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현대문학

가을에, 정한모 [현대시]

Jobs 9 2022. 1. 30.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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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정한모

맑은 햇빛으로 반짝반짝 물들으며
가볍게 가을을 날으고 있는
나뭇잎,
그렇게 주고받는
우리들의 반짝이는 미소로도
이 커다란 세계를
넉넉히 떠받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해 주십시오.
 
흔들리는 종소리의 동그라미 속에서
엄마의 치마 곁에 무릎을 꿇고
모아 쥔 아가의
작은 손아귀 안에
당신을 찾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의 어제 오늘이
마침낸 전설 속에 묻혀 버리는
해저(海底) 같은 그날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달에는
은도끼로 찍어 낼
계수나무가 박혀 있다는
할머니의 말씀이
영원히 아름다운 진리임을
오늘도 믿으며 살고 싶습니다.
 
어렸을 적에
불같이 끓던 병석에서
한없이 밑으로만 떨어져 가던
그토록 아득한 추락과
그 속력으로
몇 번이고 까무러쳤던
그런 공포의 기억이 진리라는
이 무서운 진리로부터

우리들의 소중한 꿈을
꼭 안아 지키게 해 주십시오.
 

 

개관
- 성격 : 기구적(祈求的), 휴머니즘적, 고백적, 낭만적, 주지적, 문명비판적

- 제재 : 아가의 기도
- 주제 : 순수한 인간성으로 세계의 폭력과 공포를 극복하려는 소망, 인간성 옹호에 대한 기원

- 표현
* 절대자를 향한 간절한 기도의 형식을 취함.
* 경어체를 통해 경건하고 간곡한 호소의 분위기를 자아냄.
* 대조적(밝음과 어두움) 이미지를 통해 주제를 형상화함.
       (나뭇잎, 미소, 아가의 작은 손아귀, 할머니의 말씀, 소중한 꿈 ↔ 해저, 공포의 기억)
* 대립적인 이분법적 구조(공포의 이미지<큰 것> ↔ 순수의 이미지<작고 여린 것>)
* 동화적 모티프를 삽입하여 인간성을 옹호하려는 순수 의지를 드러냄.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나뭇잎, 반짝이는 미소 → 비록 미약하지만 너무도 인간적인 것(인간들 간의 사랑, 믿음, 진실 등)
* 커다란 세계 →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어둠의 세계(전쟁의 상황을 연상), 거대한 문명 세계
* 넉넉히 떠받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 믿게 해 주십시오
   → 나뭇잎과도 같이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우리들의 작은 진실(사랑)로도 이 거대한 세상에 침몰 당하지 않고 지탱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달라고, 절대자를 향한 기원을 담고 있음.
* 흔들리는 종소리의 동그라미 속에서 → 청각의 시각화(공감각적 이미지)
* 아가 → 순진무구, 평화, 즐거움, 안식 등의 이미지
              어둠과 폭력의 현실 속에서도 인간성과 순수성을 잃지 않은 존재
* 모아 쥔 아가의 작은 손아귀 → 비정한 세계에 놓여진 보잘것없는 인간 존재 상징
* 마침내 전설 속에 묻혀 버리는 / 해저 같은 그날
   → 바닷속 깊은 심연의 암흑과도 같은, 아득하고 혼미한 종말의 시대 표상
       인류 세계의 파멸이나 인간성이 완전히 상실된 시대 상징
* 4연의 동화적 요소
   → 동화는 순진한 꿈과 인간적 진실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순수한 세계에 대한 소망을 잃어 버리지 않을 수 있기를 염원함.(현대의 물질문명과 폭력성에 의한 인간 상실의 비애와 원초적인 생의 순수함 염원)
* 그런 공포의 기억이 진리라는 / 이 무서운 진리
   → 어린 시절 병석에서 느꼈던 공포가 현실이 되어 버린 상황임.
       기계문명의 발달로 인해 비인간적인 것이 범람하는 50년대의 공포스러운 현실, 즉 피비린내나는 전쟁과 폭력을 의미함.
* 우리들의 이 소중한 꿈 → 이웃에 대한 신뢰와 사랑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평화로운 세계에 대한 소망
- 2연 : 절대자에 대한 믿음을 기원함.
- 3연 : 인류의 종말(파괴)에 대한 부정
- 4연 : 인간적 진실과 순수한 꿈의 세계에 대한 믿음 기원
- 5연 : 공포스러운 세계로부터 구원되기를 기원함.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비인간적인 세계에서 생명의 소중함, 인간적인 순수함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도록 해달라는 간절한 기원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시는 이분 구조로 되어 있다. 선과 악의 대결, 평화와 폭력의 대결 구도가 그것이다. 즉 현실은 폭력이 난무하고 거대한 횡포 속에서 작은 평화는 무참히 깨어지는 것으로 본다. 이런 현실은 순진성을 앗아 가고 아름다운 꿈을 짓밟는다. 천진한 미소의 세계로 불의의 세계를 물리칠 수 없다는 현실 인식에서 화자는 안타까워한다. 달에 계수나무가 박혀있다고 믿는 어린 날의 이 천진하고 아름다운 꿈도 현실은 단호히 거부한다. 오로지 공포와 불의가 난무하는 이 세계에서 화자는 고통받으며, 그러한 세계가 물러가기를 소망한다. 이 소망은 행동적이지 않다. 역사 의식에 투철한 현실 개혁적 의지가 표출되는 것도 아니다. 이 폭력의 세계를 타파하는 것은 오로지 순수 인간성의 구현뿐이라는 것이 화자의 믿음이다. 따라서 이 시는 휴머니즘 정신을 토대로 순수의 본질을 진지하게 탐구한다. 그러므로 자기 고백적 어조에 실려 소망이 드러난다. 
정한모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아가'의 이미지는 그의 시의 주제를 암시한다. 1950년대의 시대상에 좌절과 공포와 절망을 경험하면서, 그러한 어둠과 폭력성 속에서도 인간주의와 순수주의가 파괴되지 않기를 소망하는 기원의 심정을 '아가'라는 이미지로 표상하여 드러낸다. '아가'의 이미지는 퇴영적 의미를 갖기도 하는데, '과거지향, 유년으로의 회귀, 현실 도피, 모성애에의 귀착' 등이 그러한 속성을 대변한다. 또한 '아가'의 의미는 순진무구, 평화, 순수한 사랑 등이 있는데, 현실이 포악하고 살벌할수록 그런 속성은 그대로 드러난다. 시인은 순수성과 밝음, 소망 등을 표상하는 아가의 이미지를 통하여 전쟁과 같은 현실의 어두움, 참혹함에 대립시키는 방식을 그의 시적 특징으로 많이 제시해 왔으며, 이 작품도 역시 그러한 분위기에 기초해 왔다.  

'가을에'에 나타난 현실 인식
이 시의 화자는 현재를 위기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다. '추락, 공포, 무서운 진리'가 난무하는 현실적 삶에 직면한 시적 화자는 위기감을 느끼며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던 어린 시절의 순수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간절한 기원의 어조 속에는 소망이 쉽게 이루어지기 어려움을 암시하고 있다. 그 무서운 가능성에 대한 불안이 마지막 연에서 선명하게 그려진다. 그것은 어린 시절에 병을 앓으며 겪었던 무시무시한 추락과 까무러침의 기억과 닮은 것으로 나타난다. 화자가 궁극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그 무서운 추락과 까무러침을 연상케 할 만한 현실적 공포, 이를테면 '전쟁, 투쟁, 폭력' 등과 같은 것이다. 이런 절망적인 상태에서 하는 기도는 바로 휴머니즘에 대한 기원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화자는 순수한 인간애야말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낙엽'의 이미지
일반적으로 낙엽은 싱싱하던 나뭇잎이 말라 떨어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죽음을 연상시키고, 허무감과 쓸쓸함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 나타나는 낙엽의 이미지는 이와 다르다. 나무에서 떨어져 나왔다는 점에서 볼 때 이 '나뭇잎'은 분명 낙엽이겠지만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날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밝은 햇빛으로 반짝반짝 물들어 있다는 점을 통해 밝고 아름다우며 자유로운 이미지를 읽어낼 수 있다. 
 
휴머니즘의 구현
이 시에서 화자는 세상이 점점 삭막해져 가고 있지만 따뜻한 인간애로 이러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세상은 이미 화자가 겪었던 어린 시절의 병상 체험처럼 '아득한 추락'과 그 속력으로 몇 번이고 까무러쳤던 '공포'가 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무서운 진리'로 표현되고 있는데, 그것은 구체적으로 기계 문명으로 인해 비인간적인 것이 범람하는 1950년대의 현실, 즉 전쟁이나 폭력 등을 암시한다. 이러한 불안감으로 인해 아름다운 진실된 인간 세상을 향한 화자의 기도는 더욱 간절해지고, 이는 휴머니즘에 바탕을 두고 순수의 본질을 진지하게 탐구하는 시인의 정신 자세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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