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

현대 소설 작가와 작품 해설 #01 - 공무원 국어 - 문학 - 소설

Jobs9 2020. 3. 13.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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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애(1907~1943)

 

여류 소설가. 황해도 장연 출생. 1925년 평양 숭의여전에서 수학하였다.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후에 간도로 이주, 중앙 문단과 떨어져서도 꾸준히 창작 활동을 계속하여 “부자(父子)”(1932), “채전(菜田)”(1932), “소금”(1932) 등을 발표했다. 1933년 <동아일보>에 장편 “인간 문제”를 연재했다. 1942년에 귀국, 병사(病死)했다. 작품의 성격은 밝은 면보다 어두운 면, 상류 사회보다는 하층 생활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데 뛰어나다. 이외에 “지하촌”(1936), “해고”(1936), “산남(山男)”(1936) 등이 있다. 불우한 어린 시절과 문학 수업기에 받은 양주동의 복고적․중도적 국민 문학론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이 맞물려 당대 식민지 사회의 모순에 민감하게 눈을 떴고 간도 체험, 각종 사회 운동의 체험이 현실 인식을 역사 의식으로 상승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하였다. 특히 여류 작가로서의 독특한 시선으로 식민지의 질곡 속에서 이중으로 수탈 당하던 하층 여성의 문제를 작품화하는 등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였다. 대표작 “인간 문제”에서는 농민에서 노동자로, 노동자에서 다시 각성된 노동자로, 그리고 결국은 조직적 활동가로 변모해 가는 식민지의 투쟁적 인간상을 그렸고 카프의 노동 소설을 능가하는 생생한 묘사와 역사 의식을 보여 주었다. 강경애의 현실 대응 양상의 변모 과정은 30년대 사회 변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즉 미래에 대한 전망을 지닐 수 있을 때는 현실을 극복하여 새로운 전체적 삶을 추구하려 하였으며, 정세가 악화되어 전망을 상실한 경우에도 혼돈이나 불안 상태에 빠지지 않고 현실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력을 발휘한 비판적 리얼리스트라고 할 만하다.

 

▶ 인간 문제(人間 問題)

 

1. 줄거리

선비의 아버지는 용연 마을의 지주인 정덕호의 일꾼인데, 덕호의 지시로 빚을 받으러 갔다가 오히려 소작인을 도와준 죄로 덕호에게 맞아 죽는다. 어머니마저 죽자 선비는 정덕호의 집에서 몸종으로 지내다가 결국 덕호의 꾀임에 빠져 순결을 잃는다. 선비는 덕호의 집을 도망쳐 나와 자기처럼 덕호에게 당하고 서울로 간 간난이를 찾아간다. 선비를 좋아하는 남자는 고향 청년 첫째와 서울 사람 신철인데, 첫째는 덕호에게 반항하다가 그의 교묘한 술책으로 땅마저 빼앗겨 고향을 등졌고, 신철은 덕호의 딸 옥점에게 놀러 왔다가 선비의 모습에 반하게 된다. 그는 옥점이가 싫어져 부모끼리의 결혼 약속을 따르지 않고 가출하여 인천 부두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첫째를 만나 그를 각성된 노동자로 키우기 위해 많은 학습을 시킨다. 서울에 올라온 선비는 노동자로 생활하고 간난이를 만나 인천의 방적 공장에 취직하여 새 삶을 시작한다. 이 공장은 수많은 여공들을 기숙사에 수용하여 갖은 방법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는데, 이미 노동 운동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간난이는 자본가의 횡포와 노동자가 겪는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비밀 작업을 추진하다가 이 일을 선비에게 맡기고 공장을 탈출한다. 간난이가 나간 후 선비는 공장 감독의 유혹을 뿌리치며 자기 일을 다하다가 폐결핵이 악화돼 죽고 만다. 첫째는 신철을 만나 자신의 현실을 철저히 인식하고 공장 내의 노동 운동을 돕다가 부두 노동자의 파업을 성취시켰으나, 신철은 전향했고 선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결국 인간 문제는 신철과 같은 지식인에게서 구할 것이 아니라, 노동자 자신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절감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장편 소설

◎ 배경 : 시간(일제 시대) / 공간(용연읍과 서울, 인천)

◎ 경향 : 사회 고발적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문체 : 객관적 묘사체

◎ 구성

전반부 - 정덕호가 소작인을 착취하고 여성을 농락한다. 선비는 덕호에게 유린당하고 첫째는 농민 운동에 실패한다.

후반부 - 인천과 서울의 공장이 주된 무대. 간난이와 선비가 어려움 속에서 노동자 생활을 이어가고, 첫째는 부두 파업을 주도하며, 신철은 전향한다.

◎ 주제 : 일제 시대 농민과 노동자의 비참한 삶

◎ 출전 : <동아일보>(1934)

 

3. 등장 인물

◎ 선비 : 주인 정덕호에게 정조를 빼앗기고 노동자로 변신, 방적 공장에서 일하다가 폐결핵으로 죽음.

◎ 첫째 :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부두 노동자가 됨.

◎ 유신철 : 노동 운동으로 첫째를 변화시키나 전향함.

◎ 정덕호 : 지주에다 면장까지 하면서 농민을 착취하고 기만함.

 

4. 이해와 감상

1934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장편 소설이다. 연재 직전 작가는 ‘이 시대에 있어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인간이 누구며, 그 인간으로서의 갈 바를 지적하려 했다’고 밝혔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의 농민과 노동자가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았던가를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이 작품이 당시 항일 투쟁을 직접 다룰 수 없는 상황에서 농민 운동과 노동 쟁의의 문제를 정면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작품의 전반부는 농민의 참상을, 후반부는 일제를 상대로 한 노동자의 투쟁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농촌의 인물을 공장으로 옮겨옴으로써 작위성과 괴리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작품의 한계로 지적되기도 한다. 먼저, 첫 부분에 나오는 ‘원소(怨沼)’라는 못에 얽힌 전설의 암시성에 유의해야 한다. 옛날 이 마을에 인색한 부자 첨지가 살았는데 흉년으로 마을 사람들이 죽게 된 지경에도 모르는 체하여 사람들이 그 집을 습격하여 허기를 면했다고 한다. 며칠 후 관가에 잡혀 간 이들이 모진 형벌 끝에 죽자, 가족들이 첨지의 마당에 모여 쉼 없이 울어 마침내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큰 못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다. 작품의 창작 의도를 보여 주는 내용이다. 그런데도 작자는 마지막에서 수천 년 동안 풀지 못하는 인간 문제를 풀 인간은 누구냐고 묻고 있다. 한편, 선비를 주인공으로 하는 ‘여자의 일생’형 소설로 보는 관점도 있다. 여자의 비극적 일생이 개인적 결함에 기인하는지, 아니면 시대 사회적 조건에서 비롯되는지를 검토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가난한 머슴의 딸로 태어나 조실부모하고 주인에게 짓밟혀 고향을 떠나 방적 공장의 여직공으로 일하다가 폐결핵으로 죽는 것이 선비의 일생이다. 사회 고발적 요소가 강한, 목적 문학적 성격을 분명히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 지하촌(地下村)

 

1. 줄거리

칠성이는 어릴 때 홍역을 앓다가 팔다리를 제대로 못 쓰는 병신 거지로서 어머니와 동생 칠운이, 그리고 영애와 함께 살고 있다. 동냥을 하러 동네를 다니면서 아이들에게 수모를 당하지만 이웃집 눈먼 처녀 큰년이에게 동냥해 온 것 중 가장 좋은 과자와 사탕을 보낼 생각을 한다. 이튿날 호박 덩굴 사이로 큰년이가 보였으나 불러 보지도 못한다. 칠성이는 어머니가 자신을 낳았을 때, 병원으로 간 어머니에게 행한 의사의 냉대를 욕하면서 세상을 비관하게 된다. 그리고 큰년이가 돈 많은 집에 첩살이로 간다는 것을 알고 큰년이에게 찾아가 시집을 가지 말라고 사정을 하지만 큰년이는 웃을 뿐 대답이 없었다. 칠성이는 큰년이에게 옷감을 끊어주면 그녀와 그녀의 부모들의 마음이 돌아설까 하여 동냥자루를 메고 집을 나선다. 멀리까지 동냥 나가 고생 끝에 인조견을 구하여 왔으나 억수같은 비에 조 밭은 망가지고 큰년이는 부잣집으로 팔려 시집간 뒤였다. 그리고 비가 새는 방안에서 동생 영애는 죽어가고 있었다. 영애를 안고 비명을 지르는 어머니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온 칠성이는 번갯불이 번쩍이는 빗속에서 묵묵히 하늘만 노려본다.

 

2. 핵심 정리

◎ 배경 : 1930년대의 빈민촌

◎ 시점 : 3인칭 시점

◎ 주제 : 궁핍한 빈민의 순수한 사랑과 절망

 

3. 등장 인물

◎ 칠성 : 병신 거지. 동냥을 하여 식구들을 먹여 살림.

◎ 큰년이 : 칠성이가 좋아하는 눈먼 처녀. 부잣집으로 팔려 간다.

◎ 영애, 칠운 : 칠성의 동생들

 

4, 이해와 감상

“지하촌”은 강경애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1936년 <조선일보>에 발표하였다. 강경애는 이 작품에서 칠성의 참담한 생활 현실을 밀도 있게 그려내면서 당시의 어두운 사회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1930년에서 1945년 해방되기까지의 한국 문단은 여러 가지 색채와 음성이 뒤섞인 양상을 보인다. 그러므로 이 시기는 문학적 주조를 명확히 규정할 수 없다. 일제는 만주사변(1931), 지나 사변(1937)을 도발하면서 우리의 문화 전반에 걸친 탄압을 강화하였다. 그래서 작가들은 다양한 색채의 소재들을 양산하여 이에 대응하였는데, 강경애는 자신의 불우한 생활을 반영하듯 밝은 면보다는 어두운 면을, 상류 사회보다는 서민의 생활을 리얼한 수법으로 강렬하게 묘사하였다. “지하촌”은 ‘문학은 인간의 현세적 삶을 외면하고는 존재할 수 없다’는 현실 참여적인 작품으로서 사회의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을 통해 사회 개혁의 의지를 보이고 있으며, 1930년대 문학 사상 제한된 현실에서의 비판적 리얼리즘을 실현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강신재(1924~)

 

서울 출생. 1949년 <문예>에 “얼굴”, “정순이”가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안개”, “눈물” 등 가정에 얽매인 여성의 운명과 여성적 사랑의 심리를 섬세하고 감각적인 문체로 묘사한 단편을 주로 발표하였다. 1962년에 전쟁으로 인한 젊은이의 비극적인 애정을 그린 “임진강의 민들레”를 발표한 후로 장편 소설 창작에 주력했다. 그의 작품은 현대인의 애정, 도덕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재치 있고 발랄한 문체, 세련된 감각과 인물 묘사의 기교 등의 특징을 갖는다. 1959년 “절벽”으로 한국문협상을 수상했고, 1967년에는 “이 찬란한 슬픔”으로 여류 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에는 “팬터마임”, “절벽”, “젊은 느티나무”, “임진강의 민들레”, “오늘과 내일” 등이 있다.

 

▶ 임진강의 민들레

 

1. 줄거리

우태갑 氏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재산으로 평온하게 살아가고 있는 서울 필동의 부자이다. 큰딸 이화는 무언가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 의과에 진학한다. 반면, 동생 옥엽은 집안 일을 도맡아 하며 희생양과도 같은 생활을 한다. 6․25가 발발, 미처 피난 가지 못한 이화네 가족은 살아 남기 위해 공산군에 협조하는, 소위 부역자가 된다. 공산군의 뒷바라지는 옥엽이 전담하고 어머니 심씨는 인형처럼 철모르고 산다. 이화는 부정적인 태도로 공산군을 대하며 우익 청년 윤지운을 깊이 사랑한다. 전쟁 상황은 악화되어 남동생 동근은 의용군에 자원하여 열성 분자가 되고, 동훈은 동굴 속에 숨어서 도피 생활을 한다. 지운은 피난길에 올랐다가 우여곡절 끝에 서울로 오나 이화와는 영원히 이별하게 되고 만다. 그것은 지운이 떠난 후 충격을 잊으려던 이화가 의무반에 자원하여 병원에서 일하던 중에 공산군의 후퇴로 인해 강제로 이송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화는 동료 김명식을 만나 탈출 기회를 노리다가 실행에 옮긴다. 옥엽은 자신을 좋아하던 공산군 장교에게 잡혀 가다가 그의 비정한 살상 행위를 보고는 도망친다. 서울로 와 가족을 만나지만 아버지는 끌려가 학살당하고 동훈은 병자가 되어 있었다. 그 사이 동근이가 전사한 것은 아무도 모른다. 이화는 임진강까지 김명식과 함께 내려왔으나 비행기 폭격을 피하지 못한 채 허무하게 죽고 만다. 강가에서 떨어진 금빛 훈장을 민들레 꽃송이로 착각하며 죽는 순간, 그녀가 그렸던 생의 이상은 끝나고 만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장편 소설

◎ 배경 : 시간(6․25) / 공간(서울 필동을 중심으로 한 전국 각 지역)

◎ 경향 : 사실주의

◎ 시점 : 3인칭 전지적 시점

◎ 표현 : 전쟁의 참상을 담담하게 다룬 사실적 흐름을 기본으로 하되, 등장 인물들의 성격 묘사와 배경 묘사는 다분히 낭만적인 면이 짙다.

◎ 주제 : 전쟁을 겪어 나가는 인간들의 다양한 삶의 방식과 (한 여인의) 이상의 좌절

◎ 구성

발단 - 6․25 발발. 이화네 집의 평온이 깨진다.

전개 - 이화네 가족은 본의 아니게 부역을 하게 되고, 지운은 쫓기는 신세가 된다.

위기 - 지운이 도피 끝에 자취를 감추자 이화는 충격을 잊으려고 의무반에 자원하고 동근은 전사한다.

절정 - 의무반이 북으로 강제 이송되어 이화는 서울을 떠나게 되고 김명식을 알게 된다.

결말 - 옥엽은 아버지의 죽음과 가족의 몰락을 알게 되고, 김명식과 탈출하던 이화는 민들레의 환상 속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3. 등장 인물

◎ 이화 : 청순하고 지적인 의대 여학생. 강하고 뜻깊은 생을 갈구하나 비극적 죽음을 맞는다.

◎ 옥엽 : 이화의 동생. 현실적 성격으로 여자로서의 삶에 충실하며 전쟁의 혼란 속에서 온 가족을 보호한다.

◎ 지운 : 이화의 애인. 야성적이면서도 기품 있는 대학생. 이상주의자의 면모가 강하다.

◎ 동근․동훈 : 이화의 남동생들. 동근은 열성 분자가 되었다가 전사하고, 동훈은 도피 생활을 한다.

◎ 김명식 : 이화의 동료. 이화와 함께 공산당의 의무반에서 탈출한다.

◎ 우태갑 氏와 심氏 : 이화의 부모. 세상 물정에 어둡다.

 

4. 이해와 감상

1962년 전작(全作) 소설 “임진강의 민들레”로 발표. 6․25의 전쟁 상황 속에서 ‘이화’라는 여대생의 비극적 삶과 그 가족의 삶의 굴절을 보여 주는 소설이다. 전쟁 당시 좌익과 우익의 극렬한 대립상이나 부역의 실태 등을 사실적으로 그려냈고, 마지막 ‘이화’의 낭만적인 죽음의 의식을 통해 전쟁이라는 역사의 비극에 항거하는 휴머니즘적 색채가 드러난 작품이다. 이 작품은 6․25 동란의 비극을 배경으로 하여 한 가족의 변모 과정을 그리고 있다. 답답하기 짝이 없는 부모님과 좌충우돌 살아가는 남동생들, ‘이화’의 연인인 이상주의자 ‘윤지운’의 독특한 성격이 강하게 부각되고 있다. 따라서, 전쟁의 참혹상이 라든가 인간성 파괴 등의 극한성을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니라, 전쟁 상황 속에서 다양한 인간의 굴절과 변화의 모습을 드러내는 데 특징이 있다. 특히, 주인공 ‘이화’는 생활을 벗어난, 보다 이상적인 꿈에 사로잡혀 있으나 옥엽은 생활 자체를 사랑하는 차분하고 선량한 소녀로 나와 강한 대비를 보인다. 이 밖에도 윤지운이나 김명식, 옥엽을 흠모하는 공산군 대위 등도 작품의 전체 구성에 큰 비중을 차지하며 주제와 직결되는 인물들이다. 동근을 열성 분자로 만들어 전사시키는 비극적 모티브라든가 또 천하 태평으로 살던 우태갑氏와 심氏의 비참한 말로(末路), 그리고 시대 현실을 한눈에 보여 주는 공산군의 행적, ‘이화’가 겪는 의무반 생활 등은 뛰어난 이야기꾼으로서의 작가의 면모를 보여 준다. 마지막 ‘이화’의 죽음은 결국 이상이 현실에 패배하고 마는 비극성을 보여 주는데, 최후까지도 금빛 민들레의 환상 속에서 아름다우리만치 순수한 죽음을 맞는 ‘이화’는 낭만주의와 이상주의를 지향하는 작가 의식의 표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젊은 느티나무

 

1. 줄거리

‘나’(숙희)는 젊고 아름다운 어머니와 함께 시골 외할아버지 댁에서 살고 있었다. 서울 모 대학 교수(므슈 리)와 어머니가 재혼한 후 ‘나’도 재작년에 서울로 와 S촌에 있는 새 아버지의 집에서 살게 되고 새 아버지의 아들, 곧 이복 오빠가 되는 대학생 현규를 만난다. 그는 낯설어하고 어색해하는 ‘나’를 너그럽고 친절하게 대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차차 오누이 아닌 오누이의 관계에서 현규를 오빠가 아닌 이성으로 느끼며 그를 사랑하게 되고 이는 뜻하지 않은 이 곳 생활의 고통이 되었다. 현규에 대한 사랑에 죄의식을 느낄 필요는 없었지만, 그것은 엄마와 므슈 리, ‘나’, 현규 모두의 파멸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사이가 혈족이 아닌, 단지 스물두 살의 청년과 열여덟 살의 계집아이일 뿐이라는 진실을 부정해야만 하는 현실에서 ‘나’는 고뇌하게 된다. 그러던 중 ‘나’는 ‘나’와 지수 사이를 오해하여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현규에게서 ‘나’에 대한 현규의 사랑을 확인하고 기쁨을 느낀다. 그들은 행복감과 고뇌를 동시에 안은 채 오누이 관계에서 연인 관계로 깊어 간다. 그러나 갑자기 엄마가 므슈 리를 따라 미국으로 가게 되어 현규와 둘이서만 집에 있게 될 상황에 놓이자 ‘운명적 사건’을 예감한 ‘나’는 고민 끝에 서울을 떠나 시골 할머니 댁으로 간다. 그 곳에서 절망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현규가 찾아와 서로 진실된 감정을 지닌 채 서로를 더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서 미래를 약속하는 마음으로 각자 현재의 길을 걷자고 약속한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약속하고, 그가 떠난 후 젊은 느티나무를 껴안으며 이제 그를 더 사랑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순수 소설

◎ 배경 : 시간(현대) / 공간(서울 중심에서 떨어진 S촌과 느티나무가 있는 산골)

◎ 경향 : 낭만주의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어조 : 여성적이고 서정적인 부드러움

◎ 표현 : 등장 인물의 내면 심리와 외부 사건을 적절히 조화시켜 작품의 예술성을 살림. 오빠에게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내적 독백 형식으로 서술함.

◎ 구성

발단 - 나는 어머니의 재혼으로 인해 이복 오빠인 현규를 만나게 된다.

전개 - 나는 현규를 이성으로 느끼며 사랑의 감정을 갖기 시작한다.

위기 - 현규 친구로부터 나에게 온 연애 편지에 대해 현규가 질투하는 모습을 보인다.

절정 - 괴로운 마음을 안고 시골로 내려간 나에게 현규가 찾아온다.

결말 -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먼 훗날을 약속하며 각자 현재의 길을 가기로 다짐한다.

◎ 주제 : 첫사랑의 열정과 순수. 현실의 굴레를 극복하고 순수한 사랑을 성취하는 청춘 남녀의 아름다운 모습

◎ 출전 : <사상계>(1960)

 

 

3. 등장 인물

◎ 나(숙희) : 18세의 소녀로 주인공이며 서술자. 이복 오빠 현규를 사랑하는 순수한 18세의 여고생. 시골 외가에서 후처가 된 어머니를 따라 상경함. 이복 오빠(현규)와의 근친 상간이라는 윤리적 갈등을 겪는 등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고뇌함.

◎ 그(현규) : 22세의 대학생. 숙희의 이복 오빠로서 건강하고 세련된 젊은이. 이복 동생 숙희를 이성(異性)으로 느끼며 사랑에 빠져 고민하지만 윤리적 갈등을 순수한 의지로 극복한다.

◎ 엄마 : 젊어서 남편과 사별하고 지난날 혼담이 있었던 므슈 리와 재혼한다.

◎ 므슈 리 : 현규의 아버지이자 숙희의 새 아버지. 성격이 유(柔)하고 과묵한 경제학 교수

◎ 지수 : 현규의 친구이며 장관의 아들. 숙희를 좋아하여 연애 편지를 보낸 일로 현규의 질투심을 불러일으킨다.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의 기본 골격은 ‘만남’과 ‘떠남’, 그리고 ‘만남의 가능성’으로 요약된다. 열여덟 살의 민감한 감수성을 지닌 숙희는 이복 오빠로 만난 현규에게서 ‘비누 냄새’처럼 상큼하고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그것은 사회적으로 금지된 사랑이기에 그의 곁을 떠난다. 현규가 숙희를 찾아가서 이들은 또 만나지만, 자신들의 사랑을 지속시키기 위해 다시 떠날(헤어질) 것을 약속한다. 그것은 또 다른 만남을 위한 떠남이며, 그래서 기쁨을 품은 슬픈 약속인 것이다. ‘젊은 느티나무’는 두 연인의 약속을 듣는 증인이 되며, 꿈을 잃지 않는 젊음을 상징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작가는 숙희와 현규의 애정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그들의 감정의 흐름을 산뜻한 감각을 지닌 세련된 문장으로 표현함으로써, 이런 소재의 작품이 흔히 보이기 쉬운 신파조(調)의 한계성을 극복하고 있다. 이 작품은 사회 규범상 용납될 수 없는 사랑에 빠진 청춘 남녀의 갈등을 윤리적 차원에서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인물들이 그러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해소해 가는가에 초점을 두고, 사회 규범을 초월하는 사랑의 순수성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끝까지 맑고 청순한 사랑의 감정을 깨뜨리지 않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현실의 아픔을 현명하게 받아들이는 숙희와 현규의 의지가 감동을 줄 만하다.

 

 

강용준(1931~)

 

황해도 안악 출생. 진남포 공업전문학교를 거쳐 평양 사범대에 재학 중 6․25 동란으로 북괴군으로 참전하여 거제도, 광주 등지에서 3년 간 포로 생활. 1960년 단편 “철조망”으로 제1회 <사상계> 신인 문학상 수상하며 등단함. 주요 작품으로는 “악령”, “태양을 닮은 투혼”, “밤으로의 긴 여로”, “광인 일기”, “입소기”, “흑염(黑焰)”, “비가(悲歌)”, “철조망” 등이 있다. 그는 전후의 혼란한 사회 상황을 생생한 체험을 통해 그려내면서 인간의 극한 상황을 휴머니즘적으로 다룬 작가로 평가된다. 작품 속에 설정한 피비린내 나는 극한 상황에서 인간은 마치 자기의 생명력을 시험하듯이 거대한 바위덩이와도 같은 운명 앞에 부딪쳐 마침내 유리 그릇처럼 깨어지고 만다. 그것은 곧 운명에 대한 도전이며 생명에 대한 의지력의 확인이다. 대부분의 소설들이 피 어린 전쟁터와 비인간적인 포로 수용소를 무대로 하고 있는 것도 극한 상황에서의 인간의 의지력을 실험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자기 시대를 발언하는 작가의 한 사람으로서 문학이란 이 시대의 고통을, 불의를 정의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온갖 악을, 혹은 가난한 사람들이 받는 부당한 학대를, 또한 죽음을 증언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 철조망

 

1. 줄거리

주인공 민수는 쿠데타를 일으키려다 실패하여 좌익 포로들에게 체포당하게 된다. 얼마 전 그는 포로 수용소 내의 적색 캠프를 전복시키고자 기도했던 것이다. 그는 포로 수용소 비밀 지하실에서 감금당한 채 쿠데타 동조자를 캐내려는 좌익 포로들로부터 심한 고문을 받게 되지만, 민수는 몸으로 대치한다. 민수에게는 그들이 넘겨짚는 그런 배후 조종자랄 것이 뚜렷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목숨을 내걸고 내세울 만한 이념 같은 것도 없었다. 다만 좌익 포로들이 수용소 내에서 세력을 장악하고 나서 일삼는 천편일률적인 정치 교양 교육에 불만이 있었던 것이다. 민수는 ‘영명한 지도자’로부터 시작하여 ‘간악한 미 제국주의자들’로 끝나는 소위 그들의 교양 교육이란 것에서 아무런 인간적 감화를 느낄 수 없었다. 민수가 쿠데타를 기도한 또 하나의 이유는 좌익 포로들이 세력을 잡고 나서부터 일기 시작한 캠프 내의 공포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당성(黨性)을 높이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좌익 이념에 동조하지 않는 인물들을 마구 처형했다. 민수와 그의 동지들도 언제 그들로부터 정치 학습의 본보기로 처형될 지 모르는 위기에 처해 있었다. 고문은 계속되었다. 만약 탈출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살해당할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을 깨달은 민수는 보초가 잠든 사이를 틈타 고문으로 탈진한 몸을 추스려 철조망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철조망에 손발이 찢어져 피가 흘러 내렸다. 그는 무엇 때문이라는 뚜렷한 의식도 없이 그저 본능적으로 삶을 찾고자 필사의 탈출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민수는 결국 보초들의 총에 맞아 죽고 만다.

2. 핵심 정리

◎ 시점 : 3인칭 전지적 시점

◎ 배경 : 6․25 동란 때의 포로 수용소

◎ 주제 : 극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의 삶을 추구하려는 파토스적 의지

 

3. 등장 인물

◎ 민수 : 자기 목숨을 버리면서도 쿠데타 동조자들을 배신하지 않는 정의로운 인물

 

4. 이해와 감상

“철조망”은 1960년 제1회 <사상계> 신인 문학상 수상작으로서, 전쟁 문학 계열의 단편 소설이다. 우리 문단은 6․25 전쟁으로 우리 민족이 입은 물심 양면의 피해를 다룬 전쟁 소설을 60년대 초반까지 많은 양으로 작품화하였는데, 작가의 생생한 체험을 통한 증언으로 인간애에서 유발되는 향수를 밀도 있게 그려냄으로써 전쟁의 아픈 상처를 어느 작품보다도 적나라하게 보여 준 강용준의 “철조망”도 그 중의 하나이다. 강용준의 전쟁 소설은 단순한 소재주의를 벗어나 소박한 감상주의를 극복하고 있다. 그는 객관적인 안목에서 전쟁의 아픔을 비판하고 전쟁의 비극성을 대담히 고발하고 있으며 휴머니즘의 주제 의식을 강조하는 동시에 전후의 혼란된 부정 부패와 전쟁의 비극을 작품화하고 있다.

 

 

계용묵(1904~1961)

 

소설가. 평북 선천(宣川) 출생. 어려서 한학을 배우고, 1928년에 도일하여 도요[東洋]대학 동양학과에서 수학하였다. 1927년 단편 “최서방(崔書房)”을 <조선문단(朝鮮文壇)>에, 1928년에 “인두지주(人頭蜘蛛)”를 <조선지광(朝鮮之光)>에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1935년에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백치 아다다”를 <조선문단>에 발표하여 주목을 끌었다. 그 후 “청춘도(靑春圖)”, “유앵기(流鶯記)”, “신기루(蜃氣樓)” 등을 발표하였고, 일본의 <매일신문>(1942. 2. 21)에 “일장기(日章旗)의 당당한 위풍”이란 친일적인 수필을 발표한 바 있다. 광복 후에는 “별을 헨다”, “바람은 그냥 불고”,“물매미” 등을 발표하였다. 원래 과작인 데다 콩트 풍의 단편만을 썼으나, 짧은 것일수록 기교를 중시하고 예술적인 정교한 맛이 풍부하다. 대체로 그의 작품은 인간이 가지는 선량함과 순수성을 옹호하면서 인간 존재와 삶의 의미를 추구하였다. 그러나 현실과의 적극적인 대결을 꾀하지는 않았다. 갈등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담담한 세태 묘사에 머물렀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수필집으로는 “상아탑(象牙塔)”(l955)이 있다.

 

▶ 백치 아다다

 

1. 줄거리

벙어리인 아다다는 말을 할 때 ‘아다다’라는 소리만 낼 수 있기 때문에 아다다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아다다는 벙어리라는 결점 때문에 스물 여덟 살에 돈이 없어서 장가를 못 가고 있는 사람이 있는 집으로 시집을 가서 죽어라고 일을 하였지만 돈이 어느 정도 생기게 되자 남편은 그녀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국 아다다는 5년 만에 집으로 쫓겨오게 되었고 돌아간 집에서도 위로 받기는커녕 어머니한테 구박만 받는다. 아다다가 사는 마을에는 아다다를 좋아하는 수롱이 살고 있었는데, 아다다를 좋아하는 수롱과 함께 둘은 마을에서 도망쳐 신미도라는 섬으로 가서 생활을 하게 된다. 수롱은 가지고 있는 1천 5백 냥을 아다다에게 보여주면서 밭을 사자고 말하지만 아다다는 돈 때문에 자신을 버린 전 남편을 생각하게 되고 그 일로 돈을 보고도 좋아하지 않는다. 전 남편에게 쫓겨난 일이 다시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쫓겨난 일을 생각하고 있던 아다다는 그 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에 바닷가로 나와 수롱이 가지고 있는 돈 뭉치를 모두 던져 버렸다. 한편 집에서 돈이 없어진 것을 알고 아다다를 찾아서 쫓아온 수롱이는 이미 바다 가운데로 떠내려 간 돈 뭉치를 주우려고 했지만 수롱은 수영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바다 멀리 떠내려가고 있는 돈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화가 난 수롱이는 자신에게 혼이 날까 봐 벌벌 떨고 있는 아다다를 발로 차서 바다에 빠뜨리고 역시 수영을 못하는 아다다는 물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1930년대) / 공간(평안도 어느 마을과 신미도)

◎ 경향 : 인생파적 경향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구성

발단 - 질그릇을 깨뜨린 뒤 어머니의 구박을 받으며 친정에서 쫓겨남.

전개 - 5년 전 시집에서 쫓겨온 장면을 회상하며 수롱이를 찾아감.

위기 - 수롱이와 신미도로 가서 살림을 시작하는데 수롱이가 밭을 사겠다고 나섬.

절정 - 밭 살 돈 150원을 바닷물에 던짐.

결말 - 수롱이가 아다다를 죽임.

◎ 제재 : 물질적 풍요와 인간적 행복

◎ 주제 : 물질적 풍요보다는 정신적 행복을 추구하는 한 여인의 삶과 비극적 운명

◎ 출전 : <조선문단>(1935)

 

3. 등장 인물

◎ 아다다 : 김 초시의 딸로서 벙어리이며 백치 여인. ‘확실이’라는 이름이 있으나 ‘아다다’ 소리만 발음되기에 붙여진 이름. 진실한 삶의 행복을 추구하다 끝내 물에 빠져 죽는 비극적 인물

◎ 수롱 : 가난한 노총각. 아다다를 꾀어내서 신미도에 가서 함께 삶. 밭을 살 돈을 물에 모두 버렸다고 해서 아다다를 바다에 밀어 넣어 죽임.

◎ 어머니 : 아다다의 어머니로서 아다다를 구박하며 천대함.

 

4. 이해와 감상

흔히 계용묵을 ‘인생파 작가’라고 하는데 그의 문학은 물질적 소유욕이나 이념 때문에 상실해 버린, 또 상실해 가고 있는 인간성을 회복하는 데 지향점을 두고 있다. “백치 아다다”에서도 물질적 소유를 지향하고 있는 수롱이의 삶과 진실한 행복을 희구하는 아다다의 삶을 통해 인간의 참다운 가치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하겠다. 이 작품은 작가가 일본 수감을 마치고 오랜 휴식 후에 발표된 것이라고 한다. 비록 선천적으로 천치에다가 무슨 일이든지 실수만 범하는 병신이라고 하지만 돈으로 사람을 사고 파는 물질적인 세계를 벗어나 보다 인간이 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에는 죽음으로 이 소설은 끝맺음을 하게 된다. 이 글을 쓴 계용묵은 자신의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계용묵의 고향 주변에는 벙어리인 여자가 살고 있었고 글 중에 등장하는 신미도라는 섬은 갈매기의 군집처로 유명한데 그 섬도 계용묵이 살고 있는 고향 근처에 존재했다고 한다. ‘확실이’라는 이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벙어리이기 때문에 ‘아다다’란 별명이 오히려 이름이 되어 버린 비극의 여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벙어리이며 백치이기에 구박과 천대를 받으며 살지만 정신적 행복을 추구하며 살다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이 작품은 소유와 존재, 즉 물질적 풍요와 인간적인 삶 중 어느 것이 더 소중한 행복의 근거가 되는 것인가를 극명하게 대립시켜 다루고 있다. 수롱이로 대변되는 물질을 향한 소유의 집념과 ‘아다다’로 대변되는 존재 자체에 대한 순수한 집념이 선명하게 제시된다. 그러나 ‘아다다’는 운명의 굴절 속에서 끝내 죽음이라는 비극에 이르게 된다. 백치인 아다다이기에 ‘죽음’의 결말 처리는 더욱 강한 비극성을 드러낸다. 다만, 이 극단적 대립 속에서 문제로 남게 되는 것은 물질 중심의 삶도 궁극적으로 행복할 수 없고, 한편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질 소유마저도 거부하는 존재 중심, 정신 중심의 삶도 궁극적으로 행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결국, 이 소설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진정한 가치는 과연 있는 것인가, 또 있다면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물질 중심의 삶이 가지는 가치는 무엇이며, 정신 중심의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 하는 미해결의 질문 속에 독자들을 서 있게 만든다. 참고로 계용묵에 관한 일화를 소개하자면, 이 글 위에 작가가 일본 수감을 마치고 “백치 아다다”를 썼다고 나와 있는데 1943년 8월에 그 시대 유명 작가라면 누구든 한 번쯤 들었을 법한 ‘일본 천황 불경 혐의’라는 죄목으로 2개월 간 수감된 적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고의가 아니고 사고였다. 누군가가 이광수에게 창씨 개명의 부당함을 우편으로 투고를 했는데, 이것을 일본이 보고서 우편의 주소인 서대문구의 모든 작가들을 수감한 것이다.

 

▶ 병풍에 그린 닭이

 

1. 줄거리

가난한 집안에 시집 온 박씨는 어리숙한 남편과 시어머니를 위해 갖은 일을 마다 않고 살림을 꾸려 나간다. 그러나 10년이 지나도록 아기가 생기지 않자, 남편과 시어머니로부터 갖은 구박과 외면을 당하게 된다. 결국, 남편은 첩까지 얻어 조강지처인 박씨를 멀리하게 된다. 그러나 박씨는 이에 굴하지 않고 아기를 갖기 위해 굿을 하려고 시어머니에게 말했다가 모욕만 당한 후 자기 재산을 털어서 굿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남편과 시어머니의 크나큰 오해로 인해 결국은 그 집에서 쫓겨나게 된다. 시집에서 쫓겨 나와 갈 곳이 없어진 박씨는 하룻밤 신세를 지기 위해서 아는 집을 찾아 가다가 이내 생각을 고쳐 먹고 “아무리 구박을 하더라도 그 집 귀신이 되어야겠다”며 다시 시집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리고 양초와 백지를 사서 뒷산 서낭당으로 가서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행복해지기를 빈 후, 시집 문전에 도착해 보니 남편의 방에는 불이 켜져 있었으나 오직 박씨의 방만은 어둠에 휩싸여 주인이 돌아와 주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시점 : 3인칭 전지적 시점

◎ 주제 : 전통 사상에 얽매인 한 여인의 불행한 일생. 한국 전통 사상에 뿌리 박힌, 남아 선호와 순종의 미를 따르는 한 여인의 일생

 

3. 등장 인물

◎ 박씨 : 숙명에 순응하면서 갖은 고초를 이겨 나가는 묵묵한 한국 여인상의 표본적 인물

 

4. 이해와 감상

1936년 <여성>지에 발표된 이 작품은 한국의 전통적인 사고 방식의 문제점을 다룬 작품이다. 즉, 병풍에 그린 닭이 홰를 치고 우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시가(媤家)를 떠나지 않아야 한다는 주인공 박씨의 이야기이다. 우리나라 전통 사상인 남녀 차별에 기본을 둔 이야기인데, 여자로 태어났다고 하여 무조건 순응하고 복종하며 살아가야 하는 한국 여성들의 비극을 매우 적나라하게 묘파하고 있다.

 

 

김기진(1903~1985)

 

충북 청원 출생. 호는 팔봉(八峰). 일본 릿교(立敎) 대학 영문학부 수학. 1923년부터 박영희와 함께 계급주의 문학 그룹인 <파스큘라>를 결성하여 활동함. 그 후 <카프(KAPF)>에서 주도적 역할을 함. 1923년에 시 “애련모사”를 <개벽>에 발표하면서 등단. 1924년 “붉은 쥐”를 <개벽>에 발표함. 그는 1930년대 중반까지 경향적인 작품 세계에 빠졌으나, 그 후 전향하여 해방 후에는 언론계에 종사하며 역사 소설에 전념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심야의 태양”, “최후의 심판”, “통일천하”, “초한지” 등이 있다.

 

▶ 붉은 쥐

 

1. 줄거리

주인공 박형준은 도시 빈민가의 셋방에 사는 무직의 지식인이다. 그는 이곳에서 식민지 치하의 자본주의 문명 사회의 모순을 깨닫는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피 묻은 죽은 쥐를 보고, 모순된 사회 속에서 행세하고 다니는 ‘점잖은 도둑’들 속에서 살기 위한 생의 철학을 쥐가 사는 방법에서 터득하고 절도 행위를 하다가 쫓아오는 순사를 피해 달아난다. 그러나 뒤에서 달려오던 소방차에 치여 붉은 피로 길바닥을 물들이고 죽는다. 그 이튿날 서울 안의 신문은 이 일에 거짓 기사를 싣는다.

 

2. 핵심 정리

◎ 배경 : 빈곤한 시대(1920년대)의 소외된 하층민의 삶

◎ 주제 : 자본주의의 모순과 관념적 허무주의의 극복

 

3. 등장 인물

◎ 박형준 : 무직의 지식인

◎ C : 형준의 친구

 

4. 이해와 감상

“붉은 쥐”는 <개벽> 5호(1924)에 발표된 김기진의 첫 소설이다. 3․1운동 후 급변하는 사회상에 따라 식민치하의 빈곤한 민족 현실을 소재로 삼기 시작했는데, 이 작품은 한 전환기의 첫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쥐’는 형준이가 관념에서 현실로, 다시 현실에서 새로운 삶의 탈출로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어 준다. ‘쥐’가 생명을 걸고 활동하는 생활들은 그대로 형준의 행동 모형이 된다. 즉, 운명이나 윤리의 껍질을 벗고 ‘쥐’가 살아가는 본능의 세계로 퇴화함으로써, 치열한 생존 경쟁에 적응하여 살아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붉은 쥐’란 생의 저변에서 쥐처럼 사는 평가 절하된 인간의 생존 수단을 형상화한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경향파적 계급주의를 표방하는 김기진의 대표작으로서, 식민지 현실을 극복하려는 지식인의 적극적 삶을 형상화하지 못하고, 무의미하게 죽어 가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식민지 지식인의 허상을 보여 주고 있다.

 

 

김남천(1911~1953)

 

본명 효식(孝植). 평남 성천 출생. 평양고보를 졸업하고 도쿄[東京] 호세이[法政] 대학 재학 중이던 1929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 : KAPF)에 가입하였고, 안막(安漠)․임화(林和) 등과 함께 1930년 카프 동경 지부에서 발행한 <무산자(無産者)>에 동인으로 참여하였다. 1931년 귀국하여 카프의 제2차 방향 전환을 주도하였으며, 여기서 김기진(金基鎭)의 문학 대중화론을 비판, 볼세비키적 대중화를 주장한 바 있다. 그 후, 1931년과 1934년 카프 제1․2차 검거 사건 때 체포되어 복역하였으며, 1935년에는 임화․김기진 등과 함께 카프 해소파(解消派)의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카프 해산기를 전후하여 제기된 사회주의 리얼리즘 논쟁에서는 이 창작 방법이 러시아 현실과는 다른, 조선적 특수 상황에는 부적당하다고 주장하여 박승극(朴勝極)․한효(韓曉)와 대립하였으며, 여기에서 더 나아가 그 이론과 실제를 한국적 상황에서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를 모색하면서, 모랄론․고발 문학론․관찰 문학론 및 발자크 문학 연구에까지 이르는 일련의 ‘리얼리즘론’을 전개하였다. 8․15광복 직후에는 임화․이원조(李源朝) 등과 조선 문학 건설 본부를 조직하였고, 1946년에는 조선 문학가 동맹 결성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이후 같은 단체의 서기장을 맡아 기관지 <문학>을 발행하는 등 활발한 정치 활동을 하였다. 1947년 말 월북하여 해주 제일 인쇄소의 편집국장으로서 남로당의 대남 공작 활동을 주도하였으나, 1953년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작으로 장편 “대하(大河)”(1939), 중편 “맥(麥)”(1941), “경영(經營)”(1940), “처를 때리고” 등이 있다.

 

▶ 대하(大河)

 

1. 줄거리

갑오 농민 전쟁 당시 군대를 따라다니며 장사를 하여 돈을 모은 박성권은 성천 고을에 정착한 후에도 고리 대금을 통해 재산을 늘려 나간다. 그에게는 아들 넷과 딸 하나가 있는데 그 중 3남 형걸은 첩의 자식이다. 큰아들인 형준은 성혼하여 집안일 전체를 관장하는 일을 배우고 있고, 형걸의 동갑 내기 형인 형선이는 정라수의 딸 보부와 혼인을 한다. 그러나 형걸은 속마음으로 좋아하던 보부가 형수(兄嫂)가 되자, 방황하다 자기 집 여종인 쌍네와 사랑을 나눈다. 큰아들 형준은 결혼 생활에 싫증을 느껴 쌍네에게 욕정을 풀려고 그녀의 집으로 가던 중, 방에서 나오는 형걸을 보고 그 사실을 아버지에게 알린다. 이 일은 집안 전체에 알려지게 되고 박성권과 첩 윤씨는 형걸의 혼사를 서두른다. 한편, 형걸은 동명 학교 교사로 부임해 온 문우성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전도하러 나갔던 형걸은 기생 부용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두 사람은 팔에 각자의 이름을 새기며 사랑을 맹세한다. 형준은 쌍네를 잊지 못하여 다시 찾았다가 쌍네의 박대(薄待)에 분개하여 쌍네와 형걸의 관계를 쌍네의 남편인 두칠에게 말해 버린다. 두칠은 박성권 댁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쌍네는 두칠이를 따라 원산으로 갈 것인지, 그에게서 벗어나 새로운 생활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다가 형걸이를 만난다. 그러나 부용에게 반해 있는 형걸이 그녀를 무심하게 대하자 죽을 결심으로 강 쪽으로 뛰어 간다. 여러 가지 문제로 가슴이 답답한 형걸은 부용의 집을 지나치다 아버지와 부용의 목소리를 듣는다. 우는 부용을 바라보며 형걸은 새로운 삶을 위해 오늘 밤 안으로 이 고장을 떠날 것을 결심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세태적 가족 소설

◎ 배경 : 시간(개화기) / 공간(평양에서 원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어느 마을)

◎ 시점 : 3인칭 전지적 시점

◎ 의의 : 1930년대 후반, 문학의 침체에 대응해 이를 타개하기 위한 노력으로, 장편 소설론과 더불어 나온 창작적 성과

◎ 주제 : 박성권 일가(一家)를 중심으로 한 여러 가족의 변화 양상과 당대의 세태

◎ 구성

발단 - 박성권이 20년 전 갑오 난리통에 피난을 가지 않고 돈을 벌어 두무골로 이사온다.

전개 - 형걸은 형선과 보부와의 혼례로 방황하다가 쌍네를 겁탈하려 한다.

위기 - 형준의 고자질로 형걸은 윤씨의 주의를 받고, 문 교사의 영향으로 교회를 다닌다.

절정 - 형걸은 부용으로 인해 갈등하고, 쌍네의 사랑 고백을 받는다.

결말 - 형걸은 부용의 집에서 아버지 박성권을 발견하고는 이 고장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3. 등장 인물

◎ 박성권 : 갑오 농민 전쟁을 틈타 크게 치부한 인물로 냉혹하고 악착같은 성격의 소유자. 그러나 의젓한 고을 유지로 변모한다.

◎ 형걸 : 박성권의 서자(庶子). 보부를 형에게 빼앗기고 쌍네와 관계를 갖지만 기독교에 귀의하여 자신의 잘못을 회개한다.

◎ 형준 : 박성권의 정실 자식으로 아버지를 닮아 다소 타락한 면이 보인다.

◎ 쌍네 : 가난한 농가의 딸. 그의 아버지에 의해 박성권의 노비로 팔린 여인. 억지로 결혼하고 성적(性的)으로 방황한다.◎ 문우성 : 형걸의 정신적 지주(支柱)

 

4. 이해와 감상

1939년에 발표된 전작(全作) 장편 소설. 제1부만이 단행본(인문社, 1939)으로 간행된 채 그 속편이 발표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미완성의 작품이다. 1907~1910년을 시대 배경으로, 평안도 성천(成川) 두무골에 사는 박성권 가족들의 상호 관계와 그 시대적 변이 과정(變異過程)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삼대”, “태평천하”와 함께 1930년대 가족사 소설을 대표한다. 줄거리에서 보았듯이 핵심 사건은 박 참봉(박성권)과 그 아들을 중심 축으로 한 애증(愛憎) 관계이다. 쌍네를 가운데 놓고 형준과 형걸이 대결하며, 보부를 사이에 두고 형선과 형걸이 줄다리기를 벌인다. 심지어 기생 부용과 박 참봉 부자(父子)가 애정의 삼각 관계를 이룬다. 그러나 이 작품을 단순히 치정(癡情)을 둘러싼 연애 소설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가족 이야기를 통해 식민지 사회의 구체적 모습을 보여 주려 하고 있다. 먼저, 박성권을 중심으로 한 밀양 박씨 일가의 변화는 주로 상승적인 가족사에 해당하는데, 이에 대조되는 두 개의 에피소드를 삽입함으로써 또 다른 변화 양상을 보여 준다. 즉, 같은 밀양 박씨 문중에서 박이균(朴利均) 형제의 집안이 누대 토호의 영화를 누리다가 결국은 몰락하는 모습과 파평 윤씨 윤 초시네의 쇠퇴(특히, 윤 초시의 딸 탄실은 빚 때문에 박성권의 첩이 된다)가 그것이다. 말하자면, 시대의 변천에 동화하면서 가족의 번영을 꾀하여 물질적인 부를 누리게 되는 박성권 집안의 상승적 가족사와 함께 또 다른 가계(家系)의 몰락을 그려냄으로써 인간사의 융성과 쇠퇴를 함께 다루고 있는 셈이다. 물론, 당시의 풍속을 충실하게 묘사한 세태 소설에 불과하다는 견해도 있다. 평양에서 원산 가는 길목의 고을에서 박성권이 돈 모으고 여자를 차지하고 격에 맞지 않게 양반 행세를 하고 일본인 상점에는 물건이 잔뜩 쌓이고 신식 학생들이 삭발을 하는 등의 구경거리를 제공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근대 지향적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박 참봉이 자본주의 시대로의 변화에 맞춰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거나, 첩의 소생 형걸이 서자 신분에 불만을 품고 새로운 학문에 관심을 가진다거나, 기독교가 근대 사상을 전파하는 데 중요한 몫을 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어쨌든 “대하(大河)”라는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우리 근대사의 큰 흐름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다양하고도 깊이 있는 접근에서 이 작품의 의미를 심화시켜 주고 있다.

 

 

김동리(1913~1990)

 

경북 경주 출생. 본명 시종(始鍾). 경주제일교회 부설 학교를 거쳐 대구 계성 중학에서 2년 간 수학한 뒤, 1929년 서울 경신 중학(儆新中學) 4년에 중퇴하여 문학 수련에 전념하였다. 박목월(朴木月)․김달진(金達鎭)․서정주(徐廷柱) 등과 교유하였다. 1934년 시 “백로(白鷺)”가 <조선일보> 신춘 문예에 입선함으로써 등단하였다. 이후 몇 편의 시를 발표하다가 소설로 전향하여 1935년 <중앙일보> 신춘 문예에 “화랑의 후예”, 1936년 <동아일보> 신춘 문예에 소설 “산화(山火)”가 당선되면서 소설가로서의 위치를 다졌다. 1947년 청년문학가협회장, 1951년 동 협회 부회장, 1954년 예술원 회원, 1955년 서라벌 예술대학 교수, 1969년 문협(文協) 이사장, 1972년 중앙대학 예술대 학장 등을 역임하였다. 1973년 중앙대학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1981년 4월 예술원 회장에 선임되었다. 순수 문학과 신인간주의(新人間主義)의 문학 사상으로 일관해 온 그는 8․15광복 직후 민족주의 문학 진영에 가담하여 김동석(金東錫)․김병규와의 순수 문학 논쟁을 벌이는 등 좌익 문단에 맞서 우익 측의 민족 문학론을 옹호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때 발표한 평론으로, “순수 문학의 진의”(1946), “순수 문학과 제3세계관”(1947), “민족 문학론”(1948) 등을 들 수 있다.

작품 활동 초기에는, 한국 고유의 토속성과 외래 사상과의 대립 등을 신비적이고 허무하면서도 몽환적인 세계를 통하여 인간성의 문제를 그렸고, 그 이후에는 그의 문학적 논리를 작품에 반영하여 작품 세계의 깊이를 더하였다. 6․25전쟁 이후에는 인간과 이념과의 갈등을 조명하는 데 주안점을 두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소설집으로 “무녀도(巫女圖)”(1947), “역마(驛馬)”(1948), “황토기(黃土記)”(1949), “귀환장정(歸還壯丁)”(1951), “실존무(實存舞)”(1955), “사반의 십자가”(1958), “등신불(等身佛)”(1963), 평론집으로 “문학과 인간”(1948), 시집으로 “바위”(1936), 수필집으로 “자연과 인생” 등이 있다. 예술원상 및 3․1문화상 등을 받았다.

 

▶ 까치 소리

 

1. 줄거리

‘나’(나레이터)는 서점에서 “나의 생명을 물러 다오”란 책을 구입했다. 그것은 ‘살인자의 수기’란 부제(副題)가 붙어 있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아들을 전쟁터에 보낸 어머니가 아들에게서 소식 오기를 간절하게 기다리다가 천식 증세가 악화되어 가고 있다. 어머니의 기침 소리가 날 때마다 까치가 사납게 운다. 한편, 전쟁터에 나갔던 ‘나’(봉수)는 정순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식지와 장지에 자해를 가하여 제대를 하고 귀향한다. 그러나 ‘내’가 돌아왔을 때, 유일한 희망이었던 정순은 ‘내’가 전사했다는 상호의 거짓말에 속아 상호와 결혼해 버린 뒤였다. ‘나’는 정순의 오빠를 만나서 자초지종을 알고자 하나 아무런 소득 없이 헤어진다. 주막 앞에서 상호를 만나게 되고 그와 담판을 짓지만, 정순을 만나지 못한다. 상호의 동생인 영숙이를 통하여 ‘나’의 뜻을 정순에게 보내지만 시간만 흐를 뿐이다. 하루는 그녀를 만나 ‘내’ 목숨의 의미를 설명하며 용기를 다하여 재결합을 설득하지만 끝내 좌절하고, ‘나’의 절망과 분노는 극에 달한다. ‘나’를 연모해 오던 영숙은 오빠 상호의 행위에 죄의식을 느끼고, ‘나’의 고통을 위로하다가 몸을 허락한다. 이때 까치가 운다. 어머니가 가장 모진 기침을 터뜨릴 때 울던 바로 그 ‘저녁 까치’ 소리. ‘나’는 알 수 없는 전율을 느끼면서 그녀(영숙)를 목 졸라 죽인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액자 소설

◎ 배경 : 시간(6․25 무렵) / 공간(시골의 어느 마을)

◎ 성격 : 토속적, 샤머니즘적, 신비적, 원형 상징적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내부 이야기)

◎ 주제 : 인간의 삶에 내재(內在)하는 운명의 힘과 그로 인한 절망과 비극

◎ 구성

발단 - ‘나’(봉수)가 제대하여 돌아와 어머니의 병세와 정순의 결혼 사실에 절망함.

전개 - 절망과 좌절 속에 정순의 오빠와 상호를 만남.

위기 - 정순을 만나 재결합을 설득함.

절정․결말 - 영숙이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나’를 위로하다가 몸을 허락한다. ‘나’는 그녀를 목 졸라 죽임.

 

3. 등장 인물

◎ 나 : 내부 이야기의 전달자

◎ 나(봉수) : 내부 이야기의 주인공. 정순에 대한 그리움으로 자해(自害)를 하여 제대함. 정순의 결혼으로 분노와 절망 끝에 살인을 하게 됨.

◎ 정순 : 봉수와 혼인을 언약한 여자. 상호의 속임수에 빠져 그와 결혼함. 운명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는 인물

◎ 옥란 : 봉수의 여동생

◎ 어머니 : 까치가 울 때마다 기침이 깊어짐. 절망 속에 죽음을 재촉하는 인물

◎ 상호 : 봉수의 친구. 징병을 기피하고 속임수로 정순과 결혼한 정의롭지 못한 인물

◎ 영숙 : 상호의 여동생으로 봉수를 사모함. 봉수를 동정하여 자기를 희생하나 봉수의 발작으로 목숨을 잃음.

 

4. 이해와 감상

1966년 <현대 문학>에 발표된 단편 소설. 까치 소리와 노모(老母)의 발작, 그리고 주인공 봉수의 살인으로 이어지는 이 작품은 아무 관련이 없는 사건들이 현실 속에서 필연적 ‘운명’처럼 전개되도록 짜여져 있다. 그런 가운데 전쟁에서의 죽음의 불안과 삶에의 욕구 문제가 내부에 숨어 있다. 주인공 ‘나’(봉수)의 수기를 ‘나’가 입수하여 발표하는 형식의 액자(額子) 소설이다. 작품의 내용은 전쟁에서 돌아온 ‘나’(봉수)를 중심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나’의 죽음이 예비된 전쟁터에서 가족(특히 애인)을 찾아 귀향하는 대목과 귀향 후에 마주치게 되는 여러 절망적 상황이고, 또 하나는 살인을 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까치 소리’가 지니고 있는 원형 상징 가운데 ‘아침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오고, 저녁 까치가 울면 초상이 난다’는 행․불행(幸․不幸)의 속신(俗信)과 구조가 일치하고 있다. 그리고 전쟁과 같은 부조리한 상황이 인간을 어떻게 절망에 빠뜨리며, 그것의 파급 효과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를 나타냄으로써 인간의 좌절과 비극적 운명을 형상화하였다. “까치 소리”는 한국 전쟁이라는 시대상을 작가의 독특한 운명관으로 채색한 작품이다. 저녁 까치 소리가 표상하는 운명적 비극과 전장(戰場)의 상황에 처한 병사의 심리가 병렬적으로 전개된다. 전장은 죽음의 공포가 상존하는 곳이며, 병사는 그 공포감에 불가피하게 결박된 존재다. 주인공 ‘봉수’는 스스로 식지(食指)와 장지(長指)를 자르는 자해 행위를 통해 죽음이 지배하는 전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가 전장을 벗어나는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고향에 있는 애인 정순의 존재다. 따라서, 정순은 단순한 이성으로서가 아니라 죽음으로부터의 탈출이며, 삶에의 욕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향에 돌아와서 발견한 것은 정순과 상호의 결혼이라는 배반의 현실이며, 기다림에 지쳐 버린 어머니의 기침 소리뿐이다. 여기에 이르러 죽음과 고통의 전장으로부터 벗어나려던 봉수의 시도는 무의미해지고 만다. 즉, 전선(戰線)을 도망쳐 나온 명분이 약화되고 자신의 삶은 소매치기의 추악한 ‘장물(臟物)’에 불과하다는 자책과 자조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결국, 봉수는 어머니의 ‘죽여 달라’는 절규에 이끌리면서 살의와 공격성을 드러내게 된다. 저녁 까치가 우짖는 시간에 상호의 누이인 영숙을 능욕하고 살해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이처럼 죽음의 불안과 생존의 욕구, 적에 대한 분노와 전우에 대한 죄책감 등 전장에서 볼 수 있는 병사들의 불안 심리와 그것의 비극적 종말을 저녁 까치 소리라고 하는 음습(陰濕)한 상징 속에서 효과적으로 결합하고 있다.

 

▶ 등신불(等身佛)

 

1. 줄거리

태평양전쟁에 학병으로 끌려나간 주인공 ‘나’가 학병에서 탈출하여 불교에 귀의한 사건이 작품 구성의 골격을 이루고 있지만, 주제와 관련된 무게 중심은 작품 중간에 삽입된 ‘등신불’에 얽힌 ‘만적’의 불교 설화에 실려 있다. ‘나’는 일제 말기 학병으로 끌려가 남경에 주둔해 있다가, 대학 선배인 진기수의 도움으로 탈출, 정원사란 절에 의탁한다. 그 곳에서 금불각의 등신불을 보게 되는데, 그 불상은 옛날 소신 공양으로 성불한 ‘만적’이란 스님의 타다 굳어진 몸에 금을 씌운 것이다. ‘나’는 원혜 대사를 통하여 신비로운 성불의 역사를 듣게 된다. ‘만적’은 당나라 때의 인물로, 자기를 위하여 이복 형제를 독살하려는 어머니로 말미암아 큰 갈등을 겪는다. 집을 나간 이복 형제 ‘신’을 찾아 집을 나와 불가에 몸을 맡긴다. 10년 후 어느 날, 자기가 찾던 ‘신’이 문둥이라는 천형에 고통받고 있음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그리하여 인간사의 번뇌를 소신 공양으로 극복할 것을 결심한다. 그가 1년 동안의 준비 끝에 소신 공양하던 날 여러 가지 이적이 일어나게 된다. 이 때부터 새전이 쏟아지기 시작하여, 그 새전으로 ‘만적’의 타다 굳어진 몸에 금을 씌우고 금불각을 짓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나’는 그 불상에 인간적인 고뇌의 슬픔이 서려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이야기를 마친 원혜 대사는 ‘나’에게, 남경에서 진기수 씨에게 혈서를 바치느라 입으로 살을 물었던 오른손 식지를 들어 보라고 한다. 왜 그 손가락을 들어 보라고 했는지, 이 손가락과 ‘만적’의 소신 공양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대사는 아무런 말이 없다. 북 소리와 목어(木魚) 소리만 들려 온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액자 소설

◎ 배경 : 시간(1943년 여름 태평양전쟁 때) / 공간(중국 양쯔강 북쪽 정원사) / 상황(전쟁으로 인한 삶과 죽음의 극한 상황)

◎ 시점 : 1인칭 시점(내부 이야기 - 3인칭)

◎ 문체 : 만연체, 역어체(‘만적 선사 소신 성불기’ 부분)

◎ 구성

발단 - 학병인 ‘나’는 진기수의 도움으로 탈출. 밤에 산길 백 리를 걸어 정원사에 도착함.

전개 - 정원사에서 생활하던 중 금불각을 보고 화려한 외양에 반감을 가지게 됨.

위기 - 등신불을 보고 충격을 받음.

절정 - 등신불에 대한 의문과 원혜 대사로부터 들은 만적 선사의 소신 성불 과정

결말 - 소신과 단지를 통해 본 불연(佛緣)

◎ 주제 : 인간 고뇌의 종교적 구원

◎ 출전 : <사상계>(1961)

 

3. 등장 인물

◎ 나 : 작중 화자이며 일제시대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하여 정원사에 머문 대학생. 금불각에 안치된 등신불을 보고 감동하여 깨달음을 얻는 정적 인물

◎ 진기수 : 중국 불교학자로 일본 대정 대학에서 유학을 하였음. ‘나’의 탈출을 도와 줌.

◎ 만적 : 1200년 전, 소신 공양으로 성불한 정원사 스님. 인간의 오뇌와 비원의 화신이며, 신념이 확고한 내부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중생의 죄업을 짊어지고 소신 공양을 한 동적 인물

◎ 원혜 대사 : 정원사의 주지 스님이며 ‘나’에게 깨달음을 주는 인물

 

4. 이해와 감상

‘등신불(等身佛)’이란 사람의 키 만한 정도로 만든 불상을 이르는 말이다. 이 작품은 앉은 채로 몸을 불살라 소신공양(燒身供養)을 하고 불상이 된 사연과 그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서 인체의 자세를 그대로 유지한 채 도금의 불상이 된 등신불을 통하여 자연과 초자연과의 상관을 그려 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무녀도”와 마찬가지로 토속적이고 종교적 색채가 배어 있는 전통적 서정주의 세계를 보여 준 김동리의 후기 작품 세계를 대표한다. 인간의 운명을 추구하는 서정성과 순수 문학의 옹호라는 김동리의 문학관이 이 작품 속에서 인간의 고뇌와 슬픔이 만적의 소신 공양을 통해 종교적으로 승화되어 있다. “등신불”은 그의 단편 소설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액자 소설 형식으로 생생하게 담아 내고 있다. 전체 구조로 보아 내부 이야기에 작품의 무게가 실려 있지만 전후의 ‘나’의 행위와 깨달음에도 상당한 의미를 두고 있다. 외부 이야기는 ‘나’의 생활과 금불각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그렸고, 내부 이야기는 이 작품의 핵심 사건인 주인공 ‘만적’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소신공양(燒身供養)을 하게 되고 등신불이 되었는가 하는 것을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다. 일제 말기 학병으로 끌려간 나는 중국의 북경을 거쳐 남경에 주둔해 있다가 목숨을 보존하기 위하여 탈출, 불교학자인 진기수 씨를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생면 부지 적국의 옷을 입은 한국인을 믿지 않자, 오른손 식지를 깨물어 ‘원면살생 귀의불은(願免殺生 歸依佛恩)’이라는 혈서를 써 올려 결국 그의 도움으로 정원사라는 절에 머물게 된다. 나는 그곳에서 수업을 하는 도중 금불각 속에 있는 결가부좌상의 등신불을 보고 경악과 충격에 빠져든다. 그 등신불은 오뇌와 비원이 서린 모습을 지니고 있어서 ‘나’가 생각한 거룩하고 운만하고 평화스러운 불상과는 반대이므로 충격을 받은 것이다. 등신불은 옛날 소신 공양으로 성불한 만적이란 스님의 타다 굳어진 몸에 금불을 입힌 특유한 내력의 불상이다. ‘만적’(법명. 속명은 기(耆). 성은 조씨)은 이복 형제인 ‘신’을 독살하려는 어머니의 사악함에 환멸을 느껴 스님이 되었다. 그 후 금릉 방면에서 우연히 ‘신’을 만나게 되었는데 ‘신’은 불행히도 문둥병이 들어 있었다. ‘만적’은 그의 목에 염주를 걸어 주고 절로 돌아와 소신 공양을 결심한다. ‘만적’이 몸을 태우던 날 육신이 연기로 화해 갈 때 갑자기 비가 쏟아졌으나, 단 위에는 내리지 않았으며, 또한 그의 머리 뒤에는 보름달 같은 원광이 씌워져 있었다. 이러한 신비가 일어나 3년 간이나 새전이 쏟아지게 되며, 이 새전으로 타다 남은 그의 몸에 금물을 입혀 등신불을 만들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은 불교적 소재를 취급하고 있지만 불교의 초월적 신앙을 주제로 삼은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실존적 인간 경험과 그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만적이 자기 몸을 불사르는 의식에는 자신과 배 다른 형제를 죽이려던 어머니의 죄를 사하고, 그 죄의식이 가져온 번뇌로부터 자기를 구원하려는 것이다. 동시에 이복 형 ‘신’이 앓는 문둥병을 비롯한 모든 인간의 숙명적 고통에 대한 절대자의 자비를 구하는 대속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 불타는 만적의 머리 위에 나타난 ‘보름달 같은 원광’은 실존적 인간의 초극적 힘을 상징한다.

또한, 이 소설은 ‘나’와 ‘만적’과의 대비를 통해서 불교 사상이 보여 주는 삶의 번뇌와 한계 상황, 그리고 인간 의지를 통한 초극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즉 ‘나’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불교에 귀의한 소승적 의지와 자신의 몸을 불살라 인간적 아픔과 슬픔을 성불의 경지로 승화시킨 ‘만적’의 대승적 의지를 통하여 살신 성불(殺身成佛)의 비장미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와 같이 주인공이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쓴 실존적 경험은 ‘만적’이 육신을 불사를 때 느낀 처절한 인간 체험과 같은 현실의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러므로 ‘나’가 식지를 깨물어 혈서를 쓴 것과 ‘만적’ 선사의 소신 공양은 개인과 중생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구원의 의미 즉, 운명을 극복해 보려는 인간의 몸부림이라는 공통된 의미를 갖는다. 자신의 의지나 품성과 관계없이 거대한 힘으로 밀려오는 숙명적인 고통과 번뇌는 인간이 감내하기 힘든, 그러나 해결해야 할 영원한 과제다. 그 번민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인간은 절대자를 갈망하게 되고, 초월적인 세계를 꿈꾸게 된다. 그런 점에서, 등신불은 불성과 인성을 지닌 특이한 부처가 아닐 수 없다. ‘만적’의 소신 공양은 자기 구원과 타인 구제의 양면적인 의미를 갖는다. 즉, ‘만적’의 소신 공양에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이복형에게 고통을 가져오게 된 근원적인 죄라는 인식, 그리고 그 죄의식이 가져온 번뇌로부터 자기를 구원하면서 모든 인간들이 가진 숙명적인 고통에 대한 절대자의 자비를 구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만적’의 불교 설화는 주인공 ‘나’가 손가락을 깨물어 쓴 혈서의 행위와 연관됨으로써 현실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주인공이 전쟁이라는 학살의 소용돌이를 벗어나기 위해 자기 살을 물어뜯는 행위는 소극적이나마 죄악의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자기 희생이라는 점에서 만적의 소신 공양과 유사한 의미를 갖는다. 김동리는 인간의 원초적 죄의식과 번뇌, 그리고 이에 대한 종교적 구원이라는 주제를 즐겨 다루는 작가이다. “역마”에서는 운명에 순종함으로써 구원을 얻은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인간 고뇌의 종교적 승화를 통해 구원을 성취하는 모습을 보여 주며, 이 주제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탐구는 장편 “사반의 십자가”에서 볼 수 있다.

 

▶ 무녀도(巫女圖)

 

1. 줄거리

뒤에 물러 누운 어둑어둑한 산, 앞으로 폭이 널따랗게 흐르는 검은 강물, 산마루로 들판으로 검은 강물 위로 모두 쏟아져 내릴 듯한 파아란 별들, 바야흐로 숨이 고비에 찬 이슥한 밤중이다. 강가 모랫벌엔 큰 차일을 치고, 차일 속엔 마을 여인들이 자욱이 앉아 무당의 시나위 가락에 취해 있다. 그녀들의 얼굴 얼굴들은 분명히 슬픈 흥분과 새벽이 가까워 온 듯한 피곤에 젖어 있다. 무당은 바야흐로 청승에 자지러져 뼈도 살도 없는 혼령으로 화한 듯 가벼이 쾌자 자락을 날리며 돌아간다. 우리 집에 있는 무녀도의 내력은 다음과 같다. 경주 읍에서 십여 리 떨어진 집성촌 마을의 퇴락한 집에 사는 모화는 무녀였다. 그녀는 세상 만물에 귀신이 들어앉아 있다고 믿었으며, 그녀의 생활은 굿이 그 전부였다. 그녀의 식구는 넷이었는데, 남편은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인 해변가로 나가 혼자 해물 장수를 하고 있었고, 아들 욱이는 무당의 사생아로서 동네에서 배겨나기가 힘겨워, 몇 해 전에 마을을 나가고 없었으므로, 집에는 그녀와 고명딸 낭이의 두 모녀가 앙상히 살아가고 있었다. 낭이는 귀머거리 소녀였다. 그러나 그녀는 대단한 화제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아버지의 끔찍한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방에 들어앉아 그림만 그렸다. 한편 모화는 매일 술만 마셨다. 그러나 그녀 역시 낭이를 소중히 했다. 모화는 낭이를 낳을 때의 태몽으로 짐작해서 낭이를 용신(龍神 - 용왕)의 딸의 화신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하루는 몇 해 두고 소식이 없던 욱이가 돌아왔다. 모화는 기뻐서 안고 울었다. 그러나 이윽고 욱이가 예수교에 귀의했다는 것을 알자 그녀는 깜짝 놀랐다. 그 때부터 그녀는 욱이에게 귀신이 붙었다고 아들을 위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한데, 욱이는 욱이대로 어머니에게 마귀가 붙었다고 걱정했으며, 마태복음에 적혀 있듯이 낭이가 귀머거리가 된 것도 그 탓으로 알았다. 그는 하느님께 어머니와 누이를 구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는 잘 때도 언제나 성경을 가슴에 품고 잤다. 어느 날 밤, 욱이는 잠결에 가슴이 허전함을 느꼈다. 깨어보니 성경이 없었다. 때마침 부엌에 불이 밝혀져 있는데, 어머니가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그녀는 벌써 성경 첫 장을 불에 태우고 있었다. 그는 부리나케 뛰어 나가 성경을 뺏으려 했다. 그 때 머리 위로 식칼이 날았다. 그녀의 눈에는 욱이가 예수 귀신으로 보였다. 그는 기어코 세 곳에 칼을 맞고 넘어졌다. 그녀는 그로부터 두문불출하고 아들의 병을 간호했다. 그 사이 이 마을에도 교회가 서고 예수교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교도들은 무속을 비방하며 돌아다녔다. 교회는 욱이의 청으로 목사가 주선해서 세웠던 것이다. 욱이는 기어코 소생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녀는 예수 귀신이 욱이를 잡아갔다고 말했으며, 매일 같이 귀신 쫓는 주문을 외웠다. 달포가 지났을 때, 그녀는 물에 빠져 죽은 젊은 여인의 혼백을 건지는 굿을 맡게 되었다. 그녀는 그 날 따라 어느 때보다 정숙했다. 외아들을 잃은 데다가 예수교도로부터 박해까지 받고 사는 모화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정말 예쁘게 보였다. 그녀는 신나게 굿을 했다. 그것은 그녀가 이제 이 괴로운 세상을 떠나 용신에게 귀의할 결심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날 밤 그녀는 여인의 혼백을 건지기 위해 여인이 죽은 못 속으로 넋대를 쥐고 하염없이 들어갔다. 그녀는 마침내 꼭지물이 가까운 곳까지 가서는 구슬픈 노래를 불렀다. 봄철에 꽃 피거든 낭이더러 찾아 달라는 것이 마지막 말이었다. 그녀는 기어코 물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모화가 죽은 지 열흘이 지난 어느 날, 낭이의 아버지는 나귀 한 마리를 몰고 모화의 집으로 왔다. 그는 낭이를 나귀에 태우고 길을 떠나는 것이었다. 이로부터 그들은 곳곳으로 귀한 집을 찾아다니며, 그녀는 무녀의 그림을 그려주고, 아버지는 낭이에 대한 내력을 이야기하고는 대가를 받으면서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다. 낭이는 잠자코 그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나귀 위에 올라앉았다. 그들이 떠난 뒤엔 아무도 그 집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고, 밤이면 그 무성한 잡풀 속에서 모기들만이 떼를 지어 울었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개화기) / 공간(경주 부근 마을)

◎ 성격 : 토속적, 샤머니즘적, 신비적

◎ 시점 : 외부 이야기(1인칭 관찰자 시점) / 내부 이야기 및 후일담(전지적 작가 시점)

◎ 구성 : 액자 구성

도입 - 액자 : 무녀도의 그림 내용과 내력

발단 - 무당 모화와 딸 낭이의 인물 제시

전개 - 욱이의 귀향과 그로 인한 갈등

위기 - 갈등의 고조. 욱이는 모화의 칼에 찔려 죽는다.

절정 - 욱이의 죽음. 교회당이 들어선다.

결말 - 모화의 마지막 굿과 죽음.

종결 - 액자(후일담) : 아버지가 낭이를 데려간다.

◎ 주제 : 변화의 충격 앞에서 전통을 지키려는 한 인간의 비극적인 삶과 운명

◎ 출전 : <중앙>(1936)

 

3. 등장 인물

◎ 모화(毛火) : 무당. 기독교 수용을 반대하는 무속적․신령적 세계관의 소유자(평면적․전형적 인물)

◎ 욱이(昱伊) : 모화의 외아들. 사생아. 일찍이 모화가 절간으로 보냈으나 소식이 없다가 기독교인이 되어 돌아와 모화와 대립하는 인물(반동 인물, 전형적 인물)

◎ 낭이(琅伊) : 모화의 딸. 욱이의 이복 동생. 근친 상간의 기미가 있는 인물이며, 벙어리로서 그림에 소질이 있음. 무녀도를 그리게 됨.

 

 

4. 이해 및 감상

“무녀도”는 원래 <중앙>에 발표된 이래 1947년판 단편집 “무녀도”에서, 1967년판 “김동리 대표작 선집”에서, 각각 개작(改作)되었고 1978년 장편 “을화(乙火)”로 완전 개작되었다. 이 작품은 우리의 재래적 토속 신앙인 무속(巫俗)의 세계가 변화의 충격 앞에서 쓰러져 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무녀도’라는 그림에 담긴 한 무녀의 삶과 죽음을 중심 제재로 한 이 작품은 소멸해 가는 것의 마지막 남은 빛에 매달려 이를 지키려는 인간의 비극적인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우리의 전래 토속 신앙인 무속과 서양에서 들어온 기독교 신앙의 충돌로 인한 모자간의 대립과 갈등을 다루고 있다. 즉, 기독교로 대표되는 외래 문화와 무속으로 대표되는 토속 신앙 간의 대립을 기본 축으로 하여 결국은 토속 신앙이 패배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욱이의 죽음은 교회의 설립이라는 미래 계시적인 죽음이며, 상대적으로 모화의 죽음은 외래 신앙인 기독교 사상에 퇴조할 수밖에 없는 시대 조류를 나타내는 비극적 죽음이다. 한쪽은 승리의 죽음이요, 한쪽은 패배의 죽음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주인공 모화의 죽음, 자식을 죽이는 행위 등 보통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극단적인 사건들을 초월적인 힘에 의해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묘사함으로써 운명론적인 세계관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기에 핵심적 갈등인 무속과 기독교의 갈등 구조도 그 운명론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장치일 뿐이다. 즉, 작가의 의도는 종교적인 대립의 문제보다는 신비스럽고 운명적인 삶의 문제에 대한 탐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모화의 죽음은 기독교의 승리로 볼 수도 있으나, 오히려 그러한 승패보다는 역사의 필연적인 변화 앞에서 이에 맞서고 겨루어 보려 한 인간의 모습을 제시한 것에 이 작품의 의의가 있다. “무녀도”는 시대적 배경이 불확실한 작품이다. 이는 역사적인 시간을 배제함으로써 오히려 운명적인 삶의 보편성을 암시하려는 작가의 세계관 때문일 것이다. 한편, 이 작품은 탐미주의적 에로티시즘이 깔려 있다. 모화의 장단에 맞추어 저고리와 치마를 벗고 나체 춤을 추는 낭이의 모습이 그러하다. 이는 작가가 샤머니즘의 세계를 미화하기 위하여 사용한 효과적인 무기로 보여진다.

 

▶ 밀다원 시대

 

1. 줄거리

기차가 부산진에 들어서면서부터 바다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몸을 뒤로 뻗쳤다. 중구의 마음은 최후의 점 같은 허무함에 사로잡혀 있었다. 기차에 탄 사람들은 같은 운명체의 동지였다. 그러나 기차가 도착하자 동지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중구도 무리에 섞여 출찰구 쪽으로 나올 때. K통신사의 윤(尹)이 부른다. 윤이 갈 곳이 있느냐고 묻는다. 중구는 마땅히 갈 곳도 없어 윤을 따라 통신사 지국으로 간다. 거기서 책상을 침대 삼아 밤을 보낸다. 중구는 바다의 뱃고동 소리를 들으며 깊은 우울감에 빠진다. 날이 샐 무렵, 윤은 문단에 이름이 있으면서 부산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느냐고 의아해한다. 윤으로부터 서울서 온 문화인들이 많이 모이는 ‘밀다원 다방’ 얘기를 듣는다. ‘밀다원’에는 조현식 평론가 등이 있었다. 중구를 반긴다. 커피를 마시면서 동료들은 그간의 안부를 묻는다. 송 화백으로부터 서울을 빠져 나오던 이야기를 들으며, 그렇게 해서라도 어머니를 모시고 오지 못한 것 때문에 중구는 마음이 걸린다. 길 여사가 우동을 사기로 해 모두 음식점으로 갔는데, 시인 박운산은 종내 말이 없었다. 곡절이 있는 듯했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 몰랐다. 그 날 밤은 조현식을 따라가 자기로 했다. 조현식은 친구 소개로 얻은 조그만 방에서 온 식구들이 함께 기거하고 있었다. 현식의 부인이 모친은 어디 계시냐고 물을 때, 심한 자괴감에 빠진다. 다음 날 ‘밀다원’으로 나온다. 전필업이란 자가 지금까지 서울 문단에 주도권이 주어져 있었으나, 이제 재부(在釜) 문인들이 주도권을 장악해야 한다는 요지의 말을 한 것에 대해 말들을 나눈다. 중구는 주도권 다툼을 하는 자들의 행태에 실망감을 느낀다. 저녁에 빈대떡집에서 술을 마신다. 우울에 빠져 있는 박운산에 대해 말들을 나눈다. 박운산이 실연을 하였다는 것이다. 여 의대생인 애인이 부모를 따라 외국으로 가는 바람에 그만 헤어지게 되어 절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중구는 그 날 저녁에는 오정수의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오정수의 집은 단란했다. 술을 마시다가 중구는 그만 복받치는 눈물을 참지 못한다. 이튿날, 오정수가 붙잡는 것을 마다하고 집을 나온다. ‘밀다원’에서 조현식이 오정수의 집이 어땠느냐고 묻자, 오늘 밤 다시 조현식의 집에서 묵자고 부탁한다. 단란함이 중구에게 오히려 마음을 무겁게 했던 것이다. 조현식의 집으로 박운산과 함께 가서 술을 마신다. 박운산은 손가방 하나를 맡아 달라고 부탁한다. 술을 마시다가 볼일이 있다며 박운산은 나가 버린다. 이튿날 ‘밀다원’에 나가니 박운산이 먼저 와 있다. 중구가 어떻게 된 거냐고 하니, 시간이 너무 늦어서 그랬다고만 말하고 구석 자리로 옮겨 가 버린다. 점심 때 길 여사가 와서 밖으로 좀 나가자고 한다. 전의 그 우동집에서 전세(戰勢)가 심상치 않으니, 제주도 가는 배를 구해 피난을 가자고 제안한다. 중구는 ‘밀다원’을 떠나면 불안할 것만 같아 선뜻 답하지 못한다. 함께 ‘밀다원’으로 돌아오니 안정호가 다급한 목소리로, 박운산이 약을 먹었다고 말한다. 유서에는 ‘고별’이라고 제목을 붙여 먼저 떠나는 이유와 벗들에 대한 그리움을 적어 놓았다. 박운산의 자살로 인해 당분간 다방이 폐쇄되었고 그들은 다른 다방에서 소일한다. ‘금강’이란 이름의 다방이었는데, 건너편에 ‘현대 신문’이 있다. 중구는 현대 신문의 논설 위원을 맡게 된다. 조현식도 중구의 소개로 신문사 한쪽에 ‘문총’ 사무실을 임시로 개설한다. 사흘 뒤, 조현식은 현대 신문 문화란에 ‘박운산의 인간과 예술’이란 제목의 평론을 싣는다. 유작시 ‘등대(燈臺)’도 게재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6․25 피난 시절) / 공간(부산)

◎ 경향 : 실존주의적

◎ 구조

한국 전쟁의 비극

바다, 절망과 죽음의 심연 → 밀다원, 바다에 드리운 닻

(절망과 허무의 실존 의식) (동류 의식에 의한 안정)

박운산의 죽음 → 박운산에 대한 추모

(극단의 절망감) (지식인의 허무 의식)

* ‘나’와 박운산의 동일시 *

 

◎ 주제 : 전쟁이 준 지식인의 절망과 허무의 실존 의식

◎ 발표 : 1955년

 

3. 이해 및 감상

이 작품은 피난 시절 ‘밀다원’이란 다방을 중심으로 거기에 모인 예술가들의 삶의 관련을 조명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김동리의 초기 소설과는 달리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현실적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지식인의 내면 세계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또 다른 소설 세계를 보여 주는 일 편이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고 있는 정신은 실존 의식이다. 삶에의 절망과 허무, 그것이 삶의 조건이라는 참담함에 빠진 예술가의 정신의 궤적이 밀다원에서의 예술가들과의 교류 속에 잔잔히 펼쳐지고 있다. 그 동안 중구의 머릿속은 줄곧 어쩐지 땅 끝이라는 상념으로만 차 있는 듯했다. 끝의 끝, 막다른 끝, 거기서는 한 걸음도 더 나갈 수 없는, 한 걸음만 더 내어 디디면 허무의 공간으로 떨어지고 마는, 그러한 최후의 점 같은 것에 중구의 의식은 완전히 사로잡혀 있는 듯했다. 그것은 승객의 거의 전부가 종착역인 부산을 목적으로 간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부산이 이 선로의 종점인 동시, 바다와 맞닿은 육지의 끝이라는 지리적 이유 때문만도 아니었다. 또, 그 열차가 자유의 수도 서울을 출발지로 하고, 항도 부산을 도착점으로 하는 마지막 열차라는 이유 때문만도 아니었다. 이러한 이유를 다 합친 그 위에 또 다른 이유가, 무언지 더 근본적이며 더 절실한 이유가 있는 듯했다. 이 내용은 중구가 단신으로 피난길에 올라 부산역을 앞두고 가졌던 상념이다. 그는 이제 종착점에 이르러 목표 의식을 상실하고 있다. 이는 갈 곳이 없다는 현실적 이유만으로 보이지 않는다. ‘더 근본적이며 더 절실한 이유’ 때문이다. 그것은 그의 내면 풍경 때문이다. 단지 피난으로 인한 고통과 절망에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삶의 근본적인 인식에서 오는 절망이라 보여진다. 이런 면에서 그의 소설은 실존주의적 바탕에 근거한다. 우리는 자유를 가지고 있고, 자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인 구속을 느끼며 그 부자유에 절망한다. 그러므로 자유는 곧 구속이고, 이상은 절망을 잉태한다. 이것이 부조리한 인간의 실존이다. 이상이 크면 클수록 그 반대 급부는 정신적 공허를 유발한다. 지식인의 고뇌는 바로 이 실존 의식 때문에 그러하다. 그러므로 중구는 어느 곳에서도 마음의 안식을 느끼지 못한다. 전쟁이 준 참담함. 그것은 인간에 대한 신뢰의 절망이다. 굳게 믿고 있던 신념도 이 인간 조건에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세계는 온통 절망으로 가득 차 버리는 것이다. 중구가 그래도 마음의 안정을 이루는 곳은 밀다원이다. 이 곳에는 그의 동지들이 모여 정세를 얘기하고, 예술을 이야기하며, 인간적 잡담을 나누는 공간이다. 끈끈한 인간적 유대가 가능한 곳이다. 중구가 세계로부터 정신적으로 소외되어 갈 때, 그에게 위안을 주는 것은 이 동류 의식이 지배하고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예술가로서의 정신적 위상, 모두가 버림받았다는 것에서 그런 위안을 느끼는 것이다. 그에게 ‘육지의 끝’에서 바다로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이 ‘밀다원’이란 작은 닻이다.

중구는 바다로 향해 고개를 돌린다. 얼얼한 술기운에 퍼런 해면이 비친다. 그 위에서 껑충거리는 허연 갈매기 떼도 보인다. 그와 동시에 머릿속에는 내리막을 달리는 기차가 떠오른다. 최종 열차다. 땅 끝까지 가서는 바다에 빠진다는 것이다. 바다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기차는 목이 쉬도록 울며 발목이 휘어지도록 뻗대어 본다. 그러나 내리막을 달리는 기차는 그 무서운 속도의 관성에 의하여 기어이 바다로 들어가고야 만다. 중구의 눈에는 또 갈매기가 비친다. 자기는 이미 바다에 빠져 있는 겐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오오, 갈매기여, 갈매기여! 그는 시인 같은 심정으로 갈매기를 불러 본다. 중구는 계속 죽음에의 두려움에 직면해 있다. 바다로 상징되는 죽음과 절망의 세계, 그 바로 곁에까지 내몰려 있는 자신을 인식하며 고뇌와 슬픔에 젖어 있다. 그에게 삶은 좌절일 뿐 새로운 희망과 의욕을 줄 여지가 이미 없다. 그는 천식으로 고생하는 어머니를 서울에 홀로 두었으며, 아내와 자식들은 처가에 보내고 자신만 부산으로 내려온 것이다. 가족의 유대마저 허락하지 않는 세태에서 절망하고, 그런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한계에 대해서도 절망한다. 그는 삶의 조건에 대한 회의와 불효자 의식이 겹쳐 나날의 삶이 허망해진다. 중구의 절망과 관련된 것으로, 전필업이란 자의 소행과 박운산이란 시인의 행동이 주목된다. 전필업은 지방 문단의 유력자로 시대 상황이 어수선해지자 문단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세를 규합하고 그런 일에 뛰어든다. 지기였던 문인들에 대해서도 냉담한 태도를 가진다. 작가가 이런 점을 내세운 것은, 인간의 본성 속에 도사린 악의 속성을 구체화하기 위해서이다. 상황 앞에 무참히 무너져 버리는 인간성의 모순을 들추어내기 위한 의도로 전필업의 경우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박운산은 언제나 말없이 시대의 자신에 절망한다. 그런 면에서 중구와 운산은 정신적 태도가 상통한다. 떠나 버린 애인 때문에 괴로워하는 운산에게 ‘바다’는 이별의 표상이요, 죽음의 심연이었다. 중구가 바다를 바라보며 죽음을 연상하듯 그 또한 바다 건너의 애인과 단절된 채 바다에 절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자살하였을 때, 남긴 유서와 유작시는 운산이 삶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었는가의 해답이면서, 동시에 중구의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따라서 운산과 함께 당대 지식인의 좌절을 보여 주는 인물은 바로 주인공 중구가 된다. 중구가 못내 절망하는 것은, 인간 본성에 대한 회의이다. 그것은 자신을 포함한 것이다. 그러나 따뜻한 인정의 세계를 동경하고 있는 것같이 보이지는 않는다. 그가 오정수의 따뜻한 배려를 받으며 그 집에 하루 묵고서는 서둘러 집을 나와 버리는 데서 그 점을 알 수 있다. 혼자 편안히 지낼 때 찾아오는 무서운 고독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중구가 밀다원에 그렇게 집착하는 것도, 밀다원에는 비슷한 태도로 삶을 살아가는 문인들이 늘 모여 있기 때문이다. 이 동류 의식이 그에게는 위안이 되고 있다. 그리하여 조현식의 복잡한 집, 그것도 벽장 속에서 잠드는 초라한 집에 더욱 안정을 느끼며 그 곳에 있고 싶어한다. 혼자라는 의식이 들 때마다 무섭게 찾아드는 죽음의 그림자를 그는 두려워하고 있으며, 이런 상황에 빠져 들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에 괴로워하는 것이다. 이 소설은 전쟁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전쟁 자체에 대한 해석은 부수적이다. 흔히 한국 전쟁을 제재로 하는 소설로 보고 전쟁의 참상의 한 형태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전쟁의 참혹성을 그리려는 의도보다는 전쟁 상황에서 겪게 된 인간 존재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있다고 봄이 옳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의 현실 인식은 매우 부족하다. 김동리가 원래 현실보다 신화적 세계에 관심을 집중했다는 전기적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그는 아무래도 현실주의자와는 거리가 있는 듯하다. 사실 밀다원에 모인 문인들의 행동은 객관적으로 볼 때, 바람직한 행동 양식을 보이지는 못한다. 그들이 모여서 하는 이야기는 잡다한 세상사나 여적(餘滴)을 위한 것이지 지식인의 고뇌와는 무관한 것이다. 중간에 위정자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대목이 있기는 하지만, 그 이야기의 대종은 문인들에 대한 대접 소홀 이란 것이어서 그들의 정신적 위상이 의심스럽기도 하다. 전쟁의 와중에서 그들은 마치 전쟁과 무관한 듯한 여유를 지니고 있으며, 대중들의 삶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신선 놀음을 즐기고 있는 듯한 행태를 보인다. 물론 김동리가 추구하는 것은 이런 문인들의 삶 자체는 아니지만 중구가 그들을 비판적으로 보기는커녕 그들에게서 안정감을 가지는 것에서 중구 또한 그들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앞에서 말한 전필업의 행동도 이 소설의 필연성과는 거리가 있는 듯하다. 어쩌면 밀다원이 문인 생활의 낭만을 더 부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구의 치열한 삶의 정신을 보면서도 어딘지 호사 취미 같은 인상을 받는 것은, 현실적 삶에서 떨어진 채 현실을 조명하며 괴로워하는 지식인의 허구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도 김동리의 특성은 어느 정도 드러난다. 앞에서 인용한 첫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죽음이라는 상황에 끌려가는 듯한 생각을 하는 것이 그것인데, 신비한 세계에의 몰입이라는 정신의 경도가 이 대목에서 읽혀지는 것이다. 그를 끝없이 붙들어 매는 바다의 이미지에 의하여 그는 계속 그런 이상한 몰입을 경험한다. 첫날 밤 통신사 책상 위에서도 그것을 듣게 되고, 친구들의 집에 갔을 때도 어김없이 그 소리에 이끌려 간다. 죽음에의 예감 같은 신비롭고 주술적인 힘에 이끌리는 세계는 김동리의 가장 큰 특성이다. 신화가 제거된 현실을 취재한 이 소설에서마저 이것을 축으로 삼고 있는 데서 김동리의 원형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초기 소설이 보여 준 성과와 비교해 볼 때, 그의 현실 탐구 소설은 아무래도 격이 떨어지는 것 같다. 그는 천생 신화와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인자를 타고났는지도 모른다.

 

▶ 바위

 

1. 줄거리

읍내 근처의 기차 다리 밑에는 한 떼의 병신과 거지와 문둥이가 산다. 여인은 그 문둥이들 중 한 사람이다. 여인이 그 곳에까지 오게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여인에게는 그의 남편인 영감과 아들 술이가 있었다. 그러다가 여인이 문둥병에 걸리자 장가 밑천으로 모아 둔 돈을 어머니의 약값으로 날려 버린 아들 술이가 집을 나가 버린다. 아들을 잃은 영감은 여인을 학대하다가 급기야는 여인을 독살하려 하다가 실패한다. 영감을 이해한 여인은 결국 집을 나온다. 그리하여 세 사람의 가족 관계는 파탄된다. 기차 다리 밑에 토막을 짓고 그 곳에 거처를 정한 여인은 아들 술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나날을 보낸다. 이 때 아들은 여인에게 있어 유일한 삶의 의미로 자리잡는다. 마침 근처에 복을 빌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복 바위가 있음을 안 여인은 매일 사람들의 눈을 피해 복 바위 가는 일에 몰두한다. 바위를 갈기 시작한 지 보름만에 여인은 그리던 아들을 만난다. 그러나 아들은 다시 돌아오겠다며 떠나서 그 후 소식이 없다. 아들을 더욱 그리워하게 된 여인은 다시 복 바위를 갈다가 마을 사람들에게 뭇매질을 당한다. 어느 날 장터를 헤매던 중 여인은 아들 술이가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복받쳐 다시 복 바위에 갔던 여인은 자기의 토막이 불타고 있음을 목격한다. 여인은 그 날밤 복 바위를 안은 채 숨을 거둔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가을에서 겨울 사이) / 공간(1930년대의 어느 마을, 마을과 기차 다리 주변)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구성

발단 - 기차 다리 밑에 모여 사는 거지, 병신과 문둥이 등의 생활상

전개 - 모친의 병구완으로 장가 밑천을 다 써 버린 아들. 영감과의 이별

위기 - 복 바위에서의 비원, 장터에서의 아들과의 만남

절정 - 아들의 복역, 불에 타는 토막

결말 - 복 바위를 안고 죽음.

◎ 주제 : 소외당한 한 여인의 비원(悲願)과 절망을 통해 보여주는 생에 대한 애착, 어머니의 인간 본성

◎ 성격 : 샤머니즘, 휴머니즘

 

3. 등장 인물

◎ 술이 어머니(아주머니) : 문둥병에 걸려 한스럽게 사는 여인. 아들을 다시 만나기 위한 일념으로 복 바위를 갈다가 죽는다.

◎ 술이 : 근면하고 효성이 지극했던 인물. 그러나 장가 갈 밑천으로 저축해 둔 돈을 어머니의 약값으로 다 써 버리자 집을 나간다.

◎ 술이 아버지(영감) : 성격이 거칠고 술에 탐닉하는 인물. 고달픈 삶이 연속되자 아내의 독살을 꾀한다.

 

4. 이해와 감상

“바위”는 <신동아> 1936년 5월호에 게재된 김동리의 단편 소설이며, 그의 작품 중 초기작에 속한다. 복 바위를 갈면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은 우리나라 도처에 깔려 있는 토속적인 믿음으로, 자기가 소원한 바를 이루기 위해 영검 있는 물건에 정성을 바치는 행위는 한국인들 심층에 자리잡고 있는 하나의 신앙이다. 이러한 행위와 소원이 우연히 실현될 때는 움직일 수 없는 하나의 믿음으로 받아들여지고, 그것을 맹신하게 된다. 병은 더 깊어지고, 추위는 더 심해지며, 기거하던 토막마저 불타는 절망의 극한 상황에서 어머니가 걸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복 바위를 통한 자기 소원의 성취이다. 이 복 바위는 아들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것이다. 그러므로 복 바위를 통해 아들을 만나고자 하는 소원은 절대적이다. 다만, 그녀의 절대적 믿음은 토막의 소멸과 함께 무너진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복 바위를 끌어안고 죽는다. 이 상황은 역설적이게도 그녀의 믿음이 얼마나 완강한 것이었는가를 말해 주며, 죽은 뒤에라도 자식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간직했기 때문에 행복한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작가는 토속적 샤머니즘을 근대적 관점에서 비판하기보다는 등장 인물의 삶에 질서와 전망을 부여하는 원초적 신앙 형태로 이해하고 있다. 이것이 작가가 뜻하던 ‘구경적(究竟的) 삶’의 의미인지도 모른다.

 

<참고> “바위”에 내포된 사상과 복 바위의 상징성

□ 사상

(1) 토속 신앙 : 원시 종교의 한 형태인 샤머니즘, 즉 무속 신앙을 사상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는 복 바위를 갈며 아들과의 재회를 기원하는 여인의 모습을 통해 드러난다.

(2) 휴머니즘 : 천형이라는 문둥병을 얻은 여인의 불행한 삶을 묘사함으로써 작자의 인간 생명에 대한 본원적인 사랑과 구원의 사상이 표출된다.

(3) 운명론적 신비주의 :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현실을 냉철히 비판하고 분석하기보다는 거대한 운명의 사슬에 매달린 인간 존재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바위의 내면에 흐르는 또 하나의 사상적 면모와 만날 수 있다.

□ 복 바위의 상징성 : 전래 설화 중 바위에 얽힌 이야기는 무수히 많다. 그것은 자연물에 신의 영험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던 선인들의 믿음에서 유래된다. 복 바위의 상징성은 전래의 망부석 모티브와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다. 간절한 바람이 인간을 석화(石化)했다는 망부석에 얽힌 다양한 설화는 복 바위를 껴안고 죽은 여인의 모습으로 현재화된 것으로 여겨진다.

 

▶ 역마(驛馬)

 

1. 줄거리

화개 장터에서 주막을 운영하며 살고 있는, 마음 착하고 인심 좋은 옥화는 아들 성기의 타고난 역마살을 없애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역마살이 끼면 집에 머물지 못한다기에 아들 성기를 쌍계사로 보내고 장날만 집에 오게 한다. 어느 날, 체 장수 영감이 딸 계연을 데리고 와 옥화네 주막에 맡기고 떠난다. 옥화는 계연을 성기와 가까이 하게 해서 둘을 결혼시켜 역마살을 극복, 아들 성기를 정착시키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옥화는 계연의 왼쪽 귓바퀴 위에 난 사마귀를 발견, 자신의 동생이 아닐까 의심한다. 체 장수 영감이 돌아와 들려준 이야기로 예감은 현실로 증명된다. 즉, 36년 전 화개 장터에서 어떤 떠돌이 여인과 하룻밤 관계한 일로 태어난 딸이 옥화이며, 계연은 결국 옥화의 이복 동생임이 밝혀진다. 계연과 성기의 사랑은 천륜에 의해 운명적으로 좌절된다. 그 일이 있은 후, 계연은 아버지인 체 장수를 따라 아버지의 고향인 여수로 떠나고, 성기는 중병을 앓는다. 병이 낫자 성기는 운명에 순응, 역마살에 따라 화개 장터를 떠난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공간(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 지역인 화개 장터)

◎ 성격 : 무속적, 운명적

◎ 문체 : 간결체, 화려체

◎ 상징 : 역마 - 사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유랑할 수밖에 없는 운명 / 화개 - 남녀간의 사랑

◎ 구성 : 단순 구성, 입체적 구성

발단 - 옥화는 아들 성기의 역마살을 없애려 하고, 체 장수는 계연을 옥화에게 두고 떠남.

전개 - 옥화의 아들인 성기와 체 장수의 딸인 계연이 서로 사랑함.

위기 - 옥화가 계연의 왼쪽 귓바퀴의 사마귀를 보고 동생이 아닐까 하는 예감을 가짐.

절정 - 계연이 성기의 이복 이모임이 밝혀지고, 둘의 사랑이 운명적으로 좌절됨.

결말 - 성기는 중병을 앓게 되고 병이 낫자 운명에 순응하여 길을 떠남.

◎ 주제 : 팔자 소관에 순응함으로써 죽음에서 구제 받으려고 함.

◎ 출전 : <백민(白民)>(1948)

 

3. 등장 인물

◎ 성기 : 역마살을 타고난 운명적 인물. 계연과의 사랑의 좌절로 역마살을 극복하지 못하고 팔자에 따라 고향을 떠남.

◎ 옥화 : 성기의 모. 주막을 운영하고 아들의 역마살 제거에 힘쓰나 실패하고 운명을 받아들임.

◎ 계연 : 옥화의 이복 동생. 성기를 사랑하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아버지를 따라 떠남.

◎ 체 장수 : 계연의 부. 역마살이 낀 인물로 36년 전 옥화의 어머니와 관계한 일이 있음.

 

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역마살’이라는 무속을 소재로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을 나타낸 소설이다. 이 작품에서 체 장수 영감과 성기가 역마살이 낀 인물들이다. 주인공인 성기의 역마살은 외할아버지인 체 장수 영감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그것으로 인해 성기와 계연의 결혼은 불가능해진다. 이 소설에서 주된 갈등은 역마살을 제거하려는 인간들의 노력과 운명적인 역마살과의 대결이다. 역마살을 타고난 성기는 사랑하는 계연과 정착을 이루려 하지만 운명은 그를 죽음과 유랑의 길 중 어느 하나만을 강요한다. 여기서 성기가 유랑을 택한 것은 현실적으로 운명에의 패배를 뜻하지만, 그 내면에서는 한국인의 의식 속에 담긴 극기의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자연 법칙과 인간의 생명이 하나의 원리에서 조화되는 세계를 그리는 김동리 문학의 중요한 한 정신을 엿볼 수 있다. 팔자소관에 순응함으로써 도리어 죽음에서 구제된다는, 동양적 운명론을 실천하고 있는 작품이다. 한편, “역마”는 김동리의 단편 소설 가운데 공간에 있어서 비상식적․비합리적 요소가 덜한 작품이다. 또한 공간 구성에 있어서도 “무녀도”, “늪”, “달”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분법적 공간 배치를 보이고 있지 않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화개 장터’는 3대에 이르는 가계의 사건이 벌어지는 곳일 뿐만 아니라 인물들의 삶에 있어서 상징적 공간으로서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화개 장터는 성기의 외할머니가 하룻밤 놀다간 젊은 남사당패와 정을 통하고 성기의 어머니를 갖게 된 장소이며, 어머니마저 떠돌이 승려와 인연을 맺어 성기를 잉태한 장소이다. 뿐만 아니라 성기마저도 부지간에 어머니의 이복 여동생과 관계를 갖고 하마터면 부부의 연까지 맺을 뻔한, 그 가족들에게 있어서 비슷한 사건들을 생산해 내는 장소이다. 이처럼 이 화개 장터가 갖는 가장 흥미로운 성질은 대를 잇는 운명의 순환성에 있다. 각각 그 가계의 인물들을 A, A', A''로 놓는다면 여기에 대응하는 떠돌이인 B, B', B''는 각대에서 일회적인 만남을 통해 그들과 정을 통하게 되고, 일생에 지우지 못할 추억과 연민을 갖게 하고 결국 그것으로 인해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을 만들게 한다는 점에 있어서 똑같다. 그런데, 남자인 성기의 대에 와서는 양상이 다소 달라지게 된다. 운명을 고착시키는 장소로서 화개 장터는 두 여성(할머니와 어머니)의 소극적 입장과 상응할 수 있지만, 성기의 경우에는 같은 사건을 경험했어도 그 양상은 달리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는 성기가 회개 장터에서 일회적인 만남으로 일생일대의 전환기를 맞는다는 측면에서 보면 그 가계의 여성들과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 역마살을 지니고서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운명은 그 가계의 남성들(외할아버지와 아버지)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즉 성기는 그의 외할아버지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타고난 역마살로 인해 타지에서 동일 유형의 운명을 자손에게 부과할 수 있는 적극적 인자(因子)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는 또한 다음과 같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공간적 구도를 분석함에 있어서도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 다음 그림은 성기가 그 가계 내에서는 동일한 운명의 산물이지만, 삼대에 이르는 운명을 복사하여 다른 곳으로 유입시킬 수 있는 인자(因子)로서 자리 매김될 수 있음도 또한 보인다.

 

<참고> 소설가 이문구의 “역마” 감상

“역마”는 특히 단편 소설에서 완성미의 경지에 이르렀던 김동리가 1948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평단의 문학사적인 조명은 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퍽 소루했던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무슨 이유일까. 결론이 앞지르는 셈이지만 짐작하건대 아마 가장 탈이념적인 작품이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역마”는 지리산 길에서 내려오는 산나물과, 하동길에서 올라오는 해산물과, 전라도의 구례길에서 건너오는 생필품이 모이고 흩어지는 화개 장터를 배경으로, 사주에 역마살을 타고 난 ‘자연적인 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제 길’을 가면서 펼치는 낭만적인 인생 유전극이다. 그들은 누구인가. 화개 장터에 들러서 놀다간 남사당패의 육자배기 가락에 반하여 하룻밤의 풋사랑으로 아비 없는 아들을 낳아 기른 할머니와, 그 딸이 자라나서 지나가는 중과 배가 맞아 아비 없는 아들을 기르며 주막을 차려 살아가는 옥화와, 그 아들이 자라서 역마살을 풀기 위해 절에 들어가 ‘중질’을 하는 성기와, 젊어서는 사당패로 떠돌고 늙어서는 체 장수로 떠돌며 36년 만에 화개 장터를 다시 찾은 체 장수 영감, 그리고 체 장수 아비에 의해 옥화네 주막에 맡겨져 ‘흰자위 검은 자위가 꽃같이 선연한 두 눈’으로 성기의 넋을 앗아간 열대여섯 살짜리 소녀 계연 등이다. 옥화는 역마살 탓에 언제 어디로 떠돌는지 모르는 성기를 집에 붙잡아 놓기 위해 성기와 계연 사이에 어서 이성이 싹트도록 마음을 쓴다. 그러나 성기와 계연이 사랑에 눈 뜰 무렵 옥화는 계연의 귓바퀴에 난 사마귀가 자기와 같다는 것으로 체 장수는 자기 아버지이며 계연은 배 다른 동생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옥화는 기구한 운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끝까지 숨긴다. 성기는 체 장수 부녀가 고향으로 떠난 뒤에야 저와 계연이 그럴 수 없는 사이였음을 깨닫고 제돌에 이르도록 몸을 가누지 못한다. 하지만 옥화가 ‘아들의 뼈만 남은 손을 눈물로 씻던’ 날, 성기는 ‘무슨 새로운 결심이나 하듯 입술을 지그시 깨물’ 더니 마침내 엿장수가 되어 옥화가 맞춰 준 엿목판을 메고, ‘육자배기 가락으로 제법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정처 없는 발길을 내딛고 만다. 이 작품은 읽으면서 책 속에 청산을 옮겨 놓은 듯한 치밀하고 현란한 자연 묘사에 전율하고, 성기와 계연의 애틋한 이별에 가슴이 아리며, 성기가 오롯이 길을 떠나는 종장에서 ‘이것이 바로 문학이구나’ 하는 아련한 감동을 받는다. 성기가 가는 길은 지리산길, 하동길, 구례길이 아니라 동양적인 무위 자연행(無爲自然行)이며, 정한에 사무친 한국적 낭만과 풍류가 아닐는지. “역마”는 전통적인 민족 정서가 섬진강처럼 흐르는 한국 소설 문학의 백미라고 생각한다.

 

▶ 화랑의 후예

 

1. 줄거리

황 진사라고 불리는 시대 낙오자인 주인공은 본디 명문 출신이었으나 집안이 망하고 시대가 바뀌어, 구시대의 학문이나 사고 방식으로는 새 시대에 살아갈 수가 없어서 쓸쓸한 신세가 된다.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주린 창자를 채운다. 그러나, 친구가 집간이나 가진 과부댁에게 중매하려고 하니까, 자기는 양반의 자손이므로 그런 곳으로 장가를 들 수 없다 하여 거절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책을 뒤지다가 자기의 조상이 신라 때의 화랑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것을 자랑으로 삼는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본격 소설, 단편 소설, 풍자 소설

◎ 배경 : 시간(1930년대 일제 강점기) / 공간(서울)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문체 : 간결체, 우유체

◎ 표현

(1) 1인칭 관찰자 시점에 의한 서술로 인물의 내면을 밝히지 못함으로써, 대화와 외부 묘사가 중심이 되고 독자의 적극적 독서를 유도하고 있다.

(2) 과거의 사건을 한 장면씩 회상하는 방식으로 전개하여 황 진사의 성격과 삶의 단면을 제시하고 있다.

(3) 희화적인 수법으로 희극적인 주인공을 그리면서도 인물에 대한 연민의 정을 표현하고 있다.

◎ 구성

발단 - 황 진사와의 만남. 숙부의 권유와 ‘조선의 심벌’에 대한 흥미

전개 - 황 진사의 거듭된 방문. 밥을 얻어먹고 돈을 빌려 감.

위기 - 가벌에 대한 자만과 조화를 부리려는 황 진사. 시대 착오적인 황 진사

절정 - 황 진사의 혼담과 중매의 결렬. 자신의 처지를 알지 못하는 비현실적인 황 진사

결말 - 자신이 화랑의 후예임을 감개하는 황 진사는 이내 가짜 약을 팔다가 붙들려감.

◎ 제재 : 황 진사라는 몰락한 양반 후예의 노년 생활

◎ 주제 :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몰락해 가는 양반 계층의 오만과 허위성 비판

◎ 출전 : <중앙일보>(1935)

 

3. 등장 인물

◎ 황 진사(본명, 황일재) : 나이 육십 가량의 인물. 가난하면서도 겉으로는 가문과 자존심을 앞세우는 위선적인 인물, 희화화(戱畵化)의 대상

(1) ‘조선의 심벌’(작중의 나의 숙부 - 완장 선생의 표현) (2) 몰락한 양반의 후예 (3) 변화된 세상을 살아갈 방도를 찾지 못하는 전형적 인물(허장성세의 인물)

◎ 나(서술자) : 작중 화자이며, 주인공을 관찰하는 관찰자이다. 일제 강점 하에서 어떤 가치관을 지니고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청년. 부모를 일찍 여의고 숙부 집에서 기거. 한학적 소양을 갖추고, 근대적이고 합리적인 사고 방식을 지닌 인물. 조선의 현실을 걱정하고 있는 지식인

◎ 숙부 : 황 진사와 같은 몰락한 양반이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시대의 변화를 인식하는 인물. 금광 경영. 조선의 현실을 걱정하는 지식인. 원숙하고 포용성 있는 인물

 

<참고>

□ 현대 속의 전통인 : 이 작품은 김동리의 데뷔작으로 그의 소설의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이 된다. 김동리는 전통 세계를 소재로 하여 그 전통 세계의 현재적 위상을 탐구하는 작품을 많이 발표하였다. 이 소설에서 형상화하고 있는 전통성은 이른바 ‘조선의 심벌’과 같은 황 진사의 정신적 전통이다. 황 진사에게 내포되어 있는 전통적 정신 세계의 허와 실을 구상화하는 것이 이 소설의 주제 의식이라 볼 수 있다. 황 진사는 가문에 대해 명예심이 대단한 자이다. 그렇지 않아도 선조대(先祖代)에 정승 판서 따위가 많이 났다는 것 때문에 자신도 스스로 진사 노릇을 하며 가문에 대한 자존심이 많았던 차에, 나중에는 먼 조상마저 화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황후암의 후대손(後代孫)으로서 문벌 좋은 가문의 후예임을 자랑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자존심은 의식 속에서만 자리하고 있지 실제 상황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살림이 궁색하여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어서 밥을 빌어먹는 생활을 한다. 이는 양반 후예로서의 체통을 저버리는 행동으로 드러난다. ‘쇠똥 위에 개똥 눈 것’이라며 가지고 와서는 만병 통치약이라고 헛소리를 하는가 하면, 실제로 약을 가지고 온 의도도 밥을 얻어먹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또 친구가 쓰던 책상을 가지고 와서는 억지로 사라고 권유하다 다시 밥을 얻어먹고 간다. 그는 먹고살기 위해 약장수와 결탁하여 가짜 약을 팔다 마침내 파출소로 연행되어 간다. 이렇게 보면, 황 진사의 생활은 한 마디로 양반의 체통과는 완전히 먼 행동인 것이다. 황 진사의 인물 됨됨이는 이렇게 이중적이다. 밥을 빌어먹으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주역의 지모 조화를 찬탄하면서도 그것으로 점괘나 뽑아 밥벌이를 한다. 또한 숙모가 중매를 섰을 때, 규수가 한 번 시집을 갔던 여자라는 데 화를 내고는 양반 문벌로서 있을 수 없다고 단호히 거절한다. 가문에 대한 자존심은 지나치게 강하면서 실제 생활에서는 그와 걸맞지 않은 행동을 보이는 이중성의 소유자인 것이다.

□ 전통의 부정과 긍정 : 작가는 이런 인물을 그리면서 도대체 어떤 일면을 보이려고 한 것일까? 시대 착오적인 인물을 그려, 그런 인물이 아직도 남아 있는 현실에 대한 비판을 의도하는 것인지 분명하지가 않다. 여기에서 그려지는 황 진사의 성품은 매우 부정적이다. 거들먹거리기만 하고 실속이라곤 없는 존재이다. 조선의 전통을 이은 선비 정신의 일단이 이와 같은 허풍에 있음을 작가는 어느 정도 지적하고 있는 듯하다. 명분을 중시하면서도 명분에 어긋난 행동을 서슴없이 하고서도 일말의 죄의식을 지니지 못하는 잘못된 편향성을 꼬집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황 진사를 부정적으로만 그리지는 않는다. 허풍이나 허세로 보이는 행동의 저변에는 자존심이란 정신적 올곧음으로 차 있으며, 비록 밥을 빌어먹지만 함부로 비굴해지지 않고 거들먹거려 보는 그 정신의 완고성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과부와의 혼담을 거절하는 대목에서는 선비다운 일면이 보이기도 한다. 다분히 희화화(戱畵化)된 인물인 황 진사는 현재적 관점에서 보면 분명히 시대 착오적 인물이다. 그러나 지나간 시대 정신의 한 면을 지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받아들이기 곤란한 행동 양식이지만 그것은 그것대로의 가치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삶의 방식은 어차피 사라져 가게 되어 있다.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연민의 정서로 작품을 많이 썼던 작가의 특성을 고려할 때, 이 작품 또한 그런 맥락에서 쓰여졌으리라 생각된다. 이런 면은 이 소설의 나레이터인 ‘나’의 태도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이 소설의 화자는 단순히 황 진사의 행동을 초점화 하는 기능에 머물지 않는다. 소설 속에 뛰어들어 사건의 일부를 이루면서 황 진사를 조명한다. 따라서 황 진사의 인물 됨됨이는 결국 화자에게 투영된 영상이라고 할 수 있다. 화자인 ‘나’는 일제 하의 지식인이다. 새로운 학문과 세계관을 섭렵한 자로서 황 진사의 이런 면이 용인될 리 없다. 그래서 처음 황 진사를 보았을 때는 경원시 한다. 그러나 만남의 횟수가 증가할수록 그 심리적 거리는 단축되어 간다. 처음에는 황 진사가 불쾌하였으므로 다음의 만남에서는 오히려 반가움을 느낀다. 이것은 다분히 호기심에서 기인한 것이다. 황 진사의 몰골이 형편없고 하는 짓이 우스운 나머지 인정을 하게 된 것에 대한 태도가 우호적으로 바뀌어 간다는 데서 비친 황 진사는 화자에게 가깝게 다가오는 존재임을 볼 수 있다. 지식인의 눈에 비친 전통 정신은 비판과 연민을 동시에 주는 것이라는 것이 이 소설의 핵심이 된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이 작품은 전통적 의식(意識)의 일면을 드러내 그것을 희화화함으로써, 그것의 부정적 요소를 비판하고 있는 가운데 그 부정적 측면 속에 감추어진 긍정적 측면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애틋한 향수의 감정을 형상화하고 있다.

□ 황 진사와 인물의 전형성(典型性) : 소설에서 인물 설정 유형의 하나는 전형적 인물과 개성적 인물로 나누는 것이다. 이 중 전형적 인물이란 사회의 어떤 집단이나 계층을 대표하는 인물을 말한다. 곧 성격(인물)의 공시적(共時的) 보편성을 뜻하는 것으로, “화랑의 후예”의 주인공 황 진사는 개화기 이후 일제 강점기 하에서 급변하는 시대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현실에서 참담하게 실패하면서도 끝내 체면을 소중하게 여기는 허세가 강한 인물, 나아가서는 가문의 체통을 목숨만큼이나 소중하게 여기는 인물군을 대표한다. 이와 같은 전형적 인물의 대표로서의 황 진사의 모습은 서두에서 ‘조선의 심벌’이라는 용어를 통해 이미 암시되기도 하였다.

□ 배경(背景) : 배경은 소설에서 필연적인 요소로서 시대적․사회적 배경, 자연 환경이나 사회 환경이 구체적으로 나타나야만 한다. 근대 소설에서 배경의 중요성은 더욱 크다고 하겠다. 그러나 “화랑의 후예”에서 배경은 단순한 분위기를 만들 뿐 그 이상의 목적을 지니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공간적 배경의 주무대가 화자인 ‘나’의 집이며 주 관찰자의 공간이 된다. 그리고 시간적 배경은 계절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계절의 흐름 중에서 ‘겨울’이 갖는 시간적 배경의 의미는 주인공 황 진사에게 다가오는 시련, 즉 의식주 해결 여부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한다. 또한, 구체적으로 제시되지는 않았으나 ‘시대 착오적 삶’을 살아가는 황 진사의 ‘시대(1930년대쯤으로 추정)’의 배경이 주제를 부각시키기도 한다.

□ 갈등 : 소설 속의 갈등은 곧 사건의 원인이 되는 바, 인물과 인물간의 갈등, 인물과 운명간의 갈등, 인물과 환경과의 갈등 등으로 대별할 수 있다. “화랑의 후예”는 주인공 황 진사와 대립 관계에 있는 반동 인물이나 어떤 운명적인 요소는 없다. 다만 그의 시대 착오적 삶의 형태가 삽화 제시형으로 구성되어 있는 바, 이 작품의 갈등은 인물과 환경과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관찰자인 ‘나’의 심리는 군데군데 느낌의 표현 정도로 제시되고 있기 때문에 주 갈등이라고 보기 어렵다.

□ 삽화적 구성 : 소설에서 구성이란 사건의 인과 관계에 의한 전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화랑의 후예”는 시점(1인칭 관찰자 시점)이 갖는 제약상 황 진사를 중심으로 한 일련의 사건을 전개시킬 수 있되, 어디까지나 ‘나’의 관찰 가능한 범위에서만 제시할 수 있다. 나에게 관찰되는 황 진사의 일련의 돌발적인 행동, 즉 여러 토막의 일화를 중심으로 전개시킬 수밖에 없으므로,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일화들 속에 나타나는 공통점이 무엇인가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할 것이다.

□ 거리(距離) : 소설에서 거리란 ‘인물이 관찰되는 분리(分離)의 정도’를 의미하는데, 시점(視點)은 바로 이 거리 문제와 직결된다. 작가․화자와 작중 인물 간의 거리가 가장 짧은 것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이며, 가장 먼 것은 작가 관찰자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1인칭 관찰자 시점이다.

 

▶ 황토기

 

1. 줄거리

황토골에는 상룡(傷龍), 또는 쌍룡(雙龍), 절맥설(絶脈說)의 전설이 서려 있다. 용이 피를 흘려 흙을 붉게 적셨기 때문에 황토골이라고도 하고, 산의 맥을 찌르니 붉은 피가 흘러 내려 황토골이 되었다고도 한다. 용냇가의 두레패와 떨어져 혼자 논을 매고 있던 억쇠는 분이를 기다리고, 술 동이를 이고 온 분이는 설희와 득보를 한칼에 찔러 죽이겠다고 악을 쓰다 풀 위에서 잠을 잔다. 억쇠는 장정들도 겨우 든다는 들돌을 열세 살에 들어 올린 장사이다. 그런데 황토골에는 ‘장사가 나면 부모에게 불효하고 나라에 역적이 된다’는 속설이 있다. 억쇠는 백부의 근심스런 말을 듣게 되고, 본인도 집안의 안전을 위해 힘쓰기를 삼가며 어깨를 자해하기도 한다. 허무감에 젖어 술을 마시다가 득보를 만난다. 그리고는 냇가에 오두막 한 채를 마련해 준다. 득보는 이복 형제를 죽이고 서울로 달아났다가, 어느 대갓집 부인과의 관계가 탄로 나서 황토골에까지 떠돌아 들어오게 되었다. 득보와 분이 사이에는 아이까지 하나 두었는데, 득보를 억쇠에게 주고, 분이는 억쇠와 득보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생활하는데, 득보가 여자를 얻어 오면 어떤 구실을 붙여서라도 쫓아낸다. 그러던 사이 억쇠가 과수댁인 설희를 맞아들이자 득보는 설희에게 추근거리고, 분이는 설희를 죽이려고 노리게 된다. 억쇠와 득보가 설희에게만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드디어 분이가 임신한 설희를 죽이고, 자고 있는 득보에게 중상을 입히고 사라진다. 분이를 찾아 나선 득보가 분이 대신 딸을 데려온다. 억쇠는 득보가 사라질까 봐 노심초사한다. 억쇠와 득보는 마지막 대결을 위해서 용냇가로 내려간다.

 

2.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정확히 드러나지 않음) / 공간(황토골이라는 시골)

◎ 성격 : 토속적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표현 : 배경(분위기)이 주제를 암시함.

◎ 구성

발단 - 황토골에 얽힌 전설과 배경

전개 - 억쇠와 득보의 지속적․유혈적 싸움

위기 - 억쇠와 득보의 만남과 그들 간의 인간 관계

절정 - 설희의 등장으로 인한 분이의 질투와 설희의 죽음. 분이에 의한 득보의 중상

결말 - 용냇가에서의 억쇠와 득보의 마지막 대결

◎ 주제 : 두 장사의 아무 보람도 없는 자학적인 싸움을 통하여 삶의 허무주의적 단면을 드러냄.

◎ 출전 : <문장(文章)>(1939)

 

3. 등장 인물

◎ 억쇠 : 황토골 태생의 힘이 센 장사. 황토골 전설의 ‘용’에 해당

◎ 득보 : 황토골에서 팔십 리 가량 떨어진 동해 바닷가 태생으로 힘이 센 장사. 또 다른 ‘용’에 해당

◎ 분이 : 색주가(色酒家) 출신으로 억쇠와 득보 사이의 갈등의 원인

◎ 설희 : 스물셋에 홀로 되었던 과수댁으로 억쇠에게 개가하게 되나, 끝내는 분이에게 죽음을 당하게 됨.

 

4. 이해와 감상

우리 설화에 자주 등장하는 절맥(絶脈)과 상룡(傷龍)의 모티브를 전경(前景)으로 하여, 억쇠와 득보라는 두 장사의 힘 겨루기를 줄거리로 담고 있는 소설이다. 제대로 힘을 써 보지 못하는 억쇠와, 유랑의 삶을 사는 득보가 하는 그들의 무모한 힘 겨루기는 설희에 대한 애정 문제로 옮겨지면서 비극을 맞이하는 내용의 작품이다. 작가는 서두에서 황토골의 세 가지 전설을 소개하고 있다. 상룡설(傷龍說), 쌍룡설(雙龍說), 절맥설(絶脈說)이 그것이다. 이 세 개의 전설은 주인공인 억쇠의 운명에 암시적인 조명을 던져 준다. 첫 번째 상룡설에서는 황룡 한 쌍은 승천시에 바윗돌에 맞아 출혈한다. 이것은 황토골 장사인 억쇠의 비극적 좌절을 암시한다. 두 번째 쌍룡설에서는 황룡 한 쌍이 승천 전야에 ‘잠자리를 삼가지 않아’ 여의주를 잃게 된다. 즉, 이 황룡의 좌절은 성(性)의 불근신(不謹愼)이 그 원인이었다. 억쇠의 생애를 두고 비장된 정력이 득보와의 무모한 싸움에서 소비된다는 것은 성의 부절제로 좌절하는 황룡의 운명과 비슷한 것이다. 세 번째 절맥설 역시 억쇠의 좌절을 암시하지만 이것은 좀더 구체적이다. 장사가 날 곳에서 이미 당나라의 장수가 와서 혈(穴)을 질렀으니 독수리가 날개를 찢기운 것이나 다름없다. 억쇠가 단순한 불세출의 장사로 그치고 만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이 절맥설은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 억쇠는 ‘나라에서 안다’는 황토골 장사를 구현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불세출의 장사로 남아 있다는 사실, 그리고 힘을 쓸 날을 기다리며 헛되이 청․장년 시절을 보냈다는 사실은 그 자체가 가슴에 불을 간직한 억쇠에게는 허무한 일이다. 그러나 더욱 허무한 것은 억쇠의 허무의 의식과 이에 따른 자포자기적인 정력 처리의 형식이다. 사실 억쇠와 득보의 기묘한 우정(?)의 성립도 득보가 기운이 엄청나게 세다는 데서 억쇠가 막연한 운명의 공감을 깨닫고 또 자기의 정력 처리의 적수를 발견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최초의 상봉에서 억쇠는 ‘문득 자기의 몸이 공중으로 스스로 떠오르는 듯한 즐거움’을 느끼며 그의 멱살을 놓았던 것이다. 천변에서의 무승부 격투는 외관상 치정적 양상을 띠고 있지만, 억쇠에게는 좀더 체력을 발휘하지 않는 것도 그것이 허무감에서 빚어진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가 격투 중 주먹 세례를 연거푸 받으면서도 그저 홍소(哄笑)를 터뜨리는 것도 자기가 비장해 왔던 힘의 무상성, 그리고 득보를 겨우 적수로 삼고 있다는 허무감이 주는 허탈 의식, 그리고 득보 같은 위인은 도저히 자기의 참다운 적수일 수가 없다는 공허감에서 터져 나온 것이었다. 득보가 척상을 입었을 때 억쇠가 ‘죽든 않겠나, 죽든’하고 진정으로 걱정하는 것도 득보를 잃음으로써 이러한 허무주의적 감정을 제공하는 자를 잃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억쇠와 득보의 허무한 격투, 치솟는 힘을 바르게 써 보지 못하는 억쇠의 아픔은 쌍룡설 및 절맥설과 연관되면서, 한국인이 지닌 운명론적 비극성을 강렬한 허무주의로 채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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