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현대문학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함, 김기택 [현대시]

Jobs 9 2022. 10. 2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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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함

김기택

텔레비전을 끄자

풀벌레 소리

어둠과 함께 방 안 가득 들어온다

어둠 속에 들으니 벌레 소리들 환하다

별빛이 묻어 더 낭랑하다

귀뚜라미나 여치 같은 큰 울음 사이에는

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 소리도 있다

그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한다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들이 드나드는

까맣고 좁은 통로들을 생각한다

그 통로의 끝에 두근거리며 매달린

여린 마음들을 생각한다

발뒤꿈치처럼 두꺼운 내 귀에 부딪쳤다가

되돌아간 소리들을 생각한다

브라운관이 뿜어낸 현란한 빛이

내 눈과 귀를 두껍게 채우는 동안

그 울음소리들은 수없이 나에게 왔다가

너무 단단한 벽에 놀라 되돌아갔을 것이다

하루살이들처럼 전등에 부딪쳤다가

바닥에 새카맣게 떨어졌을 것이다

크게 밤공기를 들이쉬니

허파 속으로 그 소리들이 들어온다

허파도 별빛이 묻어 조금은 환해진다

 시어

·텔레비전: 화려한 현대 물질문명을 뜻함.

·풀벌레: 물질문명에서 소외된 약한 생명체를 뜻함.

·낭랑하다: 소리가 맑고 또랑또랑하다.

·발뒤꿈치처럼 두꺼운 내 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물질문명에 빠져 소외되고 약한 이웃의 고통을 듣지 못하게 된 자아의 모습(비판적 자아 성찰)

·브라운관이 뿜어낸 현란한 빛: 화려한 현대 물질문명을 상징함.

·울음소리들: 물질문명에 가려 소외된 존재들의 슬픔을 상징함.

·단단한 벽: 소외되고 약한 생명체들을 차단하는 비정한 물질문명을 상징함.

·하루살이: 현대 물질문명의 그늘 속에서 존재감 없이 살다 죽어 가는 소외되고 약한 존재를 상징함.

·허파 ~ 환해진다: 약하고 소외된 생명체(이웃)의 고통에 대한 깨달음과 공감으로 생명체로의 자아를 재인식하게 됨.

핵심 정리

·성격: 성찰적, 비판적, 반성적, 관조적, 존재론적

·어조: 생명의 존엄성을 재인식하고 성찰하는 관조적인 목소리

·구성: [1~5연] 어둠 속에서 듣게 된 풀벌레 소리에 대한 자각

[6~12연] 작고 여린 생명들의 실존에 대한 깨달음

[13~20연] 듣지 못한 생명체의 소리들에 대한 안타까움

[21~23연] 내면으로 받아들인 생명체와 합일하는 자아

·특징: 현재형 종결어미의 반복을 통해 시상을 생동감 있게 전개함. 의인법, 대조법 등을 통해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함.

·제재: 풀벌레 소리

·주제: 물질문명으로 인해 소외된 생명체에 대한 존엄성 회복, 생명 존중의 자각

 

감상

아마 시인의 집은 가을이 깊어지면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는 숲이나 공원 근처에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보통 도시인들은 대개 바쁜 일상에 쫓겨다니거나 집에 오면 늘 켜져 있는 텔레비전 소리나 인터넷, 스마트폰 등에 매달려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면, 계절이 오는지 가는지, 가을이 깊어져 풀벌레 소리가 들리는지 별 관심을 두지 못하기 십상이지요. 

시인도 그렇게 생활하던 어느 날, 텔레비전을 끄고 주변이 어두워졌을 때 문득 풀벌레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아, 저 작은 생명들이 저리도 애처롭게 울고 있었구나. 내가 들으라고, 듣지 못하는 나에게 자신의 작은 소리 좀 들어 달라고.’

시인은 자신이 어두워져야 비로소 들려오는 여린 풀벌레 소리를 통해 화려한 현대 물질문명의 그늘에 갇힌 소외되고 약한 생명체(이웃)이 존재를 재인식하게 됩니다. 그리고 평소에 그들의 여린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한 자신의 ‘귀’, ‘벽’이 얼마나 두꺼웠는지를 깨닫게 되지요. 시인은 그 두께를 ‘발뒤꿈치’와 같다고 표현합니다. 그만큼 어렵고 소외된 이웃들과 자신이 철저히 단절되어 있었음을 알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자신이 그 소리들을 듣지 못하고 있을 때에 그 생명체들은 속절없이 죽어 가고 있었음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루살이들처럼 전등에 부딪쳤다가 / 바닥에 새카맣게 떨어졌을 것이다'

밤공기를 허파 속으로 깊이 들이마시는 시적 화자의 행동은 깨달음에 이어지는 실천을 뜻한다고 볼 수 있지요. 그 밤공기를 통해 여리고 소외된 풀벌레 소리들이 허파, 즉 자신의 생명 안으로 들어와 비로소 자신과 합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는 사회공동체, 자연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의 존엄성을 노래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화려한 물질문명의 뒤안길에서 소외되고 버려진 약한 이웃들에 대한 관심도 촉구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어느 깊은 가을날엔, 나의 밝은 빛과 화려한 소리를 차단하고 주위에서 들려오는 참으로 여리고 약한 소리들에 귀 기울이렵니다.

 



 Q  다음 시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텔레비전을 끄자
풀벌레 소리
어둠과 함께 방 안 가득 들어온다
어둠 속에서 들으니 벌레 소리들 환하다
별빛이 묻어 더 낭랑하다
귀뚜라미나 여치 같은 큰 울음 사이에는
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 소리도 있다
그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한다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들이 드나드는
까맣고 좁은 통로들을 생각한다
그 통로의 끝에 두근거리며 매달린
여린 마음들을 생각한다
발뒤꿈치처럼 두꺼운 내 귀에 부딪쳤다가
되돌아간 소리들을 생각한다
브라운관이 뿜어낸 현란한 빛이
내 눈과 귀를 두껍게 채우는 동안
그 울음소리들은 수없이 나에게 왔다가
너무 단단한 벽에 놀라 되돌아갔을 것이다
하루살이들처럼 전등에 부딪쳤다가
바닥에 새카맣게 떨어졌을 것이다
크게 밤공기 들이쉬니
허파 속으로 그 소리들이 들어온다
허파도 별빛이 묻어 조금은 환해진다
- 김기택,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함 -


① 문명과 자연의 호혜적 관계가 나타나고 있다.
② 자연의 실재감이 공감각적 이미지를 통해 부각되고 있다.
③ 텔레비전을 끄기 전후의 상황이 대조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④ 문명의 이기에 가려졌던 자연에 관심을 가지려는 태도가 나타나고 있다.

【해설】 정답 

① 문명과 자연의 호혜적 관계가 아니라 대립적 관계가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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