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현대문학

노정기(路程記), 이육사 [현대시]

Jobs 9 2023. 5. 15.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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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기(路程記)

이육사

목숨이란 마―치 깨어진 뱃조각
여기저기 흩어져 마음이 구죽죽한 어촌보다 어설프고
삶의 티끌만 오래 묵은 포범(布帆)처럼 달아매었다.
 
남들은 기뻤다는 젊은 날이었건만
밤마다 내 꿈은 서해를 밀항하는 쩡크와 같아
소금에 절고 조수(潮水)에 부풀어 올랐다.
 
항상 흐릿한 밤 암초를 벗어나면 태풍과 싸워 가고
전설에 읽어 본 산호도(珊瑚島)는 구경도 못 하는
그곳은 남십자성(南十字星)이 비쳐 주도 않았다.
 
쫓기는 마음 지친 몸이길래
그리운 지평선을 한숨에 기오르면
시궁치는 열대 식물처럼 발목을 에워쌌다.
 
새벽 밀물에 밀려온 거미이냐
다 삭아 빠진 소라 껍질에 나는 붙어 왔다.
머―ㄴ 항구의 노정(路程)에 흘러간 생활을 들여다보며.
 

 

개관

- 화자 :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는 이
- 주제 : 힘겹게 살아온 지난날의 어두웠던 삶을 회고함.

- 성격 : 고백적, 자기성찰적, 회고적
- 표현

* 다양한 비유와 상징적 시어를 통해 화자의 고통스런 삶을 형상화함.
* '물'의 흐름을 통해 화자의 노정이 제시됨.
* 독백체의 어조를 통해 자기 성찰적 삶의 자세를 드러냄.
* 삶에 대한 비극적 인식이 바탕이 됨.
* 대립적 시어(산호도, 남십자성 ↔ 밤, 암초, 태풍)를 사용하여 현재의 상황을 제시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노정기 → 여행할 길의 경로와 거리를 적은 기록을 의미하는 말로, 시인은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이 지난 시절에 겪었던 고통스러운 삶을 회상하고 있다.
* 깨어진 뱃조각 → 삶의 무상감과 유랑하며 불안하게 사는 삶을 연상케 하는 구절임.
* 구죽죽한 → 구질구질한
* 삶의 티끌 → 의미도 가치도 없이 살아온 지나온 삶의 모습
* 포범 → 베로 만든 돛
* 쩡크 → 정크. 중국 연해나 강에서 승객이나 화물을 실어나르는 특수한 모양의 작은 배
* 소금에 절고 조수에 부풀어 올랐다. → 시련의 연속이었던 젊은 날의 삶
* 암초, 태풍 → 삶의 시련과 장애물
* 산호도 → 화자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세계
* 남십자성 → 삶의 지표나 희망
* 그리운 지평선을 한숨에 기오르면
   → 절망적 현실 상황을 극복하려는 모습.  자신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 시궁치 → 시궁창. 절망적인 현실
* 시궁치는 열대 식물처럼 발목을 에워쌌다. → 절망적 현실이 화자를 구속하는 열악한 상황
* 새벽 밀물에 밀려온 거미 → 화자 자신의 모습(비주체성, 기생성)
* 다 삭아 빠진 소라 껍질에 나는 붙어 왔다.
   → 상황에 휘둘리며 비주체적으로 살아온 비극적 삶의 모습(엄격한 자아성찰의 산물)
* 머―ㄴ 항구의 노정에 흘러간 생활을 들여다보며
   → 지난 시절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모습. 제목의 의미가 직접 드러남.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화자가 살아온 어두웠던 삶
- 2연 : 고통과 상처만 남은 젊은 날
- 3연 :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상황
- 4연 : 지친 몸을 쉴 수조차 없는 어두운 현실
- 5연 : 쫓기고 지친 '나'의 모습

 

이해와 감상
이 시는 화자의 고뇌 어린 삶의 역정기로서 전 노정을 '물'의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다. 화자는 여기저기 유랑하며 살아온 젊은 날을 회상하면서 고통과 시련으로 점철된 삶을 떠올리고, 이에 대한 비극적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일제에 대한 저항과 투쟁으로 점철된 시인의 고단한 삶의 역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육사시는 조국의 상실이라는 극한적 상황에 의한 비극적인 자기 인식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초기시에 주로 나타나는 심상은 '어둠'의 이미지이다. 조국을 잃고 세계와 단절되어 빛을 잃은 그가 어둠 속을 걸어온 자신의 삶의 역정을 노래한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이 <노정기>이다.  
이 시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시적 화자의 노정은 '물'의 흐름을 통하여 제시되고 있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 '마치 깨어진 뱃조각'처럼 여기저기 유랑하고 있기에, '흩어져 어설퍼진' 마음으로 살아가는 그의 삶이야말로 다 부서진 티끌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화자는 행여 젊은 날은 어떠했을까 하고 뒤돌아보지만, '꿈은 서해를 밀항하는 쩡크'와 같은 고통이었으므로 그는 '소금에 절고 조수에 부풀어' 오른 상처만을 확인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즐거운 추억이 되고 현재의 삶에 활력소가 될 수 있는 젊은 시절이지만, 화자에게는 그것이 항시 고통스러운 항일 무장 독립 투쟁의 나날이었기 때문에, '남십자성이 비쳐 주도 않'는 '흐릿한 밤'이요, '산호도는 구경도 못하는' 고달픔일 수밖에 없었다. '산호도'는 그가 추구하는 이상적 세계임에는 틀림없지만 그의 시계(視界) 내에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막막한 곳을 찾아 '쫓기는 마음 지친 몸'을 이끌고 가려고 하지만, '새벽 밀물에 밀려온 거미'같이 '다 삭아 빠진  소라 껍질'에 붙어 살아온 그로서는 그저 물처럼 흘러가 버린 지난 삶의 역정을 반추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고뇌 어린 삶의 역정기로서의 이 시는 그 전 노정을 '물'의 이미지로 형상화하는데, '물'과 관련된 심상은 '배', '어촌', '포범', '서해', '밀항', '쩡크', '조수', '암초'. '산호도', '밀물', '소라', '항구' 등으로, 특히 마지막 시행의 '흘러간 생활'에서 '흘러간'이라는 물의 이미지를 그의 생활에 투사하여 귀결시킴으로써 화자는 이러한 노정을 통하여 비극적인 자기 인식을 하게 된다. 치열한 현실 인식에서 배태된 이 비극적 자기 인식은 마침내 적극적인 저항 의지로 표출되어 <광야>, <절정> 등으로 가시화됨으로써 육사는 항일 저항 문학의 거대한 정점으로 우뚝 서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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