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현대문학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백 석 [현대시]

Jobs 9 2022. 3. 7.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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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백 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질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위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도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 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은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위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개관

- 성격 : 산문적, 고백적, 성찰적, 사변적, 분석적, 의지적
- 표현
* 독백체의 어조와 토속적 시어의 사용
* 산문적 서술과 쉼표를 활용하여 내재율을 적절히 살림.
* 시상을 전환하여 화자의 심리 및 태도의 변화를 드러냄.
* 편지 형식을 빌린 산문적 진술을 통해 화자의 근황을 서술함.

- 주제 → 무기력한 삶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
- 제목 : " 남신의주시 유동 마을에 사는 박시봉이라는 사람이 있는 방(方, 방향, 방면) "이라는 뜻으로, 일종의 주소(화자의 현 위치)를 나타내는 말로, '박시봉'은 아마도 시적자아가 세들어 있는 집 주인인 목수의 이름일 것이다.
- 시적 자아 : 일제 강점기 무기력한 지식인의 자화상
 

시어 및 시구의 함축성
* 바람, 거리 끝, 추위, 어둠(밤) → 고난과 시련과 방황의 요소들.
* 삿 → 삿자리의 준말. 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
* 쥔을 붙이었다 → '주인을 붙이다'. 주인 집에 세를 얻어 기거하게 되었다. 세를 들었다.
*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 주체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는 삶의 무게감을 느낌.
* 질옹배기 북덕불 → 둥글넙적하고 아가리가 넓게 벌어진 질그릇에 담긴 짚이나 풀 따위를 태워 담은 화톳불
       화자에게 따뜻한 위안을 줄 수 있는 대상
* 재 위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삶에 대한 인식
*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하는 것이었다. → 슬픔과 어리석음으로 점철된 회한의 삶을 성찰하는 모습임.
*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 어리석게 살아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그 슬픔을 내면화하는 과정에서 시적자아는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되며, 이 순간 시적자아의 내적 갈등은 그 정점에 달하게 됨.(죽음에 대한 충동)
* 그러나 → 시상의 전환(절망에서 희망으로)이 이루어지는 부분
* 나는 내 뜻이며 내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 무기력한 자아에 대한 인식
* 이것들 보다 더 크고, 높은 것 →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힘, 운명
*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 감정이 정화되면서 마음이 진정되어 감.  
* 나줏손 → 저녁 무렵
* 무릎을 꿇어 보며 → 반성과 성찰의 태도, 경건한 느낌을 주기도 함.
* 갈매나무 → 갈매나무과의 작은 낙엽 활엽수. 골짜기 개울가에 나는데 높이 2m, 가시가 돋고 늦봄에 꽃이 핌.
* 굳고 정한 갈매나무 → 외로움과 추위를 견디며 당당히 맞서고 있는 나무(객관적 상관물)
 의인화 = 화자의 '현실 극복의 의지' 표상
 눈을 맞으며 단단하고 정갈하게 서 있는 갈매나무의 이미지는 시적자아로 하여금 삶의 고달픔과 외로움, 그로 인한 내면적 고뇌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함.
 
시상의 흐름(짜임)
- 1 ∼   8행 : 유랑하며 살아가는 화자의 쓸쓸한 처지
- 9 ∼ 15행 : 무기력하고 무의미한 삶에 대한 뼈아픈 성찰
- 16 ∼ 19행 : 죽음(자살)에 대한 충동에 사로잡힘.
- 20 ∼ 32행 : 운명적 삶에 대한 체념과 새로운 삶의 의지

 

이해와 감상
이 시는 가족과 떨어져 객지에 홀로 나와 생활하면서 조용히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작품으로, 한국이 낳은 가장 아름다운 서정시의 하나로 손꼽히기도 한다. 다소 특이한 느낌을 주는 이 시의 제목에서 '남신의주'와 '유동'은 지명(地名)을 뜻하며, '박시봉'은 화자가 기행지에서 세를 든 주인집 이름에 해당한다. 결국 이 시는 남신의주 유동마을에 있는 박시봉이라는 사람의 집에 세들어 사는 화자가 자신의 근황과 심경을 편지 쓰듯 적어 내려가는 형식이라 할 수 있다. 작품의 문맥으로 볼 때 박시봉이라는 사람은 목수 일을 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으며, 화자는 그 곳에서 가족과 떨어져 자신이 지나온 삶을 되새기고 있다. 그런 만큼 우리는 이 시에서 홀로 객지에서 외롭게 생활하는 화자의 절실한 내면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게 된다.  
화자는 슬픔과 어리석음으로 점철된 자신의 지난 삶을 되새김하는 소처럼 회상하면서, 끝없는 비애와 영탄에 빠져들고 있다. 그런데 화자는 자신이 그렇게 살아온 것이 인간의 의지를 넘어선 운명론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탓으로 화자는 자신의 슬프고 부끄러운 삶을 자신의 숙명으로 받아들이면서 체념을 하기에 이른다. 즉 삶에 대한 운명론적 · 수동적 세계관에 갇혀 있는 넋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가운데서도 어둡고 슬픈 현실 속에서 눈을 맞고 서 있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처럼 굳세고 깨끗하게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이 시는 현실에 맞서는 치열한 의식을 보여 주고 있지는 못하지만, 현실의 아픔을 수용하고 그것을 마음 속 깊이 새기면서 현실의 고통을 극복하겠다는 굳건한 삶의 자세를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우리는 이를 통해 한국인의 내면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인생관의 한 단면을 읽을 수 있게 된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시상의 전개 과정을 통해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자신의 무기력한 현실 대응 방식을 반성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확인할 수도 있다. 
 
이 시에는 개인의 운명과 한 시대의 아픔이 함께 들어 있다. 아내와,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부모 형제와도 떨어져 바람 센 쓸쓸한 거리를 헤매는 시인의 고달픔은 그 당시 백석의 삶을 비추어 보았을 때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슬픔과 한탄을 차츰 앙금처럼 가라앉히고 어느 먼 산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하얀 눈을 맞는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생각한다. 이 시에서 갈매나무가 상징하는 것은 시련을 초극하는 의지이며, 여기에서 한국인이 강인한 정신으로 꾸려온 공동체적 삶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백석의 시는 중기시로 올수록 쓸쓸하고 고독한 내적 감정의 표현도 많이 드러나는데, 이 또한 백석의 삶과 연관지을 수 있다. 이곳저곳 옮겨다니며 살던 시절의 시들이기에 슬픔과 쓸쓸하다는 어구가 자주 눈에 띄며, 그래서 중기시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비극적이다. 이런 것은 '고향 상실감'과도 관련시킬 수 있다. 시집 『사슴』에서 절제와 객관적 고향 재현에 주력했던 백석은 이후 고향을 떠나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나타난 시적 정서는 '고향 상실감'에서 근원된다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쓸쓸함의 정조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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