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문학, 비문학-독해

현대시 모음 #10 - 공무원 국어 - 문학 - 시

Jobs9 2024. 10. 2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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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년 11월 20일 지음,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윤동주가 연희 전문학교 졸업을 1개월 앞둔 1941년에 시집의 서문으로 쓴 작품이다. 시집의 서시(序詩)인 만큼 윤동주의 시 세계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시에는 윤동주 문학이 지니는 대표적 주제들인 순결성(1-4행), 인간애(5-6행), 운명애(7-8행)가 나타나 있다.

윤동주는 자신이 ‘어둠’(일제치하)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하고, 그 어둠 속에서의 삶을 부끄러워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성찰하였다. 이것이 이 작품의 시작 동기(motif)이다.

윤동주의 시에는 ‘별, 하늘, 바람, 밤’ 등이 자주 나온다.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시어들의 상징적 의미 파악이 선행되어야 한다.

* 하늘 : 윤리적 판단의 주재자(主宰者)

* 별 : 희망, 이상의 세계. 순수한 자아의 세계

* 바람 : 식민지 상황에서 오는 시련

* 밤 : 암담한 현실. 식민지 상황

▶ 성격 : 성찰적, 고백적, 의지적

▶ 심상 : 별과 바람의 시각적 심상

▶ 경향 : 참여적

▶ 어조 : 고백적 어조와 의지적 어조

▶ 특징 : ① 대조적 심상의 부각 ― (별과 바람)

② 서술과 묘사에 의한 표현

③ 자연적 소재의 상징화

▶ 시상 전개 : 시간의 이동에 따른 전개.(과거→현재→미래)

▶ 구성 : ① 삶의 부끄러움과 괴로움(1-4행)

② 미래의 삶에 대한 결의(5-8행)

③ 현재의 상황적 갈등(9행)

▶ 제재 : 별.(이상의 세계, 순수한 양심)

▶ 주제 : 부끄러움이 없는 삶의 소망

 

<연구 문제>

1. 이 시에서 시상이 응결된 지배적 심상을 하나 찾아 쓰라.☞ 별

2. 이 시에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갈등이 형상화되어 있다. 이것을 상징하는 시어를 각각 찾아 쓰라. ☞ 별(이상)과 바람(현실)

3. 이 시가 시인의 섬세하고 결백한 심성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고 평가된다면, 어떤 점에서 그러한지를 60자 정도로 설명하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에 아주 작은 시련에도 괴로워하는 심정을 시각적 심상으로 섬세하게 표현했다.

4. ㉠에서 연상되는 맹자(孟子)의 ‘군자 삼락(君子三樂)’의 하나를 쓰라. ☞ 仰不愧於天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전 2연으로 되어 있으나 시간의 이동에 따라 과거, 미래, 현재의 3단락으로 구분해서 이해하는 것이 좋다. 즉, 제1연의 1-4행(과거), 5-8행(미래), 제2연(현재)으로 나눌 수 있다.

제1연의 1-4행은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의 고백이다. 죽을 때까지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살아왔으며, 또 조그마한 시련(‘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제1연의 5-8행은 미래의 삶에 대한 신념을 표명(表明)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적 갈등(‘부끄럼’)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불쌍한 이웃, 동포 더 나아가서는 모든 생명체를 지고(至高)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하겠으며, 맡은 바 사명을 다하겠다는 다짐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은 영원이나 이상을 추구하는 마음으로, 지극히 높고 순수한 마음을 뜻한다. ‘모든 죽어가는 것’이란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이라는 뜻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제2연은 현재의 상황을 묘사적 이미지로 형상화한 단락이다. 식민지 상황(‘밤’)에서 시의 화자가 드높은 이상(‘별’)을 실현하는데 현실적 어려움(‘바람’)에 부딪혀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표현하였다.

결국 이 작품은 식민지 상황에 처해 있는 젊은 지식인의 고뇌와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표백(表白)한 시다. 그래서 더욱 진솔(眞率)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고백적인 시가 감상에 흐르거나 관념에 빠지기 쉬운데, 이 시는 적절한 시각적 심상을 활용하여 서정시로 승화시키고 있다.

 

 

 

회록

-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어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가.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주리자.

---- 만 이십 사 년(滿二十四年) 일 개월(一個月)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든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든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어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윤동주는 암흑기인 일제 말기에 시대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껴안아 자신의 삶이 욕되다고 생각하고 이를 부끄러워했다. 그래서 자신을 참회하고 성찰하면서 살아야 했다. 이것이 이 시의 시작 동기이다. 이 시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다음 사물이 상징하는 뜻을 파악해야 한다.

* 구리거울 : 패망한 조선 왕조의 유물로 자신의 정신을 비춰 주는 매개체이다.

* 밤 : 즐거운 날과 대립되는 시어로 암담한 현실을 상징한다.

▶ 성격 : 성찰적, 고백적, 참여적

▶ 특징 : ① 역사 의식의 표출

② 상징에 의한 심상

▶ 시상 전개 : 시간의 흐름에 따른 전개

▶ 구성 : ① 역사 속의 욕된 자아(제1연)

② 과거와 현재 생활의 참회(제2-3연)

③ 끊임없는 자아 성찰(제4연)

④ 숙명적인 고난의 길(제6연)

▶ 제재 : 녹이 낀 구리거울.(부끄러운 삶)

▶ 주제 : 역사 속에서의 자아 성찰과 고난 극복 의지

 

<연구 문제>

1. (1)이 시의 모티프가 된 소재를 찾아 쓰고, (2)그 말이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지 10자 내외로 쓰라.

☞ (1) 구리거울 (2) 자아 성찰의 매개물

2. 이 시에서 화자가 갈등을 일으키는 요인은 무엇 때문인가? 제1,2연의 내용을 근거로 설명하라.

☞ 나라를 잃은 백성으로 희망도 없이 무의미하게(무기력하게) 살아온 자신이 부끄럽기 때문이다.

3. 제3연의 참회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 한 문장으로 쓰라.

☞ 서러운 넋두리를 담아 부끄러운 고백을 했던 것에 대한 참회이다.(지난날의 좌절감을 힐책하는 참회이다.)

4. 화자는 미래에 대한 어떤 신념을 지니고 있는지 ㉠과 관련하여 설명하라.

☞ 조국 광복을 향해 희생(고난)의 십자가를 걸머지고 나아가리라는 신념을 지니고 있다.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일제 치하에서 자신의 비참하고도 값 없는 삶을 부끄러워하고,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며 쓴 작품이다.

제1연은 암울한 일제 치하에서 망국민(亡國民)으로 무의미하게 생존해 있는 자신이 수치스럽고 욕되다는 것이다. ‘파란 녹이 낀 거울’ 속의 나는 식민지 백성으로 욕된 삶을 살아가는 화자 자신이기도 하다.

제2연은 망국민으로 살아온 자기의 삶을 참회하고 있다. 너무나 부끄러운 삶이었기에 길게 참회할 것도 없다고 한다. ‘만 이십 사 년 일 개월’은 지금까지 희망도 없이 무의미하게 살아온 생애를 뜻한다. 제1연과는 인과(因果) 관계에 있다.

제3연은 앞으로 반드시 오고야 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참회를 하게 될 것이다. 즉, 젊었을 때 왜 암담한 현실에 대응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자기 고백이나 하고 있었느냐고. ‘즐거운 날’은 우리 민족의 광복의 날을 뜻한다.

제4연은 아픈 자기 성찰을 하자는 것이다. 무기력하게 실의에 빠져 있는 자신을 채찍질하고 지향점을 찾자는 것이다.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는 온몸으로 가능한 한 열심히 성찰하자는 것을 제유법(提喩法)을 써서 표현한 것이다. 자아 반성을 통한 결의를 보여 준다.

제5연은 앞으로 자신이 살아갈 모습을 형상화한 연이다. 어두운 밤 하늘에 사라지는 별을 보면서 외롭게 걸어가는 자신의 모습이 거울 속에 보인다는 것이다. ‘운석(隕石)’의 원뜻은 별똥별이다. 이 말은 별이 하나 지면 누군가가 죽는다는 죽음의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이 시는 윤동주가 일본에 건너가기 직전에 쓴 것인데, 이 시를 쓸 당시에 이미 스스로 앞날의 운명을 예견했다는 점에서 퍽 감동적이다. 특히,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은 윤동주의 생애와도 직결된다. 이 시인은 일본에서 독립 운동가로 체포되어 2년 형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외로이 복역하다가 해방을 6개월 앞두고 옥사했다. 

 

 

 

헤는

-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서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타향에서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면서 아름다웠던 유년 시절을 회상하고, 갖가지 상념에 사로잡히는 것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전반부는 현상을 직서적으로 표현하였으나, 후반부는 고뇌와 소망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별’은 회상의 매체이며, 동경하는 세계를 상징하고 있다.

▶ 특징 : 맑고 앳된 감각과 구김살 없는 서정성

▶ 구성 : ① 끝없는 상념(제1-3연)

② 과거에 대한 상념과 미련(제4-7연)

③ 현재의 삶에 대한 부끄러움(제8-9연)

④ 소생과 부활의 희망(제10연)

▶ 제재 : 별.(과거의 추억)

▶ 주제 : 고향에 대한 동경과 자아 성찰

 

<감상의 길잡이>

전 10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과거의 추억, 현재의 고뇌, 미래의 희망으로 구분하여 이해하는 것이 좋다. 즉, 제1-7연(과거,추억), 제8-9연(현재,고뇌), 제10연(미래,희망)으로 나눌 수 있다.

제1-2연에서 가을, 밤 하늘을 배경으로 작중 화자는 별을 헤아린다. ‘가을’은 쓸쓸함과 덧없음의 이미지와 통하고, ‘하늘’은 맑고 아름다운 것을 상징하고, ‘별’은 회상의 매개체이면서 동경의 세계를 상징한다.

제3연은 하늘의 별을 보면서 가슴 속의 갖가지 과거의 추억을 되살려 본다. 그러나 내일이 있기 때문에 추억에만 잠길 수는 없다.

제4-5연에서는 상념(추억)을 하나하나 나열하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친구, 이웃 사람들, 동화의 주인공, 시인들… 이 모두 그리운 존재다. 제5연은 제4연의 운문 형식과 달리 산문 형식을 취하여 리듬의 변화를 주고 있다.

제6연은 이들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의 외로움이 표현되어 있다.

제7연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만날 수 없는 안타까움이 나타나 있다.

제8연은 잃어버린 추억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각을 나타낸 것이다. ‘이름을 써 보고’는 자의식 또는 민족 의식의 자각으로 해석된다. ‘흙으로 덮어 버렸습니다’는 조국을 잃은 백성으로서 존재의 부끄러움으로 인한 행위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제9연은 자신의 무력한 생활에 대한 성찰과 존재에 대한 부끄러움을 객관화하여 표현한 것이다. ‘벌레’는 시적 화자의 객관적 상관물이다. ‘밤’은 암담한 상황을 상징한다.

제10연은 슬픔을 희망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현재의 ‘나’는 ‘겨울’처럼 고통스럽고 죽음과도 같은 생활을 하지만, ‘봄’이 오면 나의 잃어버린 삶과 꿈은 되살아날 것이라고 확신하는 내용이다. ‘봄’은 현재의 고난이 끝나는 날 곧 광복의 날을 상징한 것이고, ‘풀’은 부활(復活), 재생(再生)의 이미지로 쓰인 것이다.

지난날에의 그리움과 더 높은 내일의 이상을 노래한 이 시는 전반부에서는 감상적으로 표출한 면도 없지 않지만, 후반부에서는 확고한 신념과 믿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산문체로 서술하여 다수 산만한 면도 없지 않지만, 청순한 감각과 투명한 이미지로 서정성을 높여 주고 있다.

 

 

 

다른 고향

- 윤동주

 

故鄕에 돌아온 날 밤에

내 白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宇宙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서 곱게 風化作用하는

白骨을 들여다 보며

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白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志操 높은 ㉡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白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故鄕에 가자.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윤동주는 고향인 북간도에서 아름다웠던 유년 시절을 보냈으나 서울 유학 생활을 하면서 현실의 암담한 상황을 깨닫게 된다. 그후 고향에 돌아왔으나 마음에 그리던 고향을 상실하고 내적 자아가 분열을 일으키고 있는 상태를 형상화한 것이 이 시이다.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 백골, 아름다운 혼’의 관계를 파악해야 한다.

▶ 성격 : 상징적, 성찰적, 관조적

▶ 특징 : 자아의 대립에 의한 갈등 구조

▶ 구성 : ① 귀향과 자아 분열(제1,2연)

② 두 자아의 갈등(제3연)

③ 불안과 강박 관념(제4,5연)

④ 이상향의 동경(제6연)

▶ 제재 : 고향의 상실

▶ 주제 : 이상향에 대한 동경

 

<연구 문제>

1. 이 시는 시적 화자가 의식의 분열을 일으켜 서로 갈등을 일으키는 구조로 되어 있다. (1)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두 자아를 찾아 쓰고, (2)어떠한 자아인지 설명하라.

☞ (1) ‘백골’과 ‘아름다운 혼’

(2) ‘백골’ : 현실에 안주하여 살고자 하는 도피적 자아

‘아름다운 혼’ :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자아

2. 이 시에서 화자가 갈등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게 하는 획기적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은 무엇인가?

☞ 어둠을 짖는 개

3. (1)화자가 처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두 시어를 찾아 쓰고, (2)그것이 뜻하는 바를 쓰라.

☞ (1) ‘밤’과 ‘방’

(2) ‘밤’ : 암담한 상황

‘방’ : 부자유스런(닫힌) 세계

4. ㉠과 ㉡이 추구하는 세계가 같다고 본다면 어떤 점에서 같은지 설명하라. ☞ 현실의 어둠을 거부하고 그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감상의 길잡이>

전 6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조금 난해한 작품이다.

제1연은, 그리던 고향에 돌아왔으나 그 곳에는 유년의 평화로움이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어둠으로 가득찬 장소일 뿐이다. 이미 육신이나 영혼이 함께 편안히 안주할 수 있는 장소는 아니다. 고향에서 안주하고자 하는 ‘나’는 이 암담한 식민지 현실 속에서 이미 죽어 백골과 같은 존재가 되고 말았다.

제2연에서는 닫힌 세계(‘어둔 방’)에 있으려니 ‘나’를 열린 세계(‘우주’)로 부르는 바람 소리가 들린다. ‘하늘에서 불어 오는 바람’은 현실에 안주하려는 ‘나’를 새로운 세계로 향하게 한다.

제3연은 고향에 돌아와 자아가 분열되어 갈등을 일으키는 현상을 형상화한 것이다. 현실에서 안두하고자 하는 현실적 자아(‘백골’)와 현실의 안주를 거부하고 이상을 추구하려는 이상적 자아(‘아름다운 혼’)가 갈등을 일으킨다. ‘백골’은 식민지 현실 속에서 생명력이 이미 다한 자신의 현실적인 모습을 표현한 것일 터이다.

제4연에서는 어디선가 본질을 지키라는 소리가 들린다. ‘어둠을 짖는 개’는 암담한 현실 속에서 무력한 생활을 하는 ‘나’를 일깨우는 것으로 풀이된다.

제5연에서는 ‘나’의 안일한 자세를 일깨우는 소리가 ‘나’의 양심을 압박해 온다. 강박 관념을 표현한 것이다.

제6연은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부끄러운 자아를 떼어 놓고 새로운 이상의 세계로 가자는 것이다. ‘또 다른 고향에 가자’는 말은 시대적 상황으로 정신적 고뇌를 겪고 있는 스스로를 구현하기 위해 새로운 세계(즉, 미래의 이상향)를 지향하는 것으로 읽힌다.

윤동주 시의 주요한 모티프를 이루고 있는 ‘그리움’은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특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대단하다. 평화롭기만 했던 유년 시절의 추억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시는 고향에 대한 단순한 그리움만을 노래한 것은 아니다. 평화롭고 아름답기만 했던 고향을 떠나 평양, 서울, 일본을 전전하면서 암담한 현실을 깨닫고 고향에 돌아와 보니 옛날의 고향이 아님을 알게 되고 비애, 불안 심리, 강박 관념에 사로잡히게 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고향으로 가자는 것이다. 이 시는 그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게 쓰여진 시

- 윤동주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詩人)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詩)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學費封套)를 받어

 

대학(大學)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敎授)의 강의(講義)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時代)처럼 올 아츰을 기다리는 최후(最後)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慰安)으로 잡는 최초(最初)의 악수(握手).

--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윤동주가 일본에 유학 중이던 1942년에 쓰어진 것이다. 식민지 시대에 조국을 떠나와 일본에 살면서 시(詩)나 쓰고 있는 자기 자신의 무기력함을 자책하고, 자아를 성찰하여 자신의 갈 길을 정립하고자 한 작품이다. 즉, 자기 자신에 대한 끝없는 좌절과 번민, 무력감을 부끄럽게 느끼면서 끝없는 모색의 노력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시인의 사명감을 자각해 가는 성찰의 모습을 솔직하고도 섬세하게 보여주는 작품인 것이다.

윤동주가 어떻게 자신의 생활을 준엄하게 비판하고, 도덕적으로 어떤 결벽성을 지녔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 육첩방 : 작은 다다미방. 억눌리고 암담한 공간. (자아를 구속하는 숨막히는 공간)

* 천명(天命) : 하늘이 내린 피할 수 없는 명령

* 어둠 : 절망적인 당시의 상황. (일제의 탄압)

* 아침 : 새로운 세계. (조국의 광복)

* 등불 : 암담한 현실을 헤쳐가는 정신적 지표

▶ 성격 : 명상적, 관조적, 고백적, 성찰적, 저항적, 미래지향적

▶ 심상 : 주로 서술에 의한 심상, 시각적 심상, 대립적 심상

▶ 어조 : 차분하게 자기를 반성하는 어조

▶ 특징 : 상징어의 사용

▶ 구성 : ① 기 : 배경의 제시(제1연)

② 승 : 무기력한 생활(제2-4연)

③ 전 : 부끄러움의 각성(제5-7연)

④ 결 : 현실 극복의 의지(제8-10연)

▶ 제재 : 시인의 생활.(시가 쉽게 씌어지는 부끄러움)

▶ 주제 : 암담한 현실 극복의 결의.(이국에서의 고독과 시인으로서의 천명성 확인)

 

<연구 문제>

1. 이 시에 쓰인 ‘빛’과 관련된 시어 중에서, (1)시상(詩想)이 응결된 것을 찾아 쓰고, (2)그 상징 의미를 두 어절로 쓰라.

☞ (1) 아침 (2) 조국 광복

2. 이 시의 화자는 어떤 생활로 인하여 갈등을 일으키는지 80자 내외로 설명하라.

☞ 인생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지 못하는 무의미한 시나 쓰고, 현실과 거리가 먼 지식이나 얻으러 다니는 생활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갈등을 일으킨다.

3. 마지막 연에는 두 개의 ‘나’가 화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각각 어떠한 자아인지 차이점을 70자 내외로 쓰라.

☞ 하나는 암담한 현실에서 부끄러운 삶을 살고 있는 무기력한 자아이고, 또 하나는 현재의 상황을 반성하고 극복하려는 자아이다.

 

<감상의 길잡이>

전 10연으로 된 이 시는 생활의 성찰과 극복의 의지로 구분할 수 있다.

제1연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단적으로 제시했다. ‘육첩방’은 일본이라는 낯설고 부자유스러운 공간을 뜻하며, ‘밤비’는 암담하고 쓸쓸한 당시의 상황과 관련된다.

제2연은 시인으로서의 괴로움을 표명한 것이다. 시인이란 당시의 현실에 직접 대응하지 못하고 다만 언어를 다듬고 있는 천명(天命)을 지닌 사람이라는 데서 괴로움을 느낀다.

제3-4연은 현실을 외면하고, 낡은 지식이나 얻으려 대학에 다니는 자신의 생활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늙은 교수의 강의’는 현실과 거리가 먼 낡은 지식으로 해석된다.

제5-6연은 유년 시절에는 꿈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것을 다 잃어버리고 일본에서 무의미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회의(懷疑)가 싹튼다.

제7연은 시를 쓰는 일, 공부를 하는 일 등이 현실 상황과 괴리(乖離)되어 있음을 자각하고 부끄러워한다. 윤동주의 부끄러움은 현재의 암담한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의미한 삶에 연유한다.

제8연은 제1연을 변형한 것으로 배경의 제시다. 부자유한 상황과 암담한 현실이 자신을 자꾸 압박해 온다.

제9연에서 시적 화자는 이런 상황과 현실에서 체념하지 않고 극복하려는 결의를 보여 준다. 이 ‘어둠’을 조금씩 몰아내기 위해 ‘등불’을 밝혀야겠다. 그러면 밝은 시대가 올 것이다. ‘등불’은 광명의 심상으로 새로운 시대를 위한 노력이며, ‘아침’은 새 시대로 ‘어둠’과 대립을 이룬다. ‘최후의 나’는 굳은 의지의 자아로 보인다.

제10연은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두 자아가 화합을 하는 장면이다. 여기에 두 ‘나’가 나오는데 암담한 현실에서 우울하게 살아가는 체념적인 자아와 현실을 반성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자아가 그것이다. ‘최초의 악수’는 새로운 출발을 위한 분열된 자아의 화해, 일치를 뜻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시는 ‘부끄러움’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형상화 하고 있다. 그 부끄러움은 학문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乖離感), 시를 쓰는 자신과 시 사이의 거리감(距離感) 등에서 오는 것이다. 그래서 시적 화자는 소외 의식과 내적 갈등을 일으킨다. 그러나 그는 부끄러워하지만 결코 절망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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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十字架)

- 윤동주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윤동주는 철저한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하였으므로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 시는 그러한 기독교적 수난 의식과 속죄양(贖罪羊) 의식을 바탕으로 씌어진 것이다.

이 시에는 윤동주의 인생관이 나타나 있다. 그는 당시의 상황을 어두운 밤으로 인식하고 자기 희생으로 그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 시에서 ‘십자가’는 기독교의 징표나 형벌의 도구를 뜻하는 관습적 상징으로만 쓰인 것이 아니고, ‘종교적 또는 도덕적 생활의 목표’를 뜻하는 개인적 상징으로 쓰인 것이다.

▶ 성격 : 상징적, 기독교적, 저항적, 의지적, 독백적

▶ 심상 : 청각적, 시각적 심상

▶ 어조 : 결의에 찬 신념의 목소리

▶ 특징 : ① 역설적으로 표현

② 저항적 태도가 드러남

▶ 시상 전개 : 외면 세계에서 내면 세계로 전개

▶ 구성 : ① 첨탑에 대한 동경(제1-2연)

② 현실에 뛰어들지 못하고 망설임(제3연)

③ 희생의 목표 설정(제4연)

④ 구원을 위한 희생의 결의(제5연)

▶ 제재 : 십자가

▶ 주제 : 고난을 짊어지려는 희생의 의지

 

<연구 문제>

1. 이 시에서 (1)관습적 상징으로 쓰이는 사물을 시인이 특수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시어를 지적하고, (2)그것이 문맥상 어떤 의미로 쓰인 것인지 설명하라.

☞ (1) 십자가

(2) 시적 화자가 도달하기 어려움을 절실히 느끼면서도 동경하여 마지않는 종교적 또는 도덕적 생활의 목표

2. ㉠에서 예수는 괴로웠으나 행복하다고 모순된 표현을 한 이유를 50자 내외로 설명하라.

☞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괴로웠겠지만, 인류를 구원한 것으로 보면 행복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3. (1)삶의 태도가 의지적으로 표현된 연을 찾아 쓰고, (2)시적 화자가 보여 주고 있는 결의를 하나의 문장으로 쓰라.

☞ (1) 제5연

(2) 나는 민족을 구원하기(독립시키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였다.

4. ㉡에서 보조 관념으로 쓰인 ‘꽃’의 비유적 의미를 30자 정도로 쓰라.

☞ 비장한 최후가 오히려 황홀하 경지에 이를 수도 있음을 비유한다.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윤동주의 종교관과 역사관, 인생관이 잘 나타난 작품이다.

제1연에서 나의 희망 또는 목표는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려 있다고 진술하고 있다. ‘햇빛’은 이상이나 희망의 이미지다. ‘십자가’는 시적 화자의 종교관이나 역사관 또는 인생관과 관련된 목표를 뜻한다.

제2연에는 삶의 목표와 시적 화자의 거리감, 단절 의식이 엿보인다. 약한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갈등이 내포되어 있다.

제3연에서 화자는 첨탑에 올라갈 수 없기 때문에 혼자서 서성거리며 방황한다. 시인의 고독한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신념과 행동의 괴리감(乖離感)에서 고민하는 모습도 보인다.

제4연은 예수 그리스도는 현실에서 인류의 모든 짐을 지고 괴로워했으나 십자가에 못박혀 희생되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행복하였다고 여긴다. 그래서 예수처럼 자기 희생을 위한 십자가가 허락되기를 바란다.

제5연에는 순절 정신(殉節精神)이 나타나 있다. 자신도 당시의 어두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처럼 순절(殉節)하겠다는 것이다. ‘어두워 가는 하늘 밑’은 암담해지는 당시의 상황을 상징한 것이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는 희생을 통한 구원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시에는 수난 의식(受難意識)과 속죄양 의식(贖罪羊意識)이 깔려 있다. 그것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러나 더 직접적인 동기가 되는 것은 일제 치하의 어두운 시대에 무기력하게 사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책과 현실적 괴로움에 근거한다. 그 자책과 괴로움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순절(殉節)을 생각한 것이다. 그것은 민족을 위해서 스스로 희생하겠다는 소명 의식(召命意識)으로 파악해도 좋을 것이다.

윤동주는 29세의 젊은 나이에 일본에서 옥사(獄死)했다. 시 정신과 행동이 일치된 좋은 본보기다.

 

<맥락 읽기>

1. 화자는? ☞ 나오지 않는다.

2. 말하는 대상이 있나? ☞ 없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3.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시 속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① 1연 : 쫓아오는 햇빛이 십자가에 걸렸다.

② 2연 : 십자가가 너무 높아 자신은 올라갈 수 없다.

③ 3연 :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린다.

④ 4연, 5연 :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조용히 흘리겠다.

4. 위에서 살펴본 내용 중 가장 핵심적인 이야기는?

☞ 자신도 예수처럼 십자가에 못박혀 피를 흘리겠다.

4-1. 4의 의미를 자세히 알아 보기 위해 1,2행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알아 보자.

☞ 인류의 고통을 짊어졌기 때문에 괴로웠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희생되었음으로 해서 행복했습니다.

5. 그렇다면 화자가 왜 ‘십자가’를 짊어지고자 했는지 다음 시인의 생애를 바탕으로 해서 생각해보자.

시인 윤동주(1917~1945)는 북간도 명동촌에서 당시 명동학교 교사였던 윤영석 씨의 맏아들로 태어남.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분위기와 비교적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성장. 민족의식이 강했던 북간도에서 중학교 생활을 보냄. 그의 평생의 동지였던 사촌 형 몽규는 김구가 주관하던 낙양 군관 학교에 입학 독립 운동에 투신하고 1년만에 요시찰 인물이 되어 돌아옴. 이때 동주도 평양의 숭실 중학교에 편입하게되고 후에 일제 신사 참배 강요에 대한 항의로 자퇴. 1938년 몽규와 나란히 연희 전문 문과에 입학. 연희 전문의 4년간의 생활 동안 동주는 본격적인 시 창작 활동에 전념하여 주옥 같은 시를 남김. 시집으로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란 제목으로 시집을 내려했으나 일제말기의 험학한 상황과 경제적 사정으로 뜻을 이루지 못함. 1942년 졸업 후 , 그는 몽규와 함께 유학길에 오름 1943년 7월 여름 방학을 맞아 귀향길을 서두르던 중 독립 운동의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 1945년 2월 16일 동주는 복강 형무소에서 갖은 악형 끝에 생을 마감함. 시신을 수습하러 간 동주의 아버지가 사촌형 몽규를 면회했는데 동주의 죽음의 원인은 일제의 생체 실험이었음이 드러남. 몽규도 한달 뒤 숨을 거둠.

☞ 민족을 위한 희생의 의미.

6. 시대적 상황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구절을 찾아 보자.

☞ 어두워 가는 하늘

7. 위의 문제 5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십자가’는 일반적으로 기독교의 징표를 나타낸다. 이 시에서 ‘십자가’는 화자에게 어떤 존재일까?

☞ 화자가 도달하고자 하는 종교적, 도덕적 생활 목표.

8. 1연에서 ‘햇빛’의 이미지는?

☞ 밝음, 희망, 이상...

8-1. 1연에서 ‘지금’은 어느 때인가?

☞ 점점 암담해 가는 상황

8-2. 1연 1행의 의미는?

☞ 희망과 이상을 가지고 가치있는 삶을 추구

8-3. 1연 2, 3행의 의미는?

☞ 시대 상황이 점점 어두워 가는 지금 ‘십자가’를 생각하게 된다.

9. 3연 2행의 ‘서성거리다’란 시어에서 알 수 있는 화자의 태도는?

10. 이 시의 주제는?

☞ 민족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겠다는 결의.

 

 

 

우의 인상화(印象畵)

- 윤동주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애띤 손을 잡고

'늬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은 진정코 설은 대답이다.

 

슬며시 잡았던 손을 놓고

아우의 얼굴을 들여다 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걸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연희 전문학교에 입학하던 1938년에 쓴 작품으로 어느 날 밤, 형인 화자가 아우와 나누었던 대화를 소재로 하여 삶의 우수(憂愁)를 노래하고 있다. 언뜻 보면 뛰어난 문학적 기교도 없고 인생에 대한 깊은 철학도 담겨 있지 않은 평범한 작품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 이 시는 윤동주가 추구하는 삶이 무엇인지 가늠케 해 주는 열쇠 구실과 함께, 일제 치하라는 암울한 시대 상황 앞에서 어떤 시를 쓰게 될지 알게 해 주는 나침판 역할을 하는 중요한 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이 시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2․3․4연에서 형제가 주고받는 몇 마디 대화와 동작뿐이며, 나머지 1․5연은 아우의 얼굴에서 느낀 화자의 슬픔을 변주하여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즉,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라는 화자의 질문에 아우는 ‘사람이 되지’라고 짤막하게 대답한다. 이러한 아우의 말에 대해 화자는 ‘진정코 설은 대답’이라고 여기며, 아우의 순진성을 말하기보다는 오히려 그에게서 슬픔을 느낀다. 이것이 이 작품의 전부이다. 그러므로 이 시를 온전하게 감상하기 위해서는 먼저 형제가 나누는 대화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화자가 아우에게서 ‘슬픈 그림’ 같은 모습을 발견했는지 정확히 파악해야 할 것이다.

이십일 년이라는 결코 길지 않은 삶을 살아온 화자이지만, 그가 삶에 대해 갖는 태도는 다분히 부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자식으로, 그것도 한 많은 만주 유이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민족의 아픔을 맛보면서 남다른 민족 의식과 각별한 신앙심을 키우며 성장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바로 이런 점에서 자신의 이상과 암울한 현실 사이에서 빚어지는 온갖 갈등을 겪으며 이 같은 부정적 인식이 배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신의 행복을 위해 양심을 버리는 부끄러운 삶을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직한 인간으로서 양심대로 사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몸소 체험으로 터득하게 된 화자로서는, ‘자라서 무엇이 되려니’라는 물음에 ‘사람이 되지’라고 쉽게 말해 버리는 어린 아우의 대답이 여간 불만스러운 게 아니었을 것이다.

사랑스런 아우가 어른이 되기까지 겪어야 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알고 있는 화자는 그 순진 무구한 아우의 대답을 듣고, 다시금 그의 얼굴을 들여다 본다. 그 때, 아우의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어리어’ 있음을 발견한 화자는 그의 얼굴에서 ‘슬픈 그림’을 떠올린다. 다시 말해, 달빛에 젖은 아우의 얼굴이 화자의 눈에는 마치 ‘슬픈 그림’처럼 보이게 된 것이다. 물론 여기서 실제로 슬픈 것은 아우가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화자의 마음이다. 아무런 걱정거리 없이 행복하게 생활하는 아우에게서 잃어버린 자신의 유년을 찾곤 하던 화자로서는 아우가 자라면서 상실할 수밖에 없는 그 행복과 순진 무구함이 더할 수 없이 슬프게 느껴지게 된 것이라 하겠다.

이렇게 이 시는 암울한 식민지 치하에서 온갖 고통을 극복하며 정직하게 살아가는 시인이 어린 아우와의 대화를 통해 그의 순진 무구함과 행복스런 모습을 발견하지만, 자신이 소망하는 성실한 인간으로 성장하며 겪어야 할 아우의 고통을 생각하며 괴로움에 빠지는 진지함을 보여 주고 있다. 이와 같이 다소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전개되는 시인의 비극적 자기 인식이야말로 투철한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며, 올곧은 삶을 살고자 했던 참 신앙인으로서의 철학적 산물임에 틀림없다. 이 같은 삶의 자세가 바로 그로 하여금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완벽한 삶을 살게 해 준 버팀목이 되었음은 물론, 그러한 삶이 표출된 훌륭한 시를 다수 창작해 내게 함으로써 우리 시문학사에 ‘위대한 시인’이라는 수식어로 그의 이름을 빛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줌싸개 지도

- 윤동주

 

빨래줄에 걸어논

요에다 그린 지도

지난 밤에 내 동생

오줌싸 그린 지도

꿈에 가본 엄마 계신

별나라 지돈가?

돈 벌러간 아빠 계신

만주땅 지돈가?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윤동주가 19세이던 1936년에 썼다고 알려진 동시(童詩)이다. 작품의 뒷 배경으로 나타나는 비극적 현실 상황은 어린 나이 때부터의 투철했던 시인의 역사 인식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선경 후정(先景後情)의 2연 구성으로 된 이 시는 일제의 잔혹한 수탈로 인해 완전히 파괴되어 버린 어느 가정의 비극사를 어린이 화자의 눈과 입을 통해 간결하게 보여 주고 있다. 표면적 의미로만 보면 작품 속의 어린 형제들에겐 부모님이 계시지 않다.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돈 벌러 만주로 갔다. 현실의 불행을 제대로 의식하지 못하는 어린 화자는 어느 날 아침, 동생이 요에다 그린 ‘오줌싸개 지도’를 빨래줄에 널면서 그것은 간밤에 동생이, 죽은 엄마가 가 있는 별나라나 또는 아빠가 돈 벌러간 만주 땅을 그린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그러나 그 장난스러운 상상 속에는 우리 민족의 불행했던 역사의 한 단면이 나타나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그냥 웃고 넘길 수만은 없게 만들고 있다.

 

 

 

화상(自畵像)

-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追憶)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1939년 9월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나르시스가 우물 속에 비친 자기의 모습에 반하여 수선화가 되었다는 그리스 신화와 맥이 통한다. 즉, 나르시시즘(narcissism)을 바탕으로 하여 자아 성찰을 하기 위하여 씌어진 것이다.

이 시에는 우물 속의 ‘사나이’가 등장하고 그를 들여다보는 ‘나’가 있다. 이 둘은 양분된 자아로서 부정(否定)과 긍정(肯定)을 거듭하다가 화합하는 과정을 거친다. 변증법적 구조다.

‘우물’은 윤동주의 시에 자주 나오는 ‘거울’이나 ‘하늘’처럼 내 모습이나 생활을 성찰하는 매체이며 밀실의 심상도 포함되어 있다.

▶ 성격 : 성찰적, 고백적

▶ 경향 : 나르시시즘적(的)

▶ 어조 : 여성적 어조.(‘~습니다’의 어미 활용)

▶ 특징 : ① 평이한 구어체 사용

② 산문적 표현

▶ 시상 전개 : 반복에 의한 전개

▶ 구성 : ① 우물 속의 정경 관조(제1-2연)

② 추한 자신에 대한 미움(제3연)

③ 불쌍한 자신에 대한 연민(제4연)

④ 자기 자신에 대한 그리움(제5-6연)

▶ 제재 : 우물 속의 자아

▶ 주제 : 자아 성찰과 자신에 대한 애증

 

<연구 문제>

1. 이 시에서 화자의 자신에 대한 감정이 어떻게 변하는지 3단계로 쓰라.

☞ 미움 → 가엾음 → 그리움

2. 이 시에서 ㉠은 화자가 이상(理想)으로 생각하는 삶의 공간을 시각적 심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 심상들이 지닌 공통점을 모두 쓰라. ☞ 아름답고 맑고 깨끗한 속성을 보여 주고 있다.

3. ㉠의 ‘우물’과 화자와의 관계를 설명하라.

☞ 나의 과거와 현재를 비추어 주는 매개체

4. (1)공감각적 표현을 한 시구를 찾아 쓰고, (2)감각의 전이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하라.

☞ (1) 파아란 바람

(2) 촉각을 시각으로 전이시켜 표현하였다.

 

<감상의 길잡이>

전 6연으로 된 이 시는 산문처럼 쓴 자유시다.

제1연은 자신을 성찰하기 위해서 ‘나’는 논가 외딴 우물을 찾아가 가만히 들여다 본다. ‘외딴’, ‘홀로’, ‘가만히’에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성찰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우물’은 거울의 심상과 통한다.

제2연은 우물 속의 풍경을 묘사한 것이다. 달, 구름, 하늘, 바람 등 자연의 아름답고 순수한 모습이 전개된다. 이 자연의 묘사는 나의 초라한 모습과 대조시키기 위한 것이다. ‘파아란 바람’은 촉각을 시각으로 전이시켜 표현한 공감각적 심상이다.

제3연은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하여 사나이가 등장한다. 그러나 그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추악한 모습을 하고 있다. ‘암담한’ 시대를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고와 보일 리가 없다. 그래서 자신이 미워져 우물을 떠나는 것이다. 일종의 자기 염오(厭惡)다.

제4연은 그러나 돌아가다 생각하니 이러한 자신이 가엾어진다. 자기 연민(憐憫)이다. 그래서 다시 가서 들여다본다.

제5연은 들여다보니까 그 사나이가 다시 미워진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진다. 자신에 대한 애증(愛憎)이 교차한다. 여기서 ‘미워지는’ 것은 무기력하게 좁은 공간에서 안이하게 살아가는 현재의 자신이 밉다는 것이고, ‘그리워진다’는 것은 순수하게 살던 옛날의 자신의 모습, 또는 이상으로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이 그리워진다는 것으로 풀이하는 것이 좋다. 다음 연에 나오는 ‘추억’이라는 말과 관련이 된다.

제6연은 우물 속의 아름다운 배경을 묘사하고 그 곳에 사나이가 추억처럼 있다고 했다. 즉, 이상(理想)으로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정(想定)해 본 것이다. 두 자아의 갈등을 극복하고 화해하는 장면이다. ‘추억(追憶)’은 그리움이나 동경(憧憬)의 뜻과 통한다.

윤동주는 유년 시절을 항상 아름답게 보고 그것을 그리워했다. 그의 다른 시 󰡔별 헤는 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성년이 되어 시대 상황의 고뇌를 겪으면서 현재 자신의 생활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이상적인 세계를 동경하면서 살았다. 이런 두 개의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을 미워도 하고 그리워도 하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 이 시다.

 

 

 

한대

- 윤동주

 

초 한대 ―

내 방에 품긴 향내를 맡는다.

 

광명의 제단이 무너지기 전

나는 깨끗한 제물을 보았다.

 

염소의 갈비뼈 같은 그의 몸

그의 생명인 심지

 

백옥 같은 눈물과 피를 흘려

불살려 버린다.

 

그리고 책상머리에 아롱거리며

선녀처럼 촛불은 춤을 춘다.

 

매를 본 꿩이 도망하듯이

암흑이 창구멍으로 도망한

나의 방에 품긴

제물의 위대한 향내를 맛보노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윤동주가 용정의 은진 중학교에 다닐 때인 1934년 12월 24일, 그의 나이 17세에 쓴 처녀작으로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습작기에 쓴 작품으로 다소 문학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나, 윤동주가 나아가게 될 문학 세계를 가늠하게 해 준다는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즉, 후기에 접어들수록 높은 문학성을 획득하게 되는 많은 윤동주의 작품들도 이 처녀작에서 보여 주고 있는 ‘순결’과 ‘참회’, 그리고 ‘자기 희생’ 등을 좀더 의미있게 변용한 것에 지니지 않는다. 윤동주의 시에는 남달리 순결한 마음 혹은 고결한 정신을 추구하면서 고독한 가운데 자신을 성찰하는 시인의 모습이 짙게 배어 있다. 그리고 고독한 가운데서의 자기 성찰은 자신을 참회하는 삶의 태도로 나아간다.

먼저 이 시에서 형상화되고 있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육신을 불살라 어둠을 밝히는 촛불의 자기 희생 정신이다. 이러한 촛불의 정신이 바로 윤동주의 삶의 태도이자 인생관의 비유로, 그는 어둠을 홀로 밝히면서 스스로 육신을 불사르는 존재가 되고자 한다. 이렇듯 타인을 위해 자신을 죽이는 삶, 다시 말해 자신이 스스로 제물이 되는 이 속죄양으로서의 삶은 원형 상징의 하나인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고독한 삶이자, 고독 속에서 자신을 성찰한 삶이라 할 수 있다. 어두운 밤 홀로 빛을 발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육신을 바치는 이 촛불의 자기 희생이야말로 처절한 고독 속에서의 자기 성찰이 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와 같은 자기 성찰은 ‘염소의 갈비뼈 같은 그의 몸 / 그의 생명인 심지’라는 말로 나타나 있다. 제단에 제물로 바쳐진 ‘염소의 갈비뼈’ 같은 몸이라는 표현에서 속죄양의 이미지를 연상할 수 있다. 그가 쓴 최초의 시인 이 작품과 최후의 시인 <쉽게 씌어진 시>를 관류하는 이 자기 희생의 순절 정신이야말로 그가 동시대 많은 문학인들과 차별성을 갖게 하는 점인 것이다.

두 번째로 이 시에 나타나는 것은 어떤 이념에 대한 순결한 시인의 의지이다. ‘그의 생명인 심지’, ‘광명의 제단이 무너지기 전 / 나는 깨끗한 제물을 보았다.’, ‘선녀처럼 촛불은 춤을 춘다.’라는 시행이 바로 그것이다. 등심(燈心)인 ‘심지’는 동음이의어인 마음에 품은 의지라는 뜻의 ‘심지(心志)’를 표상하며, ‘깨끗한 제물’과 신을 섬기는 ‘선녀’로 비유된 촛불의 자기 희생은 곧 어떤 이념에 대한 순결한 의지를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시인의 깊은 참회의 자세이다. ‘그의 생명인 심지 / 백옥 같은 눈물과 피를 흘려 / 불살려 버린다.’와 같은 시행에서 보여 주는 삶의 태도가 그 단적인 예가 된다. 백옥같이 정갈한 눈물과 피를 쏟는 희생양의 모습은 바로 참회하는 인간으로서의 전형적 모습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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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동주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金盞花)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윤동주가 연희 전문학교 재학 중인 1940년에 쓴 것이다. 그 당시는 일제의 탄압이 점차 가혹해지던 답답하고 암울한 때다. 지식인들은 마치 병원에 입원한 환자처럼 밀폐된 공간에서 극한적인 삶을 살아야만 했다.

애초에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제목을 <병원>으로 붙일 예정이었을 정도로 이 작품은 윤동주의 내면세계를 잘 보여 주고 있는 시다.

여기에 설정된 배경인 ‘병원’은 고독한 밀실의 심상과 통하는 것으로 당시의 암울한 시대 상황과 관련이 있다. 등장 인물인 ‘여자’는 ‘나’와 동일시(同一視)된 인물로 현실적 상황에 견디지 못하여 지쳐서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환자다. 의사의 치료를 기다리고 있으나 그도 병의 원인을 모른다.

▶ 성격 : 서경적(敍景的), 산문적

▶ 심상 : 묘사에 의한 시각적 심상(1연과 3연)

▶ 운율 : 산문율

▶ 특징 : 정경의 묘사가 뛰어남(제1연)

▶ 표현 : ① 현재법의 사용→현장감을 준다.

② 삽화적(揷畵的) 표현

③ 대비적(對比的) 표현(‘여자’↔‘나’)

▶ 시상 전개 : 대상의 이동에 따른 전개(‘여자’→‘나’)

▶ 구성 : ① 일광욕 하는 여자 환자의 소묘(제1연)

② 동일한 병을 앓고 있는 나(제2연)

③ 자신과 여자의 건강 회복 기원(제3연)

④ 소생과 부활의 희망(제10연)

▶ 제재 : 병원의 정경(情景)

▶ 주제 : 상황 극복의 기원

 

<연구 문제>

1. 화자인 ‘나’가 작중 인물인 ‘여자’에게 취하는 심리적 태도를 4자의 한자 성어로 쓰라. ☞ 동병 상련(同病相憐)

2. 이 시에서 ㉠이 상징하는 의미를 10자 내외로 쓰라.

☞ 암울한 시대 상황

3. ㉡의 상황 묘사는 ‘여자’가 어떤 존재임을 보이기 위한 것인지 50자 정도로 쓰라.

☞ 병 때문에 외부 세계와 단절된 상황을 극한적으로 묘사하여 여자가 고독한 존재임을 표현하였다.

4. ㉡은 작중 인물의 행위 묘사를 통하여 무엇을 암시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것인가? 두 어절로 쓰라. ☞ 회복의 소망.(소생의 희망)

 

<감상의 길잡이>

전 3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서사적인 내용을 산문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시 전체가 상징적으로 제시되어 암시적 효과를 기도(企圖)한 것이다.

제1연은 병원을 배경으로 하여 사건이 시작된다. ‘병원’은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좁고 밀페된 공간이다. 윤동주 시에 자주 나오는 ‘방’과 통한다. 여기에 가슴앓이(폐병)을 하는 젊은 여자가 뒤뜰에 나와 얼굴을 가리고 일광욕을 하고 있다. 이 ‘젊은 여자’는 시대의 괴로움을 겪고 있는 젊은 지성인으로 보인다. 그런데 아무도 찾아오는 이도 없고 바람도 없다. 희망도 없는 고독한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실존론적 고독을 보여 주고 있다.

제2연은 이런 병원에 시적 화자가 입원을 한다. 그는 오랜 아픔을 참다가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늙은 의사는 병을 모를 뿐만 아니라 병이 없다고 한다. 내가 겪고 있는 시대적 괴로움을 의사는 알 리가 없다. 그러니 성을 내서도 안 된다. 여기서 ‘나’는 ‘여자’와 동일시(同一視)된다. 같은 시대에 똑같이 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동시대에 사는 사람으로서의 연대 의식이 나타나 있다.

제3연에서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로 들어간다. 절망적 상황에서 허무 의식에 빠지지 않고 희망을 갖는 장면이다. 그래서 ‘나’도 그 여자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그 여자의 건강과 내 건강이 회복되기를 기원하면서.

이 시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상징적 기법이 주목된다. 대개의 다른 작품에서는 하나의 단어, 하나의 문장을 상징적 의미로 전달하려고 했지만, 이 시는 배경으로 설정한 ‘병원’, 거기에 환자로 등장하는 ‘여자’, 일광욕을 하는 정경, 꽃을 가슴에 꽂는 장면 등 모두가 상징적으로 제시된 것이다. 이 시는 그의 다른 시 <또 다른 고향>과 함께 윤동주의 내면 세계를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특히, 병원으로 상징되는 밀폐된 공간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젊은 여자에게 자신을 투영시켜 동일시한 수법은 단조로움을 피하고 극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 윤동주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 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

 

<감상의 길잡이>

연희 전문학교 3학년에 재학하던 1941년 9월에 쓴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 시는 진정한 삶을 추구하는 식민지 지식인의 결연한 자세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윤동주의 시는 대부분 자아 성찰을 통한 자기 완성을 지향하는 특징을 갖는데, 그 자아 성찰의 공간으로 등장하는 것이 주로 ‘방’․‘우물’․‘길’ 등의 이미지이다. ‘길’은 탐색의 과정과, 출발과 도착의 과정을 지닌 행위의 공간이므로 ‘길’의 공간성은 항상 도달해야 할 목적지를 지닌다. 그러나 그 목적지를 향해 가는 과정으로의 ‘길’에는 반드시 겪어야 할 시련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길’은 시련의 극복이라는 정신적인 세계의 의미를 갖게 된다. 이 시에서의 ‘길’은 자기 성찰과 자기 수련을 통해 식민지 시대를 극복하고 본질적 자아를 회복하는 과정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1연에서는 상실의 상황과 그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나온 행동을 형상화하고 있다. 화자는 무엇인가를 잃어버렸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또한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 몰라 두 손으로 주머니를 더듬으며 길을 나서고 있다. 여기서 주머니를 더듬는 행위는 길을 나서는 행위와 대비되는 것으로, 결국 두 손은 두 발로, 주머니는 길이라는 확장된 공간으로 점차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머니는 길에 비해 작고 내밀한 공간으로 화자의 내면과 상통한다. 그러므로 두 손으로 주머니를 더듬는 화자의 행위는 곧 잃어버린 대상이 자신의 내면에 존재해 있던 것이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2연에서는 화자가 걸어가는 길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그 길은 돌이 끝없이 연달아 이어져 있는 돌담을 끼고 가는 길이다. 여기에서 돌담이 길을 안쪽과 바깥쪽으로 갈라 놓았기 때문에 그 길을 걷고 있는 화자로서는 결코 돌담 안쪽을 들여다 볼 수 없다. 그 곳은 바로 화자가 회복해야 할 이상적 자아의 세계이지만, 돌담이 그 길과 평행 상태로 끝없이 어어져 있기 때문에 화자는 그 곳에 도저히 도달할 수 없다. 따라서 돌담은 자아의 안과 밖, 현실과 이상을 갈라 놓으며 끝없이 계속되는 우리네 삶의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3연에서는 돌담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를 제시하고 있지만, 그것이 긴 그림자를 드리운 채 쇠문으로 굳게 닫혀 있다고 함으로써 절망적 상황임을 암시해 준다.

4연에서는 시간 속에서 시간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과정으로서의 길의 의미를 형상화하고 있다. 길의 진행은 곧 시간의 경과를 의미하는 것으로, 길을 걷는다는 것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며, 또한 산다는 것은 화자처럼 잃어버린 자아를 찾는 탐색 과정인 것이다.

5연에서는 부끄러움을 통한 자아의 갈등과 각성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상적 자아를 회복할 수 없음을 깨달은 화자가 쳐다본 하늘은 현실적 자아를 일깨워 주는 지고(至高)한 존재로 그에게 부끄러운 마음을 갖게 한다. 이 부끄러움이야말로 윤동주 시 세계의 기본 바탕을 이루는 것으로, 준엄한 자기 성찰을 통한 자기 완성을 지향하게 해 주는 원동력인 것이다.

6․7연에서는 삶에 대한 화자의 태도를 포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풀 한 포기 없는’ 불모의 길을 걷는 것은 담 저 쪽에 존재해 있는 잃어버린 자아, 즉 본질적 자아를 찾기 위함이다. ‘긴 그림자가 드리운’ 돌담 같은 어둡고 절망적인 현실 상황 속에서도, ‘내가 사는 것은, 다만, / 잃은 것을 찾’기 위함이라는 독백을 하는 화자에게서 우리는 진정한 인간적 삶을 추구하기 위해 악랄한 식민지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아 회복의 길을 걷던 윤동주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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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동주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위에

습한 간()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서스 산중(山中)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는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찌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용궁(龍宮)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沈澱)하는 프로메테우스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두 개의 이질적인 설화를 결합하여 형상화하였다. 즉, 거북이의 꾐에 빠져 간(肝)을 잃을 뻔하였다가 기지(機智)를 발휘하여 목숨을 건진다는 구토지설(龜兎之說)과 인간을 위해 제우스를 속이고 불을 훔친 죄로 코카서스 산에 쇠사슬로 묶여, 날마다 낮에는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나 밤에는 그의 간은 되살아나서 영원히 고통을 겪는다는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를 결합하여 우의적(寓意的)으로 표현한 시다.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 ‘토끼, 독수리, 거북이, 간’ 등의 원형적 이미지를 파악하도록 하자.

▶ 성격 : 상징적, 저항적, 우의적

▶ 심상 : 설화에서 취재한 원형적 이미지

▶ 어조 : 현실을 극복하려는 남성적 어조

▶ 특징 : ① 두 자아의 대비적 표현

② 설화와 신화의 결합

▶ 시상 전개 : 화자의 이동에 따른 전개

▶ 구성 : ① 환상에서 현실로 귀환(제1,2연)

② 자아의 갈등과 자포자기(제3,4연)

③ 현실적 유혹의 거부(제5연)

④ 현실적 고난의 인고(忍苦)(제6연)

▶ 제재 : 구토설화와 프로메테우스 신화

▶ 주제 : 현실적 고난 극복의 의지

 

<연구 문제>

1. 두 개의 설화가 한 편의 시에서 결합되도록, 매개체 역할을 하는 소재를 찾아 쓰라. ☞ 간(肝)

2. ㉠이라고 한 이유가 무엇인가? 구토설화와 관련하여 50자 이내로 쓰라.

☞ 거북의 꾐으로 부귀영화를 누려 보겠다는 환상에 빠졌던 더러운 양심(본질)을 바로잡기 위해.

3. ㉡은 화자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설명하라.

☞ 현실에 영합하려는 또하나의 자아.(부정적인 자아)

4. 이 시에서 (1)시인이 자기와 동일시하고 있는 소재를 둘 찾아 쓰고, (2)각각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 의식을 쓰라.

☞ (1) 토끼와 프로메테우스

(2) 토끼 : 항거 의식

프로메테우스 : 속죄양 의식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간(肝)’을 매개로 하여 두 개의 설화를 결합하고 있다. 한때 ‘용궁의 유혹’에 빠져 간을 잃을 뻔했던 토끼가 기지를 발휘하여 목숨을 건진다는 구토지설(龜兎之說)과 인간을 위해 제우스를 속이고 불을 훔친 죄로 코카서스의 큰 바위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묵묵히 감내한다는 프로메테우스 신화가 그것이다. 궁지에 몰려서도 슬기롭게 자기의 ‘간’을 지킨 토끼와 죄 아닌 죄를 짓고서 속죄양이 될 수밖에 없었던 프로메테우스의 처지는 식민지 시대를 살면서 생명과도 같은 인간의 존엄성과 양심을 지켜야 하는 윤동주의 시심을 자극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하겠다.

바로 여기에 ‘토끼’와 ‘프로메테우스’를 자기와 동일시하는 근거가 있다. 그러나 윤동주는 설화의 문면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제1,2연에서 화자는 한때 유혹에 빠져, ‘습한 간’을 말림으로써 양심과 자기 존엄성을 회복하는 한편 그것을 지키자고 자신에게 다짐한다.

제3,4연에 오면 화자는 스스로 기른 독수리에게 자신의 간을 뜯어 먹게 한다. ‘너’로 지칭된 독수리가 정신적 자아라면 ‘나’는 육체적 자아라고 할 만한 것인데, 자신의 육체를 희생하더라도 정신을 살찌우겠다는 의지가 표현된 것이다.

제5연에서 화자는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고 자기 의지를 확인한다. ‘용궁의 유혹’에 빠진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양심을 저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일 터이다.

제6연에 이르면 불쌍하기는 하지만, 프로메테우스처럼 자신도 인간을 위한 속죄양이 될 수밖에 없음을 토로하게 된다.

 

 

 

 

아지랑이

- 윤곤강

 

머언 들에서

부르는 소리

들리는 듯

 

못 견디게 고운 아지랑이 속으로

달려도

달려가도

소리의 임자는 없고,

 

또 다시

나를 부르는 소리,

머얼리서

더 머얼리서

들릴 듯 들리는 듯…….

▶<신세대>(1946)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겨울 내내 꽁꽁 얼어붙었던 화자의 의식이 따스한 봄날의 환희 속에 역동적으로 살아나고 있음을 노래한 시다. 밝고 경쾌한 시적 분위기가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날의 서정적 분위기와 어울려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그려내고 있다. 시대적, 개인적 절망과 불안을 암울한 시풍으로 노래했던 윤곤강의 시적 세계와는 달리 매우 밝은 작품이다.

▶ 성격 : 환상적, 낭만적, 역동적

▶ 표현 : ① 자아와 대상과의 관계를 통해서 대상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음.

② 평이하고 단순한 시어의 사용

③ 언어의 절제와 생략을 통한 시적 여운

▶ 구성 : ① 자연의 부름―(환청)(제1연)

② 소리의 발견을 위한 노력(제2연)

③ 부름의 반복과 환청(제3연)

▶ 제재 : 아지랑이

▶ 주제 : 봄날의 흥겨운 정취

 

<연구 문제>

1. 이 작품에 나타난 화자의 태도를 60자 정도로 쓰라.

☞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반응과 행동을 통해 내면 의식 속에 감추어진 어떤 실체를 찾고자 노력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2. 다음 시는 윤곤강의 󰡔아지랑이󰡕와 동일한 소재를 형상화하였으면서도 그 표현에 있어서는 다르다. 그 차이점을 70자 내외로 쓰라.

☞ (1) 윤곤강의 󰡔아지랑이󰡕 : 구체적인 현상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시이다.

(2) 이영도의 󰡔아지랑이󰡕 : 화자의 심리 상태를 주관적으로 나타낸다.

어루만지듯
당신 숨결
이마에 다사하면


내 사랑은 아지랑이
춘삼월 아지랑이


장다리
노오란 텃밭에
나비


나비
나비
나비 ― 이영도 󰡔아지랑이󰡕

3. 이 시의 표현상의 특징을 한 문장으로 쓰라.

☞ 화자와 대상과의 관계를 통해서 대상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평이하고 단순한 시어와 절제된 생략을 통한 시적 여운을 그 특징으로 한다.

 

<감상의 길잡이>

봄은 그대로 하나의 유혹이다. 생명의 일깨움이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머언 들판의 정경은 우리의 내면 속에 침전된 막연한 그리움을 일깨우고 겨우내 움추렸던 영혼을 살아나게 한다. 봄의 정경 속에 흠뻑 취해 소리의 근원을 찾아 들판을 향해 달리는 화자의 기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머언 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는 자신의 내면 의식으로부터 비롯된 부름이다. 이것은 그리움의 외침이다. 내면 의식 속에서 피어나는 그리움의 실체는 실로 막연하고 모호한 것이다. 그 그리움의 실체를 확인할 수 없기에 더더욱 간절함을 더하는 것이다. 들릴 듯, 들리는 듯 나를 부르는 소리는 봄날의 아름다운 정경이 빚은 자의식의 부름이다.

 

 

 

- 윤곤강

 

비바람 험살궂게 거쳐 간 추녀 밑―

날개 찢어진 늙은 노랑나비가

맨드라미 대가리를 물고 가슴을 앓는다.

 

찢긴 나래에 맥이 풀려

그리운 꽃밭을 찾아갈 수 없는 슬픔에

물고 있는 맨드라미조차 소태 맛이다.

 

자랑스러울손 화려한 춤 재주도

한 옛날의 꿈조각처럼 흐리어

늙은 무녀(舞女)처럼 나비는 한숨진다.

(󰡔시문학󰡕 3호, 1930.5)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늙고 병든 나비의 형상을 통해 삶의 애상감과 시인이 처했던 당시 현실 상황을 암시적으로 나타낸 3연 9행의 간결한 이미지의 회화적 소품이다. 그러므로 제재인 나비는 단순한 시적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감정 이입의 방식에 의해 화자에 동화된 진술의 주체로서 형상화시키고 있다.

현실의 모진 역경을 견디지 못해 추녀 밑 맨드라미 꽃 위에 앉아 ‘가슴을 앓’는 나비는 ‘그리운 꽃밭을 찾아갈 수 없는 슬픔’ 때문에 평소 즐겨 찾던 ‘맨드라미조차 소태 맛’이다. ‘화려한 춤 재주’를 자랑하던 젊은 시절은 어느덧 ‘옛날의 꿈조각처럼 흐리어’ 가고, 이제 나비는 ‘늙은 무녀(舞女)처럼 한숨지고’ 있을 뿐이다. 지난날의 영화롭던 나비와 현실의 비참한 나비를 대조하는 방법으로 비극적인 현재의 모습과 영락(零落)한 노경(老境)의 슬픔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청춘의 활기찬 삶을 지나온 노인의 회오(悔悟)에 찬 인생의 반성과 현실에 대한 절망감을 표출하고 있으면서도, 화자가 단지 지나온 삶을 후회하는 개인적 감정의 표출만으로 그치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화자 자신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는 표현 방법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이의 노래

- 윤곤강

 

아지못게라 검붉은 흙덩이 속에

나는 어찌하여 한 가닥 붉은 띠처럼

기인 허울을 쓰고 태어났는가

 

나면서부터 나의 신세는 청맹과니*

눈도 코도 없는 어둠의 나그네이니

나는 나의 지나간 날을 모르노라

닥쳐 올 앞날은 더욱 모르노라

다못* 오늘만을 알고 믿을 뿐이노라

 

낮은 진구렁 개울 속에 선잠을 엮고

밤은 사람들이 버리는 더러운 쓰레기 속에

단 이슬을 빨아마시며 노래 부르노니

오직 소리 없이 고요한 밤만이

나의 즐거운 세월이노라

 

집도 절도 없는 나는야

남들이 좋다는 햇볕이 싫어

어둠의 나라 땅 밑에 번드시 누워

흙물 달게 빨고 마시다가

비오는 날이면 땅위에 기어나와

갈 곳도 없는 길을 헤매노니

 

어느 거친 발길에 채이고 밟혀

몸이 으스러지고 두 도막에 잘려도

붉은 피 흘리며 흘리며 나는야

아프고 저린 가슴을 뒤틀며 사노라

 

(정해 여름 삼팔선을 마음하며)

(시집 󰡔피리󰡕, 1948)

 

* 청맹과니 :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앞을 못보는 눈.

* 다못 : 다만.

 

<감상의 길잡이>

1930년대 카프에 가담하여 활동하기도 한 윤곤강은 해방 직후에도 진보적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한 다수의 시를 창작한다. 이 시는 이 시기 윤곤강의 대표작이자 분단의 현실을 노래한 대표적 작품에 해당한다.

이 시는 그 제목에서 보듯 시적 화자가 지렁이로 되어 있다. 지렁이는 ‘어찌하여 한 가닥 붉은 띠처럼 / 기인 허울을 쓰고 태어났는’지 알지 못한다. 지렁이는 ‘나면서부터’ ‘청맹과니’이고 ‘눈도 코도 없는 어둠의 나그네’로서 ‘지나간 날을’ 모를 뿐 아니라 ‘닥쳐 올 앞날은 더욱 모’른다. ‘다못 오늘만을 알고 믿을 뿐이’다. 이러한 지렁이의 삶은 3연에서는 ‘더러운 쓰레기 속에 / 단 이슬을 빨아마시며 노래 부르’는 밤의 생물로, 4연에서는 ‘집도 절도 없는’ 떠돌이의 생물로 형상화된다. 이렇게 생태적으로 묘사된 지렁이는 5연에서 비로소 인격화된 시적 자아로서의 주체를 지니게 된다.

‘어느 거친 발길에 채이고 밟혀 / 몸이 으스러지고 두 도막에 잘려도’ 지렁이는 ‘붉은 피 흘리며 흘리며’ 죽지도 않은 채 ‘아프고 저린 가슴을 뒤틀며’ 살아간다. 일반적으로 지렁이는 ‘지렁이도 밞으면 꿈틀한다’는 속담에서 보듯 매우 무기력한 존재로 비유된다. 이 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시 전편에서 형상화되어 있는 지렁이의 삶은 심지어 ‘꿈틀하는’ 본능적 저항 의지도 없는 지극히 수동적인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외부의 거센 힘에 의해서 몸이 두 조각으로 잘려도 그저 ‘아프고 저린 가슴을 뒤틀며’ 살 수밖에 없는 지렁이는, 시 말미의 첨기(添記)에서 보듯 ‘정해(丁亥: 1947)’년 여름의 우리 민족을 상징한다.

시인은 1947년 여름 ‘삼팔선을 마음하며’ 지렁이를 본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두 동강으로 몸뚱아리가 잘려도 그것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지렁이를 통해서 시인은 우리 민족의 처지도 그와 같음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시인은 자조적으로 우리 민족을 지렁이와 동일시하게 되는 것이다. 이 시는 이 점에서 민족 모순, 분단 현실의 모순을 천박하게도 고작 지렁이의 삶에 비유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마도 이것은 그렇게 생경하고도 거친 비유를 사용할 정도로, 시인이 ‘아프고 저린 가슴’의 고통에 몹시 괴로워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리라.

 

 

 

피아노

- 全鳳健

 

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 들었다.

(시집 󰡔전봉건 시선󰡕, 1985)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실험적 기법과 참신한 심상을 중시하는 전봉건의 대표작으로 과감한 비유와 공감각적 심상을 사용하여 생기 있는 피아노 소리에 대한 감동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사용된 심상이 강렬하면서도 돌발적이기 때문에 다소 난해한 느낌을 준다. 시인은 피아노의 생기찬 소리를 시각화하여, 마치 싱싱한 물고기가 연이어 튀는 것으로 묘사했다. 마치 강렬한 감각(빛깔)들의 조형으로 이루어진 추상화 같은 시이다.

‘신선한 물고기’는 신선한 생명력을, ‘바다’는 신선한 생명의 고향을 상징한다.

▶ 성격 : 주지적, 감각적, 상징적

▶ 심상 : 공감각적 심상

▶ 표현 : 과감한 비유

▶ 시상 전개 : 연상작용에 의한 시상 전개

▶ 구성 : ① 피아노 소리의 생동감 넘치는 심상(제1연)

② (화자의 행위로 표출된) 시적화자의 감동(제2연)

▶ 제재 : 피아노

▶ 주제 : 생기 넘치는 피아노 소리가 주는 감동

 

<연구 문제>

1. 이 시의 이미지 전개 과정을 연상적인 순서를 따라 한 문장으로 쓰라.

☞ 여자의 손가락에서 연상되어진 피아노의 선율(소리)이 물고기, 바다, 파도, 칼날의 순서로 전개된다.

2. 이 시가 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지 완결된 문장으로 답하라. 단, ‘이 시는~’을 주어부로 하여 구체적으로 쓰라.

☞ 이 시는 생기 있는 피아노 소리(선율)가 주는 감동을 표현하고 있다.

3. ㉠, ㉡ 각각의 상징 의미를 쓰라.

☞ (1) ㉠ : 신선한 생명력

(2) ㉡ : 신선한 생명의 고향

 

<감상의 길잡이>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 절대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시도 있지만, 오직 말의 아름다움, 말의 재미를 캐기에만 열중하는 시도 있다. 이러한 시들은 시의 내용에 치중하기를 거부하면서 말장난에 집착한다. 그리하여 지능 검사를 연상시키는 말장난, 형식미의 재간 놀음, 이미지의 공중잡이 같은 것이 현대시의 한 경향을 이루게 된다.

이 시 󰡔피아노󰡕에도 그런 경향이 짙다. 특히, 이 작품은 감각적인 시어의 구사를 통하여 하나의 이미지로부터 다른 이미지로 비약하는 연상 작용이 돋보인다. 연상 작용이란, 원래 한 관념이 그와 관련된 다른 관념을 생각하게 되는 현상을 일컫는 것인데, 󰡔피아노󰡕에서는 얼른 이해하기 어려운 정도의 비약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시의 이미지는 ‘(피아노의) 선율→물고기→바다→파도→칼날’의 순서로 전개된다.

이 시의 연상(聯想)의 궤적(軌跡)을 추적해 보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제1연은 피아노 앞에 아름다운 여인이 앉아 있다. 건반을 두드리는 희고 긴 손가락은 마치 신선한 물고기 같다. 그 피아노의 건반에서 흘러 나오는 선율 또한 붉은 햇살에 지느러미를 빛내며 펄펄 뛰는 열 마리 스무 마리의 물고기 같다. 피아노의 선율은 청각적 이미지인 소리에서 시각적 이미지인 물고기로 전이(轉移)되어 공감각적 이미지를 빚어낸다.

제2연은 오르내리는 손가락과 건반, 그리고 선율에 의해 연상되는 물고기는 바다의 이미지로 연결된다. 시퍼렇게 파도가 일고 있다. 파도에서는 날이 시퍼렇게 선 칼날의 이미지를 이끌어낸다. 이 시퍼런 칼날은 가슴을 파고드는 감동적인 피아노의 선율로 이해될 수 있다.

 

 

 

강에서

- 全鳳健

 

바람 불면

임진강으로 가서

못 건너는 강건너

북쪽땅 산자락

내 집을 보았습니다.

발돋움하고 보았습니다.

그러기를 30년

이제는 나이 들어 흐린 눈

바람 불면 임진강으로 가서

못 건너는 강 건너 북쪽땅 산자락

내 집으로 부는 바람의

허연 뒷덜미나 보고 앉았습니다.

시퍼렇게 살갗 튼 발뒤꿈치나 보고 앉았습니다.

--- 시집 「북의 고향」 (명지사, 1982) ---

 

<핵심 정리>

1. 시작(詩作) 배경

전봉건 문학의 특징 중의 하나는 민족 분단에 대한 강력한 시사성(時事性)을 견지(堅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자신이 휴전선의 직접적 피해자요, 희생자의 한 사람이기도 한 전봉건은 이산 가족의 고통을 노래함으로써 이 시대를 사는 겨레의 비원을 대변하는가 하면, 6.25동란의 비극적 현장도 생생한 목소리로 보여준다. 이 시에서는 북녘에 고향을 두고온 失鄕民의 처절한 심경이 서정성을 잃지 않고 표출되고 있다. 그것은 30년 통곡을 삼킨 자의 인고(忍苦)와 극기(克己)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러기 때문에 내면적 울림이 더욱 강렬하게 느껴진다.

2. 주제 : 분단의 슬픔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3. 제재 : 분단의 고통

4. 시어(詩語)의 의미

* 발돋움하고 보았습니다 : 고향을 그리는 간절한 마음

* 내 집으로 부는 바람 : 시인의 鄕愁이며, 통일을 향한 겨레의 비원(悲願)

* 바람의 허연 뒷덜미 : 겨레의 상처, 아픔

* 시퍼렇게 살갗 튼 발뒤꿈치 : 겨레의 상처, 아픔

5. 특징

임진강에서 더 갈 수 없는 북녘 땅, 내 고향을 바라보면서 겨레의 상처만을 보고 앉았다는 상황은 생략된 효과를 줌과 동시에 분단의 고통을 고발한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포도·잎사귀

- 장만영

 

순이 벌레 우는 고풍(古風)한 뜰에

달빛이 조수처럼 밀려왔구나!

 

달은 나의 뜰에 고요히 앉아 있다.

달은 과일보다 향그럽다.

 

동해 바다 물처럼

푸른

가을

밤.

 

포도는 달빛이 스며 고웁다.

포도는 달빛을 머금고 익는다.

 

순이, 포도 넝쿨 아래 어린 잎새들이

달빛에 젖어 호젓하구나!

(󰡔시건설󰡕 창간호, 1936.12)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작품은 장만영의 시 세계와 그의 시적 특징을 대표하는 것으로 1930년대 모더니즘 시의 다른 한 측면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기법과 서정성 면에서는 김광균과 신석정의 작품 세계에 대한 중간적 위치에 있다고 평가된다.

자연을 소재로 하여 한 폭의 그림같이 선명한 이미지를 그려내고 있다. 제1연과 제5연에 토속적인 느낌을 주는 ‘순이’라는 여인을 등장시킨 효과를 생각해 보자.

▶ 성격 : 서정적, 회화적, 주지적, 관조적

▶ 심상 : 시각적 심상

▶ 어조 : 고요하고 담담한 어조

▶ 특징 : 각 연이 2행으로 구성되었으며 종결어미가 용언인데 비해, 제3연만은 4행이며 종결어가 명사로 끝나 파격을 이룸.

▶ 구성 : ① 달빛이 넘치는 고독한 뜰(제1연)

② 달의 맵시와 그 분위기(제2연)

③ 가을밤의 정취(제3연)

④ 달빛을 받아 익어가는 포도(제4연)

⑤ 달빛에 젖은 포도 잎새의 모습(제5연)

⑥ 오빠에 대한 위로(제11-12연)

▶ 제재 : 달밤의 고요한 뜰

▶ 주제 : 가을 달밤의 아름다운 서정

 

<연구 문제>

1. 이 작품은 한가로운 한 폭의 전원 풍경을 연상케 한다. 작품 속의 소재 중, 감각의 전이(轉移)를 통하여 이미지의 효과를 높이고 있는 시행을 찾아 쓰라. ☞ ‘달은 과일보다 향그럽다.’

2. 공간적 분위기에 도취된 작가 자신의 모습이나 정서가 이입(移入)되어 있는 시구가 둘 있다. 그 시구들을 찾아 ‘주어+부사어+서술어’ 형태의 문장으로 고쳐 답하라.

☞ ‘달이 뜰에(고요히) 앉아 있다.’, ‘잎새들이 달빛에 젖어 호젓하다.’

3. 이 시에서 ‘뜰’은 어떠한 공간으로 제시되어 있는가? ‘~의 공간’ 식으로 두 가지를 쓰라. ☞ 수용(화해)의 공간, 성숙의 공간

4. 『정읍사』의 ‘달’과 이 시의 ‘달’을 비교하여 140자 정도로 설명해 보라.

☞『정읍사』의 ‘달’은 기다림과 그리움의 정서를 드러낸다. 이 시의 ‘달’은 이와 같은 전통적인 정서를 계승하면서 더 참신한 감각과 결합해 있다. 포도와 그 잎사귀들에 스미고 젖는 싱그럽고 호젓한 달빛은 생명력과 미적인 생성력을 함축하며, 고요하고 애수 어린 느낌을 준다.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순이’라는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이름의 소박함이 달빛의 부드러움에 걸맞게 느껴진다. 달빛이 부드럽게 흐르는 밤, 벌레의 울음 소리는 고요한 뜰에 오히려 적막감을 감돌게 한다. 이런 밤이라면 그리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 보고 싶기도 하겠다. 더욱이 그를 불러 이 아름다운 가을 달밤의 정경 속에 함께 있고 싶을 터이다.

시의 가운데에 배치된 세 개의 연(제2-4연)은 그리운 그이와 함께하고 싶은 정경을 감각적으로 묘사한다.

달빛이 밀물처럼 밀려드는 고요한 뜨락에 포도는 달빛을 머금고 익어간다. 그래서 가을은 동해 물처럼 푸르고 달은 과일보다도 향그럽다는 표현이 가능해진다.

작가의 시적 정서가 시간적․공간적 배경은 물론 작품 속의 소재들과 어울려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를 빚어내고 있다.

 

 

 

image

- 장만영

 

병든 하늘이 찬 비를 뿌려……

장미 가지 부러지고

가슴에 그리던

아름다운 무지개마저 사라졌다.

 

나의 「소년」은 어디로 갔느뇨. 비애를 지닌 채로.

 

이 오늘 밤은

창을 치는 빗소리가

나의 동해(童骸)*를 넣은 검은 관에

못을 박는 쇠마치* 소리로

그렇게 자꾸 들린다…….

 

마음아, 너는 상복을 입고

쓸쓸히, 진정 쓸쓸히 누워 있을

그 어느 바닷가의 무덤이나 찾아 가렴.

(󰡔조광󰡕 25호, 1940.2)

 

*동해(童骸) : 어린 아이의 뼈.

*마치 : 못을 박거나 무엇을 두드릴 때 쓰는 연장으로 망치보다 작다.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이미지스트로서의 장만영의 면모를 잘 보여 주고 있는 작품이다. 전원(田園)의 평화와 동심(童心)의 청순한 시심(詩心)을 간직하고 있던 장만영도 갈수록 혹독해져 가는 일제 치하의 현실 상황에서 더 이상 그 순수성을 지킬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상처 입은 동심은 결국 밝고 건강한 그의 시를 침울하고 절망적인 것으로 변모시킴으로써 절망, 허무, 비극, 암흑 등과 같은 이미지로서의 ‘비’를 노래하게 된다.

1연은 ‘병든 하늘’이 뿌리는 ‘찬 비’를 통해 폐허와 절망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장미’는 사랑을, ‘무지개’는 희망을 의미한다. 2연은 사라져 버린 소년을 부르는 호칭적 진술을 통해 더욱 절망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소년’이 누구를 뜻하는지 알 수 없으나, 1연에서 제시한 암울한 현실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적 배려로 여겨진다. ‘장미’ → ‘무지개’ → ‘소년’으로 이어지는 ‘상실’의 분위기는 ‘비애’라는 구체성으로 나타나는 한편, 2행으로 처리할 수 있는 시행을 단행으로 배치함으로써 그것을 강조하고 있다.

3연은 비의 절망적인 이미지를 통해 화자의 극한적 현실 인식을 보여 주고 있다. 화자는 자신의 방을 ‘검은 관’으로 인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창을 치는 빗소리’를 ‘검은 관에 / 못을 박는 쇠마치 소리’로 생각하는 절망의 극한적 상태에 빠져 있다. 이것은 19세기 말 서구에 등장했던 다다이즘(dadaism)의 정신적 불안과 공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해’는 어린 아이의 시신이라는 뜻으로 2연의 ‘소년’과 관련시킨다면, 그것은 소년이 버리고 간 육신이 되며, 결국 화자 자신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식민지 현실이란 시인에게서 동심의 순수성마저 빼앗아 가버린 절망적인 상황임을 알 수 있다.

4연은 화자가 자신에게 전하는 위무의 말이다. 사랑과 희망, 소년의 순수까지도 상실해 버린 화자로서는 이미 ‘상복’을 입은 상주(喪主)나 다름이 없다. 그러기에 화자는 자신에게 ‘너는 상복을 입고 / 쓸쓸히, 진정 쓸쓸히 누워 있을’ 육신이 있는 ‘그 어느 바닷가의 무덤이나 찾아 가’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 시의 찬 비의 이미지는 ‘상실과 죽음’으로 형상화되어 시인의 비극적 현실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고화병(古花甁)

- 장서언

 

고자기(古磁器) 항아리

눈물처럼 꾸부러진 어깨에

두 팔이 없다.

 

파랗게 얼었다.

늙은 간호부(看護婦)처럼

고적한 항아리

 

우둔(愚鈍)한 입술로

계절에 이그러진 풀을 담뿍 물고

그 속엔 한 오합(五合) 남은 물이

푸른 산골을 꿈꾸고 있다.

 

떨어진 화판(花瓣)*과 함께 깔린

푸른 황혼의 그림자가

거북 타신 모양을 하고

창 넘어 터덜터덜 물러갈 때

 

다시 한 번 내뿜는

담담(淡淡)한 향기.

(󰡔가톨릭 청년󰡕 10호, 1934.2)

 

 

* 화판(花瓣): 꽃잎.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장서언의 대표작이자 모더니즘 계열의 한 본보기로 꼽는 작품이다. 이 시에서 평범한 꽃병은, 대상을 앞에 놓고 이미지 제시의 연습을 하고 있는 듯한 표현 기교를 통해 독특한 의미와 기품을 부여받음으로써, 마침내 살아 있는 하나의 특별한 생명체로서 승화되고 있다.

첫째 연에서부터 시인은 ‘고자기 항아리 / 눈물처럼 구부러진 어깨에 / 두 팔이 없다.’와 같은 의인법을 사용하여 시적 긴장감과 특유의 이미지 도출에 성공하고 있다. 오랜 세월 숱한 풍상(風霜)을 겪고 난 뒤, 폐허만 남은 듯한 인상과 함께 두툼한 꽃병의 양감(量感)을 시각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이 부분은 마치 ‘토르소(torso)’―팔․다리․머리 부분이 없는 몸통만의 조상(彫像)―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둘째 연은 꽃병의 푸른 색채감과 두툼하게 생긴 형상을 제시하고 있다. 마치 파랗게 얼어 있는 듯한 고자기의 푸른 빛은 어느 뚱뚱한 ‘늙은 간호부’ 같은 이미지와 함께 꽃병이 겪어온 오랜 세월의 ‘고적함’을 강조하고 있다. 셋째 연은 철 지난 꽃대궁 몇 개가 꽂혀 있는 꽃병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꽃병에 담겨 있는 ‘한 오합 남은 물’을 통해 꽃병의 크기를 대략 가늠해 볼 수 있는 한편, 꽃밭을 그리워하는 꽃처럼 ‘푸른 산골을 꿈꾸’는 그 속의 물을 보여 줌으로써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는 화자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넷째 연은 시간적 배경이 되는 부분으로서 떨어진 꽃잎을 어두워 가는 황혼 무렵과 조화시킴으로써 은은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고화병’․‘떨어진 화판’․‘푸른 황혼’․‘거북’ 등은 모두 회고적 정서를 환기시키는 사물들로서 고화병의 분위기와 매우 잘 어울리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는 저녁놀이 질 때, 꽃병이 ‘다시 한 번 내뿜는 / 담담한 향기’를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이 향기는 단순한 꽃향기가 아니라, 고자기 꽃병의 향기로 고자기가 지나온 오랜 세월의 맑고 아늑한 향기로 볼 수 있다.

 

 

 

저문 강에 삽을 씻고

- 정희성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문학사상󰡕, 1978.2)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정희성은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우리가 처한 노동 현실을 통해 삶의 궁극적 가치를 묻는다.『저문 강에 삽을 씻고』도 이러한 성격의 시이다. 화자인 중년의 노동자는 흐르는 강에서 삶을 보고 있다. 그는 삽을 씻으며 자기가 살아온 인생에 대해 성찰한다.

연의 구분 없이 16행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내용을 살펴보면 4행씩 네 개의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 성격 : 성찰적, 회고적

▶ 어조 : 절제되고 단아한 어조

▶ 구성 : ① 강물에서 인생의 의미 발견(1-4행)

② 삶의 무력감과 실의감(5-8행)

③ 평생을 노동으로 살아온 삶(9-12행)

④ 가난한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음(13-16행)

▶ 제재 : 강물

▶ 주제 : 강물에 삽을 씻으며 느끼는 인생의 의미

 

<연구 문제>

1. 이 시에서 ‘강’이 의미하는 바를 1음절의 순우리말로 쓰라.

☞ 삶

2. 이 시의 화자는 삶을 적극적으로 이끌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방관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자인(自認)하고 있다. ㉠~㉤ 중 그와 같은 태도가 엿보이는 말로 보기 어려운 것은? ☞ ⑤

① ㉠ ② ㉡ ③ ㉢ ④ ㉣ ⑤ ㉤

3. 시적 화자의 주된 정서는 무엇인가?☞ 무력감.(우울감, 실의감)

4. 이 시에서 (1)모호성의 개념이 적용될 수 있는 시행을 쓰고, (2)그 의미를 두 가지로 쓰라.

☞ (1) ‘우리가 저와 같아서’

(2) ①우리가 흐르는 강물과 같아서 ②우리가 반복해서 뜨는 달과 같아서

 

<감상의 길잡이>

한창 시절을 넘긴 중년의 노동자가 흐르는 강물에 삽을 씻는다. 화자가 중년의 노동자라는 것은 제9,10행에서 알 수 있다. 그는 흐르는 강물에서 인생의 의미를 발견케 된다. 그에게 있어서 극복될 수 없는 슬픔은 삽을 씻는 동안만은 사라진다.

그러나 힘든 노동의 대가는 언제나 보잘것없다. 육체적 노동은 항상 천시당하기만 하고 노동자에겐 그런 현실에 정면 대결할 결단이나 용기는 없다. 무력감과 실의뿐이다. 적극적인 현실 극복의 의지가 없는 그에겐 강가에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돌아가는 일이 고작이다. 적극성의 결여됨은 ‘스스로 깊어 가는 강, 담배 피우고 나는 돌아갈 이다, 삽자루에 맡긴’ 등에서 잘 나타난다. 자연히 시인의 어조는 노동자다운 목소리는 잃어 버리고, 절제된 선비의 목소리로 나타난다.

제9-12행은 젊어서부터 한창이 지난 중년의 나이까지 그의 노동자 생활이 아무런 발전 없이 반복되어 왔음을 말해 준다. 그 세월 동안 세상은 계속 썩어 왔음을 ‘썩은 물’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도 시간이 되면 달은 반복적으로 뜬다. 뜬 달은 날이 어두웠다는 것을 인식케 하고, 그것은 노동자에게 가난한 집이지만,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한다.

덧붙일 것은 ‘우리가 저와 같아서’라는 구절의 모호성이다. 행(行)의 위치로 보아 이것은 ‘우리가 흐르는 강물과 같아서’라는 의미와 ‘우리가 반복해서 뜨는 달과 같아서’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사물()의 꿈1

나무의 꿈

- 정현종

 

그 잎 위에 흘러내리는 햇빛과 입 맞추며

나무는 그의 힘을 꿈꾸고

그 위에 내리는 비와 뺨 비비며 나무는

소리 내어 그의 피를 꿈꾸고

가지에 부는 바람의 푸른 힘으로 나무는

자기의 생(生)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다.

(시집 󰡔사물(事物)의 꿈󰡕, 1972)

 

<감상의 길잡이>

정현종은 박남수의 사물 이미지 추구와 김춘수의 존재 의미 천착 경향을 결합해 놓은 듯한 독특한 시풍을 가진 시인이다. 그는 인간성과 사물성, 주체성과 도구성 사이의 정당한 의미망을 나름대로 추구함으로써 그 동안 인간들의 아집과 욕망에 의해 더렵혀지고 훼손된 사물 본성의 회복 가능성을 타진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이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온갖 사물들이 자기의 기능과 직분을 다하면서 다채롭고 조화로운 화해의 세계를 만들기를 소망한다.

그의 초기시는 전후의 허무주의나 토착적 서정시를 극복하고, 시인의 꿈과 사물의 꿈의 긴장 관계 속에서 현실의 고통을 넘어설 수 있는 초월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그의 시는 ‘고통 / 축제’, ‘물 / 불’, ‘무거움 / 가벼움’, ‘슬픔 / 기쁨’ 등과 같은 상반되는 정서의 갈등과 불화를 노래하면서도 현실을 꿈으로, 고통을 기쁨으로 변형시키고자 하는 정신의 역동적 긴장을 탐구한다. 그러던 그가 80년대 말부터는 현실과 꿈의 갈등보다는 생명 현상과의 내적 교감, 자연의 경이감, 생명의 황홀감을 노래하면서 화해의 세계를 지향하는 새로운 경향을 보여 주고 있다.

그의 초기시 세계를 대표하는 이 시는 부제에서 명기된 것처럼 사물 중 나무의 꿈을 평이한 시어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나무의 꿈이란 나무가 자신의 생명을 실현하려는 꿈이다. 그 꿈은 우주와의 에로스적인 친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즉, 나무는 ‘햇빛’과 ‘비’와 ‘바람’과의 접촉을 통해 자신의 생명을 구현한다. 나아가 나무는 이렇듯 우주와의 교감과 상호 침투 과정을 통해 ‘자기의 생이 흔들리는 소리를’ 들음으로써 자기 존재에 대한 자의식을 갖게 된다. 나무는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지만, 물, 햇빛, 공기, 바람 등과의 관계 속에서만 생장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나무는 우주의 생태적 질서의 한 중심이다. 다시 말해, 우주적인 존재로서의 나무이다. 그렇게 본다면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나무의 꿈은 시인의 꿈으로 환치될 수 있다. 표면적으로 이 시에 나타나는 것은 나무와 햇빛, 비, 바람의 단순한 교섭이지만, 그것은 생명과 우주, 인식과 세계의 상호 교섭이라는 보다 큰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이렇듯 이 시는 시적 대상인 나무를 통해 우주적인 공동체 안에서 생명의 자기 실현에 관한 꿈을 꾸고 있는 시인의 열망을 드러낸 작품이다.

 

 

 

가을에

- 정한모

 

맑은 햇빛으로 반짝반짝 물들으며

가볍게 가을을 날으고 있는

나뭇잎,

그렇게 주고 받는

우리들의 반짝이는 미소(微笑)로도

이 커다란 세계를

넉넉히 떠받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해 주십시오.

 

흔들리는 종소리의 동그라미 속에서

엄마의 치마 곁에 무릎을 꿇고

모아 쥔 아가의

작은 손아귀 안에

당신을 찾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의 어제 오늘이

마침내 전설(傳說)속에 묻혀 버리는

해저(海底) 같은 그 날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달에는

은도끼로 찍어낼

계수나무가 박혀 있다는

할머니 말씀이

영원(永遠)히 아름다운 진리(眞理)임을

오늘도 믿으며 살고 싶습니다.

 

어렸을 적에

불같이 끓던 병석(病席)에서

한없이 밑으로만 떨어져 가던

그토록 아득하던 추락(墜落)과

그 속력으로

몇 번이고 까무러쳤던

그런 공포(恐怖)의 기억(記憶)이 진리라는

이 ㉠무서운 진리로부터

우리들의 이 ㉡소중한 꿈

꼭 안아 지키게 해 주십시오.

(시집 󰡔여백을 위한 서정󰡕, 1959)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감각적 이미지를 중심으로 시상이 전개되고 있다. 특히, 이 시의 핵심 제재인 ‘가을’의 이미지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조락(凋落)의 이미지로서 반(反)문명적인 현대의 삶 속에서 파괴되어 가는 인간성의 상실을 그리고 있다. 또 하나는 명징하고 온화한 가을의 이미지로 파악한 점이다. 이것은 휴머니즘을 옹호하고 고양시키려는 시적 화자의 의지로서, 정한모 시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기본적인 주제로 볼 수 있다.

▶ 성격 : 낭만적, 주지적, 기구적, 문명비판적

▶ 심상 : 시각적, 청각적, 공감각적 심상

▶ 어조 : 간절한 소망과 기원의 어조

▶ 특징 : ① 시상을 형상화하는 데 감각적 심상을 적절히 구사하고 있다.

② 반(反)문명적 위기를 극복하려는 휴머니즘

③ 동화적 모티프를 삽입하여 인간성을 옹호하려는 순수 의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 구성 : ① 평화로운 세계에의 소망(제1연)

② 순결한 신앙(제2연)

③ 파멸의 거부(제3연)

④ 아름다운 세계에의 신뢰(제4연)

⑤ 공포에 찬 삶으로부터의 보호 기원(제5연)

▶ 제재 : 가을의 기도, 밝은 소망

▶ 주제 : 영원하고 순수한 인간애(人間愛)의 기원

 

<연구 문제>

1. 이 시의 화자가 지닌 ‘세계 인식’의 현주소를 100자 내외로 설명해 보라.

☞ 화자는 현대의 세계를 위기로 보고 있다. 그 위기의 근원이 바로 ‘문명’이라는 데에 현대의 비극이 있다고 본다. 화자는 이 ‘문명의 위기’를 눈으로 목격하고, 몸으로 느끼고 있다.

2. ㉠과 ㉡을 대조적 관점에서 70자 내외로 서술하라.

☞ ㉠의 ‘무서운 진리’는 순수 의지가 부닥쳐 나아가는 현대의 반(反)문명적 현실이고, ㉡의 ‘소중한 꿈’은 휴머니즘을 옹호하고 고양시키려는 순수 의지이다.

3. 이 시에서 경건한 분위기와 간절한 호소력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원인이 될 만한 시적 요소 세 가지를 들어 설명해 보라.

☞ 동화적 모티프, 기구적(祈求的) 어조, 인간성을 옹호하려는 순수 의지 등이 어우러져 작품 전체에 종교적 경건성의 무게를 더하고 있다.

4. (1)현대 사회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궁극적인 진리를 무엇으로 보았으며, (2)또 그 이유는 무엇인지 120자 내외로 쓰라.

☞ (1) ‘휴머니즘적 순수 의지와 경건한 믿음’을 진리로 보았다.

(2) 이렇게 보는 것은 종교적 차원을 넘어 우주의 질서에 내재하고 있는 절대적 원동력을 통해서 인간성을 옹호하고 고양시킬 수 있다고 보는 화자의 믿음 때문이다.

 

<감상의 길잡이>

우리는 어느때 기도하게 되는가? 현실적 삶에 닥치는 절망적 위기에 대하여 인간적 힘이나 의지만으로 어찌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당신’을 찾게 된다. 이 때의 당신은 예수나 부처님, 때로는 어머니가 될 수도 있겠으나 이를 꼭 종교적 기구의 대상으로 한정하지 말고 우주의 질서에 내재하고 있는 절대적인 원동력을 지향하고 있다고 보면 어떨까?

시적 화자는 세계의 위기를 눈으로 읽고 있으며, 몸으로 느끼고 있다. ‘해저 같은 그 날’의 두려움은 ‘아득한 추락’과 ‘공포의 기억’으로 치환되어 그를 옥죈다. 폭력의 난무, 부조리의 횡행, 국가적 맹신주의, 경제 제일의 물신주의에 중독된 ‘현대’는 말 그대로 추락이요, 공포의 현상일 수밖에 없다. 과학의 발달이 급기야 달나라에 우주선을 안착시킴으로써 우리들의 소중한 꿈의 한 영역을 짓밟아 버린 것처럼 발달․성장은 곧 삶의 순수성과 진정성을 파괴하는 쪽으로만 치닫고 있으니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이러한 현실에 대응하는 화자의 극복 방식이 실은 이 시의 핵심이다. 성경을 읽기 위하여 촛불을 훔칠 수 없고, 폭력을 제거하기 위하여 또 다른 폭력의 방아쇠를 당길 수 없듯이, 현실에 닥치는 절망적 위기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택한 것이 바로 ‘기도’인 것이다. ‘무서운 진리’를 극복하고 ‘아름다운 진리’를 지키기 위한 최선의 무기로 기도를 선택한 것이다.

이것이 곧 화자의 정신적인 현주소다. 인간성 옹호의 궁극적 방패는 바로 휴머니즘의 미소일 수밖에 없다는 그의 온건한 목소리가 우리를 일깨운다. 비록 그 목소리 속에 이상과 현실의 괴리(乖離)가 가져 오는 애잔함이 우리를 서럽게 할지라도 어쩔 것인가. 인간이 발견한 최고․지선(至善)의 방패인 휴머니즘에 의지할 수밖에 없음을…….

 

 

 

나비의 여행

- 정한모

 

아기는 밤마다 길을 떠난다.

하늘하늘 밤의 어둠을 흔들면서

수면(睡眠)의 강(江)을 건너

빛 뿌리는 기억(記憶)의 들판을,

출렁이는 내일의 바다를 날으다가

깜깜한 절벽(絶壁),

헤어날 수 없는 미로(迷路)에 부딪히곤

까무라쳐 돌아온다.

 

한 장 검은 표지를 열고 들어서면

아비규환하는 화약(火藥) 냄새 소용돌이,

전쟁(戰爭)은 언제나 거기서 그냥 타고

연자색 안개의 베일 속

파란 공포(恐怖)의 강물은 발길을 끊어 버리고

사랑은 날아가는 파랑새

해후(邂逅)는 언제나 엇갈리는 초조(焦燥)

그리움은 꿈에서도 잡히지 않는다.

 

꿈길에서 지금 막 돌아와

꿈의 이슬에 촉촉이 젖은 나래를

내 팔 안에서 기진맥진 접는

아가야!

오늘은 어느 사나운 골짜기에서

공포의 독수리를 만나

소스라쳐 돌아왔느냐.

(󰡔사상계󰡕, 1965.11)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휴머니즘의 추구’는 정한모의 시적 모티프다. 그가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서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는 주제와 천착하고 있는 세계는 인간성의 옹호와 인도주의 정신이다. 그가 생각하는 삶의 가치와 세계 질서의 중심에는 언제나 휴머니즘이 있다.

‘나비의 여행’과 ‘아가의 꿈’은 이 시인이 추구하는 휴머니즘을 보여 주는 다른 이름의 같은 상징이자 심상이다. 현실이 지닌 야수적 폭력성과 비이성적 폭압성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나비(아가)의 여행(꿈)을 통해서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고 비인간적인 가치와 질서를 부정하는 가운데 휴머니즘의 참된 모습을 은유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 성격 : 주지적, 상징적, 감각적, 현실 고발적, 동화적

▶ 심상 : ‘어둠’과 ‘밝음’, ‘공포’와 ‘사랑’, ‘현실’과 꿈의 심상이 대비되어 있음.

▶ 특징 : 서사적 구조, 희곡적 화법, 감각적 표현

▶ 시상 전개 : 서사적이면서 희곡적인 내면 구조가 횡축(橫軸)이라면, 나비(아가)로 상징되는 화자의 여행이 종축(縱軸)을 이루면서 심상의 교직(交織)을 이룸,

▶ 구성 : ① ‘아가’의 여행 과정(제1연)

② 여행 목적지의 상황(제2연)

③ 여행에서 돌아온 아가에 대한 위로(제3연) ― 휴머니즘적 목소리

▶ 제재 : (전쟁이 남긴 반문명적 상황 앞에 선) 아가

▶ 주제 : 휴머니즘을 추구하는 순수 의지

 

<연구 문제>

1. 이 작품에서 ‘시적 인물’과 ‘시적 화자’를 구별하여 80자 내외로 설명해 보라.

☞ 시적 인물은 순진무구한 꿈길을 여행하는 아가이며, 시적 화자는 현대 문명의 야수적 포악성인 전쟁과 아가를 대비시켜 주제 의식을 심화시키고 있는 사람이다.

2. 이 시를 ‘대립적 구조’로 볼 수 있다면, 그것이 어떠한 대립인지 세 가지로 쓰라.

☞ ①명암(부정적 이미지와 긍정적 이미지)의 대립, ②떠남과 돌아옴의 대립, ③문어(文語)의 세계와 구어(口語)의 세계의 대립.

3. 이 시의 ‘이미지 전개’의 특징을 70자 내외로 요약하라.

☞ 서사적이며 희곡적인 내면 구조가 횡축이라면, 나비(아가)로 상징되는 시적 인물의 여행이 종축을 이루면서 이미지의 교직(交織)을 이루고 있다.

4. ‘나비의 여행’의 서사적 구조를 화살표(→)와 세 단어로 표시해 보라. ☞ 떠남→시련→돌아옴. (가출→시련→귀환)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몇 가지의 대립적 구조를 파악하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첫째는 명암(明暗)의 대립이다.

‘밤, 어둠, 깜깜한 절벽, 미로, 검은 표지, 화약 냄새, 공포, 초조, 독수리’ 등으로 표상된 부정적 이미지와 ‘아가, 빛 뿌리는 기억의 들판, 사랑, 파랑새, 그리움, 꿈길’ 등으로 그리고 있는 긍정적 이미지의 대립이다. 이 작품의 저변(底邊)에는 전쟁의 잔영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물론, 어두운 이미지들이 반드시 전쟁만을 표상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반문명적, 비인간적, 부도덕적 현상들에 대한 은유임은 쉽게 간파할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현상들에 대한 대립항에 나비(아가)를 배치한 까닭은 무엇일까? 순수 의지만이 세계를 구하고 가치를 재창조할 수 있다는 의지의 표상으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둘째는 ‘떠남’과 ‘돌아옴’의 대립이다.

꿈길에로의 여행을 통해서 얻은 것은 상처뿐이다. 전쟁의 아비규환과 화약 냄새와 공포의 강으로의 부단한 떠남의 운명 속에 우리는 던져져 있다. 그러나 떠남 끝에 돌아올 수 있는 품속이 있기에 세계는 아직도 희망이 있다. 이와 같은 구도(構圖)를 오세영은 ‘탕자의 비유’로 설명하면서, ‘가출→시련→귀향’의 모티프와 일치한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의 구원뿐만 아니라, 이 시에서는 ‘그 양이 살고 있는 세계의 구원’에도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문어(文語)의 세계’와 ‘구어(口語)의 세계’의 대립이다. 수면, 미로, 전쟁, 공포, 해후, 초조 등의 과념어는 경직된 문어의 세계를, ‘나비, 아가, 바다, 사랑, 파랑새, 그리움, 꿈길’ 등의 시어는 유연한 삶의 세계에 대한 함의(含意)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읽혀진다.

이와 같은 대립적 구조는 아가의 순진무구한 꿈길의 여행과 현대 문명의 야수적 포악성인 전쟁을 극명하게 대비시켜 작품의 주제 의식을 심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

- 정한모

 

한 개 돌 속에

하루가 소리 없이 저물어 가듯이

그렇게 옮기어 가는

정연(整然)한 움직임 속에서

 

소조(蕭條)한 시야(視野)에 들어오는

미루나무의 나상(裸像)

모여드는 원경(遠景)을 흔들어 줄

바람도 없이

 

이루어 온 밝은 빛깔과 보람과

모두 다 가라앉은 줄기를 더듬어 올라가면

 

끝 가지 아슬히 사라져

하늘이 된다.

( 시집 󰡔카오스의 사족󰡕, 1958)

 

<감상의 길잡이>

‘점점 멸하여 들어간다’는 다소 추상적인 의미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시는 시적 화자가 미루나무에서 보고 느낀 가을의 공허감을 인간의 존재론적 차원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화자의 주관적 감정은 철저히 배제된 채, 시각적 이미지만으로 가을을 제시하고 있다.

1연은 시간의 이미지를 제시한 부분으로, 1․2행에서는 ‘한 개 돌 속에 / 하루가 소리 없이 저물어 가듯이’라는 표현을 통해 그것을 차가움과 냉혹함의 정적인 것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이에 반해 3․4행에서는 ‘옮기어 가는’․‘움직임’이란 시어에서 알 수 있듯이 동적 이미지로 변모된다. 2연은 도치법이 구사된 부분으로, 적막한 가을의 모습을 헐벗은 미루나무를 통해 압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소조한 시야’란 가을을 바라보는 화자의 쓸쓸한 마음을 뜻하며, ‘미루나무의 나상’이란 종말에 선 인간, 곧 무상한 인생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모여드는 원경을 흔들어 줄 / 바람도 없이’는 바람도 없는 적막 속에 서 있는 미루나무의 외로움과 함께 인생의 허무감을 정적 이미지로 보여 주고 있다. 3연은 미루나무의 줄기를 묘사한 부분으로서 여름날의 화려했던 푸르름을 잃어버린 그것을 ‘이루어 온 밝은 빛깔과 보람 / 모두 다 가라앉은 줄기’로 나타내어 젊은 날의 꿈과 영광을 잃고 황혼길에 선 인생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줄기를 더듬어 올라가면’이란 표현은 ‘나목’을 보여 주기 위한 화자의 단순한 시선 이동이라기보다는 인생의 무상성, 유한성을 뛰어넘고 싶어하는 화자의 초월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4연은 하늘에 맞닿아 있는 미루나무의 모습으로 비록 육신은 지상에 묶여 있지만, 정신만은 삶의 유한적 한계를 극복하고 천상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화자의 태도가 함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처럼 이 시는 가을의 고독한 미루나무를 밑그림으로 하여 시간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때가 되면 멸입되어 자연에 귀의하게 된다는 철리(哲理)와 그것의 극복 의지를 암시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6

- 정한모

 

어머니는

눈물로

진주를 만드신다.

 

그 동그란 광택(光澤)의 씨를

아들들의 가슴에

심어 주신다.

 

씨앗은

아들들의 가슴속에서

벅찬 자랑

젖어드는 그리움

 

때로는 저린 아픔으로 자라나

드디어 눈이 부신

진주가 된다.

태양이 된다.

 

검은 손이여

암흑이 광명을 몰아내듯이

눈부신 태양을

빛을 잃은 진주로

진주로 다시 쓰린 눈물로

눈물을 아예 맹물로 만들려는

검은 손이여 사라져라.

 

어머니는

오늘도

어둠 속에서

조용히

눈물로

진주를 만드신다.

(시집 󰡔새벽󰡕, 1975)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시인의 휴머니즘 정신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시인에게 어머니는 ‘검은 손’․‘암흑’․‘어둠’과 같은 어둠과 행복의 이미지에 대립하는 존재로, ‘진주’․‘태양’․‘광명’ 등으로 나타난 밝음과 행복의 이미지를 표상한다.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고귀한 희생과 사랑을 ‘눈물’과 ‘광택의 씨’로 표현하고 있으며, 그것을 자양분으로 해서 성장한 자식의 아름다운 모습을 ‘진주’․‘태양’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에 비해 ‘검은 손’은 힘겨운 삶을 사시면서도 오직 자식 잘 되기만을 바라시는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을 무화(無化)시키려는 어떤 부정적 힘 또는 방해물의 이미지이다. 그러므로 어머니의 사랑을 관조적으로 노래하는 다른 연들과는 달리, 4연에서는 그것과의 대결 의지를 ‘사라져라’라는 명령형으로 표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맹물’ → ‘눈물’ → ‘진주’ → ‘태양’ → ‘광명’으로 확산되는 이미지 전개 방법을 통해 불안하고 어두운 시대의 고난을 극복하게 하는 매개물로서 어머니를 예찬하고 있는 이 시는 가장 보편적인 소재를 빌어 매우 평이한 시어로써 참다운 인간적 가치를 추구하는 시인의 시 세계를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슬픔이 기쁨에게

- 정호승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 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맥락 읽기>

1. 말하는 이는? ☞ 나(슬픔)

2. 누구에게 말하고 있지? ☞ 너(기쁨)

3. 나는 너에게 무엇을 주고 싶어 하는가? ☞ 슬픔, 기다림

4. 너는 어떤 사람이길래 그것을 주고 싶어 하는가?

① 겨울 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 귤값을 깍으면서 기뻐했다.

☞ 이웃의 삶을 통찰하는 따뜻함 마음이 없다.

②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았다.

☞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외면하며 산다.

③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얼어 죽을 때 / 무관심했다.

☞ 이웃의 죽음에 냉담하다.

5. 그러면 ‘슬픔, 기다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 따뜻한 마음, 더불어 사는 것

☞ 이웃과 불행을 나누면서 그것이 극복될 때까지지켜보는 마음

6. 나는 너에게 ‘슬픔, 기디림’을 준 다음에 또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가?

☞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 함박눈(?)

☞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하며

☞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 가겠다.

## 수 많은 너를 설득해 이 길을 같이 가고 싶다.

7.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제목과 관련지어 생각해 보자.

☞ 자기만의 기쁨이 아닌 이웃과 함께 하는 마음

☞ 이웃을 아끼는 마음, 아파하는 마음

☞ 이웃을 위해 슬퍼할 줄 아는 것.

8. 독자의 삶은 ‘슬픔’ 쪽인지, ‘기쁨’쪽이었는지 생각해 보자.

 

 

 

픔으로 가는 길

- 정호승

 

내 진실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낯선 새 한 마리 길 끝으로 사라지고

길가에 핀 풀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데

내 진실로 슬픔을 어루만지는 사람으로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슬픔으로 걸어가는 들길을 걸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 하나

슬픔을 앞세우고 내 앞을 지나가고

어디선가 갈나무 지는 잎새 하나

슬픔을 버리고 나를 따른다.

내 진실로 슬픔으로 가는 길을 걷는 사람으로

끝없이 걸어가다 뒤돌아보면

인생을 내려놓고 사람들이 저녁놀에 파묻히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하나 만나기 위해

나는 다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1979)

 

<감상의 길잡이>

‘슬픔’의 시인 정호승은 인간을 옹호하고 민중을 신뢰하는 낙관주의적 태도와 냉철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한 ‘따스한’ 작품 세계를 펼쳐 준다. 그는 자신의 시를 통해 슬픔의 내용을 확장시키거나 깊게 하는 일에 몰두하는 시인으로, ‘슬픔’은 그에게 있어서 모든 시적 사색의 출발점이 된다. 그러나 그의 ‘슬픔’은 전통적인 정서인 한이나 비애의 세계와는 분명히 구분되는 것으로, 그는 이 ‘슬픔’을 통해 가난하고 소외된 민중들의 아픔, 전쟁이나 분단, 독재로 얼룩진 우리 현대사의 상처까지도 끌어안고 따뜻이 위무해 준다. 이처럼 그는 현실의 모순 아래서 고통받고 있는 삶을 노래하면서도 그 삶의 미래에 대해 낙관하는 미래 지향적 자세를 보여 준다는 면에서 그를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중 시인으로 평가하는데 망설임이 없게 한다.

이 시는 그의 첫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에 실려 있는 대표작으로, 한 시대를 살아가는 시인의 운명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화자인 ‘나’로 대치된 시인은 ‘내 진실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서 있다. 그는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다가’, 마침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하나 만나기 위해’ 세상 속으로 고단한 길을 떠난다. ‘진실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에서 ‘진실로 슬픔을 어루만지는 사람’으로, 다시 ‘진실로 슬픔으로 가는 길을 걷는 사람’으로 심화되는 과정을 통해 그가 그토록 기다리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슬픈 것들이 진정한 아름다움으로 빛나게 될 때이다. 이처럼 슬픔에서 아름다움을 읽어내는 시인의 밝은 눈은 자신의 ‘인생을 내려놓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에 대한 깊은 공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거기에다 ‘슬픔’, ‘기다림’, ‘아름다움’이 저녁 들길의 아름다운 풍경과 어우러져 빚어내는 고즈넉하고 쓸쓸함의 정서는 이 시를 더욱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드는 원동력이 아닐 수 없다.

 

 

정지용論

 

감각적인 시어로 고향을 그린 정지용

정지용(1902-1950)은 1902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휘문고보, 일본 도오시샤(同志社) 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시문학’ 동인으로 활약하였으며, 이화여대 교수, 경향신문 주간, 조선 문학가 동맹 중앙 집행 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50년 6.25가 일어나자 정치 보위부에 구금되었다가 평양 감옥으로 이감된 후 타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집으로 「정지용 시집」(1946), 「백록담」(1941), 「지용시선」(1946), 「문학독본」(1948)과 「산문(散文)」(1949)이 간행되었다.

정지용은 우리 현대 시사에서 언어에 대한 자각을 각별하게 드러낸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1920년대까지의 대다수 시인이 감정의 분출에 의거하여 본능적인 시를 썼다면 1920년대 초반에 작품 발표를 시작하여 1930년대 대표적인 시인으로 군림하게 된 정지용에 의하여 다양한 감각적 경험을 선명한 심상과 절제된 언어로 포착해 내는 시가 씌어진다. 감정을 감각화하는 방법은 정지용이 철저히 인식했던 언어에 대한 자각에 의해 가능했던 것이다.

절제된 언어의 구사는 정지용의 시에서 일관되는 특성이지만 그의 시세계가 그리는 궤적은 몇 단계의 변모 과정을 보인다. 정지용 시의 전개 과정을 크게 세 단계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첫째 1923년경부터 1933년경까지의 서정적이며 감각적인 시, 1933년 「불사조」 이후 1935년경까지의 카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적인 시, 그리고 「옥류동」(1937), 「구성동」(1928) 이후 1941년에 이르는 동양적인 정신의 시 등이 그것이다. 특히 주목을 요하는 것은 정지용의 종교시가 「카톨릭 청년」(1933)의 창간과 관련되어 있으며 이 지면에 대부분 그의 종교시가 발표되었다는 점이다. 초기의 감각적인 시와 후기의 고전적인 시들의 교량적인 역할을 종교시가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지용의 신앙시는 1934년 「카톨릭 청년」에 발표된 「다른 하늘」, 「또 하나의 다른 태양」 이후 자취를 감추며 4년여의 침묵 뒤에 「옥류동」, 「비로봉」, 「구성동」 등이 발표된다. 이를 카톨릭 신앙의 전면적인 포기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겠지만 그가 1930년대 후반에 나름대로 각고의 방향 모색을 시도했으며, 「옥류동」, 「백록담」 등에서 그 실마리를 찾으려 했고 1939년 「장수산」, 「백록담」 등에서는 한층 더 정신주의에의 침잠을 시도하면서 현실의 고통스러움을 견인의 정신으로 극복하고자 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식민지의 고통 감내 위해 바다, 산 등 소재로 산수시 써

 

초기의 서정시 작품은 20년대 초반의 젊은 문학도가 객지에서 학창 생활을 하며 갖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이국 풍물에 대한 동경을 보여 준다. 초기 시에서 정지용이 남다르게 보여준 감각적 선명함은 후기 산수시와 긴밀한 연관을 지니고 있다. 예컨대 「바다 9」에서 드러나는 재기 발랄한 심상이 드러내는 감각적 선명성은 후기의 정신적 고뇌를 함축한 산수시로 나아가는 첩경이 되기 때문이다. 초기에 정지용은 다수의 ‘바다’ 시편을 썼다. 바다에서 산으로 소재가 이동되면서 산수시 계열의 시들이 씌어진다. 감각에서 정신으로의 변전이라고 할 수 있다. ‘바다’의 시편들과 ‘산’의 시편이라는 양자는 겉으로는 지향하는 바가 다를지라도 본질적으로 같은 세계를 공유하고 있다. 지용 시의 감각과 정신을 선명하게 돌출 시켜 주는 비법이 소묘적 언어의 정교한 회화성에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구성동」을 발표한 다음해인 1939년 정지용은 「장수산」(3월), 「백록담」(4월)을 발표한다. 감각적 심상을 반향과 흐름을 빌려 정신적 고요의 공간으로 빚어내는 시적 표현과 구성의 긴밀성을 「장수산」과 영혼을 비추는 물의 명징성을 인식하여 주체를 해체하는 시적 인식의 객관화에 도달한 「백록담」은 그의 정신주의가 도달한 최상의 수준이었다. 정지용이 산수시로 나아간 것은 식민지 말기의 고통스러움을 정신적 극기로 감내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변절과 친일을 강요당하던 1930년대 말의 식민지적 압력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일은 산수에 자신을 숨기는 일이었을 것이며 동양의 고전적인 전통 속에서 자신의 시적 방법론과 은일의 정신을 체득하려 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그의 언어적 인식은 그의 시를 단순히 복고적인 취향에서 벗어나게 했으며 이러한 점에서 그의 시가 지니는 현대적 의의가 명백해진다. 정지용이 자신의 시적 천분을 조탁하여 이룩한 정묘한 산수시는 당대 최상의 수준이며 한국어가 지닌 언어적 가치를 극대화시킨 한 예가 된다. 정지용은 서구 추수주의적인 시적 유행을 넘어서서 우리의 오랜 시적 전통에 근거한 산수시의 세계를 독자적인 현대어로 개진함으로써 한국 현대시의 성숙에 결정적인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정지용의 대표작으로서 국민들에게 널리 애송되는 작품 한 편을 들라고 한다면, 우리는 「향수」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지용의 「향수」를 노래하는 사람 모두가 언제나 마음의 고향으로 되돌아감을 느낀다. 정지용은 「향수」에서 독특한 감각적 표현을 율격 언어로 응축시켜 한국인들이 마음의 고향에 도달하는 심정적 통로를 열어 보였다.

「향수」가 그려내는 고향의 정경은 누구에게나 있었음직한 추억이며 따라서 강력한 정서적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정서적 호소력에 힘을 더하는 것은 뛰어난 감각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금빛 게으른 울음’이나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전설의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에서 보이는 언어적 환기 효과는 당시로서는 특별한 예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 표현한 「향수」는

뛰어난 감각적 표현으로 온 국민의 사랑 받아

 

 

첫째 연의 고향에 대한 공간적 환기와 둘째 연의 전형적인 농가의 풍경에서 제시되는 육친애의 그리움에 이어 셋째 연에서는 화자의 구체적인 성장 경험이 표현된다. 흙에서 자란 마음과 파란 하늘 사이의 화자의 행동 모습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가 생겨나기 이전의 것으로서 유년 시절의 낙원에 대한 믿음을 연상시킨다. 그 정경은 어린 시절의 단순한 반추가 아니라 어린 시절의 이상과 낙원이 괴리되어 떠도는 현재의 상황을 시사한다. 넷째 연은 다시 구체적인 삶의 정경으로 돌아가고 다섯째 연은 계절의 순환과 더불어 포착된 고향집이 그려진다. 고향집이 내포하는 평화롭고 정겨운 감각으로 인해 가난의 어려움마저 넘어서고 있다.

「향수」는 20년대 초반의 젊은이가 고향을 떠나와 고향을 그리는 젊음이 용해되어 있으며, 오늘의 우리들 또한 상실한 낙원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생의 근원에 대한 동경을 담고 있다. 농경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그리고 이를 넘어 정보화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의 한국인들에게 「향수」는 생의 근원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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