소서”, “자유의 문”, “소문의 벽” 등 있음. 이청준의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삶과 현실은 대단히 다양하다. 그가 그리는 세계는 첫째 “줄”, “매잡이”, “과녁”, “줄광대” 등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인 장인에 속하는 사람들의 비극적인 삶, 둘째 “빈 방”, “황홀한 실종”, “퇴원”과 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과거의 어떤 정신적인 상처가 개인의 정신적․생리적 이상현상을 일으킨 삶, 셋째 “서편제”, “남도 사람들”, “선학동 나그네” 등 남도의 '소리'를 중심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세계, 넷째 ‘언어사회학 서설’이라는 부제가 붙은 “떠도는 말들”, “자서전들 쓰십시다”, “지배와 해방”, “다시 태어나는 말” 등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말'의 상실 및 추구의 세계, 다섯 째 “개백정”, “뺑소니 사고” 등에서 볼 수 있는 폭력적인 현실의 체험 등으로 구분될 수 있다.
▶ 눈길
1. 줄거리
모처럼 휴가를 얻은 ‘나’는 아내와 함께 시골에 계신 노모를 찾아간다. 망나니형의 주벽으로 잘 살았던 집은 벌써 남에게 넘어간지 오래고, 노모와 형수, 그리고 조카들만이 조그만 집에 살고 있었다. 부모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않고 자수성가했다고 늘 생각해 왔던 ‘나’는 어머니의 사랑을 애써 외면하려 한다. 형의 술버릇으로 인해 가산이 탕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려고 고향에 찾아 올 때, 어머니는 남의 집이 되어 버린 그 시골집에서 ‘나’를 예전처럼 하룻밤 편안히 쉬어 갈 수 있게 해 주시고 밤새 차부까지 눈길을 동행하고, 당신 홀로 아침에 힘겹게 집으로 돌아오셨던 과거사를 아내에게 들려준다. 결국, 노모와 아내가 잠자리에서 나누는 추억의 옛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애써 눈물을 참고 외면하려 하지만,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 앞에서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순수 소설, 귀향 소설
◎ 구성 : 단순 구성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배경 : 어느 해 겨울의 한 시골
◎ 주제 : ‘눈길’에서의 추억을 통한 인간적인 화해. 사라져 가는 효 정신
◎ 출전 : <예언자>(1977년)
3. 등장 인물
◎ 나 : 고등학교 시절 집안이 어려웠을 때 부모가 자신에게 물질적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것을 떠올려 지붕개량 사업에 돈이 필요하다는 모친의 의사를 무시한다. 자식 노릇을 못한 자신이나 자식 뒷바라지를 못해 준 어머니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가진 이기적 인물이다.
◎ 아내 : 이 작품의 이야기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데, 시어머니와 남편 사이의 교량 역할을 충실히 하는 인물이다. 모친을 대하는 남편의 태도에 당혹해 한다.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고향에 대해 그리움과 함께 증오감을 갖고 있는 주인공이 어떤 일로 인해 고향을 방문하게 되고, 고향에서의 특수한 체험을 통해 인간적 화해에 도달하게 되는 귀향형 구조로 된 소설이다. 이 작품은 자수 성가했다고 자부하는 ‘나’와 집안의 불행이나 재앙을 자신의 덕 없음과 박복에다 돌리는 어머니, 그리고 화해에 도달하게 하는 매개 인물로서의 ‘아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한편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잠자리에서 노모와 자신의 아내가 나누는 이야기로, 이를 통해 그 동안 외면했던 어머니의 사랑을 뒤늦게 깨닫게 되면서 심정적으로 화해하게 되는 주제 의식을 표출시키고 있다. 이 작품의 제목인 ‘눈길’이 주는 이미지는 ‘나’와 ‘어머니’에게 각기 따로 작용한다. ‘나’에 있어서 ‘눈길’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쓰라린 추억과 몰락해 버린 집안과 스스로 자수 성가해야만 하는 운명을 의미한다. 그리고 ‘어머니’에 있어서, ‘눈길’은 자식에 대한 사랑을 스스로 확인하게 되는 상징물로서, 스스로 받아들여야 하는 혹독한 시련이면서도 따스한 자식에 대한 사랑의 이미지를 의미한다. 이 작품에 드러난 ‘나’의 의식을 알아보기로 한다. ‘나’는 어린 시절에 경험한 가난에 대한 공포가 정신적인 상처를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하면, 도회지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집을 잃은 어머니의 가난으로 인한, 아니 ‘나’ 자신의 가난으로 인한 상처는, ‘나’로 하여금 ‘어머니’에게 빚진 것이 없다고 생각하려고 하게 만들지만, 이렇게 겉으로 드러난 적대감의 이면에는 그 반대의 친화감이 깔려 있다. 아니 ‘나’에게서 나타나는 어머니에 대한 적대감은 사실은 주인공이 자신의 상처를 되돌아보고자 하지 않는 과거의 기피증이지 어머니에 대한 문자 그대로의 적대감은 아니다. 그것은 ‘나’가 아내에게 어린 시절의 가난에 관해서 이야기해 주고자 하지 않고, 따라서 그 이야기가 나올 만했을 때 다시 서울로 떠남으로써 어머니로부터 그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방지하려고 했지만, 일단 그 이야기가 어머니에게서 아내에게로 전달되는 순간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으로 충분히 설명된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 시절의 가난은 그에게 ‘부끄러움’이 되어 가능하면 그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작품의 결말 부분에서 모자의 기억 속에 교차되며 회상되고 있는 ‘눈길’은 작품의 서사적 의미의 핵심이다. 아직 깜깜한 새벽길, 급히 상경하는 자식이 안쓰러워 자식과 함께 나선 눈길, 그러나 자식이 상경하고 난 뒤 눈물을 흘리며 돌아서는 눈길은, 몰락한 집안의 ‘어머니’가 겪어 온 인고의 생애 전체를 포괄하는 의미를 지닌다. 자식이 떠난 뒤에 시린 눈으로 차마 보지 못했던 과거 속의 ‘아침 햇빛’과 부끄러워서 ‘나’로 하여금 차마 눈을 뜨지 못하게 하는 ‘전등 불빛’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근대화의 과정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전통의 ‘효(孝)’에 대한 문제를 조명하고 있는 이 작품은 물질적 가치에 젖어 있는 이기적인 자식과 그 자식에 대한 노모의 사랑이 대조되고 있다. 아들인 ‘나’는 자수 성가하여 도시에 정착해 있는데 모처럼 아내와 함께 노모를 찾는다. 노모가 사는 마을은 지붕 개량 사업이 한창 이루어지고 있는데, 사후를 위해 집을 개축하려고 하는 의사를 비친다. 그러나 ‘나’는 노모의 의사를 못들은 척하고 귀경을 서두른다. 이 때 아내는 노모의 사랑으로 남편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를 쓴다.
▶ 당신들의 천국
1. 줄거리
나환자들의 섬 소록도에 전직 군의관 출신 조백헌 대령이 새로 병원장으로 부임해 온다. 부임 첫날부터 원생의 탈출사고가 일어나고, 조 원장은 외부사람의 눈에는 평화스러워 보이는 이 섬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음을 느낀다. 이후 조 원장은 불신과 패배감에 젖어있는 섬을 바꿔놓기 위해 군인 특유의 저돌성과 끈기를 가지고 많은 난관들과 부딪혀 나가기 시작한다. 조원장의 간곡한 설득과 열정 어린 의지에도 원생들(소록도 병원의 환자들)은 원장을 불신하며, 모든 사업계획들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지배자의 관점에서 원생들을 위한 천국을 건설하려 했던 역대의 원장들이 자신의 명예심과 과시욕 때문에 원생들을 혹사시키는 등 결국 그들을 배반했고 또한 그 권력에 빌붙어 개인의 안위를 위해 같은 원생이 서로를 배신하기에 이르는 과정을 수십 년 동안 몇 번이나 겪었기 때문이다. 원생들이 겪은 배반의 대표적인 예가 일제시대 때의 원장 주정수이다. 그는 행복한 낙원의 건설을 장담했고, 그의 의지에 감동 한 원생들도 열심히 따라서 마침내 섬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차츰 주 원장과 원생들의 관계는 절대적인 지배자와 그에 복종해야 하는 피지배자의 관계로 변질되게 된다. 원생들은 낙원의 건설을 위해 계속 되는 부역에 노예처럼 끌려나가야 했고, 섬을 탈출해 나가는 사람마저 생기게 되었다. 그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낙원에서 목숨을 걸고 빠져나가는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권력에 아첨하는 무리들은 주 원장의 동상까지 세우고, 매월 동상 참배까지 의무적으로 하도록 만든다. 결국 주 원장은 겉으로는 나환자들을 위한 복지시설이 완벽하게 확충된 ‘낙원’을 건설해 놓고도, 바로 그 보은(報恩) 감사일날 나환자의 손에 의해 살해당한다. 보건과장 이상욱은 조 원장이 그 ‘주정수의 동상’을 되풀이 할 인물인지 아닌지를 끊임없이 의심하며, 조 원장은 섬사람들에게 지난날의 악몽을 씻고 이젠 내일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원생들은 조 원장에게서 목숨까지 건 맹세를 받아 내고서야 비로소 바다를 매립해 원생들의 농토를 만들자는 원장의 간척사업계획 에 동참하기 시작한다. 자연과 인간의 싸움,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싸움이 몇 년에 걸쳐 힘겹게 치러진다. 간척사업 동안 원생들은 정말 헌신적으로 열심히 일했으나, 폭풍으로 인해 또는 자연 침하로 인해 바다 밑에서 솟아오르는 돌둑은 번번이 가라앉곤 했고, 조 원장은 살얼음을 걷는 심정으로 불만과 불신을 묵묵히 인내하는 원생들을 지켜보아야 했다. 어느 날, 도 당국에서 파견한 작업조사반이 섬에 들어온다. 간척장을 당국에서 인수하겠다는 것이었다. 분노한 조 원장은 이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결국 다른 병원으로의 전임 발령을 받고 만다. 어떻게 해서든 사업을 완성시켜놓고 떠나고 싶었던 조 원장은 모든 사실들을 원생들에게 이야기하고 사업을 빨리 진척시켜 줄 것을 독려한다. 한결같은 조원장의 헌신적인 모습에 마음이 움직이고 있던 원생들은 조원장의 전임 발령을 취소하라는 청원 서명 운동을 벌이기에 이른다. 이상욱은 원장을 찾아와 이것을 중단시킬 것과 사업의 완성 여부에 상관없이 이 섬을 떠나라고 충고한다. 간척사업의 과정에서 원생들은 이미 많은 것을 성취했으며, 그 사업의 완성을 보고 싶은 것은 혼자서 모든 일을 완성해내고픈 원장의 욕심일 뿐이라고. 상욱은, 비록 원장은 ‘동상’을 지니지 않았다 하더라도 섬사람들이 스스로 지어바칠 그 ‘동상’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조 원장은 그 간척사업의 결말을 보지 못하고 섬을 떠나지만, 5년 뒤 민간인의 신분으로 다시 섬으로 돌아와 음성병력자와 건강인 처녀의 결혼식에 주례를 맡는 등 섬사람들과 공동의 운명을 같이 하는 삶을 살며 믿음과 사랑이 바탕이 된 진정한 천국의 건설을 꿈꾼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장편 소설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배경 : 시간(현대) / 공간(소록도)
◎ 주제 : 인간의 진정한 삶과 사랑의 실천을 통한 이상주의적 세계 추구
◎ 출전 : <신동아>(1974~1975)
3. 등장 인물
◎ 조백헌 : 소록도 병원장으로서 나환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긍정적 인물이다.
◎ 이상욱 : 조백헌 원장과는 갈등 관계였으나 원장의 사랑 정신에 감동한다.
◎ 이정태 : 소록도를 취재하는 기자
4. 이해와 감상
□ 너와 나, 우리 모두의 천국을 위한 집요한 물음 : “당신들의 천국”은 나환자들의 집단 거주지인 소록도를 무대로 삼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5․16 군사 혁명이 있은 지 얼마 뒤 군복 차림으로 소록도 병원의 원장으로 부임해 온 조백헌 대령이다. 그가 나름의 열의와 진정을 가지고 소록도를 나환자들의 천국으로 꾸미고자 노력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우여곡절이 소설의 얼개를 이루는데, 작가는 이를 통해 자유와 사랑으로 이루려 하는 ‘천국’의 개념 위에 성한 사람과 나환자 사이의 운명의 간극을 얹어 놓음으로써 ‘당신들의 천국’이 아닌 ‘우리들의 천국’을 향한 근원적 질문을 그 끝까지 밀어붙인다.
□ 당신들의 천국을 위하여 : 소록도 병원에 새 원장 조백헌이 부임해 온 날 밤, 두 원생이 섬을 탈출한다. 조백헌은 부임 인사도 하지 않고 탈출 사고의 경위를 조사한다. 병원의 보건과장 이상욱을 통해 일본인 주정수는 소록도를 버림받은 나환자들의 낙토로 꾸미려고 대규모 사업을 진행시켰던 것이다. 처음 그 사업은 원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얻어 순조로이 진행되었으나, 차츰 낙토 건설이라는 명분의 배후에 주정수 자신의 동상을 세우려는 욕망이 자리잡고 있음이 드러나면서 원생들을 고통과 배반의 늪으로 끌어들인다. 그래서 마침내 주정수는 원생에게 피살되었다. 낙토 건설이란, 원장의 입장에서는 원생을 위한 것이며 지배자의 피지배자에 대한 사랑의 베풂인 것으로 보이지만, 원생의 입장에서 보면 원장의 동상욕(銅像慾)을 위한 것이며 지배자의 피지배자에 대한 강요와 억압의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과거사를 알게 된 조백헌은 털끝만큼의 회의도 없이 동상욕을 부정하고, 사랑의 행위라는 확신 아래 낙토 건설 사업을 일으키기로 결심한다. 미감아 출신으로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서 비판적 지식인의 역할을 하는 보건과장 이상욱은 그런 조백헌에 대해 계속 회의한다. 낙토가 건설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환자의 낙토이지 인간의 낙토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그는 괴로워한다. 드디어 낙토 건설 사업은 시작되는데 조백헌은 숱한 우여곡절을 겪는다. 오마도 간척 사업의 추진 과정에서 육지 사람들의 방해, 행정 관청의 비협조, 자연의 횡포, 원생들의 배반, 그리고 마침내는 상부의 일방적인 전근 발령으로 조백헌은 거의 절망의 수렁에 빠져든다. 그러나 반드시 일을 완성시키겠다고 조백헌은 의지를 굳건히 하는데, 이는 무의식중에 그가 동상욕에 대한 미련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의미할 따름이다. 이상욱은 그 점을 지적하지만 조백헌이 받아들이지 않자 섬을 탈출한다. 황장로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조백헌은 화려하지 않게 조용히 섬을 떠난다. 그리고 칠 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다. 이제 조백헌은 원장의 신분이 아닌 한 민간인 신분으로 섬에 돌아와 섬의 주민이 되어 있다. 그는 그 칠 년 동안 황 장로의 사랑의 계시를 자체적으로 소화해 냈고 그리하여 자기 각성에 도달했던 것이다.
□ 우리들의 천국을 위하여 : 그 자기 각성의 내용은 신문기자 이정태와의 대화를 통해 밝혀진다. 다스리는 자의 사랑 속에 다스림을 받는 자의 사랑이 깃들이고, 다스림을 받는 자의 자유 속에 다스리는 자의 사랑이 깃들여서 결국은 양자가 한 길로 화해스런 조화를 이룩해 나가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믿음이 획득되어야 한다. 또 믿음이 획득되기 위해서는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가 하나의 운명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자기 각성과 함께 섬으로 돌아와 섬의 주민이 되어 공동 운명을 수락한 조백헌에게 새로운 문제가 대두된다. 성한 자와 나환자 사이의 운명적 간극까지 사랑과 자유의 힘으로 메울 수 없다는 본원적 한계에 부딪친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몫 바깥에 있는 과제였다. ‘우리들의 천국’이란 그러므로 이러한 타고난 운명을 승인한 위에서 모색해 볼 수 있는 것이었다.
□ 작은 출발 : 그러나 조백헌은 작은 일에서부터 차례차례 한 가지씩 행해 나가기로 마음먹는다. 그 첫 번째 실천으로 조백헌은, 뭍에서 온 여교사 서미연(미감아)과 환자(음성 나환자) 윤해원의 결혼을 주선한다. 두 남녀의 상징적 결합이 이루어지는 날, 날씨는 화창했고 사람들의 표정 역시 그 봄 날씨처럼 맑고 너그러웠다.
<참고> “당신들의 천국”을 통해 본 이청준의 정치학
□ 조백헌의 천국론 : “당신들의 천국”의 주인공 조백헌은 이청준의 소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긍정적인 인물이다. 그의 긍정적인 성격은 기본적으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는 신념 위에 기초해 있다. 그의 신념은 이 땅에 천국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천국론은 이상욱과 황장로에 의해 수정을 받는다. 인간은 화해할 수 있지만, 그것은 인간과 인간이 서로 사랑과 자유를 소유하고 있을 때에 가능한 것이지, 하나는 힘을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는 지배자를 받는 피지배자로서 둘이 만날 때는 불가능하다는 수정이 그것이다. 어떻게 하면 인간 사회는 천국이 될 수 있는가? 권력의 행사는 어떠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이청준이 제시하고 있는 주장은 두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하나는 힘의 행사는 사랑과 자유 위에 기초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인간의 천국이 다른 인간의 천국과 대립되는 개념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문둥이들의 천국은 그것이 밖의 인간의 천국과 대립될 때, 이미 천국이 아니라 문둥이들의 수용소다. 대립되어 있을 때에는, 어느 한 편을 버릴 수 있는 자유와, 다른 편을 수락하는 사랑이 다 같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때의 천국이란 형식만 있을 뿐 선택이 불가능한 천국이다. 개인의 자유로운 결단과 선택이 없는 천국은, 그 천국을 버릴 수 있는 선택이 가능하지 못한 천국은 이미 천국이 아닌 것이다.
□ 자유와 사랑 그리고 자생적 운명 : 조백헌은 1,2부에서는 병원장으로서 막강한 힘을 행사하지만 3부에서는 일개 시민으로, 새 병원장에게 조언을 하는 것 이상의 일을 행할 수가 없다. 그는 언제나 원장의 ‘양해 밑에서’ 일을 추진해야 한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조백헌의 정치학의 뿌리를 이룰 ‘자생적 운명에 근거한 힘의 행사’에 대한 자각이 생겨난다. 조백헌은 소록도를 천국으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 속에서, 자유와 사랑을 행사하려고 민간인으로 소록도로 다시 온다. 그러나 그는 이미 자기가 힘을 행사할 수 있는 행사자가 아니라 보조자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소록도에서 자생적으로, 같은 운명을 감수하고 있는 자들의 선택에 의해서,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자유와 사랑에 의거한 힘의 행사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조백헌에 의하면 ‘운명은 자생적인’인 것이며, 자생적인 운명은 자생적인 힘의 행사를 요구한다. 이정태 기자의, 자생적 운명에 근거한 힘의 행사가 이루어질 때가 과연 올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조백헌의 대답을 보자. “이 섬에서 과연 그럴 때가 올 수 있을까요?” “그럴 때가 올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섬이 끝끝내 실패만 하고 있지 않으려면 그 때는 결국 와야겠지요. 그게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라도···” 조백헌이 힘의 행사자를 돕는 보조자의 위치로 내려오지 않았다면 이끌어내지 못했을 이 결론은 이청준 정치학의 결론이기도 하다. 힘의 행사는 자유와 사랑에 기초하고 있어야 한다. 그 힘은 동시에 밖에서 주어지는 것이어서는 안 되고, 같은 운명을 가진 사람들의 자생적 운명에 근거하고 있어야 한다. 그 진술은 이청준이 획일적으로 밖에서 주어지는 천국을 천국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에 또한 다름 아니다.
□ 왜 ‘당신들의’ 천국인가? : 소설 제목 “당신들의 천국”의 ‘당신들’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소록도에 천국을 세우겠다는 의욕을 가진 원장들이 그들이다. 이 점은 이상욱이 소록도를 탈출하면서 쓴 편지 속에 암시되어 있다. 그 편지에 의하면 조백헌은 “인간의 천국을 지어 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문둥이의 천국을 지으려”하고 있다. 섬을 문둥이의 천국으로 만든다는 것은, 환자를 더욱 환자답게 만든다는 것을 뜻하며, 그런 의미에서 “원장님의 천국의 윤리에 섬사람들의 생각이나 욕망이 스스로 한정 당하고 익숙해지기 시작하는” 것을 뜻한다. 환자들을 위한 특별한 천국을 만들어 준다는 것은 아무리 선의에서 비롯된 일일지라도 결국 환자들을 화려한 울타리 속에 격리시키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소록도 주민에게 육지 주민과 똑같이 대우받을 자격을 얻었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을 위한 ‘당신들의’ 천국이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그들의 울타리는 높아진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들만의 천국이 아니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격리 상태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이 격리 상태를 지속시키는 것은 물론 건강한 사람들의 관습적인 편견 내지 우월감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음성 환자들의 열등감과 그에서 말미암은 인간으로서의 반항도 스스로를 속박시키는 요소이다. 그러므로 소록도에 진정으로 세워져야 하는 천국은 환자들의 자생적인 운명에 근거한 힘의 행사, 자유와 사랑에 기초한 힘의 행사에 의한 천국이다. 그 천국은 이상욱까지를 포함한 환자들 모두의, 일인칭 복수 ‘우리들의’ 천국이다. 그러나 그 자생적 운명에 의거하지 아니한, 원장의 윤리에 기초한 천국이란, 환자를 환자답게 만드는 이인칭 복수 ‘당신들의’ 천국이다. (김현 “자유와 사랑의 실천적 화해”에서)
▶ 매잡이
1. 줄거리
소설가인 ‘나’는 민태준 형의 권유로 그가 매잡이에 대해 답사했던 마을을 찾아간다. 거기서 벙어리 소년을 만나 곽돌이란 매잡이를 알게 된다. 그는 사라져 가는 매잡이의 전통을 지키려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질 않아서 식음을 전폐한 끝에 세상을 등진다. ‘나’는 곽 서방의 죽음에 의문을 갖고, 서울로 돌아가면 민형과 함께 이런 궁금증을 풀어 보려 했으나 그는 이미 자살하였고 세 가지의 유언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민형과 매잡이의 죽음 사이에 서로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아무런 근거가 없어 결국엔 매잡이에 대한 이야기만을 쓰게 되었다. 이것이 첫 번째 ‘매잡이’이다. 그런데 ‘나’는 이 작품을 완성한 후에도 민형의 죽음과 매잡이의 죽음의 연관성에 대한 의문을 버리지 않았다. 더 나아가 민형이 이미 곽 서방의 죽음을 예견하였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근거를 찾지 못해 계속 고심하다, 그가 남긴 유언을 생각해 내고 유물로 남긴 봉투를 뜯어보니 그것은 민형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쓴 소설 ‘매잡이’였다. 내용은 나무랄 데가 없었고, ‘나’의 작품과 일치했다. 그에게는 인간의 삶과 죽음을 통찰하는 훌륭한 작가의 기질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작품 ‘매잡이’와 함께 세 편의 동명 소설이 있음이 밝혀진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중편 소설
◎ 배경 : 시간(현대) / 공간(전라도 어느 산골)
◎ 시점 : 내부 이야기(작가 관찰자 시점), 외부 이야기(1인칭 관찰자 및 주인공 시점)
◎ 구성 : 액자 구성
발단 - 민태준의 죽음과 ‘매잡이’ 소설을 알게 된 경위
전개 - 매를 찾아 장터로 나선 곽돌
위기 - 인간 사회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곽돌
절정 - 매잡이 곽돌의 죽음
결말 - 민태준의 자살과 세 편의 ‘매잡이’ 소설이 나오게 된 경위
◎ 주제 : 사라져 가는 옛 것을 지키려는 장인 정신과 ‘글 쓴다는 것’의 어려움.
◎ 출전 : <신동아>(1968)
3. 등장 인물
◎ 나 : 서술자. 소설가. 민태준 형의 취재 노트를 넘겨받아 매잡이라는 소설을 씀.
◎ 민태준 : 소설가 지망생. 별다른 소설은 쓰지 않았으나 여러 차례 취재 여행을 함.
◎ 곽서방 : 매잡이. ‘번개쇠’라는 매로 매잡이를 함.
◎ 중식 : 벙어리. 곽 서방의 뒤를 이어 매잡이가 되고자 함.
4. 이해와 감상
1968년 <신동아>에 발표된 중편 소설이다. 시류에 물들지 않고 우직하다고 할 정도로 자기의 것을 지키려는 장인 정신의 소유자인 매잡이 곽돌이의 삶과 죽음, 그 진정한 가치를 알고 그것을 담아 보려는 민태준의 소설 쓰기를 통하여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삶의 참된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다. 사라져 가는 전통을 고집하다가 죽어 가는 곽돌이란 매잡이의 기이한 삶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액자 소설적인 구성 방식을 통해서 형상화하고 있다. 내부 서사는 작가 관찰자 시점이다. 그리고 외부는 1인칭 관찰자 시점이다. 작가가 액자 소설을 취한 것은 주인공 민태준의 삶과 매잡이의 삶의 유사성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매잡이’에서는 소설을 쓴다고 하면서 한 편도 쓰지 못하는 민태준과 사냥을 하지 못하는 매잡이 곽돌이가 등장한다. 이들은 진정한 장인의 세계를 고집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러한 진정한 장인적인 가치를 고집스럽게 추구하지만 현실은 그들의 추구하는 바를 실현시켜 주지 못하고 마침내 그들은 죽게 된다. 이 소설에서는 민태준을 통하여 소설을 쓰지 못하게 만든 시대 상황을 암시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즉 장인 정신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현대 사회의 의미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창작에 이끌려 가는 과정에 독자를 동반하게 함으로써 독자의 공감의 폭을 넓히고 스스로 개방적이고 창조적인 독서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준다. 즉 창작과정 자체를 소설로 수용하는 모더니즘적인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진실한 인간이 삶을 억압하고 강제하는 형태 없는 사회적 폭력에 대한 은유적인 제시라 할 수 있다. 사라져 가는 풍속을 지키려는 장인 정신과 그러한 풍속의 현대적 의미를 말하고 있는 이 소설은 곽돌과 민형이라는 두 인물을 통해 풍속의 미학과 타락한 현실의 풍속화에 저항하고 새로운 진실을 찾고자 하는 치열한 삶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곽 서방은 사라져 가는 풍속을 고집하면서 죽어 가는 참된 장인정신을 지닌 풍속의 유물이다. 민형도 타락한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진정한 가치를 찾으려다가 한 편의 소설도 쓰지 못하고 죽어 가는 또 다른 장인의식의 소유자이다. 민형과 곽 서방이라는 두 인물의 죽음은 타락한 세계와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타성에 젖어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소설의 구성은 외화 안의 내화, 내화 안의 또 다른 내화가 있다. 외화는 민형의 ‘매잡이’를 발견하는 이야기, 내화는 나의 취재 여행, 또 다른 내화는 곽 서방의 이야기로 되어 있다. ‘나’는 취재 여행에서 생존의 실상과 풍속의 미학이 표리관계에 있는 것을 발견하는 인물이고 '민형'은 자신이 풍속으로 돌아갈 수 없는 참담한 현실이 또 다른 풍속으로 부화되는 것을 거부하기 위해 치열하게 저항하는 인물이다. 곽 서방은 매잡이를 통해 삶의 참된 진실을 찾는 인물이다. 과거의 사라진 풍속을 대표하는 민형의 소설에서 풍속의 유물로 승화된 인물이다. 한편, 이 작품은 문학의 행위와 관련하여 볼 때 ‘글쓰기의 어려움’을 제기하고 있다. 소설을 쓰기 위해 숱한 자료를 수집해 놓고도 뜻대로 되지 않자 목숨을 끊은 민태준, 결핵을 조금 앓을 뿐 특별히 자살을 할 이유가 없는데도 그는 ‘나’에게 여러 권의 자료 노트만 남기고 죽음을 택한다. 소설 쓰기의 한 속성이 ‘타락한 세계에서 타락한 방법으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그가 보기에 이 세계에는 진정한 가치의 가능성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치유 불가능할 정도로 현실이 타락했기 때문일까? 곽 서방이 숨을 거두기 전에 ‘나’에게 말을 하다 중단했듯이, 이 의문점 자체가 이 소설의 주제인지도 모른다.
▶ 병신과 머저리
1. 줄거리
20년 간 환자를 보아온 외과 의사인 형과 화실을 운영하고 있는 화가인 동생의 고뇌를 다룬 이청준의 작품이다. 형이 실상 자신의 전적인 책임도 아닌 수술의 실패(열 살짜리 어린 소녀의 죽음)를 계기로 고민에 빠지고, 병원 문을 닫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형은 6․25 당시의 기억이 되살아나 더욱 괴로워한다. 다름 아닌 전쟁 때 패잔병으로 형과 전우들이 적진의 한 동굴 속에 고립되었을 때, 자신의 생존과 성욕만을 아는 이기적인 이등중사 ‘오관모’의 위협(입을 하나라도 죽이기 위해 김 일병을 죽이자는 제안) 때문에 사명을 다하지 못한 채, 팔이 떨어져 나간 부상당한 동료인 김 일병을 죽게 만들었던 사건을 기억하게 된 것이다. 관모는 형을 보고 “참새 가슴은 구경만 하고 있어.”라고 한 기억을…. 결국 형은 관모의 행위에 대해 방관적인 입장만 취했던 것이 결국 자신이 살인자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면서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이었다. 이처럼 형은 당시 상황을 소설로 재구성해 나가게 되는데 결말을 못 짓고 고민하던 끝에, 오관모를 죽임으로써 일단 결말을 짓고 다시 의사 일을 하게 된다. 자신의 실수보다도 어차피 수술하지 않아도 죽게 되었을 소녀의 죽음을 자신의 잘못으로 고민하고, 또 하나의 과거 사건을 자기 것인 양 고민함으로써 자기 양심을 확인해 가는 형이었다. 소설의 결말부는 다음과 같았다. 오관모는 김 일병을 끌고 동굴 밖으로 나가는데, 형은 만류한다. 관모는 김 일병을 앞세우고 산을 내려갔는데, 잠시 뒤 한 발의 총성이 들려와, 놀라 잠에서 깨어난 형은 ‘피를 흘리며 쓰러진 노루’(작품 서두 부분에서 언급된)를 보고야 말겠다며, 산을 내려가 제지하던 오관모를 쏘아 죽인다. 형은 혜인의 결혼식에 다녀온 후 오관모를 결혼식장에서 만났다며 자신의 소설 원고를 불태운다. 동생(외부 이야기의 서술자 ‘나’)이 우연히 형의 소설을 보고 난 뒤 자신의 고민과 형의 고민이 매우 유사함을 안다. 그런데 동생은 혜인의 편지 내용처럼, “이유를 알 수 없는 환부(患部)를, 어쩌면 환부다운 환부가 없는” 사람이었다. 즉 형은 아픔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동생은 아픔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 수조차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동생은 아마추어 미술학도인 ‘혜인’과 헤어진 후 사람의 얼굴,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 이후, 끊임없는 의지로 신에게 도전하는 사람의 얼굴을 화폭에 담고자 애를 쓰는 인물이다. 형은 6․25로 인해 정신적인 부상을 입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아픔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기에 그것을 치료하고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지만, 동생은 아픔이 어디서 왔는가를 모르는 인물로서 자문한다. 동생은 신념이나 사명감을 완벽하게 펼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면, 아예 시도도 하지 못하는 완벽주의자이자 회의주의자인 것이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1960년대) / 공간(화실, 병원)
◎ 시점 : 1인칭 주인공 및 관찰자 시점
◎ 표현 : 원인을 추적해 가면서 서서히 밝혀 주는 추리적 표현
◎ 구성
발단 - 의사인 ‘형’이 병원 일을 그만두고 소설을 씀.
전개 - 동생인 ‘나’가 그 소설을 보고 형의 아픔의 근원을 발견하려 함.
위기 - ‘혜인’으로부터 절교의 편지를 받음.
절정 - ‘형’이 ‘오관모’를 쏘아 죽인 소설 내용을 봄.
결말 - ‘형’의 병원 일 재개. ‘나’는 아픔이 없는 환부의 근원을 자문해 봄.
◎ 주제 : 삶의 방식이 다른 두 형제의 아픔과 그 극복 의지
◎ 출전 : <창작과 비평>(1966)
◎ 제목의 상징성 : ‘병신’은 정신적 상처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형을, ‘머저리’는 그 원인조차 알지 못하는 동생을 의미함. 형은 소설을 쓰면서 능동적으로 극복하고, 동생은 형을 통해 삶을 반성함. 이러한 두 형제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 행동하는 두 지식인상인 것임
3. 등장 인물
◎ 형(의사) : 소설 쓰기를 통해 능동적으로 아픔을 극복하는 행동주의적 유형(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믿음). 아픔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알고 환부를 치유해 가는 인물 유형
◎ 동생(화가) : 자기 아픔의 상처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인물로서 형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고 반성함. 현실 문제에 완벽한 대응이 서지 않으면 실천하지 않고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며 생각하는 완벽주의자이면서 회의주의적(懷疑主義的) 인간 유형
◎ 혜인 : ‘나’의 애인이었지만 다른 남자와 결혼함.
◎ 오관모 : 인간의 이기심과 생존 욕구
◎ 김 일병 : 암담한 현실에서 고통받으며 사라지는 힘없는 사람
4. 이해와 감상
소녀의 수술 실패 계기로 돌연 병원의 문을 닫고 매일 술을 마시며 느닷없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형과, 의지의 모습으로 신을 위협하는 인간의 얼굴을 그리고자 하지만 둥그런 얼굴 윤곽만 그리고 더 이상 그리지 못하는 화가인 동생. 형은 6․25의 아픔을 직접 체험한 존재로, 동생은 환부(患部)다운 환부를 갖고 있지 않은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형은 참전 세대로서 6․25의 체험을 생생한 아픔으로 간직하고 있는, 그리고 과실치사(過失致死)의 죄의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인물이다. 이에 반해 동생인 ‘나’는 그런 절실한 체험도 없을뿐더러 무기력하게 자신을 포기한 존재이다. ‘나’는 인간의 원형적 얼굴을 그려내려고 하지만 늘 진전은 없다. 자신의 힘으로는 그 ‘얼굴’을 찾아내지 못하리라는 불길한 예감과 까닭 모를 패배감에 젖어 있다. 이와 같은 기질과 인생관을 지닌 형제는 강렬하게 부딪친다. 혜인을 붙잡지도 못했던, 그리고 그림으로 자신의 억눌린 욕구를 표현하고자 하는 ‘나’와, 극한 상황의 비인간성 속에서 자신에 대한 극도의 환멸을 맛보았던, 그리고 그 환멸에 대한 분출구로서 소설을 쓰기 시작한 형이 갈등을 빚는 것이다. 우선 형은 동료(김 일병)를 쏴 죽인 상급자(오관모)를 자기가 직접 쏴 죽임으로써, 현실과의 싸움이 아무리 절망적일지라도 미리 포기하는 것보다 싸우다 파괴되는 것이 훨씬 성실한 삶이라는 자기 인식에 도달한다. 결국, 형의 소설 쓰기는 체험의 회고가 아니라, 자기 연민을 벗어나고자 하는 완벽한 재구성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형이 자신의 전쟁 체험을 소설 쓰기나 상급자(오관모)와의 극적인 상봉을 통하여 해소하는 과정을 보면서 자신의 처지에 대한 참담한 비애를 느낀다. 그에게는 형과 같은 뚜렷한 정신적 상처도 없고 근원이 분명한 심리적 고통도 없기 때문이다. - “나의 아픔은 오는 곳이 없는 나의 환부는 어디인가…. 지금 나는 엄살을 부리고 있다는 것인가.” 결국 ‘나’는 형과 같은 구체적인 갈등 속에서 외부와 싸우기보다는 수동적인 관조 속에서 현실을 회피하는 가운데 점점 소멸의 시간들을 맞이해 가고 있다. 그러니까 형은 소설 쓰기에 의해서 그것을 능동적으로 극복하지만. ‘나’는 애인과의 사귐도, 그림 그리기에도 실패한 채 ‘병신과 머저리’로 패배감만 짙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의 갈등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의 실천에 관한 형과 동생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형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행동적 유형의 인물이며, 동생은 완벽한 실천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이 완벽해질 때까지 계속 고민만 하는 회의적 유형의 인물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또 다른 핵심은 작품 결말에 오관모가 다시 등장하는 데 있다. 형이 소설에서 죽인 것과는 달리 오관모(이기심과 생존 욕구)는 여전히 현실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어떤 한 개인이 관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그 문제가 실제 현실에서 해결되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 소설은 주장한다.
<참고> “병신과 머저리”의 두 개의 대립 축
동인 문학상 수상작인 이 작품은 50년대 전후(戰後) 소설의 허무주의적이고 난삽한 작품 세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경지를 재척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두 개의 대립이 작품의 주제를 이루고 있다. 6․25 세대인 형과 ‘나’와의 대립이 그것인데, 이 대립은 경험과 관념의 마찰이라는 문제로 나타난다. 작품의 모티프로서 주어지고 있는 6․25 동란 때의 전장에서의 살인 행위는 형에게는 직접의 경험을 이루고 있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다만 관념인 것이다. 의사인 형은 있을 수 있는 환자의 죽음 이후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데, 그러한 자기 동요는 스스로 쓴 소설이라는 관념을 통해 전장에서의 동료 살해를 확인함으로써 수습된다. 기존 소설에서 보여 준 두 가지 대립은 한쪽만의 일방적인 승리로써 그 대립은 해소된다. 그러나 이 작가는 항상 복잡한 구성을 통해 그러한 안이한 해소를 방지한다. 바로 이것이 이청준이 같은 세대의 다른 작가와 다른 점이다. 이 소설은 작가의 감정 개입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논리적인 문체와 액자 소설 양식 등이 보여 주는 형식적 완결성의 추구가 그 이후의 작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 서편제
1. 줄거리
전라도 보성읍 밖의 일명 소릿재라는 곳에 위치한 한적한 길목 주막 안에서, 주막집 여인은 초저녁부터 줄창 소리를 뽑아 대고, 사내는 그 여인의 소리에 맞추어 끊임없이 어떤 예감 같은 것을 견디고 있는 듯한 표정으로 북장단을 잡고 있다. 사내는 읍내에서 소릿재의 이야기를 듣고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 든 것이었다. 여인은 다시 “수궁가” 한 대목을 뽑아 제끼고 났을 때, 사내는 마침내 참을 수가 없어진 듯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소리의 내력에 관해 묻는다. 여인은 처음에는 망설이다가 반복되는 사내의 추궁에 마지못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1956,7년 무렵의 어느 해 가을, 주막집 여인이 잔심부름꾼 노릇으로 끼니를 벌고 있던 읍내 마을의 한 대갓집 사랑채에 소리꾼 부녀가 찾아들었다. 주인 어른은 두 부녀를 사랑채 식객으로 들어 앉혀 놓고 그 가을 한 철 동안 톡톡히 두 사람의 소리를 즐기고 지냈다. 그러나 소리꾼 아비는 병세가 악화되자 계집아이를 데리고, 그 집을 나와 소릿재 근처의 빈집에 기거하면서 밤만 되면 소리를 일삼았다. 그런데도 고개 아랫마을 사람들은 그의 소리를 귀찮아하거나 짜증스러워하기는커녕 까닭 없는 한숨 소리들을 삼키며 자신들의 세상살이까지 덧없어 할 뿐이었다. 그 해 겨울 결국 소리꾼 아비가 숨을 거둔 후에도 계집아이는 혼자 오두막을 지키면서 아비를 대신하여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를 보다 못한 주인 어른은 어린 계집아이를 보살피도록 잔심부름꾼 계집아이(현재의 주막집 여인)와 술청지기 사내를 오두막집으로 보내 주막을 차리게 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주막집 여인은 소리꾼 계집아이에게 소리를 배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겨울인가 밤새도록 소리만 하더니 소리꾼 여자는 혼자 집을 나간 채 영영 종적을 감추었다고 하면서 주막집 여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자 사내는 자신도 과거의 기억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사내가 어렸을 적 어머니는 사내를 무덤가 잔디밭에 매어 두고 밭일을 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가 숲 속에서 날만 밝으면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소년은 그 소리 임자의 얼굴조차 확인할 수 없는 탓에 소리의 주인이 자신의 머리 위에서 언제나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뜨거운 햇덩이라고 여기었다. 소년은 어머니가 작은 계집아이를 낳고 세상을 떠나던 날, 비로소 그 소리의 진짜 모습을 자신의 눈으로 분명히 확인하게 되었다. 이윽고 깊은 상념에서 깨어난 사내는 주막집 여인에게 소리꾼 여자의 행방을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은 그 여인의 행방을 전혀 짐작하지 못하며 단지 그 여인이 장님이었다는 사실만을 말해 준다. 또한 그 여인이 장님이 된 것은 기실 아비의 탓이라고 말해 준다. 여자의 아비가 잠든 계집의 눈 속에다 청간수를 몰래 찍어 넣었다는 것이다. 소리꾼 여인이 눈이 멀게 된 사연을 듣자 사내는 다시 비정스런 소리꾼 아비에 대한 과거의 기억을 반추해 낸다. 어미를 잃고 난 소년은 어린 계집아이와 함께 소리꾼 사내를 따라 십여 년을 따라 다녔다. 소리꾼 아비는 소년에게는 북장단을, 계집아이에게는 소리를 가르쳤다. 하지만 소년은 단지 자신의 어머니를 죽게 만든 그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그를 따라 다닐 뿐이었다. 기회만을 노리던 어느 날, 소리꾼 아비가 잠든 사이 소년은 그를 죽이지 못하고 두 사람 곁을 떠나고 말았다. 주막집 여인은 사내가 예전의 그 소년임을 알아채고, 장님이 되어 버린 누이를 다시 찾아 헤맬 것이라고 묻는다. 그러자 사내는 멀리서나마 그 여자 소리라도 한 번 만나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토로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연작 소설
◎ 배경 : 시간(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 공간(남도)
◎ 성격 : 회고적, 정한적(情恨的)
◎ 문체 : 대화체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구성 : 단일 구성. 인물들의 대화 속에 과거의 사건이 회상 형식으로 삽입됨.
발단 - 소리를 하고 있는 주막 여인과 북 장단을 치고 있는 사내
전개 - 주막 여인의 회상 1(소리꾼 사내와 계집아이의 사연)
위기 - 사내의 회상(어머니와 소리꾼 사내에 대한 기억)
절정 - 주막 여인의 회상 2(계집아이가 장님이 된 사연)
결말 - 누이를 찾고 싶다는 사내의 소망
◎ 주제 : 삶의 허무와 예술가의 비극적 정한(情恨)
◎ 출전 : <뿌리 깊은 나무>(1976)
3. 등장 인물
◎ 사내 : 어릴 적에 헤어진 누이동생을 찾아 방황하는 인물
◎ 주막집 여인 : 우연히 소리를 배우고 주막을 운영하면서 소리를 하는 것으로 만족함.
◎ 소리꾼 아비 : 소리를 위해 한 평생을 떠돌고, 예술을 위해 딸의 눈까지도 멀게 하는 비극적 인물
◎ 소리꾼 여자 : 아버지에 의해 눈이 멀었음에도 이를 판소리의 한(恨)으로 승화시킨 한 많은 여인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이청준의 <남도 사람>이라는 연작 소설집 중에 있는 한 편이다. <남도 사람>에는 “서편제”(1976), “소리의 빛”, “선학동 나그네”, “새와 나무”, “나시 태어나는 말” 등이 실려 있다. 그런데 우리는 소설 “서편제”보다 1993년 만들어진 영화 “서편제”에 더 익숙해 있다. 사실 영화 “서편제”의 원작을 소설 “서편제”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영화 “서편제”의 원작은 소설 “서편제”에다 이 작품의 속편이라 할 수 있는 “소리의 빛”을 합치고, 거기에다 새로운 내용까지 덧붙여 각색한 것이다. 여기서 영화 “서편제”의 줄거리를 소개하기로 한다. 1960년대 초 어느 산골 주막에 30대 남자(동호-김규철 분)가 도착한다. 그는 주막 여인의 판소리 한 대목을 들으며 회상에 잠긴다. 그의 어린 시절 마을에 한 떠돌이 소리꾼(유봉-김명곤 분)이 찾는다. 유봉은 동호의 어머니인 과부와 사랑에 빠지고 그들은 함께 마을을 떠난다. 유봉이 데리고 있던 양딸 송화(오정해 분)와 함께 네 식구가 살다 동호의 어머니는 아이를 낳다가 죽는다. 유봉은 송화에게 소리(노래)를, 동호에게는 북을 가르치며 유랑한다. 송화와 동호는 소리꾼과 고수로 한 쌍을 이루며 자란다. 그들은 유봉과 함께 소리를 팔아 먹고 살지만 전쟁으로 궁핍한 세월 속에서 그들의 삶은 점점 어려워진다. 소리를 들어 주는 사람들도 줄어들고 냉대와 멸시 속에 희망 없이 살던 중, 동호는 유봉과 싸우고 떠나버린다. 동호가 떠난 뒤, 송화는 소리하기를 거부하고, 유봉은 ‘소리의 완성’에 집착하여 송화의 눈을 멀게 만든다. 유봉은 죽고, 눈먼 송화는 밑바닥 삶을 살아간다. 세월이 흐르고, 동호는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송화와 유봉을 찾아다닌다. 그가 마침내 송화를 다시 만났을 때, 송화는 그의 청에 따라 노래를 부르고, 그는 북을 친다. 하룻밤을 함께 보낸 그들은 다시 헤어지고, 송화는 어디론가 유랑의 길을 떠난다. 어쨌든 <남도 사람> 연작은, 남도의 한(恨)과 소리 혹은 현실의 억압과 이를 초월하려는 예술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앞의 네 작품은 작가의 고향이기도한 전라도 장흥 땅 둘레를 배경으로 하여 ‘소리’라고 표현되고 있는 창을 다루고 있으며, 뒤의 두 작품은 그것의 상이한 변주를 그리고 있다. “서편제”는 한 많은 일생을 살아가는 소리꾼을 등장시켜, 현실과 예술 사이에 필연적으로 내재할 수밖에 없는 비극성을 한이라는 한국적 정서로 드러내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소극적 체념으로서의 한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화해와 사랑을 지향하는 예술혼(藝術魂)으로 승화시켜 드러내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이 이 작품이 지니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여로형 구조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그 여행은 회귀의 과정이 보이지 않고 끝없이 떠도는 여행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주인물(主人物)들이 모두 한 곳에 정주하지 않고 이 곳 저 곳 방랑하는 모습은 그와 같은 여행의 성격을 확연히 보여 준다. 의부의 아들(동생)을 찾아다니는 사내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해 보면, 그의 여행은 표면적으로 동생을 찾아다니는 과정으로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소리를 찾아 헤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소리 역시 무한히 떠돎의 성격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세상을 떠돌면서 덧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허무함과 한을 달래 주고 풀어 준다. 때문에 여로는 용서와 사랑을 찾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 선학동 나그네
1. 줄거리
선학동을 찾은 나그네는 들판으로 변해 버린 포구의 모습에 실망한다. 나그네는 주막집 주인 사내로부터 선학동에 학이 다시 날게 되었다는 뜻밖의 소리를 듣게 된다. 나그네는 주인 사내로부터 두 번에 걸쳐 선학동을 다녀간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나그네와 여자의 관계(오누이)가 암시되며 주인 사내는 여자가 학을 다시 날게 한 사연을 이야기한다. 나그네와 여자의 관계가 밝혀지고, 주인 사내는 나그네에게 자신의 종적을 더 이상 찾지 말아 달라는 여자의 부탁을 전한다. 누이의 부탁을 받아들인 나그네가 주저앉아 있다가 떠난 고갯마루 위의 빈 하늘에는 백학 한 마리가 하염없이 떠돈다. 위의 줄거리를 보면, 현재의 이야기 속에 과거 이야기가 들어 있는 형태의 구조라고 파악할 수 있는데 이를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현재의 이야기>
▷ 발단 : 나그네가 선학동을 찾아옴.
▷ 전개 1 : 나그네와 주막 주인이 상면하여 과거 이야기의 전언을 준비함.
▷ 전개 2 : 소리꾼 부녀를 주인공으로 한 과거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됨.
▷ 절정 : 나그네의 정체가 밝혀짐.
▷ 결말 : 주막 주인의 배웅을 받으며, 나그네가 선학동을 떠남.
<과거의 이야기>
▷ 발단 : 소리꾼 부녀가 선학동을 찾아옴.
▷ 전개 : 아버지가 눈먼 딸에게 비상학의 모습을 심어 주며 소리를 단련시킨 후 떠남.
▷ 위기 : 눈먼 여자가 아버지의 유골을 가지고 나타나면서 마을 사람들과 갈등을 빚음.
▷ 절정 : 눈먼 여자가 비상학의 모습을 재현시킴.
▷ 결말 : 눈먼 여자가 아버지의 유골을 암장하고, 선학동을 떠나 종적을 감춤.
<사건 재구성 - 시간의 흐름>
(1) 현재로부터 30여 년 전에 소리꾼 노인이 눈먼 딸과 아들을 데리고 선학동에 나타난다.
(2) 주막에 자리를 잡은 노인은 선학동 비상학의 모습을 즐기는 한편 딸에게 소리를 단련시킨다.
(3) 서너 달 후 소리꾼 일행이 선학동을 떠난다.
(4) 현재로부터 2년여 전에 눈먼 여자가 아버지의 유골을 가지고 다시 나타난다.
(5) 마을 사람들이 묏자리를 내 주기를 꺼리지만, 그 여자는 소리로써 마을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6) 여자가 비상학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을 주막 주인이 목격한다.
(7) 아버지의 유골을 암장한 여자가 종적을 감춘다.
(8) 여자의 오빠인 나그네가 선학동을 찾아온다.
(9) 나그네가 주막 주인으로부터 여자의 소식을 전해 듣는다.
(10) 나그네가 주막 주인에게 자신의 정체를 암시한다.
(11) 나그네가 선학동을 떠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순수 소설
◎ 배경 : 시간(1940-1970년대) / 공간(호남 지방의 선학동)
◎ 성격 : 전통적, 신비적, 애상적
◎ 문체 : 호남 지방의 사투리를 중심으로 한 토속적인 문체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현재 이야기는 ‘나그네’, 과거 이야기는 ‘주막 주인’의 관점을 중심으로 서술되므로 제한적 시점이다.)
◎ 표현 : 인물들의 사투리에 의해 서정적이고 토속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켜 역순행적으로 구성하였다.
◎ 주제 : 한(恨) 서린 삶의 예술적 승화
◎ 출전 : 계간 <문학과 지성>(1979년 여름호)
◎ ‘선학동 비상학’의 상징성 : 선학동 비상학(飛翔鶴)의 모습은 우연의 산물이다. 포구에 물이 차 오르면 저물 녘의 산 그림자가 학이 나는 모습으로 보일 뿐이다. 그런데도 마을 사람들이나 소리꾼 부녀에게는 그것이 실제의 학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작품의 인물들은 한결같이 애환이 가득한 삶을 살아가는 부류이다. 이와 같은 삶은 보다 나은 세계에 대한 상징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비상학은 현실적 고난과 한(恨)에서 풀려나 마음껏 자유를 구가하는 이상적 삶의 상징인 것이다.
3. 등장 인물
◎ 나그네(사내) : 눈먼 여자의 오빠로 그녀의 소식을 좇아 떠돌아다니는 인물. 나이는 50세 정도이고, 행색이 초라함. (현재 이야기는 주로 이 인물의 관점에서 서술됨)
◎ 주막 주인 : 과거 이야기의 전달자이자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개자
◎ 노인 : 눈먼 여자의 아버지이자 ‘나그네’의 의붓아버지. 떠돌이 명창으로 예(藝)의 높은 경지를 추구하는 실질적인 주인공의 한 사람
◎ 눈먼 여자 : 떠돌이 명창으로, 그 아버지와 함께 실질적인 주인공. 마음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볼 줄 아는 신비적 인물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삶의 한(恨)을 소리라는 예(藝)의 세계로 승화시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음의 세계’를 다룬 비현실적인 이야기이지만, 그렇게만 치부해 버릴 수 없는 묘한 감동을 우리에게 던져 주고 있다. 이 작품은 현재 이야기와 과거 이야기의 중층 구조(重層構造)로 짜여 있다. ‘눈먼 여자’가 중심이 되는 과거 이야기는 5단 구성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나그네와 주막 주인의 만남과 대화, 이별로 구성되어 있는 현재 이야기는 ‘위기’ 단계가 없이 4단 구성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현재 이야기 속에는 인물(나그네와 주막 주인) 간의 갈등이 없기 때문이다. 한편,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비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예(藝)를 추구하며 떠돌이로 일생을 산 소리꾼 부녀(父女)나 그들을 잊지 못해 회한(悔恨)에 젖어 사는 나그네는 가슴에 한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 한(恨)이 애간장을 끊을 듯한 판소리로 승화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이 작품은 한(恨) 서린 삶의 예술적 승화를 이야기로 들려 고 있는 것이다. 특히 여자의 소리에 의해 비상학(飛翔鶴)이 재현되는 대목에서 삶과 예술의 절묘한 어우러짐을 목격하게 된다. 따라서, 이 작품은 다분히 신비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 특성을 살리기 위해 작가는 인물의 명명법(命名法)에까지 신경을 썼다. ‘사내, 손, 주인, 여자, 노인, ··· ’ 등, 인물들은 모두 구체적인 이름이 없는 상태에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홍길동’이니 하는 식으로 구체적인 명명(命名)이 되어 있는 상태라면 어떠했을까? 아마도 이 작품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한(恨)의 예술적 승화(昇華)’를 제대로 구현해 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대개의 신비적인 이야기들이 현실의 삶과 유리(遊離)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이 작품은 지난날 고달프게 살았던 우리 서민들의 삶과 정서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참고> 작품의 핵심적 내용 요소
이 작품의 핵심적인 내용 요소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떠도는 자, 또는 민중들의 애환 어린 삶이 ‘소리’라는 예술의 힘으로 승화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작중 인물들이 신비로운 정신적 세계의 경지를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전자가 이 작품의 주제로 내세워질 수 있다면, 후자는 그 주제를 성립하게 하는 바탕이 된다. 간장을 녹이는 민중들, 그리고 과거의 인연을 잊지 못하고 찾아 헤매는 나그네 등 한(恨) 서린 인생들이 이 작품의 주역들이다. 이들은 모두 ‘소리’라는 남도 특유의 예술로써 자신들의 삶을 차원 높게 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물리적인 세계를 기반으로 해서는 성립되기 어렵다. 그것은 마음의 눈으로 보고, 없는 것도 있는 것이 될 수 있는 절묘한 세계를 바탕으로 할 때 비로소 가능한 이야기인 것이다.
<참고> ‘소리꾼 부녀’의 삶과 예술(김치수, ‘박경리와 이청준’에서)
소리는 그들 부녀의 한 많은 선학동의 전설 속에 얽혀 들어가게 만들어 준다. 특히, 감동적인 것은 포구에 물이 차 오를 때 노인이 소리를 들려줌으로써 장님인 딸이 아버지의 소리를 통해서 그 비상학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비상학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장님인 딸의 소리가 절정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녀의 소리가 절정에 도달하였을 때 그녀의 육체는 그 곳에서 사라져 버리지만 ‘이제 이 선학동 하늘을 떠도는 한 마리 학으로’ 그 곳에 남아 있게 된다. 그것은 그녀의 소리를 통해서인 것이다. 여기에서 딸이 절창이 되기까지는 이들 주인공들의 내면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한이 작용을 하고 있다. 이 한은 딸의 소리가 ‘선학을 날게 한 것인지’, ‘선학이 소리를 불러 낸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의 절창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아버지가 딸의 눈을 찔러 앞을 못 보게 만들만큼 깊은 것이다. 말하자면, 신체에서 시각이라는 감각 기관을 마비시킴으로써 소리를 통해서 시각 기능을 대체하고자 한 아버지의 행위는, 자신의 내면에 대대로 쌓여 온 한을 풀기 위한 것으로서, 딸의 모든 힘을 소리의 연마로 집약되게 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오직 기막힌 소리를 통해서만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남도 소리의 어떤 경지에 대한 탐구인 것이다. 육신의 눈이 멀어서 앞을 못 보게 된 딸은 자신의 소리가 절창이 되어 감으로써 마음의 눈으로 비상하는 학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고, 자신의 소리를 들음으로써 청각에 의해 비상학의 형태를 느끼는 것이다.
<참고> 작가의 말 : 이청준, ‘작가와의 대화’ <신동아>(1981년 10월호)
나는 남도 소리도 삶의 한 양식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흔히 남도 소리의 핵심을 한이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한이라는 것이 삶의 과정에서 맺혀진 어떤 매듭, 옹이 같은 것으로 얘기될 수 있다면, 그 맺혀진 매듭, 옹이를 삶으로써 풀어 나가는 한 양식, 그것을 저는 소리로 이해하고 있거든요. 그렇게 본다면, 소리 자체가 삶의 또 다른 양상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말이 소리로 넘어간다는 것은 말이 우리 삶을 떠나서 의미를 잃고 말 자체의 질서 속으로 응축되어 버린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삶과 더 깊이 연결 지어 지는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언어 사회학 서설’의 주인공이 도회의 삶에 끼여들지 못하고 방황하듯 남도 사람의 주인공도 시골의 삶에 융합하지 못하고 떠돎이 계속되는 것은 그가 원래 그 시골의 삶에서 쫓겨난 사람이며, 그래서 그 삶의 깊이에 도달하지 못한 까닭으로, 그것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노력의 과정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지요.
<참고> ‘선학동 나그네’에서의 한(恨) (김치수, ‘박경리와 이청준’에서)
이청준에 있어서 소리는 남도의 소리, 다시 말해서 남도창을 의미한다. 단편 ‘남도 소리’를 비롯하여 그의 절창이라 할 수 있는, ‘선학동 나그네’에 이르기까지 이 작가의 일련의 단편들은 소리를 주제로 삼고 있다. 특히, ‘선학동 나그네’에서의 ‘소리’는 이 작가의 세계의 한 측면으로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소리의 주인공이 살고 있는 삶의 애절함에만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절절한 마음의 소리는 청각적인 차원으로부터 학이 날아가는 시각적 차원으로 변용되는 데 더 크게 의존하고 있다. 여기에서 소리의 주인공은 장님인 소녀와 그녀의 늙은 아버지이다. 그리고 이들이 살다가 이야기를 남기고 간 장소는 선학동이다. - 마을 앞 포구에 밀물이 차 오르면 관음봉이 문득 한 마리 학으로 그 물 위를 날아오르기 때문이었다. 포구에 물이 들면 관음봉의 산그림자가 영락없는 비상학의 형국을 지어냈다. 하늘로 치솟아 오르고 고깔 모양의 주봉은 힘찬 비상을 시작하는 학의 머리요, 길게 굽이쳐 내린 양쪽 산줄기는 그 날개의 형상이 완연했다. - 이처럼, 비상학의 형상이 되는 관음봉을 보면서 선학동에서 소리를 하고 있던 노인이 눈먼 딸에게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노인이 소리를 들려 주는 것은 ‘포구에 물이 차 오르고 선학동 뒷산 관음봉이 물을 타고 한 마리 비상학으로 모습을 떠올리기 시작할 때’인 것이다. ‘해질 녘 포구에 물이 차 오르고 부녀가 그 비상학과 더불어 소리를 시작하면 선학이 소리를 불러 낸 것인지, 소리가 선학을 날게 한 것인지 분간을 짓기가 어려운 지경’까지 그들의 소리는 절창이 되어 간다. 그러나 이들 부녀는 마을을 떠나 종적을 감춘다. 그 뒤 20여 년 만에 장님인 딸은 아버지의 유골을 가지고 와서 아버지보다 더 뛰어난 소리를 한다. 그리고 그 소리가 절정에 도달한 어느 날, 그 딸은 아버지의 유골을 관음봉에 암장하고 다시 그 마을을 떠난다. 그 후 20년 만에 장님인 누이를 찾아 헤매는, 아버지가 다른 오라비가 선학동에 나타나서 자초지종을 듣게 된다. 여기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관음봉에 대한 전설과 홀아비가 된 노인과 장님인 그 딸의 소리뿐이다. 그러나 그 소리는 그들 부녀의 한 많은 삶이 선학동의 전설 속에 들어가게 만들어 준다.
▶ 소문의 벽(壁)
1. 줄거리
잡지사 편집장인 ‘나’는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던 도중, 누군에겐가 쫓기고 있다며 도와 달라는 한 사내를 만난다. 엉겁결에 그를 하숙방으로 데려와 함께 잠이 들었던 ‘나’는 아침에 깨어나서 사내가 사라져 버린 것을 발견한다. 이상한 생각이 든 ‘나’는 집 가까운 곳에 있는 정신 병원을 찾아갔다가 그 사내가 병원에서 도망친 환자 박준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란다. 담당 의사인 김 박사는 박준이 심한 히스테리의 일종인 진술 공포증에 결려 있다고 말한다. 환자는 무엇인가으로부터 끊임없이 위협 당하고 있다는 공포를 느끼고 진술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박준의 본명은 박준일로서 1, 2년 전만 해도 정력적으로 작품을 발표하던 소설가이다. ‘나’는 박준이 쓴 ‘괴상한 버릇’, ‘벌거벗은 사장님’, 그리고 제목이 붙어 있지 않은 중편 소설 등을 읽게 된다. 그 소설 중에 박준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전짓불의 실체가 나타난다. 남해안의 조그만 포구가 고향인 박준은 6․25가 일어났던 해 가을, 밤중에 밀어닥쳐 전짓불을 들이대고 좌익이냐 우익이냐를 묻는 정체 모를 사내들에게 공포감을 느꼈던 것이다. 자초지종을 깨달은 ‘나’는 김 박사에게 찾아가서 사정을 이야기하지만, 김 박사는 박준의 진술을 끌어내기 위한 방법을 포기하지 않는다. 끝내 김 박사는 박준의 병실 불을 끄고 전짓불을 들이대는 수단을 택하고 만다. 그 날 밤 박준은 병실을 도망쳐 나가 버린다. ‘나’는 박준이 다시 내 앞에 나타날 것인가 회의하면서 길을 걷다가 김 박사나 내가 박준의 병세를 악화시켰다는 생각으로 괴로워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중편 소설
◎ 구성 : 액자 구성
◎ 배경 : 글 쓰기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사회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구성
발단 - 골목길에서 박준을 만남.
전개 - 박준에 대한 관심. 정신 병원을 찾아감.
위기 - 박준의 치료 방법에 대하여 나와 김 박사의 의견 대립
절정 - 전짓불의 공포로 박준이 병원 탈출
결말 - 박준의 행방 불명
◎ 주제 : 의사 표현의 자유를 박탈당한 한 인간의 정신적 상처
◎ 출전 : <문학과 지성>(1971)
3. 등장 인물
◎ 나 : 잡지사 편집장. 우연한 기회에 소설가 박준을 만나 그의 정신병의 근원에 호기심을 갖는다. 드디어 작가인 그가 ‘왜 글을 못 쓰는가’에 대한 해답을 발견한다.
◎ 박준 : 6․25 때 겪은 전짓불의 공포와 현재의 불안한 삶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정신 병원에 자청해 들어간 소설가. 그러나 거기서도 담당의사의 고정된 질문과 전짓불의 충격으로 견딜 수 없어 한다. 그는 정말 미쳐서 병원을 뛰쳐나간다.
4. 이해와 감상
벽을 본 순간 무엇을 느끼는가? ‘답답함’과 ‘격리(隔離)’라는 단어가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그 벽이 실체의 벽이 아닌 무형의 소문의 벽일 때 더욱더 두려운 존재로 다가올 것이다. 유형의 벽은 쉽게 부숴 버릴 수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벽은 그렇게 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편견과 억압으로 가득찬 ‘소문의 벽’이 숨통을 죄어 오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소설가 박준이 경험한 전짓불과 그의 세 편의 소설을 통해서, 진실의 숨통을 조이는, 보이지 않는 벽의 공포를 고발하고 있다. 잡지 편집 행위에 대한 회의에 빠진 작중 화자인 ‘나’는 자기의 문제에 대한 원인 규명에 힘쓴다. 그 때 소설가 박준의 고통의 해명에 개입하게 된다. 여기서 박준의 세 편의 소설은 각기 주제를 받쳐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첫 번째 소설은 가사(假死) 상태의 주인공 이야기인데, 이는 자기에 대한 의미를 상실한 주인공의 허탈한 상태를 이야기하고 있다. 두 번째 소설은 벌거벗은 사장님의 이야기로서, 어떤 진실을 알고도 주위의 간섭이나 이목 때문에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더욱 큰 비극을 맞게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세 번째 소설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자, 즉 심문관이 등장한다. 그 자의 정체는 시대적 통념, 정치적 억압, 문학의 허위성이라 할 수 있는데, 바로 그가 심문관인 동시에 ‘소문의 벽’인 것이다. 이청준은 박준이란 인물과 그의 소설을 통하여 글 쓰는 작업에 대한 작가 자신의 회의를 객관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박준을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인 김 박사를 통하여 고통의 근원을 파악하지 못하는 권위주의적인 존재들을 비판한다.
▶ 잔인한 도시
1. 줄거리
날씨가 제법 쌀쌀해지기 시작한 어느 가을 날 해질녘, 한 사내가 감옥에서 풀려 나온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초라한 행색의 사내는 교도소 길목을 빠져 나와서 공원 입구에 있는 ‘방생의 집’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그 곳에서는 새장수가 방생을 외치면서 손님을 끌고 있었다. 방생하는 모습을 감동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사내는 다음날부터 공원에 떨어진 동전을 주워 모은 돈으로 옥중 동료들을 대신해 방생을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이 석방되는 날 면회 오도록 연락해 둔 아들을 만나기 위해 사내는 며칠을 공원 벤치에서 노숙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내는 새장수의 비정한 상술을 보게 된다. 새 장수는 새들의 날개 죽지 밑을 가위질해서 멀리 날지 못하게 한 후, 손님들이 그 새를 방생하면 한밤중에 몰래 후래쉬를 들고 다니며 근처 공원의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새들을 다시 잡아다가 조롱 속에 가두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사내는 새장수의 그런 비정한 상술에 분노를 느끼지만 새 장수는 그런 사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기 행각을 멈추지 않는다. 어느 날 밤, 새 장수에게 쫓기던 새 한 마리가 사내의 품속으로 숨어들어 오게 된다. 그 새는 사내가 전에 방생한 새였다. 사내는 그 새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행복을 느끼면서 옥중에 있는 죄수들을 위한 방생을 계속한다. 지키지 않아도 그만인 옥중 동료들과의 언약을 기필코 실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내는 자신을 따르는 그 새를 데리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남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2. 핵심 정리
◎ 시점 : 3인칭 전지적 시점
◎ 주제 : 현실에 대한 현대인의 소외와 인간 상실의 문명 비판. 또는 고귀한 삶에의 열망
3. 등장 인물
◎ 사내 : 오랫동안 복역한 죄수. 지키지 않아도 되는 옥중 동료와의 언약을 지키는 인물
◎ 장수 : 풀어준 새를 다시 잡아다가 파는 사내. 우리 시대에 인간 사슬을 만드는 자로 은유된 인물
4. 이해와 감상
<잔인한 도시>는 제2회 이상 문학상 수상작으로서 심층적인 인간 소외 의식을 다양하고 복합적인 상징성을 통해 형상화함으로써 종래의 평면적인 리얼리즘에서 맛볼 수 없던 새롭고 깊은 감동의 공간을 창조해 낸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새장수의 이야기를 통해서, 조작된 해방과 구속의 반복을 헤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절망적 삶을 하나의 리얼리티로 제시하고 있으며, 죄수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그러한 악순환의 끈을 끊어 버리고 인간 상주(常住)의 따뜻한 고향으로 귀환하려는 인간의 꿈과 휴머니즘적 주제 의식을 보여 주고 있다. 이와 같이 작가는 어두운 현실과 밝은 이상을 설득력 있는 구상적 이미지로 다 같이 부각시킴으로써 관념적인 주제에 박진감 있는 현실성을 부여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따라서, <잔인한 도시>는 70~80년대 절대적 사회의 부정적인 국면을 드러내면서 인간 구원의 절대적 문제를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 조율사(調律師)
1. 줄거리
‘나’는 소설 쓰기를 중단한 지 오래된 소설가 즉, 좌절된 소설가이며 연애에 실패한 좌절된 청년이다. 그뿐 아니라 늙은 어머니와 친척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그들에게 좌절을 안겨준 못난 아들이다. ‘나’의 주변에 있는 여러 문인 친구들도 좌절을 겪고 있는데, 대체로 창작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 있다. 그 중에서도 촉망받던 평론가 지훈이가 가장 큰 좌절을 겪는다. ‘나’와 친구 문인들은 창작의 성취가 아니라 창작 준비를 위한 토론을 계속하는데, ‘나’는 이것을 ‘조율’이라 부르고 있다. 이 젊은 문학 지식인들은 실제로 연주하지는 못하고 조율만 하는 긴 좌절의 연속에서 지루하고 막연하게 연주할 기회를 기다리면서 술로 자신들의 괴로움을 달랜다. (이 작품에서 조율을 도와주는 인물로 송 교수가 설정되어 있는데, 이 인물도 행동과 예술 창조를 양분하고 있는 인물로 제시되고 있다.) 술로 인해 위궤양을 앓고 있는 ‘나’는 의사의 처방에 따라 술을 끊는 등의 정상적 방법을 택하지 않고, 대신 어린 조카 외의 모든 사회 관계와 단절된 상태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최대의 극기력이 필요하다는 단식 요법으로 자신을 치료하려고 한다. 이것 또한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하는 삶에 대한 조율이다. ‘나’는 육체가 죽었다가 다시 서서히 살아나게 된다는 단식 요법에서 아무래도 육체가 죽는 단계 즉, 조율의 최후 단계까지 갔다가 육체가 다시 살아나는 엄청난 성취에는 못 미칠 것이라는 막연한 죽음의 불안감을 느끼면서 자신을 내맡겼다.
2. 핵심 정리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배경 : 좌절감에 빠진 현대인의 심리
◎ 주제 : 문학과 인생의 좌절로 인한 인간의 갈등
3. 등장 인물
◎ 나 : 주인공. 좌절로 인해 소설 쓰기를 중단한 소설가. 자신과 주변 인물들에게 좌절을 안겨 주는 인물
4. 이해와 감상
이청준의 소설을 일컬어 흔히 ‘관념 소설’ 또는 ‘심리 소설’이라 한다. 그의 소설 중에는 관념적, 심리적 소재를 다룬 것이 다소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청준은 본격 심리 소설가는 아니다. 그는 심리, 즉 마음씀과 이치에 대하여 과학적 관심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청준의 소설은 오히려 ‘의식 소설’이란 용어가 어울릴 듯한데, 그 대표적 작품이 <조율사>이다. <조율사>는 일단의 젊은 문인들의 문학적 좌절과 인생적 좌절을 다루고 있다. 현대의 젊은이, 특히 문학하는 젊은이의 좌절은 현대 소설이 자주 취급하는 소재인데, 대개의 경우 그 좌절의 근원을 기성 사회 또는 체제의 비리에서 구함으로써 사회와 체제를 공격하는 것이 공식처럼 되어 있다. <조율사>에서도 사회의 비리가 암시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청준은 되도록 그러한 면을 표면화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 대신 개인의 의식을 적극적으로 부각시켜 좌절을 겪는 젊은 문인의 의식을 표면화시키고 있다. 정치, 경제, 군사가 모두 사회를 부르짖고 있는 이 때, 문학은 개인의 의식에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킬 절실한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청준의 의식 소설이 지니는 가치가 바로 여기 있다. 의식 소설은 의식의 미묘함을 드러내려다가 소설을 필요 이상으로 까다롭게 하는 위험 부담이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청준이 의식의 미묘함을 파고드는 이유는 사람의 삶 전체에서 개인적 의식이 가지는 중요성이 망각되지나 않을까 하는 그의 문명 위기 의식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조율사>는 의식 소설의 하나로서 문학사적 의의를 가진다 하겠다.
▶ 줄
1. 줄거리
일상에 묶여 무력하게 살아가던 ‘나(남기자)’는 ‘승천(昇天)한 줄광대’에 대한 기사를 취재하라는 부장의 지시에 따라 C읍으로 내려간다. 그 곳에서 ‘나’는 예전에는 서커스단에서 트럼펫을 불었으나 지금은 거의 폐인이 된 사나이로부터 줄광대 ‘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운’은 아버지 허 노인으로부터 줄타기를 배운다. 허 노인은 줄타기 한길만을 걸어온 장인(匠人)으로 아들에게 작은 허튼 재주도 용납하지 않는다. 허 노인의 소망대로 운은 마침내 장인의 경지에 오른다. 그런 어느 날, 한 여인이 사랑한 것은 ‘운’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줄 타는 모습이라는 사실을 알고 줄 위에 올라 최후의 연기를 한 뒤 스스로 떨어져 죽는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액자 소설, 의식 소설, 예술 소설
◎ 배경
‘나’의 이야기 - 시간(현대) / 공간(C읍)
허 노인과 허운 이야기 - 시간(1940년대 말) / 공간(C라는 마을)
◎ 문체 : 간결체
◎ 시점
외부 액자 - 1인칭 주인공 시점과 관찰자 시점이 복합적으로 나타남.
내부 액자 - 전지적 작가 시점
◎ 구성
도입 - ‘나’가 취재에 나섬.
발단 - 나팔수 노인을 만나 허운의 이야기를 들음.
전개 - 허 노인의 죽음과 허운의 활동
위기 - 사랑에 실패하는 허운
절정 - 줄을 타던 허운의 죽음
결말 - 나팔수 노인의 죽음과 나의 깨달음.
◎ 주제 : 장인 정신과 삶의 진실이 결핍된 오늘의 장인들의 자세 반성
◎ 출전 : <사상계>(1966)
3. 등장 인물
◎ 허 노인 : ‘줄타기’의 한 길만을 걸어온 장인으로서 절대 가치의 소유자
◎ 허운 : 허 노인의 아들로서, 줄광대로서의 길을 고수하기 위해 사랑에 실패하자 죽음을 선택함.
◎ ‘나’ : 신문 기자. 줄광대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서술자로서 자기에게 주어진 취재 임무를 달갑게 여기지는 않지만, 줄광대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된다.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2대에 걸친 줄광대의 삶과 ‘나(남기자)’의 생활을 지성의 눈으로 조명함으로써 삶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모색하고 있다. 이 작품은 줄을 대하는 허 노인의 엄격성과 부장의 명령으로 취재를 나온 ‘나’의 대조적인 모습을 통해 주제를 부각시키고 있다. ‘나’는 자신의 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거나 책임감을 절실히 느끼지 못하고 그저 타성적으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허 노인은 바로 그런 ‘나’가 잃어버린 소중한 정신을 보여 준 인물이며 그의 아들 허운도 같은 성격의 인물이다. 이들 부자(父子)는 줄을 탈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죽음을 택하는데, 그들을 죽게 한 것은 외부 세력이 아니라 자신들에 대한 엄격함 그 자체이다. 이 엄격함은 곧 장인 정신에서 나온 것인데 이 작품은 바로 이런 정신의 부각에 중점을 두고 있다. 오직 일생을 줄타기에 바친 허 노인,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장인의 경지에 이르지만 결국 운명 앞에 무너져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아들 운, 그리고 이들의 삶을 취재하는 ‘나’의 냉소적인 태도는 바로 우리가 겪어 온 시대적, 일상적 자기 변모의 모습과 일치한다. 즉, ‘허 노인→운→나’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은 ‘절대 가치→가치에 대한 갈등→가치 상실’의 일직선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끝내 가치의 추를 그 누구의 저울 위에도 올려놓지 않는다. 과연 인생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오직 우리 모두가 추구하고 결론 내려야 할 것이라는 지은이의 암시가 있을 뿐이다.
<참고> “줄” 문제 풀이를 통한 작품 이해
□ 이 소설은 겹 이야기 구성으로 되어 있다. 속 이야기의 주제는? 답) 장인으로서의 치열한 삶의 정신
□ 이 작품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 거리가 좁아지고 있다. 그 양상을 살펴 보라.
답) 처음 문화부장의 지시를 받을 때는, 줄광대에게 기사거리 정도의 흥미도 갖지 않는다. 그리고 C읍에 와서는 직업적 책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줄광대 이야기에 접근하게 된다. 그러다 트럼펫 사내의 말을 듣는 가운데 허운 부자의 삶에 조금씩 접근해 간다. 자신과 밤을 지냈던 창녀가 트럼펫 사내에게 바치는 뜨거운 애정을 확인하게 되면서 자신의 태도를 깊이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러면서 자신의 허운 부자의 이야기는 그것이 취재거리 이상의 의미로 화자에게 다가온다. 마침내 허운 부자 이야기를 쓸 자격이 없다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 이 작품에서 ‘창녀’와 ‘트럼펫 사내’는 결코 부수적 인물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의 삶의 모습이 허운 부자의 그것과 상통하는 점은 무엇인가?
답) 허운 부자가 줄타기에 죽음을 불사한 정도의 열정을 불태웠듯이, 트럼펫 사내는 악사로서의 삶을 진지하게 살았던 인물이다. 트럼펫은 허운 부자의 이야기를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 양 혼신의 정열을 다해 말한다. 그것은 지난날의 자신의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의 표현이다. 그만큼 자신이 주체가 된 삶을 살았던 것이다. 이것은 트럼펫을 좋아하는 여자의 뜨거운 인간애 또한 진실을 바치는 아름답고 진중한 가치를 지닌다. 그런 반면 화자는 일에 임하는 태도에 있어서 진지한 성찰을 하지 않는다. 화자의 태도와 상반된 삶의 자리에 허운 부자와 트럼펫, 여자가 있는 것이다.
□ 문화부장이 말한 ‘문학적 센스’라는 말은 하나의 복선 구실을 한다. 이 말과 주제는 어떤 연관을 지니는지 말해 보라.
답) 문화부장이 말한 ‘문학적 센스’라는 말은 문학적 기교라는 의미로 쓴 말이다. 허운 부자의 이야기를 독자들이 호기심을 가질 정도로 윤색하여 써 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글 쓰기가 진실의 전달이 아니라, 흥미의 제공이라는 수단적 의미로 보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나중에 화자는 도저히 글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삶에 대한 진실을 드러낼 자격이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따라서 ‘문학적 센스’는 글 쓰기의 요체가 아님을 말하기 위한 복선이 되는 것이다.
□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말하려 하는 진정한 '소설 쓰기'란 어떤 것인지 간단히 적으라.
답) 화자는 진정한 소설 쓰기란 결국 삶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사랑이 전제될 때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글 쓰기는 삶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글 쓰기가 하나의 재주와 같은 차원이라면 진정한 감동을 줄 수 없다는 것인데, 소설가인 화자는 그런 인식에 이르면서도 도저히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다는 반성에 이른다.
이태준(1904~?) |
소설가. 강원 철원 출생. 1920년 <시대일보>에 “오몽녀”를 발표하여 활동을 시작하였다. 박태원, 이효석, 정지용 등과 ‘구인회’를 결성하여 활동하였고, 해방 후 월북하였다가 숙청되어 고철 장수 등을 전전하다 숨졌다고 한다. 문예지 <문장>을 주관하였으며, “문장 강화”는 문장론의 모범으로 꼽힌다. 그는 아름다운 문장의 대가였으며, 그의 소설에서도 그 점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향토적이며 서정적인 세계에 어울리는 문체, 세태의 변화에 밀려가는 소외된 자의 잔잔한 아픔이 서정적으로 그려진 것이 특징이다. 그의 작품의 주제는 상고주의적 측면을 짙게 풍기는데, 그것은 격조와 통하는 정신주의의 일면이라 하겠다. 소설뿐 아니라 동화, 희곡도 다수 발표하였으며, 많은 평론문이 있다. 대표작으로는 “아무 일도 없소”, “불우 선생”, “돌다리”, “산월이”, “영월 영감”, “까마귀”, “농군”, “해방 전후”, “꽃나무는 심어 놓고”, “마부와 교수”, “딸 삼형제” 등 주옥같은 단편들이 많이 있다.
▶ 까마귀
1. 줄거리
괴팍한 문체로 독자에게 별 인기를 못 얻고 있는 작가인 ‘그’는 생활의 여유가 없다. 그는 궁여지책으로 한적한 시골에 있는 친구의 별장을 빌려 겨울을 지내기로 한다. 그 별장 주위의 나무에는 많은 까마귀가 날아와 둥지를 틀고 있다. 어느 날, 별장 정원을 산책하던 중 폐병 요양차 이 곳에 온 한 여인과 만난다. 몇 번의 만남이 이루어지면서 그는 이 여인에게 호감을 갖게 되고 그녀가 삶에 대한 미련이 없이 자포자기한 인물임을 알게 된다. 특히 그녀는 거의 병적으로 까마귀의 울음소리를 싫어하며, 까마귀가 마치 자신의 죽음을 재촉하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까마귀의 ‘뱃속에 아마 별별 구신 딱지가 든 것처럼 무서워’하고 ‘무슨 부적이 들구 칼이 들구 시퍼런 불이 들’어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는 이 여인에게 삶의 희망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 그녀의 애인이 될 것과, 까마귀에 대한 그녀의 공포를 덜어 주기 위해 까마귀를 잡아 그 내장을 직접 확인시켜 줄 계획을 세우고는 실제로 까마귀를 잡아 매달아 놓는다. 그러나 그녀는 며칠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고, 얼마 후 그녀의 상여가 나간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늦가을에서 겨울까지) / 공간(고풍스럽고 음습한 별장)
◎ 성격 : 유미주의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구성
발단 - 작가인 ‘그’는 겨울을 나기 위해 친구의 별장을 찾는다.
전개 - 별장 부근에서 한 여인을 만나고 그녀와 가깝게 사귄다.
절정 - 까마귀를 싫어하는 그녀에게 까마귀를 잡아 내장을 확인시켜 줄 계획을 세운다.
결말 - 그녀에게 까마귀의 내장을 보여 주기 전에 그녀는 죽고 만다.
◎ 제재 : 폐병 환자와 까마귀(또는 고독과 죽음)
◎ 주제 :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 죽음의 문제
◎ 출전 : <조광>(1936)
3. 등장 인물
◎ 그 : 독자에게 별로 인기가 없는 작가. 폐병에 걸린 한 여인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 노력한다.
◎ 여인 : 폐병 환자로 요양 차 시골로 와 있다가 ‘그’를 만나게 된다.
◎ 정자지기 : 별장 관리인
4. 이해와 감상
1936년 <조광>에 발표된 단편 소설로서, 1930년대 우리 사회의 일각에 만연되었던 일종의 ‘사(死)의 찬미’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음울한 분위기를 통해 모든 것을 아름답게만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줄거리나 인물의 형상화보다는 소설에서 분위기가 어떻게 주제의 표출에 기여하는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 작품은 음습한 별장, 반복되는 까마귀의 울음소리, 폐병 환자의 죽음으로 여겨지는 어둡고 침침한 분위기의 묘사를 통해 주인공인 ‘그’와 ‘그’의 문명(文名)을 사모하는 어떤 여인과의 만남을 그리면서, 인간의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태준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소외된 인물들이 등장하며, 이에 따라 작품의 주조가 어둡게 채색되어 있다. 작가는 죽어 가는 인물을 연민의 시선으로 그려 나가면서 서정적인 정서가 투사된 서술 태도를 드러낸다. 그러나 이러한 서술 태도를 단순히 감상주의로 규정할 수는 없다. 작가의 감정이 절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돋보이는 것은 감각적 묘사이다. 고색 창연한 별장의 시각적 묘사와 까마귀 울음소리의 청각적 묘사를 통해 작품의 분위기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특히, 까마귀의 울음소리는 작품의 정조를 우울하게 만드는 역할뿐만 아니라 젊은 여인의 죽음을 예견케 하는 복선의 구실도 하고 있다. 즉, 작가는 까마귀의 울음소리를 통해 여인의 죽음이라는 극적 사건을 예감케 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 작품은 작가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시도해 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의 가난, 여인의 병, 정혼자에 대한 그녀의 사랑, 그리고 여인에 대한 ‘그’의 감정 모두를 아름다운 것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것은 작가가 삶의 비극성을 역설적으로 미화시키고 있음을 의미한다. 소멸의 미학, 죽음의 미학이라 불릴 만하다. 일반적으로, 소설에서는 서사성과 인물의 형상화가 중심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분위기가 그것을 압도하고 있다.
▶ 농군(農軍)
1. 줄거리
척박하고 좁은 농토에서는 도저히 삶을 영위할 수 없어서 유창권 일가는 만주 땅 장춘으로 향한다. 이들 일행은 조선 농민들의 집단촌인 ‘쟝자워프’에 정착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젊은 유창권 내외는 새벽 일찍 잠이 깨어 차창 밖으로 전개되는 신천지를 바라보며 웬지 모를 불안감에 젖는다. 조선 농민들이 그들의 농토에서 30리나 떨어진 ‘이퉁허’라는 하천에서 끌어오는, 논농사에 필요한 수로 공사(水路工事)를 벌이는데 난데없이 일단의 중국 토착민이 습격한다. 중국 토착 농민들이 수로 공사를 반대하는 것은 이로 말미암아 그들의 밭이 피해를 입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조선 농민들은 부인들까지 낫과 식칼을 들고 나와 대항한다. 이 위세에 눌려 중국 토착민들은 흩어진다. 유창권은 이를 목격하고 새로운 ‘의식의 눈’을 뜨게 된다. 이 와중에 창권의 할아버지는 운명(殞命)하고 공사는 중단된다. 봄이 되어 수로 공사를 재개하자 중국인들이 관청에 진정(陳情), 급기야 돈에 매수된 중국 군인들이 출동하여 공사를 저지한다. 생각다 못해 이번에는 조선 농민 대표자들이 그 부당성을 관청에 진정하지만 오히려 감금당했다가 9일 만에 풀려 나온다. 중국인들은 황채심 등 조선 농민 대표자로 하여금 주민들을 회유시키고자 하지만 황채심은 오히려 농민들을 향해 끝까지 뜻을 관철시키라고 격려한다. 이에, 사기가 오른 조선 농민들은 빗발치는 총탄을 무릅쓰고 공사를 강행하여 기어이 생명의 젖줄인 수로를 뚫는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1930년대) / 공간(만주 만보산 지역)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성격 : 리얼리즘적 경향
◎ 문체 : 현재법과 짧은 문장의 반복
◎ 의의 : 만보산 사건의 소설적 형상화
◎ 구성
발단 - 유창권 일가가 고향을 등지고 만주 장춘에 도착한다.
전개 - 그들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불안감을 나타낸다.
위기 - 조선 농민의 집단촌에 정착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절정 - 수로 공사를 둘러싸고 만주인과 극심한 갈등을 빚는다.
결말 -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수로를 완성한다.
◎ 제재 : 조선 농민들의 끈질긴 생명력
◎ 주제 : 생존을 위한 재만(在滿) 조선 농민들의 끈질긴 삶의 투쟁
◎ 출전 : <문장>(1939)
3. 등장 인물
◎ 유창권(柳昌權) : 만주로 이주한 20대의 조선 농민
◎ 할아버지 : 창권의 조부. 고향에 대한 애착을 갖고 있는 노인
◎ 어머니 : 창권의 어머니
◎ 처 : 방적 회사에 다녔던 창권의 처
◎ 황채심 : 쟝자워프의 조선인 지도자. 창권의 스승
◎ 경상도 노인 : 수로 공사 도중 중국 군인의 총에 맞아 죽는 노인
4. 이해와 감상
이 소설은 이태준 소설 중에서는 특이하게 농민들의 생존을 위한 끈질긴 투쟁의 모습을 리얼리즘의 기법으로 담고 있다. 작가가 작품의 서두에서 “이 소설의 배경 만주는 그 전 장작림 정권 시대임을 말해 둔다.:고 밝히고 있듯이, 1931년에 있었던 ‘만보산 사건’을 소설로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만보산 사건’이란, 만주 토착민과 조선에서 이주한 농민 사이에 있었던 갈등이 빚은 사건이다. 실제로 1932년 4월 만주로부터 만보산 지역 미개간지를 조차(租借)한 일본인이 이를 다시 조선의 농민에게 10년 기한으로 빌려주고 180여 명의 조선 농민을 끌어들이면서 만주 토착민과의 갈등은 시작되었다. 조선에서 만보산 지역으로 이주한 농민들은 벼농사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기 위해 ‘이퉁허’로부터 20여 리(里)의 수로(水路)를 만든다. 이 수로 공사로 인해 부근의 토착 중국 농민들이 피해를 입게 되자 그들은 당국에 고발하는 한편, 조선 농민들이 만든 수로와 제방을 파괴한다. 이에, 조선 농민들의 공사를 보호하기 위해 현지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 경찰이 사격까지 가하며 중국 농민들을 강압적으로 해산시킨다. 이러한 사실을 왜곡하여 만주인들의 만행(蠻行)이라고 조선에 보도함으로써 한때 조선에서는 만주인 배척 운동과 함께 만주인에 대한 살인, 테러 등이 횡행했다. 결국, 일본의 만주 침략의 구실을 만들어 주었을 뿐이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는 다소 사실과 다르게 묘사되어 있다. 즉, 기본적인 골격은 동일하지만, 사건의 해결 주체는 상이(相異)하다. 실제 사건에서는 조선 농민들이 보호받는 대신 일본 경찰이 중국 농민에게 사격을 가했지만, “농군(農軍)”에서는 중국 군인들이 조선 농민들의 수로 공사 저지를 위해 무차별 사격을 가해 주인공 ‘유창권’의 다리에 관통상을 입히고 경상도 노인을 죽이고 있다. 이러한 점이 바로 사전 검열이 강화되던 1937년이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이 작품의 발표를 가능하게 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태준이 조선 농민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형상화하겠다는 민족주의적인 생각으로 작품을 썼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일제의 정치적 야욕에 부응 또는 협조한 결과를 초래했다. 이태준은 이 <농군(農軍)>을 통해 그가 줄곧 견지해 온 순수 문학적 태도를 청산하고 용감하게 현실 속으로 뛰쳐나오려는 변혁을 시도했는지는 모르나, 결과적으로는 소박한 현실 인식만을 보여 줄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찾기 힘들다고 하겠다
<기타>
1939년 <문장>에 발표된 단편 소설. ‘순수 문학의 기수’라는 이태준의 작품으로는 매우 이례적으로 작가의 현실 인식의 수준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1930년대 만주로 이주한 조선 농민들의 처절한 투쟁의 기록이자, 실제 있었던 ‘만보산 사건’을 다루고 있는 이 작품에서 우리는 일제 치하 우리 농민의 궁핍한 모습은 물론 끈끈한 생명력을 엿볼 수 있다.
▶ 달밤
1. 줄거리
성북동으로 이사 온 ‘나’는 시냇물 소리와 쏴아 하는 솔바람 소리 때문에, 그리고 황수건이란 사람을 만나고부터 이 곳이 시골이란 느낌을 받는다. 우둔하고 천진한 품성을 지닌 황수건은 아내까지 거느리고 형님의 집에 얹혀 살면서 학교 급사(사환)로 일하던 중 일 처리를 잘못하는 바람에 쫓겨난다. 그는 현재 원배달이 20여 부를 떼어 주는 신문을 배달하고 월 3원 정도 보수를 받는 보조 배달원으로, 그의 유일한 희망은 원배달이 되는 것이다. 그는 ‘나’와 가깝게 지내면서, 집을 구하는 것에서부터 우두를 맞지 말라, 개를 키우지 말라는 등 여러 가지 실속 없는 참견을 한다. 그러나 그의 순진한 성격을 아는 ‘나’는 그의 투정을 끝까지 받아 준다. 그런데 성북동이 따로 한 구역이 되었으나 원배달은 커녕 ‘똑똑치가 못 하니까’ 보조 배달원 자리마저 떨어진다. 황수건은 ‘나’에게 하소연을 한다. ‘나’는 그의 처지가 하도 딱해 참외 장사라도 해 보라고 돈 3원을 준다. 한동안 그는 참외도 가져오고 포도도 훔쳐 오는 등 ‘나’의 집에 잘 들렀으나, 참외 장사도 실패하고, 끝내는 동서의 등쌀을 견디지 못한 그의 아내마저 달아난다. 어느 늦은 밤, 그는 달만 쳐다보며 서툰 노래를 부른다. 전에 볼 수 없던 모습으로 담배를 피우면서. ‘나’는 그를 부를까 하다가 그가 무안해 할까 봐 얼른 나무 그늘에 몸을 감춘다. 쓸쓸한 달밤이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1930년대) / 공간(서울 성북동)
◎ 성격 : 애상적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구성
발단 - ‘나’는 첫 만남에서부터 황수건이 못난이란 사실을 앎.
전개 - 원배달이 소원인 보조 배달원 황수건의 과거
위기 - 보조 배달마저 쫓겨나고 ‘나’의 도움으로 참외 장사를 시작함.
절정 - 참외 장사 실패와 아내의 가출
결말 - 달을 쳐다보며 깊은 우수에 잠기는 황수건
◎ 제재 : 세상사에 적응 못하는 못난이의 삶
◎ 주제 : 각박한 현실에 부딪쳐 아픔을 겪는 삶의 모습
3. 등장 인물
◎ 나 : 황수건을 동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소설 속의 서술자
◎ 황수건 : 우둔하고 천진한 품성을 지닌 남자. 학교 급사, 신문 보조 배달원, 참외 장사 등을 하나 모두 실패한다. 끝내 아내마저 도망가자 달을 쳐다보며 우수에 젖는 주인공
4. 이해와 감상
1933년 <중앙>에 발표된 단편 소설로서, ‘나’와 ‘황수건’이라는 사내가 엮어 내는 이야기인데, 우둔하고 천진한 품성을 지닌 ‘황수건’이 각박한 세상사에 부딪혀 아픔을 겪는 모습이 중심을 이룬다. ‘못난이’로 불리는 ‘황수건’은 과연 이 세상에서 살아 나갈 수가 없을까. 그와 관련된 여러 에피소드와 이를 바라보는 ‘나’의 태도, 그리고 애상적 분위기가 돋보인다. ‘나’는 문안에서 성북동 시골로 이사 온 후에야 사람다운 삶의 체험을 통해 더 큰 보람을 느낀다. 그것은 ‘못난이’가 눈에 잘 띈다는 사실로 나타난다. 문안에는 말하자면 잘난 사람들만 살기 때문에 ‘못난 사람’은 밖으로 나올 수도 없고 또 있어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골은 ‘못난 사람’도 자신을 감추지 않고 사는 곳이다. ‘못난 사람’이 자기 나름의 서툴고 어수룩한 생각을 통제 없이 표현한다는 것은 시골에는 그러한 사람이 살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북동에 작은 집을 사서 이사 온 ‘나’에게 “왜 이렇게 죄꼬만 집을 사구 와겝쇼. 아, 내가 알았더라면 이 아래 큰 개와집도 많은 걸입쇼.”라고 첫 대면부터 황당하게 면박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못난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그러나 ‘나’는 바로 이런 인물에게 정을 느끼고 있다. ‘나’가 ‘반편’에 해당하는 ‘황수건’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재미를 느끼고, 또 이야기의 뒤끝이 깨끗하다고 느끼는 것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늘 복잡하고 깨끗하지 못했다는 것과 상통한다. 그러므로 작가가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은 두 인물의 관계가 아니라, ‘황수건’이라는 인물의 사람됨과, 그러한 인간이 살아갈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인식이다. 즉 이 세계는 약삭빠르고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만이 살 수 있는 곳이기에 ‘황수건’같이 신문 배달 자체만을 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는 사람, 그래서 도중에 어느 집에서 지체되면 밤이 되어서 배달하는 사람은 도태되기 마련이다. 작가는 이러한 인물을 통해서 ‘반편’ 같은 존재도 하나의 인격체로서 살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태준의 대표작, 예를 들어 ‘까마귀’, ‘밤길’, ‘복덕방’ 등은 일상적인 사소한 것들에 패배 당하는 인간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패배주의자들에 대하여 독자가 연민을 느끼는 것은 서술자, 또는 작중에 뛰어든 관찰자 ‘나’의 동정적인 태도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나’가 ‘황수건’을 대하는 태도 역시 그러한데, 그러나 그와 같은 동정심은 휴머니즘 정신에 기반을 둔 것은 사실이지만, 회고(懷古) 취향의 나른한 서정성이 너무 짙게 배어 나온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의 마지막 대목인 “달밤은 그에게도 유감한 듯하였다.”는 문장은 이태준 문학 성향의 한 농축이라 할 수 있으며, 그의 문학이 ‘역사’ 또는 ‘미래’와는 거리가 먼 것임을 입증하기도 한다.
▶ 돌다리
1. 줄거리
창섭은 누이가 의사의 오진으로 죽자 농업학교로 진학하라는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서울로 가서 의전(醫專)에 들어가 의사가 된다. 그는 열심히 노력하여 맹장 수술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자가 되고 병원을 운영하여 성공한다. 창섭은 병원을 확장하기로 하고 모자라는 돈은 고향의 땅을 팔아 채우고, 부모를 서울에서 모시리라 결심하면서 고향으로 내려오지만, 그 계획은 의외로 완강한 부친의 반대에 직면한다. 창섭의 부친은 동네에서 근검하기로 소문난 사람인데, 부지런히 일할 뿐만 아니라 논과 밭을 가꾸는 일에 모든 정성을 들이고 아들 학비로 동네 길들은 물론 읍내 길과 정거장 길까지 닦는 사람이다. 창섭이 고향에 도착했을 때 부친은 장마에 내려앉은 돌다리를 보수하고 있었는데, 창섭이 서울로 올라가자는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한다. 부친은 창섭이 땅을 허술히 생각하고 있는 것에 가슴 아파하지만, 창섭은 자기 세계와 아버지 세계와의 결별을 체험하고 서울로 다시 올라간다. 아버지는 다음날 새벽이 되자마자 보수한 다리로 나가 세수를 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1930년대) / 공간(시골)
◎ 성격 : 사실적, 교훈적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표현 : 인물 간의 대화와 서술자의 요약적 제시를 통해 주제 의식을 형상화함
◎ 구성
발단 - 창섭은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의사가 된다.
전개 - 의사인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고향을 찾아온다.
위기 - 아들이 아버지에게 땅을 팔아 병원을 확장하자고 제의한다.
절정, 결말 - 아버지가 아들의 제의를 거절하고 땅의 소중함을 역설한다.
◎ 제재 : 돌다리
◎ 주제 : 서구적인 물질주의 가치관에 대한 비판
◎ 출전 : <국민문학>(1943)
3. 등장 인물
◎ 아버지 : 일생 동안 농사만 지어 온 농부로, 땅에 대해 강한 애착심을 지니고 있다. 물질적인 것보다 인정과 의리를 소중히 여기는 인물로 자신의 주견이 매우 분명하다.
◎ 어머니 : 아들과 함께 살기를 바라는 평범하고 소박한 촌부이다.
◎ 창섭(아들) : 서울에 살고 있는 의사이다. 누이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의사가 되지만 현재는 의술을 중요하게 여기기보다 돈을 버는 데 관심이 많다. 서구의 물질 지향적인 가치관을 가진 인물이다.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서구적인 물질적 가치와 전통적인 정신적 가치가 교차되는 당시의 사회 현실을 한 가족 간의 갈등을 통해 보여 준 사실주의 소설이다. 이 작품이 씌어진 시기는 일제 강점기라는 특수한 상황 외에도 일본을 통해 서구적인 가치관이 이 땅에 대량으로 들어옴으로써 전통적인 가치관이 붕괴되던 때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전통적인 가치관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의의가 있다. 그러니까 농토를 파는 문제로 일어난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갈등을 다룬 작품으로서 근대적 사고를 추구하는 아들과 전통적 가치를 존중하는 아버지 사이의 갈등을 통해 근대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이 작품의 제목인 ‘돌다리’는 함축하는 바 큰 의미가 있다. 이 작품에서 아버지는 ‘돌다리’를 단순한 다리가 아닌 가족사(家族史)의 일부로 보고 있다. 여기서 ‘돌다리’는 아버지가 글을 배우러 다니던 다리이자 어머니가 시집올 때 가마 타고 건너온 다리이다. 또, 조상의 상돌을 옮긴 다리이면서 아버지 자신이 죽어서 건널 다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의 의미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아버지가 돌다리를 보수하는 행위는 과거부터 전해지던 정신적인 문화가 후대에까지 이어지기를 바라는 염원의 표현인 것이다.
▶ 마부와 교수
1. 줄거리
여학교 앞에서 자갈을 실은 두 마차가 경사진 길을 올라가다가 앞엣말이 쿵 하고 나동그라졌다. 마부는 땀 배인 등허리에서 그 말가죽이 알른알른 닳은 물푸레 채찍을 뽑아 들고 아무리 매질을 해도 넘어진 말은 입에 거품만 뿜을 뿐, 일어서기는커녕 가로로 박힌 눈알이 주인을 바로 쳐다보지도 못한다. 나중에는 멍에를 부려 놓고 족쳐 보지만 매가 떨어질 때마다 네 굽만 움죽움죽해 보일 뿐이었다. 마부는 화가 밀짚 벙거지 꼭대기까지 올라 모자를 벗어 내팽개치더니 길 아래 남의 밭에 가서 울짱을 하나 뽑아 들고 달려들었다. 그 때, 하학을 하던 여학생들이 이 무자비한 광경을 보고는 선량한 의분을 느껴 그 자리에 서서 안타까워 하다가 마침 이 곳을 지나가는 교수 한 분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교수는 길도 막혔거니와 예쁘고 선량한 제자들의 요청에 용기를 내어 매질하는 마부 앞으로 성큼 나섰다. 교수는 마치 자기가 말 주인보다 더 가까운 말의 친구인양 말을 때리지 말라고 꽤 놓은 소리로 탄원했다. 여학생들은 손뼉이라도 칠 듯이 속이 시원하였다. 그러나 마부는 대꾸도 없이 다시 매를 들었다. 제자들 앞에서 잃어지는 체면을 도로 찾기 위해서라도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게 된 교수는 다시 한 걸음 나서며 마부를 나무랐다. 그러자 마부는 의외로 교수의 노염은 탓하지 않고 오히려 목소리를 낮추어 어린애에게 타이르듯이 [말이란 것은 쓰러졌을 때 이내 일으켜 세우지 못하면 죽고 마는 짐승]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콩트
◎ 성격 : 교훈적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주제 : 어설픈 인정으로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
3. 등장 인물
◎ 마부 : 매우 현실적인 인물
◎ 교수 : 현실의 실상을 잘 알지 못하는 단순한 인정주의자
4. 이해와 감상
<마부와 교수>는 1933년 <학등(學燈)>에 처음 발표되었으며, 그의 작품집 <달밤>에 수록되어 있다. 상허 이태준은 1930년대 소설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는데, 그것은 그의 작품이 다양한 장르에 걸쳐 있고, 양적으로 많을 뿐 아니라 치밀한 세부 묘사의 미학적 구성을 통한 소설의 완성미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이 작품도 그가 실험 정신을 가지고 시도했던 다양한 장르 형태 중, 콩트에 속하는 작품으로서 명쾌한 교훈적 의미를 시사해 주고 있다.
▶ 밤길
1. 줄거리
심성이 착한 황 서방은 서울에서 행랑살이를 하다가 첫아들을 보자 어서 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아내와 아이를 행랑살이하던 주인집에 맡겨 놓고 인천 월미도로 내려와 신축 공사장에서 모간꾼 노릇을 한다. 한동안 돈도 벌고 먹고 싶은 것도 사 먹었으나 이것도 잠시뿐, 계속되는 장마로 인해 공사는 중단되고 돈만 까먹으며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린다. 황 서방보다 훨씬 젊은 그의 아내는 바람이 나서 가출하고 남은 아이들은 굶주림과 병에 시달리게 된다. 더구나, 젖먹이 아들은 병에 걸려 죽어 간다. 이를 보다 못한 주인 영감이 아이들을 월미도 공사장에 이끌고 내려와 황 서방에게 넘기고 가 버린다. 어린아이를 안고 허둥지둥 병원을 찾았으나 아이의 병세는 매우 위독하여 오늘밤을 못 넘기겠다고 한다. 공사장으로 돌아온 황 서방은 새로 지은 집에 주인이 들어오기도 전에 시체를 내갈 수 없다는 권 서방의 생각에 동의하며 비 내리는 밤길에 죽어 가는 아이를 안고 나온다. 동료인 권 서방과 함께 아이가 빨리 죽기를 기다리지만 아이는 금방 죽을 것 같으면서도 쉬 숨이 끊어지지 않는다. 둘은 주안 쪽을 향해 걷다가 아이의 숨이 끊어졌다고 판단하여 산비탈에 구덩이를 파고 아이를 묻으려 한다. 순간 아이의 목숨이 아직도 붙어 있음을 알고 권 서방은 놀란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아이가 죽자 구덩이에 아이를 묻고, 황 서방은 "내 이년을 그예 찾아 한 구뎅에 처박구 말 테여."라고 외치며 통곡한다. 어둠과 빗줄기 속에 황 서방은 주저앉아 버리고, 개구리와 맹꽁이 소리만 들려 올뿐이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 - 일제 강점기 / 공간 - 인천 월미도와 주안
◎ 성격 : 사실적, 비극적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의의 : 이태준의 몇 안 되는 리얼리즘 계열의 작품 중 하나로 절망적인 시대 상황을 잘 나타내고 있다.
◎ 주제 : 하층민의 비극적 삶과 비애
◎ 구성
발단 - 계속되는 비 때문에 공사를 쉬고 있는 인천 건축 공사장
전개 - 공사장에 황 서방네 집주인이 나타남.
위기 - 죽어 가는 아이를 안고 당황하는 황 서방
절정 - 아이가 빨리 죽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비통한 마음
결말 - 아이를 묻고 통곡하는 황 서방
3. 등장 인물
◎ 황 서방 : 처자식을 서울에 둔 채 인천으로 내려와 건축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성실하고 품성이 선량 한 노동자. 아이의 죽음 앞에서 오열한다.
◎ 권 서방 : 황 서방과 함께 공사장에서 일하는 인부
◎ 주인집 어른 : 서울 수표교 근처에 있는, 황 서방네가 행랑살이 하는 집의 주인
4. 이해와 감상
1940년 <문장>에 발표된 단편 소설. 이태준의 작품 중 작가의 현실 인식의 수준을 엿볼 수 있는 수작(秀作)이다. 1930년대 도시 빈민의 궁핍한 삶과 어린아이의 죽음 앞에 어쩌지 못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칠흑 같은 밤, 계속하여 내리는 비, 아이의 죽음이라는 비극적 결말과는 전혀 상관없이 들려 오는 개구리와 맹꽁이 울음소리는 이 소설의 침울한 분위기를 더욱 비극적으로 만든다. 작가 이태준의 현실 인식 수준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밤’과 ‘줄곧 그치지 않는 비’라는 배경을 통해 암흑기의 절망적 상황과 하층민의 가난을 그리고 있다. 행랑살이를 하던 황 서방은 아들을 낳자 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공사장으로 내려온다. 그러나 황 서방의 꿈은 깨어지고 만다. 아내의 가출, 아이의 병, 그리고 끝내는 죽어 가는 아이를 안고 어쩔 줄 모르는 황 서방의 모습, 게다가 집주인이 들기도 전에 새 집에서 시체를 내갈 수 없다는 생각에 죽어 가는 아이를 안고 집을 나오는 장면에서 착하기만 한 노동자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비극의 원인을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서 찾기보다는 그 책임이 전적으로 가출한 그의 아내에게 있는 것처럼 그림으로써 극에 달한 황 서방의 분노와 절규를 보여 줄 뿐이다. 그러므로 근본적인 가난의 문제보다는 하층민의 삶의 애환을 비극적으로 다루는 수준에 머물고 말았다. 문체면에서 볼 때, 이 작품은 작가의 가라앉은 시선을 잘 보여 준다. 아이의 죽음이라는 극한적 결말에도 불구하고 배경과 상황을 처리하는 작가의 시선은 차라리 냉정한 쪽이다. 특히, 결말 부분에서 황 서방의 절규와는 상관없이 “하늘은 그저 먹장이요, 빗소리 속에 개구리와 맹꽁이 소리뿐이다.”라고, 결코 흥분하지 않는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
▶ 복덕방(福德房)
1. 줄거리
세 노인이 복덕방에서 무료하게 소일한다. 안 초시는 수차에 걸친 사업 실패로 몰락하여 지금은 서 참의의 복덕방에서 신세를 지고 있다. 무용가로 유명한 딸 경화가 있으나, 그는 늘 그녀의 짐일 뿐이다. 그러나 재기하려는 꿈을 안고 살아간다. 서 참의는 한말에 훈련원의 참의로 봉직했던 무관이었으나 일제 강점 후 별 수 없을 것 같아 복덕방을 차렸다. 안 초시와 달리 대범한 성격의 소유자로, 중학 졸업반인 아들의 학비를 걱정하며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박희완 영감은 훈련원 시절 서 참의의 친구이다. 재판소에 다니는 조카를 빌미로 대서업(代書業)을 한다고 일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노인이다. 재기(再起)을 꿈꾸던 안 초시에게 박 영감이 부동산 투자에 관한 정보를 일러준다. 늘 일확천금을 꿈꾸던 안 초시는 딸과 상의하여 투자를 결심한다. 안 초시는 딸이 마련해 준 돈을 몽땅 부동산에 투자한다. 그러나 일 년이 지나도 새로운 항구의 건설이라든가 땅값이 오른다든가 하는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결국, 박 영감에게 부동산 정보를 전해 준 사람이 자신의 땅을 처분하기 위해 벌인 사기극임이 밝혀진다. 이에 충격을 받은 안 초시는 음독 자살한다. 아버지의 자살로 자신의 사회적 명예가 훼손될 것을 우려한 안 초시의 딸 경화는 서 참의의 권유를 받아들여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른다. 장례식에 참석한 서 참의와 박희완은 조문객들의 허세에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1930년대 서울의 한 복덕방
◎ 시점 :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 의의 : 현실에서 소외된 노인들의 삶을 통해 부동산 투기라는 허황된 꿈의 문제는 물론, 이기적인 딸 과 소심한 아버지를 통해 무너져 가는 가족 관계를 폭로하고 있다.
◎ 구성
발단 - 안 초시의 일상사
전개 - 복덕방 주인 서 참의의 과거와 현재
위기 - 박희완 영감의 소개로 딸에게 돈을 빌려 부동산에 투자하는 안 초시
절정 - 사기극으로 밝혀진 땅 투기
결말 - 안 초시의 자살과 그의 장례식에 참석한 두 노인의 푸념
◎ 주제 : 은퇴한 노인들의 삶의 비애
◎ 출전 : <조광>(1937)
3. 등장 인물
◎ 안 초시 : 서 참의의 복덕방에서 소일하는 늙은이
◎ 서 참의 : 구한말 훈련원 참의를 지낸 인물로 복덕방의 주인
◎ 박희완 영감 : 복덕방에 자주 나오는, 서 참의의 친구
◎ 안경화 : 유명한 무용가로 안 초시의 딸
4. 이해와 감상
1937년 <조광(朝光)>에 발표된 작품으로, 생활의 기반을 상실한 세 노인이 복덕방에서 소일하면서, 뚜렷한 미래도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인생을 포기할 수도 없는 그들의 꿈과 좌절을 담담하게 그린 단편 소설이다. 1930년대에 이미 부동산 투기의 문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한 이 작품은 세 노인을 통해 궁핍한 사회상을 드러냄은 물론, 이기적인 딸과 소심한 아버지를 통해 무너져 가는 가족 관계도 보여 주고 있다. 훈련원의 참의로 있었던 서 참의는 군대가 해산되고 할 일이 없게 되자 처음에는 별로 기대하지 않고 시작한 복덕방을 통해 경제적 기반을 닦는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세상은 먹구 살게 마련야.’ 하는 긍정적이자 낙천적인 인생관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기생, 갈보 따위가 사글세방 한 칸을 얻어 달래도 예, 예 하고 따라 나서야’ 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서글픔의 눈물을 흘리면서 훈련원 시절의 기개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서 참의와 대조적인 인물이 안 초시이다. 그는 현실이 불만족스럽다. 말끝마다 ‘젠장’ 소리를 한다. 그는 하는 일마다 모두 실패를 보고 생활의 낙오자가 되어 서 참의의 복덕방에서 소일하는 노인이다. ‘돈만 가지면야 좀 좋은 세상인가!’라고 고백하는 그는 현실 속에서 남들처럼 호화롭게 살기를 바라는 몽상가라 할 수 있다. 그는 항상 일확천금을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박희완 영감이 일러준 소문을 믿고 딸을 부추겨 부동산에 투자한다. 이른바 신항구 건설 계획을 관청에서 빼내어 그곳의 부동산을 미리 사 두면 큰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일은 실패로 끝난다. 그는 50전이 없어서 안경다리를 고치지 못했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딸의 돈 삼천 원을 잃고 취할 행동은 자살밖에 없었을 것이다. 안 초시의 자살은 허황된 꿈을 쫓던 인물의 서글픈 귀결인 것이다. 반면에, 물질주의와 자신의 출세에 사로잡혀 있는 딸(일설에 의하면 월북한 무용가 최승희를 모델로 했다고도 함.)은 아버지의 죽음과는 관계없이 자신의 명예를 지키고자 한다. 그래서 호사스런 장례식을 치른다. 안 초시의 죽음을 슬퍼하는 서 참의와 박희완 영감은 묘지에 따라가지 않는다. 왜냐 하면, 안 초시의 딸 경화와 조문객들이 내보이는 인간적 허세(虛勢)가 역겨웠기 때문이다. 친구의 죽음과 인간미 상실의 체험. 그들은 가슴이 답답하다. 결국 서 참의, 안 초시, 박희완 등 세 노인들을 통해서 현실적인 성공에의 꿈은 아직 남아 있지만, 이들은 이미 변화하는 시대에 뒤쳐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의 그늘에서 소외당해 있는 이들을 작가는 연민의 눈으로 본다. 즉, 작가는 이들이 무능하거나 게을러서 초라해진 것이 아니라 사회의 진동 때문에 그늘로 내몰린 사람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수동적이고 왜소한 그들의 존재는 비극적이다. 이는 당시 역사적 흐름과 맞물리는 것이기도 하다.
▶ 해방 전후(解放 前後)
1. 줄거리
현은 무슨 사상가도, 주의자도, 무슨 전과자도 아니었다. 시골 청년들이 어떤 사건으로 잡히어서 가택 수색을 당할 때, 그의 저서가 한두 가지 나온다든지, 편지 왕래한 것이 한두 장 불거진다든지, 서울 가서 누구를 만나 보았느냐는 심문에 현의 이름이 끌려든다든지 해서, 청년들에게 제법 무슨 사상 지도나 하고 있지 않나 하는 혐의로 가끔 오너라 가너라 하기 시작한 것이 인젠 저들의 수첩에 준요시찰인(準要視察人) 정도로는 오른 모양인데, 구금을 할 정도라면 당장 데려갈 것이지 '호출장'이니 '시달서'니가 아닐 것은 짐작하면서도 번번이 불안스러웠고 더욱 이번에는 은근히 마음 쓰이는 것이 없지도 않았다. 일반 지원병 제도와 학생 특별 지원병 제도 때문에 뜻 아닌 죽음이기보다, 뜻 아닌 살인, 살인이라도 내 민족에게 유일한 희망을 주고 있는 중국이나 영미나 소련의 우군을 죽여야 하는, 그리고 내 몸이 죽되 원수 일본을 위하는 죽음이 되어야 하는, 이 모순 된 번민으로 행여나 무슨 해결을 얻을까 해서 더듬고 더듬다가는 한낱 소설가인 현을 찾아와 준 청년도 한둘이 아니었다. 현은 하루 이틀 동안에 극도의 신경 쇠약이 된 청년도 보았고, 다녀간 지 한 일주 일 뒤에 자살하는 유서를 보내온 청년도 있었다. 이런 심각한 민족의 번민을 현은 제 몸만이 학병 자신이 아니라 해서 혼자 뒷날을 사려해 가며 같은 불행한 형제로서의 울분을 절제할 수는 없었다. 때로는 전혀 초면들이라 저 사람이 내 속을 떠보려는 밀정이나 아닌가 의심하면서도, 그런 의심부터가 용서될 수 없다는 자책으로 현은 아무리 낯선 청년에게라도 일러 주고 싶은 말은 한 마디도 굽히거나 남긴 적이 없는 흥분이곤 했다. 그들을 보내고 고요한 서재에서 아직도 상기된 현의 얼굴은 그예 무슨 일을 저지르고만 불안이었고, 이왕 불안일 바엔 이왕 저지르는 바엔 이 한 걸음 절박해 오는 민족의 최후에 있어 좀더 보람 있는 저지름을 하고 싶은 충동도 없지 않았으나, 그 자신 아무런 준비도 없었고, 너무나 오랫동안 굳어 버린 성격의 껍데기는 여간 힘으로는 제 자신이 깨트리고 솟아날 수 없었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해방을 전후한 1~2년) / 공간(서울→철원→서울)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구성
발단 - 호출장을 받고 서에 출두한 현은 시국을 위해 일할 것을 강요당한다.
전개 - 철원으로 집을 옮긴 후 낚시로 소일하던 중 김 직원을 만나 그와 교유한다.
위기 - 해방 직후 친구의 연락을 받고 서울로 온다.
절정 - 현은 좌익 계열의 ‘조선 문화 건설 중앙 협의회’에 관여한다.
결말 - 김 직원과 대화를 통해 이념적으로 서로 화해할 수 없음을 확인한다.
◎ 주제 : 해방 후 지식인의 이념적 갈등
◎ 출전 : <문학>(1946)
3. 등장 인물
◎ 현 : 순수문학가였는데 해방 후 좌익 계열로 전향한 소설가
◎ 김 직원 : 철원에 사는 유학자로 보수적이며 완고하다.
4. 이해와 감상
‘한 작가의 수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작품은 1946년 8월 문학가 동맹의 기관지였던 <문학> 창간호에 발표된 단편 소설이다. 같은 해 좌익 계열의 문학가 동맹이 주관하는 해방 기념 조선 문학상에 지하련(池河連)의 “도정(道程)”과 함께, ‘구 문단의 지도적 작가의 한 사람이었던 작가 자신이 새로 문학 운동과 민주주의 운동에 가담하여 투쟁하는 가운데서 체험한 바 제(諸) 사실을 기록한 것’이란 이유로 수상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태준 자신의 자전적 소설이라 할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의 해방을 전후한 행적과 함께 그가 북(北)을 택한 이유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일제 강점기 말, 시국 문제에 협력하지 않고 버티던 작가 ‘현’은 더 이상의 시달림을 피해 철원으로 낙향한다. 그러나 낚시로 소일하는 그에 대한 감시의 눈초리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한가지 낙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김 직원’과의 만남이다. 그는 ‘현’의 가슴에 지사적(志士的) 용모와 행동으로 뚜렷하게 각인된다. ‘현’은 그를 우러러보기까지 하게 된다. ‘김 직원’과의 갈등은, 8․15 해방이 되고부터 이다. 8월 16일 서울의 친구 전보를 받고 급히 상경하면서 ‘현’은 해방의 소식을 듣는다. 17일 아침에야 서울에 온 그는 재빨리 문단의 주도권을 쥐려는 여러 문인 친구들의 계획에 참여하게 되고, 그들이 좌익 계열이라는 것을 알고도 주도적으로 나선다. 비록 소련에 대한 거부감이 있고 대세에 밀려가는 자신의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영친왕을 모셔다 왕으로 섬겨야 한다는 ‘김 직원’의 논리에는 정면으로 맞서 자신의 주의(主義), 주장을 편다. ‘현’은 자신의 해방 전 문학적 성향을 반성하기도 하고, 친일 분자들의 소행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김 직원’과의 결별이다. 강원도 산읍에서 그를 만났을 때, 시골 향교를 지키며 시국에 대해 자신보다 한층 저항적인 ‘김 직원’에 대해서 ‘현’은 ‘상종(相從)한다기보다 모시어 볼수록 깨끗한 노인이요, 이 고을에선 엄격히 존경을 받아야 옳은 유일한 인격자요, 지사’로 인식했다. 그러나 해방 후 좌익 문인 단체에서 활동하면서부터 ‘현’은 ‘김 직원’을 ‘돌과 같이 완강한 머리’ 혹은 ‘이 세계사의 대사조(大思潮) 속에 한 조각 티끌처럼 아득히 가라앉아 가는 모습’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을 끝으로 이태준은 월북(越北)하고, 이후 그의 문학은 이전의 작품 경향과는 전혀 다른 생경한 구호만 나열하는 목적 문학으로 바뀌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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