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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모함, 航空母艦, Aircraft Carrier. 항모(航母), 공모(空母)

Jobs 9 2024. 3. 22.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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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모함, 航空母艦, Aircraft Carrier. 항모(航母), 공모(空母)

 

항공모함, 航空母艦, Aircraft Carrier. 항모(航母), 공모(空母)

항공기(함재기)를 탑재하고 이착함시키는 함선으로 초계함, 구축함, 전함의 임무를 모두 수행할 수 있는 다목적 함선이다. 항모(航母), 공모(空母)라는 약칭도 있다.

일반적인 주력 전투용 군함과는 달리 함재기 운용에 특화된 군함이다. 군용기들을 함내 적재하고 이착함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즉, 바다 위의 움직이는 공항이라고 할 수 있다. 제대로 운용한다면 미국의 니미츠급이나 러시아의 어드미럴 쿠즈네초프급, 영국의 퀸 엘리자베스급처럼 각국 해군을 대표하는 결전병기가 되어 해군력의 수준이 달라지지만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면 태국의 차크리 나루에벳처럼 나룻배 취급당한다. 

항공모함을 보유할 경우 지구의 거의 모든 지역을 재래식 전력으로 타격할 수 있다. 이는 지구의 70%가 바다이고, 중앙아시아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지역은 바다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적, 물적으로 왕래하기 위해 세계 대다수의 인구와 산업 시설이 해안에서 300km 안에 위치하고 있기도 하다. 핵무기나 대륙간 탄도 미사일의 사용은 그야말로 최후의 수단인 것을 감안하면, 항모만큼 적절한 강도의 원거리 전력 투사 수단은 거의 없다. 

현대 해전 전술이 항공기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현대 해군 전략의 중심이자 21세기 강대국 해군들의 기함이기도 하다. 해역에 따라선(육지와의 거리에 따라선) 전술의 기반이 되는 그 항공기가 곧 항모의 함재기들이 될 테니 현대 해전에서 항공모함은 그만큼 중요하다

 

 

항공모함의 탄생


항모의 원형은 목선에서 열기구 풍선을 날려 적의 머리 위에 폭탄을 퍼붓는 풍선 모함이다. 1849년 7월 베네치아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오스트리아 해군은 열기구를 날려 적의 머리위에 폭탄을 투하하려고 했지만 실패했고, 이후 미국의 남북전쟁때도 배에서 열기구를 날려 적의 머리에 폭탄을 떨어트리는 개념이 존재했다. 

본래 순수하게 비행기의 운용만을 목적으로 하는 함선은 초창기엔 없었다. 초기 항공기는 기술적으로 여러 제약이 많았고, 때문에 실전에서 얼마나 큰 효과를 거둘지 미지수였기 때문이었다. 미군 최초의 항모인 Langly(랭글리)도 석탄운반선을 개조한 것. 그렇기에 속도와 화력이(비행기 제외) 터무니없을 정도였다. 다만 해전에서의 핵심인 정찰(Search)에서는 항공기만큼 제격인 게 없었으며, 이후 열강 국가들은 전함과 같은 대형함에 정찰용 함재기 약간을 실어 이륙시키는 장치를 탑재한다. 이것이 함선에 의한 항공기 운용의 시초이다.

이륙은 초기에는 포탑에 레일을 실어 거기서 발사. 설계 단계부터 정찰기 운용을 고려하게 된 뒤에는 전용 사출기를 쓰게 되었다. 이런 배는 갑판에 착륙시킬 수 없으므로 탑재기는 모두 수상기여서 착륙 후 인양했다. 시험적으로 사용하던 시기에는 그냥 가까운 육지에 착륙한 뒤 소형함에 실어 전함에 배달했다. 

그리고 각 전투함에 수상기 한두대를 싣는 것을 넘어서 수상기 운용만을 목적으로 한 수상기 모함이 등장하는데, 계보상 항공모함의 직계조상이라 할 수 있다. 1910년 프랑스 해군이 어뢰정이었던 라 푸드를 수상기 8대를 설치한 수상기 모함으로 개조했고, 1910년과 1911년 미해군의 USS 버밍험과 USS 펜실베니아를 개조해서 후방에 착함용 갑판을 만들고 비행기를 착함시키는 데 성공했다. 수상기 만을 운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수상기 모함은 영국의 HMS 아크 로열(Ark Royal)이 최초로, 이는 상선을 개조하여 만든 함선이었다.   

실전에서 최초로 배에서 이륙한 비행기로 공격 임무를 수행한 것은 일본 제국 해군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초기인 1914년 9월 6일, 일본 해군은 운송 선박 와카마루를 개조해 수상기를 달았다. 그리고 칭다오 전투에 투입했는데, 와카마루에서 발진한 비행기들은 정찰 임무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과 독일 제국 해군의 함선을 공격하기도 했다. 그들에게 최초로 공격당한 함선은 오헝 제국 해군 방호순양함 SMS 카이제린 엘리자베트였다. 다만 공격은 빗나가 실제로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당시 해전의 핵심은 거함거포주의였고, 그렇기 때문에 적 함대 포착과 아군 함대의 포격 관측이 함재기들의 주 임무였다. 또한 공간 문제와 더불어 함선 구석의 조그만 폭약식 사출기만으로 날아오를 수 있어야 했으므로 함재 수상기들은 크기가 작고 무장 탑재 능력도 좋지 못했다.

 

 

항공모함 여명기


본격적인 항공모함의 출발점이 된 세계 최초의 항공모함은 1917년 6월 26일에 취역한 커레이저스급 대형 경순양함 3번함 HMS 퓨리어스이다. 이 배는 비행기의 이착함을 위해 함 앞쪽 포탑을 떼어내고 평갑판을 깔았으며, 1917년 8월 2일에는 에드워드 해리스 더닝 비행대장이 숍위드 카멜 비행기로 착함에 성공했다. 그는 8월 7일에 2번째로 착함에 성공했으나 같은 날 세 번째로 착함을 시도하다가 실패하고 순직했다. 그 후 퓨리어스는 1918년 3월 15일에 함 후방의 포탑까지 떼어내고 함재기용 엘리베이터 2대를 갖추는 개장공사를 끝낸 후 5월부터 함재기를 탑재하고 정찰활동에 들어갔으며, 1918년 7월 18일에는 항공모함 역사상 최초로 적 육상기지에 공습을 감행했다. 이것이 톤더른 공습이며, 독일군은 혼비백산했고 해당 기지는 비행선 격납고 2개와 비행선 1대를 잃고 비상착륙지로 격하당했다. 

퓨리어스가 등장해서 항공모함의 유효성을 실증하자,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간기에 구식화한 군함을 개조한 개조 항공모함들이 속속 등장했다. 건조중이던 이탈리아 여객선을 1916년 매입, 개조하여 항공기의 이함과 착함이 모두 가능한 배의 앞에서 뒤까지 연결된 커다란 비행갑판구조를 갖춘 최초의 항공모함 HMS 아거스(Argus)가 1918년 취역했다. 처음부터 항공모함으로 설계된 항모들도 속속 출현하였는데, 영국에서 항공모함으로서 설계되어 세계 최초로 건조가 시작되었지만 호쇼보다 늦게 취역한 HMS 허미즈(Hermes)가 있었고, 대전 이후 일본은 항공모함으로서 설계된 호쇼를 건조, 허미즈보다 빨리 완성시켜 세계 최초로 전용 항공모함을 취역시킴으로써 항공모함은 정식적으로 해군 함정의 위치를 부여받는다.

거함거포주의는 역설적으로 항공모함의 대두를 불러오고 마는데,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과 런던 해군 군축조약으로 전함의 보유가 제한되자 일본을 비롯한 열강들은 한창 건조 중이던 전함들을 개장 및 개조해서 항공모함으로 바꿔 취역시켰다. 진주만에 참전한 항공모함 아카기는 아마기급 순양전함, 카가는 카가급 전함으로 건조되다가 중간에 워싱턴 군축 조약 때문에 항공모함으로 개장한 경우다. 

그러나 당시 항공모함을 보유한 국가는 전 세계에 단 4개국, 미국과 영국, 일본, 프랑스뿐이었다. 프랑스의 경우는 해외 식민지와 유럽 대륙에 양다리를 걸친 국가라 일단 항모에도 관심을 보여 베아른급 1척을 건조했지만,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상 폐함해야 하는 전함이 아까워서 재활용한 것이며 항공모함으로 운용하기에는 문제가 많았다. 이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작전 해역이 지중해와 북동대서양 인근에 국한되어 지상발진기나 주력함의 소수 함재기만으로도 충분히 초계 지원 활동이 가능했기 때문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반면 미국과 일본은 드넓은 태평양이 작전 해역이었고, 영국은 전 세계에서 작전을 펼쳐야 했기에 항공모함에 의한 대규모 함재기가 필수적이었다. 

항공모함의 여명기에는 물 위에 떠다니는 수상 항공모함만이 아닌 다양한 방식이 연구되었다. 공중항공모함은 영국의 R-33과 미국의 아크론급 공중항공모함, 소련의 즈베노 프로젝트 등이 있으며, 영국의 M급 잠수함 2번함 M2는 잠수 항모였다. 

 

 

제2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러서는 항공기와 항공기술이 엄청나게 상승함에 따라 항공모함의 중요도는 급상승하게 되었는데, 기존의 전함의 대형 함포로 먼 사거리에서 강력한 공격을 퍼붓는다는 개념을 포대 대신 플랫폼, 포탄 대신 항공기의 뇌격과 폭격 등으로 대치함에 따라 초장거리 포를 운용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어져 버렸다. 게다가 암만 멀리 날아가봤자 4~50km가 한계인 전함의 주포에 비해, 수백 km 이상을 행동반경으로 삼을 수 있고 더욱 자유로운 기동과 정확한 공격이 가능한 항공 폭격과 뇌격은 여러모로 우위를 점한다. 항공모함 이착함이 제한되는 야간이나 악천후 정도나 예외가 된다.  

물론 2차대전 초기에는 아직 항공기에 대해 이해도가 부족했기에 항공모함은 전함전대의 결전을 보조하는 보조 수단으로 인식되었다. 항공모함을 함대 앞부분에 배치하고 정찰활동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결전 이전에 한 두 척 정도는 잃어버려도 "씁, 어쩔 수 없지." 수준의 존재감만 가지고 있었다. 현대에서는 상상조차 안되는 반응이나 당시 항공모함과 함재기 운용비는 현재처럼 무수한 전자장비를 갖추고있지 않아서 현대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었고 전함보다 운용비가 적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2차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뒤집어지게 된다. 지상전에서는 영국이 이탈리아에 가한 타란토 공습과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해전에서는 비스마르크 추격전과 말레이 해전, 다수의 전함을 잃고 불리한 환경에서 미드웨이 해전으로 전황을 뒤집는 일들이 일어나자 전 세계 해군들은 항모의 위력을 제대로 인식하게 된다.

특히 진주만 공습과 말레이 해전으로 각국 해군의 전략 체계엔 큰 변화가 일어났으며 항공모함-함재기의 집단운용에 의한 원거리 목표 타격이 새로운 대세가 되었다.

새로운 변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진주만에서 태평양 함대의 주력 전함들을 대거 상실하는 참사를 당해 주력 전력으로 항모만 살아남았던 미국이었다. 일본의 무통보 선빵으로 전함들은 모조리 침몰되거나 중파당해 쓸 수 없게 되었지만, 항공모함들은 기습 당시 바다에 나가있다보니 일본의 공격을 피해 살아남을 수 있었고,미국은 참전 선언 이후 수십척의 항모를 한꺼번에 발주시키는 천조국 특유의 강대한 국력을 항공모함의 건조 및 우수 함재기의 개발에 쏟아붓게 되며 대전이 끝나갈 즈음엔 이들 에식스급 항공모함이 풀빵 찍어내듯 줄줄이 취역하면서 일본 해군을 상대로 붙었다 하면 탈탈 털어먹어 진주만의 치욕을 몇 곱절로 돌려주게 된다. 완성된 24척 중 17척이 태평양 전쟁 기간 중에 취역했다.

일본 해군은 워싱턴 군축조약으로 항모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일부 성공을 거뒀고 진주만 공습에서 집단 함재기 운용 전술을 중일전쟁에 잘 써먹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항모위주의 전투가 아니라 전함전에 더 집착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진주만 공습에서 보여준 새로운 개념은 항공모함의 집단운용에 강력한 함재기를 더했다는 점이다. 일본 해군의 주력함재기인 0식 함상 전투기는 일본 육군 항공부대에서 운용하는 항공기와 대등한 성능을 요구받은 첫 사례이기도 하다. 실제로 0식 함상 전투기는 육군 주력 전투기인 Ki-43 하야부사와 비슷한 수준의 성능을 가졌으며, 덕분에 일본 항모전단은 개전 초기에 대단히 막강한 위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것은 일본의 절박한 사정 탓인데, 일단 당시 일본은 군축 조약으로 건조 중인 전함을 항모로 변경할 수밖에 없었고 이걸 어떻게든 유용하게 써먹어야 했다. 군축 조약에는 일본 해군이 미국과 영국보다 전함 숫자가 적어야 한다고 강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전함으로는 수적으로 열세이니 다른 방법으로 서양 열강의 해군에 대항해야 했고, 당연히 항모를 주력으로 쓰기 위해 집단운용을 시험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조약탈퇴 이후에는 다시 전함들을 건조해야 한다느니 하며 일본 해군 내부에서도 항모파와 전함거포주의자들이 알력다툼이 벌어졌다. 후일 연합함대 사령관이 되는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야마토 전함 한 대에 제로센 1000대는 가뿐히 찍으니 항모를 만들자며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야마토급 전함이 건조되는 참사가 벌어진다. 

이런 식이라 일본 해군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입하고도 종래의 전함 운용전술을 유지하거나 물 위를 떠다니는 항공모함 외에 다양한 타입의 항공모함들을 운용했다. 물론 당연히 결과는 좋지 못했다. 이세급 전함은 항공전함으로 개장된 후 실전에 투입되었으나, 함재기가 없어서 미끼나 수송선 노릇만 하는 굴욕을 당했다. 일본군의 쌍발폭격기인 G4M은 MXY-7 오카라는 자폭 병기 1대를 탑재했는데, 이 때문에 영문 위키피디아에서는 공중항공모함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그러나 폭죽으로 유명한 G4M과 오카의 조합은 대실패. 이 외에도 잠수 항모 센토쿠급을 실전에 투입하려고 했으나, 울리시 환초 공격작전을 시행하기 직전에 일본이 항복했으므로 실전을 치르지는 못했다. 이런 것에서 알 수 있다싶이 일본 해군의 작전개념에서 딱히 항공모함이 전함을 압도할 정도까지는 여겼다고 보기는 힘들다. 항공모함의 집단운용이라는 혁신적인 구상을 만들어냈으면서도 일본 대본영은 항공모함을 그저 전함의 보조전력 정도로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고 실질적으로 항공모함 위주로 재편이 이루어진 것은 1944년 정도에 들어가서야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나 막상 일본 전함은 태평양 전쟁에서 실적이 없다. 위에서는 '전함의 존재감이 강화되었다'고 서술했으나 그건 후방에서나 그런 거고, 최전선의 일본군 장병들에게는 존재감 제로였다. 최일선에서 미군에 맞서 싸운 전함은 함대결전에는 실격이라며 주력에서 밀려난 공고급 순양전함 4척과 이를 보조하는 중순양함들이었고 이들은 엄청나게 혹사당했다. 전함이 없으니 항공모함 호위부터 야간전까지 중순양함들이 다해야 했기 때문이다. 막상 일본의 주력 전함들은 함대결전을 대비해야 한다며 후방에서 놀았으므로 전쟁에 기여한 바가 없으며, 전장에 나가자마자 레이테 만 해전에서 야마토급 전함 2번함 무사시가 자기 주포로 대공포 사수들을 날려버리는 삽질을 하며 미 항공모함 기동부대에게 박살났고, 야마토와 나가토는 미군 구축함에게 쫓겨서 줄행랑쳤다. 이후 야마토는 일본 해군의 체면을 세운다는 이유로 오키나와로 자살돌격을 감행했고, 미 항공모함 기동부대에게 일방적으로 얻어터진 끝에 침몰하면서 "항공모함이 전함보다 세다"는 증거자료가 되고 말았다. 

영국 해군은 상대적으로 항공모함의 활약상이 덜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놀고 있었던 건 아니다. 비스마르크 추격전에서 독일 전함 비스마르크의 키를 박살내서 발을 묶은 것이 항공모함 아크로열의 뇌격기인 소드피시였으며, 몰타 항공전에서도 다수의 함재기를 싣고 몰타 섬을 구원하기 위해 수많은 항공모함들이 동원되었고, 호위항공모함들은 대서양 전투에서 U보트를 상대로 승리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심지어 세계 최초의 항공모함 퓨리어스까지도 몰타 항공전과 티르피츠 레이드에 참가하여 활약할 정도였다. 

나치 독일의 크릭스마리네도 항공모함 보유 계획을 세웠으나 독자적으로는 항모를 만들 기술이 부족했던 독일은 일본 제국과의 기술 거래로부터 전폭적인 기술 지원을 받아 그라프 체펠린급 항공모함의 건조를 시도한다. 150mm 함포 등의 중무장과 35노트의 빠른 속도를 갖추어 단독으로도 통상 파괴전을 수행할 수 있는 전력을 가졌으나 나치 내부의 적인 공군 총사령관인 헤르만 괴링이 항공기는 다 자기 관할이라는 미친듯한 태클 때문에 건조 및 운용계획에 심각한 차질을 빚었고, 건조이후엔 함재기 선정 과정에서 난항을 겪으며 지지부진하다가… 결국 실전은커녕 자침으로 생을 끝냈으며, 전후에는 소련군에게 입수돼 미 해군 항공모함 격침을 위한 교보재로 쓰이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비슷한 시기 이탈리아 해군 또한 민간 여객선을 개장해서 아퀼라라는 항공모함을 만들려 했지만, 개장 도중 계획이 취소되어 미완성된 채로 항구에 정박해 있다가 전쟁 이후 고철로 처리되었다. 이는 괴링을 능가하는 이탈리아의 트롤러 이탈로 발보의 반대 때문에 몇차례나 되는 항모 건조 계획이 모두 엎어졌기 때문이었다. 결국 마타판 곶 해전에서 영국군 장갑항모 포미더블에게 큰 피해를 입고 나서야 부랴부랴 아퀼라 개장 계획이 잡혔으나 차라리 구축함을 만들자는 논리에 밀려 취소당했다. 

프랑스는 전쟁이 시작하자마자 박살난데다, 항공모함 자체의 성능이 뒤떨어졌으므로 활약상이 없다. 프랑스의 유일한 항공모함인 베아른급 항공모함은 너무 느려터져 항공기 수송선으로만 사용되었으며, 조프리급 항공모함은 건조 도중에 프랑스가 박살나면서 건조가 중단되었고, 이후 독일군이 해체했다. 

소련은 항공모함이 없었지만, 즈베노 프로젝트라는 공중항공모함을 실전에 투입해서 나름대로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성능이 뒤떨어졌으므로 전쟁 중에 퇴역했다. 이게 제2차 세계대전 중 소련군의 유일한 항공모함 운용이었다.

 

 

현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소련과 함께 최강국이 된 미 해군이 냉전 영향으로 최신기술을 적용하며 항공모함 운영의 바이블이라고 할 정도로 항공모함 교리와 장비 발전을 주도했다. 그러나 미국식 슈퍼 캐리어는 최대 만재량이 최소 8만 톤일 정도로 너무 크고 전투기와 더불어 원자로 추진형이기에 유지 비용이 터무니없이 비싸서 다른 나라가 따라할 수 있는 방안이 전혀 아니다. 니미츠급 항공모함 한 척을 대한민국 국방부에 공짜로 주면, 대한민국은 (운용비를 대느라) 니미츠급 항공모함에게 공격당한 만큼의 재정적 타격을 받는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2차 대전까지만 해도 함재기들은 공대공 전투는 사실상 기관총으로 하는 도그파이트 형식이었으며 레이더는 아직 탑재되지 않았기에 생산 비용과 항모 유지 비용이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냉전을 통해 항모에도 고성능 레이더, 최신식 캐터필트 등 여러 시설이 추가되었고 더욱이 건조기술 노하우와 기술발달로 최대만재량도 높아졌다. 이 외에도 함재기마저 레이더를 비롯한 전자장비와 유도성능이 있는 공대공, 공대지 미사일이 다수 장착되기 시작, 냉전을 통한 계속된 군비경쟁으로 스펙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였다. 이 때문에 항모는 더욱더 강대국이 굴릴수 있는 함선으로 각인이 될 정도로 비용이 급상승해버린다. 이 급상승으로 인해 1~2차 대전초까지만 해도 강대국들이 막대한 돈이 들어도 운용하던 전함 운용비가 항모보다 더 저렴해졌다.

이후 미국은 포레스탈급 항공모함을 시작으로 세계 최초 슈퍼 캐리어 항모 시대를 열었고 이후 후속 항모 키티호크급 항공모함을 실전배치 했지만 가뜩이나 선체 크기도 늘어나 함선 자체와 그 설비를 운용할 막대한 연료탱크 함재기용 연료탱크를 두 가지 구비해야 하다 보니 어마무시한 건조 비용과 늘어난 연료소모량까지 포함된 운용비용을 먹으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에 미국은 원자력 추진 잠수함에 쓰이던 원자로를 시험삼아 항모에 적용해 세계최초 핵항모 엔터프라이즈급 항공모함이 탄생한다. 원자로 덕에 함선 시설과 동력을 자체 확보가 가능해지면서 함재기용 연료탱크만 구비하면 되었기에 키티호크급보다 건조 비용이 저렴해졌다. 이렇게 첫 핵항모의 실전 운용은 대성공이었다. 이 결과에 고무된 미국은 니미츠급과 제럴드 포드급 항모에 더욱더 개선된 원자로를 기본 탑재로 설계하였다. 

한편 소련은 러시아 제국 시절에도 그러하듯 부동항 부족으로 해군이 육군에 비해 빈약하였으며 2차대전 당시 주적이던 나치 독일군 크릭스마리네는 항모가 없고 해군 또한 열악했다. 반면 미국은 일본과 항모를 운용한 해전을 벌여 항모 운용 경력이 쌓인 반면 소련과 나치 독일은 서로 항모가 전무하였기에 항모 운용 경력이 없다고 봐야 할 정도. 2차대전 이후 미국과 함께 세계 초강대국이 된 소련은 항모위주 편제의 미 해군에 대항하기 위해 항모 보유를 한다고 봤으나 운용경험이 없기에 중순양함에 함재기를 싣는 방식을 택했다. 제2 차 세계대전 당시의 중순양함보다도 거대해졌으므로 현대판 항공전함이라고 보면 되지만, 제대로 된 함재기의 개발에 실패했으므로 실제 전력은 기대 이하였다. 냉전 무렵 소련이 만든 키예프급 항공 중순양함은 미국 항공모함처럼 캐터펄트를 탑재하지 못했기에 VTOL기를 주력 함재기로 채용했지만, 막상 만들어진 Yak-38은 대실패작이었기에 제대로 써먹지도 못했다. 키예프급이 헬리콥터 모함이 되어버린 것도 이 탓이다. 소련은 이후 차세대 중순양함인 어드미럴 쿠즈네초프급 중항공순양함을 건조했는데,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하기 위해 중항공로켓순양함, 다시 말해서 중순양함이라고 분류해버렸다. 그러나 쿠츠네초프는 누가 봐도 명백히 항공모함이었으며, 소련 붕괴 후 쿠츠네초프를 넘겨받은 러시아도 "항공모함이면 함재기를 날려야지 미사일을 날리겠냐?"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고 쿠츠네초프의 과무장을 줄이고 함재기 운용에 집중하는 형태로 현대화시키기로 했으나 러시아 경제 문제로 지지부진한 상황이고 초기부터 탑재된 대공무기를 비롯한 무장이 너무 많아 운용이 너무 힘든 상황이다. 이래서 러시아도 쿠츠네초프 노후화로 인해 미국과 맞서려면 차기 항모 도입을 해야한다는 의견이 나오나 이 역시 군 현대화가 급선무인 러시아 사정과 예산문제로 좌초되었다.

영국 해군은 식민지가 전부 독립하면서 경제가 서서히 기울어갔고 식민지를 지킬 이유가 사라졌으니 자연스럽게 군축이 이뤄진다. 정규항모가 노후화되 새 정규항모를 취역해야 했으나 자꾸만 대형화되고 비싸지는 정규 항공모함의 운용을 포기하고 새로운 스타일의 경항공모함을 만들어냈다. 인빈시블급 항공모함이 그것으로, 걸작 VTOL기의 대명사의 위상이 된 AV-8을 탑재하여 운영하였고 장거리 전쟁인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이 제공권을 장악하는데 큰 역할을 하며 승리를 안겨주었다. 이 경항모의 활약에 고무된 다른 나라들도 영국을 따라하면 경항공모함을 다룰수 있다며 너도나도 건조하거나 태국처럼 중고 경항모를 도입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해리어가 퇴역 및 단종되고 아직 운용중인 해리어의 부품 비용으로 유지비가 상승된 것과 5세대 전투기이자 F-35B는 스텔스 + 최신기술의 정수를 담은 미국제답게 너무 비싼 나머지 태국과 같은 경항공모함 운용국들은 함재기를 실을수 없어 헬기항모로 전락하였고 현재 일본, 한국과 같이 경제가 뒷받침 되는 강대국 외에 운용하기 매우 힘들어졌다. 더욱이 영국이 경항모에서 다시 정규항모로 노선을 갈아탄 가장 큰 원인은 영국 해군이 인빈시블급 경항모를 운용해보면서 체급이 작은 경항모의 한계를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영국 해군은 인빈시블급 경항공모함의 한계를 체감하고 노후화에 따라 정규 항공모함인 퀸 엘리자베스급 항공모함을 건조하게 된다. 

2000년대 중반부터 떠오른 강국이자 2010년대부터 팽창정책을 벌이는 중국은 이전부터 항모에 관심을 가졌고 이에 대한 연구를 하였으나 경제 문제로 무산되었고 이후에도 꾸준히 영국과 접촉하며 기술이전을 통한 항모도입을 시도했으나 당연히 이도 실패한다. 한편 중국의 폭발적인 성장은 미국이 위험시하기 시작했고 중국도 조용히 힘을 축적하였다. 처음에는 중국은 우크라이나에 있던 미완성 어드미럴 쿠즈네초프급을 도입해 이를 소생시켜 랴오닝 항모를 보유하면서 동북아시아 최초로 정규항모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함재기등 아직 미숙한 부분이 많아서 보완할 점이 많아서 중국은 DF-21 탄도탄 미사일에 투자하며 미 항공모함을 격침시킬수 있다며 항모개발에 미온적인 태도를 지녔으나 남중국해 분쟁이 점차 나오며 미국도 개입하기 시작하자 이에 질세라 중국은 랴오닝을 참고하여 만든 자국산 산둥급 항모를 취역시키며 확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산둥급도 캐퍼필트가 없어서 전투기 발진 속도가 매우 부족하기에 미국식 슈퍼캐리어를 최대한 반영한 003형 항모를 건조하기 시작하면서 항모 도입에 매우 적극적인 추세다. 이 영향으로 인해 동북아시아 3국중 나머지 두 나라 한국과 일본은 항모 도입을 선언하였고 그중 일본은 기존에 있던 이즈모급 헬기항모를 개조하여 F-35B를 운영하는 경항모를 도입하였다.

현대에는 무인기 운용을 주체로 한 무인기 모함도 연구되고 있으며 슈퍼캐리어급 정규 항모 11척을 운영 중인 미국에서도 강력한 대신 어마무시한 영수증으로 인해 고민하던 도중 아메리카급 강습상륙함을 시험적으로 VTOL기 F-35B를 운영을 해보고 좋은 성과가 나오자 정규 항모를 줄이고 그만큼 경항모로 대체하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기술 혁신의 주역
항공모함 개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나라가 바로 영국이다. 세계 최초의 항공모함 퓨리어스, 격납고와 전용 함재기를 갖춘 최초의 잠수 항모 M급 잠수함 2번함 M2, 최초의 공중항공모함 R-33을 만든 게 영국이고, 가장 먼저 항공모함을 만들었기에 함재기 운용에 수반되는 문제를 가장 먼저 파악했기 때문이다. 함재기가 착함하다가 제동에 실패할 경우 펼치는 안전그물도 퓨리어스에서 가장 먼저 도입했다. 

현대 항공모함의 필수 기술인 앵글드 데크(경사갑판)(옆으로 4~9도 가량 비틀어진 갑판)나 착륙유도장치 같은 항공모함의 상징과도 같은 장치들은 영국이 개발했으며, 항공모함의 능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고 현대의 모습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정작 영국은 재정 문제로 인해 이런 장치들을 장비한 정규 항공모함을 못쓰고 있다. 퀸 엘리자베스급 항공모함에 이런 장비를 도입해 보려고 했으나 비용 문제로 포기했다.   

이외에도 고전적 항공모함과 현대형 항공모함을 구분하는 요소로는 캐터펄트 같은 이함 보조장치, 광학식 착함 유도장치가 있다. 항공모함을 하드웨어적으로 가장 의미있게 굴리는 방법은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인 만큼 가용면적 자체를 크게 늘려주는 경사갑판, 이함 능력을 비약적으로 강화시키는 이함 보조장치, 마지막으로 이렇게 날려보낸 함재기들을 신속히 회수하게 돕는 착함 유도장치는 현대 항공모함의 효율을 크게 늘려주는 3대 요소인데, 이는 모두 영국 해군에서 개발하고 실용화한 것들이다. 이 3대 요소가 정규 항공모함들과 다른 항공기 운용 가능 함선들을 가르는 요소로, 덩치가 아무리 커도 항공모함이 아닌 함선들은 경사갑판과 이륙 보조장치를 채택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타라와급 강습상륙함이 대표적인 예.  

이외에도 장갑화된 비행갑판과 폐쇄식 격납고 등을 꼽기도 하는데 이 둘은 현대 항공모함형 함선이라면 모두 채택하고 있다. 당연히 이것도 영국이 개발했다.

작가들이 항공모함 상상도를 그릴 때 흔히 빼먹고 그리는 것 중 하나로 경사갑판(앵글드 데크)이 있다. VTOL기를 주력으로 운용할 게 아닌 이상 STOL기 이상의 함재기를 운용하는 본격 항공모함은 앵글드 데크를 반드시 갖추어야만 한다. 앵글드 데크가 있으면 동시 이착함이 가능해지기에 함재기 운용효율이 비약적으로 상승하지만, 완전일자형의 경우 착함시 갑판을 전부 써야만 하기에 동시이착함이 불가능하다. 거기에 더불어 앵글드 데크를 쓰지 않으면서 STOL기를 착함시킨다면 사고율도 높은편이다. 항공모함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이런걸 간과하고 2차 대전식 완전일자형 항공모함을 미래 항공모함 상상도랍시고 그려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것도 꼭 STOL기와 함께. 

그런데 앵글드 데크가 없고 완전일자형 갑판을 가지며 STOL기를 함재기로 운용하는 항공모함의 원조도 영국이다. 현대적인 경항공모함의 원조인 인빈시블급 항공모함은 VTOL기인 AV-8을 운용하는 완전일자형 갑판을 갖춘 항공모함이다. AV-8은 수직이착함이 가능하지만 연료 절약을 위해 이함시 스키점프대를 이용해서 STOL처럼 단거리 이륙을 하며, 작전을 끝내고 착함할 때는 수직착함을 하므로 넓은 활주로가 필요 없다. 덕분에 인빈시블급은 앵글드 데크가 없는데도 함재기의 동시이착함 능력을 보유하며, 재정문제로 정규 항공모함을 운용할 수 없는 나라들이 앞다투어 영국식 경항공모함을 도입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공중항공모함의 원조도 영국의 R-33이다. 함재기를 비행선 밖에 매달아두고 다녔기에 엉성해 보이지만, 여기서 영감을 받은 미국은 아크론급 공중항공모함을 개발했고 소련은 즈베노 프로젝트, 일본은 G4M + MXY-7 오카 조합을 만들게 된다. 전후에도 이런 개념은 계속 연구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개념이 성공한 것은 아니다. 영국이 개발한 M급 잠수함 2번함 M2는 세계 최초의 잠수 항모이지만 성공적인 후손이 나오지 못했다. 잠수 항모를 실용화하려면 극복해야 할 난관이 너무 많았던 탓이다. 일본에서 센토쿠급을 만들기는 했지만 함재기가 3대에 불과했던 데다가 실적도 없었고, 대량의 미사일을 발사해서 지상 목표물을 타격하는 잠수함이라면 SSGN이 있다. 잠수 항모를 굳이 만들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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