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무
김명인
한 해의 꽃잎을 며칠만에 활짝 피웠다 지운
벚꽃 가로 따라가다가
미처 제 꽃 한 송이도 펼쳐 들지 못하고 멈칫거리는
늦된 그 나무 발견했지요.
들킨 게 부끄러운지, 그 나무
시멘트 개울 한 구석으로 비틀린 뿌리 감춰놓고
앞줄 아름드리 그늘 속에 반쯤 숨어 있었지요.
봄은 그 나무에게만 더디고 더뎌서
꽃철 이미 지난 줄도 모르는지,
그래도 여느 꽃나무와 다름없이
가지 가득 매달고 있는 멍울 어딘가 안쓰러웠지요.
늦된 나무가 비로소 밝혀드는 꽃불 성화,
환하게 타오를 것이므로 나도 이미 길이 끝난 줄
까마득하게 잊어 버리고 한참이나 거기 멈춰 서 있었지요.
산에서 내려 두 달거리나 제자릴 찾지 못해
헤매고 다녔던 저 난만한 봄길 어디,
늦깎이 깨달음 함께 얻으려고 한나절
나도 병든 그 나무 곁에서 서성거렸지요.
이 봄 가기 전 저 나무도 푸릇한 잎새 매달까요?
무거운 청록으로 여름도 지치고 말면
불타는 소신공양 틈새 가난한 소지(燒紙),
저 나무도 가지가지마다 지펴 올릴 수 있을까요?
개관
- 제재 : 그 나무
- 주제 : 늦된 그 나무에 대한 연민과 자아 성찰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며칠 만에 활짝 피웠다 지운 → 화려하지만 일시적인 봄꽃의 모습
* 늦된 그 나무 → '벚꽃'과 대조적인 소재
* 시멘트 개울 한 구석 ~ 그늘 속에 반쯤 숨어 있었지요. → 비틀리고 소외된 존재로서의 '그 나무'의 모습
* 가지 가득 매달고 있는 멍울 어딘가 아쓰러웠지요. → 대상을 향한 화자의 연민의 태도
* 꽃불 성화 → 늦된 그 나무가 피어낼 꽃을 '성화'에 비유하면서, 화자의 기대감을 내포함.
* 산에서 내려 ~ 난만한 봄길 어디, → 화려함 속에 방황했던 지난날
* 늦깎이 깨달음 함께 얻으려고 → 대상과의 일체감
* 소신공양 → 자기 몸을 태워 부처 앞에 바침
* 가난한 소지 → 가을날의 마른 나뭇잎 / '소지'는 부정을 없애고 신에게 소원을 빌기 위해 태워서 공중에 올리는 종이를 말함. / 가을의 나뭇잎을 '깨달음'과 관련한 표현으로, '불타는 소신공양'과 대비되어 화자의 겸손함을 드러냄.
시상의 흐름(짜임)
- 1 ~ 4행 : 활짝 피었다 진 벚꽃 길을 걷다가 늦된 '그 나무'를 발견함.
- 5 ~ 11행 : '그 나무'에게 연민을 느낌.
- 12~18행 : '그 나무'를 통해 자신을 돌아봄.
- 19~22행 : '그 나무'에 대한 기대감
이해와 감상
이 시의 화자는 이미 활짝 피었다 진 벚꽃 길을 걷다가 철 지난 줄도 모르고 이제야 꽃 '멍울'을 달고 있는 '늦된 그 나무'를 발견한다. 화자는 '비틀린 뿌리 감춰놓고', '반쯤 숨어 있'는 '그 나무'를 안쓰러워하며 부족하고 소외된 존재에 대한 따뜻한 연민의 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그 나무'가 다른 나무처럼 꽃을 활짝 피우고, 여름에는 푸른 잎새를 달고, 가을에는 단풍으로 물들기를 기대하고 있다. 나아가 화자는 '그 나무'처럼 '두 달거리나 제자릴 찾지 못해' 방황했던 자신을 성찰하고 '그 나무'와 함께 '늦깎이 깨달음'을 얻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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