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현대문학

공터, 최승호 [현대시]

Jobs 9 2023. 4. 4.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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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

최승호

아마 무너뜨릴 수 없는 고요가
공터를 지배하는 왕일 것이다
빈 듯하면서도 공터는
늘 무엇인가로 가득 차 있다.
공터에 자는 바람, 붐비는 바람,
때때로 바람은
솜털에 싸인 풀씨들을 던져
공터에 꽃을 피운다
그들의 늙고 시듦에
공터는 말이 없다
있는 흙을 베풀어주고
그들이 지나가는 것을 무심히 바라볼 뿐.
밝은 날
공터를 지나가는 도마뱀
스쳐가는 새가 발자국을 남긴다 해도
그렇게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하늘의 빗방울에 자리를 바꾸는 모래들,
공터는 흔적을 지우고 있다
아마 흔적을 남기지 않는 고요가
공터를 지배하는 왕일 것이다.
 

개관

- 성격 : 관념적, 사색적, 명상적
- 특성
① 대상을 의인화하여 대상의 의미를 부각하고 있다.
②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의미를 구체적인 대상을 통해 보여줌.
③ 수미 상관의 구조를 통해 주제를 부각함.
- 제재 : 공터 → 화자가 통념과 달리 새롭게 바라보는 대상임.
- 화자 : 공터의 우주적 원리를 말하는 이
- 주제 : 공터의 우주적 · 자연적 질서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빈 듯하면서도 공터는 / 늘 무엇인가로 가득 차 있다. → 역설법
* 때때로 바람은 ~ 공터에 꽃을 피운다. → 바람으로 인해 꽃이 피는 공터(자연의 변화와 생성의 순간)
* 공터는 말이 없다. → 존재의 생로병사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의미임.
* 그들의 늙고 시듦에 ~ 그들이 지나가는 것을 무심히 바라볼 뿐. → 변함없이 운행하는 공터
* 밝은 날 ~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 공터의 순환적 · 자연적 원리
* 흔적을 지우고 있다 → 고요하지만 끊임없이 운행하는 공터
* 아마 흔적을 ~ 지배하는 왕일 것이다. → 수미 상관의 구조를 통해 의미를 강조함.

시상의 흐름(짜임)
- 1~2행 : 공터를 지배하는 고요
- 3~4행 : 빈 듯하면서도 차 있는 공터
- 5~12행 : 변함없이 운행하는 공터
- 13~18행 : 흔적을 남기지 않는 공터
- 19~20행 : 공터를 지배하는 고요

 

이해와 감상
이 시에는 나직한 가운데 사방으로 뻗어나가 독보하는 힘이 들어 있다. 옛날에 나는 이것에서 질시나 좌절보다는 존경을 느꼈었다. 평생 이런 시를 써볼 수 있을까, 하고. 무심한 듯 섬세한 시인의 눈이 모래알의 움직임을 살피고, 보이지도 않는 바람들을 본다. 꽃이 피고 도마뱀은 기고 새들은 왔다가 간다. 빈 듯하다 생명으로 일렁대는 공터는 우리가 머무른 세계의 다른 이름일 터이다. 하지만 생명은 일었다가는 지고, 사물들은 입을 다문다. 공터는 역시 빈 곳이다. 그런데 빈 것은 없는 것인데도 이곳을 다스리는 존재가 있다고, 그것이 '고요'라고 시인은 말한다. 고요는 무상의 제왕이다. 시인의 눈은 이렇게 안 보이는 것도 보고, 더 안 보이는 것도 본다. '법'이라 하든 '도'라 하든 형언하면 사라져 버리는, 고요라고밖에 달리 말하기 어려운 공한 것이 만상의 배후에 서 있다. 고요로 열고 고요로 닫는 스무 줄짜리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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